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6]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37]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38]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내용 요약
1. 고린도에서 드로아까지 (1-6)
2. 드로아에서 밀레도까지 (7-16)
3. 밀레도에서의 설교 (17-38)
배 경
바울은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고자 서두릅니다.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청해 자신이 이제껏 시험을 참으며 주를 섬겼고, 예루살렘에 가도 성령의 증언대로 환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예수께 받은 사명을 위해 생명도 아끼지 않겠다고 합니다.
에베소에서 삼실마일 떨어진 밀레도에 도착하자 바울은 배가 떠나기 전에 교회와 연락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함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즉시 장로들에게 기별을 보내어 그가 여행을 계속하기 전에 그들을 볼 수 있도록 밀레도에 급히 오라고 요청하였다. 그는 부름에 응하여 그들은 왔고 그는 힘차고 감동적인 권고와 고별의 말을 그들에게 주었다. (행적 392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훤히 보이는 고생길을 자처해서 간 적이 있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혹은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요.
3. 본이 되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거리낌 없는 삶이란?
본문을 더욱 자세히
바울이 행한 에베소에서의 눈물의 봉사 (20:19, 31)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이런 봉사로 인하여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인가요?
바울의 사명감과 열정 (20:24)이 우리 삶에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울의 부탁에 요점은(20:28-32) 무엇일까요?
바울의 정직함과 부지런함 (20:34-35)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면, 왜 그런지에 대하여 나누어 보아요.
생각해봅시다.
무릎을 꿇고 형제자매들과 간절히 기도한 경험이 있다면 그 일을 회고해 봅시다.
고난의 길을 가면서도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를 서두르게 하는 기대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그것이 교회와 복음을 위한 것인가요?
그는“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충당하”였다고 선언하였다. 그의 힘에 겨운 수고와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한 광범위한 여행 중에서도 그는 자신의 필요를 공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료 사역자들을 부양하고 매우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어떤 것들을 절약할 수 있었다. 그는 끊임없는 근면과 가장 철저한 절약을 통하여 이일을 성취하였다.(행적 396p)
19. 모든 겸손.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세상을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힌(갈 6:14) 바울은 부르심과 직분에 대해 또는 그것으로 인한 어떤 자만심도 가질 수 없었다. 그는 육체를 신뢰할 만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빌 3:4~7). 또한 그의 사도로서 겪은 경험과 고통을 자랑할 만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후 11:18~30). 그의 겸손은 그리스도의 능력과 위대함에 의해 그의 작음과 연약함을 헤아리는 그리스도인 귀족들에게 속했다. 눈물. 예수처럼 바울도 울었다(고후 2:4; 참조 요 11:35). 그는 유대인 형제들이 나라를 상실한 일을 슬퍼했다(롬 9:1~5; 참조 눅 19:41, 42). 그는 그들이 진리의 길에 장애물을 놓는 것을 슬퍼했다. 그는 영혼들이 버려지는 것을 슬퍼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완고함을 슬퍼했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인 목자는 주위에 있는 잃어버린 영혼들로 인하여 슬퍼하며, 진리에 대한 그들의 반대에 대해 거룩한 열정이 솟아날 것이다. 시험. 헬라어 페이라스모이(peirasmoi). “시험하는 것들”, “시험들.” 벧전 4:12과 비교하라. 행 19장은 원수들의 반대에서 발생한 역경들이 진술되어 있다.섬긴 것. 헬라어 둘류오(douleuo-). “[노예로서] 섬기다.” 바울은 종종 이 단어와 명사 둘로스(doulos), “종”, “노예”를 그리스도와 관련된 자기 자신에게 적용했는데, 그럼으로써 그의 마음과 의지가 주님께 완전히 속해 있음을 나타낸다. 그가 행한 모든 것은 그리스도, 그의 주인에게 속했다. 자신의 이익이나 세상의 어떠한 관심도 그가 섬기는 그리스도와 비교될 수 없었다. 꺼림. 헬라어 휘포스텔로(hupostello-). “아래에 두다” 그러므로 “숨기다”, “억압하다.” 이 단어는 일찍이 돛을 감는 데 사용되었다. 바울은 노력하고 활동하는 데 몸을 아끼지 않았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또한 가르치고 권고하기를 꺼리지 않았고 진리를 감추지 않았다(참조 27절).
23. 성령이…내게 증거하여. 이것이 직접적인 계시에 의한 것인지(참조 16:6, 7 주석) 혹은 21:4, 11에서처럼 선지자의 예언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바울이 마음에 계속해서 깊은 감명을 받은 것에 의한 것인지 언급이 없다.
24. 달려갈 길. 헬라어 드로모스(dromos). “경주”, “경주로”, “인생살이” 또는 “임기”, “경력.” 자기 앞에 펼쳐진 경주를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 바울은 스스로를 산 제사(롬 12:1)로 드리고 있었다. 고별 편지에서 그는 자신이 그러한 길을 마쳤음을(딤후 4:7) 주장했다. 그렇게 그는 히브리인들에게 그들 앞에 당한 “경주를 인내[참음]로써 경주”하라고(히 12:1) 권고했다. 바울은 그렇게 삶을 경주하고자 했기 때문에, 마지막에 부주의나 무관심으로 인한 소홀함이나 실패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그는 그의 생애를 깨끗한 양심으로 마치기를 원했다. 사명. 헬라어 디아코니아(diakonia). “봉사.” 이 단어에서 영어 단어 “deaconate”(집사)가 파생되었다. 여기서는 교회의 직분이 아니라 하나님께 바쳐진 봉사를 의미한다. 충성스런 봉사가 바울의 주된 원칙이었고 그는 그의 “아들” 디모데에게도 동일한 헌신을 권고했다(딤후 4:5). 귀한 것. 내 자신의 소망에 가치 있는 것. 어떤 개인적인 선택이나 소망도 바울을 꾸준한 사역의 특권에서 떼놓을 수 없었다. 그는 그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그리스도의 종이었다(롬 1:1). 어떤 것도 그가 의무를 소홀히 하도록 유혹할 만큼 중요하지 않았다. 이것은 구주의 정신이었고 초기 그리스도인의 정신이었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바울은 여기서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으나, 의심할 여지없이 에베소에서 온 장로들과 밀레도와 에베소의 교회들이 그를 다시 보지 못할 것으로 믿고 있다. 이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위험들을(행 20:22, 23; 롬 15:30, 31)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수 있으며, 로마와 스페인을 방문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행 19:21; 롬 15:23~28)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바울은 1차와 2차 로마 투옥 사이(빌 1:25~27; 몬 22절)에 밀레도와 에베소는 아니더라도 마게도냐와 아시아로 돌아왔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때 이것에 관해서는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27. 꺼리지 않고. 참조 20절 주석. 인기 없는 진리로 인해 빚어지는 두려움이나 인기에 대한 쓸모없는 갈망이 바울의 봉사를 방해할 수 없었다. 진리를 부끄러워하거나 위장하는 일은 없었다. 하나님의 뜻. 즉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 바울은 이 계획을 스데반의 설교(참조 7:54~58)를 통해 최초로 듣고 그리스도에게 친히 들은 것 같다(행 9:4~6; 갈 1:15~20). 그는 사람들 앞에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사망하신 목적, 그의 부활과 승천, 대제사장으로서의 하늘 성소 사업 그리고 중보 사업의 마지막에 그의 백성들을 데려가기 위해 다시 오리라는 약속의 목적을 제시했다. 이것이 바울이 로마서에서 명확히 제시하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28. 양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고전 12:12~27; 엡 4:12), 하나님의 성전이요(고전 3:16, 17), 주의 신부다(엡 5:23~32). 하지만 더 친숙하게는 하나님의 양떼이다(요 10:11~16; 참조 벧전 5:4; 히 13:20). 그러므로 그들은 쫓겨나지 않고(요 10:26~30) 인도를 받아야 하며, 착취되지 않고 공급받아야 한다(시 23; 요 10:7~14; 벧전 5:2). 파스토르(pastor, 목사)는 “내가 먹이다”라는 동사 파스코(pasco-)에서 온 라틴어 단어이다. 성경에 아주 선명하게 제시된, 호소하는 듯한 선한 목자는 복음 사역자의 모본이다. “온”은 모든 양떼와 각 양을 의미하는데,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약 2:1~9). 자기 피로. 헬라어 원문이 분명하게 지적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의 [아들의] 피로”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이 번역은 앞에서 소개한 “하나님의 교회”라는 독법에 적합한 반면, 다른 번역은 신성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하거나(다른 참고 문헌들이 명확히 하는 개념) “주의 교회”라는 독법에 적합하다. “피는 생명”이다(신 12:23). 피가 흘려지면 생명은 끊어진다. 희생동물의 피가 땅에 흘려지고 죽는 것은, 죄인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한다. 그러므로 갈바리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은, 아버지와의 분리로(마 27:46; 요 19:34, 35) 그의 심장이 터져 물과 함께 피가 나올 때 “구원하는 피”(고전 1:17, 18), 피로 사신 일(행 20:28) 그리고 깨끗하게 하는 피(요일 1:7)로 일컬어진다. 그리스도는 구원을 가능케 한 속죄제물로서 죽으셨기 때문에 교회는 특별한 헌신과 관심으로 목사들의 관리를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처럼 목사는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한 봉사에 자신을 바쳐야 한다.
