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재림교회의 시각
그리스도의 인성론과 관련된 엘렌 화잇의 진술에 대한 역사적 분석
한국연합회 성경연구소
- 문제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하여 엘렌 G. 화잇이 상충돼 보이는 진술을 한 것 때문에 논란이 있어 왔다. 예컨대, 그녀는 1896년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된 본성(sinful nature)을 취하셨다.”(The Review and Herald, Dec. 15, 1896, 789)라고 썼다. 1900년에는 다시 “그분은 죄로 인해 퇴화되고 오염되고 타락한 고통당하는 인성을 취하다.”(Youth's Instructor, Dec. 20, 1900, 394)라고 기록했다. 이런 진술들은 그리스도께서 무죄한 인성을 취하셨다고 말하는 다른 진술들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 그리스도의 “무죄한 인성(sinless human nature)”이라는 표현의 두 가지 가능성 있는 의미
교회의 한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무죄한 인성을 취하셨”음을 나타내는 진술을, 그분께서 인성을 입으시고 죄를 짓지 않았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인성에 있어서 “무죄한 존재”였다고 진술하거나 암시하는 엘렌 화잇의 구절들이 이런 해석을 지지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무죄한 인성”을 취하셨다고 말할 때 그 분께서 인성을 입으시고도 죄를 범하지 않는 삶을 사셨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해도 도움은 되지만, 이것이 모두는 아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무죄한 인성을 취하셨”다고 주장하는 진술에는 이것 말고 다른 의미도 들어 있다. 즉 그분께서 인성을 입고 계시는 동안 이 땅에서 죄를 짓지 않으셨다는 말도 되지만, 그분께서는 죄로 기우는 성향을 갖지 않으셨다는 점에서 다른 인간 존재들과는 다른 인성을 취하셨음을 의미할 수 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죄로 기우는 성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죄된 인성 (sinful human nature)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죄로 기우는 성향이 없는, 곧 “무죄한 인성”을 갖고 계셨다는 점에서는 나머지 모든 인류와 달랐다. 재림교인들은 전통적으로 두 번째 관점에 비추어 “죄 된”(sinful)과 “무죄한”(sinless)이라는 말을 이해해 왔다. - 왜 이렇게 이해해 왔는가?
일반적으로 칼뱅주의의 신학적 유산을 받아들이는 근본주의 개신교인들은, 재림교인들이 그리스도께서 “죄된 인성”을 가지고 성육하셨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재림교회를 이단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재림교인들에 대한 이들의 강한 반감은, 만일 예수께서 죄 된 인성을 가지셨다면 필연적으로 그분도 죄인일 수밖에 없다고 굳게 믿는 데서 비롯되었다. 또한 그들은 만일 그리스도께서 죄인이셨다면 우리에게는 구세주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그런 칼뱅주의 신학자들이 1950년대 초에 재림교회 신학을 조사하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생긴 질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과연 그리스도께서 성육하셨을 때 죄되고 타락한(sinful, fallen) 인성을 취했는가?”였(Our Hope, Nov. 1956, 275). 이런 개신교 신학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죄된 인성을 취하셨다는 말은 곧 그분이 죄인이셨다는 말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시 재림교회 신학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죄된 인성을 가지셨다고 말하는 엘렌 화잇의 진술들을 제시하기를 회피하고 그분께서 무죄한 인성을 취했다고 그녀가 주장했다는 인상을 남기려 한 것은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니라고 본다.
1950년대 초에 그런 개신교회 신학자들[무죄한 본성]과 재림교회[죄된 본성]가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하여 전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이런 입장들에 비춰 볼 때, 당시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문제가 재림교회 신학자들이 맞닥뜨린 문제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었다. 불행히도 당시 재림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하여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제기한 신학적 도전에 대처할 신학적 선택 사안이 많지 않았다. 재림교인들에게 그 질문에 답변할 단 한 가지 방법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아담의 타락 이전과 같았는가 아니면 타락 이후와 같았는가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뿐이었다. 첫 번째를 선택하면 성육하신 그리스도가 다른 인간들과는 달라서 그들의 모본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격이 되고, 반면 두 번째를 선택하면 말 그대로 그리스도가 죄된 본성을 갖게 되어 죄인이 되고 우리의 구세주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셈이 되었다. 당시 재림교인들은 이런 곤경에 대한 해답으로,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제3의 견해를 보지 못했다. 그 결과, 당시 재림교회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엘렌 화잇의 진술 가운데 어떤 것들을 피하려는 유혹을 받아 한쪽으로 치우친 진술들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복음주의 신학자들과는 화목을 가져왔으나 재림교인 내에서는 불화가 생겼다. - 이 주제가 재림교인들에게 왜 그렇게 중요했는가?
