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내용 요약
구브로 섬에서 생긴 일 (4-12)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생긴 일 (13-52)
배 경
우리는 이제 사도행전의 셋째 단계, 즉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 단계에 들어간다. 드디어 복음이 팔레스틴을 넘어서 이방의 지역으로 전파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제13장부터 그들의 힘찬 발걸음 소리를 듣는다. 안디옥에서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던 바울과 바나바는 성령의 세우심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기 위한 거보를 내딛는다. 10년에 걸친 전도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기를 배웠다. 그들의 마음은 멸망하는 영혼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충만하였다. 잃어버린 양을 찾는 충실한 목자들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안일과 편의를 생각지 아니하였다. 자아를 잊어버린 그들은 피곤하고, 주리고, 추울 때에도 흔들리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한 가지 목적, 곧 양의 우리에서 떠나 방황하는 자들의 구원만을 바라보았다.(행적 169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다른 사람의 격려로 인하여 용기를 얻고, 다시 일어선 경험을 나누어 보아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일을 수행하다가, 익숙하지 않는 환경으로 중도포기 하고 싶었던 경험이 있으면 나누어 보아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안디옥교회 구성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요?(13:1)<주석참조> (안디옥교회의 구성원이 오늘날 교회공동체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성령께서 왜 두사람을 짝지어 보내셨을까요? (13:2)
다메섹의 경험 후 10년만에야 전도여행을 떠나는 바울의 감화를 생각해 보아요. 그 동안의 기간은 헛된 기간이었을까요?
지도를 보면서 일차여행의 여로를 따로 공부해 보아요.
1차 전도여행은 2년의 세월이 걸린(A.D. 45-47) 5,000리 길의 여행이었다.
구브로에서 생긴 일들을 말해 볼까요? (4-12)
버가에서 마가는 왜 돌아갔습니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13:13)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의 설교를 정독하고 내용을 요약해 보세요.(시간에 여유가 있는 조는) 이것은 바울의 첫 공식 설교이며 대표적인 설교입니다. ① 17-22 ② 23-25 ③ 26-37 ④ 38-41
생각해봅시다.
성령께서 쓰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봅시다.
핍박가운데서 누리는 기쁨은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의 성령이 바울의 말에 함께 하셨으므로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다. 구약의 예언들을 통한 사도의 호소, 그리고 그 예언들이 나사렛 예수의 봉사에서 성취되었다는 그의 선언은 약속된 메시야의 초림을 사모하는 많은 영혼들에게 확신을 주었다. (행적 172p)
선지자들과 교사들. 특정한 성령의 은사를 행사하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행정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장면이 여기에 처음 나온다. 안디옥에 공식적인 교회 조직이 분명 있었으나 그것에 대한 명확한 지적이 없다. 여하튼 성령에 속한 사람들이 적극적인 기능을 담당했음이 분명하다. 신약에는 이런 사람들이 구분된 집단으로 다뤄지긴 하지만 공식 계층으로 조직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신령”(참조 갈 6:1)하다는 의미에서 “영적”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제대로 기능하는 성령의 은사가 있음을 입증해야 했다. 후에 2세기 기독교 문헌에는 이들이 프뉴마티코이(pneumatikoi) 즉 “영적인 [사람들]”이라는 계층으로 등장한다. 결국 그들은 “거짓 선지자들”(참조 요일 4:1)의 출현과 선출된 관료 즉 장로나 감독의 압력으로 사라졌으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성령의 은사에 관한 언급을 더 보려면 고전 12장 주석을 참조하라.바나바. 참조 4:36 주석; 9:27; 11:22. 시므온. 시므온 또는 시몬이라는 이 사람의 이름은 그가 유대인 출신이었음을 나타낸다. “니게르”라는 별칭은 “검은”이라는 뜻의 라틴어 형용사로서, 거무스름한 피부색 때문에 그렇게 불렸을 것이다. 유대인은 자신의 유대 이름에 이방 이름을 덧붙이는 경우가 자주 있었는데, 요한 마가, 시몬 베드로, 요세 바나바,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참조 9절 주석)이 그 예이다. 이 별칭은 동명이인들과 구분하기 위해 시므온에게 붙였을 것이다. 구레네 사람 루기오. 이 사람이 구레네 출신이라는 것은, 그가 그곳에 살고 있던 많은 유대인 중 한 사람일 수도 있고, 안디옥에 사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처음 전한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11:20) 중 한 명일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그는 롬 16:21에 언급된 “누기오”일 수도 있다. 구레네가 의학으로 유명했다는 점과 루기오와 누가라는 이름을 서로 바꿔 쓸 수도 있음을 보여 주는 명각의 증거를 근거로 이 사람을 사도행전의 기자인 의사 누가로 간주하는 저술가들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보는 것은, 루기오가 로마인들 중에 매우 흔한 이름이었으며 두 명 이상의 유명한 그리스도인이 사용했을 것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지극히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마나엔. 히브리어 이름 므나헴의 헬라어 형태. 젖동생. 헬라어 쉰트로포스(suntrophos). 이 단어는 마나엔의 어머니가 헤롯의 유모였을 것이라는 점에 비추어, 마나엔이 헤롯의 수양 형제였거나 헤롯과 함께 양육되었거나 단순히 헤롯 왕실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었음을 뜻할 수 있다. “분봉왕 헤롯”은 예수가 “저 여우”(눅 13:32)라고 불렀던 통치자 헤롯 안티파스일 것이다(참조 마 14:1; 눅 3:19; 23:7~12; 참조 제10권, 72, 73). 요세푸스(Antiquities xv. 10. 5)는 헤롯 대왕이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므나헴 또는 마나엔이라는 엣세네파 사람 한 명을 언급한다. 탈무드에는 헤롯 대왕을 섬겼던 것으로 보이는 므나헴에 대해 나와 있다(참조 Talmud H.agigah 16b, Soncino ed., 108). 이 이름을 밝힌 것은 마나엔이라는 이름이 헤롯 일가의 혜택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 있었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헤롯 안티파스와 형제 아켈라오는 로마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안디옥의 마나엔도 그들과 그곳에 동행했을 수도 있다. 그가 언제 또는 어떻게 그리스도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 교사로 일한 그의 활동은, 침례자 요한을 살해하고 예수를 조롱했으며 본 이야기의 시점보다 몇 해 전에 갈리아로 불명예스럽게 추방당했던 헤롯 안티파스의 행적과는 현저하게 대조된다. 사울. 다소 사람 사울은 천년 전의 사울 왕(삼상 10:11, 12)보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선지자들 중 하나”(삼상 10:11, 12)이다. 사울의 이름은 목록의 맨 마지막에 나온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헬라어 구절의 구문상 앞에 나온 세 명은 선지자이며 뒤의 두 명은 교사임이 암시되어 있다. 사울은 당시에 선지자의 은사를 아직 활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령이 가라사대. 성령이 행 20:23처럼 그분의 뜻을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셨다. 일을 위하여. 원래 명령을 성령이 내린 점을 감안할 때 제1차 선교여행의 전반적인 노정도 성령이 윤곽을 잡았다고 추측할 수 있다. 교회가 이러한 선교여행 계획을 연구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이 확실하다. 바나바와 사울. 앞서 나온 사울과 바나바의 교우 관계에 대해서는 9:27; 11:25, 26을 참조하라. 처음부터 사울은 “택한 그릇”(참조 9:15 주석)으로 불렸으며 하나님은 그가 광범위한 선교 봉사를 하도록 계획하였다. 두 사람이 전부터 가까웠다는 점에서 보면 바나바가 사울의 동역자로 선택된 것은 필연적이었다. 그 당시까지 이 둘은 교회의 선지자와 교사로 봉사하였다. 이제 그들은 영감받은 명령의 권위에 따라 독특한 사명을 위해 파송되며, 이방인을 위한 사도 직무를 위하여 구별되었다. 따로 세우라. 헬라어에는 불변사(不變詞) 데(de-)가 이 동사 뒤에 나오는데, 이는 이 명령이 분명하고 즉시 실행되어야 함을 나타낸다. 바나바와 사울은 새로운 일을 위해 구별되어야 했다.
실루기아. 이 성읍은 오론테스 강 하구 근처 안디옥에서 약 24킬로미터 지점에 있으며 안디옥을 위한 항구였다. 실루기아는, 이 성읍의 설립자이며 셀류쿠스 제국을 세운 알렉산더의 장군 셀류쿠스 Ⅰ세 니카토르(Seleucus Ⅰ Nicator, BC 280년 사망)의 이름을 따서 건립되었다.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선교사들이 구체적인 지시를 받지 않았다면, 구브로가 바나바의 출생지였기 때문에 그곳을 첫 방문지로 택한 것이 확실하다. 그곳의 주민은 대부분 헬라인들이었다. 구브로 사람들은 아프로디테 즉 비너스가 그곳의 수호여신이라고 공언하였다. 아프로디테 숭배의 중심지는 바보(Paphos)에 있었는데 그 신전의 창기-여사제들의 음란함으로 유명하였다. 금속인 쿠프룸(cuprum) 곧 “구리”(copper)라는 말이 이 섬의 이름에서 유래되었고, 수리아에서 가까운 항로에 위치한 구리 광산은 많은 유대인들을 매혹시켰다. 이곳은 그리스도인 순회 전도자들을 통해 복음이 이미 전파되었던 곳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11:19). 또한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회심한 구브로 사람들 중에 기독교 기별을 고국에 가지고 돌아간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살라미. 섬 동쪽 끝에 위치한 이곳은 실루기아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운 구브로의 항구였다. 여러 회당. “여러 회당”이라고 복수로 표현한 것은 상당수의 유대인 주민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유대인들에게 먼저 전한다는 일반적인 규칙에 따라서(46절) 사도들은 당연히 여러 회당에서 초기 접촉을 시도하였다. 회당 예배에서는 바울과 바나바 같은 방문객들에게 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특별히 제공되었다(참조 제10권, 63~65). 요한. 즉 마가 요한으로, 바나바의 사촌이다(참조 골 4:10 주석).
섬 가운데로.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는 “온 섬 가운데로”라는 독법을 증거한다. 바울과 바나바는 섬을 횡단하며 여러 곳에서 가르쳤을 것이다. 바보. 바보는 구브로 섬 서단에 놓여 있다. 이곳에는 아프로디테에게 헌정된 신전으로 유명한 옛 도성이 있었지만, 바울 시대에 북서쪽으로 약 1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새 도성이 건설되어 구브로의 로마 총독의 사령부로 사용되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른 곳이 바로 이 새 도성이었다. 바예수. 유대인 이름임이 분명하지만,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들은 정확한 헬라어 철자가 무엇인지에 대해 엇갈리게 나타나므로 히브리어나 아람어의 정확한 의미를 결정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은 “여호수아의 아들”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참조 마 1:1 주석).