29. 내가 떠난 후에. 바울은 그가 함께 세운 교회들의 후견인으로 일해 왔다.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와 여호수아 후에 생존한 장로들이 사는 날 동안에는 신실했으나(삿 2:7) 후에는 배교했다. 바울이 떠남으로 그들에게 위험이 많아질 것이다.
30. 너희 중에서도. 교회 외부로부터 양떼를 공격할 앞 절에 나타난 “이리”는, AD 400년경 일반에 널리 퍼져 있던 그리스도교를 급진적으로 변질시킨 유대화주의자들과 이교의 영향력을 대표한다. 이제 바울은 데마(딤후 4:10), 후메내오, 빌레도(딤후 2:17)와 같은 내부에서 오는 배교의 영향력에 대해 경고하는데, 그들의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짐 같으며”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렸다.
31. 일깨어. 바울이 틀림없이 인식하고 있었을 주의 권고(마 24:42; 25:13)를 의미심장하게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울이 방금 “감독자”(참조 20:28 주석)라고 부른 에베소 장로들에게 이렇게 설교하는 일은 매우 적절했다. 바울은 교회를 지도하고 목양하는 자들의 특징이 되어야 할 경계를 강조한다. 삼 년. 바울은 삼 년 동안 에베소 교회 앞에 경계의 모본을 보여 주었다. 사도행전의 역사에는 회당에서 설교한 3개월(19:8), 두란노 서원에서의 2년(10절), 데메드리오의 폭동 바로 전후의 분명치 않은 기간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과 잘 알려진 유대인의 포함식 계산법(참조 제2권, 83, 84)은 “삼 년”이라는 바울의 일반적인 언급에 충분한 설명이 된다. 참조 61쪽. 눈물로. “감정을 나누는 일”이라는 뜻 그대로 바울의 깊은 동정심은 그의 기록 많은 부분에서 밝혀진다(참조 행 20:19; 고후 11:29). 바울은 목회적 능률과 열심에 대해 강도 높게 말하고 있으나 장로들 중 누구도 그의 언급을 논박하지 않는다.
32. 은혜의 말씀. “그의 은혜로운 말씀”을 의미하는 형용사구로 볼 수도 있다. 유사한 표현은 “그의 능력의 말씀”(히 1:3) 또는 우주를 지탱하는 힘이 있는 “그의 능력 있는 말씀”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의 은혜의 말씀”은 그를 믿는 자들의 구원을 이룰 수 있다(유 24절). “은혜”(카리스[charis])라는 단어는 고후 12:9에서와 같이 종종 “능력”(뒤나미스[dunamis])이라는 단어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말씀”(로고스[logos])이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격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가 말할 때 그의 말씀에는 은혜뿐만 아니라 능력이 충만하다(참조 약 1:21; 히 4:12; 렘 23:29). 카리스에 대한 논의를 보려면 롬 3:24 주석을 참조하라. 부탁하노니. 헬라어 파라티쎄미(paratithe-mi). “곁에 두다”, “위임하다.” 여기서는 “위탁하다”(벧전 4:19)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울에게는, 그리스도의 날까지 믿음의 “의탁” 또는 “맡겨 놓은 것”(파라쎄케[parathe-ke-])이 된, 그들이 받은 진리(딤후 1:14)를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교사들(딤후 1:14)이 있었다. 기업. 이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 분배를 가리킨다(수 14~19장).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믿음 부족으로 그들의 땅을 성공적으로 차지하는 데 실패했다(삿 1장; 2장; 히 3장; 4장). 하나님의 자녀의 기업은 분명히 히브리인에게 할당된 소유로 간주되어야 하며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확실히 주장되어야 한다. 에베소인의 기업에 대한 바울의 사상 전개를 비교하라.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받은 구원의 서약이 되는 “우리 기업에 보증”(엡 1:14)이 있는데, 그것은 현재 그리스도인의 영적 소유로서의 “성도 안에서 그 기업”(엡 1:18)과 그리스도의 재림시 들어갈(마 25:34; 눅 12:32), “하나님 나라에서” 얻을 “기업”(엡 5:5)이다. 재림시 하나님의 성도들은 하늘에 들어가서 1,000년 동안 통치할 것이고(살전 4:16, 17; 계 20:4), 그 후 새로 창조된 땅에서 살 것이다(계 21:1~4).
33. 내가…탐하지. 사무엘이 그의 백성들에게 한 호소와 비교하라(삼상 12:3~5). 바울과 사무엘 둘 다 불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변명을 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정직함을 잃고 타락했다(삼상 8:3). 바울은 “탐심의 탈”(살전 2:5; 참조 고후 7:2; 12:17, 18)을 썼다고 비난받았다. 바울은 그의 복음사역에 대하여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었으나(고전 9:13, 14) 탐욕의 비난을 받지 않으려고(고전 9:12, 15)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미치는 그의 두드러진 영향력으로(참조 갈 4:13~15) 바울은 자신의 부를 위하여 물질적인 이익을 얻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울은 “비천에 처할 줄도”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았다(빌 4:12). 그는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하기를”(빌 4:11) 배웠다. 그는 고린도인들에게서 어떤 “이”(利)도 취하지 않았다(고후 12:17). 그는 빌립보인들에게서 어떤 “선물”도 바라지 않았다(빌 4:17). 바울은 지원을 바라기보다 그의 손으로 일했다. 그러므로 그는 다음 절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그의 노력이 실제로 다른 사람들의 부에 대한 탐욕 때문이었다는 비난에 대한 변호로 이 사실을 말한다. 은이나 금이나 의복. 동방에서는 흔히 이런 것들을 소유하고 있으면 부유하다고 간주했다. 나아만(왕하 5:5)과 다른 이들(창 24:53; 45:22; 왕하 7:8; 참조 마 6:19; 약 5:2, 3)의 경우에도 그러했다.
