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자의 비유, 누가복음 연구 1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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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8:4-15

[4]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6]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 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9]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10]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12]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간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씨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천국에 대해 설명하셨을 뿐 아니라 크신 농부로써 그의 백성을 위하여 행하시는 사업에 관해서도 말씀하셨다. 그는 밭에서 씨를 뿌리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늘의 진리의 씨를 뿌리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비유 그 자체가 곧 씨앗이었으며 그는 이 씨로써 가장 귀중하고 은혜로운 진리들을 심으셨다. 씨뿌리는 비유는 너무나 평범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비유의 참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농부가 밭에 뿌리는 씨를 통하여 우리가 복음의 씨, 곧 파종되면 패역한 사람들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그 씨를 생각하기 바라신다. 작은 씨의 비유를 말씀하신 그분은 하늘의 임금이시며 밭에 씨를 뿌리는 일을 주관하는 법칙이 진리의 씨를 뿌리는 일도 주관한다.”(실물, 33)

 

유 통하여 진리는 단순하고 순결하게 제시된다. 하지만, 들을 귀 있는 자만이 들고 깨닫을 수 있었다. 씨를 뿌리는 자와 씨를 뿌리는 것은 어떤 진리를 가르치고 있을까?

 

본문연구

  1. 비유에서 씨를 뿌리는 자는 누구를 의미하는가?
    13:37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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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f. 예수께서 비유(parables)로 가르치신 주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의문을 자아내기 위해서(4:10)
       2) 천국의 비밀을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4:11)
       3) 어떤 이들에게는 진리를 감추기 위해(4:12)
       4) 당시에 수준 높은 랍비들의 수사법인 비유를 예수께서도 사용하심

  2. 비유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인 는 무엇을 의미한다고 해석하였는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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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f.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3. 비유에서 씨가 자라서 결실을 맺기 위해 중요한 요인은 무엇인가? 씨가 뿌려진 네 곳을 각각 요약하고 비교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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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착하고 좋은 마음에 심겨진 하나님의 말씀이 결실하기 위해서 인내”(15)도 필요하다 그 까닭은 무엇인지 설명해 보라.

 

토의사항

  1. 예수님은 당신의 사명을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말씀은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4:4을 읽고 생활 가운데서 말씀이 우선순위가 될 수 있는 방안들을 이야기 해 보자.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여기에 모든 교육 사업의 기초가 되는 대 원칙이 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오늘날 너무나 많은 학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있다. 다른 문제들이 그들의 정신을 점령하고 있다. 그리고 불신자들의 저서를 연구하는 일이 많은 부분을 점유하고 있으며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서에도 회의론적 사상들이 섞여 있다. 뿐만 아니라 과학 분야에 있어서도 그 발견된 것들이 잘못 해석되고 악용됨으로 인하여 과학적 연구가 오도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한 가상적 학설과 비교되고 있으며, 드디어는 불확실하고 미덥지 못한 것같이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의혹의 씨가 청년들의 마음속에 심어지게 되어 그들이 시험을 만나게 되면 심겨진 의혹의 씨가 발아되어 싹이 튼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면 심령은 보호자와 안내자를 잃게 되므로 청년들은 하나님과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에서 탈선하게 된다.-실물교훈, 41

  2. 나는 어떤 밭일까?’ 서로 자신의 경험이나 상황을 나누어 보자.

 

비유는 천국을 위해 믿음을 가진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가르쳐주고 있다.


4. 비유로 말씀하시되 지금까지 그리스도는 비유라고 부를 수 있는 짧은 예화들을 자주 사용하였다(참조 7:24~27 ). 이제 처음으로(시대의 소망, 333; 실물교훈, 20) 그는 비유를 진리를 전달하는 주된 도구로 삼았다. 산상 설교는 불과 몇 주 전에 있었다(참조 5:1 주석). 때는 AD 29년 가을이었을 것이고, 갈릴리 전역에서 가장 풍요로운 지역인 게네사렛 평지(참조 눅 5:1 주석)를 따라, 겨울 곡식을 파종하고 있는 농부들을 볼 수 있었다(참조 실물교훈, 34). 이 바쁜 날 일어난 사건들의 요약은 12:22; 13:1 주석을 참조하라.

적어도 열 가지 비유가 이때 베풀어졌다. 마태복음에 기록된 여덟 가지에, 마가는 등잔의 비유(4:21~23)와 모르는 사이에 자라는 씨앗(26~29)을 더하였다. 전체적으로 보아서, 마태가 기록한 비유들은 천국과 관련된 본질적인 사실들을 종합적인 모습으로 보여 주고 있다.

 

씨를 뿌리는 . 그리스도가 말씀할 때(실물교훈, 34) 갈릴리의 푸른 물결로부터 언덕 아래까지 펼쳐진 게네사렛 평지의 비옥한 토양에 농부들이 씨를 뿌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비유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로 알려져 있지만, 토양의 비유, 다시 말해 씨 뿌리는 자, , 토양의 비유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이 비유의 초점은 가라지의 비유(24~30)에도 등장하는 씨 뿌리는 자나 씨가 아니요, 씨가 떨어지는 네 가지 종류의 토양이다. 이 비유는 네 종류의 토양이 각각 씨를 받아들이는 것과 그것이, 씨의 성장에 미친 효과를 강조한다(참조 실물교훈, 43). 네 종류의 토양과 관련하여 씨 뿌리는 자의 기술이나 씨의 품질은 모두 동일하다. 8절 주석을 참조하라.

이 비유에서 씨가 나타내는 특정한 진리는 메시야로서 이 땅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명의 본질이다. 그리스도의 왕국의 참된 성격은 어느 정도는 비밀”(참조 11)이었는데, 교만심이 사람들로 하여금 구약에 대한 이해를 흐리게 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힘있는 정복자로 와서 다윗의 보좌에 앉고 모든 나라를 유대인에게 복종시킬 것으로 기대하였다(참조 시대의 소망, 30; 참조 눅 4:19 주석). 그러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예수는 그의 사명의 참된 성격, 곧 그가 온 것은 이방인들을 유대인에게 복종시키려 함이 아니요,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15:24)의 마음을 복종시키려 함이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이 똑같은 진리를 그는 이미 산상 설교에서 공식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참조 5:2 주석).

 

5. 길가에. 마을에서 밭으로 나오는 길이 아니라, 밭의 주변에 있는 길가 또는 밭에서 더 떨어져 있는 밭으로 가로질러 나있는 길가. 길가의 표면이 딱딱하기 때문에 씨앗은 드러난 채로 놓여 있으며 싹이 틀 기회조차 없다. 길가의 청중들은 복음의 진리가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하는 피상적인 청중들이다. 중국 속담의 표현대로, 그들은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그들은 복음에 대한 개인적인 필요성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부주의하고, 깨닫지 못한다(19). 진리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하는 듯이 보인다.

 

새들. , 경작할 때와 씨 뿌릴 때 언제든지 찾아오는 들새들. 마태에 의하면 이 새들은 악한 자”(19), 마가에 의하면 사단(4:15), 누가에 의하면 마귀(8:12)를 나타낸다.

 

6. 바위 위. 분명히 이 땅은 돌이 흩어져 있는 땅이 아니라, 표면이 얇은 흙으로 덮여 있는 바위 땅을 말한다. 일부 적당한 장소를 제외하고는, 팔레스타인의 고지대는 이러한 바위들 때문에 농경 지역으로서의 가치가 결정적으로 떨어진다.

돌밭 청중의 마음에 떨어진 복음의 씨앗은 싹이 틀 만큼의 땅은 찾을 수 있지만, 흙이 너무 얕아 복음은 단지 피상적인 효과를 내는 데 그치고 만다. 복음이 그들의 감정에 호소했고 그들은 빠르게 반응했으나, 주어진 감동은 변덕스러운 감정의 동요와 함께 사라져 버린다. 이기심의 돌(참조 실물교훈, 46)은 복음이 생애를 개혁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하는 어떠한 노력도, 자신을 섬기려는 삶의 기본적인 목적에 방해받은 나머지(참조 실물교훈, 50), 복음은 거의 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돌밭의 청중은 습관적으로 자신의 기호(嗜好)에 따른다. 이러한 사람들이 가짐직한 어떠한 확신이라 할지라도 원칙보다는 기호에 기초한 것이다. 진리가 어느 정도 그들의 마음을 끈 것은 분명하다. 그들은 진리가 좋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사랑한다. 순간적으로 좋아 보이는 것을 재빨리 받아들였지만, 그들은 제자가 되기 위한 대가를 치르는 데 실패한다. 복음의 원칙들을 생애에 적용시키지 않고, 그 원칙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행동의 방식을 개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습관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말랐고. 발아가 빠른 만큼, 마르는 것도 빨랐다. 돌밭 청중들의 유일한 희망은 거듭나는 것이다(실물교훈, 48). 복음의 표면적인 영향은 그들을 자복과 죄를 버리는 일에까지 이끌지 못했다(참조 5절 주석). 그들은 칭의를 경험하지 못했다. 복음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회개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7. 가시떨기. 헬라어 아칸싸(akantha). “가시또는 찔레나무.” 아칸싸는 엉겅퀴처럼 가시가 많은 식물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 누가는, 그리스도인 생애의 가시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참조 마 13:22; 8:14)이라고 정의한다.

가시떨기 땅에서는, 돌밭에서처럼 약한 식물들이 신속히 마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가시떨기 땅의 그리스도인 경험은 돌밭 청중들의 경험보다는 더욱 발전한다. 그들은 진정한 출발을 한 것처럼 보이며, 분명히 칭의와 새로남을 경험한다. 그러나 곧 그들은 선을 행하되 낙심”(6:9)하게 되고, “완전한 데 나아”(6:2)가지 못한다. 이 세상의 쾌락에 빠지고 매혹에 이끌려 그들은 생애에서 유혹에 반응하는 경향들과 성격의 특성들을 뽑아내는 일을 게을리 한다. 그들은 마치 귀신 들렸다가 놓여났지만 다시 귀신 일곱에게 사로잡힌 사람과 같다(참조 12:43~45 주석). 가시떨기 땅 청중의 마음을 끌고 그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많은 것들이 그 자체로는 과히 나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 너무 몰두해 있어서 다음 세상을 준비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가시가 자라서. 가시는 곡식을 성장할 수 없게 한다(참조 눅 8:14). 마찬가지로 세속적인 관심은 성령의 열매(5:22, 23)가 숙성하는 것을 방해한다. 신앙이 많은 취미 중의 단지 하나로 취급되는 부수적인 위치로 전락된다. 성장시키지 않음으로 그것은 말라가고 결국 죽는다. 가시떨기의 청중들에게 부족한 것은 도덕적인 변화이다(실물교훈, 50). 그들에게는 칭의가 신앙의 전체요 본체이며, 그들은 그리스도인 생애가 필연적으로 성화라고 알려진 과정 곧 악한 성격과 성향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삶의 모범으로 바뀌는 과정(참조 갈 2:20 주석)임을 깨닫지 못한다.

 

8. 좋은 땅. 이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씨앗이 사람의 마음을 좋게변화시키기 전에는 본성으로는 좋지 않다는 뜻인데,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2:13)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본성적으로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7:18)한다. “좋은것은 단순히 진리의 보습에 맡겼기 때문이며, 성령의 부드럽게 하는 감화에 반응하였기 때문이다.

 

백 배. 이것은 진실로 놀라운 수확이다(참조 창 26:12 주석). 미국의 평균 밀 수확은 4,046.8평방미터(1에이커)당 약 616리터 또는 약 35말로, 이것의 약 15배의 수확이다. 마가는 수확의 순서를 적은 양부터 큰 양으로 바꾸었고, 누가는 적은 수확은 생략했다.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것은 품성의 결실을 말한다(참조 갈 5:22, 23 주석). 외면적 생애에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는 건강한 그리스도인 경험의 증거이다. 길가 청중의 마음에는 진리가 응답을 얻지 못하였다. 돌밭 청중에게서는 진리가 일시적인 충동밖에는 얻지 못하였다. 가시밭 청중에게서는 잘 시작된 반응이었지만, 역경과 반대 속에서는 말라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좋은 땅 청중들의 마음에는 그 응답이 영원하고 효과적이었다. 그 결과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삶의 모범을 따라 삶이 변화되는 것이다.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은 환경의 노예가 아니다. 그는 끝까지 견딘다(참조 24:13).

 

귀 있는자는 들을지어다. 그러므로 내가말하기는. 참조 3절 주석. 그리스도의 목적은 영적 식별력이 무딘 사람들에게 진리를 숨기려는 것이 아니라(참조 실물교훈, 105), 오히려 진리를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려는 희망에서, 그들의 마음과 정신의 무딤을 뚫으려 함이다(참조 눅 8:16). 그리스도는 이 땅에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고 온 것이지 그것을 감추려고 온 것이 아니다(18:37). 어떤 것이 과실을 맺지 못하는 이유는 씨 뿌리는 자나 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토양에 있다(참조 13:3 주석).

