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에서의 전도-사도행전 연구19-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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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9:1-20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침례니라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침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내용 요약

  1. 에베소 전도 (1-20)
  2. 은장색 사건 (21-41)

배 경 

   바울은 다시 5년 동안이나 걸린 제3차 전도여행을 떠난다. 이번에는 바로 에베소로 직행하여  3년을 유하면서 눈물로 전도한다. 

 

 “사도시대에 소아시아 서부 지방은 로마의 아시아도로 알려졌다. 수도 에베소는 대상업 중심지였다. 그 항구는 선박으로 꽉찼고 그 거리에는 각 나라에서 온 백성들이 가득하였다.” (행적, 276)

 


바울은 에베소 전도에 그의 전력을 쏟았으며 그 영향은 소아시아 전체에 미쳤다. 아시아의 일곱교회도 이때에 세워진 것이다. 에베소에 머무는 동안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기록한다.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한 가지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집중하므로, 여러 가지 일에 득을 본 적이 있나요(一擧兩得)?

  2.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희생한 적이 있나요?

  3.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혹은 양육하면서 얻은 보람이 있다면?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침례요한의 침례만으로 부족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1-7)
        
  2. 바울이 에베소에 전도한 방법을 3단계로 이야기 해 봅시다.(8-10)
       또한 두란노에서 2년동안 머문 것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①                                                                                 
       ②                                                                                 
       ③                                                                                          
  3.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악귀를 쫓아내려고 했으나 도리어 위험을 당한 이유는 무엇일까요?(14-16)

  4.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은” 3가지 요소에 대하여 이야기해봅시다.(17-19)

                                                                                     

  생각해봅시다.                                                                 

  1. 바울이 에베소에서 행한 전도법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2. 내 삶 속에서 예수님와 가까워지면서 멀리하게 되는 것이 있나요?

  3. 말씀을 연구함으로 얻어지는 신앙적 성장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에베소 사람들은 마술책들을 불사름으로 저희가 한 때 좋아하였던 것을 이제 미워한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그들이 특별히 하나님께 범죄하고 그들의 특별히 하나님께 범죄하고 그들의 영혼을 위태롭게 한 것은 마술을 의존하였기 때문이었으며, 그와 같이 분개를 나타낸 것은 마술을 대적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참된 회개의 증거를 나타내었다.(행적 288p)

3. 요한의 침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 충분한 가르침을 받기 전에 아볼로나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어떤 사람이 베풀었을 것이다. 4절을 제외하면 이것이 신약에서 요한의 침례에 대한 마지막 언급이다.

4. 회개의 침례. 바울은, 요한이 가르친 것 즉 회개의 침례와 따라야 할 분을 믿는 믿음을 요약해서 말했으나, 이 에베소 사람들은 성령의 침례와 성령의 은사들에 대해 알지 못했으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대한 가르침도 부족하였다.