34. 이 손으로…당하여. 자급하는 바울의 습관을 가리키며, 탐욕의 비난에 대한 부분적인 변호로 소개된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장막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18:1~3). 그는 이전에 에베소에서 친히 손으로 일했고(고전 4:12) 데살로니가에서도 일했다(살전 2:9; 살후 3:8). 이 절은 그가 에베소에서도 이와 같이 일했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바울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한 사람들과 그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일했다. “자주 나는 병”이 있었던 디모데(딤전 5:23)는 그들 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교회가 아직 목사들을 부양하는 방법을 세우지 못한 때에 복음을 전하는 동안 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일해야 하는 것을 조금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약한 사람들. “아픈 자들”, “고통받는 자들.” “믿음이 약한” 자들(롬 14:1)에게 적용될 수도 있지만, 바울이 방금 여기서 육체노동에 대해 말했기 때문에(행 20:34, 35) 여기서는 “약한” 사람이 문자적으로 가난하고 병약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피할 수 없다. 이 절의 뒷 부분도 같은 결론을 내리게 한다. 사도 교회 신자들은 그 후 어느 시대 사람들보다 이러한 책임에 잘 준비되어 있었다(참조 6:1, 2 주석). 복이 있다. 축복에는 “주고받는” 양면이 있다. 필요가 영적인 것이든 육신적인 것이든 복을 받은 자는 행복하다. 그러나 주는 자에게 더 큰 복이 있다. 나눔에는 기쁨이 있다. 주는 자는 자신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본성의 좋은 부분을 활용하게 되며,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마 25:34~40). 하나님은 무한한 공급자라는 점에서(창 22:8~13; 시 23장; , 34), 주는 것은 하나님과 같은 행위이다.
[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2]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3]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8]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13]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14]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15]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16]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내용 요약
1. 고린도에서 드로아까지 (1-6)
2. 드로아에서 밀레도까지 (7-16)
3. 밀레도에서의 설교 (17-38)
배 경
드디어 3차에 걸친 10년동안의 긴 전도 여행이 끝나고 바울은 귀향 길에 오른다. 이제 바울의 나이도 50대 중반이 되어 있었다. 에베소에서 은장색 소요가 있은 후 바울은 고린도에 가서 3개월을 머물면서 (20:3) 유명한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쓴다. 그리고는 죽음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귀향 길에 오르는 것이다.
바울은 이방 교회들이 낸 거액의 돈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을 유대의 사업에 책임을 진 형제들에게 전달하고자 하였으므로 연금을 낸 여러 교회를 대표하는 이들 형제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을 가고자 준비하였다.(행적 390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큰 위로와 힘이 되었던 경험이 있으면 나누어 보아요.
심히 졸아서, 낭패를 경험한 적이 있나요? 또한 당신은 어떨 때 가장 졸음이 오나요? (당신은 잠을 이길 수 있는 편입니까? 그렇지 못한 편입니까?)
어떤 사람이나 물건을 보면서 큰 위로가 되는 경우가 있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함께 가는 자”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왜 이들과 함께 가려고 했을까요?(20:4)(4절 주석참조)
드로아에서 모였던 안식후 첫날 집회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이 초대교회가 첫날을 정기적으로 준수한 증거가 되는지 말해 봅시다. 이 구절은 일요일을 지키는 교회에서 신약시대에 벌서 일요일에 모였다는 성경상 증거로 내세우는 세 성경절 중 하나입니다. (행20:7, 고전16:2, 계1:10) ① 바울은 이미 투옥과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으므로 드로아에서 일주일 머무는 동안 날마다 집회를 가졌을 것이다. ② 유대인의 하루는 해 질 때부터 다음날 해질 때까지이므로(레23:32) 안식 후 첫날 저녁은 토요일 저녁이다(새번역 성경, Good News Bible). ③ 이 때를 일요일 저녁이라고 억지를 쓸 경우라도 일요일 준수의 증거는 되지못한다. 그것은 밤이고 이미 성경상 둘째 날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④ 이 집회는 송별 집회로서 바울이 어느 날에 떠나더라도 그 전날 가졌을 모임이어서 전혀 정기 집회의 성격이 없다. ⑤ 떡은 날마다 라도 떼었다. (행2:46)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유두고)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습니다.(20:12) 무엇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었을까요?
바울이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가려고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20:16)
생각해봅시다.
내 삶에서 가장 큰 위로가 되는 이적은 무엇인가요? 이를 통해 내가 경험한 하나님은 어떤 존재이신가요?
인생을 여행길에 비유한다면 현재 내 인생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고후 1:3-5, 개정)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2. 그 지경으로. 의심할 여지없이, 바울은 그 자신이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그리고 빌립보에 세웠던 교회들을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었을 것이다. 바울은 틀림없이 마게도냐를 가로질러 로마가 닦아 놓은 도로를 따라 서쪽의 아드리아 해안으로 갔고, 일루리곤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참조 롬 15:19, 참조 416쪽 지도). 헬라. 헬라어 헬라스(Hellas), 그리스. 누가는 남쪽 지역인 아가야와 같은 뜻으로 헬라스를 사용한다. 바울은 여행을 계속하여 아가야 지방의 수도인 고린도에 당도했고, 그곳에는 교회 안에서 질서를 바로잡아야 할 많은 일이 있었다. 거기에 있는 성도들은 이미 그가 보낸 두 편지서를 받았다. 에베소에서 보낸 첫 번째 편지서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 나타난 분당의 정신을 꾸짖었다. 또한 바울은 주의 만찬에서의 무질서를 꾸짖었으며, 근친상간에 반대하는 그의 견해를 제시했다. 바울이 직면한 목회적 과업들은 설령 고린도에서만 모든 시간을 보냈다 해도 이 지역에 머무는 3개월 동안 휴식을 거의 허락하지 않을 것이었다. 고린도에 거하는 동안, 바울은 아마도 많은 친구를 그리워했을 것이다. 글라우디오의 칙령은 철회되었거나 더 이상 강제성을 갖지 않았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에베소에서 로마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참조 행 18:18, 19; 롬 16:3). 바울이 고린도에서 교분을 쌓았던 다른 사람들도(참조 롬 16장) 이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이 로마로 가려는 그의 열망을 강화시켰을 것이다(; 롬 1:10, 11). 바울은 그리스에서의 사업을 이루었다. 그는 자신을 서쪽으로 끌어당기는 인간적 매력 이상의 것을 느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잠시만 머무를 목적으로 속히 예루살렘에 가서, 이방에 있는 교회들이 준 선물들을 넘겨 준 후 즉시 로마와 스페인으로 여행하고자 계획했다(롬 15:24~28). 사도행전의 나머지 부분은 사실상 그가 어떻게 다른 경로로 여행했는지를 보여 준다.
3. 석 달을 있다가. 또는 “그가 석 달을 보낸 후에.” 헬라어 구문상, 이 구절은 뒤따라 오는 부분과 연결된다. 배 타고 수리아로. 즉 “수리아를 향해 항해를 시작하다.” 바울은 아마도 그의 여행경로를 잡고 승선까지 했던 것 같으나 배가 떠나기 전 경고를 받았다. 유대인들이…공모하므로. 즉 “그에 대하여 유대인들이 만든 책략.” 유대인들은 바울이 고린도를 마지막으로 방문하는 동안 그를 공격하는 데 갈리오를 끌어들이려고 했고, 이제는 비밀리에 그에게 복수하고자 했다. 분명히 그를 죽이려는 의도였다. 바울은 그 음모에 대하여 들었을 때 계획을 바꿔 동료들과 함께 마게도냐로 떠났으며, 그 공모자들을 좌절시켰다. 마게도냐로 다녀.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는 분명히 그가 수리아로 가는 뱃길에서 실행될 것이었기에, 북쪽으로 가려는 그의 신속한 계획 변화는 새로운 상황에 따르는 새로운 음모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4. 아시아까지. 이 표현의 생략을 지지하는 중요한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를 인용할 수 있다. 함께 가는 자는. 디모데와 아마도 소바더(소시바더의 다른 이름이라 추정됨)가 고린도에서 바울과 함께 있었을 것이다(롬 16:21). 대표단의 규모는 유대에 있는 교회들을 위하여 계획된 많은 금액을 바울이 가지고 가고 있었다는 사실로 설명할 수 있다. 바울이 돈을 기부한 지역들의 많은 증인을 데려감으로써 비방자들이 그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행할 수 있는 어떠한 의심도 피할 수 있었다(고후 8:19~21). 그러므로 대표자들은 유력한 교회들에서 택해졌고, 그들은 바울의 처신에 나무랄 데가 없음을 증언할 수 있었다. 누가를 포함하여 바울과 동행한 사람은 8명이었다(참조 5절 주석).