 

10.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참조 15절 주석. 비록 이 사람들이 보는 듯하여도 그리고 자신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해도, 그들은 사실상 전혀 보지 못한다. 그들이 실상은 소경이면서 본다고 하기 때문에, 그들의 죄가 그저 있다”(9:41). 그들은 일부러 소경이 된다(참조 호 4:6 주석). 그들의 식별력은 길가 청중들처럼 피상적이다(참조 13:4, 5 주석). 자연적 시력이 그에 상응하는 영적 통찰력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못하게 하려 함이라.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의 비유의 의미를 감지했으나, 깨닫지 못한 것처럼 가장했다(참조 실물교훈, 35). 그들이 그리스도의 가장 분명한 말씀을 거절한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들의 죄는 다른 이들보다 더 컸다. 그들은 일부러 그들의 영혼의 눈을 멀게 하였으며 스스로를 어둠 속에 가두어 버렸다(참조 12:3 주석).

백부장의 믿음, 누가복음 연구 1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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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7:1-10

[1]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 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3]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을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원하시기를 청한지라

[4] 이에 저희가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가로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5]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6]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이 벗들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를 기이히 여겨 돌이키사 좇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10]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강건하여졌더라

 

 

“모든 죄인이 그리스도께 나오는 것도 이와 같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하셨”(딛 3:5)다. 사단이 그대는 죄인이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바랄 수 없다고 말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고 사단에게 말하라. 우리는 하나님께 추천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못하나 우리가 현재 그리고 항상 말할 수 있는 간구는 예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필요로 하게 만드는 우리의 전혀 무력한 상태에 대한 간구인 것이다. 우리는 모든 자기 의뢰심을 버림으로 갈바리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 손에는 가지고 갈 아무 대가도 없습니다.
다만 주의 십자가에 매달릴 뿐이옵니다.”
(소망, 317)

 

버나움의 로마 백부장은 예수님과 직접 대면하지도 않았으나 믿음을 고백했으며, 예수님은 그의 요청을 들어주셨다. 예수님께서 흐믓해 하신 그의 믿음은 어떤 것일까?

 

본문연구

  1. 본문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나열하고 그들은 어떤 이들이며 서로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설명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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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f. 등장인물들은 모두 중풍병으로 고생하는 종(8:6)의 치유를 도왔다.
    cf. 등장인물들 가운데 가장 주요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cf. 특히, 예수님과 백부장은 어떤 관계였을지 이야기해 보라.

  2. 백부장의 요청을 받은 유대 장로들은 그를 예수께 어떻게 추천하였는가? 또 백부장은 왜 그러한 요청을 하였는가?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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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f. 8:5-8을 참고하라. 7절의 말씀만은 정확히는 한 말씀”(a word)이다.
    cf. “백부장은 구주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그는 예수께서 자기 하인을 고치실 수 있 을 것이라고 믿었다.”(소망, 315)

  3. 예수께서 칭찬하신 백부장의 믿음(9)을 그가 한 말과 행동을 통하여 설명해 보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cf. 8:8,10-11도 참고하라.
    cf. “그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감동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무가치함을 깨달았으나 도움을 요청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선함에 의뢰하지 않 았다...그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참된 품성을 붙잡았다. 그는 예수님을 단지 이적을 행 하는 자로만 믿지 않고 인류의 친구요 구주로 믿었다.”(소망, 317)

  4. 종의 병이 백부장의 믿음 때문에 나음을 입었음을 말해주는 증거는 무엇인가?
    10(
    8:13)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토의사항

  1. 이방인이었던 로마 백부장의 믿음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찾아볼 수 없었다는 예수님의 말 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도전을 던져주고 있을까?

  2. 그리스도의 치유를 경험하기 이전에도 백부장의 성품과 생애는 매우 아름다웠다. 종에 대 한 사랑, 벗들과의 관계, 유대인들과의 조화로운 관계 등.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일까?

 

부장의 믿음은 예수님도 감탄하셨다. 유대인들은 그의 선한 행위들로 예수님께 추천하였지만,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요청대로 그가 사랑하는 종을 고쳐주셨다.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기도의 응답의 상관관계를 깊이 생각해 보자.


 

산상설교, 누가복음 연구 1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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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6:17-26

[17] 예수께서 저희와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허다한 무리와 또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얻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및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18]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받는 자들도 고침을 얻은지라

[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기도와 교훈의 말씀을 주시고, 그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축도하심으로 복음 사업을 위하여 그들을 구별하셨다. 그러고 나서, 그들과 함께 해변으로 가셨는데, 거기는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많은 무리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 그러나 그 좁은 해안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갈망하는 무리가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범위 안에 다 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그들을 다시 산으로 인도하셨다. 그 많은 무리가 다 넉넉하게 앉을 수 있는 평평한 장소에 이르자, 그분께서는 풀밭에 앉으셨다. 그러자, 그분의 제자들과 무리들도 그분을 따라 앉았다”(산상보훈,17, 19).

 

상 설교의 서두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심령의 최고의 갈망, 곧 행복에 대해 언급하셨다. 이와 같은 갈망은 창조주에 의해 친히 인간 속에 심어진 것이다.(본교 성경 주석 5, 324).

 

본문연구

다음 도표는 우리의 그리스도인 경험에 있어서 앞에서 언급한 진보들을 나타내며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필요에 어떻게 대답하시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의 필요에 대한 그리스도의 대답

(마태복음 5장 1절~12절의 팔복에 기초함)

우리의 문제 그리스도의 대답 결과
1. 자존심, 불안
가련한 자아상
*심령이 가난한 자
자신들의 필요를 인식하고 그 일로 무언가를 하기 시작하는 사람들
*자아를 용납함
*그릇된 자존심을 정복함
*하나님과 사람들과 더불어 의미는 교제를 나눔
2. 죄와 죄의식 *애통하는 자들
죄에 대하여 회개하고 돌아섬
*깨끗한 양심
*하나님과 사람에게 용납되었다는 증거
3. 반역, 분노, 자신감의 결여 *온유한 자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고 헌신함
*권위를 인정함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신뢰와 믿음의 계발
4. 불행, 공포, 좌절, 염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생명의 물로 채움-칭의
*건강한 정서
*전인적인 발달
*하나님과 사람과의 올바른 관계 형성
5. 쓰라림과 이기심 *긍휼히 여기는 자
용서하는 태도, 기꺼이 나누고자 함, 영적 성장
*관계의 개선
*인정, 나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
6. 불결과 부도덕 *심령이 청결한 자
생애의 청결, 순결, 고결함
*도덕적으로 자유함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이 있음
*하나님과 인간에 대하여 올바르게 행함
7. 절망과 무감각 *화평케 하는 자
평화와 행복과 만족감을 다른 사람과 나눔
*이해를 초월하는 평화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짐

 

토의사항

  1.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진정 행복하게 살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20,21)

  2. 인생의 진정한 만족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본문의 말씀은 어떤 답을 준다고 생각하십니까? (22,23)

  3. 그리스도인으로서 당하는 부당한 어려움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런 부당한 대우를 참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20. 가난한 자. 헬라어 프토코스(pto-chos). “웅크리다”, “위축되다를 의미하는 프탓소(ptasso-)에서 파생한 말로 극심한 가난을 지칭한다(참조 막 12:42; 4:18; 6:20). 여기서 프토코스는 비참한 영적 가난에 처한 자들 그리고 천국이 공급해야 할 것들에 대해 필요를 예민하게 느끼는 자들을 가리킨다(참조 사 55:1 주석; 3:6). 자신의 영적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 부자요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하늘에서 볼 때 곤고하고 가련하며 가난한사람들이다(3:17). “심령이 가난한자 외에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에 결코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밖의 모든 사람들은 하늘의 부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며, 따라서 하늘의 축복을 거절한다.

 

복이 있나니. 산상 설교의 서두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의 마음에 있는 최고의 욕망, 곧 행복에 대해 연설한다. 이 욕망은 창조주가 친히 인간 속에 심었고, 본디 그것은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과 협력을 통해 참 행복을 발견하도록 이끌기 위해 정해진 것이다. 인간이 행복을 최종 목적으로 생각하여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순종을 무시하고 지름길로 그것을 달성하려고 꾀할 때 죄가 수반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의 왕으로서 그리스도는 취임 연설의 서두에서, 왕국의 주요 목적은 잃어버린 에덴의 행복을 인간의 마음에 회복하는 것이며, 따라서 좁은문과 협착한 길로 들어가기를 선택한 자들(7:13, 14)이 참 행복을 찾을 것이라고 선포한다. 그들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킬 때만 이르러오는 영혼의 참되고 영원한 만족, 곧 내적 평강과 기쁨을 발견할 것이다(4:7). 그리스도가 아버지께로 갈 때 그는 바로 이 평안, 곧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14:27)을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남겼다. 행복은 하나님(참조 롬 5:1)과 그들의 동료(참조 미 6:8)들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자들, 곧 사랑에 관한 위대한 두 계명을 좇아 행하는 자들의 마음에만 이르러 온다(참조 22:37~40). 이러한 생각과 마음의 성향은 오직 은혜의 왕국의 참된 백성들만 소유한다.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가 여기서 말하는 것이 미래에 있을 영광의 왕국이 아니라 현존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가르침 속에서 가라지, 겨자씨, 누룩, 그물의 비유(13:24, 31, 33, 47) 그리고 그밖의 많은 비유(참조 산상보훈, 8, 108)를 통해 예증한 것처럼, 종종 그의 주권을 받아들인 자들의 심령에 건설된 은혜의 왕국에 대해 다루었다. 유대인들은 천국을, 이 지상 나라들이 이스라엘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는 힘에 기초한 왕국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와서 세운 왕국은 사람의 심령에서 시작하여, 그들의 삶에 침투하고, 역동적이고 강력한 사랑의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의 심령과 삶으로 흘러 들어가는 왕국이었다.

 

너희 . 자신의 필요를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에 들어가는 첫 번째 조건이다(참조 산상보훈, 7, 8). 비유 가운데서 세리가 자기를 의롭다고 여긴 바리새인보다 더 의롭다하심을 받고 집으로 내려 간 것은 자신의 영적 필요에 대한 자각 때문이었다(18:9~14). 천국에는 교만한 자들, 자족하는 자들 그리고 자기를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을 위한 여지는 없다. 그리스도는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가난을 그의 은혜의 부요함으로 바꾸라고 명한다.

 

21. 주리고 목마른 자. 특별히 이 은유는 연평균 강우량이 66센티미터 이상이 되지 않는 나라에서 설득력이 있었다(참조 창 12:10 주석). 팔레스타인에 해당되는 사항은 일반적으로 근동의 넓은 지역에도 해당된다. 팔레스타인은 넓은 사막지역에 접해 있으며, 거주민이 많은 지역까지도 비가 적은 반건조성 지역이다. 지금 예수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청중 가운데 많은 사람이 갈증의 고통을 경험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하갈과 이스마엘의 예증에서처럼, 길을 잃거나 도중에 몇 개 안 되는 샘 가운데서 하나를 놓친 여행자는 자신이 심각한 곤경에 처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참조 창 21:14 주석).

그래서 예수는 심령의 주림과 목마름에 대하여 말했다(참조 시 42:1, 2). 음식의 결핍으로 굶주린 사람 또는 물의 부족으로 허덕이는 사람의 간절한 열망으로 의를 갈망하는 자들만이 그것을 얻을 것이다. 물질적 풍요든지, 심오한 철학이든지, 육체적 욕망의 만족이든지, 명예나 권력이든지, 세상에 속한 어떤 것도 심령의 주림과 목마름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한 후에 솔로몬은 모든 것이 헛되다라는 결론을 내렸다(참조 전 1:2, 14; 2:1, 15, 19; 3:19; 11:8; 12:8 ). 어떤 것도 모든 인간의 마음이 갈망하는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 전도자는 창조주를 인정하고 그분과 협력하는 것만이 항구적인 만족을 가져다 준다고 결론을 맺는다(12:1, 13).

산상 설교를 한 지 6개월 또는 8개월 후에 예수는 생명의 떡(6:26~59)에 관한 또 하나의 위대한 강화를 했는데, 여기서 간략하게 설명한 원칙을 좀 더 충분하게 논했다. 인간이 갈망해야 하는 은 바로 예수이다. 인간은 그 떡을 먹음으로 영적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며, 심령의 굶주림을 충족시킬 수 있다(참조 요 6:35, 48, 58).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하늘의 공급자에게 와서 돈 없이 값 없이”(55:1, 2) 물과 양식을 얻으라는 은혜로운 초청을 받는다. 사람의 심령에 의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이미 그 속에서 역사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다(산상보훈, 19)

 

우는 자. 이 단어는 강한 슬픔을 나타낸다. 사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만나는 불완전함 때문에 애통하게 되는 것은 영적 필요에 대한 깊은 의식에서 나온다(참조 산상보훈, 9; 시대의 소망, 300). 그리스도는 여기서 영적 가난 속에서 완전의 표준에 달하기를 열망하는 자들을 지칭하고 있다(참조 사 6:5; 7:24). 또한 여기에 실망과 사별 혹은 또 다른 슬픔 때문에 애통해하는 자들을 위한 위로의 기별이 있다(참조 산상보훈, 10~12). 하나님은 영적 부족감을 하늘의 은혜의 부요함으로 채우는 것처럼(참조 3절 주석), 죄에 대한 애통함을 용서받은 죄의 위로로 충족시킨다. 먼저 부족함에 대한 느낌이 없다면 그 부족한 것(이 경우는 품성의 의)에 대한 애통함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애통은 자신을 천국 지원자로 소개하는 자들에게 이르러오는 두 번째 필요조건이며, 그것은 순서상 첫 번째 단계 이후에 자연스럽게 뒤따라온다.

