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20]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22]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23]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24]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
[27]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29]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30]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31]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32] 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내용 요약
1. 밀레도에서 예루살렘까지 (1-16)
2. 예루살렘에서 체포당함 (17-40)
배 경
바울은 5년 동안에 걸친 제3차 전도 여행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편견과 핍박과 투옥이었다.
그가 만일 그가 어떤 합리적인 양보로 그들을 진리로 인도할 수 있다면,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는 복음의 성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게 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요구한 만큼 양보하도록 하나님의 재가를 받지 못하였다.(행적 405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교회에서 꼭 지켜야 할 도리는 무엇일까요? 사회생활에서 꼭 지켜야 할 도리는 무엇일까요
자신의 생각과 대립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한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소심한 마음 때문에, 잘 못된 방향으로 간 적이 있으면, 나누어 보아요.
나는 내가 속해 있는 사회에서 분위기를 잘 맞추어 주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원칙과 법에 따라 권고를 잘 하는 사람인가요? 어느 쪽이든, 나는 왜 그렇게 행동하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야고보와 장로들이 바울을 향하여 가졌던 우려는 무엇입니까?(21:21)
예루살렘 교회가 바울에게 요청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21:20-24)(민6:1~21)
요청에 응한 것은 하나님의 뜻일까요?(참조. 행적405p)
교회지도자들의 조언과 바울의 결례행위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습니까?(21:27-32)
생각해봅시다.
다른 사람의 믿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틀렸다고 생각될 때는 언제인가요?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겸허하게 잘 받아들이나요?
나는 나의 계획과 생각이 우선입니까? 믿음이 우선입니까?
우리는 그의 형제들과 조화되고자 하는 바울의 큰 소망, 신앙이 약한 사람들에 대한 그의 친절, 그리스도와 함께 하였던 사도들과 주님의 형제 야고보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원칙을 희생하지 아니하는 한 모든 사람에게 좋게 대하려는 그의 의도, 이 모든 것을 생각할 때 그가 지금까지 견지해온 확고하고 단호한 길에서 부득이 빗나가게 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행적 405p)
18. 야고보…장로들도 다. 가능하면 빨리 바울은 지도자로 보이는 야고보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을 방문했다. 이 사람들은 선출된 “지방” 교회 장로들이라기보다는 거기 거하고 있는 사도들(참조 14:23)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과 장로들 모두가 특별히 언급된 15:2, 4, 6을 참조하라. 분명히 “주의 형제”인 이 야고보는 예루살렘 총회의 의장이었다(참조 행 12:17 주석; 행 15:13; 갈 1:19).
19. 낱낱이 고하니. 문자적으로 “하나씩 말하기를 계속했다.” 행 15:3; 잠 15:30과 비교하라. 바울의 보고는 장로들에게 18:22의 예루살렘 방문 이래 그가 경험한 일들을 알리고,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서 팔레스타인의 가난한 유대인 그리스도인에게 온 구제품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하고 있었을 것이다.
20. 유대인 중에…수만 명이 있으니. 유대인 중에서 이루어진 복음 전파의 놀랄 만한 진전을 알려 준다. 그러나 이 어림 숫자에는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 회심자들 이상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처럼 수많은 유대인이 오순절을 위하여 거기에 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자들의 “무리”에 관해서는 6:1, 7; 9:31; 11:21, 24; 14:1; 17:4을 참조하라.
율법에 열심 있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달리 이 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총회의 결의에 의하여 유대교 의식들에서(참조 15:19~21 주석) 자유롭게 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최소한 구약의 의식들을 실천하고 있었고, 의심할 여지없이 바리새인들의 많은 전통적 요구사항들도 따르고 있었다. 후자에 관해서는 제10권 56~58, 61, 62을 참조하라. 바울은 자신이 그의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좇아”, 즉 바리새인으로서 살았다고 묘사한다(26:5). 이 계층에서 대부분의 초기 회심자들이 나왔으나 그들은 바울과 달리 여전히 율법주의자였던 것이 분명하다.
21. 네가…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문자적으로 “네가 모세로부터 떠나게 하는 배도를 가르치고 있다.” 이는 바울에 대해 회자되고 있던 비난이었으며, 자신들의 종교에 열성적인 유대인에게 이보다 심각한 고소는 있을 수 없었다. 이것은 가장 깊은 종교적 감정뿐만 아니라 애국심, 분파심, 역사적 전통, 사회적 관계 그리고 공적인 법에 근거하여 분개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수많은 유대인(참조 20절)이 만유를 회복할 메시야로 예수를 받아들였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은 유대교 의식과 요구사항을 더욱더 고수하고 바울을 민족과 종교를 모두 배반한 자로 철저하게 두려워하여 거부했음이 분명하다.
할례를 하지 말고. 앞의 일반화를 가리키는 특정한 비난이다. 이 비난에 따르면 바울은 전통이 아니라 율법 자체에 깊이 새겨져 있는 유대인의 언약의 상징을 위반하고 있었다.
규모를 지키지 말라. 6:14 주석과 비교하라. 여기서 바울이 율법에서 파생된 세부사항들과 거기에 불가피하게 들어와 첨가된 전통적인 실천사항들을 공격했다고 생각된다. 이런 사항들은 수많은 사람이 열렬하게 믿는 엄숙한 책무였다. 편견에서 나온 폭력 때문에 반박이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유대인 자신들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에 적용하고 종교에 대한 개인의 행실에 관련지어 보면 이러한 의무들은 쉽사리 반박할 수 있었다(22:3; 23:1, 6; 24:11~16; 25:10, 11; 26:4~7, 22). 유대인들의 의식적 요구사항을 옹호하는 것에 대한 바울의 입장은 예루살렘 총회(15장)의 입장 즉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의식이든 양심의 요구에 따라 그것을 계속 수행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방인 회심자들은 그 요구에서 자유롭다고 주장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이 천국을 향해 가는 데에 율법적인 행위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롬 2:24~29; 갈 4:1~11; 5:1~6; 골 2:16~22).
바울은 자기 나름대로 법을 개인적으로 적용하여(고전 9:19~23) 특별히 유대인 중에서는 유대인처럼 살았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 교회에서 그 의식적인 실천들을 계속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했는데, 그들이 믿음의 복음에 비추어 의식의 수행이 무의미함을 깨달을 때까지 그렇게 했다(롬 14:1~10; 고전 7:17~24). 바울은 스스로 나실인의 서원을 했다(18:18). 그는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도록 했다(16:3). 바울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자녀들이 할례를 받지 않게 하라”고 가르쳤다고 비난할 근거가 없다. 그 비난은 그의 적들이 꾸며낸 것이었다.
하지만 복음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결국 유대인들로 하여금 의식의 실천사항을 더 이상 의미 없는 것으로 보고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사도의 가르침의 근본이었다. 우리 주는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를 소유하라고 가르쳤으며(마 5:20) 그들 자신을 위한 종교적인 외식을 정죄했다(마 6:1~7). 그리고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것을 주장했다(요 4:23). 바울은 사람들에 의해 개발되고 강요된,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골 2:20~22)는 식의 종교, 곧 실제로는 도덕적 및 영적 중요성도 없고(참조 롬 14:1~10; 갈 4:9~11; 히 9:9, 10) 그리스도의 삶과 희생에 비추어 볼 때 이미 그 의미가 종결된 규칙들(골 2:8~17)을 믿는 종교를 부정했다.
희생제도와 할례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제정되었다. 희생제도들은 그것이 가리킨 분이 인류의 죄짐을 진 자로서 돌아가실 때 의미가 없어졌다. 제사를 드리는 장소로서의 성소와 제사를 드리는 자들로서의 제사장들도 동일하게 그 의미를 상실했다(단 9:24~27; 마 27:51; 히 8:13; 9:11~15). 할례는 한 나라, 즉 한 민족과 하나님 사이의 계약 관계의 외적 표징이었다(롬 4:11). 할례 의식이 개인적으로 적용되었다 해도, 유아 상태에서 믿음으로 받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것은 단순히 민족적이고 국가적인 상징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봉사와 예배가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민족적이나 국가적 문제가 아니고(갈 3:28, 29; 골 3:11),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개인적 문제라는 것이 드러났을 때(롬 3:22~24; 갈 3:26, 27; 엡 2:8) 할례 의식은 그 의미를 상실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믿음의 길 곧 구원의 새 언약이 도래함으로(렘 31:31~34; 고후 3:6~9; 히 8:6~13) 옛 언약의 표인 할례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믿음으로 “힘써 여호와를 알”(호 6:3)고자 하는 유대인은 영적 삶에서 아무 의미가 없는 할례를 반드시 중단할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가르친 대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에 비추어 보면 “할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전 7:19; 참조 롬 3:31; 8:4; 요일 2:3).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서 할례(그 의식 자체를 위한 준수)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갈 5:6; 6:12~17). 유대인이나 이방인은 그들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신(엡 2:11~17)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하나이다(갈 3:16, 27~29; 골 2:9~14). 모든 사람은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엡 2:4~10; 참조 롬 3:26~30)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는다. 바울은 유대인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일 믿음과 영적 통찰력을 가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왜 은혜를 통하여 구원을 얻은 믿음의 사람이 된 내가 자녀에게 할례를 주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럴 이유가 없다. 그러나 다만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너희 형제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대답이 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믿고 실천했다. 그러므로 유대화주의자들이 바울을 고소한 것들은 거짓이었지만, 모든 유대 의식들의 장래에 대한 염려는 정당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22. 들으리니. 바울의 도착 소식은 반드시 성도들의 모임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많은 유대인 신자 가운데 퍼진 소문에 의해 전해질 것이었다(참조 20절).