5. 우리를 기다리더라. 이 성경절에서 갑자기 1인칭 복수로 바뀐 것은, 자신의 이름을 결코 언급한 적이 없는 누가가 바울의 동료 명단에 그 자신이 포함되어야 함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는 아마도 빌립보 교회의 대표자로, 또는 바울의 친구이자 의사로서 포함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기다림은 바울로 하여금 빌립보에서 유월절을 지킬 수 있게 했고, 그는 그곳에서 “무교절 후에”(6절) 출발했다. 앞서간 제자들은 드로아 교회에게 바울이 오는 것을 알렸을 것이고 그의 도착에 맞춰 그를 맞이하기 위해 모두 모였을 것이다.
6. 무교절. 바울은 유대인의 절기 때문에 빌립보에 의도적으로 머무른 것으로 보인다. 유월절 기간에 유대인이요 바리새인(23:6)인 바울이 큰 종교적 감동으로 계속 충만해 있었을 것에 틀림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유월절 기간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기간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참조 고전 5:7, 8). 닷새 만에 드로아에. 드로아에서 빌립보로 향하는 서북향의 항해는(참조 16:11, 12 주석) 사흘 길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 동남쪽을 향해 항해하는 이 배는, 다르다넬스 해협에서 형성된 남서해류와 봄에 에게 해(Archipelago, 참조 416쪽 지도)에서 일어나는 북동풍을 만나야 했다. 바울이 유럽으로 건너가도록 하는 마게도냐의 부르심에 대한 이상을 보았을 때, 그는 누가와 디모데와 함께 드로아에 있었다. 소바더와 아리스다고와 세군도는 하나님께서 마게도냐에서 그들의 일에 은혜를 베푸신 열매의 일부를 대표했다. 이레. 바울과 누가는 드로아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아마도 그들은 에게 해를 건너 5일간의 항해 끝에 안식일이 지난 후 상륙한 것 같다. 그들이 드로아에서 보낸 7일, 즉 완전한 일주일은 안식일로 끝났다. 다음 날, 즉 그 주의 첫째 날에 바울은 걸어서 앗소에 가려고 계획했고(13절), 나머지 동료들은 배를 타고 앗소로 향했다. 안식일이 끝나는 시점과 이른 아침 출발 사이, 선교사들은 드로아에 있는 교회에서 꽤 오랫동안 중대한 모임을 가지면서 그 주 첫째 날의 어두운 부분, 즉 토요일 밤을 보냈다.
7. 안식 후 첫날. 유대식 시간 계산법에 따르면 이날은 이미 그 주일의 둘째 날이 된다. 누가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 표현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엘리코트(Ellicott), 코니비어(Conybeare), 하우슨(Howson) 그리고 A. T. 로버트슨(A. T. Robertson)을 포함한 다른 주석가들은 이 모임이 일요일 전날 저녁에 있었다고 이해했다. 유대식 시간 계산법에 의하면 하루가 일몰에서 시작하므로 안식 후 첫날의 어두운 시간은 일요일 전날 저녁, 즉 오늘날의 토요일 저녁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계산법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수 세기 동안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누가가 이방인이든 아니든 그의 이야기에서 이 방법을 사용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따라서 드로아에서의 바울의 모임은 토요일 저녁 일몰 후에 시작되었고, 그 밤 내내 계속되었을 것이다. 그 이튿날, 일요일에 그는 걸어서 앗소로 갔을 것이다. 어떤 저자들은 이 표현을 가지고 초기 그리스도인이 일요일을 준수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누가가 유대식 시간 계산법을 썼느냐 혹은 로마식 시간 계산법을 썼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이 모임이 “안식 후 첫날”에 있었음을 명백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유대인의 계산법을 사용했다면 일요일이 되기 전날 저녁은 첫째 날로 간주되었을 것이며, 그가 만약 로마식 시간을 사용했다 해도 일요일 저녁은 여전히 첫째 날이었다. 초기 그리스도인이 일요일을 준수했느냐는 문제에서, 중요한 요소는 이 첫째 날 모임이 정규적인 그리스도인 모임인가 아니면 단순히 바울의 방문으로 인하여 첫째 날에 이러한 일이 우연히 일어났는가 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 이야기를 고려해 볼 때, 이날이 주중 첫째 날이기에 바울이 특별히 이 모임을 열었다는 견해를 지지할 만한 근거는 없다. 그는 드로아에서 7일을 거했으며 거기서 이미 한 번 이상 성도들을 만났을 것임이 틀림없다. 이제 그는 떠날 입장이었고, 그 전에 고별 모임을 갖고 성찬식을 거행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지극히 논리적이다. 이 일이 주중 첫날에 있었다는 누가의 표현은, 명확한 일요일 준수에 대한 기록이라기보다는, 이 여행에서 묘사하고 있는 일련의 연대기적 전체 기록들과 조화를 잘 이룬다(참조 20:3, 6, 7, 15, 16; 21:1, 4, 5, 7, 8, 10, 15). 그러므로 이 절을 이해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이 모임이 일요일이어서가 아니라 바울이 “떠나고자 하여”(20:7) 사람들이 모였던 것이며, 누가는 유두고 사건 때문에 이 이야기를 포함시켰고, 이날이 “안식 후 첫날”이었다는 기록은 단순히 여행에 대한 바울의 연대기적 기록의 한 부분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 절을 초기 그리스도인의 일요일 준수에 대한 증거라 평가하는 것에 대해 저명한 교회사학자 아우구스투스 네안더(Augustus Neand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성경절이 일요일 준수에 대하여 전적인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도가 떠날 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에 그 작은 교회가 형제애를 나누는 고별식사로 모였을 것이며, 그 경우 일요일을 특별히 기념할 일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차제에 사도가 마지막 기별을 전한 것이기 때문이다(The History of the Christian Religion and Church, tr. Henry John Rose, vol. 1, 337). 밤중까지. 그들은 야간 고별예배로 모였다. 그러나 교제의 기쁨과 바야흐로 사도가 그들을 떠난다는 사실이, 통상적인 시간보다 훨씬 오랫동안 강론을 계속하게 했다. 형제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바울이 떠나기 전 그들에게 베푸는 비공식 영적 잔치를 전적으로 즐기고 있었다.
8. 등불을 많이. “등” 즉 기름으로 채워진 “남포등”(참조 마 25:1, 3 주석)은 분명히 두 가지 이유로 여기 언급되는데 (1) 열기와 연기로 밀폐된 방에서 그로 인한 유두고의 졸음을 설명하기 위해, (2) 그리스도인들의 저녁 모임에서 음란한 방종을 자행(恣行)했다는 비난에 대한 간접적인 대답을 제공하기 위해서이다(Tertullian Apology 8).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등불이 설교자 가까이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9. 유두고. “행운”을 의미한다. 이 이름은 벨릭스(Felix), 펠리치아(Felicia), 펠리치스무스(Fellicissmus), 브드나도(Fortunatus), 파우스투스(Faustus), 펠리치타스(Felicitas), 순두게(Syntyche) 등 유사한 뜻을 가진 이름들처럼 명각에 자주 나타나는데 특별히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자유민 가운데서는 보편적이었다. 청년. 헬라어 네아니아스(neanias). 엄격히 말하면 24세에서 40세 사이의 남자. 그러나 아마 여기서는 좀 더 융통성 있게 사용되었을 것이다(참조 12절 주석).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문자적으로 “졸음에 정복당하다.” 분명히 기름 등불의 열기와 연기로 인해 공기가 탁해졌으며 그 젊은이는 더 이상 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삼 층 누. 헬라어 트리스테고스(tristegos). “3층 지붕.” 오늘날로 말하면 “4층”에 해당할 것이다. 떡을 떼어 먹고. “그들은 만찬을 들었다”(사도행적, 391). 참조 행 2:42 주석; 마 26:26~30; 행 2:46; 고전 11:23~30. 이 성찬식은 계획된 행사였지만, 밤중까지 계속된 강론은 아마도 자연스레 이루어진 것 같다(참조 7절 주석). 날이 새기까지. 그 위도에서 유월절 직후 일출은 아침 5시와 6시 사이였다. 이야기하고. 헬라어 표현상 일상 대화와 구별되는 친밀한 대화를 의미한다.
