성경연구

복음 사업 - 사도행전 연구8

김건우_Jonathan 2025. 7. 5. 16:57

행 8:1-13,26-40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침례를 받으니
[13] 시몬도 믿고 침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

[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침례를 베풀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내용 요약

  1. 예루살렘 교회의 수난 (1-3)
  2. 사마리아 전도 (4-25)
  3. 아프리카 전도 (26-40)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떠밀려 어떤 일을 함으로 좋은 결과를 이룬 적이 있나요? 어떤 경우였나요?
  2. 당신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전할 복음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요?
  3. 의외의 인물에 의하여 복음사업이 유지되는 것을 본 경험이 있나요? 어떤 사람이었나요?
  4.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한 적이 있나요? 왜 그렇게 간절했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예루살렘교회의 사람들이 흩어진 이유는?(2절)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나요?(4절)

  2. 환경적, 상황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통하여 일하신다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나요?
    • 운명하신 주님을 위하여 가난한 제자들이 할 수 없었던 그 일을 할 수 있었고, 또한 그들의 재산과 영향력으로 제자들은 제사장들과 관원들의 악의에서 크게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 유대인들이 어린 교회를 멸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때에 니고데모는 그 교회를 보호하려고 나아왔다. 니고데모는 그 이상 조심하거나 의심하지도 아니하였고, 제자들의 신앙을 격려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유지하는 일을 돕고 복음 사업을 발전시키는 일에 그의 재산을 사용하였다. 전날에 그에게 존경을 표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를 조롱하고 핍박하였으므로 그는 이제 세상 재물에는 가난하게 되었으나, 자신의 신앙을 옹호하는 일에는 흔들리지 아니하였다. 행적104p

  3. 빌립의 전도방법과 자세를 살펴보고, 그것을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나누어보아요.
    ① 일어나서...그 길은 광야라(순종)
    ② 가까이 나아가서 (8:29)
    ③ 달려가서 (8:30)
    ④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고 (8:35)
    ⑤ 침례를 베풀고 (8:38)

  4. 빌립이 전한 기별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 기별을 우리는 어떻게 전하고 있는지 나누어보아요.
    ①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 (8:5)
    ②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8:12)

생각해봅시다

  1. 내게 있어서 복음을 위해 가야할 광야가 있다면 그곳은 어디 일까요?

  2. 나는 지금 나의 삶 속에서 복음을 어떻게 전하고 있나요?

온 교회가 봉사의 정신을 가지고 각자 자기의 능력에 따라 그분을 위해 일하게 되기를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고대해 오셨다. 하나님의 교회의 교인들이 복음 사명을 성취하기 위하여 국내외에서 필요되는 분야에 들어가 그들에게 맡겨진 일을 할 때에, 온 세계는 오래지 아니하여 경고를 받게 될 것이고 주 예수께서는 능력과 큰 영광으로 이 땅에 재림하시게 될 것이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행적 107p)

 


그날. 스데반이 돌에 맞은 일은 교회를 조직적으로 핍박하는 시발점을 이루었다. 스데반을 죽이는 상황까지 간 유대 지도자들은 그 분노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돌렸다.

 

큰 핍박. 앉은뱅이를 고친 후 그리고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 후(5:17, 18)에 적은 규모의 핍박이 있었던 것처럼, 교회는 다시 한 번 유대 당국자들로부터 핍박을 받는다(4:1~7). 이번 핍박은 범위와 가혹함을 가리키는 “큰”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점에서 이전의 핍박과는 구별된다. 참조 214쪽 지도.

이 핍박에 투옥과 큰 고통이 동반되었음을 1, 3절과 후일 바울의 묘사(참조 22:4; 26:10, 11)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

 

흩어지니라. 헬라어 디아스페이로(diaspeiro-). “낱알처럼 흩어지다”, “분산되다.” 이렇게 하여 원수의 분노는 오히려 그리스도가 예고한 것을 교회가 성취시키도록 돕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1:8). “다”라는 말에 신자 모두를 포함시킬 필요는 없다(참조 1:1 주석). 단지 겁이 더 많은 사람들이나 행동이 빠른 사람들 아니면 핍박자들에게 개인적으로 알려진 사람들일 것이다. 어쨌든 남녀 신자들이 그 도시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참조 8:3).