 

22. 인자를 인하여. 나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지닌 이름 곧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고통당한다. 초기교회 시대와 마찬가지로 모든 시대를 통해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기뻐했다(5:41; 참조 벧전 2:19~23; 3:14; 4:14).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가 되려고 하는 자들에게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10:22)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10:39)고 덧붙였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를 위하여 고난받을 것”(1:29)을 예기해야 한다.

 

멀리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회당에서 출교(黜敎)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생각했다(참조 요 9:22, 34; 12:42; 16:2). 유대교에서는 완전히 추방되는 영구적인 출교와 일시적인 출교가 있었다. 그리스도 시대에 일시적인 출교는 30일 동안 계속되며 멀리된사람은 그동안 종교적인 의식에 참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4규빗(2미터) 안으로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출교는 종교적 및 사회적 오염 즉 부정을 의미했다.

 

너희 이름을버릴 때에는. 즉 너희 이름을 경멸하여 내동댕이칠 때에는. 이것은 거짓되고 악한 소문을 유포하는 것을 가리킨다(벧전 4:14).

 

핍박을 받은. 여기서 그리스도는, 주로 천국을 위해 세상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박해를 말한다. 죄가 들어온 이래 그리스도와 사단, 천국과 세상 왕국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과 사단을 섬기는 자들은 원수가 되었다(3:15; 12:7~17). 이 투쟁은 이 세상 나라가 우리의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때까지계속될 것이다(11:15; 참조 단 2:44; 7:27). 바울은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14:22). 천국 시민들은 이 세상에서 환란당할 것을 예기하는바(16:33), 이는 그들의 성품, 이상, 열망 그리고 행동이 모두 현 세상의 악을 거스르는 무언의 증언을 하기 때문이다(참조 요일 3:12). 하늘 왕국의 원수들은 왕 되신 그리스도를 핍박했고, 또한 그의 충성스런 백성들을 핍박할 것이다(15:20).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이와 동일한 약속이 3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졌다.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딤전 2:12; 참조 단 7:18, 27). 그리스도를 위해 큰 고통을 당한 자들이 그분이 그들을 위해 당한 고통을 가장 잘 헤아릴 수 있다. 첫 번째와 마지막 복에 하늘 시민의 자격 보증이 포함되는 것은 적절하다. 여기에 열거된 하늘 시민을 위한 여덟 가지 자격을 경험한 자들은 천국에서 한 자리를 얻을 가치가 있다.

 

기뻐하고. 생애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8:28)을 알고 기뻐해야 한다(4:4). 고난이 천국 시민에게 필수적인 인내와 그밖의 품성의 특성들을 계발시키며, 이것은 시험 즉 시련에도 마찬가지다(1:2~4).

 

너희의 상이 큼이라. 참조 눅 6:24~26 주석. 성숙한 그리스도인에게는 상에 대한 생각이 최우선은 아니다(실물교훈, 398). 그는 천국에 들어갈 목적만으로 규칙들에 순종하지는 않는다. 그는 최고의 목표와 실존의 기쁨을 창조주와 협력하는 데서 찾기 때문에 순종한다. 희생도 클지 모른다. 그러나 상 또한 크다. 인자가 영광으로 올 때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아줄 것이다(16:27; 참조 계 22:12).

 

24. 있을진저. 복과 재화(災禍)를 대조시키는 것은 유대 문학의 특유한 기법이었으며, 아마도 신명기에 나타난 축복과 저주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27, 28). 그리스도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선언한 와 비교해 보라(참조 마 23). 부요한 자여. 구세주가 부자나 가난한 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회 계층의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고자 했지만(참조 마 5:3 주석), 그는 삶의 물질적인 것들을 낮게 평가함으로 부와 특권을 삶의 주목적으로 삼는 계층의 사람들에게 호의를 얻지 못했다(참조 마 6:1~6 ). 사실 비교적 극소수의 부자들만이 그리스도의 친구가 되었고,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은 특별하게 예외였다. 예수는, 이 땅보다는 하늘에 보물을 쌓는 지도층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는데 이는 그들의 마음이 하늘에 더욱 밀착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참조 마 6:33, 34; 12:13~33). 많은 경우에 부()는 그것을 소유한 자들에게 하늘에 이르는 길을 막는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임이 입증되었다(참조 막 10:23, 25; 18:24, 25).

 

너희의 위로. 여기서는 물질이 주는 행복한 상태에서 오는 위안과 기쁨을 의미한다(참조 마 5:4 주석).

 

26. 칭찬하면. 정확하게 욕하고”(22)라는 말과 반대말. 그리스도교와 세상, 그리스도교의 이상과 세상의 이상들 사이에 있는 큰 차이점을 강조하는 또 하나의 역설이다. 사람들은 보통 부와 권세를 가진 사람들 그리고 아첨하는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방향으로 아첨에 반응하는 자리에 있는 자들을 칭찬한다.

예수님의 제자도(Discipleship), 누가복음 연구 12.pdf
1.27MB

눅 6:12-16

[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 주신 시몬과 및 그 형제 안드레와 및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 하는 시몬과

[16] 및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및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열 두 사도의 명단

No. 마 10:2-5 막 3:16-19 눅 6:14-16 행 1:13
1
2
3
4
5
6
7
8
9
10
11
12
       

 

수님께서 여러 제자들 가운데서 열 둘을 구별하여 사도로 부르셨다. 제자들을 훈련시켜 파송하는 일에 대한 그분의 계획은 무엇이었을까?

 

본문연구

  1. 몇 명의 제자들 사도로 택하였으며, 그것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셨는가?
    13, 12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cf. “사도(Apostles)”- “보내심을 받은 자
    cf. 철야기도를 통하여 그 많은 시간동안 주님의 기도는 어떤 것이었을까?

  2. 열 두 사도들의 명단은 공관복음서와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다. 왼편의 도표에 순서대로 이름을 적고 분석해 보라.
    1) 가장 첫 번째로 등장하는 제자는 누구인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 순서가 변하지 않고 등장하는 제자들은 누구이며 좌측 번호에 O표 하시오.
    3) 열 두 사도의 구성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cf.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는 모두 누가이다.
    cf. 2명의 시몬 - 시몬 베드로와 셀롯(Zealot,열심당) 시몬이다.
    cf. 2명의 야고보 -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작은 야고보라 불린다.(15:40)
    cf. 2명의 유다 - ‘다대오’, ‘가룟은 지명(地名)이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3. 열 두 명의 사도들 내에서 두 명씩 혹은 네 명씩 짝지은 예를 찾아보라.
    cf. 10:1, 22:8, 20:2-4, 3:1, 1:29, 13:3
    cf. “제자들이 나누어져 이룬 무리 중 한 무리의 선두에는 빌립이라는 이름이 서 있다"  (시대의 소망, 292)

  4. 예수께서 열 두 사도를 세우신 목적은 무엇인가?
    3:14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토의사항

  1. 예수님의 제자훈련은 그분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으며, 그것은 성공적이었는지 토의해 보자.

  2. 열 두 제자들을 훈련시킨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 마태복음 28:19-20에서 명령하신 제자도의 사명을 우리는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교훈하기를 마치고 그 작은 무리를 당신 주위에 가까이 모은 다음 그들 가운데서 무릎을 꿇고 그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그들을 당신의 성업에 바치는 기도를 드리셨다. 이와 같이 하여 주님의 제자들은 복음 사업을 위하여 안수를 받았다.”(소망, 296)

릴리의 어부들을 부르신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당신의 사업에 사람들을 부르고 계신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최초의 제자들을 통하여 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기를 즐겨하신다.(시대의 소망, 297)


 

대학선교센터교회


안식일학교

경배와 찬양 다같이
찬       미 83장
시작기도 기도자
환       영 안교장
특별순서  
교과공부 각 반
헌금소개 사회자
축       도 담임목사

 

기억절 3기 1과 (일몰 : 7시 57분)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행 18:9,10)

 

7월 시무 안내
시       무 : 권  림
헌금봉사 : 김서아 박유림

  다음주 예배 순서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3 김미현 소그룹 4 김희중 권세진
10 김영서 소그룹 11 정찬우 배승환
17 김주아 소그룹 18 전현주 배승환
24 박유림 소그룹 25 함주원 김채령
31 임태훈 소그룹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 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32 장
대 표 기 도 김희중 집사
특 별 찬 양  
설        교 권세진 목사
찬        미 671 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캠퍼스 소식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 일요기도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3. 한국액트스터디투어
    일시 : 7월 9일(목)-7월 19일(일)
    장소 : 튀르키예
  4. 이문동교회 헌당감사예배
    일시 : 7월 11일 오후 3시
  5. 지구장막부흥회
    일시 : 7월 24일(금)-25일(안)
    장소 : 삼육중앙교회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여집사 2조
    • 청소당번 : 경희외대회기캠모
     

캠퍼스 모임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00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30 ZOOM
방학 중 소그룹 수요일 17:30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채령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허미라  재무 김건우
선교회장 문호준  액트회장 김미현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1길 11
어린이청소년비전센터 1층

유튜브 청년반 학생반 블로그 카톡공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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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안식일 개혁, 누가복음 연구 11.pdf
0.75MB

눅 6:1-11

[1]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2]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뇨

[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집어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5] 또 가라사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송사할 빙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가 엿보니

[8]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손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저가 일어나 서거늘

[9]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10] 무리를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11] 저희는 분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처치할 것을 서로 의논하니라

 

 

“유대인들이 하나님에게서 떠나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자신의 것으로 삼지 않았을 때 안식일은 그들에게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사단은 자신을 높이고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서 떠나게 하려고 힘썼으며 안식일을 왜곡시키려고 활동하였는데 그 이유는 안식일이 그리스도의 능력의 표징이기 때문이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안식의 날을 무거운 짐이 되는 요구 사항들로 둘러싸서 사단의 뜻을 성취시켰다. 그리스도의 시대에 안식일은 매우 왜곡되어서 이날의 준수는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품성보다는 오히려 이기적이고 변덕스러운 사람들의 품성을 반영하였다. 랍비들은 사실상 사람들이 순종할 수 없는 율법을 주신 분으로 하나님을 나타냈다. 그들은 사람들로 하나님을 폭군처럼 여기게 하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안식일의 준수는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잔인스럽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게 하였다. 이런 그릇된 관념을 없애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일이었다. 랍비들이 무자비한 적개심을 품고 예수를 따라다녔지만 예수께서는 조금도 그들의 규례들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이지 조차 않으셨으며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안식일을 지키시면서 똑바로 행하셨다.”(소망, 283-284)

 

수님께서 안식일을 어떻게 생각하셨는가? 참된 안식일을 어떻게 회복시키셨는가?

본문연구

  1. 본문의 사건이 있었던 구체적인 때는 언제인가?
    1, 6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cf. 안식일에 있었던 사건은 공관복음(마태,마가,누가) 모두에 기록되어 있다.

  2.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 의하면 본문에서 안식일에 금지되는 일은 무엇인가?
    2, 7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cf. 타인의 밭의 이삭을 먹는 것에 관해서는 신 23:25을 보라.
    cf. ‘이삭을 주워 먹는 것병자를 고치는 것이 왜 안식일을 범하는 것일까?

  3. 3-5절에서 다윗의 예를 들어 반박하신 예수님의 의도는 어떻게 설명되는가?
    9-10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cf. 다윗의 사건은 삼상 21:1-6에 기록되어 있다.

  4. 8-10절에서 예수님이 병자로 하여금 한 가운데서게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cf. 공개적이고 도전적으로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시므로 의도하신 것은 무엇일까?
    cf. 9절에 의하면 무엇인 선행이고 악행이며, 생명을 구하는 것이며 죽이는 것인가?
    바래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율법과 하나님의 율법의 구분은 무엇인가?

 

토의사항

  1. 안식일을 거룩히 지킨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이야기 해보자.
    cf. 20:8, 22:31, 20:12을 참고하라.

  2. 예수님께서 당시의 잘못 적용된 안식일 계명을 어떻게 개혁하셨는가? 오늘날 우리의 안 식일 준수에서 개혁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손이 마른 자를 고치심으로써 유대인의 관습을 정죄하셨고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그 사람의 손을 고쳐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금하였다. 넷째 계명을 하나님께서 주신 그 본연의 모습대로 살리셨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고 선언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의 무의미한 규례들을 쓸어 버림으로 안식일을 존귀하게 하신 반면에 예수께 대하여 불평의 말을 하던 자들은 하나님의 성일을 더럽히고 있었다.”(소망, 287)

가는 마태(12)와 마가(2,3)와 더불어 안식일 논쟁을 통하여 개혁을 이루시는 예수님을 언급하였다.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으로서 매우 중요한 안식일 계명을 본래의 의도대로 돌려 놓으셨다. 안식일은 그분이 주인이시며, 사람을 위하여 제정된 것이다.


하지 못할 일. 안식일 외의 다른 날에는 제자들의 그런 행위가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배고픈 사람이 밭을 지나가며 과일이나 곡식을 먹을 수 있도록 구약의 율법이 구체적으로 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참조 신 23:24, 25 주석).