어떤 재림교인들이 왜 이런 상황에 대하여 강하게 반응했는가를 이해하기 위하여 재림교회 의 그리스도의 인성론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주제가 1890년대까지는 재림교회 내에서 신학적 쟁점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도 다른 보통 아이들처럼 “죄된 경향”(sinful tendency)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한 확실한 첫 번째 진술은 1889년에 E. J. 왜 거너(E. J. Waggoner)가 한 것이었다(참조 Signs of the Times, Jan. 21, 1889, 39). 이런 가르침은 1895년에 와서 왜거너, A. T. 존스(A. T. Jones), W. W. 프레스코트(W. W. Prescott) 등의 가르침에서 중심기별이 되었다. 그해에 있었던 대총회 회기에서 존스는 이렇게 가르쳤다. “그리스도의 본성은 우리의 본성과 똑같다.” “그분의 인성으로 말하면 그분과 여러분 사이에 일점도 차이가 없다.” “육신 안에 있는 죄로 기우는 모든 경향이 그분의 인간 육신 안에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경향 가운데 하나도 나타나도록 허락되지 않았고, 그 것들 모두를 정복하다.”(General Conference Bulletin, 1895, 231, 233, 267).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같은 본성을 가지고 계셨는데도 죄 없는 생애를 사셨다면 다른 인간 존재들, 특히 마지막 세대의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이런 주장의 주된 논리였다(참조 General Conference Bulletin, 1897, 279; 1895, 303; E. J. Waggoner, The Everlasting Covenant [London: International Tract Society, 1900], 366).
그리스도께서 아담의 후손과 동일하게 죄로 기우는 성향을 갖고 계셨다는 의미로 그분이 “죄된 본성”을 지녔다는 가르침은 20세기 전반에 많은 재림교인들의 신앙이 되었다. 당시 이런 가르침은 출판된 문서들을 통해서 더 이상 논쟁할 필요가 없을 만큼 널리 용인되었다. 그것은 자명한 사실처럼 받아들여졌고, M. L. 앤드리어슨이 그의 ‘마지막 세대 신학’[완전주의 신학]을 구축한 것도 바로 이런 가르침에 기초된 것이었다.
앤드리어슨에 의하면, 마지막 세대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을 그대로 이뤄야 할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마지막 세대는 그리스도처럼 죄 없는 완전한 생애를 사는 것이 가능함을 우주 앞에 확증해야 할 것이었다(참조 M. L. Andreasen, The Book of Hebrews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1948], 58-60; The Sanctuary Service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1947], 299-321). 이런 완전한 생애를 이룰 수 있다는 가르침은 우리의 모본이신 그 리스도께서도 아담의 다른 후손들과 똑같이 죄된 성향을 갖고 계셨다는 사상에 기초되었다. 앤드리어슨의 관점에서 본다면, 마지막 세대에 의한 이런 확증으로 사탄은 패배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도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이 확증에 의존해야 하고, 이것이 없이는 대쟁투도 끝날 수 없다(참조 The Sanctuary Service, 299, 303, 304, 310, 312, 315, 318, 319, 321).
1940년대에 와서 앤드리어슨은 재림교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가 되었고, 그의 ‘마지막 세대 신학’을 재림교인의 대다수가 받아들였다.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이 신학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아담의 타락한 후손과 똑같다는 믿음에 기초된 것이었다. 그분은 일반적인 의미의 죄된 인성을 지니셨을 뿐 아니라 죄된 성향도 소유하고 계셨다는 것이다. 즉 그분은 타락 후의 아담의 본성과 똑같은 본성을 지니신 것으로 여겨졌다.