 

잔멸할새. 헬라어 뤼마이노(lumaino-). “약탈하다”, “황폐화시키다”, “파멸시키다.” 이 단어는 「70인역」의 시 80:13에서 “수풀의 돼지가 상해한다”는 표현에 사용되었다. 여기서 사용된 시제는 계속되는 핍박을 나타낸다. 바울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였다고 말한다(행 22:4; 참조 26:10). 후에 그가 고백한 것처럼(26:11), 그의 폭력은 일종의 광기어린 만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4. 두루 다니며. 헬라어 디에르코마이(dierchomai). “지나가다, 통과하다.” 선교 사역을 나타내기 위해 누가가 즐겨 사용한 용어이다(참조 눅 9:6; 행 8:40; 9:32; 11:19; 13:6). 이 경우, 새로운 신앙을 박멸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신앙의 활동 범위를 더 넓혀 주었는데, 이것은 주께서 바라신(행 1:8) 대로였다. 이러한 핍박은, 핍박이 없었다면 그 신앙이 상당히 오랜 기간 일부 지역에만 한정되었을 상황을 뛰어넘게 하였다. 후에도 그랬듯이 그때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었다.

 

말씀. 넓은 의미에서 이 단어는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가르침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이 중 많은 부분이 구약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의 대부분이 아직 문서로 기록되지 않아, 자원하는 복음전도자들이 구두(口頭)로 전하는 기별에 의존했다.

 

전파하니. 헬라어 케륏소(ke-russo-). “[전달자로서] 선포하다”라는 의미로, 4절에 사용된 것과는 다른 단어이다. 따라서 안수받지 않은 신자들이 하는 설교보다 좀 더 공식적이고 심도 있는 설교를 의미한다. 침례자 요한과 그리스도(마 3:1; 4:17)의 설교를 가리킬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동사의 시제로 보아 빌립이 계속 설교했음을 알 수 있다.

 

6. 듣고. 문자적으로 “그것을 듣고” 즉 빌립의 말을 듣고. 사마리아인들은 처음에는 아무런 표적도 없이(참조 마 12:38 42) 단순히 그리스도의 설교를 듣고(요 4:39~42) 믿었다. 지금 일어난 이적들은 믿음의 토대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믿음을 강화시키기 위해 주어졌다. 이 표적으로, 빌립을 통해 역사하는 능력에 관한 모든 의심이 일소되었다. 틀림없이 이 표적들은 마술사 시몬의 영향을 바로잡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행 8:9~11).

 

9. 그 성. 5절에 언급된 성. 9절 본문 가운데 별도로 언급된 “사마리아”는 수도 사마리아가 아니라 사마리아 지역을 가리킨다.

 

26. 사자. 누가는 천사들의 봉사를 주의 깊게 관찰한다(참조 눅 1:38과 행 10:7; 눅 2:9과 행 12:7; 눅 24:4과 행 1:10; 10:30). 헬라어 구조는 베드로와 요한이 전도하는 동안 한 천사가 빌립에게 이야기했음을 시사한다. 그 초자연적 부르심은 이상 가운데 이르러 왔을 것이다(참조 행 10:3의 고넬료).

 

그 길은 광야라. (「제임스왕역」에는 “그것은 광야라”[Which is desert]라고 되어 있음 -역자 주). 이 구절은 마치 독립된 문장인 것처럼 문자적으로 “이것은 광야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천사가 한 말인지 아니면 누가가 덧붙인 설명인지 알 수 없다. “이것”(This)이 “길”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도시”를 가리키는지도 분명하지 않지만, 누가가 어떤 도시를 언급하고 나서 그것을 “광야”로 묘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개정표준역」에는 “이는 광야 길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단순한 믿음으로 빌립은 도중에 겪게 될 기념할 만한 일 즉 한 여행자의 회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예루살렘에서 가사까지 인적이 드물고 그다지 평탄치 않은 길을 가야 했다.