5. 저희가 듣고. 틀림없이 이 회심자들이 들은 것은, 예수가 메시야라는 단순한 진술이 아니라, 바울이 구약을 가지고 이것이 사실임을 입증하고 구약이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보여 주는 논증이었을 것이다. 여기 나타난 묘사는 간단하지만 그들의 회심이 갑작스러웠거나 충분한 가르침 없이 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름으로. “이름”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서는 3:16; 4:12 주석을 참조하라. 이것은 새롭고 핵심적인 진리를 받아들이고 재침례받은 사람들에 대한 일례다. 그러나 이것이 재침례를 자주 행하라는 보증은 아니다. 재침례는 아무렇게나 행해져서는 안 된다. 죄된 세상의 매일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경험하는 죄로부터의 정결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요일 1:9; 2:1, 2)로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며, 죄의 정결을 상징하는 세족 예식(요 13:4~10)으로 증거가 이루어진다. 그리스도 안에서 침례받은 사람에게 재침례는 단지 그리스도와의 교제에서 요구되는 신조와 기준에 명백한 배교가 있을 때 필요하다. 이러한 일반적인 규칙 외에 적용될 수 있는 예외는 여기에 묘사된 경우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푸는 침례는 구원의 계약 관계에 들어가는 서약으로, 영원하고 지속적인 경험을 의미한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사도행전에 기록된 침례를 받은 모든 사람이 공유한 경험이다. 이 경우 성령이 임한 것은, 완전히 아데미 여신에게 바쳐진 에베소를 온전히 그리스도께 바쳐진 곳으로 변화시켜 이 지역 전체가 향후 수 세기 동안 그리스도인 삶의 중심지가 되게 하기 위한 준비였다.
방언도 하고. 정확히 말해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고.” 이것은 오순절에 있었던 성령의 부어주심과 동일한 역사였다. 같은 절기에 예루살렘에서 이 은사가 제국의 모든 지역에서 모인 유대인에게 효력을 발휘했던 것처럼, 이제 이방인 활동의 중심지에 주어진 이 성령도 같은 결과를 낳음으로써 이러한 능력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 기별에 관심을 갖고 그리스도께 회심하는 자들이 더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에베소와 인근 지역에서 선교사로 일할 수 있는 자격과 소아시아로 나아가 복음을 선포할 자격도 갖추었다”(EGW RH Aug. 31, 1911).
예언도 하니. 정확히 말해 “예언하기 시작하니.” 이것은 구약의 예언 해석과 더 큰 설교의 능력을 소개함으로 더욱 확신 있게 복음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 사건에 대한 예언은 이 시점에서 그리스도의 사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이 단어가 반드시 미래 사건의 예언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8. 회당에 들어가. 사도 시대의 관습에 따라(참조 9:20 주석). 이런 방문들은 주로 안식일에 이루어졌음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먼저 바울은 안식일 준수자였고(참조 13:14; 16:13) 주중에는 노동을 했으며(행 18:3; 20:34; 살전 2:9; 살후 3:8), 유대인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데 안식일이 최상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 도를 비방하거늘. 즉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에베소에서도, 동료들이 데살로니가에서 한 것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그에게서 돌아서도록 함으로써 바울에 대한 그들의 증오를 나타냈을 것이다. 하류 계층의 백성들은 항상 폭동을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즉 회당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과 바울의 가르침에 관심을 보인 유대인들이 물러났다. 이것은 기록상 그리스도교 신자들 전체가 유대인 회당과 관계를 끊은 최초의 시기이다. 이렇게 뒤로 물러가는 과정은, 유대인과 교제하는 것이 불편할 뿐 아니라 어떤 지역에서는 위험하기까지 했던 유대 전쟁 기간 즉 AD 68~135년에 가속화되었을 것이다(참조 제10권, 92, 93).
두란노. (「제임스왕역」에는 “one Tyrannus”[두란노라 이름하는 한 사람]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는 두란노가 어떤 유명한 사람이었음을 암시하는 단어 “one”의 생략을 지지한다. 이 사람에 관해 확실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아마도 철학이나 수사학 교사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혀 회심하지 않은 완전한 이교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이교도였다면 어떤 집단에서는 조롱거리였던 이 새로운 신앙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자신의 교실을 사용하도록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참조 17:32).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곳이 유대 청중이 쉽게 모일 수 있었던 유대인 학교 베트-함미드라쉬(Bet-Hammidras∨)였다고 생각한다. 청중의 얼마는 유대인이었고 얼마는 헬라인이었음이 분명하다. 에베소에는 그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그런 “학교”를 운영하기에 충분한 수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고, 따라서 그러한 학교의 지도자가 유대인 이름에 이방인 이름을 추가하여 사용하기가 매우 쉬웠을 것이다. 따라서 두란노는 유대인이었을 것이다.
서원. 헬라어 스콜레(schole-). 이 단어의 유래는 흥미롭다. 처음에는 단순히 “여가”를 의미했다가, 후에 학문적인 논쟁이나 연구를 위해 주어진 여가에 적용되었다. 그런 후에 여기서처럼 학습이 이루어지는 어떤 장소를 의미하게 되었다. 마침내 “제논 학파”라는 말처럼, 특별한 선생을 따르는 자들을 가리키는 집합적 용어가 되었다. 이 성경절에서는 개인 소유주가 사도에게 임대해 준 강의실을 가리킬 것이다. 
날마다. 바울은 분명히 매 안식일, 어쩌면 더 자주 에베소의 회당에 갔을 것이지만, 석 달 동안 얼마나 자주 거기서 가르쳤는지는 알 수 없다. 이제 그는 적어도 매일 일정 시간을 바쳐 집중적인 공중전도 과정을 시작했을 것이다. 아마 그는 생계를 위해서도 계속 일했을 것이다(참조 8절 주석). 
강론하여. “날마다 두란노라는 학교에서 제5시부터 제10시까지 강론하여”라는 또 다른 독법을 지지하는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를 제시할 수도 있다. 이 독법이 원문으로 취급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이 독법이 원문이라면, 동방 지역에서는 제5시부터 제10시(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경)까지가 낮잠 자는 시간(siesta)이었기 때문에 바울이 두란노 서원이 사용되지 않는 “휴식 시간”에 이 건물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아시아에 사는 자. “아시아”에 대해서는 2:9 주석을 참조하라. 분명히 에베소는 바울 사역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바울은 분명히 거기서 주위 성읍들을 방문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교회들(2, 3장)의 기원이 바울에게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바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진술(골 2:1; 참조 행 18:23 주석)이 그러한 가능성을 제한한다. 유대인과 헬라인으로 구성된 에베소에 있는 새로운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성장은 괄목할 만했다. 아데미에게 바치는 예물과 아데미 신 기념품 판매는 현저히 감소했다. 누가는, 바울이 끌어들인 청중들이 에베소에 사는 거주자뿐 아니라 그 도시를 방문한 사람들로 이루어졌고, 설교자 바울의 소문과 그의 기별을 지역의 구석구석에 전달했음을 시사한다. 골로새의 빌레몬도 이 기간에 얻은 바울의 회심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참조 몬 19절).