바로 이런 역사적 상황에서, 1950년대 초에 재림교회 신학자들이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만났고 재림교회의 교리적 신조들을 놓고 대화를 하게 된 것이다. - 재림교회 역사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두 흐름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제시한 이런 질문들에 대한 재림교회 신학자들의 답변이 <재림교회의 교리에 대한 질문과 답변(Seventh-day Adventists Answer Questions on Doctrine, QOD)>이라 는 책으로 1957년 가을에 출판되었다. 이 책의 출판으로 야기된 불협화음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역사적 배경을 아는 게 중요하다. 1890년대 이후로 재림교회 내에는 그리스도의 인성의 이해에 관한 매우 뚜렷한 두 흐름이 있어 왔다. 하나는 드러난 해석이고 다른 것은 드러나지 않은 것이었다.
공개된 해석은 1890년대에 존스, 왜거너, 프레스코트 등이 내놓은 것이었다. 이들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기타 인간 존재들과 “털끝만큼도 다른 점”이 없이 똑같은 분으로, 우리와 동일한 죄된 성향을 가지고 계셨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런 해석이 널리 공표되었고, 대부분의 재림교인들이 인정하는 견해가 되었다.
이 주제에 대한 또 하나의 흐름은 대부분 표면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있었는데, 미간행 편지 들이나 절판된 정기간행물들에서나 논의되고 공개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두 번째 해석이 엘렌 화잇의 해석이었다. 그러나 <재림교회의 교리에 대한 질문과 답변(QOD)>이 출판되기까지는 이 주제에 대한 그녀의 진술들이 출판되지 않았다. 이 책이 출판되면서 재림 교인들은 다음과 같은 진술들을 알게 되었다. “아무도…그리스도께서 다른 아이들과 똑같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첫 번째 아담이 시작한 곳에서 시작하셨”고 첫 번째 아담과 “동일한 본성”을 갖고 계셨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사람들 앞에 죄의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제시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엘렌 화잇의 진술들은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그분은 “죄의 오염이 없이” 태어났다. “부패의 오염이나 죄로 기우는 성향이 그리스도께 있었다는 인상을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어떤 식으로든지 추호도 남기지 말라. …그리스도를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만들려는 근거를 찾는 자는 모두 경고를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절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엘렌 화잇의 이런 진술들이 1890년대 이후로도 계속 알려지고 강조되었더라면 재림교회의 신학 발전의 흐름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궁금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진술들이 1950년대 중반까지는 완전히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재림교회의 교리에 대한 질문과 답변(QOD)>이 출판되면서 모든 사람이 이런 진술들을 보게 되었다. 만일 이런 진술들을 중립 적 입장에서 제시했더라면 아마도 논증에 힘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재림교회의 교리에 대한 질문과 답변(QOD)>의 저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자료를 선별하여 제시함으로써 논란을 야기했다.
<재림교회의 교리에 대한 질문과 답변(QOD)>이 봉착한 문제는 두 가지 흐름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겐 그리스도께서 죄된 성향을 갖지 않으셨다는 견해 아니면 그분께서 타락한 인류가 지닌 모든 성향을 가진 죄된 본성을 소유하셨다는 견해 중에서 어느 한쪽을 지지해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다른 선택 사안을 보지 못했고, 죄된 성향을 가진 본성을 지지하는 견해를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이단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들은 엘렌 화잇의 진술들을 선별적으로 제시하려는 유혹을 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죄된 인성(sinful nature)을 가지셨다고 말하는 엘렌 화잇의 진술들은 회피하고 우리와 같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말하는 진술들을 제시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 이 논쟁에서의 M. L. 앤드리어슨(M. L. Andreasen)의 역할
이런 상황에서 앤드리어슨은 잠잠히 있지 않았다. 1957년 2월에 그는 속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고, 1959년에는 속죄와 그리스도의 인성 문제에 대해 염려를 표명하는 <교회에 보내는 편지(Letters to the Churches)>를 출판하였다.
