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6:18-32
[16]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18]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20]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21]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22]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27]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30]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31]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내용 요약
유대인의 풍속을 아는 아그립바 왕 앞에서 바울은, 바리새인인 자신이 하나님이 유대인의 조상에게 하신 약속을 바라기에 심문받는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원래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해 성도를 옥에 가두고 박해했으며 그 일로 다메섹까지 갔으나 거기서 자신이 핍박하는 예수를 만나고 복음 전하는 자가 된 것을 증언합니다.
온 무리는 놀라운 경험에 대한 바울의 말에 넋을 잃고 귀를 기울렸다. 사도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는 사람 중에 아무도 그의 성실을 의심할 수 없었다. (행적438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증거할 때, 가장 좋아하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 자신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도우심이란?
- 주님의 사업에 몰두한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본문을 더욱 자세히
-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께 받은 사명은 무엇입니까?(16-18)
- 바울이 복음을 전한 대상과 장소 그리고 전한 내용은 무엇입니까?(19-20)
-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도우심이란 무엇인가요?(22-23)
- 복음을 듣는 모두가 자신과 같이 되기를 바란다는 바울의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24-29)
- 바울이 무죄함에도 풀려나지 못한 데에는 어떤 이유들이 있나요?(30-32)
생각해봅시다.
- 주님의 사업을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려고 할 때, 방해되는 요소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 예수님을 믿는 것과 다른 종교를 믿는 것에는 어떤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고전 1:23-24, 개정)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아그립바는 깊은 감동을 받아 한동안 그의 회중들과 그의 직위의 위엄을 잊어버렸다......그러나 아그립바는 제공된 은혜를 버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속주의 십자가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하였다.(행적438p)
16. 네가 나를 본 일. 바울은 실제로 주님을 보았다(행 22:17, 18; 고전 9:1; 15:8). 바울이 사도직을 주장하는 것은 이 직접적인 사명 부여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는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진정 부활했음을 알았다(참조 갈 1:15~18; 딤전 2:7). 참 증인은 자신이 증언하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내가…나타날 일. 그리스도는 바울을 지도하고 간섭하기 위하여 반복하여 나타났다(참조 행 18:9, 10; 22:17~21; 23:11; 고전 11:23; 고후 12:1~5). 바울은 부활한 주님을 목격하였으며 부활의 진리를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알았다.
너로 사환…을 삼으려 함이니. 참조 9:10, 15 주석. 하나님은 다메섹의 아나니아를 통하여 바울을 가르친다.
17. 내가…보내어. 대명사 “내가”는 강조형이다. 다른 이가 아닌 예수가 친히 바울에게 사도직을 부여한다.
너를 구원하여. 이 일과 다른 경험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이전 진술(9:22)에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것은 주님이 바울을 위험에서 구해내겠다는 약속이라기보다는 위험의 순간에 그와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말한다.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참조 눅 4:18 주석. 그의 사명이 성공적으로 완수되리라는 약속이다. 바울은 마귀가 사람들의 영적 눈을 멀게 했다는 것을 알았다(롬 1:20~32; 고후 4:4). 예수가 그에게 말하던 바로 그때도 바울은 육체적 눈멂으로 괴로움을 당했다. 눈이 열려야 할 필요성을 그가 얼마나 더 절실히 느낄 수 있었겠는가!
사단의 권세. 사단은 모든 사람을 죄로 이끌었다. 실로 그는 죄의 창시자이다. 그리스도의 뛰어난 능력만이 사람을 그의 마수에서 놓이게 할 수 있다.
돌아가게 하고. 또는 “그들이 돌아갈 수 있도록.” 눈이 열리자 그들은 그들이 여행하고 있는 길 끝에 있는 확실한 죽음을 볼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들은 돌이켜야 했다.
죄사함.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자신들의 죄를 제거할 수 없었다. 복음을 통해 그들은 죄의 면제 즉 죄를 떨쳐버리는 좋은 소식(요 1:7~9; 벧전 2:24)을 접하게 되었다.
믿어 거룩케 된. 바울은 성도들이 통과해야 할 품성 변화의 과정인 성화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성화는 칭의를 통해 죄책으로부터 즉시 자유로워지는 것(롬 4:8) 위에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전이라는 목표를 향해 마음과 생애를 반복하여 지속적으로 바치는 일을 더한다. 그것은 “필생의 사업이다”(참조 사도행적, 560 ~562; 마 5:48 주석). 모든 그리스도인이 해야 했던 것처럼 바울은 지속적인 헌신,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면서 나아가는 일을 경험하고 있었다(참조 빌 3:12~14; 롬 8:1~4 주석).
기업. 일시적인 세상의 헛됨, 사악함 가운데서 늙어 가는 대신에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벧전 1:4)을 전하고자 하였다.