 

에디오피아. 구약의 구스와 마찬가지로 에디오피아는 나일 제1폭포의 남쪽 지역과 오늘날의 에티오피아에 이르는 지역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이다. 에디오피아 북부 지역은 나일강 상류 계곡에 있던 대(大)왕국 메로에(Meroe..)의 영토였다. 이 왕국은 오랫동안 여왕들이 통치했고, 따라서 십중팔구 내시는 이 왕국에서 왔을 것이다. 이 왕국과 유대 민족의 관계는 여러 흥미로운 점을 시사한다.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13(The Letter of Aristeas 13)에 따르면, 프삼티코스(아마도 Psamtik Ⅱ, BC 594~588)라고 불리는 바로가 통치하던 시절에 에디오피아 정복 전쟁을 지원하기 위하여 일단의 유대인이 파송되었다. 수 세기 동안 유대인들이 그 지역에 영향을 끼쳤음이 확실하다. 이는 예레미야 시대에 초기 에디오피아의 내시 에벳멜렉의 용기 있는 활동에 반영되어 있다(렘 38:7~13; 39:15~18). 더 이른 시기에도 히브리인들은 그들 국가에 에디오피아인들의 입국을 예상했고 또한 목도했다(시 68:31; 87:4).

 

간다게. 한 여왕의 개인적인 이름이라기보다는, 로마 제국의 캐사르(Caesar), 애굽의 프톨레마이오스, 바로(Pharaoh) 등과 같이 한 왕조의 이름이나 호칭이었을 것이다. 그 이름은 스트라본(Strabo Geography xvii. 1. 54)과 디오 캇시우스(Dio Cassius History liv. 5. 4~6)의 문헌에도 나타난다. 유세비우스(AD 325년경 사망)에 따르면, 그가 살던 당시에도 에디오피아는 여전히 여왕이 통치했다고 한다(Ecclesiastical History ii. 1. 13).

 

국고. 헬라어 가자(gaza). “왕의 보고(寶庫)”, “보물.” 페르시아어에서 유래된 말로, 이 당시 헬라와 라틴 작가들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었다(Cicero De Officiis ii. 22 [76]). 「70인역」 번역자들도 에 5:17; 6:1; 7:21; 사 39:2에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신약 다른 부분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합성어 형태로 성전의 보화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눅 21:1). 빌립은 가자(gaza) 즉 국고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 마 13:44의 비유에 나오는 사람이 부지런히 찾고 찾아 보화를 발견한 것처럼, 이 전도자는 그가 보화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예배하러. 이 내시는 할례받은 의로운 개종자일 것이며(참조 제10권, 70), 성전 예배에 참여하러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뿐 아니라 개종한 사람들도 그 목적으로 예루살렘에 갔는데, 이는 오순절에 참석한 사람들의 목록에서 알 수 있다(행 2:10). 요 12:20에 의하면 헬라인도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 왔다. 내시는 복을 찾아서 예루살렘에 왔으나, 집에 도착하기 전 그의 모든 예상을 능가하는 한 분을 영접하게 될 것이었다.

 

30. 빌립이 달려가서. 즉 성령의 명령에 즉시 순종하여 병거로 달려가. 그리스도인은 이와 같이 즉시 반응하는 점을 본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중심의 신실한 대화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깨닫느뇨. 대화를 능숙하게 시작하는 것을 주목하라. 빌립은 그를 만난 바로 그곳에서 대화를 시작했고, 대상의 관심사에 적절히 맞추어 접근했다. 그는 여기서 모든 그리스도인 교역자들이 따라야 할 모본을 제공한다. 빌립이 물은 것은 성경절의 자구(字句)가 아니라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는지이다. 헬라어 구문에 의하면, 빌립이 부정적인 답변을 예상했음을 알 수 있다. 내시는 이 구절에 관한 유대인의 주석을 약간은 들었겠지만, 이 구절이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사실에 대하여 어떤 암시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빌립은 그 뜻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 의미를 설명하도록 성령이 그를 인도했다.

