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7:1-25
[1]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3]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
[4]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5]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
[6]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7]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8]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
[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12]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14]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15]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내용 요약
백부장 율리오가 바울과 죄수들을 데리고 이달리야로 떠납니다. 그레데를 지나 미항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항해하기에 위험한 시기가 되었습니다. 이에 바울이 항해를 말리지만,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 말을 믿고 뵈닉스에서 겨울을 지낼 작정으로 미항을 떠납니다.
광풍이 크게 일어 사공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구원의 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배만 손상되고 아무도 생명에는 손상이 없으리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에게 말해 준 것입니다. 바울이 사람들에게 안심하라고 하며, 자신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이탈리아로 가는 길고도 지루한 항해 동안 사슬에 매인 죄수로서 그에게 주어진 괴로운 경험을 견디어야만 하였다. 한 가지 사실이 그의 고난을 크게 경감시켰는데 그것은 그가 누가와 아리스다고를 동반하도록 허락을 받은 것이었다. (행적439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 힘든 일이 있을 때, 항상 옆에 있는 친구가 있나요?
- 나는 내가 아는 지식과 내가 습득한 경험 중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입니까?
- 왜 인생을 항해에 비유할까요?
- 순풍이 불 것이라고 판단하고 안일하게 일을 진행하다가 광풍을 만난 때가 있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 바울이 죄수로서 로마로 가는 항로에, 함께 함으로 힘이 된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사람은 바울에게 어떤 사람이었나요?(2)
-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왜 더 믿었을까요?(11)
- 바울의 말대로 항해가 불가능해지자 사람들은 바울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요?(13-20)
- 어려운 상황에서 바울이 안심하라고 담대히 증거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21-25)
생각해봅시다.
- 주님의 말씀으로 권면하는 사람에 대한 나의 태도는 어떠합니까?
- 위기에 직면했을 때, 내가 취하는 우선순위는?(ex 재물, 인맥, 기도등등)
- 위기에 직면했을 때. 붙들어야 할 것은 무엇이며,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사도는 그 자신이 비록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가장 어두운 시간에 희망의 말을 하였고 모든 위급한 경우에 도움의 손이 되었다.(행적442p)
아리스다고. 바울의 여행 동료. 그는 에베소에서 바울과 함께 있었고(19:29), 후에 마게도냐와 헬라에서도 함께 있었다(20:4). 로마에서의 첫 투옥 때도 바울과 함께 있었다(골 4:10; 몬 24절).
함께하니라. 이 말은, 아리스다고와 기자인 누가가 바울과 동행하였음을 암시한다. 로마의 법은 로마 시민이 죄수로 여행할 때에 노예 한 명과 개인 의사 한 명을 동반하도록 했다. 아마도 아리스다고는 바울의 종으로, 누가는 그의 의사로 동행했던 것 같다.
5. 길리기아…바다를. 즉 “길리기아와 밤빌리아의 [해안에서] 떨어진 바다”.
무라. 해안에서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미로스 강변에 세워진 성이다. 오늘날 터키인들은 이곳을 뎀브레(Dembre)라고 부른다. 이 항구는 팔레스타인에서 로마로 가는 배들의 일반적인 기항지는 아니었다. 한 고대의 명각은 무라를 곡물을 저장하는 장소로 언급하는데, 알렉산드리아에서 오는 배들이 이곳에 곡물을 풀도록 항로가 정해졌을 것이다(38절). 애굽은 로마제국의 곡창지대였다.
6. 알렉산드리아 배. 무라는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의 직항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미항. 이 항구 도시는 어느 문헌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여전히 동일한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 이 도시는 그레데의 남쪽 해안, 즉 섬의 남쪽 해안의 주요한 갑인 마탈라 곶의 동쪽 약 8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리메네스 칼리(Limenes Kali)로 알려져 있다.
라새아. 이 도시의 옛터가 미항의 동쪽 수 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9. 여러 날이 걸려. 순풍을 기다리며 어떻게 할지 의논하느라고 걸린 시간이다.
금식하는 절기. 유대 성력으로 일곱 번째 달인 티쉬리월(참조 Josephus Antiquities iii. 10. 3 [240]) 열 번째 날에 지킨 대속죄일이다. 때는 10월 하순경이었으며 심한 폭풍이 예상되었다.
10. 내가 보니. 헬라어 쎄오레오(theo-reo-). “식별하다”(참조 요 4:19).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에 대한 바울의 인식은 반드시 초자연적인 통찰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경험이 많은 여행자로서 자신의 관찰과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그는 예언자로 말하고 있지 않다. 그가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생명에도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두려워했던 일이 후에 일어나지 않았음을 주목하라(27:44).
타격과 많은 손해. 즉 “손상과 많은 손실.” 이렇게 기탄없이 충고하는 것으로 보아, 바울은 배를 맡고 있는 자들의 존경을 받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이미 여러 번 지중해와 에게 해를 여행하였다. 이 특정한 항해가 있기 몇 해 전에 그는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고후 11:25)라고 기록하였다. 바울의 여행과 멜리데 섬에서 일어난 파선에 대한 설명을 보려면 이 장 끝에 있는 추가적 설명을 참조하라.