23. 이대로 하라.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하는 충고가 최선이라고 믿었다. 바울을 문제에 연루시킬 의도는 없었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그가 비난받아야 했다고 그들이 생각한 것처럼 보인 편견을 없애고자 했다(사도행적, 403).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이 바울을 통하여 강력하게 역사한 것을 깨닫고, 그들 스스로가 그에 대한 반대를 없애고자 노력해야 했다.
네 사람. 이 네 사람은 분명히 유대인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구성원이었고, 이는 유대인의 의식이 여전히 유대인 회심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예증했다. 이 유대인 형제 네 명은 이미 그들의 서원을 이루어 가는 중이었으나 다른 사람은 특별히 이미 서원을 실행하는 과정에 있는 자들의 비용을 감당하는 조건으로 그 환경에 들어오도록 허락되었다.
24. 저희를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바울이 이 권고를 이행하면 하나님 앞에서 결례를 행할 필요가 있음을 묵인하는 표가 될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그가 유대인들의 용납을 얻어내는 데 도움보다는 장애가 될 수도 있었다. 이는 나실인의 금기를 시작하고 그 기간의 끝에 머리를 깎는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참조 18:18 주석).
비용을 내어. 바울은 서원을 행하고 있던 사람들의 비용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곧 레위인 이발사에게 지불할 의식상 머리를 깎는 데 드는 비용과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 일년 된 숫양, 일년 된 암양, 숫양, 무교병 한 광주리, 소제물, 전제물 등 제사에 드는 비용을 말한다(민 6:9~21).
머리를 깎게 하라. 서원의 결과로 머리가 깎이고 제물이 드려질 때 머리카락은 화목제물인 숫양 밑에서 불로 사루어졌다.
모든 사람이…알 것이라. 바울이 서원 의식에 참여한다면 그가 모세를 “배반”(참조 21절 주석)한 것이 아니고 그에 대한 모든 비난이 “헛된 것”임을 유대인에게 확신시키게 될 것이었다.
율법을 지켜. “율법”, 즉 토라는 유대인의 생각과 생애와 종교의 중심이었다. 토라, 즉 가르침은 모세의 글들에서 주어진 모든 교훈을 포함했다. 바울은 율법을 어긴 것으로 비난받았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생각하기에 바울이 유대인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가 그 율법에 신실함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25. 이방인에게는. 바울에게 결례를 행하도록 제안하는 장로들의 대변인인 주의 형제 야고보는 예루살렘 총회 의장을 맡고 있었다(15:13). 그는 바울에게 이방인의 자유에 더 이상 문제가 없다는 것과 그들이 유대인의 의식을 따를 필요가 없음을 확신시켰다. 그런 다음 그는 바울에게 자유케 하는 결의안을 상기시켰다(참조 20절 주석).
목매어 죽인 것. 이 구의 생략을 지지하는 중요한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를 제시할 수도 있다.
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바울은 유대인들 중에 유대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했다(고전 9:19~23). 그러나 그는 사실 여기서 모순적이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율법에 열심인”(21:20)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참여했기 때문이다. 사도행적, 405, 406,과 비교하라.
만기된 것을 고하니라. 즉 서원이 끝났을 때 성전에서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제사장들에게 알리는 것을 말한다. 이 기간을 마치기까지 네 사람에게 7일이 더 요구되었다(27절). 요세푸스에 따르면(War ii. 15. 1 [313]) 서원하는 기간은 총 30일이었는데 이제 그들에게 오직 7일이 남아 있었다.
[1]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5]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7]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15]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16]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
내용 요약
1. 밀레도에서 예루살렘까지 (1-16)
2. 예루살렘에서 체포당함 (17-40)
배 경
바울 일행은 두로와 돌레마이를 지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전도자 빌립의 집에 머뭅니다. 아가보 선지자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에게 결박되어 이방인 손에 넘겨지리라고 말합니다. 모두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말리지만 바울은 권함을 받지 않습니다.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행21:13)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심하게 만류한 일이 있나요? 왜 그렇게 만류했나요?
모든 사람의 반대에 무릅쓰고, 끝까지 추진한 일이 있나요? 왜 그렇게 하였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과 작별할 때, 어떤 마음이 이었을까요?(21:1)
바울에게는 어떤 예고가 주어 졌습니까?(21:4)
만류하던 제자들과 바울의 기도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었을까요?(21:12-14)
만류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뒤로하고 바울이 예루살렘 행을 결정한 기준은 무엇인가요?(21:13)
생각해봅시다.
나에게 있어서 당연히 힘든 일인 줄 알면서도, 가야하는 길이 있다면 어떤 길입니까?
고난이 예상되지만 만류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면?
사도는 그의 사랑하는 형제들의 간청에 깊이 감동을 받았다. 인간의 판단에 따라 그는 지각없이 그의 계획을 포기할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었으나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함을 느꼈으며 친구들의 음성이나 선지자의 경고조차도 그를 단념시킬 수 없었다. 그는 우편이나 좌편으로 의무의 길에서 벗어나서는 안 될 것이었다. 그는 만일 필요하다면 감옥이나 죽음까지도 불사하고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의 눈물은 그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그의 형제들의 동정이나 아무리 큰 슬픔을 초래할지라도 그의 결심은 굽힘이 없었다.(적은 무리23p)
1. 저희를 작별하고.헬라어 본문에 사용된 동사는 힘겹게 작별함을 시사하는데, “우리 자신을 그들에게서 떼어 내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바로. 분명히 유리한 바람과 조수로 인하여.
로도. 소아시아의 남서쪽에 위치한 이 유명한 섬(참조 416쪽 지도)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동안 유명해졌다. 고대에는 이 도시를 아스테리아(Asteria, “별들의 지역”이라는 의미)라고 불렀다. 로도(또는 로도스 또는 로데스)라는 이름은 이 섬에 자라고 있던 많은 장미 때문에 붙여졌다. 조선(造船)에 유용한 이 섬의 목재는 주민들이 강력한 해군을 창설하는 일을 가능케 했다. 해운 교통의 요로이자 상업적, 군사적 요충지인 이곳에는 큰 태양신전이 있었으며, 주조화폐에는 태양신 아폴로의 두상이 새겨져 있었다. 높이가 30미터 이상인 태양신 헬리오스의 거대한 청동상은 로도의 거상(巨像)으로 알려졌으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불렸다. BC 280년경 카레스(Chares)가 건축한 이 거상은 BC 224년경 지진으로 무너졌으며, 거의 900년 동안이나 넘어진 채로 방치되었다. AD 7세기에 사라센 정복자들에 의하여 한 유대인에게 팔렸는데, 이 청동을 조각 내어 운반하는 데 낙타 900마리 이상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2. 베니게.팔레스타인 북쪽의 해안 지역(참조 지도 제9권, 222). 예수께서 봉사할 당시에는 팔레스타인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베니게(Phoenicia)의 주요 도시는 두로와 시돈이었다.
4. 제자들을 찾아. 우연히 거기 있었던 제자들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두로인 그리스도인 집단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아마도 그곳에 교회가 수 년간 존재했다고 볼 수 있지만(참조 11:19; 15:3), 이것이 두로에 있는 교회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다.
들어가지 말라.이 표현은 분명히,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들어가는 것을 막았던 것처럼(16:6, 7) 예루살렘으로 가는 그의 여행을 성령께서 금지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성령께서 직접 금지한 것을 바울이 불순종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히려 조금 나중에 가이사랴에서 아가보에 의해 더욱 명백하게 주어진 것처럼, 예고로 이해해야 한다(21:10, 11).
하더라.즉 “계속해서 말하다.” 이런 예언적 경고들은 분명히 성령의 은사를 가진 자들에 의해 안식일에 또는 두로 교회의 다른 모임에서 주어졌을 것이다(참조 갈 6:1).
5. 이 여러 날을 지난 후. (「제임스왕역」에는 “accomplished thoses days”[저 여러 날을 만료한 후]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4절의 “이레”를 말한다. 「제임스왕역」의 여기서 “만료한”으로 번역되고 딤후 3:17에서는 “furnished”(설비된, 「개역한글판」에는 “온전케 된”으로, 「개정표준역」에는 “equipped”[준비를 갖춘]으로 되어 있음)로 번역된 이 헬라어 동사의 일차적인 의미는 “항해 준비 곧 배의 장비를 갖추다”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두로에서 항해 준비를 위해 배가 이레 동안 머물렀다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여기서처럼 시간을 표현할 때는 “마친 후” 또는 “지난 후”가 더 좋은 번역일 것이다.
저희가…전송하거늘. 부인들과 아이들을 포함하여 두로의 모든 교회가 바울과 그의 동료들을 마을에서 나와 해안까지 전송했다(참조 15:3; 20:38).