서기오 바울. 티베리스(Tiber)의 평의원으로 봉직했던 사제들인 아르발 형제단(Arval Brethren)을 열거한 AD 35년경 라틴어 명각에는 “루[기오] 서기오 바울”(L[ucius] Sergius Paulus)이 포함되어 있다. 비록 이 사람을 본 이야기에 나온 총독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들이 동일한 사람이며 서기오 바울이 구브로로 파송되기 전에 로마의 사제였을 가능성도 있다. 구브로의 솔리(Soli)에서 나온 또 다른 명각은 “총독 바울” 시대에 기록된 명각임을 밝힌다. 학자들은 되풀이하여 이 총독과 사도행전의 서기오 바울을 동일 인물로 보려고 했으나, 그 명각의 연대가 제1차 선교여행 때와 일치할 수 없다는 것이 최선의 견해다. 아마도 그것은 몇십 년 전에 구브로를 통치했던 총독을 가리킬 것이다. AD 90년경에 저술한 대(大)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가 그의 저서인 박물지(Natural History) 곳곳에서 서기오 바울을 자신의 최고 상관으로 언급한 것으로 생각해 왔지만, 이 문서에 대한 비평적인 연구를 통해 거기에는 한 명 이상의 서기오 바울이 언급되었음이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서기오 바울에 대해서는 누가의 기록 외에는 확실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엘루마. 이 이름의 의미에 대하여 학자들이 여러 가지로 추론했지만 최종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이것은 아마도 “박수”나 “마법사” 같은 의미를 지닌 셈족 단어일 수도 있다. 이 경우에 “번역하면”이란 구절은, “엘루마”가 “바예수”의 번역된 이름이 아니라 단순히 그가 박수였음을 첨언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저희를 대적하여. 협잡꾼은 자신이 총독에게 끼치던 영향력을 상실할까봐 두려워하였다. 엘루마는 자신의 희생물이 풀려나 박수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복음에 대한 믿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목도하자 이 변화를 저지하기로 결심하였다. 얀네와 얌브레는 다소 비슷한 상황에서 동일한 사단의 노력으로 모세를 대적하였다(딤후 3:8). 못하게 힘쓰니. 엘루마와 서기오 바울 모두 사도들이 살라미에 도착한 후로 그들의 기별에 대해 많이 들었겠지만, 여기서 서기오 바울은 아직 그리스도의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수는 총독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보고 바나바와 사울을 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 했다. 하지만 총독은 굳게 결심하고 자기 앞에 사도들을 데려오도록 했다.
바울이라고 하는. 여기서 이방인의 사도로 가장 잘 알려진 이름이 처음 소개된다. 사울과 바울의 이름에 관한 언급은 제7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설명 2를 참조하라. 성령이 충만하여. 이곳의 헬라어 분사의 시제에는 영적 능력의 갑작스런 임재가 암시되어 있어서 단번에 품성에 대한 통찰과 의분과 하나님의 징벌이 내릴 것임을 나타낸다. 엘루마에게 내려질 형벌이 성령을 통해 사도에게 보였을 것이다. 바울은 동일한 원천을 통해 자신이 말하려는 내용이 실현될 것도 알았다. 주목하고. 헬라어 아테니조(atenizo-). “응시하다.” 다메섹 도상에서 보았던 강렬한 광채로 바울의 시력에 장애가 생겼기 때문에 이러한 응시가 필요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누가는 놀라서 혹은 유심히 쳐다보는 것같이(참조 행 3:4; 눅 4:20; 22:56), 정상 시력을 지닌 사람들이 한곳을 고정하여 응시하는 데 이 헬라어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엘루마는 주목받을 필요가 있었는데, 이는 그가 사도들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데 어떠한 방법이라도 동원할 태세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은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가차없이 정죄했다.
마귀의 자식. 참조 요 8:44 주석. 마귀가 거짓의 아비인 것처럼, 속임수를 쓴 엘루마도 이런 모욕적인 칭호로 불려질 만한 사람이었다. 바예수라는 이름이 “여호수아의 아들”(“여호와는 구원이다”라는 뜻의 이름, 참조 6절 주석)이라는 뜻이라면, 여기서 바울이 그의 성격을 묘사한 것과는 특별히 현격한 대조를 이룬다.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엘루마의 영향으로 하나님의 참된 도가 왜곡되고 와전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곧은 길을 교활한 사람의 굽은 길로 바꾸어 놓았다. 이것은 이사야가 묘사한 대로 고르지 않은 곳을 평탄케 하여(사 40:4) 주의 길을 진실로 준비하는 것의 정반대였다.
주의 손. 참조 행 11:21 주석; 출 9:3; 삿 2:15. 서기오 바울이 엘루마에게 한 질문은 유대인의 신앙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엘루마는 총독에게 하나님을 알도록 가르치는 대신에 자신의 주장에 따라 총독을 잘못 인도하였다. 엘루마가 주의 도를 곡해하였기 때문에 그분의 손이 그에게 임하려고 하였다. 네가 소경이 되어. 이것이 가장 적합한 심판인 까닭은 엘루마가 진리의 빛에 대항했기 때문이다. 엘루마가 받은 형벌의 형태는 사도 바울의 이전 경험과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바울은 외적으로는 눈이 멀었으나 내적으로는 하늘로부터 오는 빛에 의해 계몽되었다(참조 9:9 주석). 엘루마가 한동안 눈이 멀었지만 모든 사람에게 비치는 “참빛”(요 1:9)을 여전히 영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얼마 동안. 실명이 일시적이었다는 것에는 이것이 형벌뿐 아니라 의도된 교정책이었음이 암시되어 있다. 엘루마에게 가해진 형벌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받은 형벌보다는 가벼웠는데, 만약 그 부부의 그런 소행이 계속된다면 그로 인해 교회에 파멸이 초래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죄는 구브로의 마법사에게 임한 빛보다 더 큰 빛에 대항한 것이었다. 안개와 어둠. 이 단어들의 순서에는 시력이 점차 감소되었음이 나타나 있다. 처음에 엘루마의 눈이 흐려졌다가 이윽고 멀게 되었다. 이런 꼼꼼한 기록에는 누가가 의사 교육을 받았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참조 행 9:18 주석; 골 4:14).
총독. 총독은 이적을 보고 이어진 말씀을 들었다. 그는 사도들이 더 위대한 능력을 보여 줬다고 믿고 엘루마가 가르쳤던 것보다 분명 더 뛰어난 기별을 받아들였다. 주의 가르치심.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 기이히 여기니라. 즉 “놀라더라.” 여기서 이 단어는 마 7:28에서처럼 복음을 듣고 기뻐 놀람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 밤빌리아는 소아시아 남해안 중간 지점쯤에 있는 작은 지역이었다. 바울이 방문하기 직전인 AD 43년에 이곳은 서쪽 인근 루기아와 합병되어 하나의 제국 직할 속주를 형성하였다. 버가는 이곳의 주요 도성으로서, 바다에서 약 13킬로미터 떨어진 체스트루스(Cestrus) 강가에 있었다. 당시 이 도성에서의 전도 사역에 대하여 누가가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곳에 회당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한 마가가 떠나고 착잡해진 마음에 바울과 바나바는 계속 나아갔을 것이다. 그들은 돌아오는 길에 버가에서 복음을 전했다(참조 14:25). 요한은…떠나. 즉 요한 마가(참조 5절 주석). 요한이 왜 떠났는지 어떠한 단서도 없다. 아마도 그는 여정의 위험과 고난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요한 마가는 두 번째 복음서의 기자와 동일 인물일 것이다. 그는 후일 그리스도의 열성적인 일꾼이 되었다. 바울은 후에 애착을 갖고 그에 대해 말했으며(골 4:10), 마지막 투옥 기간 중 그를 보고싶어 했다(딤후 4:11). 누가가 왜 요한 마가가 떠났는지 알았을지라도 훗날 마가의 성공적인 경험을 존중하여 그 이유를 여기서 밝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버가로부터 지나. 바울과 바나바의 행로는 북쪽으로 체스트루스 강 지류 중 하나를 따라 갈라디아 도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들은 안디옥에 이르기 위해 밤빌리아 전체를 거슬러 올라가 갈라디아 남서쪽 모서리를 “지나갔다.” 안디옥. 비시디아는 바울 당시 일개 관구(管區)에 지나지 않았으며 AD 3세기 말이 되어서야 속주로 승격했다. 이 안디옥은 비시디아에 없었으며 브루기아 지역 근처에 있었다. 그러나 BC 39년에 이곳은 비시디아 왕의 통치를 받게 되었고 동일한 이름의 다른 도성들과 구별하기 위해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신약 시대에 이곳은 갈라디아 도에 포함되었다. 안디옥은 셀류쿠스 Ⅰ세 니카토르(Seleucus Ⅰ Nicator; BC 280년 사망)가 건설한 많은 도성 가운데 하나로, 자신의 아버지 안티오쿠스의 이름을 따서 이렇게 명명하였다. 이곳은 해발 1097미터 정도 되는 타우루스 산맥의 하부 비탈에 있다. 이곳 사람들은 아구스도 통치 때에 로마 시민권을 받았다. 안디옥은 상당수의 유대인들의 마음을 끌었을 것이며 이로 인해 이방인들이 유대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42절). 이 여행에서 바울과 그의 일행은, 그가 고후 11:26에서 언급한 “강도의 위험”에 노출되었던 것 같다. 안디옥에 이르기 위해 그들이 통과했던 비시디아는 북쪽으로 갈수록 점차 높아지는 산악 지역이었다. 스트라본(Strabo, AD 24년경 사망; Geography xii. 7. 2)은 이 지역에서 자주 발생한 약탈에 대해 언급한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4-6).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 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내용 요약
야고보의 순교 (1-2)
베드로의 투옥과 탈옥 (3-19)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죽음 (20-25)
배 경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기까지는 또 한 사람의 순교자가 있었다. 헤롯대왕의 손자 헤롯 아그립바 I세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야고보를 목베어 죽였다.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자 그는 베드로도 죽이려고 투옥했다. 예루살렘교회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극심한 시련이 다가오고 있었다. 신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시 34:7, 개정)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위기에 몰렸으나 태평스러웠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 보아요.
천사의 도우심이라고 생각되는 사건들이 있다면 나누어 보아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야고보는 누구입니까? ① 가족관계 (마 4:21) ② 별명 (막 3:17) ③ 그의 죽음 (행 12:2)
베드로는 얼마나 철저히 감시를 받았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2:4-6)
베드로가 옥에 갇히고, 교회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12:5) 그들이 한 일은 교회가 어려울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제시해 주나요?
베드로는 얼마나 깊이 잠들었습니까? (12:7) 그 절망적인 밤에 예루살렘에서 잠을 잔 그리스도인은 베드로밖에 없었다고 한다. 내일로 다가온 죽음을 앞에 두고 베드로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얼마나 깊은 신뢰인가? 얼마나 확고한 믿음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자는 베드로와 비교해보라(막 14:36-37).
다락방의 사람들은 베드로가 살아 돌아온 것을 믿었습니까(12:13-16)? 기도를 하고서도 그 응답을 믿지 못하는 것으로 봐서 그날 밤의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이었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기도를 드리면서도 그렇게 믿지 못하지는 않습니까?
교만한 헤롯의 최후에 대해 말해 보시오(12:20-23)
생각해봅시다
권력과 출세 중심인 헤롯의 삶과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바치는 야고보의 삶을 비교해서 생각해봅시다. 어느 쪽이 나의 삶과 더 가깝게 느껴지나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믿지 않는 우리의 행동이 있나요?