제자들이 여기서 행한 일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인과 안식일에 행한 그의 치료 행위는, 그가 개인적으로 안식일 준수에 관한 구약의 율법과 규례들을 지키지도 않았고 또 그의 제자들에게 그렇게 가르치지도 않았던 증거라고 흔히 현대의 저자들은 곡해하고 있다. 또한 어떤 이들은 이 문제에 대한 그리스도의 입장을 넷째 계명에 대한 거부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예수가 모세의 율법과 십계명의 요구를 개인적으로 고수했으며 그의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쳤음을 보여준다. 그는 도덕법의 영원한 구속력을 거듭하여 확언했으며(참조 마 5:17, 18; 15:10 등 주석), 모세의 의식법이 당시 유대인들에게 적용된다는 유효성을 인정했다(참조 마 23:3 주석). 예수 역시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의 지상봉사 기간 내내 사람이 만든 법칙과 관습의 타당성에 관해서는 유대인 지도자들과 대립했다(참조 7:2, 3, 8 주석). 당시 많은 사람들이 모세의 율법과 십계명보다 경건에 더욱 필수적이라고 여긴 듯이 보이는 이러한 요구들에 대하여, 그리스도는 타협하지 않고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참조 2:19 주석). 이러한 요구들 중 많은 부분을 그저 대강만 살펴보아도 그들의 어리석음이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바리새인들은 구원이 이 모든 규례들을 철저하게 준수함으로써 얻어진다고 엄격히 가르쳤다. 경건한 유대인의 생애는, 이런 순전히 사람이 만든 요구사항들을 부지중에 불순종했을지도 모르는 의식적 부정함을 피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기울이는 헛된 노력으로 일관되었다. 이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의 제도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정면충돌이 불가피했다.

미쉬나(Mishnah)에는 안식일에 금지된 39개의 주요 노동이 열거되어 있다(Shabbath 7. 2, Soncino ed. of the Talmud, 348, 349). 이 중 11개는 빵을 생산하고 준비하는 과정이다. 씨 뿌리기, 밭 갈기, 수확하기, 단을 묶기, 타작하기, 키질하기, 선별하기(합당한 음식에서 합당하지 못한 것을 골라내는 것), 가루로 만들기, 체질하기, 반죽하기, 굽기. 그 다음 12개는 옷을 준비하는 과정 즉 양털을 깎는 것으로부터 옷을 기워 만드는 일에 관련된 과정에 적용된다. 그 다음에는 사슴의 사체를 음식이나 가죽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7단계가 뒤따른다. 나머지 목록은 글쓰기, 건물 짓기, 불 켜고 끄기, 그리고 물건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이 일반적 규례들은 더욱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 주요 규례들에 덧붙여 안식일 준수에 관한 다른 무수한 지침들이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아마도 약 1킬로미터 정도의 안식일에 걸을 수 있는 거리에 관한 지침일 것이다. 벽에 고정된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이나(Shabbath 149a, Soncino ed. of the Talmud, 759), 심지어는 촛불을 켜는 것도 안식일을 범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같은 규례가 안식일에 낳은 달걀을 이방인에게 파는 것과 촛불이나 불을 켜기 위해 이방인을 고용하는 것을 허락하고 있다. 풀잎에 물주는 일을 하면 안 되기 때문에 땅에 침을 뱉는 것은 불법으로 간주되었다. 안식일에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손수건 한쪽이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에 기워져 있으면 괜찮았는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손수건이 아니라 옷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안식일에 걸을 수 있는 거리에 관한 규칙도, 유사한 방식으로, 여행하고자 하는 길을 따라 적당한 거리에 음식물을 숨겨 놓는 식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런 경우에 음식이 있는 곳이 그 음식 주인의 또 다른 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음식을 숨겨 둔 곳에서 또 한 번 안식일에 걸을 수 있는 거리를 갈 수 있고 계속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것들이 그리스도 당시에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지워졌던 무거운 짐”(23:4) 가운데 몇 가지 예이다.

그렇게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킴으로써 바리새인들은 사람이 만든 규칙들의 문자에 계속적으로 집착함으로 하나님의 법의 정신을 파괴하였다. 원래 사람이 창조주가 만든 것들을 연구하고 그의 사랑과 선함을 생각하도록 고안된 안식일이 오히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속성을 상기시키는 날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하나님을 독재자로 묘사함으로써 하나님의 품성을 왜곡시키는 데 큰 몫을 담당하였다.

천연계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사랑을 선포하고 안식일은 태초에 이런 것들에게로 사람의 주의를 이끌기 위하여 고안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자신에게 존재가치를 부여해주고 행복과 복지를 위해 신성의 능력을 한결같이 행사하시는 분을 잊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 행위로서 어떤 것이 적합하고 적합하지 않은지를 결정하는 문제는 안식일의 목적이 마음에 분명해지기만 하면 이내 풀리게 되어 있다. 우리를 하나님께로 가까이 이끌어 주는 것은 무엇이나, 우리를 위한 그분의 뜻과 우리를 취급하시는 그 방법들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우리를 우리 생활에서 그와 더욱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행복과 복리에 공헌하도록 이끌어 준다. 이것이 참된 안식일 준수이다(참조 사 58:13; 2:27, 28 주석).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하나님은 안식일을 소유하시고 그것을 지킬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을 창조하지는 않으셨다. 오히려 전지하신 창조주가 손으로 만든 피조물인 사람의 품성 발달을 위하여 도덕적, 영적 성장의 기회가 필요됨을 아셨기 때문에 안식일을 만들었다. 사람은 자신의 관심과 취미를, 천연계와 계시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품성과 뜻을 연구하는 데 바칠 시간이 필요했다. 7일 안식일은 이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이 제정한 것이다. 언제, 어떻게 그날을 지켜야 할 것인지에 대한 창조주의 지시 사항들을 어떤 면으로든지 변경하는 것은, 하나님이 직접 손으로 만든 피조물을 위해 무엇이 최선임을 알고 있는 분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안식일이 축복이 되고 짐이 되지 말아야 하며, 사람이 그것을 지키는 것이 유익이 되고 손해가 되지 않도록 제정하였다. 그것은 사람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고안되었지 어려운 일을 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안식일 준수는 근본적으로 어떤 형식적인 것들을 시시콜콜히 지키는 것이나 어떤 일을 추구하는 것을 삼가는 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이런 빛으로 조명하는 것은 안식일 준수의 참된 정신과 목적을 완전히 놓치는 것이며, 행함에 근거하여 의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과 어떤 추구, 어떤 생각과 대화의 주제를 삼가는데, 그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호의를 사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가 이런 일들을 삼가는 것은,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와 생각을 다른 데 바쳐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협력하는 능력을 증진시키고, 그리고 그분과 우리의 동료들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봉사하기 위해서이다. 주로 어떤 일들을 하지 않는 부정적인 요소로만 구성된 안식일 준수는 결코 바른 것이 아니다. 안식일 준수의 적극적인 요소를 실천할 때만 우리에게는 안식일 준수로부터 지혜와 사랑의 창조주로 말미암아 제정된 유익을 얻을 희망이 있다. 참조 사 58:13 주석 .

안식일을 세밀하게 준수하는 랍비들의 수많은 요구들은 하나님의 안목에 안식일이 사람보다 더 중요하다는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 하나님의 법을 이렇게 맹목적으로 해석하는 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안식일을 기계적으로 준수하기 위해 즉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랍비들은 안식일에 행해서는 안 될 것을 엄격하고 무의미하게 구분함으로써 그날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실추시켰다(참조 24절 주석). 그들은 어떤 특정한 일들을 삼가는 것, 즉 안식일 준수의 부정적인 요소를 강조하였다. 종교의 형식이 본질을 대신하게 되었다.

 

인자. 참조 마 1:1; 2:10 주석; 1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안식일에도. , “안식일에조차도.” 트집잡는 바리새인들 앞에 그리스도가 제시한 논리의 정연함은 마태에 의하여 더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제시되었다. (1) 인간의 필요는 의례적 요구나 인간의 전통보다 더 중요하다(참조 마 12:3, 4). (2) 성전과 관련되어 행하는 노동은 안식일의 요구와 부합된다(참조 5). (3) 그리스도는 성전(참조 6)이나 안식일(참조 8)보다 더 크다.

 

주인. 오직 구주만이 그날에 무엇이 합당한지를 결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권리 이상을 침범한 셈이 되었다(참조 24). 교회는 안식일에 유대인들처럼 강압적인 규제를 부과하거나 한 날에서 다른 날로 그 거룩함을 전가시킬 수 있는 권리가 없다. 둘 다 사람을 참된 안식일 준수의 정신으로부터 미혹시키기 위하여 마련된 악한 자의 계교이다. 바리새인이든 기독교인인이든 간에 하나님이 택한 날을 변경할 권리가 없다.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가. 가버나움 회당에서 귀신 들린 자(참조 막 1:21~28), 베데스다 연못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신 것(참조 요 5:1~16), 실로암 연못에서 눈먼 자를 고치신 것(참조 요 9:1~17), 그리고 18년 동안 병에 시달린 여자(참조 13:10~17), 고창병 걸린 남자(참조 14:1~6)를 고치신 것과 비교해 보라. 그리스도는 이처럼 안식일에 공개적으로 치유 이적을 베풀었으며, 베드로의 장모를 집에서 고치기도 했다(참조 막 1:29~31). 손 마른 사람을 고친 것과 합하여 안식일에 행한 치유 이적이 일곱 번 언급되어 있다. 그러므로 복음서에 구체적으로 언급된 20가지의 치료 사례 가운데 3분의 1이 안식일에 일어났다. 참조 제9, 122~126; 5:16 주석.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 여기서는 유익을 끼치는 것과 해를 끼치는 것을 뜻함. 마태의 기사에 의하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전에 이미 예수에게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은지 물었다(12:10). 랍비들의 규정은 고질병일 때와 당장 죽음에 처할 만큼 위험한 경우를 자세하게 구분하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질병들은 다른 것보다 더 중한 병이며 이러한 병으로 고통받는 자들은 필요에 따라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안식일에 심각한 병과 관련되지 않은 고통을 제거해 준다든지, 예수가 지금 막 치료하려고 하는 사람의 경우처럼 오랫동안 병을 앓아온 사람을 돕는 규정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율법은 다소 관대하게 해석되었을 것이며, 실제로는 안식일에 다른 많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보살핌을 받았을 것이다.

 

생명을 구하는 . 유대 금언에 의하면, 선을 행하기를 거절하는 것은 해를 끼치는 것과 같고, 생명 돌보기를 소홀히 하는 것은 생명을 빼앗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사람의 생명은 위험에 처해 있지 않았으며, 따라서 치료 행위는 안식일이 끝날 때까지 연기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예수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 될 수 없음을 확언했다. 예수의 관점에서 볼 때, 고통받는 사람의 고통을 제거해 줄 수 있는 기회를 지나치는 것은 잘못을 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시시콜콜한 규정을 위반할까봐 부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의 관심을 거기에 포함된 근본적인 원칙으로 돌리고 있었다. 생명을 구하지 않는 것은 그것을 빼앗는 것과 같고, 생명을 향상시키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그것을 약화시키는 것과 같다(참조 약 4:17).

 

어느 것이 옳으냐. 참조 막 2:24 주석. 또다시 랍비들의 법이 사람들의 필요와 대립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오늘날 예수가 하나님의 율법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시 말해 그가 교훈과 모본으로써 계명의 요구에서 떠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정신에 참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수는 지상 생애의 마지막에 아버지의 모든 계명을 지켰다고 확언했다(참조 요 15:10).

 

대학선교센터교회


안식일학교

경배와 찬양 다같이
찬       미 83장
시작기도 기도자
환       영 안교장
특별순서 13기 결산 안교 / PCM DAY
교과공부 각 반
헌금소개 사회자
축       도 담임목사

 

기억절 2기 13과 (일몰 : 7시 57분)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요일 3:2).

