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마게도냐의 부르심)-사도행전연구1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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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6:1-40

[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 그와 그 집이 다 침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19]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침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35]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36]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37]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38]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39]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내용 요약

  1. 디모데를 선택함 (1-5)
  2. 마게도냐의 간청 (6-10)
  3. 빌립보 사건 (11-40)

 

배 경 

15장에서 예루살렘 총회가 끝난 후 16장부터 제2차 전도여행이 시작된다. 제2차 전도여행의 중대한 의미는 복음이 아시아를 넘어 드디어 유럽으로 전파되는 데에 있다. 마게도냐의 부르짖음은 곧 유럽의 손짓인 것이다. 우리는 제16장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복음이 어떻게 유럽에 건너가는가를 보게 된다. 

 

"칠흙같이 어둡고 황폐한 토굴 가운데서도 그들은 기도하는 말로 서로 격려하고 하나님께 찬양의 노래를 불렀다. 그 까닭은 하나님을 위하여 수치를 당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행적 213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나에게 가장 뜻 깊은 여행은 어떤 여행이었나요?

  2.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본인이 생각하고 계획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도된 경험이 있나요?

  3. 신앙의 신실한 동역자며, 자신의 영적 아들 혹은 영적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있나요?

  4. 예배와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모임에 참석하는 행위가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적이 있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디모데의 가정에 대해 말해 봅시다. (행16:1-2, 딤후1:5)
     * 그는 특별히 찬란한 재간을 가지지는 아니하였으나 그의 사명이 중하였으니 이는 그가 천부의 능력을 주를 섬기는 일에 사용한 까닭이었다(행적, 203). 루스드라가 그의 고향이었다. 경건한 신앙의 가정에서 출생하였으며(딤후1:5) 어려서부터 성경을 공부했다(딤후3:15).

  2. 바울이 마게도냐지역으로 인도 되어 가는 여정을 이야기해 봅시다.
      
  3. 왜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16:6-10)
                                                                                       
  4. 바울은 회당이 없는 빌립보에서 안식일을 어떻게 지켰습니까? (16:13)

  5. 빌립보의 첫 열매인 루디아를 만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16:13)
      
  6. 간수는 왜 죄수인 바울 앞에 굴복했을까요? (16:29) 
                                                                           
  7. 바울은 왜 감옥을 나가지 않고 상관들이 와서 사과하기를 요청했을까요?

 

생각해봅시다

  1. 우리에게는 마게도냐의 부르심이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2. 바울은 로마 시민으로서 왜 안 맞아도 될 매를 맞고 감옥에 들어가는 고생을 당했을까 생각해 봅시다. 

사도들은 빌립보에서의 그들의 수고를 헛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많은 반대와 박해를 당하였으나, 저희가 당한 수치와 고통을 속하고도 남을 만큼 그들을 위한 섭리의 중재와 간수와 그 가족의 회심을 목도하였다. 부당한 투옥과 기적적인 구출에 대한 소식은 그 지역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져 달리 접촉할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사도들의 사업이 알려지게 되었다.(행적218p)

 


1. 디모데(Timotheus). 흔한 헬라어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얻은 자라는 뜻이다. 그 이름의 영어식 표기는 “Timothy”이다. 디모데는 아마도 제1차 선교여행 때 루스드라와 더베를 방문한 바울에 의해 회심했을 것이다(참조 14:6 주석). 그리하여 바울은 진정으로 디모데를 내 사랑하는 아들“(고전 4:17) 그리고 믿음 안에서 참 아들“(딤전 1:2)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디모데는 나이가 많지 않았고(딤전 4:12; 참조 사도행적, 203), 그의 연소함이 약 12년 후에 딤전 4:12에 여전히 언급된 것을 보면, 그의 나이가 아마도 18세나 20세를 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바울이 루스드라를 떠난 후 거의 2년이 지난 후(이에 대한 연대기를 알려면 60, 62쪽을 참조하라), 디모데는 헌신과 거짓이 없는 믿음”(딤후 1:5)으로 좋은 평판을 얻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구약을 배우며 양육받았다(딤후 3:15). 디모데가 루스드라뿐 아니라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도 칭찬을 받았다는 사실(16:2)은 그가 두 교회 간의 교제를 유지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음을 시사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거나 편지 가운데서 그를 언급할 때 그가 신체적으로 강하지 못하고 고된 선교 사업을 수행함으로써 나중에 더 약해진 것처럼 쓰고 있다(딤전 5:23). 디모데는 감성적으로 보였지만(딤후 1:4),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고난과 책임을 감당할 준비를 갖추었다(고전 16:10).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한 동역자로 언급되고(16:21), 최소한 드로아까지 2차와 제3차 선교여행에서 그의 사업의 동료였다(20:4, 5). 고전 4:17에서 우리는 디모데가 고린도로 보낸 바울의 사자였음을 알게 되고, 고후 1:1에서 고린도 교회에 대한 문안에서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등장한다. 그는 또한 바울과 데살로니가 교회 사이의 연락자였고(살전 3:2, 6), 빌립보서(1:1; 2:19), 골로새서(1:1), 빌레몬서(1)에 그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 바울의 로마 첫 투옥기간에 함께 그곳에 있었다. 13:23은 그의 투옥을 말하는데, 언제, 어디서였는지는 알 수 없다. 유세비우스(Ecclesiastical History . 4. 5)는 그를 에베소의 첫 감독이라고 기록한다. 디모데는 에베소 사람들의 손에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3. 할례를 행하니. 아마도 바울 자신이 의식을 집례했을 것이다. 언뜻 보기에 바울의 이 행동은 할례 주기를 거절한 디도에 관한 그의 행동과, 할례에 관한 그의 일반적인 가르침에(고전 7:18, 19; 5:2~6)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디도와 디모데의 경우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디도는 헬라인이었고, 그에게 할례를 주는 것은 바울이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원칙을 양보하는 일이 될 것이었다. 디모데는 혼합 혈통을 가졌지만, 유대인이었다. 왜냐하면 랍비의 법전은 유대인 어머니의 자녀는 유대인으로 간주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Talmud Yebamoth 45b, Soncino ed., 297). 만약 디모데의 부모가 모두 신실한 유대인이었다면, 그는 제8일에 할례를 받았겠지만(12:3), 틀림없이 부모의 종교적 차이가 그의 할례를 막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젊은 디모데는 바야흐로 공중 봉사를 시작하여 유대인들과 밀접한 접촉을 갖게 되었다. 만약 그가 할례를 받지 않으면, 제대로 되지 못한 유대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좋은 안내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에게 문젯거리가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른 이들에게 거리낌을 주지 않기 위해 유대 배경을 가진 이 청년에게 할례를 주는 것이, 할례가 영적으로 필요하며 구원에 필수적이라는 가르침을 반대하는 일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이것은 자신이 선언한 가치관과 조화를 이루었고(참조 고전 9:20 주석), 누가가 그 행동을 유대인을 인하여라고 기록한 이유이다.

 

6. 성령. 어떻게 성령이 바울을 가르쳤는지, 내적인 감동에서인지, 밤에 이상이나, 은사를 받은 자들을 통해 주어진 예언들에 의해서인지(참조 21:4) 누가는 언급하지 않는다(참조 2:4; 8:29, 39; 13:2 주석). 그러나 바울이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자신이 아시아와 비두니아로 들어가는 것을 막으시는 것을 알고(16:7) 이 두 지역에 들어가지 않았다. 한동안 그는, 큰 유대인 사회가 있고 우상숭배의 큰 중심지인 에베소와 서머나와 사데와 같이 사람들이 몰려 사는 도시들이 있는 아시아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 도시들이 틀림없이 바울에게 강하게 호소했지만, 바울은 성령의 명령에 완전히 순종했다. 그래서 그 선교사단은 다음에 어디에서 일할지 알지 못하고 북서쪽 해안을 향해 인도되었다.

 

7. 비두니아. 바울의 여행길 북쪽 지역에 위치한 비두니아에는 니코메디아(Nicomedia)와 니캐아(Nicaea) 같은 큰 도시와 상당수의 유대인 거주자가 있었다. 바울과 그의 일행이 다음에 그곳에서 일하고 싶었던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주께서는 자진해서 순종하는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다른 계획이 있었고, 그들은 북쪽이 아닌 서쪽으로 인도되었다(이 장 끝에 있는 추가적 설명을 참조하라). 여행 동안에 이 지점에서 그들이 한 어떤 사업에 대한 기록은 없다. 아마도 그들은 중요하지 않은 몇 마을을 그냥 통과한 것 같다.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베드로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서 사역했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그가 쓴 첫 편지는 이 지역에 있는 회심자들에게 보낸 것이기 때문이다(벧전 1:1). 이곳에서의 베드로의 사역과 관련된 시기는 대략 안디옥에서 있었던 그의 외식”(2:11~16) 이후였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유럽으로 가는 도중에 브루기아에서 활동하고, 외식”(2:13)한 바나바가 구브로에서 전도하는 동안(15:39), 베드로는 지금 성령이 바울을 막으시고 있는 북() 갈라디아를 포함한, 바로 그 지역에서 복음 사업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제안해 왔다. 이 시점에 바울과 베드로가 어느 정도까지 그들의 상이점을 조절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 두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은 다시 선교지에서 만나지 못함으로써 아마도 더 큰 오해의 아픔은 겪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사람의 터 위에 세우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다(15:20). 그러나 비두니아와 아시아에서의 사역을 금지한 주된 이유는 이때 복음이 유럽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8. 드로아. 드디어 그들은 해안에 도착했고, 에게 해(Aegean Sea) 저편으로 서쪽을 바라보았다. 알렉산드리아 드로아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경의를 표하여 그렇게 명명되었고, 이 당시 로마 식민지로서 자유 도시였다. 고대 도시 트로이는 드로아 북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고대 헬라 도시의 포위에 대한 호메로스의 기사에 거의 흥미가 없었다. 지금 그의 생각을 채우고 있는 관건은 무엇이 드로아의 주민들이 영생을 발견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구주로 선포하는 최선의 방법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생각들이 바울의 기도에서 나타났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9절에 기록된 환상이 주어졌다. 이 당시에 바울이 드로아에서 한 선교 사업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지만, 성경은 후에 그곳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충분한 증거를 제시한다(참조 행 20:5~12; 고후 2:12, 13; 딤후 4:13 주석).

 

13. 기도처. 헬라어 프로슈케(proseuche-). “기도.” 여기서는 기도 장소를 말할 것이다(참조 행 1:14; 16:16 주석; 마카베오37:20). 만약 빌립보에 회당이 없다면, 그 소수의 유대인들은 씻는 의식을 할 수 있도록 강둑 위에 집회 장소를 세웠을 것이다(참조 8:15, 21; 137:1). 유베날리스(Satires . 13, 14; Loeb ed., p. 33)는 이것을 로마 고대 종교의 부패에 대한 일례로 언급한다: “거룩한 샘과 숲과 신전들이 유대인들에게 유출되었다.” 같은 저자의 다른 글에 유사한 사례가 나타난다(ibid. 296; Loeb ed., p. 55). “말하라, 너의 선 곳이 어디인가? 어떤 기도처[프로슈케]에서 내가 너를 발견할까?” 그런 경내(境內)나 기도원들은 종종 원형이고 지붕이 없었다. 그런 장소를 소유하는 관습은 유대인들의 물가 기도”(orationes litorales)에 대해 말하는 테르툴리아누스 시대까지 지속되었다(Ad Nationes i. 13).

 

14. 자주장사. 즉 자주색 옷감 장사(참조 눅 16:19 주석). 남편이 아닌 그녀가 자주 장사로 명명된 사실은 그녀가 자기 소유의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고, 아마도 어느 정도의 자산가였다는 것을 시사한다.

 

16. 기도하는 곳에 (To prayer). 본문상의 증거(참조 20)그 기도”(to the prayer)라는 독법을 증거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 기도처에”(참조 13절 주석)라고 번역될 수 있다. 관사가 없다면 이 표현은 예배드리러 가다”(go to church)라는 현대의 표현과 비교할 수 있다. 이어지는 사건은 아마도 13절에 언급된 안식일이 지나고 첫 회심자들의 침례식 후(15), 곧 선교사들의 사업이 그 도시에서 꽤 알려진 어느 안식일에 있었을 것이다.

 

19. 이익. 헬라어 에르가시아(ergasia, 참조 19:24, 25 주석). 사람은 낯선 종교나 철학자들의 이론에 대해서는 관대할 수 있지만, 어떤 것이든 그들의 생계에 위협이 되는 것에는 격렬하게 분개한다(참조 19:23~28 주석). 초기교회의 많은 박해의 배후에 이런 정황이 있었을 것이다.

저자. 헬라어 아고라(agora, 참조 마 11:16 주석). 이것은 로마 광장(Roman Forum)에 해당했고, 친교와 상업뿐 아니라 사법 행정의 중심이었다.

 

20. 상관들. 헬라어 스트라테고이(strate--goi). “국가 관리관원들.” 이 관리에 대한 로마식 직함은 두움비리(duumviri) 또는 프라이토레스(praetores)였다. 이들은 로마의 식민지에서 최고 행정장관이었다. 보통 그런 관리가 두 명 있었다. 이들은 범법자에게 형벌을 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빌립보에서 나온 명각들은 그 도시 사람들이 두움비리라고 쓸 곳에 스트라테고이로 부정확하게 사용한 것을 보여 준다. 따라서 이것은 누가가 이 용어를 정확하게 사용했음을 확증한다.

 

22. 치라. 헬라어 랍디조(rhabdizo-). 랍도스(rhabdos) 막대기에서 파생된 막대기로 치다라는 의미로, 특히 로마 형벌의 한 형태이다. 스트라테고이(strate-goi, 참조 20절 주석)에게는 릭토르(lictor, 집정관 등을 따라다니며 죄인을 잡던 관리역자 주)라고 알려진 공식 수행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각각 직무의 상징으로 회초리 꾸러미를 가지고 다녔다. 그 막대기가 선교사들을 매질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 잔인한 형벌이 집행되는 것을 누가가 보았을 가능성이 있다. 바울은 두 번 다른 곳에서 유사한 고통을 당했다(참조 고 11:25). 바울이 후에 예루살렘에서 했던 것처럼(22:25), 로마 시민권을 근거로 그와 같은 수치스럽고 고통스런 처벌의 면제를 왜 주장하지 않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어떤 이들은 뚜렷한 근거 없이 그의 시민권 주장에 대해 진의를 묻는다. 다른 이들은 바울이 면제받을 수 있었으나 단지 그 자신만 그렇게 할 수 있었고, 실라는 그가 피한 그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실라 역시 로마 시민이었을 개연성이 크다(참조 16:37 주석). 아마도 군중들의 폭동 때문에 그의 주장이 거의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참조 37절 주석).