이 편지에서 앤드리어슨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이 “새로운” 가르침을 결정적인 이단이라고 역설하였다. 그는 이렇게 썼다. “인간을 타락시킨 성정에서 그리스도를 면제시키는 것은 모든 이단의 절정이다. 그것은 모든 참된 경건을 파괴시키며, 구속의 계획을 완전히 무효로 만든다.”(11쪽). 그는 또 이렇게 적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성정에서 면제되었다면 그분은 여타 인간과 다르다. …그러한 가르침은…재림교회가 늘 가르치고 믿어 왔던 것에 완전히 위배된다.”(8쪽). 앤드리어슨은 이 “새로운” 가르침이 교단을 위기로 몰아갔다고 보았다. 그는 이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아무도 <증언들(Testimonies)>을 믿으면서,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된] 성정에서 면제되었다고 말하는 신(新)신학을 믿는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것은 서로 다른 것이다. 지금 교회는 [둘 중 하나를] 결정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이 새로운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은 필연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백성에게 주신 증언의 선물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게 한다.”(10쪽). 앤드리어슨이 보기에, 이것은 재림교회 신학의 “기초 기둥들”(foundation pillars) 가운데 하나가 제거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11, 18쪽). - 상호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엘렌 화잇의 진술들을 이해하는 열쇠
앤드리어슨이 보기에, 그리스도의 인성론에 대한 입장을 바꾼 것은 재림교회가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자행된 배신일 뿐이었다. 불행하게도, 자료를 인위적으로 선별하여 진실이 아닌 것을 복음주의 신학자들에게 전달한 데는 배신의 요소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리로이 프룸과 그의 동료들이 확보된 자료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인성론에 대한 교단의 기본 적인 입장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옳았지만, 이 주제에 대한 엘렌 화잇의 모든 진술에 완전히 마음을 열고 객관적으로 연구하여 그 결정적인 차이점을 복음주의 신학자들에게 어떻게 제시할 수 있는지는 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그리스도께서 죄된 인성(sinful nature)을 가졌다고 말하는 엘렌 화잇의 진술들을 <재림교회의 교리에 대한 질문과 답변(QOD)>에서 빼놓고, 그녀가 그리스도께서 무죄한 인성을 가지셨다고 주장하는 쪽만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 후 계속하여 재림교회는 논란에 휘말리게 되었다. 재림교회의 공식적인 신학은 복음주의자들에게서 인정을 얻었으나, 그 과정에서 과거 50년 넘게 치유되지 못하고 치유될 수도 없는 불화의 상처를 안게 되었다. 이 역사가 가르쳐 주는 교훈은, 사안이 아무리 불편한 것이더라도 전적으로 정직하게 열린 마음으로 모든 문제를 객관적으로 다루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50년 넘게 재림교회를 분열시킨 그리스도의 인성론 논쟁에서 가장 불행한 면은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런 일이 불필요했다는 데 있다. 이미 언급한 대로, 싸움의 진원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아담의 타락 전 인성인가 아니면 타락 후 인성인가에 있었다.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는 양편 모두 잘못되었다.
상호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엘렌 화잇의 진술을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열쇠 가운데 하나는 그녀가 평소 좋아했던 저술가가 이 주제를 어떻게 논했는지를 조사해 보는 것이다.
엘렌 G. 화잇 유산관리 위원회는 엘렌 화잇이 밑줄을 그은 표시가 남아 있는 <헨리 멜빌의 설교(Sermons by Henry Melvill)>를 소장하고 있다. 그녀의 몇몇 저술을 비교해 보면 다양한 진술들에서 상호 조화되는 점들이 드러난다. 엘렌 화잇 유산관리 위원회의 팀 프와리에(Tim Poirier)는 엘렌 화잇이 멜빌의 글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분석했다. 프와리에는, 멜빌의 설교 “인간 예수 그리스도의 비하(The Humiliation of the Man Christ Jesus)”가 상충되어 보이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엘렌 화잇의 진술들을 이해하고 조화시키는 데 특별히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멜빌에 의하면, 인간의 타락은 두 가지 기본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1) “무죄한 연약성”(innocent infirmities), (2) “죄된 성향”(sinful propensity).