 

6월 시무 안내
시       무 : 권욱민
헌금봉사 : 김주아 문정현

  다음주 예배 순서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3 김미현 소그룹 4 김희중 권세진
10 김영서 소그룹 11 정찬우 배승환
17 김주아 소그룹 18 전현주 배승환
24 박유림 소그룹 25 함주원 김채령
31 임태훈 소그룹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 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31 장
대 표 기 도 민대홍 청년
특 별 찬 양 기악찬양팀
설        교 서반석 목사
찬        미 224 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캠퍼스 소식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 일요기도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3. 전국대학생여름수련회
    일시 : 6월 28일(일)-7월 1일(수)
    장소 : 안면도연수원
  4. 한국액트스터디투어
    일시 : 7월 9일(목)-7월 19일(일)
    장소 : 튀르키예
  5. 이문동교회 헌당감사예배
    일시 : 7월 11일 오후 3시
  6. 지구장막부흥회
    일시 : 7월 24일(금)-25일(안)
    장소 : 삼육중앙교회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여집사 1조
    • 청소당번 : 화랑고대캠모
     

캠퍼스 모임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00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30 ZOOM
방학 중 소그룹 수요일 17:30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채령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허미라  재무 김건우
선교회장 문호준  액트회장 김미현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1길 11
어린이청소년비전센터 1층

유튜브 청년반 학생반 블로그 카톡공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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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뚫고 내려온 병자, 누가복음 연구 10.pdf
1.64MB

눅 5:17-26

[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18]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 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22]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25]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26]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

 

 

지붕을 뚫고 내려온 중풍병자의 이야기는 누구나 좋아한다. 이 이야기는 결단과 지혜의 이야기이다. 예수께로 접근하려 했으나 군중에 의해 길이 막히자 지붕으로 올라가 구멍을 뚫어 병자를 상에 달아 내린 사람들의 행동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심지어 익살스러운 감동마저 준다. 땀내 풍기는 평민들로 가득 찬 방에서 서기관들은 벌써 소외되는 기분을 느꼈으며, 천장에서 흙 조각이 쏟아져 내리고 거기서 어떤 사람이 달려 내려오는 광경을 보았을 때 그들이 놀라는 표정을 상상해 보라!
예수께서는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높이셨으나, 그들이 기대했던 방식대로 하지는 않으셨다. 그분은 중풍병자의 마음을 가장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영적인 것임을 알고 계셨다. 그 병자는 육신이 낫기를 원하였으나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화평, 곧 그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확신 갖기를 더욱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본문연구

  1.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은 것은 친구들의 믿음 때문인가? 아니면 본인의 믿음 때문인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 사람들은 왜 예수님께 신성모독의 죄를 지었다고 하는 것인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cf. 참람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2:7절을 참고하세요.

  3. 23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는 말씀은 어떤 의미입니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토의사항

  1. 내 삶에 존재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정말 해결 할 수 없는 장애물인가요?

       이 고통을 당하는 자의 마음에 세 가지 큰 장애물이 있었을 것이다. 치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중 어느 것도 치유의 가망성을 멀어지게 하기에 족했을 것이다. 첫째로 약 8세기 전, 엘리사 시대 이후로는 문둥병자가 치유되었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둘째 장애물은 더욱 더 암담한 것인데, 문둥병자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다는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신념이었다. 예수가 그를 기꺼이 치유하고자 할 것인가? 셋째 장애물은 더 실제적인 문제였다. 문둥병자가 어떻게 그의 요구를 말하기 위하여 예수에게 접근할 수 있을까? 예수가 가는 곳마다 군중들이 몰려들었으며, 의식법은 문둥병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접근하거나 섞이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었다.


  2. 내가 살아온 생애 중에 가장 후회되는 일(양심의 가책이 되는)은 어떤 것인가?

       “이 중풍병자의 질병은 죄악 된 생활의 결과였으며 그 고통은 양심의 가책에 의해 더욱 심해졌다. 그는 정신적인 고민과 육체적 고통을 덜기를 바라면서 이미 오래 전에 바리새인들과 의원들에게 애원하였었다. 그는 어떤 곳으로부터도 도움의 가망이 없음을 알고 절망에 빠져 버렸다. 그가 바란 것은 육체적 회복이라기보다는 죄 짐에서 해방되는 것이었다. 그가 만일 예수를 보고, 용서와 하늘의 평강의 보증을 받을 수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든지 죽든지 만족할 수 있었다”(시대의 소망, 267).


  3. 꼭 고침을 받고 싶은 병은 어떤 것인가?(스스로 병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것)


  4. 예수님께서 내 문제를 반듯이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은 얼마나 되는가?

       크신 의사께서는 치유책을 처방해 주실 뿐만 아니라 돌보고 관심을 베푸시며동정심이 충만하시다그분께서는 이 세상에 계셨을 때당신의 사랑과 관심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온전해질 수 있도록 당신을 충분히 신뢰할 수 있게 하셨다그분의 사랑은 육체적ㆍ정서적ㆍ영적 치료를 가져다준다.

가버나움. 마태는 가버나움을 그리스도의 본 동네”(own city, 9:1)라고 언급한다. , 그가 갈릴리 사역을 수행하고 고향같이 여긴 듯한 본부였다.

 

[]. (개역한글판에는 없고 제임스왕역에 나옴역자 주). 그리스도가 첫 선교 여행을 위해 가버나움을 떠나게 된 것은 그를 찾아나선 큰 군중의 무리와 대중적 흥분으로 기인된 것이었다(참조 1:33, 37). 그러나 그가 가버나움을 떠나자 사람들의 열기가 식었다. 예수가 다시 가버나움에 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왔다.

 

네 사람에게 메워. 마가만 이 구체적인 사실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와 또 다른 곳의 구체적인 설명은 이 기사의 사실성을 반영해 줄 뿐만 아니라 이 기사가 목격자의 증언아마도 베드로임을 증거해 준다.

 

무리를 인하여. , 많은 사람들의 무리.

 

지붕을 뜯어. 누가(5:19)는 그들이 기와를 벗기고내리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중동에서는 흔히 그렇듯이, 이 집의 지붕도 아래 정원에서 사다리나 층계로 올라가도록 평평하게 되어 있었을 것이다(참조 신 22:8 주석; 10:9). 서까래 위에 기와를 깔아 지붕을 만들었을 것이다.

예수에게 접근하기 위해 사용한 특이한 방법은, 그에게 아주 가까이 왔으나 여전히 기회를 놓쳐버릴 것을 염려한 중풍병자 자신이 내놓은 절박한 제안이었다(참조 시대의 소망, 268). 갑자기 가버나움을 떠나가고(1:37, 38), 수 주일 동안 멀리 떨어져서 머물렀으며 마침내는 사막에 은둔하였던 예수의 행적이 죽음에 직면한 이 사람의 절망감을 더 심화시켰다(참조 시대의 소망, 267).

 

침상. 헬라어 크랍바토스(krabbatos). 가난한 사람의 소파침대.” 그 병자가 누운 초라한 침상은 아마도 풀이나 헝겊 조각을 누벼 만들었을 것이다.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 메고 온 네 사람과 중풍병자의 믿음. 지붕을 뚫어 구멍을 낸 것은 그들의 절박한 필요와 예수만이 그것을 충족시킬 수 있음을 생생하게 말해 준다. 그러한 필요 의식과 믿음은 예수의 치료 능력이 각 사람의 영혼과 신체에 적용되기 전에 있어야 할 필수적인 것이다(참조 눅 5:8 주석).

 

소자야. 헬라어 테크논(teknon). 문자적으로 어린아이.” 여기서처럼 부를 때는 내 자식아”, “내 아들아로 쓰인다. 이 질병이 죄악된 생애의 결과로(시대의 소망, 267) 생긴 만큼, 그가 살아온 이야기는 탕자와 유사한 것 같다(참조 눅 15:13, 14). 몇 개월 전에 베데스다에서 치유 받은 중풍병자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참조 요 5:14).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참조 10절 주석. 고통은 그에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으며, 그 고통이 자기 자신이 저지른 죄의 결과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예수가 언급한 것은 그의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는 이러한 죄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 중풍병자는 신체의 치료는 물론 영혼의 치유를 위해 찾아 온 것이다(참조 시대의 소망, 267, 268,). 그는 신체적으로는 무력하고 영적으로는 절망적이었으나 예수에게 나아와서 도움을 받고 소망을 갖게 되었다(참조 요 9:2 주석).

 

어떤 서기관들이. 누가에 의하면(참조 5:17 주석), 바리새인들과 교법사들갈릴리와 유대와 예루살렘각처에서 왔다. 이들이 여러 지역에서 대표로 왔으며 이 특정한 경우에 등장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음을 말해 준다.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가 지금까지 일했던 바로 그 지역에서 가버나움으로 왔다는 사실은, 그렇게 대중의 열렬한 관심의 중심 인물이 된 분을 조사하기 위해서였음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러한 상황은 2년 전에 침례자 요한의 일을 조사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대표자들을 요단강으로 파견했던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1:19~28). 예수가 전에 일한 적이 있던 유대로부터 온 대표자들은 최근 갈릴리에서 행한 예수의 행적에 관하여 그곳 지도자들에게 어떠한 방침을 일러주기 위해 보내졌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정탐꾼들이며(참조 시대의 소망, 213, 267,), 예수는 이들에게 마치 베데스다에서 중풍병자를 고쳐준 사실을(5:1~9) 생생하게 생각나게 해주려는 듯이,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치유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찾고 있는 것예수가 참람된 자라는 확실한 증거을 머지않아 찾을 것이다. 유대 지도자들 앞에서 했던 예수의 말은 신성모독이라는 낙인이 찍혔으며(5:18), 그들이 또다시 신성모독이라고 할,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권리를 예수는 공적으로 행사하였다. 이 경우는 갈릴리 봉사 기간 동안 유대 지도자들과의 몇 번의 마찰 가운데 첫 번째에 해당된다.

 

마음에 의논하기를. 헬라어 디알로기조마이(dialogizomai). “결산하다”, “대화하다”, “토론하다.”

 

이 사람이. 헬라어 후토스(houtos). “[사람].” 시비걸 때 쓰는 말투 같다. 그들은 예수가 신성모독을 범한 현장을 포착했다고 생각했으나, 이상하게도 그 증거는 1년 반 후에 재판할 때 그를 반박하기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어려움은 예수가 메시야 주장을 하였다기보다 그가 신성의 능력죄를 용서하고 질병을 치유함에 있어서을 실제적으로 행사함으로써 그들과 맞닥뜨렸다는 사실에 있었다.

 

참람하도다. 헬라어 블라스페미아이(blasphe--miai). “상처를 주는 말들”, “중상즉 권위를 손상시키는 말들. 서기관들은,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여 줌으로써 예수가 그들의 주장대로 한낱 인간으로서 신성의 권한을 침해했다고 생각했다. 의식 제도 아래에서 제사장이 사람의 고백을 관장했으나 실제로 용서의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가 제사를 받는 것은 단지 하나님께서 고백을 받으시는 것을 상징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참조 히 10:1~12). 서기관들은 신성의 임재의 증거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이 그리스도를 비난했던 바로 그 죄를 마음속에 범하고 있었다(참조 마 12:22~32). 레위기에 의하면 신성모독에 대한 형벌은, 물론 예수 당시의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굳이 그대로 하지는 않았을지라도, 돌로 쳐서 죽이는 것이었다(참조 24:16).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서기관들은 신학적인 관점에서 보는 한 철저하게 옳았다. 왜냐하면 구약은 죄를 사하시는 분이 하나님 한 분뿐이라고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43:25; 31:34; 참조 요 10:33). 그들의 과오는 그들 앞에 서 있는 분이 하나님임을 인식하기를 실패한 데 있었다.

 

중심에 아시고. 헬라어 에피기노스코(epigino-sko-). “정확히 알다”, “인지하다.” 예수는 자주 사람의 생각을 읽었다(12:15; 6:8; 9:47; 11:17; 참조 요 4:16~19; 8:7~9). 이것은 대체로 그들을 심히 발분(發憤)케 하는 효과를 주었다.

 

어느 것이 쉽겠느냐. 서기관들은, “사람의 죄가 사하여졌다고 말하는 것이 쉽지, 왜냐하면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를 아무도 말할 수 없을 테니까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예수는 즉시 그들 속에 품고 있는 도전에 응수하여 이렇게 질문했다.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것과 중풍병자를 치료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너희는] 쉽겠느냐?” 대답은 명백하다.

 

인자. 이 대목에서 처음으로 세 공관복음서 기자 모두가 이 유명한 호칭을 사용한다(9:6; 2:10; 5:24). 이것은 그리스도가 스스로를 가리켜 즐겨 사용한 호칭이었으며 복음서에 80번 정도 나온다. 그러나 아무도 이 명칭을 써서 그를 부르지 않았으며 복음서 기자들도 그를 이렇게 언급한 적이 없다. 이 명칭은 최소한 어떤 유대인들에게는 새로 건설될 왕국의 통치자인 메시야를 칭하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맹세의 경우(26:63, 64; 14:61, 62), 그를 그리스도로 믿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사적으로 말씀한 경우(16:16, 17; 3:13~16; 4:25, 26; 16:30, 31)를 제외하고는, 예수 자신이 직접 메시야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예수의 생애와 말씀과 사역에서 메시야 예언들이 그에게 성취되었다는 증거를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예수는 문자 그대로 순전히 역사적인 사실에서나(참조 눅 1:31~35; 1:3, 4; 4:4), 더 높은 의미에서도 사람의 아들[人子]”이다. 인자라는 명칭은 그를 성육신한 그리스도로 나타내준다(참조 요 1:14; 2:6~8). 그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이 한 신성과 인성으로 연합된 기적을 가리킨다. 그것은 사람의 아들들이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것이라는 진리를 증거해 준다(1:12; 4:3~7; 요일 3:1, 2). 인성이 다시 신성의 형상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신성이 인성으로 나타난 것이다(시대의 소망, 25).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에 관해서는 눅 1:35; 1:1~3 주석을 참조하라. 그리고 사람의 아들로서의 예수에 관해서는 눅 2:49, 52; 1:14 주석을 참조하라. 1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을 참조하라.죄를 사하는. 고통당하는 자가 고통을 주는 질병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그 질병의 원인이 먼저 제거되어야만 한다(참조 5절 주석). 영혼을 치유하지 않은 신체의 치료는 젊은이가 질병을 얻은 과정을 반복하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게 새로운 몸을 준 그리스도는 새로운 마음을 먼저 주어야만 했다.