8. 가이사랴에. 참조 10:1 주석. 여행은 육로로 이어진 것으로(참조 7절 주석) 추측된다. 당시에 돌레마이와 가이사랴 사이에는 훌륭한 도로가 있었다. 바울이 육로 여행을 선호한 것에 관해서는 20:13을 참조하라.
전도자 빌립. 빌립은 원래 “공궤를 일삼는” 자들 즉 집사들 중 한 사람이었으며 그의 이름은 집사들의 목록에서 스데반 다음에 나온다(6:5). 빌립에게 이 공궤하는 일은 점차 사라지고 “전도자”의 일에 몰입하게 되었던 것 같다(참조 8:5~13, 26~40). 이 명칭은 직함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고, 성령으로부터 이러한 특별한 은사를 받은 결과로 그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묘사라고 생각해야 한다(참조 행 13:1 주석; 엡 4:11). 이 은사에 대한 중요성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도인의 일을 하며”(딤후 4:5)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불일 듯 하게 하”(딤후 1:6)라고 권고한 데 나타난다.
전도자로서 빌립의 활동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가 마지막으로 등장했던(8:40) 가이사랴 지경을 넘어갔다. 그는 스데반의 죽음 후에 따른 박해 동안 외국으로 흩어진 사람들과 함께 팔레스타인과 베니게의 해안을 오르내리면서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11:19). 아마도 이 일로 빌립과 누가가 처음으로 만났을 것이고 또한 빌립과 바울이 처음으로 만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9. 딸 넷.이 여인들은 예언의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참조 행 13:1 주석; 고전 14:1, 3, 4; 엡 2:20; 4:11). “예언하다”라는 동사는 “미리 말하다”(참조 창 20:7; 마 11:9 주석), 즉 하나님을 위해 미리 말한다는 의미이다. 선지자는 사건들을 미리 말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성경에는 이러한 가장 사모할 만한 성령의 은사들을 받은 여인들에 관한 예가 다수 제시되어 있다(고전 14:1). 모세의 누이 미리암은 선지자였고(출 15:20), 드보라도 선지자였는데, 이 여인의 영감에 의한 도움으로 바락은 가나안 사람들을 정복했다(삿 4:4). 이사야의 부인도 선지자였고(사 8:3), 유다 왕 요시야의 개혁 때 제사장 힐기야(왕하 22:14; 대하 34:22)를 도운 훌다도 선지자였다. 선지자 안나는 아기 주님께 경배했다(눅 2:36~38). 거짓 여 선지자들도 언급된다(느 6:14; 계 2:20). 요엘은 마지막 때 “여종”에게 예언의 은사를 부어 주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욜 2:28, 29).
10. 여러 날.“더 많은 날.” 즉 처음 계획한 것보다 오래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아가보. 의심할 여지없이 흉년을 예언했던 아가보와 같은 사람일 것이다(참조 11:28). 흔치 않은 이름과 특별한 은사가 함께 언급된 점으로 보아 이들이 각각 다른 사람일 거라고 생각할 수 없다.
11. 띠.아마포, 모직, 가죽으로 만든 띠로, 동방의 겉옷의 느슨한 부분들을 단단히 잡아매 허리에 묶는 것인데 특히 일을 하거나 걸어갈 때 그렇게 한다. 이것은 돈, 서판(書板), 철필 등을 휴대할 수 있을 정도의 주머니 만한 크기로 만들어졌다.
잡아매고.예언을 제시하기 위한 극적인 방법 중 하나로, 하나님의 지시 아래 이사야(사 20장), 예레미야(remiah/13/1e; 18:1~10; 19:1~3; 27:2, 3; 28장), 에스겔(겔 4:1~13; 5:1~4) 등이 사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12. 사람들. 누가와 가아사랴 교회를 포함하여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 예언을 들었는데, 이는 안식일 집회에서 공개적으로 예언되었던 것 같다.
13. 어찌하여.여기서 “내 마음을 상하게” 한다는 것은 슬픔으로 바울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기보다는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야 할 그의 사명에 대한 결심을 약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이름을 위하여. 참조 빌 3:7, 8. 사도들과 그들의 동료들은 이름을 활용했다. 참조 3:16 주석; 4:12; 5:41.
죽을 것도. 진실한 순교자 정신을 나타낸다.
각오하였노라.헬라어 본문에서 대명사 “나”가 강조되어 있다. 이는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고, 가치 있는 일을 위하여 고통의 대가를 지불할 바울의 흔들리지 않는 결심을 가리킨다(참조 행 20:24; 예수의 태도 [눅 9:51]).
14.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교회는 어떠한 호소도 소용없고, 바울이 예루살렘에 뜻을 두고 있음을 알았다. 하나님의 뜻은, 무서운 위험이 있는데도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바울의 결심 안에서 분명해졌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은 외부적인 고통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내면의 평화를 가져온다. 눅 22:42과 비교하라.
15. 행장을 준비하여. “채비를 하여”, “짐을 챙겨.”
올라갈새. 즉 “올라가기 시작했다” 또는 “올라가고 있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행을 계속했다는 뜻이다.
16. 나손을 데리고 가니.오히려 “[우리를] 나손에게로 데리고 가다”라는 의미이다. 알려진 것이 전혀 없는 이 초기(“오래된”이라기보다는) 제자 나손은 구브로를 떠나 예루살렘이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그의 집을 마련했다. 이 이름은 헬라인 중에 흔했으며 그는 초기의 헬라파 회심자였을 것이다.
유하려 함이라. 이 절은 가이사랴 성도 중 몇 사람이, 바울이 만나본 적이 없는 초기의 제자이며 바울과 동료에게 집을 제공할 그들의 친구 나손을 소개하기 위하여 바울과 그의 동료들과 예루살렘까지(약 102킬로미터) 동행했음을 암시한다. 이 예루살렘 방문이 바울에게 처음이 아니었고, 바울이 그곳에 있는 교회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니었으므로 예루살렘에서 유할 곳을 위해 낯선 자에게 소개할 필요가 없었다. 이 이야기에 나타난 외관상의 모순은 지리적 요인들과 당시의 사회적 관습에 비춰 보면 이해가 되고 해결될 수 있다.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까지 약 102킬로미터의 거리는 하루에 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로 이틀이나 사흘에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의 접대 관습에 비춰보면, 가이사랴 신자들은 바울 및 그의 일행과 예루살렘까지 동행할 필요는 없었고, 단지 집주인인 그들의 친구를 바울에게 소개해 주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도중 한 마을에 사는 그들의 친구 나손의 집까지 하룻길을 그와 동행했고, 거기서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 하룻밤을 유했다는 것이 훨씬 타당해 보인다.
이 문제에 대한 제안된 해결책은 다른 본문상의 독법에 의해 지지를 받는다. “가서 유하다” 대신에 “이 사람들이 우리가 묵어야 할 어떤 사람에게 우리를 데리고 갔는데, 우리는 어떤 마을로 들어가 초기 제자인 구브로 사람 마손이라는 사람에게로 갔다”라는 독법을 지지하는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를 제시할 수도 있다. 17절은 여행이 진행되었고 예루살렘의 형제들이 바울을 영접했음을 가리키는 이 독법을 따르는 것이 논리에 맞다.
[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6]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37]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38]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내용 요약
1. 고린도에서 드로아까지 (1-6)
2. 드로아에서 밀레도까지 (7-16)
3. 밀레도에서의 설교 (17-38)
배 경
바울은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고자 서두릅니다.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청해 자신이 이제껏 시험을 참으며 주를 섬겼고, 예루살렘에 가도 성령의 증언대로 환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예수께 받은 사명을 위해 생명도 아끼지 않겠다고 합니다.
에베소에서 삼실마일 떨어진 밀레도에 도착하자 바울은 배가 떠나기 전에 교회와 연락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함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즉시 장로들에게 기별을 보내어 그가 여행을 계속하기 전에 그들을 볼 수 있도록 밀레도에 급히 오라고 요청하였다. 그는 부름에 응하여 그들은 왔고 그는 힘차고 감동적인 권고와 고별의 말을 그들에게 주었다. (행적 392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훤히 보이는 고생길을 자처해서 간 적이 있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혹은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요.
3. 본이 되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거리낌 없는 삶이란?
본문을 더욱 자세히
바울이 행한 에베소에서의 눈물의 봉사 (20:19, 31)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이런 봉사로 인하여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인가요?
바울의 사명감과 열정 (20:24)이 우리 삶에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울의 부탁에 요점은(20:28-32) 무엇일까요?
바울의 정직함과 부지런함 (20:34-35)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면, 왜 그런지에 대하여 나누어 보아요.
생각해봅시다.
무릎을 꿇고 형제자매들과 간절히 기도한 경험이 있다면 그 일을 회고해 봅시다.
고난의 길을 가면서도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를 서두르게 하는 기대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그것이 교회와 복음을 위한 것인가요?