13.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 즉 “유랑하는 유대인 마술사들”(「개정표준역」). 사기꾼들이 이익을 얻으려고 바울과 예수의 이름을 사칭하며 돌아다녔다. 이 유대인들은 마력과 주문(참조 8:9; 13:6 주석)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공언하였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솔로몬이 지닌 것으로 생각되는 악마에 대항하는 묘기과 귀신 물리기를 사용한 것에 대해 기록하면서, “이런 종류의 치료는 오늘날까지도 우리 중에서 매우 큰 세력을 미치고 있다”(Antiquities viii. 2. 5 [46]; Loeb ed., vol. 5, 595)라고 덧붙였다. 

 

14. 유대의 한 제사장. 혹은 “유대인의 한 우두머리 제사장.” 이 표현은 이 사람이 제사장들을 나눈 24반차(참조 마 2:4; 눅 3:2 주석) 중 한 반차의 우두머리였음을 암시한다. 이 사람은 어떤 이유로 그의 지위를 잃은 후 에베소에 왔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대제사장이라 칭했고, 따라서 누가도 그렇게 묘사한다.
너희는 누구냐. 문자적으로 “그러면 너희, 너희는 누구냐.” 이 귀신 들린 사람은 이와 같이 자신을 악귀와 동일시했다(참고 막 5:7~12). 그는 바울 같은 사람이 예수의 이름을 말할 때는 두려워했으나 사기꾼들의 행위에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16.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제임스왕역」에는 단순히 “그들을 억제하여”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는 “그들 중 두 사람을 억제하여 이기니”라는 독법을 증거한다. 이 독법은 일곱 아들 중 둘만 이 사건에 관련이 있음을 입증한다. 그러나 여기서 “두 사람”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가 “모두”(셋 이상)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파피루스의 증거가 있다.
여기서 귀신 들림은 가다라에서와 같이(참조 마 8:28) 귀신 들린 사람에게 정상적인 힘 이상을 발휘하게 했다. 사기꾼들은 이 남자의 악마적인 분노에 놀라 도망쳤다.
벗은 몸으로. 귀신 들린 사람이 찢은 겉옷 또는 외투를 버려 두고 짧은 속옷(참조 마 5:40 주석)만 입고 도망친 사실 그 이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기록은 여기서 끝난다. 만약 기자가 이 일을 더 놀라운 일로 조작하려 했다면, 스게와의 아들들이 실패한 후에 바울이 손수 그 사람을 고쳤다고 말하여 이야기를 절정으로 발전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의 기록은 사실에 입각했다.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이 동사의 시제는 계속적으로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이야기는 귀신 쫓는 사람들이 사용한 공식 문구 가운데서 예수의 이름이 어떤 이름보다 두드러졌음을 보여 준다. 또한 이름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믿음 없이 함부로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분명히 위험한 일이었다. 에베소 사람들은 예수의 이름을 오용하여 벌받은 사람들을 보고 전보다 더 그 이름을 높였다.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믿는다”는 동사는 2절에서처럼 침례를 포함한(참조 3절) 회심의 전 과정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 신자들은 신앙고백을 했으나 그것은 불완전한 경험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했는데, 아마도 침례 후에 빠졌던 마술적인 일과 관련된 몇몇 경우에 저지른 잘못일 것이다. 성령의 감화 아래 교회는 철저히 마음을 살피는 경험을 했다. 이 고백이 개인적으로 바울이나 다른 선생들 앞에서 행해졌는지 아니면 공적으로 회중 앞에서 행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침례자 요한에게 고백한 경우와 마찬가지로(참조 마 3:6 주석), 공중 앞에서 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들은 악한 자가 예수의 이름을 오용하여 어떤 일을 행할 수 있는지 보았고, 따라서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면서 그 이름을 잘못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염려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모두의 심판자로서 대면해야 할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양심은 일깨워져 열정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죄를 고백하였고, 그렇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용서와 중보의 은혜로운 준비 아래 들어오게 되었다(요일 1:9; 2:1; 참조 사도행적, 288).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주문과 진언이 기록된 문서들 곧 “에베소 문서들”과 이 “비술”(秘術)에 관한 논문으로 발행된 책들을 모아 가지고 왔음을 의미할 것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러한 “문서” 가운데 어떤 것들은 매우 오래되어, 모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문서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부적들도 가져왔을 것이다.
은 오만. 많은 사람이 가치 있게 여긴 책들을 불태우는 이런 극적인 일이 헬라인 가운데서 발생한 점으로 볼 때 누가가 헬라의 드라크마를 “은”으로 계산했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여기 언급된 은 50,000은 10,000달러가 넘는 금액이 될 것이다. 그러나 드라크마가 당시 하루 품삯에 해당했기 때문에 당시 통화 가치로 본다면, 달러로 환산된 이 수치보다 훨씬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어떤 책들은 판매했다면 분명히 고가를 받았을 것이었다(참조 제10권, 54). 