 

25. 기도하고찬미하매. 또는 기도하면서 그들은 찬미를 불렀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문은 두 개의 행동보다는 하나의 계속적인 행동을 표현한다. 선교사들의 잘 형성된 예배 습관은 가장 낙망적인 환경이라도 이겨냈다. 심지어 지하 감옥에서도, 족쇄에 채워져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도 없었지만 그들은 주님을 계속 찬미했다. 그 찬미는 기도 시편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들이 무슨 노래를 불렀든지, 테르툴리아누스의 말이 옳았다. “몸은 갇혔지만, 육체는 감금되었을지라도, 영혼에게는 모든 것이 열려 있다.마음이 하늘에 있을 때는 다리에 있는 사슬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Ad Martyras 2; ANF, vol. 3, 694).

 

27. 자결하려 하거늘. 간수는 죄수들이 달아나면, 로마법에 따라 자신의 생명으로 보상해야 한다는 것(참조 12:19 주석)을 알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는 자살이 더 나을 것처럼 보였다. 고전 세계의 가장 위대한 이교 사상가 중 어떤 이들은 이런 자살을 정당화하거나 심지어 칭찬할 만한 것이라고 여겼다.

 

28. 바울이소리질러. 내부 감옥의 침침한 어둠 속에서 바울은 외부 빛의 배경에 윤곽이 드러난 간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울은 공포에 사로잡힌 간수의 의도를 간파하고 그가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 깨닫자 곧 그의 자살을 막고자 했다. 심지어 자신이 당한 상당한 고통중에도 바울은 다른 사람의 구원을 생각했다. 그는 자신을 끔찍한 감옥으로 밀어 넣은 사람까지도 절망 가운데 멸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31. 그 집. 간수는 자신의 구원만을 확보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도 하나님의 선물을 누리게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종들과 협력하여 그의 가족들을 모으고 모두가 생명의 길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얼마나 특이한 회중인가! 얼마나 이상한 집회장소인가! 그러나 얼마나 복된 결과인가!

 

29. 부복하고. 간수는 그들을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말한 여종의 찬사를 들었을지도 모른다(17). 간수는 그가 받은 지시(23)를 통해 그들이 범상치 않은 죄수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제 그들이 도망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을 단순한 사람 이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37. 저희가 친히 와서. 상관들은 법적으로 정죄 받지 않은 사람에게 공공연히 형을 가하므로 중대한 실수를 범하였다. 이제 바울은 그들이 직접 불공정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대부분이 로마 시민인 빌립보의 회심자들이 더 나은 대우를 보장받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 바울의 개인적 명예가 아니라 복음의 명예가 달려 있었다.

 

40. 두 사람이나가. 사도들이 일단 상관들에게 그들의 심각한 실수를 보여 주고 또 공공연하게 복음을 옹호하고자 한 목적을 성취한 후에, 그들은 관대함의 본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자존심을 살리기 위한 어떤 난처한 요구도 하지 않고, 상관들의 요청에 조용히 응했다.

 

대학선교센터교회


안식일학교

경배와 찬양 다같이
찬       미 83장
시작기도 기도자
환       영 안교장
특별순서  
교과공부 각 반
헌금소개 사회자
축       도 담임목사

 

기억절 4기 4과 (일몰 : 5시 42분)
'여호와께서 사랑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수 10:14).

 

10월 시무 안내
시       무 : 김동은
헌금봉사 : 윤애리 정예진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1 박다정 양의식
7 임태훈 소그룹 8 정찬우 권세진
14 김진수 소그룹 15 심정은 배승환
21 권하린 소그룹 22 정희원 김유민
28 김미현 소그룹 29 박인앙 김형준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44장
대 표 기 도 이현민 청년
특 별 찬 양 화랑 캠모
설        교 임봉경 목사
찬        미 386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 제자훈련 기도회
    일시 : 10월31일(금)
    31일 금요일 저녁 소그룹 예배는 제자훈련 기도회로 변경되었습니다.
  3. 부목사 출장
    내용 : 연차별전도회
    일시 : 10월19일(일)~25일(안)
    장소 : 서하남교회
  4. 연말찬양발표회 찬양 연습
    일시 : 금요일 저녁 8시30분~9시
              토요일 오후 2시~3시
    장소 : 1층 본당
  5. 액트협회 총회
    일시 : 11월8일(안)~9일(일)
    장소 : 비전센터
  6. 일요기도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여집사 1조
    • 청소당번 : 화랑캠모

캠퍼스 모임

회기 캠모 월요일 18:00
과학기술, 광운대 캠모 월요일 18:00
화랑 캠모 화요일 18:00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00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30 ZOOM
경희,외대 캠모 수요일 18:00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유민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문호준  재무 김성미
선교회장 윤민식  액트회장 김미현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1길 11
어린이청소년비전센터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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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선교센터교회


안식일학교

경배와 찬양 다같이
찬       미 83장
시작기도 기도자
환       영 안교장
특별순서  
교과공부 각 반
헌금소개 사회자
축       도 담임목사

 

기억절 4기 3과 (일몰 : 5시 51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수 4:23,24).

 

10월 시무 안내
시       무 : 김동은
헌금봉사 : 윤애리 정예진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3 위건우 소그룹 4 정성숙 배승환
10 원유승 소그룹 11 백지원 권세진
17 성만찬예식 18 심영은 배승환
24 유정아 임봉경 25 이현민 임봉경
31 이진건 소그룹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43장
대 표 기 도 심영은 집사
특 별 찬 양 과기광운 캠모
설        교 배승환 목사
찬        미 256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캠퍼스 소식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 정기직원회
    일시 : 10월18일(안)
    장소 : 3층 세미나실
    모든 직원은 직원회에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3. 부목사 출장
    내용 : 연차별전도회
    일시 : 10월19일(일)~25일(안)
    장소 : 서하남교회
  4. 연말찬양발표회 찬양 연습
    일시 : 금요일 저녁 8시30분~9시
              토요일 오후 2시~3시
    장소 : 1층 본당
  5. 액트협회 총회
    일시 : 11월8일(안)~9일(일)
    장소 : 비전센터
  6. 일요기도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졸업생 청년회
    • 청소당번 : 남집사, 장로

캠퍼스 모임

회기 캠모 월요일 18:00
과학기술, 광운대 캠모 월요일 18:00
화랑 캠모 화요일 18:00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00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30 ZOOM
경희,외대 캠모 수요일 18:00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유민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문호준  재무 김성미
선교회장 윤민식  액트회장 김미현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1길 11
어린이청소년비전센터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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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학교

경배와 찬양 다같이
찬       미 83장
시작기도 기도자
환       영 안교장
특별순서  
교과공부 각 반
헌금소개 사회자
축       도 담임목사

 

기억절 4기 2과 (일몰 : 6시 00분)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히 11:31).

 

10월 시무 안내
시       무 : 김동은
헌금봉사 : 윤애리 정예진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3 위건우 소그룹 4 정성숙 배승환
10 원유승 소그룹 11 백지원 권세진
17 성만찬예식 18 손세림 배승환
24 유정아 임봉경 25 이현민 임봉경
31 이진건 소그룹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41장
대 표 기 도 백지원 청년
특 별 찬 양  
설        교 권세진 목사
찬        미 382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캠퍼스 소식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 액트매점
    일시 : 10월14일(화)-16일(목)
  3. 성만찬예식
    일시 : 10월17일(금)
  4. 정기직원회
    일시 : 10월18일(안)
    각 부서는 안건을 미리 목회실 또는 서기에게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5. 부목사 출장
    내용 : 연차별전도회
    일시 : 10월19일(일)~25일(안)
    장소 : 서하남교회
  6. 연말찬양발표회 찬양 연습
    일시 : 금요일 저녁 8시30분~9시
              토요일 오후 2시~3시
    장소 : 1층 본당
  7. 일요기도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여집사 3조
    • 청소당번 : 과광캠모

캠퍼스 모임

회기 캠모 월요일 18:00
과학기술, 광운대 캠모 월요일 18:00
화랑 캠모 화요일 18:00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00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30 ZOOM
경희,외대 캠모 수요일 18:00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유민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문호준  재무 김성미
선교회장 윤민식  액트회장 김미현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1길 11
어린이청소년비전센터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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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선교센터교회


안식일학교

경배와 찬양 다같이
찬       미 83장
시작기도 기도자
환       영 안교장
특별순서  
교과공부 각 반
헌금소개 사회자
축       도 담임목사

 

기억절 4기 1과 (일몰 : 6시 11분)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수 1:7).

 

10월 시무 안내
시       무 : 김동은
헌금봉사 : 윤애리 정예진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3 위건우 소그룹 4 정성숙 배승환
10 원유승 소그룹 11 백지원 권세진
17 성만찬예식 18 손세림 배승환
24 유정아 임봉경 25 이현민 임봉경
31 이진건 소그룹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39장
대 표 기 도 정성숙 집사
특 별 찬 양  
설        교 배승환 목사
찬        미 139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캠퍼스 소식

춘천캠모 : 소그룹 담당 박시영 청년이 잘 이끌어 주었는데요, 연휴를 앞두고 다들 바쁠 텐데 이번 학기 최초, 또 올해 처음으로 참석해 준 친구들도 있어서 더욱 풍성한 시간이었습니다.
원주캠모 : 이번주는 함께 식사를 한 뒤 공원에서 4과 말씀을 나눴습니다. 우정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 소속되어 있는 공동체 안에서 협력하며 하나님을 높이고자 다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아울러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2. 액트매점
    일시 : 10월14일(화)-16일(목)
  3. 성만찬예식
    일시 : 10월17일(금)
  4. 정기직원회
    일시 : 10월18일(안)
    각 부서는 안건을 미리 목회실 또는 서기에게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5. 부목사 출장
    내용 : 연차별전도회
    일시 : 10월19일(일)~25일(안)
  6. 일요기도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여집사 2조
    • 청소당번 : 경외캠모

캠퍼스 모임

회기 캠모 월요일 18:00
과학기술, 광운대 캠모 월요일 18:00
화랑 캠모 화요일 18:00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00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30 ZOOM
경희,외대 캠모 수요일 18:00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유민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문호준  재무 김성미
선교회장 윤민식  액트회장 김미현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1길 11
어린이청소년비전센터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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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총회-사도행전 연구15.pdf
0.79MB

행 15:1-41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23]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24]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25]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26] (25절에 포함됨)

[27]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30]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31]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내용 요약

  1. 문제의 발단 (1-5)
  2. 예루살렘 총회 (6-29)
  3. 총회 결정사항의 전달 (30-41)

 

배 경

바울과 바나바의 제1차 전도여행이 성공을 거두고 이방의 지역에 여기저기 교회가 세워지자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했다.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이 강했으며 구원받기 위해서는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무수하게 개종해 들어온 이방인들에게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 준수와 할례를 요구했다. 그것은 바울의 가르침과는 반대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일대 위기에 직면했다.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총회가 열렸는데 총회는 오직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공식 확정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해 이 교리는 확고한 체계를 이루게 되었다. 이 15장의 회의야말로 그리스도교 역사상 최초의 회의이며 가장 중요한 회의였다.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10:15) 이 기별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모두 받아들이시고 인정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내었다.(행적 186 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우리사회에 편견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2. 우리 대학선교센터교회만의 문화가 있다면? 그 문화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3. 무거운 짐(육체적, 정신적)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 적이 있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발전하는 안디옥 교회에 무슨 문제가 일어났습니까? (15:1,2)
  2. 어떤 사람들은 누구겠습니까? (행 6:7 참고)
  3.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누가 예루살렘으로 파송되었습니까? 왜 그들이 적격자입니까? (15:2)
  4. 베드로의 발언 내용을 요약하면 무엇입니까? (15:7-11)
  5. 야고보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15:19-21)
  6. 마가(Mark)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봅시다.
    ① 가족관계 (행 12:12)
    ② 원래이름 (행 12:12)
    ③ 바나바와의 관계 (골 4:10)
    ④ 바울과의 관계 (행 15:38, 골4:10, 딤후 4:11)
    ⑤ 베드로와의 관계 (벧전 5:13)
    ⑥ 마가복음에 나온 마가 (막 14:51)

 

생각해봅시다.

  1. 우리는 교회가 내린 결정에 대하여 잘 따릅니까? 그것은 교회의 화평과 발전에 도움이 되나요?
  2. 우리에게도 마가와 닮은 꼴이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3. 마가에 대한 바울과 바나바의 입장 차이를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사명중심vs관계중심)
바울은 직접적인 지도를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향하는 반면, 항상 교회의 교제를 통해 연합을 이룬 신도들의 몸, 즉 교회에 부여된 권위를 인정하였다. 그는 자문이 필요함을 느꼈고, 중대한 문제가 일어났을 때에는 이것들을 교회 앞에 제출하여 형제들과 연합하여 하나님께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혜를 간구하기를 기뻐하였다.(행적200p)

 


1. 어떤 사람들. 이곳에 와서 분쟁을 일으킨 이들의 이름은 명시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된 바리새인들로 보인다(참조 5).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참조 7:8 주석. 이 요구는, 성경 다른 곳에 분명하게 진술되지 않은 사실 즉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의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요구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그리스도 교회에서 일어난 최초의 중대한 논쟁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서 시작된다. 이것은 그리스도 교회가 팔레스타인 지경을 넘어 확산되자마자 야기된 것이 분명하다. 그리스도 교회로 처음 개종한 이들은 유대인이었으나, 그들은 자신이 지켜온 대부분의 종교적인 관례와 편견을 여전히 간직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먼저 유대교로 확실히 개종하지 않은 채 그리스도 교회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충격을 받았다. 고넬료의 회심이나 심지어 에디오피아인과 사마리아인들의 회심 사건으로 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지금 반대를 제기한 그들도 고넬료와 그의 가속(家屬)이 입교하는 것을 기꺼이 수락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마도 고넬료의 경우에는 성령의 지시로 인해 예외가 발생했기 때문에 이것으로 할례의 규정을 무효화할 수는 없다고 논박했을 것이다. 따라서 성령의 분명한 인도로 침례을 받고 입교한 자들이라 해도 이제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이 선동자들은 안디옥에 와서 자신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의장인 야고보의 이름으로 말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야고보는 그들에게 그런 일을 위임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혔다(24). 하지만 야고보가 그의 개인의 삶에서 유대의 의식과 관습에 집착하는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에(참조 갈 2:12), 그들은 야고보의 가르침과 자신들의 가르침을 동일시해도 괜찮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들은 할례가 율법의 일부이기 때문에 소홀히 여겨지거나 거부된다면 이는 모든 율법이 파기된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율법의 올바른 관계를 인정할 준비도, 또 그렇게 할 마음도 없었다. 유대화주의자들이 안디옥에서 한 문제를 부각시켰는데, 이 문제가 바울의 사역 기간 내내 계속적인 불화의 원인이었고, 신약의 대부분과 심지어 사도시대 이후의 그리스도교 문학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주께서 왜 지상 봉사 기간에 이와 같은 문제들을 예견하지 못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분이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으나, 진정한 종교는 외적인 준수가 아닌 마음의 종교이어야 한다는 사실에 전반적인 강조점을 두었다. 그리스도는 광범위한 기초를 놓았고 세부적인 교리보다는 오히려 원칙들을 밝혔다. 교회가 성령에 의해 한 걸음씩 온전한 진리로 인도받아야 했다(16:13). 이것은 교회가 권위적인 전통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새로운 빛을 발견하여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 교회는 새로운 발전에 직면하여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했지만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사례들을 변경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은 아니었다(15:4). 새로운 빛은 예상치 못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성경 진리에 대한 더 많은 연구와 성경적 원칙들을 교회 사업에 적용함으로써 이르러 온다.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었다. 오래된 관례라는 근거로 또는 교인이 되는 조건으로 할례를 이방인들에게 요구할 수는 없었다. 유대화주의자들은 할례를 구원의 필수적인 단계로 제시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셨는데(14:27), 그것은 의문(儀文)에 속한 규례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음을 입증해 주는 진전이었다.