프와리에는 이렇게 말한다. “멜빌에게 ‘무죄한 연약성’이란 말은 배고픔, 고통, 약함, 슬픔, 죽음 등을 의미했다. ‘전혀 죄가 아닌 죄의 결과들이 있다. 죄는 고통을 들여왔지만, 고통 자체는 죄가 아니다.’ 멜빌에게 ‘죄된 성향(sinful propensities)’이란 죄로 기우는 경향(tendency)”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 주제를 요약하면서 멜빌은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는 ‘무죄한 연약성’도 ‘죄된 성향’도 갖고 있지 않았고, 아담의 후손인 우리는 두 가지 요소 모두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리스도는 첫 번째 것[무죄한 연약성]은 취하고 두 번째 것[죄된 성향]은 취하지 않으셨다고 주장한다.”(Ministry, Dec. 1989, 7, 8).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멜빌의 이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죄된 본성 | 무죄한 연약성 | 죄된 성향 |
타락 전 아담 | x | x |
타락 후 아담 | o | o |
그리스도 | o | x |
다시 말하면, 멜빌은 성육하신 그리스도께서는 타락 전의 아담이나 죄가 들어온 후 타락한 인류와도 똑같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바로 이것이 엘렌 화잇이 지지했던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런 멜빌의 설명은, 1895년 대총회 회기 때 A. T. 존스(A. T. Jones)를 매우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그녀의 진술과 잘 맞아떨어진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연약함[멜빌이 말한 ‘무죄한 연약성’]에 있어서는 우리와 형제이셨으나 우리와 같은 성정(passions, 멜빌이 말한 ‘죄된 성향’)을 갖지는 않으셨다.”(교회증언, 2권, 202). 멜빌의 모델만이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엘렌 화잇의 모든 진술을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모델을 이해함으로써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그녀의 진술들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 된 본성(sinful nature)을 취하셨다.”(The Review and Herald, Dec. 15, 1896, 789). “그분은 죄로 인해 퇴화되고 오염된, 타락한 고통당하는 인성을 취하셨다.”(Youth's Instructor, Dec. 20, 1900, 394). “그리스도께 타락의 오염이나 타락으로 기우는 성향이 있었다거나 그분이 어떤 식으로든 타락에 굴복하셨다는 인상을 사람들 마음 가운데 추호도 남기지 말라.”(The SDA Bible Commentary, 5:1,128). “그리스도께서 다른 아이들과 똑같다고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분은 “옳은 데로 기우는 경향”을 갖고 계셨지만(Youth's Instructor, Sept. 8, 1898, 704-705), 다른 아이들은 “악으로 기우는 경향”(교육, 29)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렌 화잇과 멜빌 두 사람 모두에게, 그리스도는 타락 전 아담이나 타락 후의 아담과 똑같은 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분은 독특한(unique) 존재, 곧 그녀가 누가복음을 인용하여 칭한 날 때부터 “거룩한 자”(눅 1:35)이셨다. 누가의 진술의 이런 문맥에 비추어 엘렌 화잇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부패의 오염이나 죄로 기우는 성향이 그리스도께 있었다는 인상을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어떤 식으로든지 추호도 남기지 말라. …그리스도를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만들려는 근거를 찾는 자는 모두 경고를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절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Letter 8, 1895, To W. L. H. Baker and wife).
이런 배경에 비추어 요약하면,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엘렌 화잇의 진술 가운데 나타나는 ‘타락한 또는 죄된 본성’(fallen, sinful nature) 같은 표현은 아담이 타락 후에 얻게 된 “무죄한 연약성”과 “죄된 성향”을 모두 포함할 수 있고,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된 또는 타락한 본성”을 취하셨다고 말하는 진술들을 읽을 때 “무죄한 연약성”을 말하는지, “죄된 성향”을 말하는지를 전후 문맥 및 위에서 설명한 멜빌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에 비추어 전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20세기 전반에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엘렌 화잇의 모든 진술을 확보할 수 있었고, “무죄한 연약성”과 “죄된 성향”에 대한 헨리 멜빌과 엘렌 화잇의 공통된 견해를 1950년대에 이해했더라면 이 주제로 야기된 분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제3의 견해를 지지하는 엘렌 화잇의 진술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아기가 되신 것에 대하여 생각하면 할수록 그것은 더욱더 놀랍게 보일 것이다. 어떻게 베들레헴의 구유에 놓인 그 힘없는 아기가 여전히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그것을 다 이해할 순 없지만 세상을 창조하신 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힘없는 아기가 되셨다는 것을 믿을 순 있다. 그분은 어떤 천사보다도 더 높으신 분이며, 하늘 보좌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만큼 위대하시지만 우리와 하나가 되셨다. 그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가 되셨고, 바로 이 사실에서 타락한 인류의 소망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육신을 입으신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인성을 입으신 하나님을 보며,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곧 아버지 하나님의 형상을 본다. -The Youth's Instructor, Nov. 21, 1895.