11. 선장. 헬라어 퀴베르네테스(kuberne-te-s). “키잡이”, “선장” 즉 항해의 책임을 맡은 자이다. 백부장은 당연히 이곳저곳을 순회하는 유대인 랍비보다 전문 항해인의 판단을 더 선호했다.
선주. 로마로 보내는 애굽산 밀(38절)인 화물도 그의 소유일 것이다. 이 주요 산물은 알렉산드리아와 로마 사이의 수익이 높은 활발한 무역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참조 5절 주석).
뵈닉스. 일반적으로, 그레데 남쪽 해안에 있으며 연중무휴로 개항하는 최상의 항구 뤼트로(Lutro)로 생각된다. 이 항구는 헬라의 지리학자 스트라본(Geography x. 4. 3)에 의해 언급되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외국으로 가는 배의 중개상이 바다에서 보호해 준 것에 대한 감사제로 세라피스와 유피테르에게 바친 서판이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한편은 동북을, 한편은 동남을. 문자적으로 “남서와 북서를 내려다보는.” 뤼트로 항구는 동쪽을 향하고 있어서 배를 탄 사람이 항구로 들어갈 때에는 서쪽을 보게 되어 있다. 뤼트로 항구를 형성하는 갑(岬)의 다른 쪽은 덜 안전한 피네카(Phineka) 항구인데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13. 남풍. 선장이 북풍(7, 8절)을 피하려고 지금까지 그레데 남쪽으로 항로를 잡았던 것으로 보아, 남풍이 순하게 분 것은 기후가 완전히 바뀌었음을 나타낸다.
득의한 줄. 오랫동안 기후가 바뀌기를 기다렸음을 보여 준다.
닻을 감아. 즉 “닻을 올려.”
가까이 하고. 헬라어 앗손(asson). “더 가까이.” 오래 전에는 어떤 장소의 이름으로 생각되었으나 지금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더 가까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지명은 확인된 바가 없다. 서쪽으로 약 64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뵈닉스에 도달하기까지 해안으로부터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선장의 목적이었다.
14. 유라굴로. 헬라어 유로클뤼돈(eurokludo-n). “동풍”과 “[큰] 파도” 즉 “거센 물”을 의미하는 두 단어에서 유래했다. 그러므로 유로클뤼돈은 큰 파도를 일으키는 동풍을 지칭한다. 그러나 유라퀼론(eurakulo-n)이라는 독법을 지지하는 중요한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를 제시할 수도 있다. 앞부분이 헬라어이고 뒷부분이 라틴어인 이 혼성어는 동북동풍을 가리킨다.
광(풍). 헬라어 튀포니코스(tupho-nikos). 자연의 폭풍우의 힘, 특히 맹렬한 바람의 화신인 튀폰(Typhon) 신의 이름에서 유래한 형용사이다. 바람의 빠른 변화는 이것이 거센 폭풍우였음을 나타낸다.
대작하니. 문자적으로 “그것으로부터 파도가 치다.” 이것은 산이 많은 그레데 섬에서부터“파도가 치다”라는 의미이다. 갑자기 부드러운 남풍이 강한 북풍으로 바뀌었고, 이 때문에 배는 남쪽 가우다라는 섬(16절)쪽으로 떠밀려갔다.
15. 배가 밀려. 마탈라 곶의 동쪽 연안에 가까이 붙어 항해할 때는 배가 변화무쌍한 바람으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뵈닉스로 가는 길에 트인 만(灣)을 가로지르기 시작하자 맹렬한 북동풍이 강력한 위세로 배를 남서쪽 가우다 방향으로 몰아갔다.
바람을 맞추어. 바람을 마주 대할 수 없음을 말한다.
16. 가우다. 이 섬의 오늘날 명칭은 곳조(Gozzo) 또는 가우도(Gaudo)이다. 프톨레마이오스(Geography iii. 15. 8)는 이 섬을 클라우도스(Claudos)라고 불렀다. 이 아주 작은 섬은 마탈라 곶[串] 남서쪽 72.5킬로미터 지점에 있는데 마탈라 곶 부근에서 북동풍이 배를 급습하였다.
간신히 거루를 잡아. 이 옛스러운 관용구는 “우리가 간신히 [구조용] 보트(혹은 작은 배)를 제어할 수 있었다”라는 의미다. 이 작은 비상용 보트는 대개 밧줄로 매어 둔다. 파도가 거센 바다에서 순식간에 보트에 물이 차고 다루기 어렵게 되었을 것이다. 선원들은 보트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배 위로 끌어올리려 하였다.
스르디스. 헬라어 쉬르티스(surtis). (「제임스왕역」에는 “유사”[流砂] 의미하는 “quicksands”로 되어 있음-역자 주) 아프리카 대륙 북부 해안으로 만입(灣入)되어 있는 큰 만(灣)의 동쪽 부분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오늘날에는 같은 만의 서쪽 부분인 소(小) 스르디스와 구별하기 위해 대(大) 스르디스로 불린다. 대 스르디스와 소 스르디스 모두 수심이 얕으며 모래톱 즉 유사를 숨기고 있는데, 항해가 시작된 이래 셀 수 없는 배의 묘지가 되었다. 바울의 배는 바람에 의해서 대 스르디스 방향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루칸(The Civil War ix. 303~310)과 밀턴(Paradise Lost ii. 939)을 참조하라.