 

2. 바울과 바나바. 유대화주의자들이 이 요구를 통해, 이 두 선교사가 길리기아와 이곳 안디옥에서 그리고 그들의 첫 번째 선교여행에서 이룬 일 즉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승리로 밖에 해석할 수 없었던 그런 사업에 대해 노골적인 비난을 나타낸 점에 비춰볼 때, 바울과 바나바가 이 논쟁의 중심 표적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선포하였다. 이제 그들은 개심자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외적인 의식들을 행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을 잠잠히 방관할 수 없었다.

다툼. 헬라어 스타시스(stasis). “지위”, “당파또는 파벌을 뜻한다. 15:7과 눅 23:19에서, 바라바가 주모자가 되었던 민란을 가리키는 데 이 말이 사용되었다. 본 절에서 이 단어는 격렬한 변론을 묘사한다.

변론. 헬라어 제테시스(ze-te-sis). “찾는 것”, 따라서 질문”, “토론을 의미한다.

바울과 바나바. 복음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주장하는 대표자로, 이방인들 사이에서 벌써부터 성공적으로 일해 온 이 두 사람보다 더 나은 대표자는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몇 사람을. 이들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들은 안디옥에 있는 선지자들 중의 몇이거나(13:1), 이방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진, 구브로와 구레네에서 온 자들(11:20)일 수 있다. 아마도 성령이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하신 일에 대한 하나의 주목할 만한 본보기가 되었을 디도가 동행했다(2:1).

사도와 장로들. 베드로와 요한과 주의 형제 야고보가 예루살렘에 있었다(참조 갈 2:9; 1:19). 이들은 장로들(참조 행 11:30 주석), 구체적으로 이름이 명시되지 않은 다른 사도들과 함께 이 젊은 교회의 지도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교회가 할례와 같은 어려운 문제를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의 총회에 위임한 사실은 교회 조직을 지지하는 매우 의미 있는 선례이다. 이것은 교회의 제반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을 전제 군주 같은 역할을 하는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론과 반대된다. 또한 거론된 문제가 교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때는, 해당 지역 교회보다 더 넓은 차원의 조언과 권위의 필요성을 예시한다. 신약 시대의 교회에서는 예루살렘의 초기 회중에 속한 사도들과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상소 위원단을 구성하였다. 동시에 본 장의 후반부(15:22, 25)에 명시된 것처럼, 이 사건의 최종 결정은 단지 예루살렘에 있는 지도자들의 결정에 의거해서가 아니라, 이 사건을 호소하러 안디옥에서 올라온 대표자들을 포함한 참석자 전원의 합의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다. 그들의 문제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감으로써,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안디옥 교회 전체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통한 성령의 인도에 대해 확신을 나타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계시를 인하여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고 선언한다(2:2). 참조 사도행적, 96.

 

3.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 이것은 바울이 중시여기는 주제가 될 수밖에 없다. 틀림없이 그는 많은 사례를 상세하게 말했으며, 베드로가 고넬료의 경우에서 한 것처럼, 할례받지 않은 자를 수용한 것에 대해 성령이 승인의 표를 날인했음을 강조했다.

형제들을 . 11:2~4, 18과 비교하라.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가 가져온 좋은 소식에 기뻐했다. 이방인에게도 할례를 강요한 자들은 유대인 그리스도인 가운데 한 무리에 불과했고,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라고 기술된다(15:5). 바리새인들은 의식법(儀式法)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여기서 사용된 동사의 형태로 볼 때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동안 이방인의 회심 소식이 연거푸 기쁨으로 환영받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베니게와 사마리아 교회의 이러한 태도는, 예루살렘 교회의 편협하고 신랄한 바리새인(5)과 그것을 위해 대변하려 했던 유대화주의 당파와는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4.말하매. 6절과 비교해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 활동에 대해 보고했던 예비 모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듯하다. 이것이 아마도 바울이 나중에 언급한 유명한 자들사사로이만난 그 모임이다(2:2). 이방인 개종자들의 순결과 사랑뿐 아니라 그들의 행위와 고난, 표적과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시간이 다소 소비되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후에 회의에서 토의되고 결정된 문제에 대한 최선의 서론이었다고 볼 수 있다.

 

5. (바리새). 헬라어로 하이레시스(hairesis). 참조 5:17 주석. 바리새인 중 어떤 이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들은 예수를 하나님이 보낸 선생으로 받아들였는데(참조 요 3:2),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으로써 이 사실이 입증되었다. 따라서 예수가 왕국의 머리가 되어 율법과 성전이 제 위치를 찾고, 이방인은 할례를 조건으로 입교가 허락되는, 회복된 영광스런 유대교를 인류에게 전수할 것이라고 그들은 기대하였다. 바로 이들이 일어나 바울과 바나바가 지금까지 해온 일에 항의한 것이다. 전반적인 문제가 아마도 일개인의 사례 즉 개종의 순차적 단계를 밟지 않은 이방인 디도의 사례(참조 갈 2:3)를 들어 논의되었다. 이 논쟁에 연루됨으로써 디도는 후에 낡은 종교형식에 대한 유대화주의자들의 끈질긴 요구에 대항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출 수 있었다(참조 딛 1:10, 14, 15).

일어나. 유대화주의자들이 이렇게 들고 일어났기 때문에 한층 공식적인 회의의 소집이 불가피하게 되었을 것이다.

모세의 율법. 참조 6:13 주석. 유대화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인에게 시행하라고 제안한 요구 사항은 할례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쐐기를 박는 것에 불과했다.

 

7. 오래 전부터. 문자적으로 초창기부터.” 베드로는 아마도 십수 년 전에 있었던 고넬료의 회심(10)을 암시했다. 현재의 문제와 관련된 많은 일들이 그때 이후에 발생했다.

 

9. 마음을 깨끗이 하사. 믿음이 고넬료와 그의 집안 사람들의 마음을 깨끗케 했다. 오직 깨끗함을 판단할 수 있는 하나님이 보기에 마음이 깨끗하다면, 의문의 법을 지키는 것은 불필요하고 무의미했다. 율법의 의식들은 정결을 위한 것이지만, 바리새인들이 주장한 것보다 더 높은 표준의 정결이 여기 있었다. 의문의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바리새인들은 이방인들을 부정함이라는 총괄적인 죄목의 범주 아래 두었다. 베드로는 아무도 속되거나 부정하다고 칭해서는 안 되며(10:28), 정결은 육체보다는 마음에 관한 것임을 배웠다(참조 딛 1:15).

 

10.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다시 말해,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미 분명히 나타냈는데도, 이방인의 입교와 관련하여 그분의 뜻을 알기 위해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의 거부 의사가 더 강해야 하는가? 광야에서 유대인들은 그들을 위해 베푼 여러 기사(奇事)가 있었는데 하나님이 주신 지도자에 대해 불평함으로 하나님을 시험했다(3:9). 또한 그리스도를 시험했으며(고전 10:9), 그들의 불복종이 불뱀의 형벌을 초래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들의 헌금에 관해 교회를 속이고자 함으로써 하나님의 성령을 시험했다(5:9). 베드로는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일에 다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청중들에게 경고하였다.

 

11.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가져오는 것이 율법과 일치된 삶이 아니라 주의 은혜라고 베드로는 주장했다. 이 진술이 그의 논증의 끝맺음이었다.

구원받는 줄을. 하나님이 약속하는 구원은 은혜에 의한 것이다(참조 롬 3:21~26; 5:1, 2; 11:5, 6; 2:5, 8). 행위는 은혜로 구원의 선물을 받을 때 따라 온다(8:4; 2:9, 10; 2:12, 13).

 

12. 가만히 있어. 베드로의 확신있는 증언에 대해 다른 의견이 없었다. 비록 모든 사람의 마음이 다 바뀌지는 않았을지라도 반대의 소리는 더 이상 없어졌다. 고넬료 사건을 통해 자신의 편견을 극복한 베드로가 이제 다른 사람들의 편견을 극복한 것이다.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즉 베드로가 진술한 말은 교회가 이방인을 최초로 수용한 것을 나타낸다.

백성을. 그들만이 백성곧 하나님의 백성이고 다른 모든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울타리 밖에 있다고 유대인들은 믿었다. 그러나 야고보는 하나님이 또한 이 이방 나라들에서도 한 백성을 당신 자신에게로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선언했다. 바울도 이와 같은 변화를 인식했다(9:26). 그리스도인의 안목에는 택한 백성은 더 이상 유대인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대인을 이방인과 구별해 주었던 의식적 규율들은 이제 불필요했다.

시므온 (Simeon). 헬라어 쉬메온(Sumeo-n). 영어식 표기 “Simeon”“Simon”(시몬)보다 히브리어 쉬므온(Sim‘on)에 더 가까운 형태다. 이 형태는 베드로에 대해 단지 이곳과 아마도 벧후 1:1에서 사용된 것 같으며, 갈릴리 출신인 야고보가 이 형태를 사용한 것은 자연스러웠다.

 

20. 우상의 더러운 것. 예루살렘 총회의 공식 결의문이 우상의 제물”(헬라어 에이돌로쒸타[eido-lothuta]. “우상에게 바쳤던 [것들]”, 29)에 반대하여 말한 것에 비춰볼 때, 여기서 우상의 더러운 것은 이방 신들에게 바친 음식(그리고 음료)이라는 특정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헬라와 로마 종교에서는 음식이 신전에 있는 신들에게 매일 판에 박힌 듯이 드려졌다. 그러나 단지 제물의 일부만 제단에 올려놓았고, 나머지는 신전과 관련된 일을 하며 생활하는 이들이 소모하거나 시장으로 보내 팔았다. 엄격한 유대인이 보기에 이런 음식은 더러운 것이었다. 그러므로 랍비 아키바(AD 100년경)가 내린 것으로 생각되는 한 판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상이 있는 장소로 [그곳에서 어떤 유익을 얻기 위해] 가지고 들어가는 고기는 허용되지만 밖으로 가지고 나오는 고기는 죽은 자의 제물로 [간주되므로] 금지된다”(Mishina ‘Abodah Zarah 2. 3, Soncino ed. of the Talmud, 145). (AD 200년경 성문화된) 미쉬나의 또 다른 규정은 우상에게 바친 술에 대하여 이와 유사하게 천명한다. “옌 네세크(Yen nesek, 헌주[獻酒])는 금지된 것이며 또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다른 술]을 금지하도록 만든다. 술을 [섞은] 술과 물을 [섞은] 물은 미량이라도 [부적합하다]. 물을 [섞은] 술과 술을 [섞은] 물은 [금지된 요소가] 향을 낼 때는 [부적합하다]. 일반적인 규정은 이렇다. 같은 종류로 [섞은 것은] 미량이라도 [부적합하다]. 그러나 다른 종류로 섞은 것은 [금지된 물질이] 향을 낼 때 [부적합하다]”(ibid. 5. 8, Soncino ed. of the Talmud, 349). 결과적으로 철저한 유대인들은 결코 일반 시장에서는 고기를 사지 않고, 유대인 푸줏간에서만 샀다. 여행할 때는 코피노스(kophinos) 즉 바구니를 등에 메고, 먹을 것을 가지고 다녔다(참조 막 6:43 주석). 유베날리스(Juvenal)자신들의 모든 비품으로 바구니 하나와 한 다발의 건초를 소유한 유대인들을 언급한다(Satires . 13, 14; Loeb ed., 33).

이런 강한 유대인의 정서를 고려하여, 총회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삼가도록 요구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보았다. 이것은 결코 작은 자기 부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개종자들은 많은 축제 초대를 거절해야 했고, 참석하더라도 먹는 것은 거절해야 했다. 예민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자기 앞에 차려진 음식이 신전에 바쳐진 것이 아니라는 의심이 풀리지 않는 한 개인의 집에서도 먹기를 거절해야 했다. 동시에 이 규제는 제물로 바쳐진 음식과 술을 맛보는 것이 예배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이교 의식에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참예하는 유혹에서 보호해 주는 실제적 가치가 있었다. 만약 우상에게 바쳐진 것은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면, 심지어 황제의 제단에 드려진 음식과 술을 맛보는 형식적인 의식도 금지되었다는 것을 양심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 특별히 이 문제가 논란거리였던 것 같다(참조 계 2:14 주석).

예루살렘 총회 몇 년 후에 이 규제가 어떤 저항에 부딪혔다. 고린도에서 어떤 이들이 자신들은 원하는 것을 먹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고, 이에 대해 바울은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므로신전에 바쳐진 것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시장에서 음식을 살 수 있다는 범위까지 이론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그가 그 규제를 지지한 것은 형제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의 양심을 존중하는 차원에서였다(고전 8~10; 14 주석 참조).

음행. 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규제가 순전히 의식적인 것으로 보이는 규제들과 나란히 언급된 것을 보고 언뜻 의외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결의 내용의 첫 항목도 십계명의 둘째 계명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도덕적인 문제였다. 음행과 관련하여, 모든 형태의 부정(不貞)을 금하는 레위기 법이 엄격한 것은 적절하다(18; 20:10~21).

여성의 순결에 대한 참된 존중의 결핍과 결부된 음행의 죄는 고대 사회에 널리 퍼진 죄여서 헬라 - 로마인의 삶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 여겨질 정도였다. 이방 종교에서는 우상숭배와 음행이 때때로 얽혀 있었다. 고린도와 바보에 있는 아프로디테의 창기 여사제들에게 나타나는 것처럼, 음행은 종종 우상숭배의 일부였다. 그렇게 하여 신전 예배에 빠진 남자들은 그런 식으로 숭배되는 여신에 대해 소위 자신들의 신앙을 표현하였다. 이교도들에게 음행의 죄는 묵인되었고 심지어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대인 그리스도인은 이방인 회심자들이 순결한 생애를 영위하는지 알고자 했을 것이다(참조 고전 6:15; 2:14). 그러므로 예루살렘 총회에서 그리스도 교회는 교회의 일반적 가르침뿐 아니라 교인들이 따라야 할 구체적인 규칙을 세움으로써 높은 도덕적 수준을 세우는 데 공적인 첫 단계를 취한 셈이다.