생기발랄하게 빛나는 순진무구한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리스도께서도 여느 아이들과 같았다고 아무도 말할 수 없다. 그분은 인간의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셨다. 그분의 동무들 이 그분께 못된 일을 하라고 부추길 때 신성이 인성을 통하여 번뜩였고, 그분은 그 일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순간적으로 그분은 옳고 그름을 구분하셨으며, 죄를 하나님의 명령의 빛 안에서 보고 율법을 그릇된 일에 빛을 반사하는 거울로 높이셨다. -The Youth's Instructor, Sept. 8, 1898.
때가 찼을 때 그분은 인간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야 했다. 그분은 인간의 본성은 취하시되 그의 죄됨(sinfulness)은 취하지 않으심으로써 인류의 맨 앞자리를 취하셨다. 하늘에서, “구속 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사 59:20)라는 음성이 들렸다. -The Signs of the Times, May 29, 1901.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상태에 있는 인간의 본성은 취하셨으나 그 본성의 죄에는 추호도 동참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연약성에 지배되었는데, “이는 선지자 이사 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 신 것이다(마 8:17).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고 범사에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셨”다. 그분은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이셨다. 만일 사탄이 그리스도를 유혹하여 추호라도 죄를 짓게 할 수 있었다면 그가 구주의 머리를 상하게 했을 것이다. 사실상 그는 그분의 발꿈치를 건드린 것에 불과했다. 만일 그가 그리스도의 머리를 건드렸더라면 인류의 소망은 사라졌을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아담에게 임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도 임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의 완전한 무죄성에 관하여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The SDA Bible Commentary, 5:1113.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하여 명상할 때 조심하라, 정말로 조심하라. 사람들 앞에서 그분을 죄로 기우는 성향을 가진 인간으로 제시하지 말라. 그분은 두 번째 아담이시다. 첫 아담은 죄의 오염이 없는 순결하고 무죄한 존재,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아담은 타락할 가능성이 있었고, 범죄를 통하여 타락하였다. 죄로 인하여 그의 후손들은 불순종으로 기우는 타고난 성향들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다. 그분은 인성을 취하시고, 모든 일에 인성이 받는 시험을 받으셨다. 그분도 죄를 지을 수도 있었고 타락할 수도 있었지만, 한순간도 그분 속에는 악한 성향이 있지 않았다. 그분은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유혹으로 공격을 받았던 것처럼, 광야에서 유혹으로 공격을 받았다.
-The SDA Bible Commentary, 5:1128.
오해하기 쉬운 그리스도의 인성과 관련된 질문을 피하라. 진리와 추측의 궤도는 가까이에 있다. 그리스도의 인성을 다룰 때 모든 주장을 극도로 조심하여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이 그 대가 말하고자 하는 것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여서 신성과 결합된 그리스도의 인성이라는 명백한 개념을 잃거나 흐리지 않도록 하라. 그분의 탄생은 하나님의 기적이었다. …그리스도께 타락의 오염이나 타락으로 기우는 성향이 있었다거나 그분이 어떤 식으로든 타락에 굴복하셨다는 인상을 사람들 마음 가운데 추호도 남기지 말라. 그분은 범사에 사람들이 받는 것과 같은 시험을 받으셨으나 “거룩한 자”(눅 1:35)라고 칭해진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처럼 범사에 시험을 받았으나 죄는 없으셨다는 사실은 유한한 인간에게 설명되지 않은 채 남겨진 신비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지금껏 신비였고 앞으로도 신비로 남아 있을 것이다. 계시 된 것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속한 것이지만,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간주해 버리려는 주장을 하지 않도록 경고를 받아야 한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The SDA Bible Commentary, 5:1128, 1129.