12. 살아난. 9절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가 실제적인 죽음을 가리키지 않았다면 이 단어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의사 누가는 죽은 사람의 생명의 회복에 대한 기적을 이야기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강조를 위해 부정어를 사용하고 있다. 즉 “크게 위로를 얻었더라.”
13. 우리는 앞서. 누가를 포함한 바울의 동료들은(참조 4절) 바울이 드로아에서 도보로 출발하기 전에, 먼저 배로 여행을 시작했다. 이 동료들이 그 저녁 모임에 참석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14. 미둘레네에 가서. 한때 카스트로(Castro)라 불렸던 그 도시는, 당시 레스보스 섬의 수도로 천연적인 위치와 빼어난 건물들로 인해 아름다웠다. 레스보스 섬은 둘레가 약 270킬로미터로 에게 해에 속한 섬 중 가장 크며, 지중해에서는 일곱 번째로 크다.
15. 기오 앞에. 또는 “맞은 편에.” 기오(Chios, Coos) 섬은 레스보스 섬과 사모 섬 사이에 위치해 있다. 미둘레네에서 기오 섬까지는 배로 하루가 걸렸다. 사모. 리디아 해안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섬으로, 기오 섬에서 배로 하룻길이었다(참조 416쪽 지도). 밀레도. 항구 도시(참조 416쪽 지도). 초기에 이곳은 그레데에서 온 이주민들이 거주하기 시작했고, 점차 활동적인 이주민의 중심지가 되면서 정치적, 상업적으로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이곳은 에베소에서 약 52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바울의 동료들은 앗소를 떠난 지 3일 후 이곳에 도착했다.
16.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즉 배에서 내리지 않고 지나갔다는 뜻이다. 오순절까지 예루살렘에 도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시간을 절약해야 하는 바울은, 에베소에 들림으로 많은 시간이 소비되는 것을 피하고자 했던 것 같다. 오순절. 참조 2:1 주석. 바울이 오순절까지 예루살렘에 가기를 왜 그렇게 원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아마도 당시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올라오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운집은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는 구제금을 나누어 주는 일에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또는 이전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 이 절기가 바울에게 특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그는 유월절까지 여행을 마치지 못했으며(20:6), 그가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음 절기 이전에 그곳에 도착하기를 원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27]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31]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32]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34]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35]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37]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38]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내용 요약
1. 에베소 전도 (1-20)
2. 은장색 사건 (21-41)
배 경
바울은 다시 5년 동안이나 걸린 제3차 전도여행을 떠난다. 이번에는 바로 에베소로 직행하여 3년을 유하면서 눈물로 전도한다.
데메드리오는 그의 연설에서 “우리의 이 영업”에“위험이 있”다고 말하였다. 이 말은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의 참 원인과 또한 사업을 수행하는 사도들을 따라다닌 대부분의 박해의 원인을 나타낸다. 데메드리오와 그의 동업자들은 복음의 가르침과 전파로 인하여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업이 위태롭게 된 것을 알았다. 이교의 사제들과 직공들의 수입이 위태롭게 되었다는 이유로 그들은 가장 신랄하게 바울을 대적하였다.(행적 295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가고 싶은 곳이 있나요? 왜 그곳에 가고 싶나요?
2. 남들이 다 하고 있기 때문에 생각 없이 따라하고 있는 것이 있나요?
3. 가장 이성을 잃어버리고 행동한 적은 언제인가요? 그렇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바울은 로마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의논하여 봅시다.(21)(주석참조)
바울은 로마로 가고 싶은 것이었을까요? 명령(행1:8)에 대한 사명의 발언이었을까요?
2. 은장색사건의 전말은 무엇입니까?(21-41)
* 이 소동이 일어나자 3년 동안의 에베소 전도는 끝나게 되었다. 은감실이란 에베소 사람들이 섬기는 아데미 신전의 작은 은제 모형을 말하며 은장색이란 은감실을 만드는 은 세공업자를 말한다.
3. 왜 사람들은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연극장에 가두었을까요?(29)
생각해봅시다.
1. 바울이 에베소에서 취한 선교방법을 재차 확인하고, 에베소사회에 어떤 영적 영향력을 끼쳤는지 생각해봅시다.
2. 옳지 않은 일로 선동하거나 선동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봅시다.
계속적인 반대의 폭풍우와 원수들의 부르짖음과 동지들의 저버림 가운데서 담대한 사도도 거의 낙심하였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를 돌아보고 새로운 열심을 가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전파하는 일에 전진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보다 먼저 밟으신 피묻은 길을 밟고 가는 데 불과하였다. 그는 구주의 발아래서 그의 갑옷을 벗을 때까지 싸움에서 물러나기를 구하지 아니하였다.(행적 297p)
21. 이 일이 다 된 후. 이 일이 있은 후 에베소의 많은 사람이 교회로 모여들었다. 놀라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 도시와 교회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었다. “믿는” 자들은 개혁을 경험했고, 악의 도구들이 극적으로 파괴되어 도시 전체의 주목을 끌었다. 이제 사업은 굳건히 섰고, 따라서 바울은 도시를 떠나도 되겠다고 느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여기서 한 결심의 배경을 보여 준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보낸 몇 년 동안 마게도냐와 아가야 교회들과 꽤 자주 소식을 왕래했는데, 그를 근심하게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편지가 현존하지 않지만,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그들 중에 거하는 편만한 음행의 죄를 경고하는(고전 5:9~11) 편지를 보낼 필요를 느꼈다. 글로에의 집 사람들이 분쟁 소식을 가져 왔고 심각한 무질서와 교회의 징계 부재, 심지어는 근친상간 문제(고전 1:11; 5:1; 11:18~22)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에는 바울의 직접적인 대처가 필요했다. 또한 그는 팔레스타인에 있는 가난한 유대인 그리스도인 신자들에게 보내는(참조 고전 16:1; 고후 8:1~4) 이방 교회들의 기부금을 전달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다시 방문하고자 했다.
로마도 보아야. 로마에 가고자 하는 그의 갈망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이다. 로마를 방문하려는 계획(참조 롬 1:13; 15:23)은, 그가 이방인을 위한 사도(22:21)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이런 갈망을 수년간 지니고 있었을 것임을 보여 준다. 제국의 수도에 가고자 한 그의 갈망은 다른 곳에서 알게 된 로마에 있는 많은 친구들(롬 16:1~15) 때문에 고조되었음이 분명하다. 바울에게는 자신이 제국의 큰 중심지에서 증거하기 전에는 그의 사역이 끝마쳐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소망이 여태껏 좌절되었다. 이제 그는 에베소를 떠나면서 로마뿐 아니라 서바나에도 꼭 가려 한다(롬 15:28)고 말했다.
에라스도. AD 1세기 중반 것으로 추정되는 도로 포장 벽돌이 고린도에서 발견되었는데, “에라스도는 조영관(造營官, aedile, 옛 로마의 공공 건물, 도로, 공중 위생 등을 관장하던 관리-역자 주)이 된 답례로 사비(私費)를 들여 [포장 도로]를 놓았다”라는 명각이 새겨져 있다.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 에라스도를 이 성경절에 언급된 사람과 동일하다고 본다(참조 롬 16:23 주석; 딤후 4:20).
