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사도행전 연구 2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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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8:16-31

[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17]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18]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19]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20]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21]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22]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29] (없음)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내용 요약

바울은 마침내 로마에 이릅니다. 소식을 듣고 마중 나온 형제들로 인해 바울은 담대한 마음을 얻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군인 한 명과 함께 따로 있게 됩니다.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해 자신이 쇠사슬에 매인 이유를 설명 하였습니다.또한 바울은 로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셋집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살면서 열심히 복음을 전파합니다.

 

궁정의 관심이 그리스도교로 이끌린 것은 바울의 설교가 아닌, 그의 속박이었다. 그가 매우 많은 영혼들에게서 죄악의 노예 생활 가운데 붙들어 매여져 있는 속박을 끊어 준 것은 그가 포로 되어 있을 때였다.(행적464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2. 당신은 일을 할 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중 어느 쪽을 더 비중 있게 생각하나요?

  3. 셋방에 살아 본 경험이 있습니까? 주로 그 공간에 자주 온 사람은 누구이며, 같이 무엇을 했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바울이 죄수가 된 이유는 이스라엘의 소망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소망이란 무엇일까요?(20)

  2. 바울이 강론 한 2가지 무엇인가요?(23)

  3. 바울의 가르침에 대한 반응은 어떠하였나요. 16:15-16을 연관해보세요?(24)

  4. 1:828:26-28을 연계해서 사도행전을 정리해봅시다.

  5. 바울의 선교센터는 어디였는가? 로마에서 전도방법은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는가?(29-31)

28장 그 이후......                                                 

  1. 로마에서 재판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행적, 478)
    * 바울에 대한 비난은 지지를 받지 못하였고 네로는 일반의 기대와는 반대로, 그의 품성과도 전혀 모순되게 공의를 존중하여 죄수에게 무죄를 선언하였다. (행적, 478)

  2. 석방된 다음 바울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바울은 곧 로마를 떠났다. (A.D. 63) 만일 일년만 지체되었더라도 A.D. 64719일 네로가 로마시에 불지른 사건후의 대대적인 기독교 핍박으로 바울은 목숨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이 최후의 자유의 기간을 그는 부지런히 교회들 중에서 수고하는 일로 이용하였다.” (행적, 478)
    그는 이 기간동안 여러 지역들을 다시 여행하면서 교회들을 위해서 수고하였고 디도서, 디모데전후서 등의 목회서신들을 기록하였다.

  3. 바울은 왜 다시 투옥되었습니까? (딤후4:6)
    * 그러나 로마의 대 화재 이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대박해가 시작되고 그 핍박의 여파는 바울에게까지 덮쳐왔다. 바울은 다시 체포되었다.
    로마에 도착하자 바울은 침침한 토굴 속에 갇혔으며 생애가 마칠 때까지 거기 머물러야 하였다. 그 도시와 국가에 대한 가장 비열하고 가장 무서운 범죄 가운데 하나를 선동하였다는 고소를 당한 바울은 만민의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 (행적, 481)

  4. 바울의 마지막은 어떠했습니까? (딤후1:12)
    * A.D.35년 어느 날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거꾸러진 후 그는 오직 십자가만 바라보고 십자가만 말하여 살아왔다. 그는 불덩어리였다. 견딜 수 없는 뜨거운 복음의 불덩어리였다. 그는 로마시민이기 때문에 십자가의 형벌대신 칼로 목베임을 당하였다.

 

* “사도는 불확실이나 두려움으로서가 아니요 즐거운 희망과 사모하는 기대를 가지고 위대한 내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순교의 장소에 설 때에 형리의 검이나 곧 그의 피를 받을 땅을 보지 아니하고 그 여름날의 조용하고 푸른 하늘을 통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았다.” (행적, 502)

사도행전을 마친 것을 축하합니다. 이제는 여러분의 사도행전 29장을 써보세요!!!


16. 로마에 들어가니.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을 읽는 독자는 바울이 로마에서 겪은 일을 좀 더 완전하게 기술하였기를 간절히 바란다. 누가가 추가 사항을 덧붙여, 바울의 도착을 기점으로 또 다른 책을 기술하려고 했던 것 같다.

자기를 지키는. 자기를 감시하는. 그 군인은 바울과 자신의 손목을 묶은 쇠사슬에 함께 매여 있었을 것이다(참조 20). 로마에 투옥되어 있는 동안 기록한 편지서에서 바울은 이 쇠사슬을 자주 언급한다(6:20; 1:7, 13, 14, 16; 4:3, 18; 참조 행 28:20). 사도 바울과 쇠사슬로 묶여 지내는 이방인 군인에게 어떤 영향이 미쳤을까? 우리 중 한 사람과 그렇게 쇠사슬로 묶여진 이방인이라면 어떤 영향을 받을까? 경비병이 자주 바뀌었을 것이므로 투옥돼 있는 이태 동안 바울의 생애가 경비병들의 전 군단에 널리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참조 빌 1:13 주석).