 

권세. 헬라어 엑수시아(exousia). “권세.” “또는 능력을 의미하는 헬라어는 보통 뒤나미스(dunamis)이다. 기적을 행하기 위해서는 능력이 요구되나, 죄의 용서는 권세의 문제이다. 여기에서는 엑수시아가 이 구절의 시작 부분에 와 있으며 죄를 용서하는 그리스도의 권세를 강조해준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이 권위에 도전했다(참조 11:28).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예수는 그들이 볼 수 없는 훨씬 더 위대한 사실의 증거로서 그들이 볼 수 있는 기적을 행했다(참조 롬 1:20).

 

말씀하시되. 예수의 선포 도중에 이 말씀이 삽입된 것은 이 시점에서 예수가 서기관들에게서 돌이켜 중풍병자를 향하여 말하고 있음을 의도하고 있다. 다른 모든 복음서의 서술에서도 같은 지점에 삽입되어 있다(참조 마 9:6; 5:24). 같은 말의 유사한 용례가 막 1:16과 마 4:18; 5:28과 마 9:21; 14:2과 마 26:5; 15:10과 마 27:18에도 나타난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헬라어 소이 레고(soi lego-). “너에게 내가 말한다.” 여기에서 헬라어 어순이 강조하는 바는 예수가 말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있다. 10절에서는 믿지 않는 서기관들에게 말했으나 이제 그들에게 증명해주기 위해서 중풍병자를 향하여 너에게 나는 말한다, 일어나라고 했다. 육체적으로 치료하는 능력은 영적으로 치유하는 권위에 대한 증거이다.

 

네 침상을 가지고. 병자는 침상에 누운 채 예수에게 운반되었다. 그는 이제 일어난 큰 변화의 증거로서 그의 침상을 가지고 예수를 떠난다.

 

 

대학선교센터교회


안식일학교

경배와 찬양 다같이
찬       미 83장
시작기도 기도자
환       영 안교장
특별순서  
교과공부 각 반
헌금소개 사회자
축       도 담임목사

 

기억절 2기 11과 (일몰 : 7시 56분)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사 50:4).

 

5월 시무 안내
시       무 : 권욱민
헌금봉사 : 김주아 문정현

  다음주 예배 순서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5 김미현 소그룹 6 박다정 김성민
12 김영서 소그룹 13 이한얼 배승환
19 김주아 소그룹 20 이신애 권세진
26 박유림 소그룹 27 민대홍 서반석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 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28 장
대 표 기 도 이신애 집사
특 별 찬 양 경외 캠모
설        교 권세진 목사
찬        미 278 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캠퍼스 소식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 일요기도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3. 정기직원회
    일시 : 6월 20일(안) 점심식사 전
    예배 후 직원회가 있습니다. 모든 직원은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4. 전국대학생여름수련회
    일시 : 6월 28일(일)-7월 1일(수)
    장소 : 안면도연수원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청년회
    • 청소당번 : 남집사 장로
     

캠퍼스 모임

화랑 소그룹 월요일 17:30
과광 소그룹 월요일 18:30
고대 소그룹 화요일 17:00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00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30 ZOOM
경외 소그룹 수요일 18:30
회기 소그룹 목요일 18:30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채령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허미라  재무 김건우
선교회장 문호준  액트회장 김미현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1길 11
어린이청소년비전센터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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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미 8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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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       영 안교장
특별순서  
교과공부 각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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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도 담임목사

 

기억절 2기 11과 (일몰 : 7시 54분)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3-5).

 

5월 시무 안내
시       무 : 권욱민
헌금봉사 : 김주아 문정현

  다음주 예배 순서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5 김미현 소그룹 6 박다정 김성민
12 김영서 소그룹 13 이한얼 배승환
19 김주아 소그룹 20 이신애 권세진
26 박유림 소그룹 27 민대홍 서반석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 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24 장
대 표 기 도 이한얼 청년
특 별 찬 양  
설        교 배승환 목사
찬        미 509 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캠퍼스 소식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 일요기도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3. 종강예배
    일시 : 6월 19일(금)

  4. 4층 식당 공사
    4층 식당 내부 공사로 인해 다음 주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5. 정기직원회
    일시 : 6월 20일(안)
    각 부서는 안건을 미리 목회실 또는 서기에게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
  6. 부목사 휴가
    일시 : 6월 15일(월)-17일(수)
  7. 전국대학생여름수련회
    일시 : 6월 28일(일)-7월 1일(수)
    장소 : 안면도연수원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여집사 2조
    • 청소당번 : 과기광운캠모
     

캠퍼스 모임

화랑 소그룹 월요일 17:30
과광 소그룹 월요일 18:30
고대 소그룹 화요일 17:00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00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30 ZOOM
경외 소그룹 수요일 18:30
회기 소그룹 목요일 18:30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채령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허미라  재무 김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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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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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첫 제자들, 누가복음 연구 9.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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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5:1-11

[1]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그 이적이 제자들에게 전하여 준 그 의미 심장한 교훈은 우리를 위한 교훈이기도 하다. 즉, 말씀으로 바다에서 고기를 모을 수 있었던 그분은 또한 인간의 마음에 감명을 주고 그의 사랑의 끈으로 그 마음들을 이끌어서 그의 종들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할 수 있으셨다.
그들은 미천하고 배우지 못한 갈릴리의 어부들이었지만 세상의 빛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택하여 앉히시려고 부르신 그 지위에 합당하게 하실 수 있으셨다. 구주께서는 교육을 멸시하시지 않으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지배를 받아 그 사업에 헌신할 때에 지적 교양은 축복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 당시의 지혜 있는 사람들을 지나쳐 버리신 것은 그들이 너무 자신만만해서 신음하는 인류들을 동정할 수가 없고 따라서 나사렛 사람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완고하게도 그리스도의 가르침 받는 것을 비웃었다. 주 예수께서는 당신의 은혜를 전달하는 데 막힘이 없는 통로가 될 자들의 협력을 구하신다.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첫째로 배워야 할 일은 자아를 불신하는 교훈이다. 그리하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품성을 나누어 받을 준비가 갖추어진다. 이것은 가장 훌륭한 과학적인 학교의 교육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늘의 교사에게서만 얻어지는 지혜의 열매인 것이다.”(소망, 249-250)

 

수님께서 부르신 첫 제자들은 어부들이었다. 그 과정과 의도는 무엇일까?

 

본문연구

  1. 11절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저희들은 누구들인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cf. 4:18-22과 막 1:16-20과 비교하여 첫 제자들의 이름을 나열해 보라.

  2. 마태(4:18-22)와 마가(1:16-20)의 기록에 비하면 누가의 기록은 자세한 사실을 말해주 고 있다. 복음서 기자들의 본문에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cf. 시몬 베드로를 부르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본문에서 모두 찾아보라.
    cf. 1절의 게네사렛은 구약에서는 긴네렛”, 신약에서는 갈릴리혹은 디베랴라고도 불리는 갈릴리 북서쪽의 지명이다.

  3. 5-6절에서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가득 잡은 이적을 통하여 예수님께 서는 무엇을 암시하시고자 하셨는가?
    9-10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cf. 4:19과 막 1:17을 참고하라.

  4. 베드로가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한 것은 왜일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cf. 전문지식 vs 하나님의 말씀 이 충돌될 때.. 나는 어떻게 하는가?
    cf. 10:8과 사 6:5을 참고하여 설명해 보자.

 

토의사항

  1. 예수님께서 주로 “어부들”을 제자로 삼으신 까닭은 무엇인지 이야기 해보라.

    예수께서 배움이 없는 어부들을 선정하신 것은 그들이 그 당시의 유전과 그릇된 관습들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선천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며 겸손하고 온순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사업을 위하여 교육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 시대의 소망, 250.

  2.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11)는 어부들의 순 종과 비교하여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과 순종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이야기 해보자. (직접 부르심? 간접 부르심?)

 

가는 마태와 마가와는 달리 매우 상세하게 첫 제자들을 부르신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예수를 옹위(press)하던 많은 무리들 가운데서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을 선별하셨다. 주님의 제자가 되는 특권을 우리는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1. 무리가. 누가는 순서에 관계없이 갈릴리 호숫가에서 있었던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의 부름을 기록한다. 시간적인 순서로 보면 이 기사(1~11)4:3233절 사이에 속한다(참조 마 4:23 주석). 누가가 이렇게 배열한 이유는 나사렛(4:16~30)과 가버나움(31~37)에서 베푼 두 번의 회당 설교를 하나로 묶고, 첫 번째 갈릴리 전도여행에 관한 기사(12~15)를 제자들의 부름(5:1~11)과 연결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게네사렛. 비옥한 게네사렛 평지가 근처에 있었으며, 아마도 이 때문에 호수에 그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참조 마 14:34; 6:53). 산지와 호수 사이에 위치한 이 평지의 북쪽에는 가버나움이, 남쪽에는 막달라가 있는데 지금은 엘-구웨이르(el-Ghuweir)라고 불린다. 이 평지는 길이가 5킬로미터이고 폭이 2.4킬로미터 정도 된다. 아열대성 기후로 인하여 호두, 무화과, 감람 열매 그리고 포도가 생산된다. 게네사렛 호수는 구약 시대에는 일반적으로 긴네렛이라고 불렸다(34:11; 12:3 ). 그리스도 당시에는 갈릴리 바다(혹은 게네사렛 호수)가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풍요롭고 인구가 밀집된 지역과 맞닿아 있었다. 갈릴리는 주로 유대인들로 구성되었지만 유대교의 본부인 예루살렘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참조 2:42, 44 주석). 갈릴리는 유대교의 편견과 적대에서 벗어나 있었고, 따라서 여러 면에서 그리스도가 자신의 사업을 수행하기에 이상적인 곳이었다.

 

2. . 여기에 언급된 배들 가운데 하나는 베드로와 안드레의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야고보와 요한의 것이었다.

 

어부. 문자적으로 바닷사람.” 얼마 안 있어 사람 낚는 어부가 될, 세베대와 둘 이상의 삯꾼”(참조 막 1:20)과 함께 이 네 명의 어부는 야간 고기잡이에서 이제 막 돌아왔다(참조 5:5).

 

5. 선생. 헬라어 에피스타테스(epistate-s). 문자적으로 “[다른 사람의] 위에 서 있는 사람.” 따라서 감독관혹은 관리자를 뜻한다. 누가는 예수를 가리키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한 유일한 공관복음서 기자이다. 누가와 그 밖의 기자들이 자주 사용한 더 일반적인 단어는 디다스칼로스(didaskalos)인데 문자적 의미는 선생이다(참조 요 1:32 주석). 사실 베드로는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그들이 고용한 사람들이 경영하는 고기잡이 사업의 감독즉 에피스타테스였다(참조 막 3:16 주석).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낮에는 고기들이 갈릴리 호수의 깨끗한 물 속에 펼쳐진 그물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고기잡이하기에 알맞은 시간은 밤이었다.

 

얻은 것이 없지마는. 갈릴리 호수에는 고기가 가득했고, 따라서 고기잡이는 지역의 일반적인 직업이었다.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돌아오는 일은 흔한 경험이 아니었다. 수 분 후에 풍성한 고기를 잡도록 도운 동일한 능력이 밤새 쏟은 수고에 아무런 결실이 없도록 만들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때때로 우리가 힘을 다해 쏟은 수고가 아무런 열매 없이 끝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오직 더 큰 능력과 연합으로만 바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예수와 연합의 필요성을 더욱 분명하고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하여 우리의 계획과 수고를 방해한다.

고기잡이는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베드로의 직업이었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그의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성공했음이 분명하다. 경험 많은 어부인 베드로는 자신의 고기잡이 지식이 목수이며 건축가였던 예수의 지식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선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지난날 예수가 행한 일을 보았던 것을 근거로 신뢰하는 마음에서, 베드로는 동료들과 함께 예수의 요청에 응하였다. 어떤 경우든 그들이 밤새도록 수고했던 것보다 더 악화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베드로와 동료 어부들은 지난밤의 헛수고를 생각하면서 낙담에 빠져 있었다. 밤새도록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지루한 감옥에서 6개월 동안 괴로운 나날을 보냈던 침례자 요한의 운명을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참조 3:20 주석). 그들은 또한 그리스도가 지난해에 거의 모든 노력을 유대 지방에 기울였지만, 유대 지도자들의 신임과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리스도의 고향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고 했던 나사렛에서의 최근 경험을 회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헛된 수고로 지치고 불신의 마귀로 인해 시험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틀림없이 옛날의 야곱처럼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42:36)라고 외치려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난밤의 실망스러운 경험에 뒤이어 어부 베드로에게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줄 경험이 이제 막 일어나려는 참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봉사에서도 유대와 나사렛에서의 실망스러운 경험은 이제 갈릴리의 영광스러운 성공으로 바뀌려 하고 있었다. 무리들이 곧 예수에게 몰려들어 때로는 식사와 수면을 취하기 위해 그들에게서 피해야 할 정도가 될 것이었다.

 

6. 심히 많아.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호숫가에서 계속 그물을 정리하고 있었을 것이다(참조 7).