그분은 부패로 오염되지 않았고 죄와는 상관없는 분이셨지만 아버지께 도움과 지원을 받아야 할 고통을 견디셨으며 자주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면서 기도하셨다. 그분은 당신의 제자들뿐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하심으로써 인류가 함께 겪는 궁핍과 약함 및 결핍과 일체가 되셨다. 그분은 위대한 탄원자가 되셨으나 우리의 타락한 성정을 갖진 않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고 범사에 우리처럼 시험을 받으셨다. -Review and Herald, May 19, 1885, 305.
우리 주님께서는 인간이 유혹을 받는 것처럼 유혹을 받으셨다. 그분은 인간 존재처럼 유혹에 굴복할 수 있었다. 그분의 유한한 인성은 순결하고 흠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신성이…인성화되거나 두 본성이 섞이고 연합됨으로써 인성이 신성화된 것도 아니었다. 각각의 본성은 그것의 고유한 성격과 특성을 유지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속되거나 육신적인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되며, 우리의 패역한 생각으로 그리스도께서도 사탄의 유혹에 굴복할 수 있다는 개념으로 그분의 인성을 격하시키거나 그분께서도 인간과 동일하게 죄 되고 부패한 성향을 소유하고 계셨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신성이 인성과 결합됨으로써 그분은 사탄의 유혹에 굴복할 가능성을 지니셨다. 그리스도의 시험이 아담과 하와의 시험보다 훨씬 더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했으나(fallen) 부패되지(corrupted) 않은 우리의 본성을 취하셨기 때문이다. -Manuscript 57, 1890.
그리스도는 우리가 소유한 것과 같이 죄되고 부패하고 타락한(fallen) 불신실함을 소유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그분이 완전한 제물이 되실 수 없으셨기 때문이다. <가려뽑은 기별> 3권, 131.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본, 곧 우리에게 따르도록 주어진 완전하고 거룩한 모본이다. 우리가 모본과 결코 동등하게 될 수는 없으나 우리의 능력에 따라 모본을 모방하고 닮아갈 수는 있 다. -The Review and Herald, Feb. 5, 1895, 81.
4,000년 동안 인류의 체력과 정신력과 도덕적 가치는 떨어져 왔다. 그리스도께서 그 퇴화한(degerated) 인성의 연약성을 취하셨다. <시대의 소망>, 117.
도덕적 오염이나 죄의 더럽힘을 추호도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께서 퇴화한(deteriorated) 상태에 있는 우리의 본성을 취하셨다. …
타락한(fallen) 상태에 있는 인간의 본성을 취하심으로써, …그분은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육신의 연약성과 쇠약함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Manuscript 143, 1897.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인성의 옷을 입고 그분이 구원하고자 하신 사람들의 처지로 내려오셨다. 그분 안에는 간사함이나 죄가 없었다. 그분은 순결하고 죄로 오염되지 않았으나 우리의 죄된 인성(sinful human nature)을 취하셨다. -The Review and Herald, Dec. 15, 1896, 789.
그분이 인간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람들 가운데서 사람으로 사시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시험 받으시고 시련을 감당하기 위해서 인간 본성의 연약성을 담당하셨다. 그분은 인성을 입으시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셨다. 그분은 성육하심으로써 새로운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칭호를 얻으셨다. -The Signs of the Times, Aug. 2, 1905.
우리 구주께서는 인성을 취하시되, 인성의 연약성과 함께 취하셨다. 그는 시험에 굴복할 가능성을 가진 인간 본성을 취하셨다. 우리는 그가 당하지 않은 것들은 하나도 감당할 것이 없다. -<시대의 소망>, 117.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돕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인류가 처했던 죄와 쇠약함을 담당하 셨다. 그분께서는 인류를 위하여 타락한(fallen) 인간의 연약성을 취하시고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시험을 사탄에게 받으셔야 했다. -The Review and Herald, July 28, 1874.
예수께서는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 예수께서는 우리와 같은 육신이 되셨다. 그는 시 장하고 목마르고 피곤하셨다. 그는 음식을 잡수심으로 생명을 유지하셨고 수면을 취하심으로 원기를 회복하셨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운명에 동참하셨지만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예수는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셨다. 예수의 품성은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 -<시대의 소망>, 311.