19. 하늘에서 보이신 것. 참조 9:3~7 주석. 이것은 꿈이 아니었다. 사울은 문자 그대로 다메섹 도상에서 주를 만났으며 어떤 면에서 육적으로 그분을 알았던 자들보다 더욱 개인적으로 알게 되었다. 바울에게 이 계시는 살아 있는 실재로 남았다. 바울은 그가 의뢰한 자를 알았다(딤후 1:12).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바울은 “가시채를 뒷발질하”(참조 14절 주석)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가 그에게 허락한 계시에 응하여 완전히 굴복하였다. 그의 헌신은 완전하여 일단 의무의 길이 명백해지자 그 이후 결코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주님이 원하는 바를 알고자 하였으며 안 후에는 그것을 행하였다(참조 16:6~12). 그의 평생을 통해 유일한 질문은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22:10)였다. 그는 여전히 순종하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었으나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강권하였다(고후 5:14).
20. 다메섹에…있는 사람과. 바울은 개종할 때 있었던 곳, 교회에 심각한 상해를 가하고자 했던 바로 그 장소에서 즉시 일하기 시작하였다(참조 9:19~22 주석).
예루살렘에. 바울은 약 3년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갈 1:18). 거기서 목숨을 걸고 매우 담대하게 증거하였으므로 유대인들, 특히 헬라파 유대인들(참조 6:1; 14:1 주석)은 격노하였다(9:29).
유대 온 땅. 유대 모든 지역. 예루살렘으로 향한 몇 번의 여행 중 한 번 혹은 그 이상 유대 지역에서 전도했을 것이나(참조 행 11:29, 30; 12:25; 15:3, 4; 18:22; 21:8~15; 갈 1:22), 바울이 유대 전도를 언제 수행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방인. 바울의 이방인 선교는 약 9년 혹은 10년 후에 수리아 안디옥에서 시작되었다(11:25, 26; 13:1~4).
회개하고. 헬라어 메타노에오(metanoeo-). “[사람의] 마음을 바꾸다”(참조 마 3:2; 행 3:19~21 주석).
일을 행하라. 참조 마 3:8 주석. 바울은 여기서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의해 성취되는 삶의 특징으로 나타나는 “행함”을 주장한다. 어떤 행위를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참된 의는 생애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에 상응하고 그것을 증명하는 행위를 자동적으로 행하게 한다는 뜻으로 말한다. 하나님의 구원하는 은혜를 통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롬 3:21, 22, 27; 엡 2:5~8)의 영광스러운 사실을 바울보다 더 강조한 전도자는 없었다. 그러나 바울은 구원의 값없는 선물에 대하여 언급할 때마다 여기서와 같이 그에 따르는 선한 행위에 대해서도 강조하였다(참조 롬 8:1~4). 믿음의 사람은 율법을 세우는데(롬 3:31), 이는 그가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엡 2:10)이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참된 의가 존재할 때 그 의는 선한 행위로 입증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참조 약 2:14~24).
선전하므로. 문자적으로 “선언하였다” 또는 “공고하였다.”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 전도자 곧 그분의 좋은 소식을 전달하는 자였다.
22. 하나님의 도우심. 참조 21:31, 32; 23:11, 12, 30 주석. 인간의 눈에는 바울을 구조한 자들이 루시아와 그의 군병들로 보였으나, 바울은 하나님이 그 도움을 베풀었음을 알았다(참조 23:11).
증거하는 것. 참조 9:15; 26:1 주석.
선지자들과 모세. 구약(참조 눅 24:44 주석)을 가리킨다. 바울은 반복하여 성경에 대한 그의 신뢰와 충성을 확언한다(참조 24:14 주석). 예수 안에서 성취된 메시야에 대한 예언들은 구약 전반에 산재해 있다.
23. 그리스도. 문자적으로 “그 그리스도”(참조 마 1:1 주석).
고난을 받으실 것. 그리스도의 고난, 죽음 그리고 부활이 바로 유대인들과 바울 사이의 논쟁점이었다. 메시야에 대한 유대인들의 생각에는 고난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메시야를 위한 여지는 없으므로 메시야가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야 할 이유도 없었다(참조 6절 주석). 여기서 바울의 진술은 엠마오로 가던 예수의 진술과 거의 동일하다(참조 눅 24:25~27 주석).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항상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었다(고전 1:23). 참조 13:27~37 주석.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그리스도는 “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고전 15:20)이며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골 1:18)이다. 또한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죽은 자가 살아날 것이라고 최초로 선포한 자였다(요 5:21~29; 11:23~26). 시간적으로는, 그리스도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일어난 자는 아니다. 그 점에서는 모세가 먼저이다(눅 9:28~30; 유 9절). 그리스도는 탁월함에서 그리고 생명의 창조자로서(골 1:15, 16; 3:4) “먼저”이다. 죽음을 정복한 후(행 2:24; 계 1:18) 예수는 그와 그의 능력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보증하였다. 그의 부활은 의인들이 모두 겪게 될 부활에 대한 보증이었다(고전 15:12~22).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딤후 1:10) 자는 그이다.
