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바울의 1차 선교여행(일어서라)-사도행전 연구 14

김건우_Jonathan 2025. 9. 26. 23:04

행 14:1~23

[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2]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4]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5]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6]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7]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내용 요약

  1. 루스드라, 14:6~19
  2. 더베 그리고 비시디아를 통해 돌아옴 14:20~23
  3. 안디옥으로 돌아옴, 14:24~28

배 경

제14장은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지방 전도다. 이곳은 남 갈라디아 지방으로 바울은 이곳을 여러 번 지나갔으며 그의 편지 갈라디아서도 이곳에 세워진 교회에 보낸 것이다. 이고니온은 비시디아 안디옥 동남쪽으로 약 350리(약 140km) 떨어진 곳으로 행정상으로 루가오니아(Lycaonia)지방의 수도다. 루스드라(Lystra)는 다시 이고니온에서 남쪽으로 75리쯤 떨어진 곳으로 디모데의 고향이다. 더베(Derbe)는 루스드라에서 동남쪽으로 70리 떨어진 도시로 1차 전도 여행의 종점이다. 다 험악한 지형이었으며 바울은 육로로 이곳들을 여행하면서 온갖 고생을 다 했을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의 모든 선교적인 노력에 있어서 영혼을 위해 자원하여 희생하시고 충성스럽게 열심히 수고하신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고자 노력하였다. 그들은 방심치 않고, 열심 있고 끈기 있게 개인적인 기호나 안일을 구하지 아니하고, 경건한 염원과 끊임없는 활동으로 진리의 씨를 뿌렸다.(행적 186 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과분한 호의를 받은 적이 있나요? 그 호의를 받으면서 나의 행동은 어떠하였으며, 나의 마음은 어떠하였나요?
  2. 지금 나의 상태는 넘어져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십니까? 일어선 상태라고 생각하십니까?
  3. 예수님으로 인하여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뒤따른 적이 있나요?
  4. 삶이 오뚝이와 닮은 사람이 있다면 소개해 봅시다.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이고니온에서 생긴 일을 말해 보시오. (1-7)
  2.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14:2)이 복음 전파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살펴보고 나는 순종치 아니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닌지 생각해 보세요.
  3. 바울은 루스드라의 앉은뱅이에게서 무엇을 보고 그를 고쳐 주었나요? (9)
  4. 쓰스(Zeus)와 허메(Hermes)는 무엇입니까? 바울과 바나바가 신적 대접을 받았을 때, 한 행동은 무엇이었나요? 이것은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우리에게 어떠한 자세를 가르쳐주나요?
  5. 19절을 읽고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변덕스러운 것인가? 군중심리란 얼마나 그릇 될 수 있는가 생각해 보아요.
    사도는 자기의 종말이 이르렀다고 생각하였다. 스데반의 순교와 그때에 자기가 행한 잔인한 행동이 그의 마음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격분한 폭도들은 그가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쳤다. (행적, 182)
  6. 그 비참한 광경 속에서 훌륭한 한 젊은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사단의 노력도 결국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그 젊은이는 누구입니까? (행적, 183)<20절 뒷면 주석참조>
  7.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귀향전도를 하면서 교회를 굳게 하기 위하여 바울이 사용한 뒷수습 방법은 무엇입니까? (21-23)이것은 우리교회에도 필요한 일인가요?

생각해봅시다.

  1. 예수님을 위하여 나는 오늘도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의 삶이 그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2. 우리교회는 지금 교회를 굳건히 하기 위하여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바울의 고통을 목격하였던 사람들 가운데 후에 그리스도를 위한 탁월한 일꾼이 되고 어려운 선교 지역에서 사도와 함께 개척사업의 시련과 기쁨을 나누어야 할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이 바로 디모데라는 청년이었다.(행적183p)

 


1. 이고니온. 이고니온으로 향하는 바울과 바나바의 여정을 누가가 건너뛰었는데, 추론해 보면 도중에 선교 사업을 펼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고니온은 안디옥에서 남동쪽으로 약 144킬로미터 떨어진 주요 도로들의 교차점에 있다. 일부 고대 저술가들은 이고니온이 브루기아에, 다른 저술가들은 루가오니아에 예속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이 도성은 루가오니아의 다메섹으로 불릴 정도로 크고 장중했고, 후에 그리스도교 전승에서 바울과 그가 회심시킨 테클라(Thecla)에 관한 이야기의 배경으로 유명해졌다. 중세 시대에는 이고니온이 셀주크 왕조 술탄들의 수도로서 중요성이 높아졌고, 변형된 축약형 코냐(Konya)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터키의 번창하는 도시로 남아있다(참조 302쪽 지도).