모든 하늘 천사들은 겸손하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을 위해 봉사하고 있으므로, 이 지상에 있는 주의 일꾼들의 군대가 찬양의 노래를 부를 때에, 하늘 찬양대는 그들과 연합하여 하나님과 그 아들에게 찬양을 돌린다. 우리들은 천사들의 사명을 지금보다 더욱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모든 하나님의 진실한 자녀들은 하늘 존재들의 협력을 받고 있음을 기억함이 좋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빛과 능력의 군대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구하는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들과 동행하고 있다.(사도행적 154p)
1. 그때에. 여기서 이야기하는 사건은 헤롯 아그립바 Ⅰ세의 사망 직전에 일어났을 것이다(참조 20~23절). 그가 AD 44년에 죽었기 때문에, 이 장의 초반부 사건들은 아마도 AD 44년 이전 해이거나 당해 초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
헤롯왕. 헤롯 아그립바 Ⅰ세는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와 베레니체(Berenice)의 아들이었고, 헤롯 대왕과 하스몬 가문의 공주인 마리암네(Mariamne)의 손자였으며, 침례자 요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헤로디아(Herodias)와 남매지간이었다(참조 제9권, 51). 그의 이름은 아구스도(Augustus)의 총리였던 정치가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 그는 자신의 부친이 BC 7년에 조부 헤롯 대왕의 의심으로 희생된 후(제9권, 53)에, 일면으로는 볼모로, 다른 일면으로는 그가 음모에 연루되는 것을 막기 위해 로마로 보내졌다. 거기서 그는 칼리굴라와 글라우디오의 친구가 되었는데, 후에 그 둘은 모두 황제가 되었다. 헤롯 안티파스가 헤롯 아그립바의 누이 헤로디아와 결혼했을 때, 아그립바는 디베랴의 시장(市場) 감독관이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안티파스와 다투고 로마로 갔다. 거기서 그는 자기 친구 칼리굴라가 황제가 되었으면 하는 성급한 소원을 드러내 디베료의 노염을 사게 되었다. 그는 디베료의 명으로 투옥되어 이 황제가 죽을 때까지 감금된 채로 있었다. 칼리굴라는 디베료를 이어 황제의 위에 올랐을 때 자기 친구 아그립바에게 명예를 주어, 먼저는 빌립의 영지를, 그 뒤에는 루사니아의 영지(눅 3:1)를 주고 왕의 칭호를 부여하였다. 안티파스가 물러났을 때(참조 제10권, 73), 아그립바는 안티파스의 영토도 상속하였다. 그의 통치의 개관에 대해서는 제10권, 78을 참조하라.
2. 야고보를…죽이니. 사도가 신성모독이나 이설이라는 죄명을 받았다면, 산헤드린은 그에게 돌로 쳐죽이는 형을 언도했을 것이다. 침례자 요한의 경우처럼(마 14:10), 사도 야고보의 참수형은 그의 죽음이 로마의 처형 방법을 채용했던 국가 통치자에 의해 언도되었음을 입증한다(참조 마 20:23). 헤롯이 야고보를 왜 그의 첫 희생자로 지목해야 했는지는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했을 때 복음 전도 이야기에서 베드로와 요한과 공유했던 중요한 위치를 지속적으로 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천성적인 열정으로 인해 눈에 띄었을지도 모르는데, 이는 그가 우레의 아들로 불렸기 때문이다(막 3:17).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로부터 전달되어 유세비우스(Eusebius)가 보존한 전승(Ecclesiastical History ii. 9)에 의하면 야고보를 고발한 자가 희생자의 믿음과 인내를 보고 회심했다고 한다.
야고보는 그리스도 승천 이후 단 1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봉사했다. 사도들 중에 그가 가장 먼저 죽은 반면에, 그의 형제 요한은 아마도 12명 중 가장 마지막으로 죽었을 것이다.
3. 유대인들이…기뻐하는. 이것이 아그립바의 목적이었다. 요세푸스도 이것을 주목한다. 그는 아그립바를 안티파스와 비교하면서, 안티파스는 “유대인보다 헬라인에게 더 호의적이었”지만 아그립바는 안티파스와 “전혀 같지 않았다”라고 말한다(Antiquities xix. 7. 3).
민중의 칭송 혹은 비난에 대한 이 왕의 예민함을 예증하는 한 사건이 미쉬나에 나온다(Sotah 7. 8; Soncino ed. of the Talmud, 202). 어느 안식년 장막절에, 아그립바 왕이 율법을 읽고 있었다. 그가 “네 형제가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라는 신 17:15 말씀에 이르렀을 때, 자기의 후손인 이두메 사람들을 생각하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사람들은 그가 우는 것을 보고 그가 하스몬가를 생각하는 줄로 알고 “당신은 바로 우리 형제요! 당신이야말로 우리 형제요!”라고 부르짖자 왕의 마음이 위로받았다.
만약 아그립바가 기쁘게 하려던 대상이 주로 유대 지도자들이 아니었다면, 분명 이 이야기는 2:47과 5:26에서 명백하게 드러난 대로 사도들을 지지하는 초기 대중적인 정서에 큰 변화가 발생했음을 암시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 변화는 교회 구성원의 급격한 증가로 야기되었다.
무교절.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눅 22:1)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표현은 유월절 전체 기간을 가리킨다.
4. 네 패. 한 패(quaternion)는 보초 근무를 서는 4명으로 이뤄진 분대였다. 두 병사는 죄수와 함께 묶여 있고 두 병사는 서서 외부를 감시했을 것이다(참조 10절 주석). 이렇게 4명으로 이뤄진 분대는 분명히 교대로 베드로를 담당하도록 명령받았을 것이다.
5. 간절히. (「제임스왕역」에는 “without ceasing”[쉬지 않고]). 헬라어 엑테노스(ekteno-s). “간절히.” 겟세마네에서 드린 예수의 기도를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눅 22:44)와 동일하다. 이 단어는 벧전 4:8에서는 “열심으로”라고 번역되어 강렬함을 나타낸다. 교회의 일반적인 상황으로 보아 이 기도들은 사가(私家)에서 그리스도인 무리가 드린 것으로 추측될지 모르는데(행 12:12), 이는 아그립바의 핍박이 공개적인 그리스도인 예배를 위협했기 때문일 것이며, 이는 그리스도교 초기에 흔한 사례였다.
6. 베드로가…누워 자는데.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말씀에 나타난 대로(시 127:2), 사도가 다가오는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잠잠히 휴식을 취하는 것을 보는 것은 신앙에 영감과 도전을 준다.
7. 쇠사슬이…벗어지더라. 베드로는 분대 소속 병사 두 명에게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쇠사슬이 그의 발목과 손목에서 벗겨져 떨어졌지만, 보초들은 깨지 않았다.
9. 알지 못하고. 베드로에게 이 상황은 분명히 10장에 기록된 생생했던, “비몽사몽” 중에 본 환상과 매우 흡사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는 마치 전에 기도하는 중에 지붕에서 환상을 보았다는 사실을 깨어난 후에야 깨달았던 것처럼, 깨어난 후에 자신이 두 병사에게 쇠사슬로 묶여 있는 것을 보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10. 파수. 헬라어 퓔라케(phulake-). “첫째와 둘째 파수”는 감옥의 안쪽 문 근처와 약간 더 떨어져 있는 다른 문에 배치된 보초들을 가리키거나, 아니면 그와 함께 쇠사슬에 묶여 있던 보초와 문에 있었던 다른 보초들(참조 4절 주석)을 가리킬 수 있다. 베드로는 안쪽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안뜰 둘을 지나서 나와야 했다.
절로. 이 말은 인간적인 힘이 사용되지 않았음을 뜻한다(참조 레 25:5). 보이지 않는 천사가 문을 연 것이 분명하다.
누가가 이 기적을 간결하면서도 꾸밈없이 기록한 사실은 이 기록의 정확성을 입증한다.
12. 요한. 베드로가 마가를 그의 “아들”(벧전 5:13)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 젊은이는 베드로를 통해 회심했을 것이다. 라틴어 이름 마르쿠스(Marcus)는 로마인 혹은 로마계 유대인과 어느 정도 접촉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마리아. 이 마리아는 바나바와 친척이다(참조 골 4:10. 마가가 “바나바의 생질”이라고 되어 있지만, 헬라어로는 “바나바의 사촌”을 의미한다). 마가의 아버지가 언급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마리아는 과부였을 것이다. 기도회 장소로 교회에 대여해 줄 만큼 큰 집을 가졌던 점을 볼 때, 마리아도 바나바와 마찬가지로(참조 행 4:36, 37) 상당한 재산을 소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모여 기도하더라. 아마도 이러한 모임은 마리아의 집에서 흔히 있었을 것이다. 베드로가 감옥에서 구출되었을 때 일단의 무리가 그의 구원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는데(참조 5절), 이는 교회가 위기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3. 로데. “장미”라는 뜻의 흔한 헬라어 이름. 로데는 이 사건 외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녀만큼 잘 알려진 하인은 거의 없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 예수의 발을 씻겼던 마리아 그리고 성전 연보궤에 두 렙돈을 넣었던 이름 모를 과부처럼, 로데는 1900여 년 동안 모든 성경 독자들에게 알려졌다.
영접하러. 여기에 위기감이 풍기는데, 이는 아그립바가 유대교에 대한 열심 때문에 제자들에게 가한 핍박으로 인한 위기였다. 사울이 일전에 모든 집에 들어가 남녀를 감옥으로 체포했는데(8:3), 이때도 그와 유사한 위험을 내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로데가 들어가기를 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 전에는 문을 열어 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14. 베드로의 음성. 헌신적이고 용감한 십자가의 군병을 향한 어린 여성의 그리스도인 사랑으로 그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베드로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였을 것이고, 따라서 그녀는 그의 음성을 알아챘다. 또한 베드로는 갈릴리 방언 특유의 어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전에도 어떤 하녀가 그를 알아본 적이 있었다(마 26:73).
기뻐하여. 로데가 베드로에게 문을 열지 않았던 것은 믿음의 부족이 아니라, 순수한 기쁨 때문이었다. 그녀는 베드로를 향한 형제들의 근심과 그를 위해 드려지는 기도에 함께하였다. 베드로의 탈출에 대한 기쁜 소식을 말하려는 간절한 갈망으로 인해 그녀는 침착함을 잃어버렸다. 이와 유사하게 누가는 부활의 저녁 예수를 알아보았으나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였던(눅 24:41) 제자들에 대해 기록하였다.
15. 네가 미쳤다. 베드로가 문에 서 있다는 소식을 로데가 전했을 때, 형제들은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자신들의 기도에 응답했음을 믿을 만한 믿음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어린 여성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그의 천사. 히브리서(1:14)에서 천사에 관한 유대인의 건전한 신념은 다음 질문에 표현된다. “모든 천사는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유대인은 수호 천사가 각 사람에게 배정되며, 천사가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날 때 그 사람과 비슷한 모양을 취한다고 믿었다. 구약과 신약의 중간 시대에 유대인은 복잡한 천사론(angelology)을 발전시켰다.
16. 놀라는지라. 선한 사람들조차도 기도가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응답되었다는 사실을 선뜻 믿으려 들지 않음을 보여 주는 이보다 더 좋은 예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베드로가 그들 앞에 섰을 때, 그들은 이 사람이 베드로임을 거의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믿음의 기도가 응답될 것이라는 충분한 보증을 주었다(요 14:13, 14).
17. 자기를 이끌어. 감옥에서 놓여 정신을 차렸을 때 베드로는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11절)셨다고 외쳤다. 그러나 지금 그는 자신을 구원한 분이 주님이었다고 증거하고 있다.
야고보. 할례와 관련해서 예루살렘 총회에서 의장을 맡아, 그 문제에 대해 판결을 내렸던 야고보임이 분명하다(15:13). 그는 어떤 면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수석 장로였기 때문에, 베드로가 자신의 구출 소식을 즉시 알려 주길 바란 것은 당연했다.
