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산상설교, 누가복음 연구 13

moonjh10446 2026. 7. 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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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6:17-26

[17] 예수께서 저희와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허다한 무리와 또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얻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및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받는 자들도 고침을 얻은지라

[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기도와 교훈의 말씀을 주시고, 그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축도하심으로 복음 사업을 위하여 그들을 구별하셨다. 그러고 나서, 그들과 함께 해변으로 가셨는데, 거기는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많은 무리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 그러나 그 좁은 해안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갈망하는 무리가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범위 안에 다 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그들을 다시 산으로 인도하셨다. 그 많은 무리가 다 넉넉하게 앉을 수 있는 평평한 장소에 이르자, 그분께서는 풀밭에 앉으셨다. 그러자, 그분의 제자들과 무리들도 그분을 따라 앉았다”(산상보훈,17, 19).

 

상 설교의 서두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심령의 최고의 갈망, 곧 행복에 대해 언급하셨다. 이와 같은 갈망은 창조주에 의해 친히 인간 속에 심어진 것이다.(본교 성경 주석 5, 324).

 

본문연구

다음 도표는 우리의 그리스도인 경험에 있어서 앞에서 언급한 진보들을 나타내며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필요에 어떻게 대답하시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의 필요에 대한 그리스도의 대답

(마태복음 5장 1절~12절의 팔복에 기초함)

우리의 문제 그리스도의 대답 결과
1. 자존심, 불안
가련한 자아상
*심령이 가난한 자
자신들의 필요를 인식하고 그 일로 무언가를 하기 시작하는 사람들
*자아를 용납함
*그릇된 자존심을 정복함
*하나님과 사람들과 더불어 의미는 교제를 나눔
2. 죄와 죄의식 *애통하는 자들
죄에 대하여 회개하고 돌아섬
*깨끗한 양심
*하나님과 사람에게 용납되었다는 증거
3. 반역, 분노, 자신감의 결여 *온유한 자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고 헌신함
*권위를 인정함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신뢰와 믿음의 계발
4. 불행, 공포, 좌절, 염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생명의 물로 채움-칭의
*건강한 정서
*전인적인 발달
*하나님과 사람과의 올바른 관계 형성
5. 쓰라림과 이기심 *긍휼히 여기는 자
용서하는 태도, 기꺼이 나누고자 함, 영적 성장
*관계의 개선
*인정, 나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
6. 불결과 부도덕 *심령이 청결한 자
생애의 청결, 순결, 고결함
*도덕적으로 자유함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이 있음
*하나님과 인간에 대하여 올바르게 행함
7. 절망과 무감각 *화평케 하는 자
평화와 행복과 만족감을 다른 사람과 나눔
*이해를 초월하는 평화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짐

 

토의사항

  1.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진정 행복하게 살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20,21)

  2. 인생의 진정한 만족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본문의 말씀은 어떤 답을 준다고 생각하십니까? (22,23)

  3. 그리스도인으로서 당하는 부당한 어려움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런 부당한 대우를 참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20. 가난한 자. 헬라어 프토코스(pto-chos). “웅크리다”, “위축되다를 의미하는 프탓소(ptasso-)에서 파생한 말로 극심한 가난을 지칭한다(참조 막 12:42; 4:18; 6:20). 여기서 프토코스는 비참한 영적 가난에 처한 자들 그리고 천국이 공급해야 할 것들에 대해 필요를 예민하게 느끼는 자들을 가리킨다(참조 사 55:1 주석; 3:6). 자신의 영적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 부자요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하늘에서 볼 때 곤고하고 가련하며 가난한사람들이다(3:17). “심령이 가난한자 외에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에 결코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밖의 모든 사람들은 하늘의 부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며, 따라서 하늘의 축복을 거절한다.

 

복이 있나니. 산상 설교의 서두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의 마음에 있는 최고의 욕망, 곧 행복에 대해 연설한다. 이 욕망은 창조주가 친히 인간 속에 심었고, 본디 그것은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과 협력을 통해 참 행복을 발견하도록 이끌기 위해 정해진 것이다. 인간이 행복을 최종 목적으로 생각하여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순종을 무시하고 지름길로 그것을 달성하려고 꾀할 때 죄가 수반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의 왕으로서 그리스도는 취임 연설의 서두에서, 왕국의 주요 목적은 잃어버린 에덴의 행복을 인간의 마음에 회복하는 것이며, 따라서 좁은문과 협착한 길로 들어가기를 선택한 자들(7:13, 14)이 참 행복을 찾을 것이라고 선포한다. 그들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킬 때만 이르러오는 영혼의 참되고 영원한 만족, 곧 내적 평강과 기쁨을 발견할 것이다(4:7). 그리스도가 아버지께로 갈 때 그는 바로 이 평안, 곧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14:27)을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남겼다. 행복은 하나님(참조 롬 5:1)과 그들의 동료(참조 미 6:8)들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자들, 곧 사랑에 관한 위대한 두 계명을 좇아 행하는 자들의 마음에만 이르러 온다(참조 22:37~40). 이러한 생각과 마음의 성향은 오직 은혜의 왕국의 참된 백성들만 소유한다.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가 여기서 말하는 것이 미래에 있을 영광의 왕국이 아니라 현존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가르침 속에서 가라지, 겨자씨, 누룩, 그물의 비유(13:24, 31, 33, 47) 그리고 그밖의 많은 비유(참조 산상보훈, 8, 108)를 통해 예증한 것처럼, 종종 그의 주권을 받아들인 자들의 심령에 건설된 은혜의 왕국에 대해 다루었다. 유대인들은 천국을, 이 지상 나라들이 이스라엘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는 힘에 기초한 왕국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와서 세운 왕국은 사람의 심령에서 시작하여, 그들의 삶에 침투하고, 역동적이고 강력한 사랑의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의 심령과 삶으로 흘러 들어가는 왕국이었다.