 

31 지도하는. 헬라어 호데게오(hode-geo-). “길을 인도하다”, “지도하다.” 예수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말할 때 동일한 단어를 사용했다(요 16:13). 에디오피아로 돌아가던 내시는, 그곳으로 돌아가면 예루살렘에서 이제까지 그를 지도해 주던 이들에게서 멀어지게 되므로 이러한 어려운 말씀에 대한 능숙한 지도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의 질문은, 그가 그 성경구절을 처음으로 보았거나 성령이 그 구절을 새롭게 강조하여 깊이 생각하도록 했음을 암시한다.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이 질문은 그가 성경을 해석하는 훈련을 받지 못했으므로 깨닫기에 역부족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청하여. 진지한 요청을 의미하고 좀 더 가르침받고자 하는 내시의 열의를 나타낸다. 성령의 지시가 얼마나 순조롭게 성취되었는지 주시하라(29절). 빌립은 가까이 다가가고, 내시는 그 전도자에게 자신의 병거에 타도록 청한다.

 

32. 구절. 헬라어 페리오케(perioche-). “내용.” 회당에서 공중 낭독을 위해 정해진 성경구절들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파라샤(paras∨ah) 또는 합타라(hapt.arah)에 해당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참조 제10권, 64). 이 단어는 헬라인들이 흔히 사용했고, 키케로(Cicero, Letters to Atticus xiii. 25)가 차용했다. 이 단어는 이 구절의 전체 문맥이 무엇인지를 나타낸다. 여기서 “성경 (구절)”은 성경 전체가 아니라 이 구절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성경 구절의 내용”이라고 번역될 수 있다. 인용된 성경구절은 사 53:7, 8이며 「70인역」에서 사용된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끌리었고. 인용된 성경구절에 대해서는 사 53:7, 8 주석을 참조하라. 신약의 인용문은 히브리 성경의 번역이 아니라 「70인역」의 번역임을 기억하라.

 

33. 낮을 때에. 이 구절은 문자적으로 “굴욕 중에 그의 심판이 제거되었으며”라고 번역할 수 있으나 이 독법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그의 정죄가 철회되었다” 즉 “취소되었다”는 의미도 된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을 낮췄기 때문에 후에 높임을 받았다. 또는 분명히 심문당할 때 “굴욕 가운데서 그에게 정의가 거절되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사 53:8의 히브리어 본문은 “억압과 심판으로 그가 제거되었다” 즉 그는 사법적 살인의 희생자였음을 암시한다.

 

생명이…빼앗김이로다. 사 53:8의 히브리어 본문은 구주께서 갑자기 비명횡사했음을 암시한다. 「70인역」도 동일한 사상을 표현하며, 따라서 승천 시에 그리스도가 지상을 떠나는 것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누구를 가리킴이뇨. 내시는 자신이 읽고 있던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다시 말해 이사야의 말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물을 만큼 예리했다. 이사야 시대에는 이 질문이 해결되지 않았으며,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많은 논란이 있다(참조 사 41:8; 42:1; 52:13; 53:1). 그렇지만 빌립은 그 주제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으며, 우리 역시 그래야 한다. 그 질문은 빌립이 내시에게 예수를 전할 수 있는 구실을 제공했다.

 