이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 아니면 주님의 형제 야고보일 것이다. 예수의 형제들은 예수의 지상 생애의 종반부가 돼서야, 즉 열두 제자가 선택되고 한참 후에야 그를 믿게 되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사망한 이후,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중 하나였던 야고보를 가리켜 “주의 형제”(갈 1:19; 참조 2:9)라는 명백한 호칭을 붙인다. 이 사람이 바로 여기서 베드로가 언급한 야고보일 것이다. 유세비우스(Ecclesiastical History ii. 23; Loeb ed., vol. 1, 171)는 그를 예루살렘의 감독이라고 칭하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진실의 요소를 간직하고 있는, 야고보에 관한 헤게십푸스(Hegesippus)의 회고록(Memoirs, AD 180년)을 인용한다. “주님의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모든 사람이 그를 ‘의로운 자’라고 부른 이유는, 야고보로 불린 사람이 많았지만 이 야고보는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거룩했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거나 육식을 하지 않았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으며, 스스로 기름을 바르지 않았고 목욕하지도 않았다. 그만이 홀로 성소에 들어가도록 허용되었는데, 이는 그가 양모를 입지 않고 아마포만 입었고 혼자 성전에 들어가 사람들의 죄사함을 위해 무릎 꿇고 기도드리곤 했기 때문이며, 사람들의 죄사함을 무릎 꿇어 간구하며 하나님에게 지속적으로 경배했기 때문에 그의 무릎은 낙타 무릎처럼 딱딱하게 되었다.” 전승에 의하면, 그가 그리스도를 부인하라는 요구를 거절했을 때, 그는 성전 꼭대기에 올려졌고, 그분에 대한 믿음을 붙잡겠다고 주장함으로 밑으로 던져져 돌에 맞고 곤봉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참조 제10권, 81). 요세푸스에 의하면(Antiquities xx. 9. 1) 그는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야고보서 서론을 참조하라.
18. 적지 않게 소동하니. 베드로와 함께 쇠사슬에 묶여 있던 보초들은 틀림없이 깨어나자마자 그가 사라졌음을 발견했을 것이고, 그가 도주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죽을 것임을 알았다.
이것은 베드로의 활동에 대한 성경의 마지막 기록이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그에 대해 진술한 것은 이미 언급하였다(1:18; 2:7, 8, 11, 14). 베드로는 자신의 두 서신에서 행한 일들에 대한 약간의 암시를 준다(벧전 1:1; 5:12, 13; 벧후 1:14). 이 외에는 어떤 영감된 기록에도 그에 대해 더 알려진 것은 없다. 전승에 꽤 많은 언급이 있긴 하지만, 그 주장들은 그 진위에 따라 수용하거나 거부해야만 한다. 제롬이 유세비우스의 크로니콘(Chronicon)을 의역한 진술 곧 베드로가 로마에서 25년 동안 전파했다는 말은, 베드로가 총회를 위해 예루살렘에 있었으며(행 15장) 그가 총회 직후 분명히 안디옥에 있었고(; 참조 제15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그가 친히 소아시아 북서부에서 사역했다(벧전 1:1; 참조 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iii. 1)는 사실에 비춰볼 때 매우 의문시된다. 행 8~12장에 비추어 볼 때, 이 모든 것은 AD 44년 베드로의 구출에 뒤이어 일어났을 것이다.
19. 죽이라. 문자적으로 “[그들을] 끌어내어” 처형하라. 동일한 동사가 예수의 재판과 십자가 처형에 대한 복음서 기사에서 “끌고 가니”(마 26:57; 27:2, 31; 막 14:53; 눅 23:36)라고 번역되었다. AD 529년에 공포된 한 로마법은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투옥된 죄수의 구금과 관리는 간수에게 맡겨졌고, 따라서 간수는 어떤 경우든 죄수가 도주했을 때 그에게 책임이 있다해도 일부 비열하고 야비한 피고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데, 이는 도주한 죄수가 받아온 것으로 입증된 동일한 형벌을 간수가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The Code of Justinian ix. 4. 4; in S. P. Scott, tr., The Civil Law, vol. 14, 364). 이것은 죄수가 도주하는 것을 막지 못한 간수와 관련된 법 혹은 적어도 판례로 오랫동안 존재했던 것이 분명하다. 빌립보에서, 자기의 죄수들이 모두 도주했다고 생각한 간수는 법으로 사형을 당하느니 차라리 자살하려고 하였다(행 16:27). 27:42과 비교해 보라.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그의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그러므로 백성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니라'(출 16:28-30).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출 5:1,2).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27]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내용 요약
이방인 논쟁 (1-25)
안디옥 교회의 설립 (19-26)
유대의 기근 구제 (27-30)
배 경
제11장의 첫 부분에서 다시 고넬료 사건이 문제가 된다. 28장밖에 안되는 사도행전에서 왜 고넬료 사건이 그렇게 크게 다루어지는가? 그것은 예루살렘의 제자들이 이방인을 향해 마음을 여는 일이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11장의 두 번째 부분에서는 드디어 세계선교를 위한 본부가 세워진다. 안디옥 교회이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올린고로 이방인들이 그들을 그리스도인들이라 부름은 지당한 일이었다. 이것은 자신들을 그리스도께 연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고귀한 이름이다.(행적, 157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지방에서 잘 할 수 없는, 서울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나는 내가 속한 사회에서 “안식교인” 혹은 “재림교인”이라고 불리우는 것에 대하여 부담감이 없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스데반의 일”(11:19)과 그 결과로 일어난 좋은 결과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볼까요?
그들이 용기 있게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하니(11:20)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습니까? (11:21)
바나바는 “착한 사람”,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11:24)이것은 복음 전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바나바는 바울을 찾으러 가서 무엇을 제안하였습니까?. (11:25) 다메섹도상의 회심 이후 9년이나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있는 바울의 겸손과 신앙을 생각해 봅시다. 본인라면 그렇게 기다릴 수 있을까요?
안디옥의 신자들은 어떻게 살았기에 사람들이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을까요?(11:26)
생각해봅시다.
우리 주위에 헬라인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요?
안디옥교회가 설립된 의의에 대하여 생각봅시다.
안디옥에 있는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애를 통해 즐겨“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소원을 두고”(빌2:13) 일하기 원하심을 깨달았다. 영원한 가치를 지닌 사물에 관해 거의 관심이 없는 듯이 보이는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그들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 저희가 사랑하고 섬기는 분에 대해 적극적인 증거를 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들은 겸손히 봉사하면서 생명의 말씀을 효과 있게 만드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날마다 그리스도를 믿는 그들의 신앙을 증거하였다.(행적158p)
19. 스데반의 일로. 8:1~4에 나타난 대로, 순교자의 죽음은 예루살렘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광적인 핍박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신자들의 분산을 초래하였다. 빌립은 사마리아와 가이사랴에서 일했다. 다른 사람들은 베니게의 도성인 두로와 시돈 그리고 돌레마이로 갔는데, 아마도 이들은 21:3~7과 27:3에 언급된 교회들을 설립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구브로에는 바나바와 사울의 이후 사역을 위해서 길이 예비되었다(참조 13:4~13). 참조 280쪽 지도.
환난. 사울이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던 핍박을 가리킨다(참조 8:1; 9:1, 2).
안디옥. 갓 태어난 그리스도 교회가 수리아의 수도와 접촉한 것에 대한 첫 언급이다. 안디옥은 로마 제국에서 로마, 알렉산드리아, 에베소 다음으로 큰 도성이었고, 오랫동안 그리스도인의 중요 거점이 되었다. 아마도 안디옥의 개종자 니골라(6:5)가 자기의 새로운 신앙을 선포하기 위해 귀환했을 것이다. 그곳으로 그리스도교가 들어간 것은 중대한 의미가 있었다. 실루기아(Seleucia) 항구에서 내륙으로 약 24킬로미터 떨어진 오론테스(Orontes) 강변에 위치했고, BC 300년경 셀류쿠스 Ⅰ세 니카토르(Seleucus Ⅰ Nicator)가 건립하여 그의 아버지 안티오쿠스(Antiochus)의 이름을 따라 명명된 안디옥은, 부와 영향력이 있는 곳으로 성장하여 아시아의 주도적인 도성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곳의 학자와 문필가들을 극찬하였다. 키케로(Cicero)는 그들 중 한 사람인 아르키아스(Archias)에게 유명한 연설을 하였다. 유베날리스(Juvenal)는 로마 생활과 기호에 미친 안디옥의 영향을 인식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가진 편린(片鱗)이라도 헬라로부터 온 것이 있는가? 수리아의 오론테스 강은 오래 전부터 티베리스 강(Tiber)으로 흘러 들어오면서, 수리아의 방언과 풍습 그리고 피리와 경금현(傾琴絃, slanting harp-strings) 등도 함께 가져왔다”(Satires iii. 62~64; Loeb ed., 37). 안디옥에는 유대인 거류지가 여러 곳 있었는데, 그들을 위하여 헤롯 대왕이 그 도성을 가로질러 대리석 주랑(柱廊)을 건설하였다. 안디옥은 로마의 수리아 행정 장관 즉 총독의 본부였다. 그리스도 교회는 예루살렘이나 가이사랴보다 헬라 문화에 더 가깝게 접촉하는 안디옥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또한 그리스도 교회는 가장 유혹적이고 저급한 형태의 이교와 맞닥뜨렸다. 다프네(Daphne) 신에게 바쳐진 작은 숲들은 방탕한 우상숭배로 유명했다. 교회가 안디옥을 주요 거점 가운데 하나로 삼을 수 있었다는 것은 놀랄 만한 승리였다.
유대인에게만. 이는 물론 고넬료의 회심이 일어나기 전 혹은 고넬료의 회심이 일반적으로 알려지기 전에, 예루살렘을 떠났던 사람들에게는 예상된 것이었다. 베드로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그리스도의 예언적 명령이 최대 범위까지 수행(1:8)될 때가 이르렀다는 것을 통보받지 못했다. 유대인만 골라 말한 것은 분명히 베드로와 고넬료에 대한 앞의 이야기와 이어지는 선교사 사역에 대한 진술 모두와 대조되어 언급된 것이다.
20.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 이 사람들의 경우, 좀 더 국제적인 배경을 가진 이들이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고향이자 편견의 본거지인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중에 있는 이방인에 비해 어울리는 데 아마도 덜 망설였을 것이다.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짐작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13:1의 선지자 목록에 나오는 구레네 사람 루기오이거나 그리스도의 제자였던 구레네 사람 시몬일 수 있는데, 시몬이라고 추측할 만한 이유가 있다(참조 마 27:32 주석; 참조 막 15:21). 안디옥에 있는 교회의 설립자들은 알려지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21. 주의 손. 구약에서 하나님이 세상 역사에 직접 관여하는 것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표현이다. 참조 출 14:31: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손”을 뜻하는 히브리어 야드[yad])을 보았으므로.” 애굽 술객들의 진술과 비교해 보라.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출 8:19; 「제임스왕역」에는 “이는 하나님의 손가락이니이다”라고 되어 있음). 이것은 매우 인격적인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22. 이 사람들의 소문. 즉 안디옥의 이 회심자들에 관한 소문. 만약 새로 회심한 이 사람들이 이방인이었다면, 그들의 회심 소식에 대해 나타낸 예루살렘의 호의적인 승인은 틀림없이 고넬료를 이미 용납했던 승인 덕분이었을 것이다. 바나바를…보내니. 이는 안디옥에서의 사역을 강화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승인과 지침을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파송된 것(8:14)과 같은 맥락이다.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진행되고 있던 사역에 동조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아마도 바나바가 낙점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사울의 친구였고, 예루살렘에 있던 제자들 일부에게 사울을 소개했으며(9:27), 이방인에 대한 사울의 확신과 소망을 알았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사울은 같은 길에서 일할 기회를 환영했을 것이다. 안디옥에서 일하는 선교사들 일부와 같은 지역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는 더욱 적임자였을 것이다.