목매어 죽인 것. “목매어 죽인 것을 먹는 것에 대해 구약에 명확한 금지 조항이 없다. 그러나 적용되는 원칙은 피를 먹지 말라는 바로 다음의 금지 사항의 경우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목매어 죽인 동물은 정상적으로 피를 빼내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그런 동물의 고기는 음식으로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참조 레 17:13, 14). 야고보의 선언은 또한 스스로 죽은 동물이나 다른 동물에 의해 죽임당한 동물의 고기와 관련된 모세의 규제에 기초했을 것이다(17:15; 12:21). 테르툴리아누스(AD 230년경 사망)가 증언한 바와 같이 초기교회는 이러한 규제들을 지켰다. 그는 이교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그리스도인들 앞에서 그대들의 악한 행위를 부끄러워하라. 그들은 단순하고 자연적인 음식물로 된 식사에서 동물의 피조차도 먹지 않으며, 내장에서 분비된 피에도 오염되지 않으려는 이유로 목매어 죽인 것과 자연사로 죽은 것도 멀리 한다”(Apology 9; ANF, vol. 3, 25). 이와 유사하게, 동방교회의 한 오래된 규율은 명한다. “만일 어떤 감독이나 장로나 집사 혹은 성직에 있는 어떤 사람이라도 고기를 생명이 담긴 피와 함께 먹거나, 짐승에게 찢긴 것이나, 스스로 죽은 것을 먹는 자는 해임시켜라. 율법이 이것을 금하기 때문이다”(Apostolic Canon 63; ANF, vol. 7, 504). 유대인의 고대 전승은 동물의 목이 부러지면 피가 사지로 흘러 들어가 소금을 사용해도 피를 빼낼 수 없다고 말한다(Talmud Hullin 113a, Soncino ed., 621, 622).

. 피를 음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인류에게 육식이 허용되자마자 금해졌고(9:4), 모세의 법에서 자주 반복되었다(3:17; 7:26; 17:10; 19:26). 사울 시대에는 피를 먹는 것을 여호와께 범죄하는 것으로 간주했다(삼상 14:33). 피를 가지고 만든 음식이 헬라인과 로마인들의 식탁에서는 흔했다. 일례로 이런 사실이 호메로스(Homer)의 글에 나타난다.

여기 불 위에 염소의 위가 여러 개 놓여 있는데, 우리가 그것들을 기름과 피로 가득 채운 후에 저녁식사로 거기에 놓아두었네. 이제 둘 중 어느 한쪽이 이겨서 더 나은 사람으로 판명되면, 그에게 이것들 중 자신이 원하는 하나를 선택하게 하라”(Odyssey xvii. 44~49; Loeb ed., vol. 2, 199, 201).

이교도들은 제사를 드리면서 술을 섞은 피를 마시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AD 1세기 유대인의 입장에서 말하는 요세푸스는 [모세]는 피를 영혼과 정신으로 여겨 어떤 종류의 피도 음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금했다고 기록했다(Antiquities iii. 11. 2[260]; Loeb ed., vol. 4, 443). 이런 금지에 대한 유대인의 태도는 랍비 시므온 벤 앗자이(Rabbi Shim‘on ben ‘Azzai, AD 110년경)의 진술로 추정되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 “토라에는 365개의 금지 조항이 있는데, 모든 법 가운데 이와 같은 것은 없다.성경이 피의 금지에 관하여 그대에게 그렇게 권고할진대[12:23], 이것과 비교하여 모든 계명 중에 이보다 더 쉬운 것이 없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것이 나머지 모든 계명에 얼마나 더 많이 적용되겠는가!”(Sifre Deuteronomy 12:23 ; quoted in Strack and Billerbeck, Kommentar zum Neuen Testament aus Talmud und Midrasch, vol. 2, 734). 피를 먹지 말라는 금령이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쉽게 지킬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은 이방인 개종자들이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여기는 예루살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적어도 몇몇 지역에서는 초기 그리스도인 교회가 이 규칙을 수 세기 동안 고수해 온 것으로 보인다(“목매어 죽인 것에 관한 주석을 참조하라). 같은 시기에, 특히 서방에서, 예루살렘 총회의 규제를 단지 도덕적인 금지 사항으로 제시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이레내우스(AD 185년경)는 본 절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그들에게 요구된 것 곧 헛된 우상과 음행과 피를 멀리하고 또한 무엇이든지 자기가 받기를 원치 않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Against Heresies iii. 12. 14; ANF, vol. 1, 435, 436). 그런 관점에서 를 인간의 피를 흘리는 것 즉 살인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피를 먹지 말라는 금령을 인간의 피를 흘리지 말라는 (금령)으로 이해해야 한다”(On Modesty 12; ANF, vol. 4, 86)라고 설명한 테르툴리아누스(AD 230년경 사망)의 말에 비춰보면 분명해진다. 참조 창 9:4 주석.

 

행 14:1~23

[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2]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4]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5]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6]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7]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내용 요약

  1. 루스드라, 14:6~19
  2. 더베 그리고 비시디아를 통해 돌아옴 14:20~23
  3. 안디옥으로 돌아옴, 14:24~28

배 경

제14장은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지방 전도다. 이곳은 남 갈라디아 지방으로 바울은 이곳을 여러 번 지나갔으며 그의 편지 갈라디아서도 이곳에 세워진 교회에 보낸 것이다. 이고니온은 비시디아 안디옥 동남쪽으로 약 350리(약 140km) 떨어진 곳으로 행정상으로 루가오니아(Lycaonia)지방의 수도다. 루스드라(Lystra)는 다시 이고니온에서 남쪽으로 75리쯤 떨어진 곳으로 디모데의 고향이다. 더베(Derbe)는 루스드라에서 동남쪽으로 70리 떨어진 도시로 1차 전도 여행의 종점이다. 다 험악한 지형이었으며 바울은 육로로 이곳들을 여행하면서 온갖 고생을 다 했을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의 모든 선교적인 노력에 있어서 영혼을 위해 자원하여 희생하시고 충성스럽게 열심히 수고하신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고자 노력하였다. 그들은 방심치 않고, 열심 있고 끈기 있게 개인적인 기호나 안일을 구하지 아니하고, 경건한 염원과 끊임없는 활동으로 진리의 씨를 뿌렸다.(행적 186 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과분한 호의를 받은 적이 있나요? 그 호의를 받으면서 나의 행동은 어떠하였으며, 나의 마음은 어떠하였나요?
  2. 지금 나의 상태는 넘어져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십니까? 일어선 상태라고 생각하십니까?
  3. 예수님으로 인하여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뒤따른 적이 있나요?
  4. 삶이 오뚝이와 닮은 사람이 있다면 소개해 봅시다.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이고니온에서 생긴 일을 말해 보시오. (1-7)
  2.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14:2)이 복음 전파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살펴보고 나는 순종치 아니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닌지 생각해 보세요.
  3. 바울은 루스드라의 앉은뱅이에게서 무엇을 보고 그를 고쳐 주었나요? (9)
  4. 쓰스(Zeus)와 허메(Hermes)는 무엇입니까? 바울과 바나바가 신적 대접을 받았을 때, 한 행동은 무엇이었나요? 이것은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우리에게 어떠한 자세를 가르쳐주나요?
  5. 19절을 읽고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변덕스러운 것인가? 군중심리란 얼마나 그릇 될 수 있는가 생각해 보아요.
    사도는 자기의 종말이 이르렀다고 생각하였다. 스데반의 순교와 그때에 자기가 행한 잔인한 행동이 그의 마음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격분한 폭도들은 그가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쳤다. (행적, 182)
  6. 그 비참한 광경 속에서 훌륭한 한 젊은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사단의 노력도 결국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그 젊은이는 누구입니까? (행적, 183)<20절 뒷면 주석참조>
  7.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귀향전도를 하면서 교회를 굳게 하기 위하여 바울이 사용한 뒷수습 방법은 무엇입니까? (21-23)이것은 우리교회에도 필요한 일인가요?

생각해봅시다.

  1. 예수님을 위하여 나는 오늘도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의 삶이 그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2. 우리교회는 지금 교회를 굳건히 하기 위하여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바울의 고통을 목격하였던 사람들 가운데 후에 그리스도를 위한 탁월한 일꾼이 되고 어려운 선교 지역에서 사도와 함께 개척사업의 시련과 기쁨을 나누어야 할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이 바로 디모데라는 청년이었다.(행적183p)

 


1. 이고니온. 이고니온으로 향하는 바울과 바나바의 여정을 누가가 건너뛰었는데, 추론해 보면 도중에 선교 사업을 펼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고니온은 안디옥에서 남동쪽으로 약 144킬로미터 떨어진 주요 도로들의 교차점에 있다. 일부 고대 저술가들은 이고니온이 브루기아에, 다른 저술가들은 루가오니아에 예속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이 도성은 루가오니아의 다메섹으로 불릴 정도로 크고 장중했고, 후에 그리스도교 전승에서 바울과 그가 회심시킨 테클라(Thecla)에 관한 이야기의 배경으로 유명해졌다. 중세 시대에는 이고니온이 셀주크 왕조 술탄들의 수도로서 중요성이 높아졌고, 변형된 축약형 코냐(Konya)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터키의 번창하는 도시로 남아있다(참조 302쪽 지도).

두 사도가 함께. 이는 회당을 특별히 한 번 방문한 것이 아니라, 바울과 바나바가 유대인들을 만나기 위해 함께 여러 번 방문했음을 묘사한 것이 분명하다.

2.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 설득당하지 않으려는 유대인들.” “순종치 아니하는으로 번역된 단어에는 반역으로 이끄는 불신이라는 개념이 들어 있고, 따라서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한 이 유대인들의 특성을 적절히 묘사한다.

 

3. 오래. 아마도 수 개월 동안이었을 것이다. 새 신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을 굳건히 하기 위해 장기간 체류해야 했다.

 

4. 나뉘어. 그리스도인에게 반감을 지닌 비그리스도인은 주민 가운데 분명하게 구분된 집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누가는 이교도 주민이 다수였다고 분명히 언급한다. 기독교로 귀의한 회심자들은 분명 소수 집단으로, 초기교회에 흔했던 것처럼 사회의 하류층 출신이었을 것이다(참조 고전 1:26~28).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처럼 도성의 유력한 남녀들이 그들을 대적하였다(참조 행 13:50).

 

5. 관원들. 즉 유대인 회당의 관원들이며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 회당에서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두 사도를 능욕하며. 그들은 무자비한 능욕과 폭행을 당하였다. 이는 군중을 자극하기 위한 일환으로 계획되었음을 보여 준다. 바울은 핍박자였던 자신의 행동을 묘사하기 위하여 밀접히 연관된 단어를 채용한다(딤전 1:13).

달려드니. 헬라어 호르메(horme-). “습격혹은 공격.” 여기서는 이 단어가 직접적인 공격을 가리키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참조 6). 유대인들은 폭행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이교도 동료들을 자극하고 부추겼다.

 

6. 알고. 음모를 알아내기 위해 반대편과 충분히 접촉한 자들이 사도들 편에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누가는 그리스도인 복음 전도자들의 고난을 과장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간신히 투석형을 피한 사건은 애쓴 흔적 없이 평이한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도망하여. 사도들의 행동은 한 성에서 핍박을 받을 때 다른 성으로 피해야 한다는 예수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참조 마 10:23 주석).

루가오니아. 루가오니아는 로마의 속주가 아니라 특정 종족 지역으로, 서편은 로마의 속주 갈라디아에, 동편은 콤마게네(Commagene)의 안티오쿠스 왕국에 속해 있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갈라디아 도의 국경 안에 머물렀음이 분명하다. 신약 시대에 이고니온은 브루기아에 속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사도들이 루스드라와 더베로 진행했다는 것은 새로운 지역으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루스드라. 1885년에 이르러서야 루스드라의 정확한 위치가 알려졌다. 그 해에 루스드라가 오늘날 졸데라(Zoldera)로 알려진 지역임을 확인할 수 있는 명각이 하나 발견되었다. 그것은 이고니온의 남서쪽으로 약 여섯 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고니온에서 출발하여 육로로 여행할 때 사도들은 구릉 지대를 지나 루스드라가 있는 고원까지 올라갔을 것이다. 루가오니아가 고전 문헌에 황량하고 미개한 지역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명각에 루스드라가 아구스도에 의해 로마 식민지가 되었다고 나타난 점으로 보아 주변 지역보다 상위 문화를 향유한 것이 확실하다. 로마의 상업 중심지인 루스드라 주민 중에 유대인들이 있었겠지만 사도행전의 기록에는 그 도성에 회당이 있었다는 언급이 없으며, 따라서 바울은 거기서 주로 이방인들과 교제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건한 유대 여성의 자녀이며 루스드라 출신이었을 디모데 역시 할례받지 않은 채 성장하였다(참조 16:1, 3 주석). 참조 302쪽 지도.

더베. 더베의 위치는, 1956년 더베가 언급된 한 명각이 이고니온 남동쪽으로 83킬로미터 지점인 케르티 휘위크(Kerti Hu..yu..k) 곧 오늘날의 코니아(Konia)에서 발견됨으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확증하는 또 하나의 명각이 최근에 나타났다. 후에 바울과 함께 여행한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가이오가 더베 출신이었다(20:4). 참조 302쪽 지도.

그 근방으로. 이 구절은 루스드라와 더베 도성이 작아서 바울과 바나바가 단기간에 전도할 수 있었음을 암시한다. 시골 촌락에서 활동하는 한 그들은 거의 전적으로 이방인들만 만나야 했다.

 

9. 주목하여. 헬라어 아테니조(atenizo-, 참조 13:9; 23:1 주석). 앉은뱅이의 믿음이 그 얼굴에서 빛을 발하자 바울은 치료받음으로 루스드라인들에게 표적이 되기에 적절한 한 사람을 확실하게 알아봤다.

 

10. 바로 일어서라. 이 명령은 평범한 인간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는 믿음으로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조롱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장애인은 믿음에 응하여 움직이고자 의지를 활용하였다. 이것은 중풍병자(9:6, 7), 베데스다 연못의 병자(5:11, 14),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3:6~8) 등의 치유에 공통되는 이적의 유형 가운데 하나이다. 이들 각 경우에 영적인 회복에는 육체적 치유가 동반되었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치유한 사건(3:1~11)과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치유한 사건에 유사점이 있음이 분명하다.

