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서론, 누가복음 연구 1.pdf
1.00MB

눅 1:1-4

[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

 

그 시대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 그의 원고를 누구에게 보내어서 검토를 하게하고 비판을 받는 것이 관례였다. 누가는 그가 신임하던 데오빌로를 택하여 이 중대한 일을 하게 하였다. 누가는 맨 먼저 누가복음에 있는 예수님의 생애의 기록으로 데오빌로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 누가복음 역시도 그가 데오빌로에게 보낸 글이었다(행1:1-5인용). …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원고들과 책들로 보존되어야 했다(원고 40, 1903)

 

은 책 한 권이 있다. 그것만 공부하면 영어가 마스터 된다고 한다.

번 도전해 보겠는가?

 

본문연구

  1. 누가는 누구인가? 또 어떤 사람이었나?
    4:14, 딤후 4:11, 1:24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cf. 누가라는 이름은 라틴어 lukaus라는 말에서 유래했는데, 그 뜻은 빛을 전달함이다.

  2. 1절에서 이루어진 사실즉 이미 발생한 사실이나 그것에 관한 기록을 2절에서는 무엇 이라고 표현하는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 2절에서 말씀”(.logos)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1:1-3, 14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cf. 4절의 배운 바의 원어는 말씀과 동일한 "logos"이다.

  4. 저자인 누가가 복음서를 기록하기 위하여 한 노력은 무엇이었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토의사항                                                 

  1. 1절에서 사실이란 표현은 왜 중요할까? 누가가 말하는 사실과 비슷한 의미를 지닌 표 현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2. 누가의 모본처럼 우리도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노력들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 을지 서로 발표해보자.

 

가는 그의 복음서 기록 목적이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1:4)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그와 그의 복음서에 영감을 더하신 성령을 신뢰하면서 읽고 연구한다면, 복음의 진리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될 것이다. 시도해 보겠는가?

 

“마태복음이 일차적으로 유대인 독자들을 위하여, 마가복음은 라틴어 배경을 가진 자들을 위하여 기록된 것으로 생각된다. 누가의 어투는 그가 당시의 교양 있고 교육 받은 사람들을 향하여 기록한 것임을 암시한다. 그는 분명히 당시의 문학적 양식에 익숙해 있던 지성과 교양을 겸비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붙인 서문들, 여러 관리들의 재임 연도에 따라 사건들의 연대를 매긴 일, 그리고 그가 의존한 정보들의 출처의 사용 및 언급 방법 등에 의하여 분명하게 나타난다.”

1번 보충자료

유세비우스는 누가가 민족으로는 안디옥 사람이요, 직업은 의사였다고 기술하였다. 추측컨대, 그는 안디옥 출신이었으며, 어떤 이들은 그가 복음서를 기록한 곳도 그곳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 다른 이들은 기록 장소가 로마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누가와 바울은 신약의 가장 많은 분량을 기록한 기고가(寄稿家)이다. 누가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전설에 의하면 그가 헬라에서 순교를 당할 때에 살아 있는 감람나무에 못박혀 죽었다고 한다. 4:11~14의 문맥에 의하면, 누가는 할례당 가운데 포함되지 않고, 이방인으로 알려진 사람들과 함께 명단에 올라 있으므로,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기독교의 기원과 초기 발전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는 한 작품의 제1부와 제2부로 간주될 수 있다. 사도행전의 서두(1:1)는 두 책의 저자가 동일인임을 명백하게 가리켜 보여 주고 있다. 문체와 어투도 현저한 동일성을 나타내고 있다. 두 책 모두 같은 사람인 데오빌로(참조 1:3 주석)에게 헌정(獻呈)되고 있다. 사도행전의 어떤 부분에서는 저자가 우리라는 인칭 대명사를 쓰고 있는데, 이는 그가 바울의 측근으로서 바울의 후기 봉사에 동참했음을 말해 준다. 드로아로부터 저자는 헬라 지방의 개척 전도 기간에 바울과 동행했고(16:10~18),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마지막 방문에도 동행했고(20:5~21:18), 로마로 가는 여행에도 동행한(27:1~18:16) 것으로 나타난다. 4:14과 몬 23, 24에서 바울의 동역자로서 누가는 그 편지들이 전달되는 자들에게 문안을 보낸다. 로마에서의 그의 마지막 투옥 기간이 끝날 무렵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오직 누가만이 나와 함께 있(딤후 4:11)고 했다. 그 사도의 다른 동역자들은 다른 교회들에 파견되었거나 그를 배반하여 떠나갔다. 그의 생애의 마지막 날들의 암운(暗雲) 가운데서, 바울은 사랑받는 의사와 같은 사람의 부드럽고도 유능한 봉사에 대해 한없는 감사를 느꼈음에 틀림이 없다. 바로 이 사람이 사도행전과 그의 이름이 붙어 있는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임이 틀림없어 보인다.”(성경주석, )