두 사도가 함께. 이는 회당을 특별히 한 번 방문한 것이 아니라, 바울과 바나바가 유대인들을 만나기 위해 함께 여러 번 방문했음을 묘사한 것이 분명하다.

2.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 설득당하지 않으려는 유대인들.” “순종치 아니하는으로 번역된 단어에는 반역으로 이끄는 불신이라는 개념이 들어 있고, 따라서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한 이 유대인들의 특성을 적절히 묘사한다.

 

3. 오래. 아마도 수 개월 동안이었을 것이다. 새 신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을 굳건히 하기 위해 장기간 체류해야 했다.

 

4. 나뉘어. 그리스도인에게 반감을 지닌 비그리스도인은 주민 가운데 분명하게 구분된 집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누가는 이교도 주민이 다수였다고 분명히 언급한다. 기독교로 귀의한 회심자들은 분명 소수 집단으로, 초기교회에 흔했던 것처럼 사회의 하류층 출신이었을 것이다(참조 고전 1:26~28).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처럼 도성의 유력한 남녀들이 그들을 대적하였다(참조 행 13:50).

 

5. 관원들. 즉 유대인 회당의 관원들이며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 회당에서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두 사도를 능욕하며. 그들은 무자비한 능욕과 폭행을 당하였다. 이는 군중을 자극하기 위한 일환으로 계획되었음을 보여 준다. 바울은 핍박자였던 자신의 행동을 묘사하기 위하여 밀접히 연관된 단어를 채용한다(딤전 1:13).

달려드니. 헬라어 호르메(horme-). “습격혹은 공격.” 여기서는 이 단어가 직접적인 공격을 가리키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참조 6). 유대인들은 폭행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이교도 동료들을 자극하고 부추겼다.

 

6. 알고. 음모를 알아내기 위해 반대편과 충분히 접촉한 자들이 사도들 편에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누가는 그리스도인 복음 전도자들의 고난을 과장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간신히 투석형을 피한 사건은 애쓴 흔적 없이 평이한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도망하여. 사도들의 행동은 한 성에서 핍박을 받을 때 다른 성으로 피해야 한다는 예수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참조 마 10:23 주석).

루가오니아. 루가오니아는 로마의 속주가 아니라 특정 종족 지역으로, 서편은 로마의 속주 갈라디아에, 동편은 콤마게네(Commagene)의 안티오쿠스 왕국에 속해 있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갈라디아 도의 국경 안에 머물렀음이 분명하다. 신약 시대에 이고니온은 브루기아에 속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사도들이 루스드라와 더베로 진행했다는 것은 새로운 지역으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루스드라. 1885년에 이르러서야 루스드라의 정확한 위치가 알려졌다. 그 해에 루스드라가 오늘날 졸데라(Zoldera)로 알려진 지역임을 확인할 수 있는 명각이 하나 발견되었다. 그것은 이고니온의 남서쪽으로 약 여섯 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고니온에서 출발하여 육로로 여행할 때 사도들은 구릉 지대를 지나 루스드라가 있는 고원까지 올라갔을 것이다. 루가오니아가 고전 문헌에 황량하고 미개한 지역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명각에 루스드라가 아구스도에 의해 로마 식민지가 되었다고 나타난 점으로 보아 주변 지역보다 상위 문화를 향유한 것이 확실하다. 로마의 상업 중심지인 루스드라 주민 중에 유대인들이 있었겠지만 사도행전의 기록에는 그 도성에 회당이 있었다는 언급이 없으며, 따라서 바울은 거기서 주로 이방인들과 교제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건한 유대 여성의 자녀이며 루스드라 출신이었을 디모데 역시 할례받지 않은 채 성장하였다(참조 16:1, 3 주석). 참조 302쪽 지도.