 

너희 . 자신의 필요를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에 들어가는 첫 번째 조건이다(참조 산상보훈, 7, 8). 비유 가운데서 세리가 자기를 의롭다고 여긴 바리새인보다 더 의롭다하심을 받고 집으로 내려 간 것은 자신의 영적 필요에 대한 자각 때문이었다(18:9~14). 천국에는 교만한 자들, 자족하는 자들 그리고 자기를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을 위한 여지는 없다. 그리스도는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가난을 그의 은혜의 부요함으로 바꾸라고 명한다.

 

21. 주리고 목마른 자. 특별히 이 은유는 연평균 강우량이 66센티미터 이상이 되지 않는 나라에서 설득력이 있었다(참조 창 12:10 주석). 팔레스타인에 해당되는 사항은 일반적으로 근동의 넓은 지역에도 해당된다. 팔레스타인은 넓은 사막지역에 접해 있으며, 거주민이 많은 지역까지도 비가 적은 반건조성 지역이다. 지금 예수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청중 가운데 많은 사람이 갈증의 고통을 경험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하갈과 이스마엘의 예증에서처럼, 길을 잃거나 도중에 몇 개 안 되는 샘 가운데서 하나를 놓친 여행자는 자신이 심각한 곤경에 처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참조 창 21:14 주석).

그래서 예수는 심령의 주림과 목마름에 대하여 말했다(참조 시 42:1, 2). 음식의 결핍으로 굶주린 사람 또는 물의 부족으로 허덕이는 사람의 간절한 열망으로 의를 갈망하는 자들만이 그것을 얻을 것이다. 물질적 풍요든지, 심오한 철학이든지, 육체적 욕망의 만족이든지, 명예나 권력이든지, 세상에 속한 어떤 것도 심령의 주림과 목마름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한 후에 솔로몬은 모든 것이 헛되다라는 결론을 내렸다(참조 전 1:2, 14; 2:1, 15, 19; 3:19; 11:8; 12:8 ). 어떤 것도 모든 인간의 마음이 갈망하는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 전도자는 창조주를 인정하고 그분과 협력하는 것만이 항구적인 만족을 가져다 준다고 결론을 맺는다(12:1, 13).

산상 설교를 한 지 6개월 또는 8개월 후에 예수는 생명의 떡(6:26~59)에 관한 또 하나의 위대한 강화를 했는데, 여기서 간략하게 설명한 원칙을 좀 더 충분하게 논했다. 인간이 갈망해야 하는 은 바로 예수이다. 인간은 그 떡을 먹음으로 영적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며, 심령의 굶주림을 충족시킬 수 있다(참조 요 6:35, 48, 58).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하늘의 공급자에게 와서 돈 없이 값 없이”(55:1, 2) 물과 양식을 얻으라는 은혜로운 초청을 받는다. 사람의 심령에 의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이미 그 속에서 역사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다(산상보훈, 19)

 

우는 자. 이 단어는 강한 슬픔을 나타낸다. 사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만나는 불완전함 때문에 애통하게 되는 것은 영적 필요에 대한 깊은 의식에서 나온다(참조 산상보훈, 9; 시대의 소망, 300). 그리스도는 여기서 영적 가난 속에서 완전의 표준에 달하기를 열망하는 자들을 지칭하고 있다(참조 사 6:5; 7:24). 또한 여기에 실망과 사별 혹은 또 다른 슬픔 때문에 애통해하는 자들을 위한 위로의 기별이 있다(참조 산상보훈, 10~12). 하나님은 영적 부족감을 하늘의 은혜의 부요함으로 채우는 것처럼(참조 3절 주석), 죄에 대한 애통함을 용서받은 죄의 위로로 충족시킨다. 먼저 부족함에 대한 느낌이 없다면 그 부족한 것(이 경우는 품성의 의)에 대한 애통함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애통은 자신을 천국 지원자로 소개하는 자들에게 이르러오는 두 번째 필요조건이며, 그것은 순서상 첫 번째 단계 이후에 자연스럽게 뒤따라온다.