23. 기뻐하여. 바나바는 오직 이 새로운 사역에서 자신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았으며, 교회에 교인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크나큰 기쁨의 이유가 되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경험과 사역 전체는 언제나 지속적이고 쇠하지 않는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굳은. 바나바는 그들이 시편 기자와 같이 “나의 마음이…정해졌”(시 57:7; 108:1)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랐다. 주께 붙어 있으라. 충성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게 드려져야 하며, 앞 구절에서 지적한 것처럼 “굳은 마음으로” 그분 안에 남아 있어야 한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인들 위에 임한 하나님 은혜가 이룬 효력의 결과를 보았지만, 모든 참 목사가 아는 바와 같이 그는 사람의 의지 혹은 의지의 부족이 그 은혜를 방해할 수도 있음을 알았다.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라는 말은 옳지 않으며, 사람은 뒤로 물러가 변절하기 때문에 의지의 협력이 성화의 과업을 완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권하니. 혹은 “권하기 시작했으니.” 시제는 지속적인 행동의 시작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24. 착한. 혹은 “올바른”(참조 눅 18:18, 19). 바나바에게 쓰인 이 말은 극찬이었으며, 의심할 여지없이 이 사람에 대한 누가의 개인적인 의견이 표현된 것이었다. 누가는 기록에 이런 좋은 점을 남기는 데 아마도 신중했을 것인데, 이는 바나바가 누가의 친구이자 동역자인 다소 사람 사울과 결별해야만 했던 말다툼을 조금 후에 이야기해야 했기 때문이다(행 15:39). 성령…이 충만한. 안디옥의 헬라계 유대인들 사이에서 저명했던 바나바와 같은 성품의 소유자라면 그 도성에 있던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을 것이다. 동일한 자격이 스데반에게도 주어진다(6:5). 전도자들이 안디옥으로 왔던 것은 바로 스데반의 죽음 후에 이른 핍박의 결과였다. 그들 중 일부는 스데반을 순교로 몰고 간 그 사역에서 활동적이었던 헬라파 유대인들이었을 것이다.
큰 무리. 21절과 관련된 사역 이후 많은 증가를 암시함. “위로의 아들” 바나바의 기쁨과 격려 가운데 표현된 것처럼, 예루살렘 교회가 이뤄진 일에 대해 승인한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이 진실한 일꾼들의 열성을 증가시켰을 것이다.
25. 바나바가…다소에. 이것은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사울이 안디옥에서 진행되고 있던 일에 찬성할 것임을 전제하며, 사울이 그곳 사역을 원조할 적임자라는 바나바의 신임을 보여 준다. 또한 사울이 예루살렘을 떠난 이 후 서신이나 사자를 통해 사울과 어느 정도 왕래가 유지되었음을 암시한다. 추측하건대, 사울은 다소나 그 근처에 머물면서, 그곳과 길리기아의 이웃 성읍에서 복음을 전파했을 것이다(참조 15:41 주석).
사울을 찾으러. 문자적으로 “사울을 뒤져내러”(to hunt up Saul). 주님의 현현을 경험했고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할 “택한…그릇”(9:15)으로 지정되었던 그는, 이때 안디옥에서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는 이 새로운 사역을 위해 바나바에게 동참하도록 요청받았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효력을 발하고 있음을 이미 들었기 때문에, 사울은 초청을 수락하였다.
26. 교회에. 교회 건물이 아니라 회중을 가리키는데, 3세기가 되어서야 건물들이 교회의 소유에 들었기 때문이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 신자들과 만나 복음 기별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기가 무섭게 교회 조직으로 편입되었다. 일 년간. 앞선 사례들과는 달리, 여기서는 기간이 정확하게 주어진다. 사울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서, 말하자면 목숨을 걸고 전파하였다. 안디옥에 있는 교회에서 그는 그의 열심에 어울리는 안정도와 광범위한 기회를 발견하였다.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더 정확하게는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받게 되었더라.” 배교자(the Apostate)라고 불린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AD 361~363년)는 풍자 형태로 별명을 창안하는 경향이 당시 안디옥 주민의 특성이었다고 언급하였다. 분명히 동일한 경향이 그리스도교가 최초로 나타났던 시기에도 유행하였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의 첫 음절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헬라어 크리스토스(Christos)에서 온 것인 반면 마지막 음절은 본래 라틴어인데, 이는 폼페이우스(Pompey)의 추종자들인 폼페이아니(Pompeiani) 같은 단어 및 다른 호칭들과 비교할 만하다. 유사하게 복음서에도 헤롯 당원(헤로디아나이[He-ro-dianai], 마 22:16)이라는 유사한 용어가 나타나는데, 이는 로마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어쩌면 이교도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조롱조로 이 호칭을 붙였을지도 모르는데, 루테라니(Lutherani) 곧 루터파라는 용어가 1,500년 이후 루터 추종자들의 적들에 의해 조롱조로 사용되었던 것과 어느 정도 유사하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 호칭을 자신들에게 붙이지는 않았을 것이고, 이 호칭의 사용은 이 호칭을 지닌 이들이 그리스도 곧 메시야의 추종자들임을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그들에게 이 호칭을 붙이지도 않았음이 분명하다. 새로운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분명하다. 이들 새 이방인 회심자들이 안디옥 교회에 동참했을 때, 이전의 어떤 이름도 국제적인 전체 조직을 포함하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더 이상 나사렛인도 갈릴리인도 헬라파 유대인도 아니었으며, 따라서 안디옥 사람들의 눈에는 특이한 혼종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라틴어 어미를 지닌 헬라어 즉 혼종어(混種語)인 “그리스도인”이 그들에게 어울리는 것으로 보였다. 처음에는 조롱하는 말이었지만 후에는 영광스러운 이름이 되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말고”(벧전 4:16). 그러나 전승에서는 이 호칭의 기원을 안디옥의 1대 주교인 유오디우스(Euodius)에게 돌린다. 그곳 교회의 지도자로서 유오디우스의 계승자인 이그나티우스(Ignatius)는 이 호칭을 자주 사용하였다.
27. 선지자들이…이르니.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2:17)에서 인용되었던 요엘의 예언에 대한 성취로서, 어린 교회에 선지자들이 있었음이 분명하다(참조 행 13:1, 2; 엡 2:20). 그러나 우리는 신약 기록들로부터 이 “선지자들”의 직무가 무엇이었는지 분명히 알 수 없다. 그들은 성령의 은사를 소유했고,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해석하는 일에 종사했으며, 때로는 여기서 아가보가 그랬듯이 미래 사건들을 예언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참조 행 13:1; 15:32; 19:6; 21:9, 10; 롬 12:6; 고전 12:10, 28, 29; 13:2; 14:6, 29~37). 선지자들의 사명은 분명히 사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수행하고 있었던 사역에 대해 예루살렘 교회가 부여한 부가적 승인으로 여겨졌음에 틀림없다.
28. 아가보. 바로 이 선지자가 후에 가이사랴와 관련된 이야기에 등장한다(21:10, 11). 천하. 헬라어 오이쿠메네(oikoumene-).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을 가리키는 단어. 눅 2:1; 눅 4:5과 신약의 다른 곳에서, 이것은 로마 제국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크게 흉년. 이 흉년은 아마도 요세푸스가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데(Antiquities xx. 2. 5), 그는 티그리스(Tigris) 강 동편 아디아베네(Adiabene)의 여왕인 헬레나(Helena)가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동안 어떻게 백성들을 위해 알렉산드리아의 옥수수와 구브로의 마른 무화과를 얻어다가 도와주었는지를 말한다. 이 흉년은 마 24:7에 있는 예수의 예언에 대한 부분적인 성취로서 보여질지도 모른다. 이 사건과 신약 연대기의 관계를 알려면 제12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설명 1을 참조하라. 글라우디오. (「제임스왕역」에는 가이사 글라우디오[Claudius Caesar]).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는 “가이사”가 생략됨을 입증한다. 글라우디오의 통치는 AD 41년부터 54년까지 지속되었는데, 이 기간은 빈번한 흉년으로 유명하다(Suetonius Claudius xviii. 2; Tacitus Annals xii. 43).
29. 제자들이. 즉 안디옥 교회의 제자들. 그 힘대로. 문자적으로 “각각 번영한 대로.” 예언의 영향으로 모금 활동은 흉년이 임하기 전에 이뤄졌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사울과 바나바는 이방인들을 적극적으로 독려하여 후원하도록 했을 것이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롬 15:25, 26)을 위한 모금 활동의 시초로, 후에 바울의 사역에서 매우 두드러졌으며(참조 행 24:17; 고전 16:1; 고후 9장; ) 사도가 교회의 유대인 계층과 이방인 계층 사이의 연합을 위한 끈으로 간주했다. 예루살렘의 회심자들은 타오르는 첫사랑에서 나온 관대함(행 2:45)과 그에 수반된 핍박(행 8:1)으로 인해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보다 가난의 압박에 더 노출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흉년이 다가왔을 때, 흉년에 영향받지 않은 지역에 위치한 교회들의 도움에 많이 의존했을 것이다. 안디옥 교회는 다른 교회들에게 훌륭한 모본을 보였다.
30. 장로들. 헬라어 프레스뷔테로이(presbuteroi). 문자적으로 “연만한 [남자].” 이것은 그리스도 교회의 이 직원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다. 그들은 아마도 사도는 아니었을 것인데, 이는 15:2, 4, 6에서 장로를 사도와 구분하여 언급하기 때문이다. 이 후부터 그들은 교회 조직의 두드러진 요소로 등장한다. “장로”라는 용어, 넓게는 이것이 언급하는 교회의 직책은 이방인과 유대인 생활 모두에 배경을 두고 있었다. 애굽의 파피루스는 “장로들”이 지역 주민들의 경제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입증한다. 그리하여 토지 임대와 세금 납부와 관련된 질문들로 인해 그들에게 간청이 들어왔다(참조 J. H. Moulton and G. Milligan, The Vocabulary of the Greek Testament, 535). 소아시아에서 이 용어는 시의회 의원을 가리켰고, 애굽에서는 신전의 사제를 가리켰다(참조 A. Deissmann, Bible Studies, 156, 233). 유대인 생활에서 “장로”(프레스뷔테로스[presbuteros])는 지역 회당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는데, 이는 테오도투스 명각(Theodotus Inscription)을 통해 입증된다(참조 6:9 주석). 이것은 또한 산헤드린의 평민 의원(히브리어로 즈케님[zeqenim])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참조 4:5 주석). 이렇게 하여 이 용어는 그리스도 교회가 지역 회중 가운데 주요 책임들을 맡은 직원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될 수 있도록 준비되었다. 이 지역 책임자들뿐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 또한 유대 산헤드린의 즈케님의 지위와 약간 유사한 지위를 점하고 있었을 것인데, 이는 사도들과 함께 그들이 자신들의 회중의 한도에 상관없이 어떤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고 15장에 나타나기 때문에 그렇다. 이번 경우에서 안디옥에서 모금된 기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분배되도록 바나바와 사울의 손을 통해 보내진 대상이 바로 이들이었다. 초기교회에서 장로는 또한 “감독”이라는 뜻의 에피스코포스(episkopos)로 알려졌는데, 이것은 영어에서 “bishop”이라는 단어로 편입되었다. 역사상 적어도 AD 3세기 이후 “장로”와 “감독”(bishop)이라는 용어는 교회의 서로 다른 두 직책을 나타냈지만, 신약의 증거는 사도 시대에는 두 용어가 동일한 직책을 가리켰음을 분명하게 지적한다(참조 딤전 3:2~7과 딛 1:5~9; 참조 행 20:28 주석; 참조 빌 1:1).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 AD 96년경)는 이 둘을 동일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고(Epistle to the Corinthians 44), 크뤼소스톰(Chrysostom, AD 407년 사망)도 “옛날에는 장로들이 감독관들(혹은 감독들)과 그리스도의 성직자들(혹은 집사들)로, 감독관들이 장로들로 불렸다”고 단언하였다(First Homily on Epistle to the Corinthians 1, in Migne, Patrologia Graeca, vol. 62, col. 183). 야고보의 서신에 의하면 장로의 의무 중 하나는 환자들을 방문하여 그들의 건강 회복을 위해 주님에게 기도하고, 치유를 위해 그들에게 기름을 붓는 것이었다(5:14). 후기의 장로와 감독 직책의 발전 과정에 관한 논의를 보려면 제12권 논문 “초기 그리스도 교회” Ⅷ장을 참조하라.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8]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9]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10]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15]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17]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18]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유숙하느냐 하거늘 [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20]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21]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이르되 내가 곧 너희가 찾는 사람인데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22]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 대 [23]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갈새 욥바에서 온 어떤 형제들도 함께 가니라 [24]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내용 요약
고넬료의 환상 (1-8)
베드로의 환상 (9-22)
베드로의 방문 (23-48)
배 경
제9장에서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할 인물을 준비하신 주께서는 10장에서 베드로로 하여금 이방인 고넬료의 집을 방문하고 이방인에게 성령이 내리는 것을 목도하고 그들에게 침례를 베풀게 하심으로서 베드로와 사도들, 즉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마음을 여신다.