쫓겨가더니. 하루나 이틀이면 북동풍은 배를 서남서쪽 스르디스로 몰아갈 것이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선원들은 폭풍이 부는 악천후에 앞서 배에 장비를 갖추었으며 뱃머리를 바람받이로 돌려서 배를 세우고 우현으로 바람을 받으며 범주(帆走)했다. 그렇게 하면 배의 이물이 거의 북쪽을 향하고 북동풍은 배의 우현을 치게 되어, 배는 주로 옆으로 밀려 서북서쪽을 향해 가게 된다. 가우다에서 멜리데까지는 약 760킬로미터이다.
19. 기구. 참조 17절. 배에서 제거할 수 있는 모든 장비, 특히 갑판 위에 있던 것들을 모두 바다에 던졌다.
저희 손으로. 문자적으로 “자신의 손들” 곧 선원들의 손으로. 장비는 물에 떠내려가거나 바람에 휩쓸려 간 것이 아니라, 심사숙고 끝에 바다에 버린 것이다.
20. 여러 날 동안. 사건의 추이가 분명해지기까지 거의 두 주가 지났다(27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나침반이 발명되기 전에 폭풍이 이는 바다를 항해하는 자들은 방향을 정하고 위치를 알기 위해 낮에는 해를, 밤에는 별을 관찰하는 일에 의존하였다. 27절을 볼 때 항해사들은 배의 운항 위치를 알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길을 잃은 것이다.
21.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선원의 형편을 말한 것이지만 헬라어 본문에 명백히 나타난 것처럼 대개의 선객들도 그랬을 것이다. 폭풍이 몰아치는 동안 배를 운항하는 어려움과 흥분으로 인해 규칙적인 식사 준비나 식사를 하기가 어려웠다. 많은 사람들이 뱃멀미를 했을 것이다.
바울이…서서. 미항에 있을 때 바울의 충고가 거절된 이후 바울과 그의 일행은 선장과 선원들이 자기들 생각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내 말을 듣고. “내가 이럴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라는 바울의 말은 비난이나 불쾌한 잔소리가 아니라 항해사들을 설득하여 그가 이제 말하고자 하는 것에 주목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 그의 충고(10절)를 따랐다면, 지난 며칠간의 위험과 두려움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 바울의 충고를 귀담아 들을 것이었다.
22. 안심하라. 또는 “용기를 내라”, “마음을 다잡아라.” 때가 되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바울이 한 용기의 말과 “여망이 다”(20절) 없어질 것이라고 한 그들의 말을 대조해 보라. 요 16:33; 행 23:11과 비교해 보라. 바울의 태도와 어조는 용기를 주는 그의 훈계와 조화를 이루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불안한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한다.
23. 나의 속한 바. 종교는 개인적인 일 곧 개인적인 헌신으로, 인격적인 하나님에게 드리는 개인적인 경배와 봉사이다. 바울은 거의 파선 지경에 처한 배에 함께 타고 있는, 두려워 떠는 이방인들에게 공감을 주는 증언을 한다. 바울은 배에 타고 있는 자들을 위해 이제 곧 개입하려는 하나님을 잘 알고 있는데, 그것은 상호 협력하는 봉사를 통하여 그분은 바울에게 속하고 바울은 그분께 속했기 때문이다. 바울 자신도 봉사의 멍에를 멨으며, 자신과 함께 멍에를 멘 예수와 친밀한 교제를 나눠왔다(참조 마 11:28~30; 롬 1:9; 딤후 1:3, 12).
사자. 문자적으로 “한 천사.”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천사의 개입에 대해서는 행 5:19; 8:26; 12:7; 히 1:13, 14을 참조하라.
내 곁에 서서. 바울은 천사가 예루살렘의 감방으로 그를 방문했던 것을 기억했다. 그때 천사는 그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23:11).
24. 두려워 말라. 하늘의 방문자들이 얼마나 자주 이 말을 가지고 사람들을 찾아왔는가(참조 눅 1:13, 30; 2:10; 계 1:17).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이 약속(23:11)이 처음 주어진 이후 사도를 지탱해 온 그 약속을 새로이 한 것으로, 바울은 시련을 안전하게 통과하여 마침내 로마에 도착할 것이었다.
네게 주셨다.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그에게 허락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위기의 때에 바울은 자주 기도했음에 틀림없다.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은 이제 그들과 함께 여행하는 이 사람이 보통 죄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바울과 그의 그리스도인 동료들은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고후 2:16; 참조 창 18:23~32; 마 5:13)임이 입증되었다.
25. 나는…하나님을 믿노라. 상황이 위험해지고 희망이 없어질수록 바울의 믿음은 강해졌다. 배의 견고성이나 선장과 선원의 기술에 대한 신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참조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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