 

(4:14)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딤후 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3번 보충자료

(1:1,2,3,14)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가능한 질문에 대한 답

 

2. 처음부터. 즉 예수의 공중 봉사가 시작될 때부터. 그러나 목격자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침례자 요한과 예수의 유아기에 관계된 상황을 보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목격자. 헬라어 아우톱타이(autoptai). “자신의 눈으로 본 사람.” 요한은 자신을 목격자로 언급했다(1:14; 21:24; 요일 1:1, 2). 열두 사도, 70명의 제자 그리고 예수와 제자들을 따라다니며 섬기던 모든 여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처음부터목격자(eyewitness)였다. 반면 누가, 바울, 디모데는 귀로 들은 증인”(ear-witness)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예수의 생애와 봉사에 관한 그들의 지식이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결함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들은 지식의 목격자일 뿐만 아니라 거룩한 계시의 가르침을 통해 받았기 때문에(고전 15:3~7; 1:11, 12) 그들의 증거의 가치를 조금도 감소시키지 않는다.

여기서 누가가 보여 준 겸손은 그의 이름이 붙은 복음서의 신빙성과 타당성을 뒷받침해 주는 탁월한 증거이다. 그는 정확한 진리를 진술하기 위해 조심하면서, 날조자들이 늘 그렇게 하는 것과는 달리 자신이 목격자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사실 누가는 여기서 그리스도의 생애와 봉사에 관한 자신의 이해가 본래 목격자들의 이야기에서 유래되었음을 분명하게 진술한다. 그러므로 누가의 경우 영감의 역할은 본래의 지식을 나누어 주는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듣고 자신이 기록한 것의 정확성을 보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누가가 원자료(原資料)를 접했던 역사가인 것은 사실이나 그 이상으로 그는 영감받은 역사가였다.

 

내력. 헬라어 디에게시스(die-ge-sis). “사화”(史話). 두 개의 헬라어 단어로 구성되어 있는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 길을 인도한다”(lead the way through)라는 뜻이 있다.

 

저술하려고. 헬라어 아나탓소마이(anatas-somai). “편찬하다”, “정리하다”, “작문하다.” 이 말은 굳이 연대적인 배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헬라어 파쎄크세스(pathexe-s, 참조 3절 주석)와 비교해 보라. 이 용어들은 이전 복음서 기자들이 기록한 이야기들이 불충분하다는 것을 나타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부정확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붓을 든. 헬라어 에피케이레오(epicheireo-). 문자적으로 손을 대다를 뜻하고, 따라서 착수하다또는 시도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어떤 주석가들은 누가의 이 진술을, 그가 언급하고 있는 필자들이 성령의 인도 없이 자의로 기록했음을 암시하는 말로 이해한다. 그러나 파피루스에 나타난 에피케이레오의 용례들에 비춰볼 때, 분명 그런 결론은 부당하며 누가도 이전의 필자들에게 어떤 비난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의도는 적절했으며, 따라서 누가와는 달리 전적으로 거룩한 영감을 받지는 못했지만 역사적 자료로서 그들의 기록을 배격해서는 안 된다. 누가는 이 필자들을 지지하는 관점에서 보고 있으며, 사실은 나도”(3)라고 표현함으로써 자신을 그들과 같은 부류에 넣고 있다.

 

많은지라. 누가가 많은지라라는 언급에 마태와 마가를 포함시켰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볼 때 적어도 마가복음은 이미 기록되었고 마태복음도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많은지라라는 표현은 둘 이상을 뜻하므로 이 말에는 복음서 이외의 다른 기록된 역사가 포함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누가가 오늘날 존재하는 외경 복음서를 염두에 두었다고 볼 수 없는 것은 그것들이 오랜 후에야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전 기록자들 중 얼마는 자신들이 기록한 것에 대한 목격자들이었으며, 열두 제자나 70인의 무리에 속할 수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참조 2절 주석).

 

3. 근원부터. 즉 예수의 생애의 근원부터.” 마치 탐험가처럼 누가는 사건의 흐름을 그 발단까지 추적해 올라가 그 흐름의 과정을 철저하게 따라 내려갔다. 따라서 누가는 다른 복음서 기자들보다 훨씬 상세하게 예수의 탄생과 어린 시절의 배경을 제시한다. 음서에 언급된 예수 탄생 이전에 있었던 여섯 개의 사건 중 다섯 개를 누가가 기록하고 있다.