만일 그분의 동역자들이 하나님과 함께 기회를 활용하는 사람들이 되어 용감하고 충실하게 그들의 의무를 행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 지성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을 개심시키실 것이다. (행적, 140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나와 신앙적인 입장이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선입견을 가지고 만났다가 그 사람의 태도와 인품에 감동된 적이 있나요? 그리고 그 사람에게 재림교회의 특별한 빛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있나요?
비 재림교인이 재림교인인 나를 보고 재림교회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진 적이 있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사도행전 10장에서 경건의 3요소를 찾는다면?(10:2)
고넬료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요. (10:1,2, 22, 25)
하나님이 깨끗케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10:15)하신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무슨 음식이나 가리지 말고 잘 먹으라고 하신 말씀입니까?
베드로가 고넬료 집을 방문한 사실은 왜 그렇게 사도행전에서 중요할까요?
생각해봅시다.
고넬료의 신앙처럼 겸손하고 경건하기 위하여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나와 신앙적인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깊이 이해하고 돕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봅시다.
주께서는 당신의 지혜로서 진리를 찾는 사람들을 이미 진리를 아는 이와 접촉하게 하신다. 빛을 받은 사람들이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나누어 주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시다. 지혜의 큰 근원으로부터 그 능력을 얻는 인간이 일하는 대리인, 즉 통로가 된 그를 통해서 복음이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에 변화시키는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행적 134p)
1. 이달리야대. 이것은 유대-로마 전쟁 기간에 수리아에 주둔했던 것으로 알려진 이달리야 제2보병대(Cohors Ⅱ. Italica)일 것이며, 본 이야기가 일어난 시기 이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보병대는 노예 신분을 벗은 자유민 혹은 적어도 비로마인 출신의 남성들로 구성되었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궁수로 구성된 원군 보병대였다. 백부장. 참조 눅 7:2 주석. 백부장은 약 100명의 부하들을 통솔하였다. 그는 부대 직속 지휘권을 가졌고 부대원들이 임무를 수행하는지 살피고 기강을 유지하는 책임을 맡은 부장교 지위를 차지하였다. 백부장은 로마 군대에서 고위직으로 승진이 쉽지 않았다. 고넬료는 로마 시민이었다.
2. 온 집으로. 고넬료는 자기를 위해 고귀한 진리를 발견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이것을 자기의 가족과 하인들 그리고 자기의 영향 아래 있는 다른 이들에게도 나누어 주고자 했다. 베드로를 찾기 위해 파송된 병사도 “경건”(7절)하다고 일컬어졌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한 사람”이라는 표현뿐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라는 유사 구절과 이 표현은, 유대교를 받아들여 여호와를 경배하게 된 고넬료 같은 이방인들을 언급하는 곳에서 누가가 반복적으로 사용한다(10:22, 35; 13:16, 26, 50; 16:14; 17:4, 17; 18:7). 많은 경우에 이것은 적어도 안식일 준수와 율법에서 금지한 음식을 삼가는 것 역시 포함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들이거나 경건한 유대인이 되려면 지켜야 하는 모든 규정을 철저하게 순종하지는 않음으로 유대교에 전적으로 동화하지 않았다(참조 제10권, 69~71). 이 표현들은 적지 않게 학자들의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70인역」에는 “경외하는 자들”(대하 5:6)이 언급돼 있는데, 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완전히 유대인이 된 사람’(full-fledged Jews)과 구별되는 특정 계층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요세푸스(Antiquities xiv. 7. 7 [110]; Loeb ed., vol. 7, 505)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을 세계 각처에서 성전으로 예물을 보낸 자들이라고 말한다. 사도행전에 언급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과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이 “문간의 개종자”(proselytes of the gate)와 동일하다는 추가적인 주장이 조성되기도 했는데, 이들은 여호와를 경배하고 유대 율법의 일부를 준수했지만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한 유대인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반(半) 개종자들의 인가된 무리로 구성되었다고 추측된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이 설명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므로 흔히 주장해 온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혹은 “하나님 경외자”)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는 회당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던 특정 계층으로, 반(半) 유대교 개종자를 가리키는 신약 시대에 사용된 전문 용어로 보인다. 후기 유대교에서 그것과 유사한 용어인 “하늘을 경외하는 자”도 그러한 무리를 대표했을 것이다. “하나님 경외자들”은 유대인 공동체 내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지위를 누릴 수 없었고, 따라서 유대교와의 관계는 대부분 비공식적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로마 세계 전반에 걸쳐 이러한 경건한 사람들의 존재는 그리스도인 전도자들에게 이방인 청중을 마련해 주었는데, 이들은 유대교의 율법주의에 맹목적으로 묶이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진지하게 찾고 유대인의 성경(특히 「70인역」)과 유대인의 신조들에 어느 정도 정통하였다.
많이 구제하고. 고넬료는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눅 7:5)라고 유대인들이 언급했던 다른 백부장처럼 관대하였다.
기도하더니. 구제와 기도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은 유대교와 초기 그리스도 교회에서 흔한 일이었다(참조 마 6:2, 5; 행 10:4; 벧전 4:7, 8). 뒤이은 환상은 의심할 여지없이 고넬료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의 길을 아는 더 큰 지식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구하고 있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참조 행 11:14).
3. 제구시. 성전에서 있는 오후 기도 시간이었다(참조 마 27:45; 행 3:1 주석). 고넬료는 유대인의 기도 시간을 택했던 것으로 보이며, 환상이 그에게 주어졌을 때는 기도하는 동안이었다(10:30).
4. 두려워. 천사는 “빛난 옷”을 입은 “한 사람”으로 불린다(30절; 참조 1:10). 천사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고넬료는 잠깐 동안 두려워 떨었다. 그리스도의 무덤을 지켰던 로마 병사들은 고넬료가 그랬던 것만큼 영적으로 조율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활 천사의 찬란한 영광 앞에서 떨며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참조 마 28:2, 4; 단 10:7~11).
상달하여. 더 정확하게는 “피어 올라가서.”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가는 향(참조 계 5:8; 8:3, 4) 즉 “올라가는 것”을 뜻하는 히브리어 올라(‘olah)라고 불린 번제의 연기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특히 저녁 제사 시간에 드린 기도를 가리키는 적절한 표현이다(참조 행 10:3 주석).
욥바로. 가이사랴에서 욥바까지의 거리는 약 48킬로미터이다. 욥바는 요나가 이방인들에게 생명으로 입증된 기별을 설교하라고 부르심을 받았을 때 달아나기 위해 이르렀던 도성이다. 이때, 동일한 도성에서 베드로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부르심을 받을 것이었다.
지붕. 헬라어 도마(do-ma). “건물”, “집.” “집 위에 올라간”다는 말은 곧 지붕에 올라가는 것을 의미했는데, 동방에서는 지붕이 대개 평평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기도와 명상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욥바 같은 도성에서 그리고 피장의 집에서 그곳은 아마도 그러한 목적에 어울리는 유일한 장소였을 것이다. 지붕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 실례에 관해서는 삼상 9:25; 렘 19:13; 마 10:27을 참조하라.
10. 시장하여. 먹으려 한 점으로 보아 베드로가 금식 중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한낮에 시장함으로 인해 그는 먹으라는 명령을 따를 채비가 되어 있었는데, 그 명령은 환상과 연관되어 그에게 주어질 것이었다(13절). 이런 형편 가운데서 그 명령은 특히 설득력이 있었다.
비몽사몽간. 헬라어 엑스타시스(ekstasis). “비켜섬.” 확대 해석하면 정상적인 환경에서 마음이 이탈한 것을 의미한다. 영어 단어 “ecstasy”(무아경)는 엑스타시스에서 유래되었다. 누가는 이 단어를 성전에서 바울이 환상을 보았던 사건에서 다시 사용한다(22:17). 이 단어는 「70인역」에서 아브라함의 깊은 잠을 묘사하기 위해서 사용된다(창 15:12). 이것은 감각들의 정상 행동이 중지되어, 환상이 꿈에서와 같이 정신적으로만 보이는 상태를 나타낸다(참조 고후 12:3). 베드로의 엑스타시스는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 통로로 주어졌다.
12. 각색…짐승. (「제임스왕역」에는 “all manner of four-footed beasts of the earth, and wild beasts”[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들짐승과]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는 “땅에 있는”과 “들짐승”이라는 단어의 생략을 지지한다. 그러나 동일한 구절이 11:6에서 발견된다. 이 환상은 피조된 모든 동물을 상징하였다. 유대인에게 허용된 음식과, 금지되었지만 이방인들이 음식으로 사용한 것 모두를 나타낸 것이 분명하다.
13. 잡아 먹으라. 베드로는 시장했고, 식욕이라는 본능적인 이 충동을 하늘에서 들려 온 음성이 승인했다. 그가 거절한 이유는 양심 때문이었다. 베드로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라졌음(갈 3:28, 29)을 아직 깨닫지 못했다. 베드로가 이 환상 후에도 이를 충분히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이 후에 안디옥에서 드러난 그의 위선에 나타나는데, 이로 인해 바울이 그를 사정없이 꾸짖었다(갈 2:9~21).
14.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베드로가 심지어 하늘로부터 들린 음성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항변한 것은 그의 성격에 걸맞는다(참조 마 16:22; 요 13:8). 여기서 그의 절규는 이스라엘이 부정한 음식을 먹는 것을 예기했던 에스겔의 절규를 생각나게 한다(겔 4:14). 불결한 고기를 절제하는 것은 유대인의 가장 특징적인 표시 중 하나요, 엄격하게 준수했던 구분이다. 이것은 마카베오 전쟁 동안 유대인과 시리아인 사이에 가장 기본적인 논점 중 하나였는데(참조 마카베오2서 6:18~31), 이는 기꺼이 자신들의 목숨을 걸려고 했던 유대인들에게 쐐기를 박는 논점이었다. 그러나 레 11장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정결한 짐승과 불결한 짐승의 구분은 유대 국가가 생기기 전에 있었다. 이 구분은 하나님이 세웠고, 노아가 동물들이 방주로 들어오는 것을 감독할 때 고려했다(창 7:2; 참조 8:20). 사람의 최초의 음식은 과일, 곡물, 견과였다(창 1:29). 육식이 이 식단에 첨가되기 전(창 9:2, 3)에 이미 정결한 짐승과 불결한 짐승의 구분은 분명해졌다. 그러므로 불결한 음식에 대한 금지가 십자가에서 유대인의 의식법이 폐했을 때 제거되었다는 주장에는 만족할 만한 근거가 없다. 베드로의 환상에서 이 음식 규정들은 유대인들이 사람들-그들 자신과 이방인-을 구분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지칭했고, 따라서 여기서는 이런 구분을 폐기하는 것이 주요 쟁점이었다(참조 창 9:3; 레 11장; 행 10:15 주석; 레위기 제11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15.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 환상 중에 정결한 짐승과 불결한 짐승들은 동일한 입지에 있었고, 동일한 보자기에 담겨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생물의 전반적인 혼합을 상징했으며, 그것들 중에 아무것도 속되거나 불결하다고 일컬어지지 않았다. 이 환상을 해석할 때, 이것이 신체적으로 배고픈 상황에서 주어졌지만(10절) 음식이 아니라 사람과 관련되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베드로가 경험해야 할 배고픔은 도처에 있는 각양각색의 영혼을 향한 갈망이 되어야 했다. 이 교훈을 적어도 부분적으로 알게 된 후,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28절)라고 단언하였다. 일반적으로 불결하다고 여겨진 이방인들은 베드로의 영적인 봉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주저 말고 그들을 섬겨야 했다. 그들은 더 이상 불결하다고 여겨져서는 안 되었다.