따로 있게. 투옥될 때 바울에게 베풀어진 배려는, 바울이 로마에 도착할 당시에도 계속 그를 지키고 있던 백부장 율리오의 덕분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멜리데 섬에 성공적으로 비상 상륙을 하는 데 큰 역할을 수행했으며, 따라서 이는 다른 증거들과 더불어 지혜와 영적 능력이 두드러진 그의 고매한 인격에 백부장이 호감과 감사의 마음을 갖도록 했다. 이것은 분명 베스도로부터 온 사건 진술서와 함께 바울에 대한 보고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17. 사흘 후에. 바울은 우선 다른 곳에서 만나 이미 알고 있던 그리스도인들과 재회하고 로마 신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친구도 사귀었음이 분명하다. 그 후에 그는 비그리스도인인 로마의 유대인을 만나고자 했다.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 바울의 규칙은 언제나 첫째는 유대인에게요였다(1:16; 2:9; 참조 행 13:5, 14, 46; 17:1, 2, 10; 18:4 ). 그는 그가 어떻게 로마로 오게 되었는지 직접적인 설명을 하기 위해 유대인 장로들을 초청한다. 모든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하라는 글라우디오의 칙령(18:2)이 해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성배척. 바울이 당면했던 어려움은 비시디아 안디옥(13:50), 루스드라(14:19), 데살로니가(17:5~8), 베뢰아(17:13, 14) 그리고 고린도(18:12~17)에서처럼 언제나 유대인들 때문에 생겼다.

조상의 규모. 바울은 그가 가르치는 바가 진정으로 유대교의 진리를 올바르게 해석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믿었다(참조 23:1, 6; 24:14~16; 26:5~7). 스데반에게 돌려진 비난과 비교하라(6:13, 14).

일이 없는데. 바울은 이미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에서 했던 무죄에 대한 해명을 반복한다.

죄수로 내어 준바. 바울은 예루살렘 폭동(21:27~36)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 자세히 말하지 않고, 굴욕적이고 낙담되는 결과만을 지적하였다. 지난 이태 이상 동안 그는 로마인의 죄수로 속박되어 있었다. 그는 유대인 때문에 구속되었으며, 그들의 지속적인 고소 때문에 죄수로 있었다.

 

18. 나를놓으려 하였으나. 나를 자유롭게 하다.” 25:25; 26:32과 비교하라. 만약 벨릭스가 희망한 대로 뇌물을 주었다면, 그 부패한 총독은 틀림없이 바울을 석방했을 것이다(24:26). 바울 앞에 서 있던 모든 관리와 수비대 대장들은 그의 무죄를 확신했다.

 

19. 송사하려는 . 바울은 유대 민족을 사랑했으며(참조 롬 9:1~3; 10:1), 그들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고 해서 그 사랑이 감소하지 않았다. 그가 당한 부당한 대접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대인들을 비난하지도 않았고 고소한 적도 없다. 그가 가이사에게 호소한 이유는 로마나 다른 곳에 있는 유대인에게 어려움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20. 너희를청하였노니. 바울은 회당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유대인들을 찾아갈 수 없었으나, 습관대로 우선 그들과 이해의 기초를 쌓고자 했다. 그래서 바울이 그들에게 오라고 초청한 것이다(참조 17절 주석).

이스라엘의 소망. 즉 메시야에 대한 기대. 바울은 예수가 이 기대의 완전한 성취라고 믿었다. 그의 믿음은 모든 유대인들도 가졌던 믿음이다. 그들의 그 믿음을 나사렛 예수에게 적용시키는 것이 바울에게 유일한 관건이었다.

이 쇠사슬에 매인 바. 그가 구속된 것은 사실상 유대교에 대한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소망을 포기하기보다 속박당하기를 선택했다.

 

21.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바울이 가이사에게 호소한 이후 가이사랴를 떠난 어떤 배도 그가 로마에 도착하기 이전에 로마에 도착할 가능성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울에 대한 선입견에 물들지 않았다. 누가는 바울이 로마에서 보낸 이태(30) 동안 바울을 대적하는 편지가 예루살렘에서 왔다거나 유대인 지도자들이 그를 대적하여 취했음직한 다른 조치(참조 사도행적, 453)가 있었다는 암시를 하지 않는다.

 

22. 우리가듣고자 하노니. 이 허심탄회한 고백은 매우 진지했던 것 같다. 로마의 유대인들은 바울과 그의 기별을 조금밖에 듣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좀 더 듣기를 바랐다.

반대를 받는 . 유대인들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좋지 않은 평판이 나돌고 있었다. 타키투스는 이 새로운 분파에 대해 가장 심하게 비난하는 기록을 남겼으며(Annals xv. 44), 수에토니우스(Nero xvi. 2)도 그와 동일하게 정죄하였다. 유스티노스 마르튀로스(AD 165년 사망)는 유대인의 자료(Dialogue With Trypho 17)에서 나온 것이 분명한, 그리스도인을 대적하는 비방에 대하여 말한다. 아마도 로마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연관된 여러 상황과 그들의 악한 성향에 대한 소문뿐만 아니라 놀라운 수적 증가에 대해서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로마의 유대인들은 그렇게 철저히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편견을 갖게 할 만한 것을 아무것도 듣지 못했으므로 바울에게 좀 더 듣고 싶어했다.