 

11. 루가오니아 방언. 바울은 자기가 방언을 말했다고 표명하지만(고전 14:18), 이 은사에는 루가오니아 방언을 이해하는 능력은 포함되지 않았음이 확실하다. 지지할 만한 확실한 견해는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인들이 자신들에게 경배하려는지 몰랐다는 것뿐이다. 그들이 그러한 경배를 거절하여 극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 사람들이 예배하려는 계획을 추진하도록 고의적으로 허용했다고 추측하는 것은 그들의 품성을 폄하(貶下)하는 것이다. 틀림없이 루스드라인들은 2개 국어를 동시에 사용했을 것이고, 따라서 바울과 바나바가 헬라어로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이 선교사들은 그 사람들이 이교식 제사를 드릴 계획을 세우자고 말한 것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루가오니아 방언의 특성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신들. 신약 시대에는 이렇게 신들이 사람들과 함께 어울린다는 신조를, 단순한 루가오니아인들뿐 아니라 도시와 시골의 이교도들도 전반적으로 지지했다. 루가오니아에는 그곳 사람들이 바나바와 바울을 위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의 근거가 될 만한 오래된 전설이 있었다. 이 신화에 의하면 쓰스와 허메(제우스와 헤르메스 혹은 유피테르와 메르쿠리우스)가 인간으로 가장하여 왔을 때 노부부 필레몬과 바우치스(Baucis)에게 영접을 받자 그들에게 선물을 주었다(Metamorphoses viii. 626~724). 신들이 거했다고 추정된 곳은 후에 경건한 숭배자들이 순례 와서 예물을 놓아두고 가는 성지가 되었음이 이 전설에 나타난 있다.

 

12. 쓰스허메. 헬라어 제우스(Zeus), 헤르메스(Herme-s). 헬라의 쓰스는 신들의 우두머리이며 그의 아들 허메는 신들의 전령과 사자요 웅변의 수호신이다. 로마의 만신전(萬神殿)에서 이 신들에 해당하는 이름은 유피테르와 메르쿠리우스였고, 따라서 그 이름들이 제임스왕역에 그대로 사용된 것이다. 쓰스와 허메 숭배가 루스드라 지역에 보편화되었던 것 같다. 루스드라인의 이름을 가진 어떤 사람이 쓰스에게 조각상을 헌납했음을 말해 주는 명각 하나가 루스드라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쓰스로 여겨지는 기도 듣는 자와 허메에게 봉헌된 돌 제단도 루스드라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루스드라인들은 어떤 신이 선한 목적으로 그들 가운데 임한다면 그는 유피테르 신일 것이라고 믿는 것이 당연했는데, 그들의 도성 정면에 그를 위해 신전을 세웠고(참조 13절 주석) 주로 그를 숭배한 점으로 보아 그렇다. 메르쿠리우스는 유피테르의 주요 수행원으로 간주되었다. 바나바는 바울보다 더 인상적인 태도를 갖췄기 때문에 유피테르라는 명칭이 주어졌다. 바울은 강연의 대부분을 도맡았기 때문에 메르쿠리우스와 동일시되었다.

 

13. 쓰스 신당의 제사장. 이 구절의 의미는 도성 정면에 [위치한] 쓰스 신전 제사장인 것 같다. 이와 같이 쓰스는 루스드라의 수호신이었고 그의 신전은 마치 도성을 보호하듯 성문 근처에 서 있었음이 분명하다. 사람들이 쓰스의 제사장에게 소리 지르며 달려가, 제사를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추고 사도들이 묵고 있던 집 입구로 그를 데리고 왔다.

화관들. 이런 화관은 고대 조각상을 통해 잘 알려졌다. 화관은 대개 흰 양털에 종종 나뭇잎과 꽃으로 장식되었다. 제사용 동물은 물론 제사장과 참석자와 문과 제단도 흔히 이렇게 꾸며졌다.

 

14. 옷을 찢고. 유대인들에게 이것은 극도로 혐오스러움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특히 신성모독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사용되었는데(참조 마 26:65 주석), 이교도 루스드라인들이 모르고 신성모독을 범하려 한다는 것을 바울과 바나바가 이제야 깨달았다. 루스드라 주민들이 옷 찢는 행위를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격렬한 행위가 그들의 주목을 끌고 놀라게 했을 것이다.

뛰어 들어가서. 헬라어 엑페다오(ekpe-dao-). “뛰어나가다”, “돌진하다.” 그 제자들은 성문에서 나와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모인 곳, 아마도 성밖”(참조 13절 주석)에 있는 쓰스에게 바쳐진 신당을 향해 돌진했을 것이다.

 

15. 같은 성정. 이 단어에는 흔히 성정이라고 알려진 것(참조 약 5:17)은 물론이요 인간의 더 소극적인 감정들도 포함된다. 이곳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한 표현과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한 표현(10:26) 사이에 나타나는 현저한 유사점은 주목할 만하다.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참조 13:32 주석. 우상 숭배자들에게 말 못하는 우상 대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기별은 좋은 소식임에 분명한데, 이는 특히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한 하나님 즉 인류의 구주이기 때문이다.

천지와 바다. 이것은 하늘과 땅과 바다에 각기 다른 신들을 지정해 놓은, 널리 퍼져 있는 이방 종교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바울은 한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만들고 다스린다고 선포한다.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호소는 성경에서 반복된다. 그 호소는 하나님과 우주의 관계에 대한 전() 역사의 시초에 있었으며(1), 세상에 경고로 전달된 마지막 복음의 기초이기도 하다(velation/14/7e).

살아 계신 하나님. 그들의 우상숭배와 대비하면서 사도는 루스드라인들에게, 살아서 역사하며 하늘과 땅을 만들고 모든 좋은 은사의 시여자이며 모든 인간을 심판할 하나님에게 돌아오라고 초청한다. 이사야도 이런 대조를 극적으로 묘사한다(40:6~31; 41:18~29; 44:6~28).

 

19. 유대인들이 안디옥에서. 문맥에서 드러나듯이 비시디아 안디옥임이 명백하다(참조 13:14 주석). 안디옥과 이고니온의 유대인들이 일제히 행동을 개시한 사실과 안디옥에서 온 유대인들이 사도들의 사업을 방해하기 위하여 160킬로미터 이상을 여행해 왔다는 사실을 통해, 안디옥의 유대인들이 품은 적개심의 강도가 어떠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안디옥 사람들과 루스드라 사람들의 관계가 밀접했음은 안디옥에서 발견된 조각상에 루스드라 사람들이 안디옥 도성을 기념하여 기념비를 세운다고 기록된 명각에 암시되어 있다.

이 유대인들이 바울과 바나바가 동포임을 알았는데도 그들에게 격노한 것은, 자기들이 매우 소중히 여기는 율법의 요구를 사도들이 배척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루스드라에서 이러한 비난을 일삼는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사도들에게 대적할 수 있도록 다른 고소 내용을 제시했을 것이다. 앉은뱅이를 치유한 기적을 통해 사도들의 능력의 실재성은 입증되었지만 능력의 근원은 입증되지 않았고, 따라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선동하기 위해 그 능력의 근원을 악의 세력으로 돌렸을 것이다(12:24~27에서 예수가 겪었던 유사한 경험과 비교하라).

무리를 초인(招引)하여. 루스드라인들의 태도가 돌변한 것은 예루살렘 군중의 호산나 찬양이 십자가에 못박혀야 하겠나이다라는 외침으로 뒤바뀐 사건(21:9; 27:22)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감정의 심한 기복은, 루가오니아인같이 전승에 미덥지 못하다고 묘사되고 미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다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아니다. 정반대 측면에서 비견할 만한 변화는 이방인 멜리데(28:3~6) 사람들에게서 나타났다. 루스드라인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그런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람의 모습을 한 신이 아니라면, 마법사나 어쩌면 악마일지 모른다고 추정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런 감정을 격앙시키고 야만적인 행동을 하도록 백성을 충동했을 수도 있다.

성밖에. 히브리 법은 돌로 치는 것을 진영이나 도성 밖에서 하라고 규정했다(24:14). 그러나 본 사건에서는 루스드라가 이방 도성이었고 돌로 치는 것이 폭도의 집단 행동으로 일어난 점으로 보아 도성 안에서 일어났던 것 같다. 그래서 바울의 몸을 성밖으로 끌어 낸 것이다.

 

20. 제자들. 즉 새 신자들. 이들이 습격을 사전에 막을 수는 없었지만 어떻게 경건한 장례를 치러줄지를 염려하는 슬픈 마음으로, 의식을 잃은 바울이 끌려 간 장소까지 따라갔음이 분명하다. 바울의 그 쓰라린 경험을 봉사에 대한 도전과 헌신의 모본으로 삼았을 디모데가 바울이 돌 맞는 것을 목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사도행적, 184, 185,). 아마도 로이스와 유니게도 무리 가운데 끼어서 처음에는 슬퍼했지만 조금 후에 그들의 사랑하는 선생이 죽지 않았음을 알고 기뻐했을 것이다.

바울이 일어나. 바울이 무의식 상태에서 회생하여 다시 도성 안으로 들어가는 활력과 담력을 곧바로 보여 준 것은 기적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사나운 폭도에게 돌을 맞고 죽은 줄 알았던 자가 살아나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보한 것은 앉은뱅이가 회복된 것보다 훨씬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의 증거였다.

이튿날가서. 하나님의 섭리로 죽음에서 살아남았지만 바울은 자기를 향한 대중의 정서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잠시 도성을 떠나있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는 후에 최소한 두 번 더 루스드라를 방문하였다(참조 21; 16:1).

 

21.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누가가 이후 여행에서 바울의 동료 중 하나로 언급한 더베 사람 가이오가 아마도 이때 회심한 자들 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성취된 사업으로 보아 여러 달을 더 체류했을 것이라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다.

돌아가서. 다소까지 동쪽으로 진행하여 배로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것이 훨씬 더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바다에 이르기까지 약 400킬로미터나 되는 길고도 지루한 여정을 택하였다. 그러나 거쳐갔던 장소들을 순회함으로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전에 뿌렸던 말씀의 씨를 더 멀리까지 뿌릴 기회를 얻었다. 안디옥과 이고니온에 사는 유대인들의 적개심은 사도들이 더 이상 신변에 위협을 당하지 않고 그 도성들을 다시 방문할 수 있을 만큼 진정되었을 것이다. 도성의 어떤 지역에서는 관료들이 임기를 마치고 다른 관료들이 후임자로 부임했던 것 같다. 참조 302쪽 지도.

 

22. 굳게 하여. 강하게 하여.” 후대에 보편화된 교회의 견진성사(堅振聖事)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여기서 바울의 행동은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22:32)고 베드로에게 한 예수의 위탁과 조화된다. 바울은 자신이 겪은 시련과 거기서 구원받은 경험에서 얻은 경고와 권고로 굳게 할수 있었다.

이 믿음. 여기서 이 말은 믿음 곧 믿고 가르침받은 것에 대한 신앙의 객관적인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신조 체계를 뜻하는 믿음이라는 단어는 이후 사도들의 문헌에 같은 의미로 등장하는데(참조 딤후 4:7; 3, 20) 여기서도 유사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대학선교센터교회


안식일학교

경배와 찬양 다같이
찬       미 83장
시작기도 기도자
환       영 안교장
특별순서 3기 기억절 암송
교과공부 각 반
헌금소개 사회자
축       도 담임목사

 

기억절 3기 13과 (일몰 : 6시 21분)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출 40:34,38).

 

9월 시무 안내
시       무 : 권림
헌금봉사 : 김진수 정예은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3 위건우 소그룹 4 정성숙 배승환
10 원유승 소그룹 11 백지원 권세진
17 성만찬예식 18 손세림 배승환
24 유정아 임봉경 25 이현민 임봉경
31 이진건 소그룹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37장
대 표 기 도 박인앙 청년
특 별 찬 양 경외 캠모
설        교 권세진 목사
찬        미 73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캠퍼스 소식

경희대 캠모
원주 캠모
과학기술 광운대 캠모
강릉 캠모
외대 캠모
회기 캠모
화랑캠모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 한국액트 신임회장단 수련회
    일시 : 9월27일(토)~29일(일)
  3. 부목사 휴가
    일시 : 9월28일(일)~10월2일(목)
  4. 일요기도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여집사 1조
    • 청소당번 : 화랑캠모

캠퍼스 모임

회기 캠모 월요일 18:00
과학기술, 광운대 캠모 월요일 18:00
화랑 캠모 화요일 18:00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00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30 ZOOM
경희,외대 캠모 수요일 18:00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유민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문호준  재무 김성미
선교회장 윤민식  액트회장 김미현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1길 11
어린이청소년비전센터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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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선교센터교회


안식일학교

경배와 찬양 다같이
찬       미 83장
시작기도 기도자
환       영 안교장
특별순서  
교과공부 각 반
헌금소개 사회자
축       도 담임목사

 

기억절 3기 12과 (일몰 : 6시 32분)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하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출 34:6,7).

 

9월 시무 안내
시       무 : 권림
헌금봉사 : 김진수 정예은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5 이종혁 안재완 6 박수빈 안재완
12 유태준 소그룹 13 고은채 박정택
19 박제인 소그룹 20 유수아 배승환
26 정예은 소그룹 27 박인앙 권세진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36장
대 표 기 도 함윤희 집사
특 별 찬 양 졸업생 청년회
설        교 배승환 목사
찬        미 428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캠퍼스 소식

과학기술 광운대 캠모
경희 외대 캠모
화랑 캠모
회기 캠모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 9월 정기직원회
    일시 : 9월20일 점심식사 전
    장소 : 3층 세미나실
    모든 직원은 직원회에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3. 동중한합회 헌장 정관공청회
    일시 : 9월20일(안) 오후3시
    장소 : 본부교회
  4. 담임목사 출타
    일시 : 9월20일(안)
    내용 : 동문교회 청지기 부흥회 강사
  5. 부목사 휴가
    일시 : 9월28일(일)~10월2일(목)
  6. 일요기도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재학생 청년회
    • 청소당번 : 졸업생 청년회

캠퍼스 모임

회기 캠모 월요일 18:00
과학기술, 광운대 캠모 월요일 18:00
화랑 캠모 화요일 18:00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00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30 ZOOM
경희,외대 캠모 수요일 18:00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유민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문호준  재무 김성미
선교회장 윤민식  액트회장 김미현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1길 11
어린이청소년비전센터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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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선교센터교회


안식일학교

경배와 찬양 다같이
찬       미 83장
시작기도 기도자
환       영 안교장
특별순서  
교과공부 각 반
헌금소개 사회자
축       도 담임목사

 

기억절 3기 11과 (일몰 : 6시 43분)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 32:31,32).