아데미. (「제임스왕역」에는 “Diana”[다이애나]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헬라어 아르테미스(Artemis). 여기에서 「제임스왕역」 번역자들이 헬라어 본문에 나타나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에베소의 신과 어느 정도 동일시되는 로마의 여신 다이아나의 이름을 사용할 적절한 이유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초기 시대부터 원래 아시아의 종교인 아데미 숭배는 에베소가 중심지였다. 헬라인들이 소아시아에 식민단을 보냈을 때 이들이 이러한 종교의 형태가 이미 확립되어 있는 것을 알고 그 예배에서 발견한 어떤 유사성 때문에 아시아의 신에게 헬라의 여신 아데미의 이름을 부여했다. 수 세기 동안 에베소에서 우상숭배에 가해진 타격 중에 사실상 최초의 타격은, 바울이 이 도시에 거하는 동안 이루어졌다. 이상한 일이지만, 다음 타격은 미친 네로에 의하여 이루어졌는데, 그는 로마에 있는 자신의 황금집을 예술 작품으로 장식하기 위하여 헬라와 아시아에서 물건들을 강탈할 때 에베소의 신전에서 아데미를 탈취해 갔다. 후에 트라야누스는 멋지게 조각된 문들을, 나중에 콘스탄티노플로 개명된 비잔티움에 있는 한 신전에 선물로 보냈다. 그리스도교가 번성함에 따라 아데미 숭배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고, 오래지 않아 아데미의 은감실도 대개는 황폐화되었다. 고트족이 AD 262년경 소아시아를 유린하였을 때 그들은 이데미 신전을 약탈하였고 수세기 후에 터키족이 완전히 파괴했다. 제국이 기독교화되었을 때 델피 신전과 에베소 신전은, 거룩한 지혜의 신을 기념하여 유스티니아누스가 콘스탄티노플에 세운 성 소피아 교회를 위해 재료를 제공하였다. 터키족의 침략 이래로 교회는 회교의 사원으로 사용되었다. 그것이 지금은 박물관이 되었다. 에베소의 쇠퇴로 인하여 그 신전의 부지는 지난 세기까지 불확실하였다. 발굴이 이루어져 신전 부지는 드러났고 그것과 관련된 많은 명각이 빛을 보았다.
은감실(silver shrine). 헬라어 나오이(naoi, 단수는 나오스[naos], 참조 마 4:5 주석). 대개 “신전, 성전”(temple)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모든 경우에 신의 임재가 임한다고 여겨지는 내전(內殿)을 가리켰고, 따라서 여기서도 여신상이 있는 내전을 의미할 것이다. 은으로 만들어진 작은 (혹은 테라코타) 신전 형상(“은감실”) 안에 조그마한 여신상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이 모형들은 집안에 두거나 부적처럼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었다.
벌이. 헬라어 에르가시아(ergasia). “일”, “사업” 또는 “사업으로 얻은 이익” 즉 이윤. 16:16, 19에서 이 단어는 빌립보의 주인들이 귀신 들려 점하는 소녀로 말미암아 얻은 “이익”을 가리키는 말로 두 번 사용되었다. 에베소 직공들은 그들의 이익이 사라지고 있었으므로 큰 소동을 일으켰다. 소동을 일으킨 자들 중 가장 사나웠던 데메드리오는 실제 작업은 하지 않고 사람을 많이 고용하여 수입 중 상당 부분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 아데미의 상(像)과 그것의 상징들은 은장색들에게 그 기예(技藝)를 사용할 풍부한 기회를 제공했을 것이다.
25. 모아. “은장색”으로 번역된 단어가 보여 주듯이, 데메드리오의 기술은 은감실을 조각하고 새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작업이 이런 최종 단계에 이르기 전에, 준비과정으로 재료는 많은 손을 거친 다음, 마지막으로 숙련된 기술자에게 가서 장식과 광택을 위한 마무리 손질이 이루어졌다. 이들 모두는 사업 손실의 위험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데메드리오의 연설에는 두려움의 빛이 역력하게 나타나지만, 그것은 10절에 언급된 바울의 성공적인 사역을 인정하고 있다. 이미 언급했듯이 그가 직접 가지는 않았지만 그의 편지들은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까지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버가모, 서머나,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부근에 있는 교회들이 요한계시록에 언급되었다. 복음이 이런저런 방법으로 소아시아라고 불리는 전 지역에 확산되었다. 플리니우스(Pliny)는 거의 반세기 후에 트라야누스(Trajan)에게 보낸 서신에서(Letters x. 96) 데메드리오와 유사한 표현을 사용한다. 그는, 신전은 “거의 버려졌고” 에베소 북동쪽 본도 지역에서 “단지 몇 사람만”이 희생제물을 구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27. 영업. 헬라어 메로스(meros). “부분”, “몫.” 즉 사업의 부문. 메로스는 25절에서 “업”으로 번역된 헬라어와는 다르다.
가이오와 아리스다고. 군중이 바울을 찾다가 찾을 수 없게 되자 이 두 사람을 붙잡은 것 같다. 이 마게도냐 회심자들이 신자들 속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바울이 이전 여행 때 그 지방에서 한 봉사의 지속적인 결과를 증명한다. 사도행전의 기록이 간결하다는 점 때문에, 이렇게 뜻밖에 삽입된 이 부차적인 언급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가이오”(Gaius)는 흔한 라틴어 이름인 “카이우스”(Caius)에 해당한다(참조 행 20:4; 롬 16:23; 고전 1:14; 요 3:1).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에서 왔으며(20:4; 27:2) 그가 지금 겪고 있는 이런 고난(참조 살전 2:14)을 이미 경험했을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행길에 바울의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이며(20:4) 아마도 마게도냐 지방에 있는 교회들의 대표자 자격이었을 것이다. 그는 로마에서 바울과 함께 투옥되었을 것인데(골 4:10), 바울의 동료 죄수로서 아니면 바울의 필요를 돕기 위해 투옥되었을 것이다. 다. 이 단어에는, 원래 형태 그대로 숭배되었거나 가장 초기의 조각에 사용된 운석을 가리키는, 훨씬 문자적인 의미가 들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아데미 상(참조 24절 주석)을 가리키지 않을 수도 있는데, 고대 여러 작가들에 의하면 아데미 상은 금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돌이 아닌 감람나무, 흑단, 삼목, 혹은 포도나무 등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38. 송사할 것이 있거든. 즉 만약 누구든지 특정한 고소거리가 있거든 그것들을 가져오게 하라. 그들이 주장한 대로 송사할 것이 있다면 법적 조치를 위한 근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구리 장색과 그의 친구들이 꾸민 폭동에는 변명할 것이 없었다.
재판 날도 있고. 헬라어 단어들은 복수형태이다. 이 구절은 “재판 날들이 정해져 있고” 즉 그러한 송사를 취급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의미이거나, 더 나은 표현으로는 동사 시제가 법적 소송의 기회가 지금 열려 있음을 암시하므로 “재판들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개정표준역」에는 이 의미를 따라 “재판들이 열려 있다”라 고 번역되어 있다.
총독들. 헬라어 안쒸파토이(anthupatoi, 참조 13:7, 8, 12; 18:12). 아시아는 총독의 관할하에 있는 속주였다(참조 6:9 주석). 이 구절에 나타난 난제는 이 단어의 복수 형태를 사용한 데서 생긴다. 왜냐하면 일정 기간에 한 속주에 한 명의 총독이 있었고, 따라서 서기장이 말할 때 에베소에도 한 명의 총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몇 가지 해석이 있다. (1) 총독의 법무 보좌관들(콘실리아리이[consiliarii])을 “총독들”로 적절히 묘사했을 것이다. (2) 서기장은 문제가 있을 경우 사법 조치를 받을 수 있는 제국의 제도적 장치에 대해 백성들에게 상기시키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마치 “총독들은 제국의 제도적 장치이다. 우리 지역과 마찬가지로 모든 속주에 고위 행정관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물적 손해를 배상받는 것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3) 이 복수 칭호는 근자에 총독 실라누스(Silanus)가 독살된 후(Tacitus Annals xiii. 1), 아시아에서 제국의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첼레르(Celer)와 헬리우스(Helius)를 의미할 수 있다. (4) 이웃 속주 즉 길리기아, 구브로, 비두니아에서 온 다른 총독이 에베소에 있었을 수 있다. 네 가지 해석 중 두 번째가 가장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고소할 것이요. 헬라어 엥칼레오(egkaleo-). 데메드리오와 그의 추종자들은 피고를 고소하려는 것에 대해 공식적인 진술을 제시하고, 피고는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이렇게 쟁점이 결정되면 양측은 각각 증인을 내세워야 한다.