 

22. 인자를 인하여. 나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지닌 이름 곧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고통당한다. 초기교회 시대와 마찬가지로 모든 시대를 통해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기뻐했다(5:41; 참조 벧전 2:19~23; 3:14; 4:14).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가 되려고 하는 자들에게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10:22)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10:39)고 덧붙였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를 위하여 고난받을 것”(1:29)을 예기해야 한다.

 

멀리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회당에서 출교(黜敎)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생각했다(참조 요 9:22, 34; 12:42; 16:2). 유대교에서는 완전히 추방되는 영구적인 출교와 일시적인 출교가 있었다. 그리스도 시대에 일시적인 출교는 30일 동안 계속되며 멀리된사람은 그동안 종교적인 의식에 참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4규빗(2미터) 안으로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출교는 종교적 및 사회적 오염 즉 부정을 의미했다.

 

너희 이름을버릴 때에는. 즉 너희 이름을 경멸하여 내동댕이칠 때에는. 이것은 거짓되고 악한 소문을 유포하는 것을 가리킨다(벧전 4:14).

 

핍박을 받은. 여기서 그리스도는, 주로 천국을 위해 세상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박해를 말한다. 죄가 들어온 이래 그리스도와 사단, 천국과 세상 왕국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과 사단을 섬기는 자들은 원수가 되었다(3:15; 12:7~17). 이 투쟁은 이 세상 나라가 우리의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때까지계속될 것이다(11:15; 참조 단 2:44; 7:27). 바울은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14:22). 천국 시민들은 이 세상에서 환란당할 것을 예기하는바(16:33), 이는 그들의 성품, 이상, 열망 그리고 행동이 모두 현 세상의 악을 거스르는 무언의 증언을 하기 때문이다(참조 요일 3:12). 하늘 왕국의 원수들은 왕 되신 그리스도를 핍박했고, 또한 그의 충성스런 백성들을 핍박할 것이다(15:20).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이와 동일한 약속이 3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졌다.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딤전 2:12; 참조 단 7:18, 27). 그리스도를 위해 큰 고통을 당한 자들이 그분이 그들을 위해 당한 고통을 가장 잘 헤아릴 수 있다. 첫 번째와 마지막 복에 하늘 시민의 자격 보증이 포함되는 것은 적절하다. 여기에 열거된 하늘 시민을 위한 여덟 가지 자격을 경험한 자들은 천국에서 한 자리를 얻을 가치가 있다.

 

기뻐하고. 생애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8:28)을 알고 기뻐해야 한다(4:4). 고난이 천국 시민에게 필수적인 인내와 그밖의 품성의 특성들을 계발시키며, 이것은 시험 즉 시련에도 마찬가지다(1:2~4).

 

너희의 상이 큼이라. 참조 눅 6:24~26 주석. 성숙한 그리스도인에게는 상에 대한 생각이 최우선은 아니다(실물교훈, 398). 그는 천국에 들어갈 목적만으로 규칙들에 순종하지는 않는다. 그는 최고의 목표와 실존의 기쁨을 창조주와 협력하는 데서 찾기 때문에 순종한다. 희생도 클지 모른다. 그러나 상 또한 크다. 인자가 영광으로 올 때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아줄 것이다(16:27; 참조 계 22:12).

 

24. 있을진저. 복과 재화(災禍)를 대조시키는 것은 유대 문학의 특유한 기법이었으며, 아마도 신명기에 나타난 축복과 저주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27, 28). 그리스도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선언한 와 비교해 보라(참조 마 23). 부요한 자여. 구세주가 부자나 가난한 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회 계층의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고자 했지만(참조 마 5:3 주석), 그는 삶의 물질적인 것들을 낮게 평가함으로 부와 특권을 삶의 주목적으로 삼는 계층의 사람들에게 호의를 얻지 못했다(참조 마 6:1~6 ). 사실 비교적 극소수의 부자들만이 그리스도의 친구가 되었고,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은 특별하게 예외였다. 예수는, 이 땅보다는 하늘에 보물을 쌓는 지도층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는데 이는 그들의 마음이 하늘에 더욱 밀착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참조 마 6:33, 34; 12:13~33). 많은 경우에 부()는 그것을 소유한 자들에게 하늘에 이르는 길을 막는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임이 입증되었다(참조 막 10:23, 25; 18:24, 25).

 

너희의 위로. 여기서는 물질이 주는 행복한 상태에서 오는 위안과 기쁨을 의미한다(참조 마 5:4 주석).

 

26. 칭찬하면. 정확하게 욕하고”(22)라는 말과 반대말. 그리스도교와 세상, 그리스도교의 이상과 세상의 이상들 사이에 있는 큰 차이점을 강조하는 또 하나의 역설이다. 사람들은 보통 부와 권세를 가진 사람들 그리고 아첨하는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방향으로 아첨에 반응하는 자리에 있는 자들을 칭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