더베. 더베의 위치는, 1956년 더베가 언급된 한 명각이 이고니온 남동쪽으로 83킬로미터 지점인 케르티 휘위크(Kerti Hu..yu..k) 곧 오늘날의 코니아(Konia)에서 발견됨으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확증하는 또 하나의 명각이 최근에 나타났다. 후에 바울과 함께 여행한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가이오가 더베 출신이었다(20:4). 참조 302쪽 지도.

그 근방으로. 이 구절은 루스드라와 더베 도성이 작아서 바울과 바나바가 단기간에 전도할 수 있었음을 암시한다. 시골 촌락에서 활동하는 한 그들은 거의 전적으로 이방인들만 만나야 했다.

 

9. 주목하여. 헬라어 아테니조(atenizo-, 참조 13:9; 23:1 주석). 앉은뱅이의 믿음이 그 얼굴에서 빛을 발하자 바울은 치료받음으로 루스드라인들에게 표적이 되기에 적절한 한 사람을 확실하게 알아봤다.

 

10. 바로 일어서라. 이 명령은 평범한 인간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는 믿음으로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조롱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장애인은 믿음에 응하여 움직이고자 의지를 활용하였다. 이것은 중풍병자(9:6, 7), 베데스다 연못의 병자(5:11, 14),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3:6~8) 등의 치유에 공통되는 이적의 유형 가운데 하나이다. 이들 각 경우에 영적인 회복에는 육체적 치유가 동반되었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치유한 사건(3:1~11)과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치유한 사건에 유사점이 있음이 분명하다.

 

11. 루가오니아 방언. 바울은 자기가 방언을 말했다고 표명하지만(고전 14:18), 이 은사에는 루가오니아 방언을 이해하는 능력은 포함되지 않았음이 확실하다. 지지할 만한 확실한 견해는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인들이 자신들에게 경배하려는지 몰랐다는 것뿐이다. 그들이 그러한 경배를 거절하여 극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 사람들이 예배하려는 계획을 추진하도록 고의적으로 허용했다고 추측하는 것은 그들의 품성을 폄하(貶下)하는 것이다. 틀림없이 루스드라인들은 2개 국어를 동시에 사용했을 것이고, 따라서 바울과 바나바가 헬라어로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이 선교사들은 그 사람들이 이교식 제사를 드릴 계획을 세우자고 말한 것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루가오니아 방언의 특성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신들. 신약 시대에는 이렇게 신들이 사람들과 함께 어울린다는 신조를, 단순한 루가오니아인들뿐 아니라 도시와 시골의 이교도들도 전반적으로 지지했다. 루가오니아에는 그곳 사람들이 바나바와 바울을 위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의 근거가 될 만한 오래된 전설이 있었다. 이 신화에 의하면 쓰스와 허메(제우스와 헤르메스 혹은 유피테르와 메르쿠리우스)가 인간으로 가장하여 왔을 때 노부부 필레몬과 바우치스(Baucis)에게 영접을 받자 그들에게 선물을 주었다(Metamorphoses viii. 626~724). 신들이 거했다고 추정된 곳은 후에 경건한 숭배자들이 순례 와서 예물을 놓아두고 가는 성지가 되었음이 이 전설에 나타난 있다.

 

12. 쓰스허메. 헬라어 제우스(Zeus), 헤르메스(Herme-s). 헬라의 쓰스는 신들의 우두머리이며 그의 아들 허메는 신들의 전령과 사자요 웅변의 수호신이다. 로마의 만신전(萬神殿)에서 이 신들에 해당하는 이름은 유피테르와 메르쿠리우스였고, 따라서 그 이름들이 제임스왕역에 그대로 사용된 것이다. 쓰스와 허메 숭배가 루스드라 지역에 보편화되었던 것 같다. 루스드라인의 이름을 가진 어떤 사람이 쓰스에게 조각상을 헌납했음을 말해 주는 명각 하나가 루스드라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쓰스로 여겨지는 기도 듣는 자와 허메에게 봉헌된 돌 제단도 루스드라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루스드라인들은 어떤 신이 선한 목적으로 그들 가운데 임한다면 그는 유피테르 신일 것이라고 믿는 것이 당연했는데, 그들의 도성 정면에 그를 위해 신전을 세웠고(참조 13절 주석) 주로 그를 숭배한 점으로 보아 그렇다. 메르쿠리우스는 유피테르의 주요 수행원으로 간주되었다. 바나바는 바울보다 더 인상적인 태도를 갖췄기 때문에 유피테르라는 명칭이 주어졌다. 바울은 강연의 대부분을 도맡았기 때문에 메르쿠리우스와 동일시되었다.