39. 그 외에. 어떤 문제들은 재판을 위해 총독에게 보냈을 것이고, 다른 문제는 심의를 위해 민회로 보냈을 것이다.
41.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그는 자신의 직무상 권한으로 이렇게 할 수 있었다. 그의 마지막 주장이 청중에게 가장 비중있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들이 조금 전에 가담했던 이런 소요 사태가 로마제국에 보고된다면 자신들의 도시에 주어진 특권이 상실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서기장은 군중들을 진정시키고, 조용히 흩어져 집으로 돌아가도록 유도하였다.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침례니라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침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내용 요약
에베소 전도 (1-20)
은장색 사건 (21-41)
배 경
바울은 다시 5년 동안이나 걸린 제3차 전도여행을 떠난다. 이번에는 바로 에베소로 직행하여 3년을 유하면서 눈물로 전도한다.
“사도시대에 소아시아 서부 지방은 로마의 아시아도로 알려졌다. 수도 에베소는 대상업 중심지였다. 그 항구는 선박으로 꽉찼고 그 거리에는 각 나라에서 온 백성들이 가득하였다.” (행적, 276)
바울은 에베소 전도에 그의 전력을 쏟았으며 그 영향은 소아시아 전체에 미쳤다. 아시아의 일곱교회도 이때에 세워진 것이다. 에베소에 머무는 동안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기록한다.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한 가지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집중하므로, 여러 가지 일에 득을 본 적이 있나요(一擧兩得)?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희생한 적이 있나요?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혹은 양육하면서 얻은 보람이 있다면?
본문을 더욱 자세히
침례요한의 침례만으로 부족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1-7)
바울이 에베소에 전도한 방법을 3단계로 이야기 해 봅시다.(8-10) 또한 두란노에서 2년동안 머문 것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① ② ③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악귀를 쫓아내려고 했으나 도리어 위험을 당한 이유는 무엇일까요?(14-16)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은” 3가지 요소에 대하여 이야기해봅시다.(17-19)
생각해봅시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행한 전도법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내 삶 속에서 예수님와 가까워지면서 멀리하게 되는 것이 있나요?
말씀을 연구함으로 얻어지는 신앙적 성장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에베소 사람들은 마술책들을 불사름으로 저희가 한 때 좋아하였던 것을 이제 미워한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그들이 특별히 하나님께 범죄하고 그들의 특별히 하나님께 범죄하고 그들의 영혼을 위태롭게 한 것은 마술을 의존하였기 때문이었으며, 그와 같이 분개를 나타낸 것은 마술을 대적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참된 회개의 증거를 나타내었다.(행적 288p)
3. 요한의 침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 충분한 가르침을 받기 전에 아볼로나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어떤 사람이 베풀었을 것이다. 4절을 제외하면 이것이 신약에서 요한의 침례에 대한 마지막 언급이다.
4. 회개의 침례. 바울은, 요한이 가르친 것 즉 회개의 침례와 따라야 할 분을 믿는 믿음을 요약해서 말했으나, 이 에베소 사람들은 성령의 침례와 성령의 은사들에 대해 알지 못했으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대한 가르침도 부족하였다.
5. 저희가 듣고. 틀림없이 이 회심자들이 들은 것은, 예수가 메시야라는 단순한 진술이 아니라, 바울이 구약을 가지고 이것이 사실임을 입증하고 구약이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보여 주는 논증이었을 것이다. 여기 나타난 묘사는 간단하지만 그들의 회심이 갑작스러웠거나 충분한 가르침 없이 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름으로. “이름”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서는 3:16; 4:12 주석을 참조하라. 이것은 새롭고 핵심적인 진리를 받아들이고 재침례받은 사람들에 대한 일례다. 그러나 이것이 재침례를 자주 행하라는 보증은 아니다. 재침례는 아무렇게나 행해져서는 안 된다. 죄된 세상의 매일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경험하는 죄로부터의 정결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요일 1:9; 2:1, 2)로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며, 죄의 정결을 상징하는 세족 예식(요 13:4~10)으로 증거가 이루어진다. 그리스도 안에서 침례받은 사람에게 재침례는 단지 그리스도와의 교제에서 요구되는 신조와 기준에 명백한 배교가 있을 때 필요하다. 이러한 일반적인 규칙 외에 적용될 수 있는 예외는 여기에 묘사된 경우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푸는 침례는 구원의 계약 관계에 들어가는 서약으로, 영원하고 지속적인 경험을 의미한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사도행전에 기록된 침례를 받은 모든 사람이 공유한 경험이다. 이 경우 성령이 임한 것은, 완전히 아데미 여신에게 바쳐진 에베소를 온전히 그리스도께 바쳐진 곳으로 변화시켜 이 지역 전체가 향후 수 세기 동안 그리스도인 삶의 중심지가 되게 하기 위한 준비였다. 방언도 하고. 정확히 말해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고.” 이것은 오순절에 있었던 성령의 부어주심과 동일한 역사였다. 같은 절기에 예루살렘에서 이 은사가 제국의 모든 지역에서 모인 유대인에게 효력을 발휘했던 것처럼, 이제 이방인 활동의 중심지에 주어진 이 성령도 같은 결과를 낳음으로써 이러한 능력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 기별에 관심을 갖고 그리스도께 회심하는 자들이 더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에베소와 인근 지역에서 선교사로 일할 수 있는 자격과 소아시아로 나아가 복음을 선포할 자격도 갖추었다”(EGW RH Aug. 31, 1911). 예언도 하니. 정확히 말해 “예언하기 시작하니.” 이것은 구약의 예언 해석과 더 큰 설교의 능력을 소개함으로 더욱 확신 있게 복음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 사건에 대한 예언은 이 시점에서 그리스도의 사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이 단어가 반드시 미래 사건의 예언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8. 회당에 들어가. 사도 시대의 관습에 따라(참조 9:20 주석). 이런 방문들은 주로 안식일에 이루어졌음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먼저 바울은 안식일 준수자였고(참조 13:14; 16:13) 주중에는 노동을 했으며(행 18:3; 20:34; 살전 2:9; 살후 3:8), 유대인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데 안식일이 최상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 도를 비방하거늘. 즉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에베소에서도, 동료들이 데살로니가에서 한 것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그에게서 돌아서도록 함으로써 바울에 대한 그들의 증오를 나타냈을 것이다. 하류 계층의 백성들은 항상 폭동을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즉 회당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과 바울의 가르침에 관심을 보인 유대인들이 물러났다. 이것은 기록상 그리스도교 신자들 전체가 유대인 회당과 관계를 끊은 최초의 시기이다. 이렇게 뒤로 물러가는 과정은, 유대인과 교제하는 것이 불편할 뿐 아니라 어떤 지역에서는 위험하기까지 했던 유대 전쟁 기간 즉 AD 68~135년에 가속화되었을 것이다(참조 제10권, 92, 93). 두란노. (「제임스왕역」에는 “one Tyrannus”[두란노라 이름하는 한 사람]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는 두란노가 어떤 유명한 사람이었음을 암시하는 단어 “one”의 생략을 지지한다. 이 사람에 관해 확실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아마도 철학이나 수사학 교사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혀 회심하지 않은 완전한 이교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이교도였다면 어떤 집단에서는 조롱거리였던 이 새로운 신앙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자신의 교실을 사용하도록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참조 17:32).