 

자세히 미루어 살핀. 문자적으로 정확하게 뒤를 따라가다.” 누가가 복음서를 기록한 두 번째 이유는 예수의 생애와 교훈에 대한 자신의 깊은 연구에서 얻은 유익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누가는 근원부터 시작했으며 모든 것을 조사하였다. 그는 자기의 복음서 기록에서 예수의 이야기를 정확하고 철저하고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이는 진지한 학자들의 특징이다. 마태는 예수의 가르침을 강조하고 마가는 예수의 봉사에 나타난 사건들을 강조하는 반면, 누가는 어느 누구보다 이 두 가지 요소를 더욱 완전하고 체계적으로 결합시킨다. “그 모든 일을자세히 미루어 살핀다는 누가의 주장은 근거 없는 자랑이 아니다. 공관복음 이야기 179가지 중 43가지가 누가복음에만 나타난다.

 

데오빌로.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의 친구.” 데오빌로라는 이름이 어떤 사람을 지칭하기보다는 누가가 그리스도인 전체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했다는 보편적인 주장을 지지해 주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각하라는 호칭은 이 사람이 실제 인물이었음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데오빌로(Theophilus)는 그의 헬라식 이름이 시사하는 대로 개종한 이방인이었을 것이다.

 

각하. 흔히 정부의 고관에게 사용되는 호칭이다. 동일한 용어가 유대의 로마 총독들에게 사용되었다(23:26; 24:3; 26:25). 이렇게 초기에 정부 고위직에 있는 것이 확실한 인사가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차례대로. 헬라어 카쎄크세스(kathexes). “잇따라서또는 연속적으로”(참조 2절 주석). 마태는 예수의 강화(講話)들을 주로 주제별로 정리한 반면, 마가는 예수의 생애의 사건들을 종류대로 모아서 다뤘다. 마태와 마가는 전반적으로 연대순으로 배열했지만 연대적으로 순서를 맞추는 것이 그들의 주목적은 아니다. 그들은 여러 사건을 자신들의 복음서가 지향하는 목적에 조화되도록 재배열하였다. 반면에 누가는 좀 더 정확한 연대순을 따른다. 마태와 마가는 정확하게 연대순으로 배열하려고 하지 않았다.

 

좋은 줄 알았노니. 전에 많은사람이 쓴 이야기에는 빠져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사건들을 기록할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완전하고 정확하며 믿을 만한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기사를 기록하는 것이 누가에게 적절해 보였던 것 같다(참조 2절 주석). 이 말에는 적어도 어떤 성경 기자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영감의 기록을 준비한 방법이 나타나 있다. 성령에 의해 누가의 마음에 전달된 감동은 그에게 적절하고 바람직하게 보이는 어떤 행동 노선을 정하는 일에 영향을 주었다. 누가는 이방인을 그리스도교회 안으로 받아들이는 일의 여부를 숙의하던 예루살렘 총회에 관해 기록하면서 안디옥의 신자들에게 그들의 행동 노선이 가하다”(참조 행 15:25)고 쓴 사도들의 편지를 인용한다. 형제들이 함께 모여 논의했으나, 그들의 생각은 성령의 지도를 받았다. 따라서 그들은 성령과 우리는가한 줄 알았노니”(28)라고 확신 있게 설명했다. 누가복음도 마찬가지다. 성령이 누가에게 기록하도록 강권했지만, 기록할 때는 하나님의 지도를 받아 자유 의지를 가지고 기록하였다.

 

4. 배운 바. 이 단어는 데오빌로가 그때까지는 침례 전에 있었을지도 모르며 그가 구두 교육만 받았다는 사실을 나타낼 수 있다. 그는 누가가 가르쳐서 개종한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아니면 누가가 기독교에 대한 그릇된 보도에 대처하기 위해 이것들을 기록했을 가능성도 있다.

 

확실함. 헬라어 아스팔레이아(asphaleia). “비틀거리다”, “떨어지다를 뜻하는 스팔로(sphallo-)아니다를 뜻하는 부정접두어 아(a)가 결합된 단어로서 떨어지지 않는 것을 뜻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사실들에는 확실함이 있으며, 따라서 이것들을 믿는 사람들은 견고하고 안전하여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알게 하려 함. 헬라어 에피기노스코(epi- gino-sko-). “충분히 알다.” 데오빌로는 이미 배운것들에 부가하여 충분한 지식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