35. 입을 열어. 이 구절이 신약에서 나타날 때는 언제든지 단순히 말을 하는 행위보다는 준비된 설교 등을 할 경우를 나타낸다(참조 마 5:2; 13:35; 행 10:34).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내시는 예루살렘에 체류하는 동안 예수의 가르침을 들었을 것이다. 사도들의 사역은 도성 전역의 주목을 끌었다(2:41; 4:33; 5:12~14; 6:7, 8). 그러나 그가 본 많은 토론은 분명 예수를 사기꾼으로 분류했고, 따라서 사도들의 설교에 비추어 볼 때 내시가 사 53장을 보았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 그러나 이 예언은 죄의 경험, 정죄 그리고 그 파괴적인 능력으로부터 유일한 구원의 대로(大路)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이고 대속적인 죽음을 가장 명확히 기술하는 구약의 한 부분이다. 결과로 볼 때 빌립의 가르침에는 그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적용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 공동체에 합류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침례 후보자를 물에 잠그기 전에 이런 가르침을 주었음이 분명하다는 것을 신약에서 알 수 있다. 36. 길 가다가. 빌립이 내시에게 사 53장을 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사실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그가 침례의 의미를 이해하고 스스로 침례받기를 원하는 데 이르기까지 충분히 가르친 것으로 보아 그들이 얼마간 함께 여행했을 것이다. 물. 4세기에는 이곳을 벧수라(Bethsura) 즉 대하 11:7의 벧술(Bethzur)로 여겼다.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약 32킬로미터, 헤브론에서 약 6.4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아랍어 형태인 베이트-추르(Beit-s.u-r)라는 고대 지명을 간직한 한 샘이 지금도 여기에 있다. 다른 학자들은 그 샘이 엘류테로폴리스(Eleutheropolis)와 가사(Gaza) 사이에 있는 와디-엘-헤시(Wa^di--el-H.esi-)에 있으며, 고대 도성 라기스와 에글론에서 멀지 않다고 본다. 가사 근처에서 이 일이 있었고, 여행길이 사막을 통과한다는 점에서 이 장소가 더욱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새롭게 찾은 주님의 교회의 일원이 되는 데 모든 준비를 갖춘 내시의 열의는 본보기가 된다. 그는 자발적이었고, 따라서 빌립에게 강요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구주에 대하여 배웠고 자신의 죄를 버렸다. 그는 길이신 분과 그 이름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다(참조 행 4:12; 요 14:6). 그에게 침례를 베풀지 못할 어떤 이유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37. (없음) [네가 믿으면].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는 이 구절의 생략을 지지한다. 초기의 침례 고백문에서 인용한 일종의 난외주가 본문의 이 부분에 점진적으로 유입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구절에 표현된 진리가 성경 다른 곳에서 다양한 이문(異文)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참조 요 3:16; 행 2:38; 16:30, 31).

 

38. 명하여. 이 명령으로 모든 수행원이 멈추어 섰다. 수행원들은 침례받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본 증인이 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그들 중 일부가 에디오피아의 초창기 그리스도인 회중의 중추적인 부분을 이뤘을 가능성이 있다. 전승에 따르면, 내시가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확실하다.

 

내려가. 헬라어 카타바이노 에이스(katabaino- eis). "~로 내려가다", "~안으로 내려가다." 이 구가 단독적으로 나왔다면 빌립과 내시가 물 가장자리로 내려간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물 안으로 들어갔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그러나 39절의 보충 구절이 이 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한다.

 

39. 올라갈새. 헬라어 아나바이노 에크(anabaino- ek). "~밖으로 올라오다." 이 말은 두 사람이 물 속으로 들어갔으며, 그렇지 않으면 물 밖으로 나올 수 없었음을 보여 준다. 이는 물 속에 잠그는 침례를 받기 위한 것이었음이 확실하다(참조 마 3:6; 막 16:16; 롬

6:3~6 주석). 그러므로 이와 같이 다소 비공식적이고 갑작스런 상황에서도 초기교회가 침례 방법을 채택한 분명한 예증이 여기에 있다.

 

이끌어 간지라. 헬라어 하르파조(harpazo-). “붙잡다”, “완력으로 끌고 가다”, “낚아채다.” 동일한 동사가 살전 4:17; 계 12:5에서 유사하게 사용되었다. 인간적인 생각이었다면 당연히 전도자가 남아서, 내시에게 필요한 일을 마무리짓고 그를 충분히 가르쳤을 것이다. 그러나 빌립은 초자연적인 힘에 이끌려, 문자 그대로 내시와 함께 있다가 낚아챔을 당했다. 왕상 18:12; 왕하 2:16; 스 3:12, 14과 비교하라.

 

흔연히. 내시는 빌립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믿었으므로 그에 대해 전혀 염려하지 않고, 그가 받은 새로운 빛 안에서 흔연히 길을 갈 수 있었다. 유세비우스(Ecclesiastical History ii. 1. 13; Loeb ed., vol., 1, 110, 111)는 내시가 그의 고국으로 돌아가 거기서 “만유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우리 주가 이 땅에 머문 일”에 대하여 전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방백들은 애굽에서 나오고 구스인[에디오피아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신속히 들리로다”(시 68:31)는 말씀을 성취했다고 전한다. 에디오피아 교회가 줄곧 유대교와 유사한 요소들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에디오피아 교회는 일반 기독교계로부터 일찍이 분리되었고, 따라서 한동안 초기교회의 가르침과 생활의 단순성을 유지했다. 에디오피아 그리스도인들은 오랫동안 주일 중 첫째 날과 함께 제7일 안식일을 준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