 

13. 쓰스 신당의 제사장. 이 구절의 의미는 도성 정면에 [위치한] 쓰스 신전 제사장인 것 같다. 이와 같이 쓰스는 루스드라의 수호신이었고 그의 신전은 마치 도성을 보호하듯 성문 근처에 서 있었음이 분명하다. 사람들이 쓰스의 제사장에게 소리 지르며 달려가, 제사를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추고 사도들이 묵고 있던 집 입구로 그를 데리고 왔다.

화관들. 이런 화관은 고대 조각상을 통해 잘 알려졌다. 화관은 대개 흰 양털에 종종 나뭇잎과 꽃으로 장식되었다. 제사용 동물은 물론 제사장과 참석자와 문과 제단도 흔히 이렇게 꾸며졌다.

 

14. 옷을 찢고. 유대인들에게 이것은 극도로 혐오스러움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특히 신성모독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사용되었는데(참조 마 26:65 주석), 이교도 루스드라인들이 모르고 신성모독을 범하려 한다는 것을 바울과 바나바가 이제야 깨달았다. 루스드라 주민들이 옷 찢는 행위를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격렬한 행위가 그들의 주목을 끌고 놀라게 했을 것이다.

뛰어 들어가서. 헬라어 엑페다오(ekpe-dao-). “뛰어나가다”, “돌진하다.” 그 제자들은 성문에서 나와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모인 곳, 아마도 성밖”(참조 13절 주석)에 있는 쓰스에게 바쳐진 신당을 향해 돌진했을 것이다.

 

15. 같은 성정. 이 단어에는 흔히 성정이라고 알려진 것(참조 약 5:17)은 물론이요 인간의 더 소극적인 감정들도 포함된다. 이곳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한 표현과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한 표현(10:26) 사이에 나타나는 현저한 유사점은 주목할 만하다.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참조 13:32 주석. 우상 숭배자들에게 말 못하는 우상 대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기별은 좋은 소식임에 분명한데, 이는 특히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한 하나님 즉 인류의 구주이기 때문이다.

천지와 바다. 이것은 하늘과 땅과 바다에 각기 다른 신들을 지정해 놓은, 널리 퍼져 있는 이방 종교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바울은 한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만들고 다스린다고 선포한다.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호소는 성경에서 반복된다. 그 호소는 하나님과 우주의 관계에 대한 전() 역사의 시초에 있었으며(1), 세상에 경고로 전달된 마지막 복음의 기초이기도 하다(velation/14/7e).

살아 계신 하나님. 그들의 우상숭배와 대비하면서 사도는 루스드라인들에게, 살아서 역사하며 하늘과 땅을 만들고 모든 좋은 은사의 시여자이며 모든 인간을 심판할 하나님에게 돌아오라고 초청한다. 이사야도 이런 대조를 극적으로 묘사한다(40:6~31; 41:18~29; 44:6~28).

 

19. 유대인들이 안디옥에서. 문맥에서 드러나듯이 비시디아 안디옥임이 명백하다(참조 13:14 주석). 안디옥과 이고니온의 유대인들이 일제히 행동을 개시한 사실과 안디옥에서 온 유대인들이 사도들의 사업을 방해하기 위하여 160킬로미터 이상을 여행해 왔다는 사실을 통해, 안디옥의 유대인들이 품은 적개심의 강도가 어떠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안디옥 사람들과 루스드라 사람들의 관계가 밀접했음은 안디옥에서 발견된 조각상에 루스드라 사람들이 안디옥 도성을 기념하여 기념비를 세운다고 기록된 명각에 암시되어 있다.

이 유대인들이 바울과 바나바가 동포임을 알았는데도 그들에게 격노한 것은, 자기들이 매우 소중히 여기는 율법의 요구를 사도들이 배척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루스드라에서 이러한 비난을 일삼는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사도들에게 대적할 수 있도록 다른 고소 내용을 제시했을 것이다. 앉은뱅이를 치유한 기적을 통해 사도들의 능력의 실재성은 입증되었지만 능력의 근원은 입증되지 않았고, 따라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선동하기 위해 그 능력의 근원을 악의 세력으로 돌렸을 것이다(12:24~27에서 예수가 겪었던 유사한 경험과 비교하라).