 

20.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힘이 있어”라는 단어는 “어떤 것도 저항할 수 없는 넘치는 기세와 힘을 가지고”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귀향 및 3차 전도여행의 시작-사도행전 연구18-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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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28

[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침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내용 요약

  1. 귀향 및 3차 전도여행의 시작 (18-28)


배 경 

바울은 일찍이 서원한 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고, 에베소에 오래 있지 않고 가이사랴를 거쳐 안디옥으로 내려갑니다. 아볼로가 에베소에서 예수님의 도를 전하는데 그가 요한의 침례만 알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에게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릅니다.


고전 3:4-7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어떤 결심을 위해 머리에 변화를 준 경험이 있나요? 혹은 주위에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2. 보살핌이나 가르침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 상대가 더 성장한 일이 있나요?

  3. 나를 부지런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바울이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깍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18:18) *서원에 관한 주석참조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끝내며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습니다. 이방인의 사도인 그가 서원 의식을 치른 이유는, 유대인들의 반대가 거세지는 가운데 그들 앞에서 자신의 경건함을 입증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이는 유대인들을 잃지 않으려는 바울의 결의를 보여 주기도 합니다. 바울은 여행을 마치며 서원 의식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결단합니다.

  2. 바울은 안디옥에 복귀 후 얼마 있다가 바로 3차 여행을 떠납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어떤 면을 볼 수 있나요?(18:23)   
                                                                                    
  3. 아볼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18:24-28) 아볼로와 아굴라부부의 태도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입니까?
                                                                                     

생각해봅시다.                                                                 

  1.  우리의 영적 제자들을 굳건히 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2.   2. 내 일상은 하루, 한주, 한달, 무엇을 향해 가고 있나요?

한 목사가 그리스도교의 모든 요구대로 교회를 완성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자격을 소유하기란 드물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각각 다른 이들에게는 없는 어떤 자질들을 가진 다른 목사들을 종종 그들에게 보내신다.(행적 278p)

18. 수리아로. 여행 동기는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1) 후에도 그런 것처럼(참조 20:3, 4 주석) 그는 분명히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참조 롬 15:25, 26; 갈 2:10)을 위해 거둔 선물을 몸소 전달하고자 했다. 바울이 다른 여러 지역에서보다 에베소에서 유대인들에게 그의 설교가 잘 받아들여졌는데도 에베소에 머물기를 거절한 점으로 보아, 예루살렘에 돌아가기로 결심하자 되도록 빨리 거기에 이르고 싶었음이 분명하다. (2) 그가 근자에 한 서약 때문에 성전을 방문해야 했다. (3) 그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특별히 상당히 먼 지역인 마게도냐와 아가야에서 한 사역의 결과를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참조 15:4).