이스라엘.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눅 2:32)이라고 불렀다.
이방인들. 이들은 하늘이 바울을 선택하여 진리의 빛을 선포하도록 한 대상들이다(참조 9:15 주석).
빛을 선전하시리라. 또는 “빛을 선포하다.” 구주에 대한 인간의 필요만큼이나 오래된 복음은 그의 죽음과 부활의 빛 가운데서 새로운 능력으로 선포된다. 참조 요 1:4~9 주석.
24. 베스도가…가로되. 그는 들은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거나 귀담아 들으려고 했을 것이다. 그는 큰 소리로 이의를 제기했다. 십자가에 대한 설교는 세상에 맞추어진 귀에는 “미련한 것”으로 들린다(고전 1:23).
미쳤도다. 베스도는 고결한 주제에 대한 바울의 강박 관념이 그의 정신에 영향을 미쳤다고 진심으로 믿었을 것이다. 아그립바의 경우 하고자 했다면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로마인인 베스도에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25. 각하. 흔히 사용되는 경의의 호칭으로, 베스도의 고위 관직에 적합하다(참조 눅 1:3; 행 23:26; 24:3 주석).
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바울은 아그립바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진술의 역사적 정확성을 인정할 것을 호소한다.
담대히 말하노니. 이 장에 기록된 바울의 개종에 대한 내용은 9장과 22장의 동일한 내용의 설명보다 더욱 자세하다. 바울은 담대히 말했는데 이는 아그립바 왕이 박식한 청중이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이것이 팔레스타인에서 갖는 마지막 발언 기회일 수도 있음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 자신과 그의 말을 듣는 자들 모두에게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이 일에 하나라도. 예수의 생애와 봉사, 죽음과 부활, 오순절의 경험, 베드로와 요한 및 다른 사도들이 행한 이적들, 바울의 놀라운 개종, 복음의 전파에 뒤따른 주목할 만한 결과들이다.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바리새인들은 “온 세상이” 예수를 “좇는도다”(요 12:19)라고 불평했으며, 유대인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치안관들에게 사도들이 “천하를 어지럽게 한”(17:6)다고 말했다. 복음 선포에 따르는 논쟁은 물론 복음에 대한 관심과 흥분은 바울이 말해온 바를 확증해 준다.
27. 믿으시나이까. 아마도 그는 유대인으로서 선지자를 믿었을 것이다. 선지자들은 예수에 대하여 바울이 말한 모든 것을 예언하였다. 참조 22절 주석.
아나이다. 눈치 없이 아그립바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라면서 바울은 그의 대답을 기대한다. 아그립바는 바울이 말한 모든 것이 진실임을 인식하였으나 지식과 확신이 그의 행동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참조 마 7:21~27 주석).
28. 적은 말로. 헬라어 엔 올리고(en oligo-). 문자적으로 “적은 것으로.” “적은 [시간] 안에”일 가능성이 있다. 이 구절의 원문이 모호하기 때문에 다양한 번역과 해석상의 시도가 있다. 주석자들은 일반적으로 아그립바가 26, 27절의 바울의 진지한 호소를 경시하는 양 빈정대면서 말한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그렇다면 그가 빈정댄 것은 진정한 감정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참조 사도행적, 438). 흔히 깊은 확신이 있는 사람들은 아그립바처럼 무관심한 척 말하며 행동하곤 하는데, 특히 믿지 않는 동료들 앞에서 그렇게 한다. 깊은 확신을 받았는데도 아그립바 왕은 총독의 재판정에 모인 자들에게, 일개 죄수가 짧은 시간 안에 간단한 설명으로 왕을 개종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순진한 사람으로 바울을 여긴다는 인상을 주기 원했던 것 같다.
29. 적으나 많으나. 아그립바의 호통에 비추어보면 “적은”(28절)을 가리킨다. 바울이 증거한 것이 적든 많든 왕처럼 식견이 넓은 유대인에게 호소하기에는 충분하다.
당신뿐 아니라. 전혀 위축되지 않고 바울은 계속 호소한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손짓하면서 바울은 그가 묶여 있는 쇠사슬을 상기한다.
30. 왕과…일어나서. 회견은 바울의 뛰어나고 간결한 제시와 진지한 청원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결과 없이 끝났다. 바울의 실망이 얼마나 컸는지는 추측할 수밖에 없다.
31. 서로 말하되. 바울의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을 말한다.
사형…할 만한 행사가 없다. 바울이 “미쳤”다는 말을 들었지만(24, 25절), 위험한 인물은 아니었다. 베스도와 아그립바는, 바울이 진지하고 견문이 넓으며 하나님을 위한 열정으로 불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기꺼이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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