16. 세 번 있은. 이 환상은 세 번 반복되었고, 따라서 의심할 여지없이 사도의 마음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바로의 꿈은 두 번 주어졌고(창 41:32), 예수는 베드로에게 “네 어린양을 먹이라” 혹은 “네 양을 먹이라”라는 명령을 세 번 반복했었는데(요 21:15~17), 이제 그 명령은 그에게 새롭고 더 완전한 의미를 띠고 다가왔을 것이다.
18. 불러. 즉 집 안에 있는 누군가가 나오도록 “불러.” 의심할 여지없이 사자들도 고넬료처럼 이방인이었으므로, 자신들이 왔음을 알리지 않은 채 유대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머뭇거렸을 것이다.
19. 베드로가…생각할 때에. 베드로는 곤란한 상황을 숙고하며 이 환상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가르치려고 의도했는지를 묻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상고하는 동안 설명이 있었다.
성령께서…말씀하시되. 베드로는 더 이상 비몽사몽간에 있지 않았다. 하나님의 영이 이때 그의 영혼 내부 깊은 곳에서 이야기하였다. 성령의 가르침은 베드로에게 파견단의 도착과 그가 본 환상을 연결해야 한다고 암시했다.
두 사람. (「제임스왕역」에는 “세 사람”이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고넬료가 보낸 두 종과 종졸 한 사람(7절).
20. 내려가. 베드로는 아직 지붕 위에 있었다. 의심. 혹은 “주저함.”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베드로는 주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아직 알지 못했으나, 후에는 알게 될 것이었다(요 13:7). 베드로와 고넬료의 사자들은 성령의 지시에 따라 행동한다는 점에서 똑같았다. 그 환상은 베드로에게 여행을 해야 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지 않았다. 이제야 베드로는 이것에 대해 알게 되어, “의심치 말고”라는 말이 여정을 마친 후에 유대인과 다른 인종 사이에 아무런 구분을 두지 말아야 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하였다. 그리하여 그 환상은 점차 이해되었고, 당혹감은 제거되었다.
23. 불러들여. 베드로가 이 이방인들을 집으로 불러들인 것은, 유대인들이 비유대인들을 향해 품고 있던 종교적 관념을 버리는 데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었다.
이튿날. 베드로가 기도하기 위해 지붕에 올라간 때가 정오쯤이었으므로, 그의 환상 후에 사자들이 도착한 것은 이른 오후였음에 틀림없다. 약 48킬로미터 떨어진 가이사랴를 그날 안에 가기에는 너무 늦었기 때문에, 베드로는 다음날이 돼서야 출발했다. 또한 사자들도 욥바까지 여행한 후여서 휴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두어 형제. 이 사람들은 물론 유대인 그리스도인들(45절)이었으며, 11:12에 따르면 그들은 여섯 명이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말을 기억하였다.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마 18:16). 그는 자신이 한 것은 무엇이든 그들이 교회에 보고하기를 바랐다. 후에 예루살렘에서 그들의 증언이 유용했다는 것이 행 11:12에 암시되어 있다. 틀림없이 베드로가 자기의 환상과 고넬료의 종들이 가지고 왔던 기별을 알렸을 것이다. 고넬료의 좋은 평판에 힘입어 그들은 베드로와 기꺼이 동행하기로 했다.
24. 이튿날. 고넬료의 사자들이 욥바로 오는 길에 그랬던 것처럼(참조 7~9절, 17절), 베드로와 그의 일행도 가이사랴로 가는 여정에 하룻밤을 묵었을 것이다. 그들은 지중해 해안 길을 따라갔다. 고넬료가…기다리더니. 더 정확하게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더니.” 그의 준비 태도는 그가 자기의 환상이 사실이고, 하나님이 자기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는 것을 얼마나 확신하였는지 보여 준다.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 의심할 여지없이 고넬료의 종교심에 다소간 동감했던 고넬료의 통솔 아래 있던 병사들과 지역 사회의 친구들이 이들 중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는 자기가 받을 새로운 빛의 범위 안으로 가능한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자 하였다.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침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내용 요약
박해자-다소 사람 사울, 9:1, 2
사울이 환상 중에 그리스도를 만남과 그에 따른 회심, 9:3~17
그의 침례와 첫 전도, 9:18~22
그를 죽이려는 유대인의 음모, 9:23, 24
배경
8장에서 복음이 사마리아로 전파되게 하신 하나님께서 9장에서는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데 쓰임을 받을 사도바울을 준비하신다. 바울의 회개는 개인의 구원차원을 넘어 교회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9장의 내용은 바울의 회심과 중풍병자를 고치고 도르가를 살려 내는 베드로의 활동이다.
하늘의 빛이 비추이고 있는 그 시간, 사울의 마음은 놀랍도록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는 성경의 예언을 깨달았다. 그는 유대인들에 의한 예수의 거절, 그의 십자가의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을 선지자들이 이미 예언하였고, 그분이 약속된 메시야임을 증명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울의 마음에는 순교할 때의 스데반의 설교가 힘있게 떠올랐으며, 순교자가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말하였을 때, 순교자는 실제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음을 깨달았다(행 7:56, 55).(행적, 113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 있다면?(물건, 색깔, 캐릭터등)
그릇된 열성으로 일을 망친 것을 본 적이나 경험한 적이 있나요?
부모님을 가장 고통스럽게 한 일이 있다면 어떤 일인가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바울이란 인물에 대해 알아봅시다.
그는 철저하게 유대인이었다. (빌 3:4-6, 개정)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는 철저하게 이방적 (헬라적)인 배경에서 살았다. (행 22:27,28, 개정) [27]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시민이냐 내게 말하라 이르되 그러하다 [28]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이르되 나는 나면서부터라 하니
바울의 가정 - 아마도 부유하고 경건한 가정이었을 것이다. (행 24:26, 개정)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바울의 교육 (행 22: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정당화시키려는 공적인 힘(공문)과 그릇된 열성의 위험에 대하여 이야기해봅시다.(9:2)
자신의 삶에 바울처럼 주님을 만난 영적인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9:3-10) 어둠 속에 있던 그에게 한 빛이 비칠 때는 정오(22:6)였다. 그 빛은 태양 빛보다 더 밝은 빛(26:13)이어서 그는 눈이 멀었다. 그 빛은 참빛이신 그리스도이셨다. (요1:9) 이때 눈이 상한 것이 일생동안의 지병이 되었으며 (갈 4:13-15, 6:11) 또 육체의 가시(고후 12:7)가 되었다고 한다.
주께서 말씀하신 바울의 사명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루졌습니까?(9:15) 그릇은 인상적인 표현이다. 주인이 쓸 수 있는 그릇은 비어 있어야 한다. 비어있지 않은 그릇은 쓸모가 없다.
생각해봅시다.
주님의 그릇이 되기 위해 내가 비워야 할 것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나에게 주어진 복음 사명이 있다면?
공포에 사로잡히고 강렬한 빛으로 거의 눈이 먼 사울의 동료들은 어떤 음성은 들었으나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울은 들은 말을 깨달았으며, 그에게 말씀하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이 그에게 분명하게 나타났다. 사울은 그의 앞에 서신 영광스러운 분에게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그분을 보았다. 그 상처받은 유대인의 영혼 위에 구주의 얼굴 모습이 영원히 인각되었다. 그분의 말씀은 놀라운 힘으로 그의 마음을 찔렀다. 그의 어두운 마음 구석에 큰 빛이 비쳐 들어와 과거 생애의 무지와 과오, 그리고 현재 성령의 교화하심의 필요를 깨닫게 하였다.(행적 113p)
1. 등등하여. 헬라어 엠프네오(empneo-). “숨을 들이쉬다” 또는 “입김을 내뿜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고 학살하는 것은 사울이 호흡하는 공기나 다름없었다. 셈족은 종종 분노의 감정을 호흡과 결부시켰다.
대제사장. 안나스 혹은 가야바(참조 4:6 주석). 두 사람 다 사두개인이었지만, 사울은 엄격한 바리새인인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26:5). 하지만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의 자연스럽지 못한 동맹(참조 제10권, 56~58)도 이 단호한 박해자를 단념시키지는 못하였다. 전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항하여 형성되었던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간의 제휴는 그분의 추종자들에 대항하여 다시 이루어졌다.
2. 다메섹.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전승에 따르면 이곳은 아벨이 살해된 현장이다. 요세푸스(Antiquities ⅰ. 6. 4 [145])는 셈의 손자인 우스가 이 성읍을 건설했다고 여긴다(참조 제1권, 248). 아브라함의 역사에서는 그의 청지기 엘리에셀의 출생지로 나타난다(창 15:2). 다윗은 이곳에 수비대를 두었으나(삼하 8:6), 르손의 지배 아래 솔로몬 반대 세력의 중심지가 되었다(왕상 11:23~25).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문둥병자 아람(수리아)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눈에 이스라엘의 어느 강보다 좋아 보였다(왕하 5:12). 이곳은 아람 왕국과 이스라엘 및 유대와의 동맹과 전쟁의 중심지였고(왕하 14:28; 16:9, 10; 암 1:3, 5), 에스겔의 기록에 따르면, 두로와 물품, 포도주, 흰 양털을 무역하였다(겔 27:16, 18). BC 333년에 마게도냐 장군 파르메니온(Parmenion)이 알렉산더 대왕을 위해 이 도성을 점령했으며, BC 64년에는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Pompey)가 점령했다. 사울의 회심 당시 이곳은 로마의 수리아(Syria) 총독 비텔리우스(Vitellius)의 관할 아래 있었다. AD 37년 디베료(Tiberius)가 죽었을 때, 비텔리우스는 서둘러 로마로 갔고, 나바태아인(Nabataeans)의 왕 아레타 Ⅳ세(Aretas Ⅳ)가 다메섹의 통치권을 장악하고 그곳을 다스렸다. 이로 인해 사울은 이 도성에서 빠져나갈 당시 문제에 봉착하였다(고후 11:32). (1)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유대 지방에서 상당한 거리에 있는 이곳으로 피난했다. (2) 다메섹의 시민 가운데 그리스도인 회심자들이 있었다. (3) 다메섹이 확장 일로에 있는 교회의 외곽 중심지가 되었을 수도 있다. (4) 사울이 유대 당국자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리스도인을 대항하는 데 그들의 협력에 의존할 수 있었다.