우리가 . 로마에는 이미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고(참조 15절 주석), 그들을 통하여 제한된 지식이 그곳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전해졌음이 분명하다. 또한 유대에서 돌아온 순례자들이 전한 소식 또는 적어도 소문들이 나돌고 있었을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유대인들 중 어떤 이들은 완고하게 복음에 저항했고 어떤 이들은 진리의 말을 좀 더 갈망했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이유들로 유대인들은 하루 종일 남아 있었다.

강론하여. 바울은 속박되어 있었으나 여전히 유대인 청중들에게 전도할 수 있었다. 이것은 스데반이 제시한 것(7:2~53)과 비시디아 안디옥(13:14~41)에서 바울 자신이 한 설교(13:14~41)에 견줄 만한, 신중하게 연구한 신학적 발표였을 것이다.

증거하고. 그는 예수 안에서 체현된 메시야 소망과 그리스도의 재림의 확실성을 증거하였다.

 

24. 믿는 사람도 있고. 바울의 전도에 대한 통상적인 반응이다(참조 14:4; 17:4; 19:9). 사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 전도자의 경험이다. 각자의 양심은 자유롭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믿는 사람들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음을 인해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25. 맞지 아니하여. 어떤 이들은 사두개인에게, 어떤 이들은 바리새인에게 더 호감을 가졌다(참조 23:6~10).

너희 조상들에게.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조상들을 따르기로 확정했다. 바울은 여기서 그 동일한 조상들이 그들이 지금 나타내고 있는 불신을 책망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라고 촉구한다(참조 눅 16:31; 8:39, 56 주석).

 

26. 일렀으되. 바울은 예수가 유대인을 꾸짖기 위해 직접 사용한(13:14; 4:12; 8:10; 12:40) 6:9을 인용한다.

들어도. 구약의 이 성경절에 대한 설명을 보려면 사 6:9, 10; 7:21~27의 주석을 참조하라.

 

27. 돌아와. 문자적으로 다시 돈다”(참조 마 3:2; 2:38; 3:19, 20 주석).

 

28. 하나님의 이 구원을.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구원(참조 마 1:21 주석).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바울은 특별히 듣기를거절한 유대인(참조 24~26절 주석)들에게 말한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거절하자 바울은 이방인에게로 향했다.

 

30. 온 이태. 누가가 이 두 해 동안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하고 싶지 않았거나 이 일에 성령의 지도가 없었던 것 같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보완하기 위하여 세 번째 책을 쓸 계획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두 해에 대한 유일한 정보는 일반적으로 이 기간에 로마에서 써 보낸 것으로 생각되는 소위 네 권의 옥중서신 즉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에서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바울이 심리적으로 그리고 신체적으로 투옥의 부담에 눌렸음을 안다(3:1; 4:1; 1:16; 4:18; 1, 9, 10). 그는 재판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염려했다(2:23, 24). 에베소에 편지를 전달한 두기고(6:21)와 빌립보(1:1), 골로새(1:1) 그리고 개종한 노예 주인 빌레몬(1)에게 보내는 편지에 바울과 함께 그 이름이 나오는 디모데와 아울러 누가와 아리스다고(27:2)도 그와 함께 있었다. 에바브로 디도는 빌립보에서 바울에게 물질적 도움이 될 것들을 가져왔다(4:18). 주인 빌레몬에게서 도망친 오네시모는 로마에 있는 동안 바울을 알게 되었다(4:9; 10). 바나바의 친척 마가, 유스도라 불린 개심자 예수, 골로새에서 온 에바브라도 바울과 함께 있었다(4:10~12). 데마도 거기에 있었다(4:14; 참조 딤후 4:10). 바울은 비록 죄수였으나 이 두 해 동안 복음에 대한 그의 증거는 매우 효과적이어서 투옥의 끝이 가까워 올 즈음에 그는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1:12)라고 선언할 수 있었다.

자기 셋집. 바울이 더 이상 개인적 비용을 손수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에 로마의 친구들이나 다른 곳, 특히 빌립보(4:18)에서 재정적 도움이 왔을 것이다.

오는 사람을 다. 바울은 자유롭게 교제하였다.

담대. 문자적으로 거리낌없음”, “두려움 없는 확신”, “용기 충천.”

 

31. 하나님 나라. 초기부터 그리스도교 기별에는 천국,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념이 있었다(3:2; 1:14).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 이것이 바울의 모든 대화의 중심 영역이었다.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황제, 호민관, 경비병은 물론 유대인도 바울이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 전도자는 구금되어 있었으나 복음 기별은 그렇지 않았다.

이로써 초기교회의 성경 역사가 끝난다. 누가가 그 외에 더 기록했다고 해도 현존하지 않으며, 바울의 석방 이후와 두 번째 투옥과 죽음에 대해서는 목회서신이라 불리는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교의 전승에서 약간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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