그는“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충당하”였다고 선언하였다. 그의 힘에 겨운 수고와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한 광범위한 여행 중에서도 그는 자신의 필요를 공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료 사역자들을 부양하고 매우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어떤 것들을 절약할 수 있었다. 그는 끊임없는 근면과 가장 철저한 절약을 통하여 이일을 성취하였다.(행적 396p)
19. 모든 겸손.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세상을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힌(갈 6:14) 바울은 부르심과 직분에 대해 또는 그것으로 인한 어떤 자만심도 가질 수 없었다. 그는 육체를 신뢰할 만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빌 3:4~7). 또한 그의 사도로서 겪은 경험과 고통을 자랑할 만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후 11:18~30). 그의 겸손은 그리스도의 능력과 위대함에 의해 그의 작음과 연약함을 헤아리는 그리스도인 귀족들에게 속했다. 눈물. 예수처럼 바울도 울었다(고후 2:4; 참조 요 11:35). 그는 유대인 형제들이 나라를 상실한 일을 슬퍼했다(롬 9:1~5; 참조 눅 19:41, 42). 그는 그들이 진리의 길에 장애물을 놓는 것을 슬퍼했다. 그는 영혼들이 버려지는 것을 슬퍼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완고함을 슬퍼했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인 목자는 주위에 있는 잃어버린 영혼들로 인하여 슬퍼하며, 진리에 대한 그들의 반대에 대해 거룩한 열정이 솟아날 것이다. 시험. 헬라어 페이라스모이(peirasmoi). “시험하는 것들”, “시험들.” 벧전 4:12과 비교하라. 행 19장은 원수들의 반대에서 발생한 역경들이 진술되어 있다.섬긴 것. 헬라어 둘류오(douleuo-). “[노예로서] 섬기다.” 바울은 종종 이 단어와 명사 둘로스(doulos), “종”, “노예”를 그리스도와 관련된 자기 자신에게 적용했는데, 그럼으로써 그의 마음과 의지가 주님께 완전히 속해 있음을 나타낸다. 그가 행한 모든 것은 그리스도, 그의 주인에게 속했다. 자신의 이익이나 세상의 어떠한 관심도 그가 섬기는 그리스도와 비교될 수 없었다. 꺼림. 헬라어 휘포스텔로(hupostello-). “아래에 두다” 그러므로 “숨기다”, “억압하다.” 이 단어는 일찍이 돛을 감는 데 사용되었다. 바울은 노력하고 활동하는 데 몸을 아끼지 않았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또한 가르치고 권고하기를 꺼리지 않았고 진리를 감추지 않았다(참조 27절).
23. 성령이…내게 증거하여. 이것이 직접적인 계시에 의한 것인지(참조 16:6, 7 주석) 혹은 21:4, 11에서처럼 선지자의 예언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바울이 마음에 계속해서 깊은 감명을 받은 것에 의한 것인지 언급이 없다.
24. 달려갈 길. 헬라어 드로모스(dromos). “경주”, “경주로”, “인생살이” 또는 “임기”, “경력.” 자기 앞에 펼쳐진 경주를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 바울은 스스로를 산 제사(롬 12:1)로 드리고 있었다. 고별 편지에서 그는 자신이 그러한 길을 마쳤음을(딤후 4:7) 주장했다. 그렇게 그는 히브리인들에게 그들 앞에 당한 “경주를 인내[참음]로써 경주”하라고(히 12:1) 권고했다. 바울은 그렇게 삶을 경주하고자 했기 때문에, 마지막에 부주의나 무관심으로 인한 소홀함이나 실패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그는 그의 생애를 깨끗한 양심으로 마치기를 원했다. 사명. 헬라어 디아코니아(diakonia). “봉사.” 이 단어에서 영어 단어 “deaconate”(집사)가 파생되었다. 여기서는 교회의 직분이 아니라 하나님께 바쳐진 봉사를 의미한다. 충성스런 봉사가 바울의 주된 원칙이었고 그는 그의 “아들” 디모데에게도 동일한 헌신을 권고했다(딤후 4:5). 귀한 것. 내 자신의 소망에 가치 있는 것. 어떤 개인적인 선택이나 소망도 바울을 꾸준한 사역의 특권에서 떼놓을 수 없었다. 그는 그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그리스도의 종이었다(롬 1:1). 어떤 것도 그가 의무를 소홀히 하도록 유혹할 만큼 중요하지 않았다. 이것은 구주의 정신이었고 초기 그리스도인의 정신이었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바울은 여기서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으나, 의심할 여지없이 에베소에서 온 장로들과 밀레도와 에베소의 교회들이 그를 다시 보지 못할 것으로 믿고 있다. 이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위험들을(행 20:22, 23; 롬 15:30, 31)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수 있으며, 로마와 스페인을 방문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행 19:21; 롬 15:23~28)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바울은 1차와 2차 로마 투옥 사이(빌 1:25~27; 몬 22절)에 밀레도와 에베소는 아니더라도 마게도냐와 아시아로 돌아왔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때 이것에 관해서는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27. 꺼리지 않고. 참조 20절 주석. 인기 없는 진리로 인해 빚어지는 두려움이나 인기에 대한 쓸모없는 갈망이 바울의 봉사를 방해할 수 없었다. 진리를 부끄러워하거나 위장하는 일은 없었다. 하나님의 뜻. 즉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 바울은 이 계획을 스데반의 설교(참조 7:54~58)를 통해 최초로 듣고 그리스도에게 친히 들은 것 같다(행 9:4~6; 갈 1:15~20). 그는 사람들 앞에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사망하신 목적, 그의 부활과 승천, 대제사장으로서의 하늘 성소 사업 그리고 중보 사업의 마지막에 그의 백성들을 데려가기 위해 다시 오리라는 약속의 목적을 제시했다. 이것이 바울이 로마서에서 명확히 제시하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28. 양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고전 12:12~27; 엡 4:12), 하나님의 성전이요(고전 3:16, 17), 주의 신부다(엡 5:23~32). 하지만 더 친숙하게는 하나님의 양떼이다(요 10:11~16; 참조 벧전 5:4; 히 13:20). 그러므로 그들은 쫓겨나지 않고(요 10:26~30) 인도를 받아야 하며, 착취되지 않고 공급받아야 한다(시 23; 요 10:7~14; 벧전 5:2). 파스토르(pastor, 목사)는 “내가 먹이다”라는 동사 파스코(pasco-)에서 온 라틴어 단어이다. 성경에 아주 선명하게 제시된, 호소하는 듯한 선한 목자는 복음 사역자의 모본이다. “온”은 모든 양떼와 각 양을 의미하는데,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약 2:1~9). 자기 피로. 헬라어 원문이 분명하게 지적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의 [아들의] 피로”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이 번역은 앞에서 소개한 “하나님의 교회”라는 독법에 적합한 반면, 다른 번역은 신성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하거나(다른 참고 문헌들이 명확히 하는 개념) “주의 교회”라는 독법에 적합하다. “피는 생명”이다(신 12:23). 피가 흘려지면 생명은 끊어진다. 희생동물의 피가 땅에 흘려지고 죽는 것은, 죄인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한다. 그러므로 갈바리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은, 아버지와의 분리로(마 27:46; 요 19:34, 35) 그의 심장이 터져 물과 함께 피가 나올 때 “구원하는 피”(고전 1:17, 18), 피로 사신 일(행 20:28) 그리고 깨끗하게 하는 피(요일 1:7)로 일컬어진다. 그리스도는 구원을 가능케 한 속죄제물로서 죽으셨기 때문에 교회는 특별한 헌신과 관심으로 목사들의 관리를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처럼 목사는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한 봉사에 자신을 바쳐야 한다.
29. 내가 떠난 후에. 바울은 그가 함께 세운 교회들의 후견인으로 일해 왔다.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와 여호수아 후에 생존한 장로들이 사는 날 동안에는 신실했으나(삿 2:7) 후에는 배교했다. 바울이 떠남으로 그들에게 위험이 많아질 것이다.
30. 너희 중에서도. 교회 외부로부터 양떼를 공격할 앞 절에 나타난 “이리”는, AD 400년경 일반에 널리 퍼져 있던 그리스도교를 급진적으로 변질시킨 유대화주의자들과 이교의 영향력을 대표한다. 이제 바울은 데마(딤후 4:10), 후메내오, 빌레도(딤후 2:17)와 같은 내부에서 오는 배교의 영향력에 대해 경고하는데, 그들의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짐 같으며”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렸다.
31. 일깨어. 바울이 틀림없이 인식하고 있었을 주의 권고(마 24:42; 25:13)를 의미심장하게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울이 방금 “감독자”(참조 20:28 주석)라고 부른 에베소 장로들에게 이렇게 설교하는 일은 매우 적절했다. 바울은 교회를 지도하고 목양하는 자들의 특징이 되어야 할 경계를 강조한다. 삼 년. 바울은 삼 년 동안 에베소 교회 앞에 경계의 모본을 보여 주었다. 사도행전의 역사에는 회당에서 설교한 3개월(19:8), 두란노 서원에서의 2년(10절), 데메드리오의 폭동 바로 전후의 분명치 않은 기간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과 잘 알려진 유대인의 포함식 계산법(참조 제2권, 83, 84)은 “삼 년”이라는 바울의 일반적인 언급에 충분한 설명이 된다. 참조 61쪽. 눈물로. “감정을 나누는 일”이라는 뜻 그대로 바울의 깊은 동정심은 그의 기록 많은 부분에서 밝혀진다(참조 행 20:19; 고후 11:29). 바울은 목회적 능률과 열심에 대해 강도 높게 말하고 있으나 장로들 중 누구도 그의 언급을 논박하지 않는다.