회당. 이곳은 국제적인 도성이었고, 따라서 각 나라에서 온 유대인들이 살았을 것이다. 예루살렘에서처럼(참조 6:9 주석) 유대 동족들은 자신들의 회당을 세웠을 것이다. 당시 다메섹에는 30개 내지 40개의 회당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은 회당에 신실하게 참석하고 있었고, 따라서 사울이 바로 그들을 잡으러 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공문. 사울의 “권세와 위임”(26:12)을 정한 문서들. 이는 로마가 도주한 유대인들을 송환하는 권력을 대제사장에게 부여함으로써 유대 당국자들과 협력했음을 드러낸다. 이 권세는 아마도 BC 56년경부터 주어졌을 것이다(Josephus Antiquities xiv. 8. 5 [146~ 148]; 참조 마카베오1서 15:15~24).
3. 비추는지라. 더 정확히 말해 “번쩍였다.”22:6과 26:13은 이 시각이 정오라고 밝히고 있다. 동방의 한낮의 태양 광선도 눈부셨지만, 후에 바울은 하늘로부터 온 그 빛을 “해보다 더 밝은 빛”(참조 26:13 주석)이었다고 말한다. 이 광채 가운데서 바울은 영광스럽게 된 그리스도를 너무도 선명하게 보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부활 후 주님을 바라보는 특권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자신을 포함시킨다(행 9:17; 고전 9:1; 15:8; 사도행적, 115). 출현한 모양에 대해 말하자면, 스데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참조 7:55, 56 주석).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라고 한 순교자 스데반의 말은 불 같은 열성을 지닌 바리새인인 사울에게는 신성모독처럼 보였다. 그런데 바로 그 사울이 성부의 영광 중에 있는 인자를 본 것이다. 사울의 동행자들은 음성을 들었으나 말소리를 분별하지는 못했다(참조 22:9; 참조 9:7 주석). 그들은 빛을 보았으나(22:9), 말하는 그분의 형상을 감지하지는 못했다(참조 12:29 주석). 이런 세부 사항들은 사건의 실재성을 증명한다.
4. 엎드러져. 하늘에서 비친 빛에 압도되어 여행자들은 모두 땅에 엎드러졌지만(26:14), 누가는 여기서 사울만 언급한다. 여행자들 중 그 누구도 말 위에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들으매. 9:7과 22:9의 비교는 사울이 그에게 말한 목소리를 듣고 이해한 반면, 그의 일행은 무슨 말이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소리만 들었음을 시사한다(참조 9:7 주석).
사울. 지금까지 기사에서는 사울의 이름이 헬라어 형태인 사울로스(Saulos)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이곳과 9:17; 22:7, 13; 26:14에서는 히브리어 형태인 사울(Saoul)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1) 26:14에 나타난 대로 히브리(아람) 방언으로 말했던 예수(참조 제1권, 30)와 (2) 유대인이기 때문에 히브리어(아람어)로 말했을 아나니아가 실제로 사용한 단어가 무엇인지를 반영할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전달할 때 이름을 반복하여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창 22:11; 삼상 3:10; 마 23:37; 눅 10:41; 22:31을 참조하라.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그리스도가 박해자에게 던진 통렬한 질문이다. 이것은 그의 행동의 기초에 도전하는 질문이며, 따라서 그가 그렇게도 잔혹하게 핍박했던 분을 알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그리스도가 자신을 제자들과 너무나 동일시한 나머지 그들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 된다고 한 사실을 주목하라(사도행적, 117).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사 63:9)하며,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슥 2:8)으로 여겨졌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행한 것을 자신에게 행한 것으로 여겼다(마 10:40).
5. 주여 뉘시오니이까. 아직 사울은 “주”라는 단어를 신약에 나타난 온전한 의미로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경외심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발언이었다(참조 요 1:38 주석). 하지만 사울은 신적 존재를 어렴풋하게나마 감지하고 “주”라는 말을 사용하여 경외심을 표했다.
네가 핍박하는. 앞에 나온 “나”라는 대명사와 마찬가지로 “네”도 헬라어 구문상 강조하는 표현이다. 사랑과 능력과 영광으로 옷 입혀진 그리스도와, 핍박하는 자였으나 이제는 엎드려 두려워하는 사울이 극명하게 대조되어 있다.
7. 소리만 듣고. 헬라어 아쿠온테스…테스 포네스(akouontes…te-s pho-ne-s). 얼른 보기에 이 진술은 동행자들이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텐…포넨 우크 에쿠산[te-n…pho-ne-n ouk e-kousan])라고 바울이 말한 22:9의 기록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기록을 주의깊이 연구해 보면 이런 외관상의 모순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듣다”라는 뜻의 동사 아쿠오(akouo-)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의 능력(참조 마 11:15; 13:15)이나, 들은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능력(참조 막 4:33; 고전 14:2)을 가리킨다. 본 구절에서 “소리”(포네스[pho-ne-s])라고 번역된 단어는 소유격이다. 헬라어에서 이것은 사울의 동행자들이 목소리만 듣고, 말해진 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음을 가리킨다. 22:9에서 “소리”(포넨[pho-ne-n])로 번역된 단어는 대격이며, 따라서 이것은 부정어 “못하다”와 함께 사용되어 그들이 소리를 듣고도 말은 뚜렷하게 이해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참조 9:4. 여기서 누가는 알아들은 사울에 대해 말하면서 대격을 사용하여, “[소리를]…들으매”[에쿠센 포넨]라고 말한다). 이 설명은, 22:9에도 사람들이 “빛은 보”았다고 되어 있는 반면, 본 구절에는 그들이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라고 되어 있는 사실로 더욱 뒷받침된다. 그들은 눈부신 빛을 보았지만, 그들의 시력은 빛 가운데서 사울에게 나타난 그분을 식별할 정도로 명확하지 못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목소리는 들었지만, 알아들을 정도로 명확히 듣지 못했다고 이해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10. 아나니아. 아나니아는 유대인들에게 흔한 이름이었다. 바울이 그를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다메섹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이”라고 묘사한 22:12을 제외하고는, 성경에서 이 특정 제자를 언급한 곳은 아무데도 없다. 이런 자질로 인해 그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지도자와 사울을 향한 주님의 사자가 되는 일이 가능하였다. 그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그리스도의 지상 봉사 기간에 구세주를 따랐거나, 오순절이나 그 이후 유대인 회심자들 중에 속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뒤 스데반의 죽음 후에 이어졌던 박해로 인해 예루살렘에서 도망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단지 추측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나니아가 사울을 방문하기를 꺼려하는 심정을 나타내는 데 사용한 표현으로 보아(9:13, 14), 여전히 예루살렘과 신뢰할 만한 교신을 왕래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박해자 사울이 일으켰던 만행과 다메섹에 온 그의 목적을 아나니아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1. 직가. 오늘날 술타니예(Sultaniyeh)라고 알려진 긴 직선 도로가 여전히 고도(古都) 다메섹을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고 있는데, 아나니아가 유다의 집에서 사울을 만나기 위해 걸었던 바로 그 길일 것이다. 현재 거리의 고도(高度)가 사울 당시보다 약 30보 이상 높으므로, 사울이 머물렀던 집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소 사람 사울. 이 구절은 성경에서 사도 바울의 출생지를 처음 언급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다소는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중요한 곳으로 여겨졌다. 이곳은 16킬로미터가량 내륙에 위치했지만, 도성과 바다 사이에 안전한 항구가 있었기 때문에 작은 배가 이 성읍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도성의 경계 너머로 타우루스(Taurus) 산지가 솟아 있었는데, 길리기아 문(Cilician Gates)으로 알려진 협곡을 통해 소아시아 내륙으로 통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고대 도성은 전략적 요충지 말고 다른 것으로도 유명했다. 이곳은 대학가로 이름이 나있었고, 소아시아의 아덴(Athens of Asia Minor)으로도 알려졌다. 이곳의 학자들은 과학 기술로 인해 존경받았고, 이곳의 철학자들 중에는 사울의 견해에 일부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르는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들도 있었다. 상업 영역에서 볼 때, 사울의 생업이었던 장막 제조업(18:3)이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했다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
15.이방인. 목록 가운데 이방인이 첫 번째에 놓인 이유는 사울이 노고를 쏟을 분야가 특별히 그들 가운데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참조 롬 1:13, 14; 11:13 주석). 이것은 독실한 유대인으로서 온 세상이 그리스도에 대해 들어야만 한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한 아나니아에게는 깜짝 놀랄 계시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대단한 박해자로만 알았던 사람 안에서, 선택받고 훈련받아 세상 도처에 복음을 퍼뜨리는 사역에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적합해진 사람을 보고 있다.
임금들. 이 구절은 바울이 아그립바 앞(26:1, 2)과 아마도 네로 앞에서 연설한 것(참조 딤후 4:16 주석)에서 충분히 성취되었지만, 꼭 그 일들만 가리키지는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 사도는 이방인들에게 가지만, 바울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유대인들에게도 설교하였다(참조 13:5; 14:1; 17:1, 10; 18:4, 19; 19:8).
그릇. 헬라어 스큐오스(skeuos). “그릇”, “기구.” 이 단어는 신약에서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참조 13:48; 눅 8:16; 요 19:29; 행 10:11; 롬 9:21; 고후 4:7; 살전 4:4). 고전 작가들은 이 단어를 쓸모 있고 신뢰할 만한 노예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다. 주님이 이방인을 위한 당신의 은혜로운 뜻을 실현할 도구로서 사울에게 스큐오스라는 단어를 적용한 것도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택한”(chosen)에 해당하는 에클로게(ekloge-)라는 단어가 신약에서 처음으로 여기에 나타나는데, 다른 경우에는 모두 “택하심”(election)으로 번역되었다.
18. 비늘. 헬라어 레피데스(lepides). 히포크라테스는 안질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로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사울의 눈멂은 초자연적 현시의 결과로 생겼으므로, 그의 병을 현대 의학 용어로 정확하게 밝히려고 시도하는 일은 무익하다. 그러나 누가가 사울의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의학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침례를 받고. 22:16에 있는 자세한 설명은 아나니아가 이 예식에 임하도록 사울에게 권고했음을 보여 준다. 침례가 입교 조건으로 여겨졌음이 분명하다(참조 마 3:6; 행 22:16 주석). 주님의 환상과 계시도, 개인적인 확신의 강렬함도 사울에게서 침례를 면제시켜 주지는 않았다. 침례는 아마도 나아만의 이야기(왕하 5:8~14)에서 언급된 아마나 또는 바르발강 중 한 곳에서 행해졌을 것이다. 이 예식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사도행적, 122) 아나니아가 거행하였다.
20. 즉시로. 그리스도는 사울을 “즉시” 낫게 했고(18절), 사울은 “즉시로” 증거하기 시작했다. 두 경우에 사용된 부사는 동일한 헬라어 단어에서 나왔다.
예수…전파하니. 나사렛 예수가 오랫동안 고대하던 메시야인 그리스도라고 전하는 것이 유대인들을 향해 사도들이 전한 기별의 요지였다. 베드로의 설교(참조 2:16 주석)와 마찬가지로 바울의 설교에도 강력한 예언적 배경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사도행적, 123, 125,).
22. 힘. 후년에 이 단어는 바울의 사상에서 현저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그는 “약한 데서 온전하”게 했던 “능력”이 그리스도였음을(고후 12:9), 그를 “능하게 하신” 또는 사역을 위해 그를 강하게 하신 이가 그리스도였음을(딤전 1:12) 그리고 그의 삶의 마지막 시련들 속에서 “강건케 하신” 이가 그리스도였음을(딤후 4:17) 깨달았다.
증명하여. 헬라어 쉼비바조(sumbibazo-). “결합하다”, “결론적으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연합하도록 하다”라는 뜻이 있으며, 따라서 여기서는 “논증하다”, “증명하다”를 뜻한다. 사울은 메시야의 예언들이 나사렛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능수능란하게 설명하였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데려가려 하노라'(출 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