“그리스도께서 고난당하시고 시험받으셨다.”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분은 죄의 오염은 없으셨지만 그분의 거룩한 본성의 예민한 감각으로 인해 악과 접하는 것이 그분께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것이 되었다. 그러나 그분이 입으신 인성으로써 대배 도자를 대면하시고 그분의 보좌를 대적하는 자에게 직접 저항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한 올의 생각도 시험의 힘에 굴복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사탄은 인간의 마음에 유혹의 발판을 얻을 수 있는 틈을 알고 있다. 어떤 죄된 욕망을 품고 있으면 그것을 이용하여 그의 유혹은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요 14:30)라고 밝히 말씀하셨다. 유혹의 폭풍이 몰려왔으나 그분은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당신의 충성심을 흔들도록 허용하지 않으셨다. -The Review and Herald, Nov. 8, 1887.
그분께서는 인성을 취하심으로써 인류의 연약성과 퇴화된 것(degeneracy)을 짊어지셨다.
-The Review and Herald, July 28, 187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인성으로써 아담의 실패를 만회하실 것이었다. 유혹자의 공격을 받았을 때 아담은 아무런 죄의 영향을 받지 않았었다. 아담은 완전한 장년으로 몸과 마음에 충만한 활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에덴의 영광에 둘러싸여 있었고 날마다 하늘의 천사들과 교통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사탄과 상대하시기 위하여 광야에 가셨을 때에는 그렇지 못했다. 4,000년간 인류는 체력과 정신력 및 도덕적 가치가 퇴보되어 왔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퇴화한(degenerate, 또는 퇴락한) 인성의 연약함을 취하셨다. 이렇게 하심으로써만 그는 쇠퇴의 깊은 구렁에서 인류를 구출하실 수 있으셨다. -<시대의 소망>, 117.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에 있어서는 우리와 형제이셨으나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갖지는 않으셨다. 무죄한 분으로서 그분의 본성은 악을 보고 움츠러드셨다. 그분은 이 죄악 세상에서 영혼의 투쟁과 고통을 견뎌내셨다. 그분이 인성을 입으셨기 때문에 기도가 필요하였고 그것은 그분의 특권이 되었다. 그분은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하늘의 희락을 버리고 이 냉랭하고 배은망덕한 세상에 거처를 두기로 선택하신 자신에게 아버지께서 기꺼이 공급하고자 하시는 강력한 지원과 위안을 모두 기도로써 요구하셨다. -<교회증언> 2권, 202.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상태에 있는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을 때 그 본성의 죄에는 추호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분은 인간이 둘러싸여 있는 연약성의 지배를 받으셨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 8:17).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고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죄를 모르셨다.” 그분은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이 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의 완전한 무죄성에 대하여 염려할 것이 전혀 없다. -The Signs of the Times, June 9, 1898.
그리스도께서만이 하나님의 법의 요구에 일치하는 제물을 드림으로써 길을 열어 놓으실 수 있었다. 그분은 완전하셨고, 죄로 오염되지 않았다. 그분은 점도 없고 흠도 없으셨다. 만일 영원한 가치를 지닌 구제책이 제공되지 않았더라면 죄의 무서운 결과의 정도가 어떠한지 결코 알려질 수 없었을 것이다. 천사들도 놀라워했고, 하나님과 동등하신 하늘의 대왕께서 반역한 인류를 위해 죽으셔야 한다는 거룩한 비밀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타락한 인간의 구원이 제공되었다. -The Spirit of Prophecy, vol. 2, 11, 12.
“그분은 우리가 모방하도록 우리에게 제시된 완전하고 거룩한 모본이다. 우리는 그 모본과 동일하게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모방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에 따라 그것을 닮지 않으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교회증언, 2권, 549).
- 조지 R. 나이트(George R. Knight)
'안교교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복음 다시 읽기 - 임봉경 (5) | 2024.10.05 |
---|---|
제 13과 맺음말: 예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 (0) | 2024.09.28 |
제 12과 영광의 때: 십자가와 부활 (0) | 2024.09.28 |
제 11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0) | 2024.09.28 |
제 10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0) | 2024.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