32. 은혜의 말씀. “그의 은혜로운 말씀”을 의미하는 형용사구로 볼 수도 있다. 유사한 표현은 “그의 능력의 말씀”(히 1:3) 또는 우주를 지탱하는 힘이 있는 “그의 능력 있는 말씀”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의 은혜의 말씀”은 그를 믿는 자들의 구원을 이룰 수 있다(유 24절). “은혜”(카리스[charis])라는 단어는 고후 12:9에서와 같이 종종 “능력”(뒤나미스[dunamis])이라는 단어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말씀”(로고스[logos])이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격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가 말할 때 그의 말씀에는 은혜뿐만 아니라 능력이 충만하다(참조 약 1:21; 히 4:12; 렘 23:29). 카리스에 대한 논의를 보려면 롬 3:24 주석을 참조하라. 부탁하노니. 헬라어 파라티쎄미(paratithe-mi). “곁에 두다”, “위임하다.” 여기서는 “위탁하다”(벧전 4:19)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울에게는, 그리스도의 날까지 믿음의 “의탁” 또는 “맡겨 놓은 것”(파라쎄케[parathe-ke-])이 된, 그들이 받은 진리(딤후 1:14)를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교사들(딤후 1:14)이 있었다. 기업. 이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 분배를 가리킨다(수 14~19장).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믿음 부족으로 그들의 땅을 성공적으로 차지하는 데 실패했다(삿 1장; 2장; 히 3장; 4장). 하나님의 자녀의 기업은 분명히 히브리인에게 할당된 소유로 간주되어야 하며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확실히 주장되어야 한다. 에베소인의 기업에 대한 바울의 사상 전개를 비교하라.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받은 구원의 서약이 되는 “우리 기업에 보증”(엡 1:14)이 있는데, 그것은 현재 그리스도인의 영적 소유로서의 “성도 안에서 그 기업”(엡 1:18)과 그리스도의 재림시 들어갈(마 25:34; 눅 12:32), “하나님 나라에서” 얻을 “기업”(엡 5:5)이다. 재림시 하나님의 성도들은 하늘에 들어가서 1,000년 동안 통치할 것이고(살전 4:16, 17; 계 20:4), 그 후 새로 창조된 땅에서 살 것이다(계 21:1~4).
33. 내가…탐하지. 사무엘이 그의 백성들에게 한 호소와 비교하라(삼상 12:3~5). 바울과 사무엘 둘 다 불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변명을 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정직함을 잃고 타락했다(삼상 8:3). 바울은 “탐심의 탈”(살전 2:5; 참조 고후 7:2; 12:17, 18)을 썼다고 비난받았다. 바울은 그의 복음사역에 대하여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었으나(고전 9:13, 14) 탐욕의 비난을 받지 않으려고(고전 9:12, 15)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미치는 그의 두드러진 영향력으로(참조 갈 4:13~15) 바울은 자신의 부를 위하여 물질적인 이익을 얻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울은 “비천에 처할 줄도”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았다(빌 4:12). 그는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하기를”(빌 4:11) 배웠다. 그는 고린도인들에게서 어떤 “이”(利)도 취하지 않았다(고후 12:17). 그는 빌립보인들에게서 어떤 “선물”도 바라지 않았다(빌 4:17). 바울은 지원을 바라기보다 그의 손으로 일했다. 그러므로 그는 다음 절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그의 노력이 실제로 다른 사람들의 부에 대한 탐욕 때문이었다는 비난에 대한 변호로 이 사실을 말한다. 은이나 금이나 의복. 동방에서는 흔히 이런 것들을 소유하고 있으면 부유하다고 간주했다. 나아만(왕하 5:5)과 다른 이들(창 24:53; 45:22; 왕하 7:8; 참조 마 6:19; 약 5:2, 3)의 경우에도 그러했다.
34. 이 손으로…당하여. 자급하는 바울의 습관을 가리키며, 탐욕의 비난에 대한 부분적인 변호로 소개된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장막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18:1~3). 그는 이전에 에베소에서 친히 손으로 일했고(고전 4:12) 데살로니가에서도 일했다(살전 2:9; 살후 3:8). 이 절은 그가 에베소에서도 이와 같이 일했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바울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한 사람들과 그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일했다. “자주 나는 병”이 있었던 디모데(딤전 5:23)는 그들 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교회가 아직 목사들을 부양하는 방법을 세우지 못한 때에 복음을 전하는 동안 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일해야 하는 것을 조금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약한 사람들. “아픈 자들”, “고통받는 자들.” “믿음이 약한” 자들(롬 14:1)에게 적용될 수도 있지만, 바울이 방금 여기서 육체노동에 대해 말했기 때문에(행 20:34, 35) 여기서는 “약한” 사람이 문자적으로 가난하고 병약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피할 수 없다. 이 절의 뒷 부분도 같은 결론을 내리게 한다. 사도 교회 신자들은 그 후 어느 시대 사람들보다 이러한 책임에 잘 준비되어 있었다(참조 6:1, 2 주석). 복이 있다. 축복에는 “주고받는” 양면이 있다. 필요가 영적인 것이든 육신적인 것이든 복을 받은 자는 행복하다. 그러나 주는 자에게 더 큰 복이 있다. 나눔에는 기쁨이 있다. 주는 자는 자신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본성의 좋은 부분을 활용하게 되며,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마 25:34~40). 하나님은 무한한 공급자라는 점에서(창 22:8~13; 시 23장; , 34), 주는 것은 하나님과 같은 행위이다.
[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2]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3]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8]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13]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14]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15]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16]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내용 요약
1. 고린도에서 드로아까지 (1-6)
2. 드로아에서 밀레도까지 (7-16)
3. 밀레도에서의 설교 (17-38)
배 경
드디어 3차에 걸친 10년동안의 긴 전도 여행이 끝나고 바울은 귀향 길에 오른다. 이제 바울의 나이도 50대 중반이 되어 있었다. 에베소에서 은장색 소요가 있은 후 바울은 고린도에 가서 3개월을 머물면서 (20:3) 유명한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쓴다. 그리고는 죽음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귀향 길에 오르는 것이다.
바울은 이방 교회들이 낸 거액의 돈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을 유대의 사업에 책임을 진 형제들에게 전달하고자 하였으므로 연금을 낸 여러 교회를 대표하는 이들 형제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을 가고자 준비하였다.(행적 390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큰 위로와 힘이 되었던 경험이 있으면 나누어 보아요.
심히 졸아서, 낭패를 경험한 적이 있나요? 또한 당신은 어떨 때 가장 졸음이 오나요? (당신은 잠을 이길 수 있는 편입니까? 그렇지 못한 편입니까?)
어떤 사람이나 물건을 보면서 큰 위로가 되는 경우가 있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함께 가는 자”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왜 이들과 함께 가려고 했을까요?(20:4)(4절 주석참조)
드로아에서 모였던 안식후 첫날 집회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이 초대교회가 첫날을 정기적으로 준수한 증거가 되는지 말해 봅시다. 이 구절은 일요일을 지키는 교회에서 신약시대에 벌서 일요일에 모였다는 성경상 증거로 내세우는 세 성경절 중 하나입니다. (행20:7, 고전16:2, 계1:10) ① 바울은 이미 투옥과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으므로 드로아에서 일주일 머무는 동안 날마다 집회를 가졌을 것이다. ② 유대인의 하루는 해 질 때부터 다음날 해질 때까지이므로(레23:32) 안식 후 첫날 저녁은 토요일 저녁이다(새번역 성경, Good News Bible). ③ 이 때를 일요일 저녁이라고 억지를 쓸 경우라도 일요일 준수의 증거는 되지못한다. 그것은 밤이고 이미 성경상 둘째 날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④ 이 집회는 송별 집회로서 바울이 어느 날에 떠나더라도 그 전날 가졌을 모임이어서 전혀 정기 집회의 성격이 없다. ⑤ 떡은 날마다 라도 떼었다. (행2:46)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유두고)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습니다.(20:12) 무엇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었을까요?
바울이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가려고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20:16)
생각해봅시다.
내 삶에서 가장 큰 위로가 되는 이적은 무엇인가요? 이를 통해 내가 경험한 하나님은 어떤 존재이신가요?