서원. 개인적인 서원으로, 민 6:1~21에 묘사된 한시적인 나실인 서원의 수정된 형태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실인의 서원은 세상과 일상적인 삶에서 구별될 것을 요구했다(“나실인”이라는 단어는 “구별된” 또는 “성별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서원 기간에 나실인은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야 했으며, 머리나 수염도 깎을 수 없었다. 서원 기간을 마칠 때는 성전에서 머리를 깎고 희생제물 밑에 있는 제단 불로 태워야 했다. 21:24에 언급된 나실인들은 서원을 마친 후에 머리를 잘랐다. 예루살렘에서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머리를 짧게 잘라, 자른 머리털을 성전에 가져와 남은 머리카락을 자를 때 바치도록 허락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바울이 수리아로 가는 항해에 오르기 전 겐그레아에서 행한 일이다. 고전 11:14에 비춰볼 때, 바울은 남자들의 긴 머리를 남성답지 못한 것으로 여겼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실인의 서원을 하면 반드시 머리를 길러야 한다. 따라서 그는 서원을 따랐으나 수정된 형태를 따랐고, 서원 기간이 겐그레아에 도착하기 전에 끝나지 않았다면 여행 전에 머리를 자른 것은 그의 용모와 당시 관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원을 하게 한 주된 요인은 종종 두려움이 뒤따르는 위험에서 구원받은 데 대한 깊은 감사였다. 두려움, 약속 그리고 구원은 고린도에서 있었던 바울의 사역 기록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복음 선포 계획에 헌신하려는 서원은 자연스런 결과로 뒤따를 것이었다. 바울은 경건한 감정의 표현들을 경멸하거나 정죄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유대인의 다른 몇몇 관행에 대해서도 그랬듯이 그것들을 율법적인 행위로 여기지 않은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바울은 “여러 사람에게…여러 모양이 된”다(고전 9:22)는 원칙을 적용하고 있었으므로,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에게 동정심(20절)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나실인 서원은, 바울 자신도 율법을 멸시하지 않고 다른 유대인에게도 그렇게 하지 말도록(참조 행 21:21~24 주석) 가르치고 있음을 증거할 것이었다. 

회당에 들어가서. 바울의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비록 그들에게서 끊임없이 어려움을 당했지만 그는 결코 동족을 포기하지 않았고, 여기서도 도착하자마자 그들을 다시 찾았다. 그러나 에베소의 유대인들이 그에게 좀 더 머물러 있기를 간청(20절)한 것으로 보아, 여기서는 그의 설교가 그렇게 적대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에베소 사람들의 국제적인 특성이 바울에게 다른 태도를 나타내도록 했을 것이다.

22. 가이사랴에서. 상당히 많은 활동이 이 성경절 안에 포함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가이사랴에서 그는 틀림없이 전도자 빌립과의 관계를 새롭게 했을 것이다. 그 후 가이사랴에 있는 빌립의 집에 손님으로 머물렀다(21:8).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즉 “교회에 인사한 후에.” 그가 당시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과 활동의 중심지를 방문했다는 간략한 기록이다. 이는 바울의 회심 후 네 번째 예루살렘 방문이다(참조 9:26; 11:30; 15:4; 21:17). 14:27에서와 같이 교회가 모였다거나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 성취한 것을 보고했다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 도시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고 바울이 서원을 마쳤다는 말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냉대받았고, 이방 그리스도인과 관련하여 율법에 대한 입장 때문에 율법에 본래 열심이었던 예루살렘 그리스도인들과 관계가 나빠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바울은 마음이 맞는 안디옥에 있는 교인들에게로 서둘러 갔다.