 

9월 시무 안내
시       무 : 권림
헌금봉사 : 김진수 정예은

 

다음 주 예배순서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5 이종혁 안재완 6 박수빈 안재완
12 유태준 소그룹 13 고은채 박정택
19 박제인 소그룹 20 유수아 배승환
26 정예은 소그룹 27 박인앙 권세진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35장
대 표 기 도 고은채 청년
특 별 찬 양 재학생 청년회
설        교 예수님을 찐으로 사랑하십니까?(계1:5,6)  박정택 목사
찬        미 168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캠퍼스 소식

경희, 외대 캠모
춘천 캠모
화랑 캠모
회기 캠모
과학기술, 광운대 캠모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귀한 말씀 주시기 위하여 방문해주신 박정택 목사님을 환영합니다.
  2. 9월 정기직원회
    일시 : 9월20일 점심식사 전
    각 부서는 안건을 미리 목회실 또는 서기에게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3. 담임목사 출타
    일시 : 9월20일(안)
    내용 : 동문교회 청지기 부흥회 강사
  4. 일요기도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여집사 3조
    • 청소당번 : 과기광운  캠모

캠퍼스 모임

회기 캠모 월요일 18:00
과학기술, 광운대 캠모 월요일 18:00
화랑 캠모 화요일 18:00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00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30 ZOOM
경희,외대 캠모 수요일 18:00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유민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문호준  재무 김성미
선교회장 윤민식  액트회장 김미현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1길 11
어린이청소년비전센터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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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선교센터교회


안식일학교

경배와 찬양 다같이
찬       미 83장
시작기도 기도자
환       영 안교장
특별순서  
교과공부 각 반
헌금소개 사회자
축       도 담임목사

 

기억절 3기 10과 (일몰 : 6시 54분)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 24:3).

 

9월 시무 안내
시       무 : 권림
헌금봉사 : 김진수 정예은

 

다음 주 예배순서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5 이종혁 안재완 6 박수빈 안재완
12 유태준 소그룹 13 고은채 박정택
19 박제인 소그룹 20 유수아 배승환
26 정예은 소그룹 27 박인앙 권세진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34장
대 표 기 도 박수빈 집사
특 별 찬 양  
설        교 안재완 목사
찬        미 421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캠퍼스 소식

화랑 캠모
과광 캠모
회기 캠모
경외 캠모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귀한 말씀 주시기 위하여 방문해주신 안재완 목사님을 환영합니다.
  2. 9월 정기직원회
    일시 : 9월20일 점심식사 전
    각 부서는 안건을 미리 목회실 또는 서기에게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3. 일요기도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여집사 2조
    • 청소당번 : 경희외대 캠모

캠퍼스 모임

회기 캠모 월요일 18:00
과학기술, 광운대 캠모 월요일 18:00
화랑 캠모 화요일 18:00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00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시30분 ZOOM
경희,외대 캠모 수요일 18:00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유민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문호준  재무 김성미
선교회장 윤민식  액트회장 김미현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1길 11
어린이청소년비전센터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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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3:1-16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내용 요약

  1. 구브로 섬에서 생긴 일 (4-12)
  2.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생긴 일 (13-52)

 

배 경

우리는 이제 사도행전의 셋째 단계, 즉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 단계에 들어간다. 드디어 복음이 팔레스틴을 넘어서 이방의 지역으로 전파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제13장부터 그들의 힘찬 발걸음 소리를 듣는다. 안디옥에서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던 바울과 바나바는 성령의 세우심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기 위한 거보를 내딛는다. 10년에 걸친 전도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기를 배웠다. 그들의 마음은 멸망하는 영혼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충만하였다. 잃어버린 양을 찾는 충실한 목자들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안일과 편의를 생각지 아니하였다. 자아를 잊어버린 그들은 피곤하고, 주리고, 추울 때에도 흔들리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한 가지 목적, 곧 양의 우리에서 떠나 방황하는 자들의 구원만을 바라보았다.(행적 169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다른 사람의 격려로 인하여 용기를 얻고, 다시 일어선 경험을 나누어 보아요.
  2.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일을 수행하다가, 익숙하지 않는 환경으로 중도포기 하고 싶었던 경험이 있으면 나누어 보아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안디옥교회 구성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요?(13:1)<주석참조>
    (안디옥교회의 구성원이 오늘날 교회공동체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2. 성령께서 왜 두사람을 짝지어 보내셨을까요? (13:2)

  3. 다메섹의 경험 후 10년만에야 전도여행을 떠나는 바울의 감화를 생각해 보아요. 그 동안의 기간은 헛된 기간이었을까요?

  4. 지도를 보면서 일차여행의 여로를 따로 공부해 보아요.
    • 1차 전도여행은 2년의 세월이 걸린(A.D. 45-47) 5,000리 길의 여행이었다.
  5. 구브로에서 생긴 일들을 말해 볼까요? (4-12)

  6. 버가에서 마가는 왜 돌아갔습니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13:13)

  7.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의 설교를 정독하고 내용을 요약해 보세요.(시간에 여유가 있는 조는) 이것은 바울의 첫 공식 설교이며 대표적인 설교입니다.
    ① 17-22
    ② 23-25
    ③ 26-37
    ④ 38-41

 

생각해봅시다.

  1. 성령께서 쓰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봅시다.

  2. 핍박가운데서 누리는 기쁨은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의 성령이 바울의 말에 함께 하셨으므로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다. 구약의 예언들을 통한 사도의 호소, 그리고 그 예언들이 나사렛 예수의 봉사에서 성취되었다는 그의 선언은 약속된 메시야의 초림을 사모하는 많은 영혼들에게 확신을 주었다.
(행적 172p)

 

  1. 선지자들과 교사들. 특정한 성령의 은사를 행사하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행정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장면이 여기에 처음 나온다. 안디옥에 공식적인 교회 조직이 분명 있었으나 그것에 대한 명확한 지적이 없다. 여하튼 성령에 속한 사람들이 적극적인 기능을 담당했음이 분명하다.
    신약에는 이런 사람들이 구분된 집단으로 다뤄지긴 하지만 공식 계층으로 조직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신령”(참조 갈 6:1)하다는 의미에서 “영적”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제대로 기능하는 성령의 은사가 있음을 입증해야 했다. 후에 2세기 기독교 문헌에는 이들이 프뉴마티코이(pneumatikoi) 즉 “영적인 [사람들]”이라는 계층으로 등장한다. 결국 그들은 “거짓 선지자들”(참조 요일 4:1)의 출현과 선출된 관료 즉 장로나 감독의 압력으로 사라졌으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성령의 은사에 관한 언급을 더 보려면 고전 12장 주석을 참조하라.바나바. 참조 4:36 주석; 9:27; 11:22.
    시므온. 시므온 또는 시몬이라는 이 사람의 이름은 그가 유대인 출신이었음을 나타낸다. “니게르”라는 별칭은 “검은”이라는 뜻의 라틴어 형용사로서, 거무스름한 피부색 때문에 그렇게 불렸을 것이다. 유대인은 자신의 유대 이름에 이방 이름을 덧붙이는 경우가 자주 있었는데, 요한 마가, 시몬 베드로, 요세 바나바,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참조 9절 주석)이 그 예이다. 이 별칭은 동명이인들과 구분하기 위해 시므온에게 붙였을 것이다.
    구레네 사람 루기오. 이 사람이 구레네 출신이라는 것은, 그가 그곳에 살고 있던 많은 유대인 중 한 사람일 수도 있고, 안디옥에 사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처음 전한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11:20) 중 한 명일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그는 롬 16:21에 언급된 “누기오”일 수도 있다. 구레네가 의학으로 유명했다는 점과 루기오와 누가라는 이름을 서로 바꿔 쓸 수도 있음을 보여 주는 명각의 증거를 근거로 이 사람을 사도행전의 기자인 의사 누가로 간주하는 저술가들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보는 것은, 루기오가 로마인들 중에 매우 흔한 이름이었으며 두 명 이상의 유명한 그리스도인이 사용했을 것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지극히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마나엔. 히브리어 이름 므나헴의 헬라어 형태.
    젖동생. 헬라어 쉰트로포스(suntrophos). 이 단어는 마나엔의 어머니가 헤롯의 유모였을 것이라는 점에 비추어, 마나엔이 헤롯의 수양 형제였거나 헤롯과 함께 양육되었거나 단순히 헤롯 왕실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었음을 뜻할 수 있다. “분봉왕 헤롯”은 예수가 “저 여우”(눅 13:32)라고 불렀던 통치자 헤롯 안티파스일 것이다(참조 마 14:1; 눅 3:19; 23:7~12; 참조 제10권, 72, 73). 요세푸스(Antiquities xv. 10. 5)는 헤롯 대왕이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므나헴 또는 마나엔이라는 엣세네파 사람 한 명을 언급한다. 탈무드에는 헤롯 대왕을 섬겼던 것으로 보이는 므나헴에 대해 나와 있다(참조 Talmud H.agigah 16b, Soncino ed., 108). 이 이름을 밝힌 것은 마나엔이라는 이름이 헤롯 일가의 혜택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 있었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헤롯 안티파스와 형제 아켈라오는 로마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안디옥의 마나엔도 그들과 그곳에 동행했을 수도 있다. 그가 언제 또는 어떻게 그리스도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 교사로 일한 그의 활동은, 침례자 요한을 살해하고 예수를 조롱했으며 본 이야기의 시점보다 몇 해 전에 갈리아로 불명예스럽게 추방당했던 헤롯 안티파스의 행적과는 현저하게 대조된다.
    사울. 다소 사람 사울은 천년 전의 사울 왕(삼상 10:11, 12)보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선지자들 중 하나”(삼상 10:11, 12)이다. 사울의 이름은 목록의 맨 마지막에 나온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헬라어 구절의 구문상 앞에 나온 세 명은 선지자이며 뒤의 두 명은 교사임이 암시되어 있다. 사울은 당시에 선지자의 은사를 아직 활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2. 성령이 가라사대. 성령이 행 20:23처럼 그분의 뜻을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셨다.
    일을 위하여. 원래 명령을 성령이 내린 점을 감안할 때 제1차 선교여행의 전반적인 노정도 성령이 윤곽을 잡았다고 추측할 수 있다. 교회가 이러한 선교여행 계획을 연구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이 확실하다.
    바나바와 사울. 앞서 나온 사울과 바나바의 교우 관계에 대해서는 9:27; 11:25, 26을 참조하라. 처음부터 사울은 “택한 그릇”(참조 9:15 주석)으로 불렸으며 하나님은 그가 광범위한 선교 봉사를 하도록 계획하였다. 두 사람이 전부터 가까웠다는 점에서 보면 바나바가 사울의 동역자로 선택된 것은 필연적이었다. 그 당시까지 이 둘은 교회의 선지자와 교사로 봉사하였다. 이제 그들은 영감받은 명령의 권위에 따라 독특한 사명을 위해 파송되며, 이방인을 위한 사도 직무를 위하여 구별되었다.
    따로 세우라. 헬라어에는 불변사(不變詞) 데(de-)가 이 동사 뒤에 나오는데, 이는 이 명령이 분명하고 즉시 실행되어야 함을 나타낸다. 바나바와 사울은 새로운 일을 위해 구별되어야 했다.

  3. 실루기아. 이 성읍은 오론테스 강 하구 근처 안디옥에서 약 24킬로미터 지점에 있으며 안디옥을 위한 항구였다. 실루기아는, 이 성읍의 설립자이며 셀류쿠스 제국을 세운 알렉산더의 장군 셀류쿠스 Ⅰ세 니카토르(Seleucus Ⅰ Nicator, BC 280년 사망)의 이름을 따서 건립되었다.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선교사들이 구체적인 지시를 받지 않았다면, 구브로가 바나바의 출생지였기 때문에 그곳을 첫 방문지로 택한 것이 확실하다. 그곳의 주민은 대부분 헬라인들이었다. 구브로 사람들은 아프로디테 즉 비너스가 그곳의 수호여신이라고 공언하였다. 아프로디테 숭배의 중심지는 바보(Paphos)에 있었는데 그 신전의 창기-여사제들의 음란함으로 유명하였다. 금속인 쿠프룸(cuprum) 곧 “구리”(copper)라는 말이 이 섬의 이름에서 유래되었고, 수리아에서 가까운 항로에 위치한 구리 광산은 많은 유대인들을 매혹시켰다. 이곳은 그리스도인 순회 전도자들을 통해 복음이 이미 전파되었던 곳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11:19). 또한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회심한 구브로 사람들 중에 기독교 기별을 고국에 가지고 돌아간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4. 살라미. 섬 동쪽 끝에 위치한 이곳은 실루기아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운 구브로의 항구였다.
    여러 회당. “여러 회당”이라고 복수로 표현한 것은 상당수의 유대인 주민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유대인들에게 먼저 전한다는 일반적인 규칙에 따라서(46절) 사도들은 당연히 여러 회당에서 초기 접촉을 시도하였다. 회당 예배에서는 바울과 바나바 같은 방문객들에게 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특별히 제공되었다(참조 제10권, 63~65).
    요한. 즉 마가 요한으로, 바나바의 사촌이다(참조 골 4:10 주석).

  5. 섬 가운데로.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는 “온 섬 가운데로”라는 독법을 증거한다. 바울과 바나바는 섬을 횡단하며 여러 곳에서 가르쳤을 것이다.
    바보. 바보는 구브로 섬 서단에 놓여 있다. 이곳에는 아프로디테에게 헌정된 신전으로 유명한 옛 도성이 있었지만, 바울 시대에 북서쪽으로 약 1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새 도성이 건설되어 구브로의 로마 총독의 사령부로 사용되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른 곳이 바로 이 새 도성이었다.
    바예수. 유대인 이름임이 분명하지만,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들은 정확한 헬라어 철자가 무엇인지에 대해 엇갈리게 나타나므로 히브리어나 아람어의 정확한 의미를 결정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은 “여호수아의 아들”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참조 마 1:1 주석).