전에는 아무것도 잡을 수 없었지만 이제 예수와 연합하여 그들의 기대를 훨씬 능가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스도 조차도 사람들 가운데 인간으로 사는 동안 아무것도 자신의 힘만으로는 하지 않은 것처럼(참조 요 5:19, 30; 8:28),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 예수를 좇고자 하는 사람들도 그와 함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워야만 한다(15:5). 특별히 사람을 낚는 일을 할 때는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의 노력과 결합될 때만 그 결과가 효과적이고 지속적일 수 있다. 1년 반 후에 비슷한 상황에서 무수한 고기가 잡힌 일과 비교해 보라(참조 요 21:11).

 

8. 베드로가 이를 보고. 숙련된 어부로서 바로 이 호수에서 일을 하면서 삶의 대부분을 보낸 베드로는 이적이 일어났음을 곧바로 알았다.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 사는 고기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심지어 자신의 일터인 호수에 있는 고기들조차도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듯 보였다. 이제 그 역시 사람을 낚는 대가(大家)의 부름에 순종할 준비가 되었다. 참조 6, 9절 주석.

 

엎드려. 배들이 아직도 호수에 나가 있고, 다른 사람들도 그물에 걸린 고기들을 꺼내고 있는 동안에. 그리스도 역시 아직 시몬의 배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참조 3).

 

나를 떠나소서. 예수와 교제할 가치가 없다는 자각이 베드로의 양심에 강렬하게 엄습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그리스도께 매달렸고, 따라서 그의 말은 예수에게서 분리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전적인 무가치함에 대한 자각을 암시했다(참조 시대의 소망, 246).

 

죄인이로소이다. 경찰이 도둑의 범죄행각을 모른다 할지라도 경찰이 앞에 있으면 도둑이 불안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죄인들이 완전한 구주 앞에 있을 때 얼마나 더 부끄럽고 무가치한 감정을 갖겠는가? 무가치함에 대한 자각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하여 삶과 성품을 바꾸는 일을 시작할 때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생기는 첫 번째 반응이다. 이사야가 이상 가운데서 거룩한 임재 속으로 들어갔을 때 동일한 감정을 느꼈다(6:5). 하나님은 구원의 필요성을 먼저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직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만이 배부를 것이다(참조 마 5:3, 6 주석). 아마도 처음으로 베드로에게 영적인 필요에 대한 깊은 각성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11. 모든 것을 버려 두고. 그들이 예전에 잡아보지 못한 엄청난 양의 고기를 소유하게 된 네 명의 동업자가 거기에 서 있었다. 그들은 가장 큰 물질적 성공을 거둔 그 순간 자신들의 사업을 버렸다(참조 시대의 소망, 273). 그들이 기적의 더 고귀한 의미를 보았다 해도, 지금까지는 미미한 성과만을 올린 떠돌이 선생의 제자로서 불확실한 생계를 위해 자신들이 선택한 직업을 버리는 데는 참으로 큰 믿음이 필요했을 것이다(시대의 소망, 245). 그러나 예수는 고기를 풍부하게 제공해 줌으로써 제자들의 필요를 채워 줄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었으며, 그들은 겸비하게 믿었다.

제자들에게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예수와 함께 더욱 고귀한 동업을 하기 위해 어부로서의 성공적인 동업을 해체하려는 것은 즉각적이고 현명한 결정이었다. 그들은 곰곰이 생각해 볼 시간도, 가족들의 필요를 제공해 줄 시간도 필요치 않았다(참조 마 8:19~22). 그들은 평범한 어부로서 깊은 곳으로 나아갔지만, 해안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그리스도가 이제 그들을 불러 사람을 낚도록 하기 위하여 지시한 깊은 곳을 향해 믿음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유지해 줄 것으로 믿었던 것들을 찾기 위해 밤이 새도록 수고했으나 허사로 끝났다. 이제 그들은 삶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포기하고자 했고, 그렇게 함으로 더 부요하고 더 풍성한 삶을 시작했다(참조 막 10:39). 그들은 봉사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갔다(참조 막 3:14 주석).

 

예수를 좇으니라. 지금까지는 적어도 네 명 중 세 명 즉 베드로, 안드레, 요한이 간헐적으로 예수를 좇았다. 두 가을 전에 요단강에서 그들이 받은 부름은 예수를 메시야 즉 세상 죄를 짊어지기 위해 온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인정하라는 부름이었다(참조 요 1:35~50 주석). 이제 그들은 신자로서만이 아니라 제자와 동역자로서, 자신들의 삶과 소유를 그의 것과 결합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 이전에는 이들 중 누구도 예수와 완전히 그리고 영구적으로 연합한 자는 없었다(시대의 소망, 246). 그들은 그동안 시간제 제자들이었고, 따라서 그들의 관심은 현세적 삶과 더 높은 삶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제부터 그들은 시간과 재능을 전적인 봉사에 바쳐야 했다. 네 제자가 예수를 따라간 것은 그들이 게을러 생계를 위해 일하기 싫어서나 그들의 세상적인 사업이 성공적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깊은 확신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가 부른 다른 제자들처럼 그들도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따르라는 부름을 받을 때까지 자신들이 택한 직업에 충실하였다.

이스라엘의 지식인들은 네 제자 가운데 누구도 선생이 될 충분한 자질을 가졌다고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비천하고 불학 무식했지만 바로 이런 특성들이 제자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그들이 랍비의 잘못된 사상으로 교육받지 않았기 때문에 천국을 건설하는 일에 숙련된 일꾼으로 만들어 주는 데 필요한 교훈을 배우기가 훨씬 쉬웠다(참조 막 3:15 주석). 때로는 예수가 가르치고자 하는 교훈을 더디 배웠지만 그들은 예수에게 진정으로 헌신하였다. 예수의 사랑은 그들이 개인적으로 그에게 굴복하는 정도에 따라 점차 그들의 마음과 정신을 변화시켰다. 그들이 훈련을 마치고 나왔을 때, 더 이상 교양이 없거나 무식하지 않고, 예리한 통찰력과 건전한 판단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되었다. 사실 그들은 예수와 닮은 점이 무척 많아 그들이 예수와 함께 있었음을 다른 사람들이 알 정도였다(참조 행 4:13).

하나님의 사업에 유용하게 되는 것은 뛰어난 지성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눈앞에 있는 일에 대한 헌신에 달려 있다. 만일 그러한 재능들을 하나님께 바친다면, 위대한 재능과 탁월한 지성을 가진 한 사람의 영향력은 더 넓은 영역에서 일반에게 알려질 것이 분명하다(참조 실물교훈, 333).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보다, 사랑스런 마음과 온유한 마음 그리고 자원하는 손들로 당신의 사업을 훨씬 쉽게 이룰 수 있다.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아를 제쳐두고 마음속에 성령이 역사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것이다(참조 시대의 소망, 250).

대학선교센터교회


안식일학교

경배와 찬양 다같이
찬       미 83장
시작기도 기도자
환       영 안교장
특별순서  
교과공부 각 반
헌금소개 사회자
축       도 담임목사

 

기억절 2기 10과 (일몰 : 7시 51분)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5월 시무 안내
시       무 : 권욱민
헌금봉사 : 김주아 문정현

  다음주 예배 순서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5 김미현 소그룹 6 박다정 김성민
12 김영서 소그룹 13 이한얼 배승환
19 김주아 소그룹 20 이신애 권세진
26 박유림 소그룹 27 민대홍 서반석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 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22 장
대 표 기 도 박다정 집사
특 별 찬 양 회기 캠모
설        교 김성민 목사
찬        미 504 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캠퍼스 소식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 부고 안내
    김응호 장로님의 어머님께서 주안에서 잠드셨습니다.
    장례 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교회에선 점심식사 마치고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일정 : 위로예배 5일 오후 3시
              입관예배 6일 오후 3시
              발인예배 7일 7시 30분
    장소 : 신평장례식장(충남 당진)
  3. 액트매점
    일시 : 6월 9일(화)-11일(목)
  4. 종강예배
    일시 : 6월 19일(금)

  5. 전국대학생여름수련회
    일시 : 6월 28일(일)-7월 1일(수)
    장소 : 안면도연수원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여집사 2조
    • 청소당번 : 경희외대회기캠모
     

캠퍼스 모임

화랑 소그룹 월요일 17:30
과광 소그룹 월요일 18:30
고대 소그룹 화요일 17:00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00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30 ZOOM
경외 소그룹 수요일 18:30
회기 소그룹 목요일 18:30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채령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허미라  재무 김건우
선교회장 문호준  액트회장 김미현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1길 11
어린이청소년비전센터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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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선교센터교회


안식일학교

경배와 찬양 다같이
찬       미 83장
시작기도 기도자
환       영 안교장
특별순서  
교과공부 각 반
헌금소개 사회자
축       도 담임목사

 

기억절 2기 9과 (일몰 : 7시 46분)
"내가 주의 법도들을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 때문에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들만을 찾았나이다"(시 119:93, 94).

 

5월 시무 안내
시       무 : 최형동
헌금봉사 : 김미현 김영서

  다음주 예배 순서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5 김미현 소그룹 6 이신애 김성민
12 김영서 소그룹 13 이한얼 배승환
19 김주아 소그룹 20 박다정 권세진
26 박유림 소그룹 27 민대홍 서반석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 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21 장
대 표 기 도 유수아 집사
특 별 찬 양  
설        교 김건우 장로
찬        미 454 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캠퍼스 소식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 한국액트 OB 가족 캠프
    일시 : 5월 30일(안)-31일(일)
    장소 : 천안 소노벨
  3. 동성학교 신축 기숙사 준공 기념예배
    일시 : 5월 30일 오후 2시
    장소 : 동성학교
  4. 담임목사 휴가
    일시 : 6월 1일(월)-2일(화)
  5. 액트매점
    일시 : 6월 9일(화)-11일(목)
  6. 종강예배
    일시 : 6월 19일(금)
  7. 전국대학생여름수련회
    일시 : 6월 28일(일)-7월 1일(수)
    장소 : 안면도연수원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여집사 1조
    • 청소당번 : 화랑고대캠모
     

캠퍼스 모임

화랑 소그룹 월요일 17:30
과광 소그룹 월요일 18:30
고대 소그룹 화요일 17:00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00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30 ZOOM
경외 소그룹 수요일 18:30
회기 소그룹 목요일 18:30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채령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허미라  재무 김건우
선교회장 문호준  액트회장 김미현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1길 11
어린이청소년비전센터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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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선교센터교회


안식일학교

경배와 찬양 다같이
찬       미 83장
시작기도 기도자
환       영 안교장
특별순서  
교과공부 각 반
헌금소개 사회자
축       도 담임목사

 

기억절 2기 8과 (일몰 : 7시 41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5월 시무 안내
시       무 : 최형동
헌금봉사 : 김미현 김영서

  다음주 예배 순서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1 이진건 소그룹 2 박수빈 김성균
8 임태훈 소그룹 9 윤주형 권세진
15 임현빈 남수명 16 심영은 남수명
22 이종혁 소그룹 23 이다솜 김형준
29 김진수 성만찬예식 30 유수아 김건우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 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19 장
대 표 기 도 이다솜 청년
특 별 찬 양  
설        교 김형준 목사
찬        미  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캠퍼스 소식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 일요기도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3. 동중한합회 캠포리
    일시 : 5월 22일(금)-25일(월)
    장소 : 원주 피노키오 수련원
  4. 정기직원회
    일시 : 5월 23일(안) 점심식사 전
    모든 직원은 직원회에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5. 성만찬예식
    일시 : 5월 29일(금)
  6. 한국액트 OB 가족 캠프
    일시 : 5월 30일(안)-31일(일)

    장소 : 천안 소노벨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남집사, 장로
    • 청소당번 : 학생반, 여집사
     

캠퍼스 모임

화랑 소그룹 월요일 17:30
과광 소그룹 월요일 18:30
고대 소그룹 화요일 17:00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00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30 ZOOM
경외 소그룹 수요일 18:30
회기 소그룹 목요일 18:30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채령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허미라  재무 김건우
선교회장 문호준  액트회장 김미현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1길 11
어린이청소년비전센터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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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은혜의 해, 누가복음 연구 8.pdf
1.66MB

눅 4:14-22

[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15]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진리가 그리스도의 시대에는 인기가 없었다. 진리는 현 시대에도 인기가 없다. 사단이 최초에 자고심을 일으키는 거짓말을 제시함으로 진리에 대한 염오를 사람에게 준 이래로, 진리는 인기가 없다. 우리는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두지 아니한 이론과 교훈에 접촉하고 있지 않는가? 사람들은 마치 유대인들이 그들의 유전에 대하여 그리하였던 것처럼, 이런 이론과 교훈에 집요하게도 매달리고 있다”(시대의 소망, 1권, 242).

 

수님의 첫 설교(누가의 기록)는 이사야 선지자가 메시아에 대해 예언한 말씀이었다.

 

본문연구 (참고: 시대의 소망 제 12-13장)

  1. 안식일에 회당에서(1419).
    예수께서 그의 고향 회당을 방문하신 것은 일련의 안식일 설교와 가르침이 끝난 후였다(14,15). 대체로, 예수님과 바울이 회당에 간 것은 안식일 준수를 시사한다. 예수님의 규례는 회당에 참석하는 것이었다(16).