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곳이 유대 청중이 쉽게 모일 수 있었던 유대인 학교 베트-함미드라쉬(Bet-Hammidras∨)였다고 생각한다. 청중의 얼마는 유대인이었고 얼마는 헬라인이었음이 분명하다. 에베소에는 그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그런 “학교”를 운영하기에 충분한 수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고, 따라서 그러한 학교의 지도자가 유대인 이름에 이방인 이름을 추가하여 사용하기가 매우 쉬웠을 것이다. 따라서 두란노는 유대인이었을 것이다. 서원. 헬라어 스콜레(schole-). 이 단어의 유래는 흥미롭다. 처음에는 단순히 “여가”를 의미했다가, 후에 학문적인 논쟁이나 연구를 위해 주어진 여가에 적용되었다. 그런 후에 여기서처럼 학습이 이루어지는 어떤 장소를 의미하게 되었다. 마침내 “제논 학파”라는 말처럼, 특별한 선생을 따르는 자들을 가리키는 집합적 용어가 되었다. 이 성경절에서는 개인 소유주가 사도에게 임대해 준 강의실을 가리킬 것이다. 날마다. 바울은 분명히 매 안식일, 어쩌면 더 자주 에베소의 회당에 갔을 것이지만, 석 달 동안 얼마나 자주 거기서 가르쳤는지는 알 수 없다. 이제 그는 적어도 매일 일정 시간을 바쳐 집중적인 공중전도 과정을 시작했을 것이다. 아마 그는 생계를 위해서도 계속 일했을 것이다(참조 8절 주석). 강론하여. “날마다 두란노라는 학교에서 제5시부터 제10시까지 강론하여”라는 또 다른 독법을 지지하는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를 제시할 수도 있다. 이 독법이 원문으로 취급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이 독법이 원문이라면, 동방 지역에서는 제5시부터 제10시(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경)까지가 낮잠 자는 시간(siesta)이었기 때문에 바울이 두란노 서원이 사용되지 않는 “휴식 시간”에 이 건물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아시아에 사는 자. “아시아”에 대해서는 2:9 주석을 참조하라. 분명히 에베소는 바울 사역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바울은 분명히 거기서 주위 성읍들을 방문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교회들(2, 3장)의 기원이 바울에게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바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진술(골 2:1; 참조 행 18:23 주석)이 그러한 가능성을 제한한다. 유대인과 헬라인으로 구성된 에베소에 있는 새로운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성장은 괄목할 만했다. 아데미에게 바치는 예물과 아데미 신 기념품 판매는 현저히 감소했다. 누가는, 바울이 끌어들인 청중들이 에베소에 사는 거주자뿐 아니라 그 도시를 방문한 사람들로 이루어졌고, 설교자 바울의 소문과 그의 기별을 지역의 구석구석에 전달했음을 시사한다. 골로새의 빌레몬도 이 기간에 얻은 바울의 회심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참조 몬 19절).
13.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 즉 “유랑하는 유대인 마술사들”(「개정표준역」). 사기꾼들이 이익을 얻으려고 바울과 예수의 이름을 사칭하며 돌아다녔다. 이 유대인들은 마력과 주문(참조 8:9; 13:6 주석)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공언하였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솔로몬이 지닌 것으로 생각되는 악마에 대항하는 묘기과 귀신 물리기를 사용한 것에 대해 기록하면서, “이런 종류의 치료는 오늘날까지도 우리 중에서 매우 큰 세력을 미치고 있다”(Antiquities viii. 2. 5 [46]; Loeb ed., vol. 5, 595)라고 덧붙였다.
14. 유대의 한 제사장. 혹은 “유대인의 한 우두머리 제사장.” 이 표현은 이 사람이 제사장들을 나눈 24반차(참조 마 2:4; 눅 3:2 주석) 중 한 반차의 우두머리였음을 암시한다. 이 사람은 어떤 이유로 그의 지위를 잃은 후 에베소에 왔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대제사장이라 칭했고, 따라서 누가도 그렇게 묘사한다. 너희는 누구냐. 문자적으로 “그러면 너희, 너희는 누구냐.” 이 귀신 들린 사람은 이와 같이 자신을 악귀와 동일시했다(참고 막 5:7~12). 그는 바울 같은 사람이 예수의 이름을 말할 때는 두려워했으나 사기꾼들의 행위에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16.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제임스왕역」에는 단순히 “그들을 억제하여”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는 “그들 중 두 사람을 억제하여 이기니”라는 독법을 증거한다. 이 독법은 일곱 아들 중 둘만 이 사건에 관련이 있음을 입증한다. 그러나 여기서 “두 사람”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가 “모두”(셋 이상)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파피루스의 증거가 있다. 여기서 귀신 들림은 가다라에서와 같이(참조 마 8:28) 귀신 들린 사람에게 정상적인 힘 이상을 발휘하게 했다. 사기꾼들은 이 남자의 악마적인 분노에 놀라 도망쳤다. 벗은 몸으로. 귀신 들린 사람이 찢은 겉옷 또는 외투를 버려 두고 짧은 속옷(참조 마 5:40 주석)만 입고 도망친 사실 그 이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기록은 여기서 끝난다. 만약 기자가 이 일을 더 놀라운 일로 조작하려 했다면, 스게와의 아들들이 실패한 후에 바울이 손수 그 사람을 고쳤다고 말하여 이야기를 절정으로 발전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의 기록은 사실에 입각했다.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이 동사의 시제는 계속적으로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이야기는 귀신 쫓는 사람들이 사용한 공식 문구 가운데서 예수의 이름이 어떤 이름보다 두드러졌음을 보여 준다. 또한 이름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믿음 없이 함부로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분명히 위험한 일이었다. 에베소 사람들은 예수의 이름을 오용하여 벌받은 사람들을 보고 전보다 더 그 이름을 높였다.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믿는다”는 동사는 2절에서처럼 침례를 포함한(참조 3절) 회심의 전 과정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 신자들은 신앙고백을 했으나 그것은 불완전한 경험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했는데, 아마도 침례 후에 빠졌던 마술적인 일과 관련된 몇몇 경우에 저지른 잘못일 것이다. 성령의 감화 아래 교회는 철저히 마음을 살피는 경험을 했다. 이 고백이 개인적으로 바울이나 다른 선생들 앞에서 행해졌는지 아니면 공적으로 회중 앞에서 행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침례자 요한에게 고백한 경우와 마찬가지로(참조 마 3:6 주석), 공중 앞에서 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들은 악한 자가 예수의 이름을 오용하여 어떤 일을 행할 수 있는지 보았고, 따라서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면서 그 이름을 잘못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염려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모두의 심판자로서 대면해야 할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양심은 일깨워져 열정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죄를 고백하였고, 그렇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용서와 중보의 은혜로운 준비 아래 들어오게 되었다(요일 1:9; 2:1; 참조 사도행적, 288).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주문과 진언이 기록된 문서들 곧 “에베소 문서들”과 이 “비술”(秘術)에 관한 논문으로 발행된 책들을 모아 가지고 왔음을 의미할 것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러한 “문서” 가운데 어떤 것들은 매우 오래되어, 모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문서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부적들도 가져왔을 것이다. 은 오만. 많은 사람이 가치 있게 여긴 책들을 불태우는 이런 극적인 일이 헬라인 가운데서 발생한 점으로 볼 때 누가가 헬라의 드라크마를 “은”으로 계산했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여기 언급된 은 50,000은 10,000달러가 넘는 금액이 될 것이다. 그러나 드라크마가 당시 하루 품삯에 해당했기 때문에 당시 통화 가치로 본다면, 달러로 환산된 이 수치보다 훨씬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어떤 책들은 판매했다면 분명히 고가를 받았을 것이었다(참조 제10권, 54).
20.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힘이 있어”라는 단어는 “어떤 것도 저항할 수 없는 넘치는 기세와 힘을 가지고”라고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