  6. 서기오 바울. 티베리스(Tiber)의 평의원으로 봉직했던 사제들인 아르발 형제단(Arval Brethren)을 열거한 AD 35년경 라틴어 명각에는 “루[기오] 서기오 바울”(L[ucius] Sergius Paulus)이 포함되어 있다. 비록 이 사람을 본 이야기에 나온 총독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들이 동일한 사람이며 서기오 바울이 구브로로 파송되기 전에 로마의 사제였을 가능성도 있다. 구브로의 솔리(Soli)에서 나온 또 다른 명각은 “총독 바울” 시대에 기록된 명각임을 밝힌다. 학자들은 되풀이하여 이 총독과 사도행전의 서기오 바울을 동일 인물로 보려고 했으나, 그 명각의 연대가 제1차 선교여행 때와 일치할 수 없다는 것이 최선의 견해다. 아마도 그것은 몇십 년 전에 구브로를 통치했던 총독을 가리킬 것이다. AD 90년경에 저술한 대(大)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가 그의 저서인 박물지(Natural History) 곳곳에서 서기오 바울을 자신의 최고 상관으로 언급한 것으로 생각해 왔지만, 이 문서에 대한 비평적인 연구를 통해 거기에는 한 명 이상의 서기오 바울이 언급되었음이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서기오 바울에 대해서는 누가의 기록 외에는 확실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7. 엘루마. 이 이름의 의미에 대하여 학자들이 여러 가지로 추론했지만 최종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이것은 아마도 “박수”나 “마법사” 같은 의미를 지닌 셈족 단어일 수도 있다. 이 경우에 “번역하면”이란 구절은, “엘루마”가 “바예수”의 번역된 이름이 아니라 단순히 그가 박수였음을 첨언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저희를 대적하여. 협잡꾼은 자신이 총독에게 끼치던 영향력을 상실할까봐 두려워하였다. 엘루마는 자신의 희생물이 풀려나 박수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복음에 대한 믿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목도하자 이 변화를 저지하기로 결심하였다. 얀네와 얌브레는 다소 비슷한 상황에서 동일한 사단의 노력으로 모세를 대적하였다(딤후 3:8).
    못하게 힘쓰니. 엘루마와 서기오 바울 모두 사도들이 살라미에 도착한 후로 그들의 기별에 대해 많이 들었겠지만, 여기서 서기오 바울은 아직 그리스도의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수는 총독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보고 바나바와 사울을 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 했다. 하지만 총독은 굳게 결심하고 자기 앞에 사도들을 데려오도록 했다.

  8. 바울이라고 하는. 여기서 이방인의 사도로 가장 잘 알려진 이름이 처음 소개된다. 사울과 바울의 이름에 관한 언급은 제7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설명 2를 참조하라.
    성령이 충만하여. 이곳의 헬라어 분사의 시제에는 영적 능력의 갑작스런 임재가 암시되어 있어서 단번에 품성에 대한 통찰과 의분과 하나님의 징벌이 내릴 것임을 나타낸다. 엘루마에게 내려질 형벌이 성령을 통해 사도에게 보였을 것이다. 바울은 동일한 원천을 통해 자신이 말하려는 내용이 실현될 것도 알았다.
    주목하고. 헬라어 아테니조(atenizo-). “응시하다.” 다메섹 도상에서 보았던 강렬한 광채로 바울의 시력에 장애가 생겼기 때문에 이러한 응시가 필요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누가는 놀라서 혹은 유심히 쳐다보는 것같이(참조 행 3:4; 눅 4:20; 22:56), 정상 시력을 지닌 사람들이 한곳을 고정하여 응시하는 데 이 헬라어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엘루마는 주목받을 필요가 있었는데, 이는 그가 사도들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데 어떠한 방법이라도 동원할 태세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은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가차없이 정죄했다.

  9. 마귀의 자식. 참조 요 8:44 주석. 마귀가 거짓의 아비인 것처럼, 속임수를 쓴 엘루마도 이런 모욕적인 칭호로 불려질 만한 사람이었다. 바예수라는 이름이 “여호수아의 아들”(“여호와는 구원이다”라는 뜻의 이름, 참조 6절 주석)이라는 뜻이라면, 여기서 바울이 그의 성격을 묘사한 것과는 특별히 현격한 대조를 이룬다.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엘루마의 영향으로 하나님의 참된 도가 왜곡되고 와전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곧은 길을 교활한 사람의 굽은 길로 바꾸어 놓았다. 이것은 이사야가 묘사한 대로 고르지 않은 곳을 평탄케 하여(사 40:4) 주의 길을 진실로 준비하는 것의 정반대였다.

  10. 주의 손. 참조 행 11:21 주석; 출 9:3; 삿 2:15. 서기오 바울이 엘루마에게 한 질문은 유대인의 신앙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엘루마는 총독에게 하나님을 알도록 가르치는 대신에 자신의 주장에 따라 총독을 잘못 인도하였다. 엘루마가 주의 도를 곡해하였기 때문에 그분의 손이 그에게 임하려고 하였다.
    네가 소경이 되어. 이것이 가장 적합한 심판인 까닭은 엘루마가 진리의 빛에 대항했기 때문이다. 엘루마가 받은 형벌의 형태는 사도 바울의 이전 경험과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바울은 외적으로는 눈이 멀었으나 내적으로는 하늘로부터 오는 빛에 의해 계몽되었다(참조 9:9 주석). 엘루마가 한동안 눈이 멀었지만 모든 사람에게 비치는 “참빛”(요 1:9)을 여전히 영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얼마 동안. 실명이 일시적이었다는 것에는 이것이 형벌뿐 아니라 의도된 교정책이었음이 암시되어 있다. 엘루마에게 가해진 형벌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받은 형벌보다는 가벼웠는데, 만약 그 부부의 그런 소행이 계속된다면 그로 인해 교회에 파멸이 초래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죄는 구브로의 마법사에게 임한 빛보다 더 큰 빛에 대항한 것이었다.
    안개와 어둠. 이 단어들의 순서에는 시력이 점차 감소되었음이 나타나 있다. 처음에 엘루마의 눈이 흐려졌다가 이윽고 멀게 되었다. 이런 꼼꼼한 기록에는 누가가 의사 교육을 받았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참조 행 9:18 주석; 골 4:14).

  11. 총독. 총독은 이적을 보고 이어진 말씀을 들었다. 그는 사도들이 더 위대한 능력을 보여 줬다고 믿고 엘루마가 가르쳤던 것보다 분명 더 뛰어난 기별을 받아들였다.
    주의 가르치심.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
    기이히 여기니라. 즉 “놀라더라.” 여기서 이 단어는 마 7:28에서처럼 복음을 듣고 기뻐 놀람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12.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 밤빌리아는 소아시아 남해안 중간 지점쯤에 있는 작은 지역이었다. 바울이 방문하기 직전인 AD 43년에 이곳은 서쪽 인근 루기아와 합병되어 하나의 제국 직할 속주를 형성하였다. 버가는 이곳의 주요 도성으로서, 바다에서 약 13킬로미터 떨어진 체스트루스(Cestrus) 강가에 있었다. 당시 이 도성에서의 전도 사역에 대하여 누가가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곳에 회당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한 마가가 떠나고 착잡해진 마음에 바울과 바나바는 계속 나아갔을 것이다. 그들은 돌아오는 길에 버가에서 복음을 전했다(참조 14:25).
    요한은…떠나. 즉 요한 마가(참조 5절 주석). 요한이 왜 떠났는지 어떠한 단서도 없다. 아마도 그는 여정의 위험과 고난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요한 마가는 두 번째 복음서의 기자와 동일 인물일 것이다. 그는 후일 그리스도의 열성적인 일꾼이 되었다. 바울은 후에 애착을 갖고 그에 대해 말했으며(골 4:10), 마지막 투옥 기간 중 그를 보고싶어 했다(딤후 4:11). 누가가 왜 요한 마가가 떠났는지 알았을지라도 훗날 마가의 성공적인 경험을 존중하여 그 이유를 여기서 밝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13. 버가로부터 지나. 바울과 바나바의 행로는 북쪽으로 체스트루스 강 지류 중 하나를 따라 갈라디아 도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들은 안디옥에 이르기 위해 밤빌리아 전체를 거슬러 올라가 갈라디아 남서쪽 모서리를 “지나갔다.”
    안디옥. 비시디아는 바울 당시 일개 관구(管區)에 지나지 않았으며 AD 3세기 말이 되어서야 속주로 승격했다. 이 안디옥은 비시디아에 없었으며 브루기아 지역 근처에 있었다. 그러나 BC 39년에 이곳은 비시디아 왕의 통치를 받게 되었고 동일한 이름의 다른 도성들과 구별하기 위해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신약 시대에 이곳은 갈라디아 도에 포함되었다.
    안디옥은 셀류쿠스 Ⅰ세 니카토르(Seleucus Ⅰ Nicator; BC 280년 사망)가 건설한 많은 도성 가운데 하나로, 자신의 아버지 안티오쿠스의 이름을 따서 이렇게 명명하였다. 이곳은 해발 1097미터 정도 되는 타우루스 산맥의 하부 비탈에 있다. 이곳 사람들은 아구스도 통치 때에 로마 시민권을 받았다. 안디옥은 상당수의 유대인들의 마음을 끌었을 것이며 이로 인해 이방인들이 유대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42절).
    이 여행에서 바울과 그의 일행은, 그가 고후 11:26에서 언급한 “강도의 위험”에 노출되었던 것 같다. 안디옥에 이르기 위해 그들이 통과했던 비시디아는 북쪽으로 갈수록 점차 높아지는 산악 지역이었다. 스트라본(Strabo, AD 24년경 사망; Geography xii. 7. 2)은 이 지역에서 자주 발생한 약탈에 대해 언급한다.

대학선교센터교회


안식일학교

경배와 찬양 다같이
찬       미 83장
시작기도 기도자
환       영 안교장
특별순서 청년선교회
교과공부 합 반
헌금소개 사회자
축       도 담임목사

 

기억절 3기 9과 (일몰 : 7시 4분)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 스스로 보았으니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출 20:22-23).

 

8월 시무 안내
시       무 : 임영빈
헌금봉사 : 박인앙 박다정

 

다음 주 예배순서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5 이종혁 임봉경 6 박수빈 임봉경
12 유태준 소그룹 13 고은채 박정택
19 박제인 소그룹 20 유수아 배승환
26 정예은 소그룹 27 박인앙 권세진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33장
대 표 기 도 허미라 집사
특 별 찬 양  
설        교 야훼 로이:시편23편  김형준 목사
찬        미 310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캠퍼스 소식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 함께 그리는 내일
    일시 : 8월30일(안)~31일(일)
    장소 : 비전센터
  3. 일요기도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여집사 1조
    • 청소당번 : 화랑 캠모

캠퍼스 모임

방학중 소그룹 목요일 18시 교회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시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시30분 ZOOM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유민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문호준  재무 김성미   
선교회장 윤민식  액트회장 윤애리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1길 11
어린이청소년비전센터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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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선교센터교회


안식일학교

경배와 찬양 다같이
찬       미 83장
시작기도 기도자
환       영 안교장
특별순서  
교과공부 각 반
헌금소개 사회자
축       도 담임목사

 

기억절 3기 8과 (일몰 : 7시 14분)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4-6).

 

8월 시무 안내
시       무 : 임영빈
헌금봉사 : 박인앙 박다정

 

다음 주 예배순서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1 윤애리 소그룹 2 전현주 권세진
8 임현빈 소그룹 9 정찬우 김성민
15 김영서 소그룹 16 김희중 배승환
22 김주아 소그룹 23 이한얼 권세진
29 김진겸 소그룹 30 허미라 김형준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32장
대 표 기 도 이한얼 청년
특 별 찬 양 기악 특창
설        교 권세진 목사
찬        미 296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캠퍼스 소식

1. 방중 모임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 비전트립
    일시 : 8월23일(안)~25일(월)
    장소 : 경상북도 경주
  3. 2학기 개강예배
    일시 : 8월29일(금)
  4. 함께 그리는 내일
    일시 : 8월30일(안)~31일(일)
    장소 : 비전센터
  5. 일요기도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남집사, 장로
    • 청소당번 : 학생반, 여집사

캠퍼스 모임

방학중 소그룹 목요일 18시 교회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시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시30분 ZOOM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유민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문호준  재무 김성미   
선교회장 윤민식  액트회장 윤애리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1길 11
어린이청소년비전센터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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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옥에서 놓임-사도행전 연구1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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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2:1-19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 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내용 요약

  1. 야고보의 순교 (1-2)
  2. 베드로의 투옥과 탈옥 (3-19)
  3.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죽음 (20-25)

 

배 경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기까지는 또 한 사람의 순교자가 있었다. 헤롯대왕의 손자 헤롯 아그립바 I세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야고보를 목베어 죽였다.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자 그는 베드로도 죽이려고 투옥했다. 예루살렘교회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극심한 시련이 다가오고 있었다. 신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시 34:7, 개정)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위기에 몰렸으나 태평스러웠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 보아요.

  2. 천사의 도우심이라고 생각되는 사건들이 있다면 나누어 보아요.

​​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야고보는 누구입니까?
    ① 가족관계 (마 4:21)    ② 별명 (막 3:17)    ③ 그의 죽음 (행 12:2)

  2. 베드로는 얼마나 철저히 감시를 받았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2:4-6)
  3. 베드로가 옥에 갇히고, 교회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12:5) 그들이 한 일은 교회가 어려울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제시해 주나요?

  4. 베드로는 얼마나 깊이 잠들었습니까? (12:7)
    그 절망적인 밤에 예루살렘에서 잠을 잔 그리스도인은 베드로밖에 없었다고 한다. 내일로 다가온 죽음을 앞에 두고 베드로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얼마나 깊은 신뢰인가? 얼마나 확고한 믿음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자는 베드로와 비교해보라(막 14:36-37).
  5. 다락방의 사람들은 베드로가 살아 돌아온 것을 믿었습니까(12:13-16)?
    기도를 하고서도 그 응답을 믿지 못하는 것으로 봐서 그날 밤의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이었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기도를 드리면서도 그렇게 믿지 못하지는 않습니까?
  6. 교만한 헤롯의 최후에 대해 말해 보시오(12:20-23)​

생각해봅시다

  1. ​권력과 출세 중심인 헤롯의 삶과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바치는 야고보의 삶을 비교해서 생각해봅시다. 어느 쪽이 나의 삶과 더 가깝게 느껴지나요?

  2.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믿지 않는 우리의 행동이 있나요?

모든 하늘 천사들은 겸손하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을 위해 봉사하고 있으므로, 이 지상에 있는 주의 일꾼들의 군대가 찬양의 노래를 부를 때에, 하늘 찬양대는 그들과 연합하여 하나님과 그 아들에게 찬양을 돌린다.
우리들은 천사들의 사명을 지금보다 더욱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모든 하나님의 진실한 자녀들은 하늘 존재들의 협력을 받고 있음을 기억함이 좋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빛과 능력의 군대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구하는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들과 동행하고 있다.(사도행적 154p)

 

 

1. 그때에. 여기서 이야기하는 사건은 헤롯 아그립바 Ⅰ세의 사망 직전에 일어났을 것이다(참조 20~23절). 그가 AD 44년에 죽었기 때문에, 이 장의 초반부 사건들은 아마도 AD 44년 이전 해이거나 당해 초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

헤롯왕. 헤롯 아그립바 Ⅰ세는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와 베레니체(Berenice)의 아들이었고, 헤롯 대왕과 하스몬 가문의 공주인 마리암네(Mariamne)의 손자였으며, 침례자 요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헤로디아(Herodias)와 남매지간이었다(참조 제9권, 51). 그의 이름은 아구스도(Augustus)의 총리였던 정치가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 그는 자신의 부친이 BC 7년에 조부 헤롯 대왕의 의심으로 희생된 후(제9권, 53)에, 일면으로는 볼모로, 다른 일면으로는 그가 음모에 연루되는 것을 막기 위해 로마로 보내졌다. 거기서 그는 칼리굴라와 글라우디오의 친구가 되었는데, 후에 그 둘은 모두 황제가 되었다. 헤롯 안티파스가 헤롯 아그립바의 누이 헤로디아와 결혼했을 때, 아그립바는 디베랴의 시장(市場) 감독관이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안티파스와 다투고 로마로 갔다. 거기서 그는 자기 친구 칼리굴라가 황제가 되었으면 하는 성급한 소원을 드러내 디베료의 노염을 사게 되었다. 그는 디베료의 명으로 투옥되어 이 황제가 죽을 때까지 감금된 채로 있었다. 칼리굴라는 디베료를 이어 황제의 위에 올랐을 때 자기 친구 아그립바에게 명예를 주어, 먼저는 빌립의 영지를, 그 뒤에는 루사니아의 영지(눅 3:1)를 주고 왕의 칭호를 부여하였다. 안티파스가 물러났을 때(참조 제10권, 73), 아그립바는 안티파스의 영토도 상속하였다. 그의 통치의 개관에 대해서는 제10권, 78을 참조하라.