  2. 예수님의 봉사에 권위를 준 것은 무엇인가?(4:14; 4:31, 32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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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는 설교하고 가르치시는 권리와, 기사를 행하시는 권능을 가지고 오셨다. 그분의 명성은 그 권능의 증거로부터 자라 나갔다. 그분은 권세와 단순성으로 말씀하셨다. “그분은 그들이 이해하기 좋게, 명백하고 단순하게 진리를 말씀하셨다. 그분의 언어는 단순하였다! 가장 가난한 자도, 무학자나 무식한 자도 그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본교 성경 주석, 51120).

  3. 요한복음 138절에서, 예수께서 봉사를 시작하실 때 처음으로 말씀하신, “너희가 무엇을 구하느냐?”는 말씀을 읽을 수 있다. 이 말씀을 다른 복음서 기자들이 쓴 첫 말씀들과 비교하라(4:17; 1:14, 15; 4: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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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는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전도하셨다고 말한다(4:43). 첫 세 복음서들 (마태, 마가, 누가)이 예수님의 이야기를 비슷하게 말하기 때문에, 비록 독특한 부분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을 공관 (함께 본다) 복음서라고 한다. 누가가 나사렛의 설교를 기록한 것은 마태나 마가와 다르다. 요한의 복음은 대부분 공관 복음에 없는 것들이 많은데, 그것은 말씀하신 예수님에 관한 장엄하고 권위적인 진술로 시작된다.

  4. 누가가 예수님의 말씀 중에 나사렛 설교를 제일 처음 것으로 택한 의미가 무엇일까?(4:17~19; 61:1, 2; 19:10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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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받으시는 해를 선포하셨다 (“주의 은혜의 해4:19). 그분께서는 중보의 혜택이 미치기를 기대하셨다. 하나님의 은혜의 해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분의 은혜 속에 있다.

  5. 예수님께서는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 대한 교회와 각 교인의 책임이 무엇이라고 하셨는가? (4:17~19; 25:34~45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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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시매. 자적으로 그는 가르치기를 계속했다.” 가르치는 것은 그리스도가 진리를 나누어 줄 때 사용한 통상적인 방법이다. 오늘날에는 설교가 진리를 제시하는 좀 더 공식적인 방법이고 가르치는 것은 덜 공식적이다. 가르치는 것이 설교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가르칠 때는 청취자들이 참여하기 때문이고, 반면에 설교할 때는 청취자들이 주로 수동적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예수는 산상설교와 생명의 떡에 대한 설교 등과 같은 좀 더 공식적인 강론을 하곤 했다. 그러나 산상설교에서도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5:2)라고 기록되어 있다. 자신의 설교에 가르침의 특성까지 가미한 설교자는 복된 사람이다.

 

나사렛. 참조 4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이것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공적 봉사를 위하여 AD 27년 가을 목공소를 떠난 이래 그가 한 첫 번째 나사렛 방문이었다(시대의 소망, 236). 이때는 아마도 AD 29년 늦은 봄이며 그의 공적 봉사의 거의 반이 지난 시기였을 것이다. 1년 후, 아마도 AD 30년 이른봄에 예수는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시대의 소망, 241) 이 성읍을 방문했다. 첫 번째 방문은 16~30절에만 기록되어 있고, 두 번째 방문에 대해서는 막 6:1~6을 참조하라. 나사렛에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 그리고 자매들이 살고 있었고, 따라서 바로 이 안식일에도 그들이 회당의 예배자들 사이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안식일에. 누가가 구체적으로 주일 중 일곱째 날(참조 23:56~24:1)로 밝힌 안식일에 예수가 성스러운 회당 예배에 규례대로참석했다는 그의 진술에는, 자신의 주인을 사랑하므로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가 분명히 나타나 있다(참조 요 14:15; 벧전 2:21). 그리스도가 지상에 있을 때 개인적으로 유대인들이 지켰던 것과 동일한 날을 지켰다는 사실 역시 시내산에서 율법이 주어진 이후로나 창조 이후로 날짜가 잃어버린 바 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된다. 그리스도는 안식일의 주인”(2:28)이다. 즉 그가 그날을 만들고(2:1~3; 참조 막 2:27) 그것을 자신의 날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안식일 준수에 대한 그의 모본은 준수 시간이나 방법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온전한 귀감이다. 더욱이 현재의 1주일은 그리스도 시대로부터 단절 없이 연속돼 내려왔고, 따라서 오늘날 주일 중 일곱째 날을 준수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지켰던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수백만의 유대인들이 문명화된 세계 각처로 흩어졌으며, 따라서 그들 모두가 주일 중 일곱째 날을 헤아리는 일에 일제히 같은 실수를 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기 규례대로. 문자적으로 그에게 습관이 된 것에 따라.” 그리스도는 안식일에 정규적으로 회당 예배에 참석하는 습관이 있었다. 청년 시절에 바로 이 나사렛 회당에서 그는 선지자들의 글을 낭독하라는 요청을 받았고, 또한 친숙한 성경 지식으로 예배자들을 감동시키는 교훈을 끌어내 보였다(시대의 소망, 74). 예수는 유대와 갈릴리 회당에 사람들이 모였을 때를, 그들을 가르치는 기회로 이용한 것으로 보이며(참조 눅 4:15 주석; 4:23; 12:9; 13:54; 1:21; 6:2; 18:20 ), 후에 바울도 이방 나라에서 그렇게 했다(참조 13:14, 15, 42).

 

17. 이사야. 그리스도 당시에는 선지자들의 글을 읽고 설교하라는 부탁을 받은 사람이 어떤 부분을 읽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었다. 예수는 특별히 선지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요청했다(참조 4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드리거늘. 즉 성스러운 두루마리를 궤에서 꺼내 낭독할 사람에게 건네주고, 낭독이 끝나면 다시 궤에 넣는 일을 담당하는 집사 곧 핫잔(h.azzan)드리거늘.” 회당 예식에 따라 핫잔이 선지자들의 두루마리를 궤에서 취하여 덮개를 벗기고 그것을 펼쳐서 예수에게 전해 주었다. 예수가 백성들의 일상 언어를 구사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종교적 목적 외에는 거의 쓰지 않았던 히브리어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당시에 성경은 언제나 히브리어로 읽었다.

 

기록한 데. 누가가 인용한 구절은, 많은 고대 사본에 있는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라는 구절을 생략하고 사 58:6을 의역한 눌린 자를 자유케 하여라는 구절을 삽입한 것을 제외하고는 70인역의 사 61:1, 2 상단과 일치한다. 아마도 누가는 기록할 때 그 당시의 70인역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참조 3:36 주석). 성경의 여러 구절을 이런 식으로 함께 연결하는 것은 유대인의 흔한 관행이었다(참조 막 1:2 주석).

 

찾으시니. 예수는 자신이 읽고자 하는 구절이 나올 때까지 두루마리를 계속 펼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이미 지나간 부분을 감았다(참조 제1, 33[사해두루마리 이사야서]). 61:1, 2은 그 두루마리의 거의 끝 부분에 있었을 것이다.

 

내게 임하셨으니. 예수의 지상 봉사에 권능을 부여하기 위해 침례 시에 성령이 그에게 임했다(참조 눅 3:21, 22; 1:32; 10:38).

 

가난한 자에게. 가난한 자들은 흔히 파렴치한 관료, 사업가들 그리고 이웃들의 학대를 받았다. 더욱이, 일반적으로 가난의 고통은 하나님의 저주로 인한 것이며 그들의 불행한 상황은 그들 자신의 잘못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간주했다. 사람들은 그들의 불쌍한 처지에 대하여 거의 동정심을 갖지 않았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예수의 각별한 사랑은, 침례자 요한이 감옥에서 고통받고 있을 때 그의 주의를 끌었던, 예수가 메시야라는 위대한 증거 가운데 하나이다(참조 마 11:5). 이 세상의 재물을 조금밖에 갖지 못한 사람들은 궁핍함과 하나님을 의존하는 마음을 자주 느끼며, 따라서 복음 설교를 쉬 받아들이는 일이 자주 있다. 예수의 복음은 가난한 자에게는 구제를, 무지한 자에게는 빛을, 고통받는 자에게는 그 고통의 경감을, 죄의 노예들에게는 해방을 의미한다.

 

기름을 부으시고. 헬라어 크리오(chrio-). 이 단어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뜻하는 그리스도라는 칭호가 유래했다(참조 마 1:1 주석). 이 구절을 메시야적 배경에 맞춰 다음과 같이 의역할 수 있다. “그가 나를 그리스도로 삼았다혹은 그가 나를 메시야로 삼았다”(참조 사 61:1 주석).

 

포로 된 자. 이것은 문자적 의미의 포로가 아니라, 몸과 마음과 영이(참조 롬 6:16) 사단의 포로가 된 사람들을 가리킨다. 예수는 침례자 요한을 감옥에서 석방하지 않았다. 여기서 이 포로마귀의 올무에 걸려 그의 뜻을 좇는, 사단의 ”(참조 벧전 3:19)에서 고통당하는 영혼들을 말한다(참조 딤후 2:26).

 

눈먼 . 실제로 눈먼 사람들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눈먼 사람들도 포함한다(참조 마 15:14; 23:16~19, 26; 9:39~41).

 

눌린 . 여기에 인용된 구절은 본질적으로 영적인 의미에서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58:6에서 압제당하는”(oppressed)으로 번역된 동일한 히브리어 단어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한 사 42:3에서는 상한”(bruised)이라는 말로 되어 있다. 42:4에는 이 단어가 낙담(discouraged)이라고 번역되었다. 예수는 죄의 무거운 짐과 랍비들이 유대인들에게 부과한 압제적인 규정들에서 사람들을 자유케 하기 위해 왔다(참조 마 23:4; 11:28~30).

 

19. 은혜의 해. 곧 복음의 시대. 영적 필요를 느끼는 자들(심령이 가난한 자들), 통회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마음이 상한 자들), 죄의 포로가 되어 영적인 사물에 눈먼 자들, 악한 자에게 상처받아 깨진 사람들이 죄로부터의 해방을 기대할 수 있는 시대를 말한다. “주의 은혜의 해는 노예들이 풀려나고, 빚이 청산되며, 양도된 땅이 본 주인에게로 돌아가는 희년을 연상케 한다(참조 레 25:10, 15, 24 주석).

여기서 예수는 사 61:1, 2 낭독을 마쳤다. 그는 다음 구절 즉 애국심이 강한 유대인들에게는 전체 구절의 절정인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이라는 구절을 읽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구원은 자신들을 위한 것이며 징벌은 이방인들을 위한 것이라고 맹신했다(참조 시 79:6). ‘구원은 하나님께 대한 개인적인 순종의 문제가 아니라 국적의 문제다라는 유대인들의 개념 때문에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사명의 진정한 본질에 대해 눈멀어 그를 거절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막강한 군대를 진두 지휘하는 권세 있는 왕으로 나타나 자신들의 대적을 무찌르고 온 세상을 이스라엘의 세력 아래로 이끌어 들일 메시야를 기대하였다(시대의 소망, 30, 236,).

이 근본적인 오해는, 유대인들이 고난받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들을 고의적으로 간과하고 재림의 영광을 가리키는 예언들을 잘못 적용한 사실에서 기인했다(시대의 소망, 30). 이렇듯 그들을 영적인 맹목으로 이끈 것은 교만과 편견 그리고 선입견이었다(참조 시대의 소망, 65, 212, 212, 242). 그들은 한 사람에게 비치는 빛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빛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에 눈멀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는 생각에 잠기기를 좋아했으며, 따라서 예수가 그런 말을 꺼내지도 않아서 놀랐을 것이다. 예수가 설교 중에 이방인들의 믿음을 칭찬하고 정작 유대인에게는 믿음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암시했을 때, 청중들은 미친 듯이 분노하고 포악해졌다(참조 25~29).

 

21. 말씀하시되. 예수는 일반에게 랍비 즉 선생으로 간주되었다(참조 요 1:38, 49; 3:2; 6:25). 특별히 나사렛이 그의 고향이며 어린 시절 바로 이 회당에서 성경을 읽었던 것을 감안할 때, 방문한 랍비로서 그가 설교를 부탁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참조 4:16 주석). 누가는 특별히 22절에 기록된 결과와 28, 29절의 과격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강론을 선별하여 그리스도가 이때 전달한 내용에 대한 개요를 제시하였음이 분명하다.

 

이 사람이아니냐. 헬라어에서 이 질문의 형태는 질문자가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들의 질문은 의혹이 아니라 놀라움을 표현한 것이다. 여러 해에 걸쳐 예수를 알고 지냈기 때문에, 그들은 그가 자신들처럼 그렇게 결점 많은 사람은 아니겠지만 자신들과 같은 보통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들은 자신들이 익히 알고 있는 그가 약속된 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고, 그들은 믿음의 결핍으로 당혹스럽게 되었다.

 

요셉의 아들. 예수는 일반적으로 요셉의 아들로 여겨졌다(참조 2:33, 41; 3:23 주석). 예수의 모친과 형제 자매들은 여전히 나사렛에서 살고 있었으며(참조 마 13:54~56; 시대의 소망, 236), 틀림없이 그들도 청중 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사람들이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자문하면서 시선을 자연스럽게 예수의 가족들이 있는 방향으로 돌렸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 마리아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참조 2:34, 35,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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