인생을 여행길에 비유한다면 현재 내 인생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고후 1:3-5, 개정)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2. 그 지경으로. 의심할 여지없이, 바울은 그 자신이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그리고 빌립보에 세웠던 교회들을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었을 것이다. 바울은 틀림없이 마게도냐를 가로질러 로마가 닦아 놓은 도로를 따라 서쪽의 아드리아 해안으로 갔고, 일루리곤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참조 롬 15:19, 참조 416쪽 지도). 헬라. 헬라어 헬라스(Hellas), 그리스. 누가는 남쪽 지역인 아가야와 같은 뜻으로 헬라스를 사용한다. 바울은 여행을 계속하여 아가야 지방의 수도인 고린도에 당도했고, 그곳에는 교회 안에서 질서를 바로잡아야 할 많은 일이 있었다. 거기에 있는 성도들은 이미 그가 보낸 두 편지서를 받았다. 에베소에서 보낸 첫 번째 편지서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 나타난 분당의 정신을 꾸짖었다. 또한 바울은 주의 만찬에서의 무질서를 꾸짖었으며, 근친상간에 반대하는 그의 견해를 제시했다. 바울이 직면한 목회적 과업들은 설령 고린도에서만 모든 시간을 보냈다 해도 이 지역에 머무는 3개월 동안 휴식을 거의 허락하지 않을 것이었다. 고린도에 거하는 동안, 바울은 아마도 많은 친구를 그리워했을 것이다. 글라우디오의 칙령은 철회되었거나 더 이상 강제성을 갖지 않았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에베소에서 로마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참조 행 18:18, 19; 롬 16:3). 바울이 고린도에서 교분을 쌓았던 다른 사람들도(참조 롬 16장) 이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이 로마로 가려는 그의 열망을 강화시켰을 것이다(; 롬 1:10, 11). 바울은 그리스에서의 사업을 이루었다. 그는 자신을 서쪽으로 끌어당기는 인간적 매력 이상의 것을 느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잠시만 머무를 목적으로 속히 예루살렘에 가서, 이방에 있는 교회들이 준 선물들을 넘겨 준 후 즉시 로마와 스페인으로 여행하고자 계획했다(롬 15:24~28). 사도행전의 나머지 부분은 사실상 그가 어떻게 다른 경로로 여행했는지를 보여 준다.
3. 석 달을 있다가. 또는 “그가 석 달을 보낸 후에.” 헬라어 구문상, 이 구절은 뒤따라 오는 부분과 연결된다. 배 타고 수리아로. 즉 “수리아를 향해 항해를 시작하다.” 바울은 아마도 그의 여행경로를 잡고 승선까지 했던 것 같으나 배가 떠나기 전 경고를 받았다. 유대인들이…공모하므로. 즉 “그에 대하여 유대인들이 만든 책략.” 유대인들은 바울이 고린도를 마지막으로 방문하는 동안 그를 공격하는 데 갈리오를 끌어들이려고 했고, 이제는 비밀리에 그에게 복수하고자 했다. 분명히 그를 죽이려는 의도였다. 바울은 그 음모에 대하여 들었을 때 계획을 바꿔 동료들과 함께 마게도냐로 떠났으며, 그 공모자들을 좌절시켰다. 마게도냐로 다녀.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는 분명히 그가 수리아로 가는 뱃길에서 실행될 것이었기에, 북쪽으로 가려는 그의 신속한 계획 변화는 새로운 상황에 따르는 새로운 음모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4. 아시아까지. 이 표현의 생략을 지지하는 중요한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를 인용할 수 있다. 함께 가는 자는. 디모데와 아마도 소바더(소시바더의 다른 이름이라 추정됨)가 고린도에서 바울과 함께 있었을 것이다(롬 16:21). 대표단의 규모는 유대에 있는 교회들을 위하여 계획된 많은 금액을 바울이 가지고 가고 있었다는 사실로 설명할 수 있다. 바울이 돈을 기부한 지역들의 많은 증인을 데려감으로써 비방자들이 그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행할 수 있는 어떠한 의심도 피할 수 있었다(고후 8:19~21). 그러므로 대표자들은 유력한 교회들에서 택해졌고, 그들은 바울의 처신에 나무랄 데가 없음을 증언할 수 있었다. 누가를 포함하여 바울과 동행한 사람은 8명이었다(참조 5절 주석).
5. 우리를 기다리더라. 이 성경절에서 갑자기 1인칭 복수로 바뀐 것은, 자신의 이름을 결코 언급한 적이 없는 누가가 바울의 동료 명단에 그 자신이 포함되어야 함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는 아마도 빌립보 교회의 대표자로, 또는 바울의 친구이자 의사로서 포함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기다림은 바울로 하여금 빌립보에서 유월절을 지킬 수 있게 했고, 그는 그곳에서 “무교절 후에”(6절) 출발했다. 앞서간 제자들은 드로아 교회에게 바울이 오는 것을 알렸을 것이고 그의 도착에 맞춰 그를 맞이하기 위해 모두 모였을 것이다.
6. 무교절. 바울은 유대인의 절기 때문에 빌립보에 의도적으로 머무른 것으로 보인다. 유월절 기간에 유대인이요 바리새인(23:6)인 바울이 큰 종교적 감동으로 계속 충만해 있었을 것에 틀림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유월절 기간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기간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참조 고전 5:7, 8). 닷새 만에 드로아에. 드로아에서 빌립보로 향하는 서북향의 항해는(참조 16:11, 12 주석) 사흘 길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 동남쪽을 향해 항해하는 이 배는, 다르다넬스 해협에서 형성된 남서해류와 봄에 에게 해(Archipelago, 참조 416쪽 지도)에서 일어나는 북동풍을 만나야 했다. 바울이 유럽으로 건너가도록 하는 마게도냐의 부르심에 대한 이상을 보았을 때, 그는 누가와 디모데와 함께 드로아에 있었다. 소바더와 아리스다고와 세군도는 하나님께서 마게도냐에서 그들의 일에 은혜를 베푸신 열매의 일부를 대표했다. 이레. 바울과 누가는 드로아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아마도 그들은 에게 해를 건너 5일간의 항해 끝에 안식일이 지난 후 상륙한 것 같다. 그들이 드로아에서 보낸 7일, 즉 완전한 일주일은 안식일로 끝났다. 다음 날, 즉 그 주의 첫째 날에 바울은 걸어서 앗소에 가려고 계획했고(13절), 나머지 동료들은 배를 타고 앗소로 향했다. 안식일이 끝나는 시점과 이른 아침 출발 사이, 선교사들은 드로아에 있는 교회에서 꽤 오랫동안 중대한 모임을 가지면서 그 주 첫째 날의 어두운 부분, 즉 토요일 밤을 보냈다.
7. 안식 후 첫날. 유대식 시간 계산법에 따르면 이날은 이미 그 주일의 둘째 날이 된다. 누가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 표현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엘리코트(Ellicott), 코니비어(Conybeare), 하우슨(Howson) 그리고 A. T. 로버트슨(A. T. Robertson)을 포함한 다른 주석가들은 이 모임이 일요일 전날 저녁에 있었다고 이해했다. 유대식 시간 계산법에 의하면 하루가 일몰에서 시작하므로 안식 후 첫날의 어두운 시간은 일요일 전날 저녁, 즉 오늘날의 토요일 저녁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계산법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수 세기 동안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누가가 이방인이든 아니든 그의 이야기에서 이 방법을 사용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따라서 드로아에서의 바울의 모임은 토요일 저녁 일몰 후에 시작되었고, 그 밤 내내 계속되었을 것이다. 그 이튿날, 일요일에 그는 걸어서 앗소로 갔을 것이다. 어떤 저자들은 이 표현을 가지고 초기 그리스도인이 일요일을 준수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누가가 유대식 시간 계산법을 썼느냐 혹은 로마식 시간 계산법을 썼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이 모임이 “안식 후 첫날”에 있었음을 명백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유대인의 계산법을 사용했다면 일요일이 되기 전날 저녁은 첫째 날로 간주되었을 것이며, 그가 만약 로마식 시간을 사용했다 해도 일요일 저녁은 여전히 첫째 날이었다. 초기 그리스도인이 일요일을 준수했느냐는 문제에서, 중요한 요소는 이 첫째 날 모임이 정규적인 그리스도인 모임인가 아니면 단순히 바울의 방문으로 인하여 첫째 날에 이러한 일이 우연히 일어났는가 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 이야기를 고려해 볼 때, 이날이 주중 첫째 날이기에 바울이 특별히 이 모임을 열었다는 견해를 지지할 만한 근거는 없다. 그는 드로아에서 7일을 거했으며 거기서 이미 한 번 이상 성도들을 만났을 것임이 틀림없다. 이제 그는 떠날 입장이었고, 그 전에 고별 모임을 갖고 성찬식을 거행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지극히 논리적이다. 이 일이 주중 첫날에 있었다는 누가의 표현은, 명확한 일요일 준수에 대한 기록이라기보다는, 이 여행에서 묘사하고 있는 일련의 연대기적 전체 기록들과 조화를 잘 이룬다(참조 20:3, 6, 7, 15, 16; 21:1, 4, 5, 7, 8, 10, 15). 그러므로 이 절을 이해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이 모임이 일요일이어서가 아니라 바울이 “떠나고자 하여”(20:7) 사람들이 모였던 것이며, 누가는 유두고 사건 때문에 이 이야기를 포함시켰고, 이날이 “안식 후 첫날”이었다는 기록은 단순히 여행에 대한 바울의 연대기적 기록의 한 부분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 절을 초기 그리스도인의 일요일 준수에 대한 증거라 평가하는 것에 대해 저명한 교회사학자 아우구스투스 네안더(Augustus Neand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성경절이 일요일 준수에 대하여 전적인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도가 떠날 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에 그 작은 교회가 형제애를 나누는 고별식사로 모였을 것이며, 그 경우 일요일을 특별히 기념할 일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차제에 사도가 마지막 기별을 전한 것이기 때문이다(The History of the Christian Religion and Church, tr. Henry John Rose, vol. 1, 337). 밤중까지. 그들은 야간 고별예배로 모였다. 그러나 교제의 기쁨과 바야흐로 사도가 그들을 떠난다는 사실이, 통상적인 시간보다 훨씬 오랫동안 강론을 계속하게 했다. 형제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바울이 떠나기 전 그들에게 베푸는 비공식 영적 잔치를 전적으로 즐기고 있었다.