2. 야고보를죽이니. 사도가 신성모독이나 이설이라는 죄명을 받았다면, 산헤드린은 그에게 돌로 쳐죽이는 형을 언도했을 것이다. 침례자 요한의 경우처럼(마 14:10), 사도 야고보의 참수형은 그의 죽음이 로마의 처형 방법을 채용했던 국가 통치자에 의해 언도되었음을 입증한다(참조 마 20:23). 헤롯이 야고보를 왜 그의 첫 희생자로 지목해야 했는지는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했을 때 복음 전도 이야기에서 베드로와 요한과 공유했던 중요한 위치를 지속적으로 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천성적인 열정으로 인해 눈에 띄었을지도 모르는데, 이는 그가 우레의 아들로 불렸기 때문이다(막 3:17).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로부터 전달되어 유세비우스(Eusebius)가 보존한 전승(Ecclesiastical History ii. 9)에 의하면 야고보를 고발한 자가 희생자의 믿음과 인내를 보고 회심했다고 한다.

야고보는 그리스도 승천 이후 단 1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봉사했다. 사도들 중에 그가 가장 먼저 죽은 반면에, 그의 형제 요한은 아마도 12명 중 가장 마지막으로 죽었을 것이다.

3. 유대인들이…기뻐하는. 이것이 아그립바의 목적이었다. 요세푸스도 이것을 주목한다. 그는 아그립바를 안티파스와 비교하면서, 안티파스는 “유대인보다 헬라인에게 더 호의적이었”지만 아그립바는 안티파스와 “전혀 같지 않았다”라고 말한다(Antiquities xix. 7. 3).

민중의 칭송 혹은 비난에 대한 이 왕의 예민함을 예증하는 한 사건이 미쉬나에 나온다(Sotah 7. 8; Soncino ed. of the Talmud, 202). 어느 안식년 장막절에, 아그립바 왕이 율법을 읽고 있었다. 그가 “네 형제가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라는 신 17:15 말씀에 이르렀을 때, 자기의 후손인 이두메 사람들을 생각하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사람들은 그가 우는 것을 보고 그가 하스몬가를 생각하는 줄로 알고 “당신은 바로 우리 형제요! 당신이야말로 우리 형제요!”라고 부르짖자 왕의 마음이 위로받았다.

만약 아그립바가 기쁘게 하려던 대상이 주로 유대 지도자들이 아니었다면, 분명 이 이야기는 2:47과 5:26에서 명백하게 드러난 대로 사도들을 지지하는 초기 대중적인 정서에 큰 변화가 발생했음을 암시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 변화는 교회 구성원의 급격한 증가로 야기되었다.

무교절.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눅 22:1)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표현은 유월절 전체 기간을 가리킨다.

4. 네 패. 한 패(quaternion)는 보초 근무를 서는 4명으로 이뤄진 분대였다. 두 병사는 죄수와 함께 묶여 있고 두 병사는 서서 외부를 감시했을 것이다(참조 10절 주석). 이렇게 4명으로 이뤄진 분대는 분명히 교대로 베드로를 담당하도록 명령받았을 것이다.

5. 간절히. (「제임스왕역」에는 “without ceasing”[쉬지 않고]). 헬라어 엑테노스(ekteno-s). “간절히.” 겟세마네에서 드린 예수의 기도를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눅 22:44)와 동일하다. 이 단어는 벧전 4:8에서는 “열심으로”라고 번역되어 강렬함을 나타낸다. 교회의 일반적인 상황으로 보아 이 기도들은 사가(私家)에서 그리스도인 무리가 드린 것으로 추측될지 모르는데(행 12:12), 이는 아그립바의 핍박이 공개적인 그리스도인 예배를 위협했기 때문일 것이며, 이는 그리스도교 초기에 흔한 사례였다.

6. 베드로가누워 자는데.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말씀에 나타난 대로(시 127:2), 사도가 다가오는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잠잠히 휴식을 취하는 것을 보는 것은 신앙에 영감과 도전을 준다.

7. 쇠사슬이벗어지더라. 베드로는 분대 소속 병사 두 명에게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쇠사슬이 그의 발목과 손목에서 벗겨져 떨어졌지만, 보초들은 깨지 않았다.

9. 알지 못하고. 베드로에게 이 상황은 분명히 10장에 기록된 생생했던, “비몽사몽” 중에 본 환상과 매우 흡사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는 마치 전에 기도하는 중에 지붕에서 환상을 보았다는 사실을 깨어난 후에야 깨달았던 것처럼, 깨어난 후에 자신이 두 병사에게 쇠사슬로 묶여 있는 것을 보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10. 파수. 헬라어 퓔라케(phulake-). “첫째와 둘째 파수”는 감옥의 안쪽 문 근처와 약간 더 떨어져 있는 다른 문에 배치된 보초들을 가리키거나, 아니면 그와 함께 쇠사슬에 묶여 있던 보초와 문에 있었던 다른 보초들(참조 4절 주석)을 가리킬 수 있다. 베드로는 안쪽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안뜰 둘을 지나서 나와야 했다.

절로. 이 말은 인간적인 힘이 사용되지 않았음을 뜻한다(참조 레 25:5). 보이지 않는 천사가 문을 연 것이 분명하다.

누가가 이 기적을 간결하면서도 꾸밈없이 기록한 사실은 이 기록의 정확성을 입증한다.

12. 요한. 베드로가 마가를 그의 “아들”(벧전 5:13)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 젊은이는 베드로를 통해 회심했을 것이다. 라틴어 이름 마르쿠스(Marcus)는 로마인 혹은 로마계 유대인과 어느 정도 접촉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마리아. 이 마리아는 바나바와 친척이다(참조 골 4:10. 마가가 “바나바의 생질”이라고 되어 있지만, 헬라어로는 “바나바의 사촌”을 의미한다). 마가의 아버지가 언급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마리아는 과부였을 것이다. 기도회 장소로 교회에 대여해 줄 만큼 큰 집을 가졌던 점을 볼 때, 마리아도 바나바와 마찬가지로(참조 행 4:36, 37) 상당한 재산을 소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모여 기도하더라. 아마도 이러한 모임은 마리아의 집에서 흔히 있었을 것이다. 베드로가 감옥에서 구출되었을 때 일단의 무리가 그의 구원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는데(참조 5절), 이는 교회가 위기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3. 로데. “장미”라는 뜻의 흔한 헬라어 이름. 로데는 이 사건 외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녀만큼 잘 알려진 하인은 거의 없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 예수의 발을 씻겼던 마리아 그리고 성전 연보궤에 두 렙돈을 넣었던 이름 모를 과부처럼, 로데는 1900여 년 동안 모든 성경 독자들에게 알려졌다.

영접하러. 여기에 위기감이 풍기는데, 이는 아그립바가 유대교에 대한 열심 때문에 제자들에게 가한 핍박으로 인한 위기였다. 사울이 일전에 모든 집에 들어가 남녀를 감옥으로 체포했는데(8:3), 이때도 그와 유사한 위험을 내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로데가 들어가기를 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 전에는 문을 열어 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14. 베드로의 음성. 헌신적이고 용감한 십자가의 군병을 향한 어린 여성의 그리스도인 사랑으로 그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베드로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였을 것이고, 따라서 그녀는 그의 음성을 알아챘다. 또한 베드로는 갈릴리 방언 특유의 어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전에도 어떤 하녀가 그를 알아본 적이 있었다(마 26:73).

기뻐하여. 로데가 베드로에게 문을 열지 않았던 것은 믿음의 부족이 아니라, 순수한 기쁨 때문이었다. 그녀는 베드로를 향한 형제들의 근심과 그를 위해 드려지는 기도에 함께하였다. 베드로의 탈출에 대한 기쁜 소식을 말하려는 간절한 갈망으로 인해 그녀는 침착함을 잃어버렸다. 이와 유사하게 누가는 부활의 저녁 예수를 알아보았으나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였던(눅 24:41) 제자들에 대해 기록하였다.

15. 네가 미쳤다. 베드로가 문에 서 있다는 소식을 로데가 전했을 때, 형제들은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자신들의 기도에 응답했음을 믿을 만한 믿음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어린 여성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그의 천사. 히브리서(1:14)에서 천사에 관한 유대인의 건전한 신념은 다음 질문에 표현된다. “모든 천사는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유대인은 수호 천사가 각 사람에게 배정되며, 천사가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날 때 그 사람과 비슷한 모양을 취한다고 믿었다. 구약과 신약의 중간 시대에 유대인은 복잡한 천사론(angelology)을 발전시켰다.

16. 놀라는지라. 선한 사람들조차도 기도가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응답되었다는 사실을 선뜻 믿으려 들지 않음을 보여 주는 이보다 더 좋은 예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베드로가 그들 앞에 섰을 때, 그들은 이 사람이 베드로임을 거의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믿음의 기도가 응답될 것이라는 충분한 보증을 주었다(요 14:13, 14).

17. 자기를 이끌어. 감옥에서 놓여 정신을 차렸을 때 베드로는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11절)셨다고 외쳤다. 그러나 지금 그는 자신을 구원한 분이 주님이었다고 증거하고 있다.

야고보. 할례와 관련해서 예루살렘 총회에서 의장을 맡아, 그 문제에 대해 판결을 내렸던 야고보임이 분명하다(15:13). 그는 어떤 면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수석 장로였기 때문에, 베드로가 자신의 구출 소식을 즉시 알려 주길 바란 것은 당연했다.

이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 아니면 주님의 형제 야고보일 것이다. 예수의 형제들은 예수의 지상 생애의 종반부가 돼서야, 즉 열두 제자가 선택되고 한참 후에야 그를 믿게 되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사망한 이후,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중 하나였던 야고보를 가리켜 “주의 형제”(갈 1:19; 참조 2:9)라는 명백한 호칭을 붙인다. 이 사람이 바로 여기서 베드로가 언급한 야고보일 것이다. 유세비우스(Ecclesiastical History ii. 23; Loeb ed., vol. 1, 171)는 그를 예루살렘의 감독이라고 칭하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진실의 요소를 간직하고 있는, 야고보에 관한 헤게십푸스(Hegesippus)의 회고록(Memoirs, AD 180년)을 인용한다. “주님의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모든 사람이 그를 ‘의로운 자’라고 부른 이유는, 야고보로 불린 사람이 많았지만 이 야고보는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거룩했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거나 육식을 하지 않았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으며, 스스로 기름을 바르지 않았고 목욕하지도 않았다. 그만이 홀로 성소에 들어가도록 허용되었는데, 이는 그가 양모를 입지 않고 아마포만 입었고 혼자 성전에 들어가 사람들의 죄사함을 위해 무릎 꿇고 기도드리곤 했기 때문이며, 사람들의 죄사함을 무릎 꿇어 간구하며 하나님에게 지속적으로 경배했기 때문에 그의 무릎은 낙타 무릎처럼 딱딱하게 되었다.” 전승에 의하면, 그가 그리스도를 부인하라는 요구를 거절했을 때, 그는 성전 꼭대기에 올려졌고, 그분에 대한 믿음을 붙잡겠다고 주장함으로 밑으로 던져져 돌에 맞고 곤봉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참조 제10권, 81). 요세푸스에 의하면(Antiquities xx. 9. 1) 그는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야고보서 서론을 참조하라.

18. 적지 않게 소동하니. 베드로와 함께 쇠사슬에 묶여 있던 보초들은 틀림없이 깨어나자마자 그가 사라졌음을 발견했을 것이고, 그가 도주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죽을 것임을 알았다.

이것은 베드로의 활동에 대한 성경의 마지막 기록이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그에 대해 진술한 것은 이미 언급하였다(1:18; 2:7, 8, 11, 14). 베드로는 자신의 두 서신에서 행한 일들에 대한 약간의 암시를 준다(벧전 1:1; 5:12, 13; 벧후 1:14). 이 외에는 어떤 영감된 기록에도 그에 대해 더 알려진 것은 없다. 전승에 꽤 많은 언급이 있긴 하지만, 그 주장들은 그 진위에 따라 수용하거나 거부해야만 한다. 제롬이 유세비우스의 크로니콘(Chronicon)을 의역한 진술 곧 베드로가 로마에서 25년 동안 전파했다는 말은, 베드로가 총회를 위해 예루살렘에 있었으며(행 15장) 그가 총회 직후 분명히 안디옥에 있었고(; 참조 제15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그가 친히 소아시아 북서부에서 사역했다(벧전 1:1; 참조 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iii. 1)는 사실에 비춰볼 때 매우 의문시된다. 행 8~12장에 비추어 볼 때, 이 모든 것은 AD 44년 베드로의 구출에 뒤이어 일어났을 것이다.

19. 죽이라. 문자적으로 “[그들을] 끌어내어” 처형하라. 동일한 동사가 예수의 재판과 십자가 처형에 대한 복음서 기사에서 “끌고 가니”(마 26:57; 27:2, 31; 막 14:53; 눅 23:36)라고 번역되었다. AD 529년에 공포된 한 로마법은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투옥된 죄수의 구금과 관리는 간수에게 맡겨졌고, 따라서 간수는 어떤 경우든 죄수가 도주했을 때 그에게 책임이 있다해도 일부 비열하고 야비한 피고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데, 이는 도주한 죄수가 받아온 것으로 입증된 동일한 형벌을 간수가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The Code of Justinian ix. 4. 4; in S. P. Scott, tr., The Civil Law, vol. 14, 364). 이것은 죄수가 도주하는 것을 막지 못한 간수와 관련된 법 혹은 적어도 판례로 오랫동안 존재했던 것이 분명하다. 빌립보에서, 자기의 죄수들이 모두 도주했다고 생각한 간수는 법으로 사형을 당하느니 차라리 자살하려고 하였다(행 16:27). 27:42과 비교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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