무리를 초인(招引)하여. 루스드라인들의 태도가 돌변한 것은 예루살렘 군중의 호산나 찬양이 십자가에 못박혀야 하겠나이다라는 외침으로 뒤바뀐 사건(21:9; 27:22)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감정의 심한 기복은, 루가오니아인같이 전승에 미덥지 못하다고 묘사되고 미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다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아니다. 정반대 측면에서 비견할 만한 변화는 이방인 멜리데(28:3~6) 사람들에게서 나타났다. 루스드라인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그런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람의 모습을 한 신이 아니라면, 마법사나 어쩌면 악마일지 모른다고 추정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런 감정을 격앙시키고 야만적인 행동을 하도록 백성을 충동했을 수도 있다.

성밖에. 히브리 법은 돌로 치는 것을 진영이나 도성 밖에서 하라고 규정했다(24:14). 그러나 본 사건에서는 루스드라가 이방 도성이었고 돌로 치는 것이 폭도의 집단 행동으로 일어난 점으로 보아 도성 안에서 일어났던 것 같다. 그래서 바울의 몸을 성밖으로 끌어 낸 것이다.

 

20. 제자들. 즉 새 신자들. 이들이 습격을 사전에 막을 수는 없었지만 어떻게 경건한 장례를 치러줄지를 염려하는 슬픈 마음으로, 의식을 잃은 바울이 끌려 간 장소까지 따라갔음이 분명하다. 바울의 그 쓰라린 경험을 봉사에 대한 도전과 헌신의 모본으로 삼았을 디모데가 바울이 돌 맞는 것을 목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사도행적, 184, 185,). 아마도 로이스와 유니게도 무리 가운데 끼어서 처음에는 슬퍼했지만 조금 후에 그들의 사랑하는 선생이 죽지 않았음을 알고 기뻐했을 것이다.

바울이 일어나. 바울이 무의식 상태에서 회생하여 다시 도성 안으로 들어가는 활력과 담력을 곧바로 보여 준 것은 기적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사나운 폭도에게 돌을 맞고 죽은 줄 알았던 자가 살아나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보한 것은 앉은뱅이가 회복된 것보다 훨씬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의 증거였다.

이튿날가서. 하나님의 섭리로 죽음에서 살아남았지만 바울은 자기를 향한 대중의 정서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잠시 도성을 떠나있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는 후에 최소한 두 번 더 루스드라를 방문하였다(참조 21; 16:1).

 

21.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누가가 이후 여행에서 바울의 동료 중 하나로 언급한 더베 사람 가이오가 아마도 이때 회심한 자들 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성취된 사업으로 보아 여러 달을 더 체류했을 것이라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다.

돌아가서. 다소까지 동쪽으로 진행하여 배로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것이 훨씬 더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바다에 이르기까지 약 400킬로미터나 되는 길고도 지루한 여정을 택하였다. 그러나 거쳐갔던 장소들을 순회함으로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전에 뿌렸던 말씀의 씨를 더 멀리까지 뿌릴 기회를 얻었다. 안디옥과 이고니온에 사는 유대인들의 적개심은 사도들이 더 이상 신변에 위협을 당하지 않고 그 도성들을 다시 방문할 수 있을 만큼 진정되었을 것이다. 도성의 어떤 지역에서는 관료들이 임기를 마치고 다른 관료들이 후임자로 부임했던 것 같다. 참조 302쪽 지도.

 

22. 굳게 하여. 강하게 하여.” 후대에 보편화된 교회의 견진성사(堅振聖事)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여기서 바울의 행동은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22:32)고 베드로에게 한 예수의 위탁과 조화된다. 바울은 자신이 겪은 시련과 거기서 구원받은 경험에서 얻은 경고와 권고로 굳게 할수 있었다.

이 믿음. 여기서 이 말은 믿음 곧 믿고 가르침받은 것에 대한 신앙의 객관적인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신조 체계를 뜻하는 믿음이라는 단어는 이후 사도들의 문헌에 같은 의미로 등장하는데(참조 딤후 4:7; 3, 20) 여기서도 유사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