8. 등불을 많이. “등” 즉 기름으로 채워진 “남포등”(참조 마 25:1, 3 주석)은 분명히 두 가지 이유로 여기 언급되는데 (1) 열기와 연기로 밀폐된 방에서 그로 인한 유두고의 졸음을 설명하기 위해, (2) 그리스도인들의 저녁 모임에서 음란한 방종을 자행(恣行)했다는 비난에 대한 간접적인 대답을 제공하기 위해서이다(Tertullian Apology 8).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등불이 설교자 가까이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9. 유두고. “행운”을 의미한다. 이 이름은 벨릭스(Felix), 펠리치아(Felicia), 펠리치스무스(Fellicissmus), 브드나도(Fortunatus), 파우스투스(Faustus), 펠리치타스(Felicitas), 순두게(Syntyche) 등 유사한 뜻을 가진 이름들처럼 명각에 자주 나타나는데 특별히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자유민 가운데서는 보편적이었다. 청년. 헬라어 네아니아스(neanias). 엄격히 말하면 24세에서 40세 사이의 남자. 그러나 아마 여기서는 좀 더 융통성 있게 사용되었을 것이다(참조 12절 주석).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문자적으로 “졸음에 정복당하다.” 분명히 기름 등불의 열기와 연기로 인해 공기가 탁해졌으며 그 젊은이는 더 이상 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삼 층 누. 헬라어 트리스테고스(tristegos). “3층 지붕.” 오늘날로 말하면 “4층”에 해당할 것이다. 떡을 떼어 먹고. “그들은 만찬을 들었다”(사도행적, 391). 참조 행 2:42 주석; 마 26:26~30; 행 2:46; 고전 11:23~30. 이 성찬식은 계획된 행사였지만, 밤중까지 계속된 강론은 아마도 자연스레 이루어진 것 같다(참조 7절 주석). 날이 새기까지. 그 위도에서 유월절 직후 일출은 아침 5시와 6시 사이였다. 이야기하고. 헬라어 표현상 일상 대화와 구별되는 친밀한 대화를 의미한다.
12. 살아난. 9절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가 실제적인 죽음을 가리키지 않았다면 이 단어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의사 누가는 죽은 사람의 생명의 회복에 대한 기적을 이야기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강조를 위해 부정어를 사용하고 있다. 즉 “크게 위로를 얻었더라.”
13. 우리는 앞서. 누가를 포함한 바울의 동료들은(참조 4절) 바울이 드로아에서 도보로 출발하기 전에, 먼저 배로 여행을 시작했다. 이 동료들이 그 저녁 모임에 참석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14. 미둘레네에 가서. 한때 카스트로(Castro)라 불렸던 그 도시는, 당시 레스보스 섬의 수도로 천연적인 위치와 빼어난 건물들로 인해 아름다웠다. 레스보스 섬은 둘레가 약 270킬로미터로 에게 해에 속한 섬 중 가장 크며, 지중해에서는 일곱 번째로 크다.
15. 기오 앞에. 또는 “맞은 편에.” 기오(Chios, Coos) 섬은 레스보스 섬과 사모 섬 사이에 위치해 있다. 미둘레네에서 기오 섬까지는 배로 하루가 걸렸다. 사모. 리디아 해안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섬으로, 기오 섬에서 배로 하룻길이었다(참조 416쪽 지도). 밀레도. 항구 도시(참조 416쪽 지도). 초기에 이곳은 그레데에서 온 이주민들이 거주하기 시작했고, 점차 활동적인 이주민의 중심지가 되면서 정치적, 상업적으로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이곳은 에베소에서 약 52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바울의 동료들은 앗소를 떠난 지 3일 후 이곳에 도착했다.
16.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즉 배에서 내리지 않고 지나갔다는 뜻이다. 오순절까지 예루살렘에 도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시간을 절약해야 하는 바울은, 에베소에 들림으로 많은 시간이 소비되는 것을 피하고자 했던 것 같다. 오순절. 참조 2:1 주석. 바울이 오순절까지 예루살렘에 가기를 왜 그렇게 원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아마도 당시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올라오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운집은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는 구제금을 나누어 주는 일에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또는 이전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 이 절기가 바울에게 특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그는 유월절까지 여행을 마치지 못했으며(20:6), 그가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음 절기 이전에 그곳에 도착하기를 원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27]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31]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32]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34]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35]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37]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38]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내용 요약
1. 에베소 전도 (1-20)
2. 은장색 사건 (21-41)
배 경
바울은 다시 5년 동안이나 걸린 제3차 전도여행을 떠난다. 이번에는 바로 에베소로 직행하여 3년을 유하면서 눈물로 전도한다.
데메드리오는 그의 연설에서 “우리의 이 영업”에“위험이 있”다고 말하였다. 이 말은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의 참 원인과 또한 사업을 수행하는 사도들을 따라다닌 대부분의 박해의 원인을 나타낸다. 데메드리오와 그의 동업자들은 복음의 가르침과 전파로 인하여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업이 위태롭게 된 것을 알았다. 이교의 사제들과 직공들의 수입이 위태롭게 되었다는 이유로 그들은 가장 신랄하게 바울을 대적하였다.(행적 295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가고 싶은 곳이 있나요? 왜 그곳에 가고 싶나요?
2. 남들이 다 하고 있기 때문에 생각 없이 따라하고 있는 것이 있나요?
3. 가장 이성을 잃어버리고 행동한 적은 언제인가요? 그렇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바울은 로마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의논하여 봅시다.(21)(주석참조)
바울은 로마로 가고 싶은 것이었을까요? 명령(행1:8)에 대한 사명의 발언이었을까요?
2. 은장색사건의 전말은 무엇입니까?(21-41)
* 이 소동이 일어나자 3년 동안의 에베소 전도는 끝나게 되었다. 은감실이란 에베소 사람들이 섬기는 아데미 신전의 작은 은제 모형을 말하며 은장색이란 은감실을 만드는 은 세공업자를 말한다.
3. 왜 사람들은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연극장에 가두었을까요?(29)
생각해봅시다.
1. 바울이 에베소에서 취한 선교방법을 재차 확인하고, 에베소사회에 어떤 영적 영향력을 끼쳤는지 생각해봅시다.
2. 옳지 않은 일로 선동하거나 선동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봅시다.
계속적인 반대의 폭풍우와 원수들의 부르짖음과 동지들의 저버림 가운데서 담대한 사도도 거의 낙심하였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를 돌아보고 새로운 열심을 가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전파하는 일에 전진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보다 먼저 밟으신 피묻은 길을 밟고 가는 데 불과하였다. 그는 구주의 발아래서 그의 갑옷을 벗을 때까지 싸움에서 물러나기를 구하지 아니하였다.(행적 297p)
21. 이 일이 다 된 후. 이 일이 있은 후 에베소의 많은 사람이 교회로 모여들었다. 놀라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 도시와 교회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었다. “믿는” 자들은 개혁을 경험했고, 악의 도구들이 극적으로 파괴되어 도시 전체의 주목을 끌었다. 이제 사업은 굳건히 섰고, 따라서 바울은 도시를 떠나도 되겠다고 느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여기서 한 결심의 배경을 보여 준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보낸 몇 년 동안 마게도냐와 아가야 교회들과 꽤 자주 소식을 왕래했는데, 그를 근심하게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편지가 현존하지 않지만,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그들 중에 거하는 편만한 음행의 죄를 경고하는(고전 5:9~11) 편지를 보낼 필요를 느꼈다. 글로에의 집 사람들이 분쟁 소식을 가져 왔고 심각한 무질서와 교회의 징계 부재, 심지어는 근친상간 문제(고전 1:11; 5:1; 11:18~22)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에는 바울의 직접적인 대처가 필요했다. 또한 그는 팔레스타인에 있는 가난한 유대인 그리스도인 신자들에게 보내는(참조 고전 16:1; 고후 8:1~4) 이방 교회들의 기부금을 전달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다시 방문하고자 했다.
로마도 보아야. 로마에 가고자 하는 그의 갈망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이다. 로마를 방문하려는 계획(참조 롬 1:13; 15:23)은, 그가 이방인을 위한 사도(22:21)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이런 갈망을 수년간 지니고 있었을 것임을 보여 준다. 제국의 수도에 가고자 한 그의 갈망은 다른 곳에서 알게 된 로마에 있는 많은 친구들(롬 16:1~15) 때문에 고조되었음이 분명하다. 바울에게는 자신이 제국의 큰 중심지에서 증거하기 전에는 그의 사역이 끝마쳐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소망이 여태껏 좌절되었다. 이제 그는 에베소를 떠나면서 로마뿐 아니라 서바나에도 꼭 가려 한다(롬 15:28)고 말했다.
에라스도. AD 1세기 중반 것으로 추정되는 도로 포장 벽돌이 고린도에서 발견되었는데, “에라스도는 조영관(造營官, aedile, 옛 로마의 공공 건물, 도로, 공중 위생 등을 관장하던 관리-역자 주)이 된 답례로 사비(私費)를 들여 [포장 도로]를 놓았다”라는 명각이 새겨져 있다.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 에라스도를 이 성경절에 언급된 사람과 동일하다고 본다(참조 롬 16:23 주석; 딤후 4:20).
아데미. (「제임스왕역」에는 “Diana”[다이애나]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헬라어 아르테미스(Artemis). 여기에서 「제임스왕역」 번역자들이 헬라어 본문에 나타나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에베소의 신과 어느 정도 동일시되는 로마의 여신 다이아나의 이름을 사용할 적절한 이유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초기 시대부터 원래 아시아의 종교인 아데미 숭배는 에베소가 중심지였다. 헬라인들이 소아시아에 식민단을 보냈을 때 이들이 이러한 종교의 형태가 이미 확립되어 있는 것을 알고 그 예배에서 발견한 어떤 유사성 때문에 아시아의 신에게 헬라의 여신 아데미의 이름을 부여했다. 수 세기 동안 에베소에서 우상숭배에 가해진 타격 중에 사실상 최초의 타격은, 바울이 이 도시에 거하는 동안 이루어졌다. 이상한 일이지만, 다음 타격은 미친 네로에 의하여 이루어졌는데, 그는 로마에 있는 자신의 황금집을 예술 작품으로 장식하기 위하여 헬라와 아시아에서 물건들을 강탈할 때 에베소의 신전에서 아데미를 탈취해 갔다. 후에 트라야누스는 멋지게 조각된 문들을, 나중에 콘스탄티노플로 개명된 비잔티움에 있는 한 신전에 선물로 보냈다. 그리스도교가 번성함에 따라 아데미 숭배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고, 오래지 않아 아데미의 은감실도 대개는 황폐화되었다. 고트족이 AD 262년경 소아시아를 유린하였을 때 그들은 이데미 신전을 약탈하였고 수세기 후에 터키족이 완전히 파괴했다. 제국이 기독교화되었을 때 델피 신전과 에베소 신전은, 거룩한 지혜의 신을 기념하여 유스티니아누스가 콘스탄티노플에 세운 성 소피아 교회를 위해 재료를 제공하였다. 터키족의 침략 이래로 교회는 회교의 사원으로 사용되었다. 그것이 지금은 박물관이 되었다. 에베소의 쇠퇴로 인하여 그 신전의 부지는 지난 세기까지 불확실하였다. 발굴이 이루어져 신전 부지는 드러났고 그것과 관련된 많은 명각이 빛을 보았다.
은감실(silver shrine). 헬라어 나오이(naoi, 단수는 나오스[naos], 참조 마 4:5 주석). 대개 “신전, 성전”(temple)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모든 경우에 신의 임재가 임한다고 여겨지는 내전(內殿)을 가리켰고, 따라서 여기서도 여신상이 있는 내전을 의미할 것이다. 은으로 만들어진 작은 (혹은 테라코타) 신전 형상(“은감실”) 안에 조그마한 여신상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이 모형들은 집안에 두거나 부적처럼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었다.
벌이. 헬라어 에르가시아(ergasia). “일”, “사업” 또는 “사업으로 얻은 이익” 즉 이윤. 16:16, 19에서 이 단어는 빌립보의 주인들이 귀신 들려 점하는 소녀로 말미암아 얻은 “이익”을 가리키는 말로 두 번 사용되었다. 에베소 직공들은 그들의 이익이 사라지고 있었으므로 큰 소동을 일으켰다. 소동을 일으킨 자들 중 가장 사나웠던 데메드리오는 실제 작업은 하지 않고 사람을 많이 고용하여 수입 중 상당 부분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 아데미의 상(像)과 그것의 상징들은 은장색들에게 그 기예(技藝)를 사용할 풍부한 기회를 제공했을 것이다.
25. 모아. “은장색”으로 번역된 단어가 보여 주듯이, 데메드리오의 기술은 은감실을 조각하고 새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작업이 이런 최종 단계에 이르기 전에, 준비과정으로 재료는 많은 손을 거친 다음, 마지막으로 숙련된 기술자에게 가서 장식과 광택을 위한 마무리 손질이 이루어졌다. 이들 모두는 사업 손실의 위험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데메드리오의 연설에는 두려움의 빛이 역력하게 나타나지만, 그것은 10절에 언급된 바울의 성공적인 사역을 인정하고 있다. 이미 언급했듯이 그가 직접 가지는 않았지만 그의 편지들은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까지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버가모, 서머나,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부근에 있는 교회들이 요한계시록에 언급되었다. 복음이 이런저런 방법으로 소아시아라고 불리는 전 지역에 확산되었다. 플리니우스(Pliny)는 거의 반세기 후에 트라야누스(Trajan)에게 보낸 서신에서(Letters x. 96) 데메드리오와 유사한 표현을 사용한다. 그는, 신전은 “거의 버려졌고” 에베소 북동쪽 본도 지역에서 “단지 몇 사람만”이 희생제물을 구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27. 영업. 헬라어 메로스(meros). “부분”, “몫.” 즉 사업의 부문. 메로스는 25절에서 “업”으로 번역된 헬라어와는 다르다.
가이오와 아리스다고. 군중이 바울을 찾다가 찾을 수 없게 되자 이 두 사람을 붙잡은 것 같다. 이 마게도냐 회심자들이 신자들 속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바울이 이전 여행 때 그 지방에서 한 봉사의 지속적인 결과를 증명한다. 사도행전의 기록이 간결하다는 점 때문에, 이렇게 뜻밖에 삽입된 이 부차적인 언급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가이오”(Gaius)는 흔한 라틴어 이름인 “카이우스”(Caius)에 해당한다(참조 행 20:4; 롬 16:23; 고전 1:14; 요 3:1).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에서 왔으며(20:4; 27:2) 그가 지금 겪고 있는 이런 고난(참조 살전 2:14)을 이미 경험했을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행길에 바울의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이며(20:4) 아마도 마게도냐 지방에 있는 교회들의 대표자 자격이었을 것이다. 그는 로마에서 바울과 함께 투옥되었을 것인데(골 4:10), 바울의 동료 죄수로서 아니면 바울의 필요를 돕기 위해 투옥되었을 것이다. 다. 이 단어에는, 원래 형태 그대로 숭배되었거나 가장 초기의 조각에 사용된 운석을 가리키는, 훨씬 문자적인 의미가 들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아데미 상(참조 24절 주석)을 가리키지 않을 수도 있는데, 고대 여러 작가들에 의하면 아데미 상은 금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돌이 아닌 감람나무, 흑단, 삼목, 혹은 포도나무 등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38. 송사할 것이 있거든. 즉 만약 누구든지 특정한 고소거리가 있거든 그것들을 가져오게 하라. 그들이 주장한 대로 송사할 것이 있다면 법적 조치를 위한 근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구리 장색과 그의 친구들이 꾸민 폭동에는 변명할 것이 없었다.
재판 날도 있고. 헬라어 단어들은 복수형태이다. 이 구절은 “재판 날들이 정해져 있고” 즉 그러한 송사를 취급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의미이거나, 더 나은 표현으로는 동사 시제가 법적 소송의 기회가 지금 열려 있음을 암시하므로 “재판들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개정표준역」에는 이 의미를 따라 “재판들이 열려 있다”라 고 번역되어 있다.
총독들. 헬라어 안쒸파토이(anthupatoi, 참조 13:7, 8, 12; 18:12). 아시아는 총독의 관할하에 있는 속주였다(참조 6:9 주석). 이 구절에 나타난 난제는 이 단어의 복수 형태를 사용한 데서 생긴다. 왜냐하면 일정 기간에 한 속주에 한 명의 총독이 있었고, 따라서 서기장이 말할 때 에베소에도 한 명의 총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몇 가지 해석이 있다. (1) 총독의 법무 보좌관들(콘실리아리이[consiliarii])을 “총독들”로 적절히 묘사했을 것이다. (2) 서기장은 문제가 있을 경우 사법 조치를 받을 수 있는 제국의 제도적 장치에 대해 백성들에게 상기시키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마치 “총독들은 제국의 제도적 장치이다. 우리 지역과 마찬가지로 모든 속주에 고위 행정관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물적 손해를 배상받는 것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3) 이 복수 칭호는 근자에 총독 실라누스(Silanus)가 독살된 후(Tacitus Annals xiii. 1), 아시아에서 제국의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첼레르(Celer)와 헬리우스(Helius)를 의미할 수 있다. (4) 이웃 속주 즉 길리기아, 구브로, 비두니아에서 온 다른 총독이 에베소에 있었을 수 있다. 네 가지 해석 중 두 번째가 가장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고소할 것이요. 헬라어 엥칼레오(egkaleo-). 데메드리오와 그의 추종자들은 피고를 고소하려는 것에 대해 공식적인 진술을 제시하고, 피고는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이렇게 쟁점이 결정되면 양측은 각각 증인을 내세워야 한다.
39. 그 외에. 어떤 문제들은 재판을 위해 총독에게 보냈을 것이고, 다른 문제는 심의를 위해 민회로 보냈을 것이다.
41.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그는 자신의 직무상 권한으로 이렇게 할 수 있었다. 그의 마지막 주장이 청중에게 가장 비중있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들이 조금 전에 가담했던 이런 소요 사태가 로마제국에 보고된다면 자신들의 도시에 주어진 특권이 상실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서기장은 군중들을 진정시키고, 조용히 흩어져 집으로 돌아가도록 유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