안디옥으로. AD 52년경, 바울이 안디옥으로 돌아오고 2차 선교여행이 끝난다(참조 102).
떠나. 안디옥은 앞선 두 번의 여행(13:1~3; 15:36~40)과 마찬가지로 3차 선교여행의 출발지이다.
굳게 하니라. 바울은 새 교회들을 세운 복음 전도자일 뿐 아니라 그 교회들의 지속적인 안녕을 위해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목양자였다. 1차 선교여행 중에 세운 교회들 중 몇 교회를 이번에 방문한 것은 네 번째다(참조 13:51; 14:6, 21; 16:1, 6).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문자적으로 “알렉산드리아 태생.” 구약 「70인역」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인들이 번역했다. 알렉산드리아는 고대의 가장 큰 도서관들 중 하나가 있던 학문의 중심지였다. 철학자 필론은 그곳의 유대인들 사이에 뛰어난 지적 지도자였다. 그가 AD 50년경까지 살았으므로 아볼로는 그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학문이 많고. (「제임스왕역」에는 “eloquent”[구변에 능한]이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헬라어 로기오스(logios). “학식 있는”, “구변에 능한.” 한 가지 의미만으로는 온전한 뜻을 전달할 수 없다. 그는 학식이 있을 뿐 아니라 그 학식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배워. 헬라어 카테케오(kate-cheo-). “소리내어 읽어주다.” 확대하면 “구두(口頭)로 가르치다”라는 뜻이다. “catechize”(문답식으로 가르치다)라는 영어가 파생된 이 단어는, 아볼로가 스스로 구약을 공부한 것 외에 누군가에게서 배웠음을 암시한다. 우리는 요세푸스(Antiquities xviii. 5. 2)를 통해 요한의 가르침과 침례가 유대인에게 큰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에 관한 침례자 요한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유대인들이 예루살렘과 에베소에 나타났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 가르침은 간결했을 것이다. 그들은 요한이 다가오는 왕국을 위해 준비시키려고 침례를 주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가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가리킨 것과 예수가 침례받을 때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이러한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목베임당했고, 예수는 갈바리에서 죽음을 당했다. 요한의 제자들은 대부분 그리스도의 기별과 관련하여 후에 일어난 일들 즉 교회의 설립, 그리스도교 침례와 주의 만찬 예식, 성령의 부어주심, 회개에 뒤따르는 회심에 관한 가르침, 믿음을 통해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일 등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침례자 요한 자신도 어느 날 사람을 보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마 11:3)라고 주에게 물은 것으로 보아, 예수께서 이러한 일들과 관련하여 제시하고 있던 것을 단지 어렴풋하게 이해했을 뿐이다.  
예수에 관한 것. (「제임스왕역」에는 “things of the Lord”[주에 관한 것]이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위에 언급된 “주의 도”라는 표현은 구약 용어(사 40:3)의 번역으로, 요한의 설교와 관련하여 복음서 기자들이 인용했다(마 3:3; 막 1:3; 눅 3:4; 요 1:23). 
아볼로는 스스로 구약을 연구하여 알게 된 것 곧 천국의 도래에 관하여 요한이 설교했던 내용을 매우 정확하게 선포했을 것이다. 그는 요한이 어떻게 예수를 가리켰는지 나타내 보였을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사업과 말씀의 많은 부분을, 유대인에게 오랫동안 있었던 선지자들보다 더 위대한 선지자들을 하나님이 보내고 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생애 자체가 구속이 가깝다는 증언이라는 증거로 제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볼로의 스승이 누구였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한 침례자 요한의 기별 이상으로 제자들을 끌고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볼로에게 침례자 요한은 분명 옛 종교의 독특한 특성들을 유지하고 있는 영광스러운 유대교 지도자였을 것이다. 분명히 그는 아직 “할례받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고전 7:19) 것을 배우지 못했으며 제사 제도가 “없어져 가는 것”(히 8:13)임을 깨닫지 못했다.
요한의 침례. 침례는 종교적인 지식과 경험을 위한 입문이라는 개념이 “침례”에 포함되어야 한다. 요한의 침례라는 표현은 매우 흥미로우며, 그리스도의 전주자(前走者)로서 침례자 요한의 사역이 복음서에서 가리키는 것보다 훨씬 멀리 미쳤음을 보여 준다. 알렉산드리아까지 미쳤던 것이 분명하다. 이 “침례”의 한계에 대해서는 위의 “배워”에 관한 주석을 참조하라.

26. 담대히 말하기를. 유대인들이 메시야가 오신다는 기별을 듣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담대함이 필요했다. 전도자는 유대인들이 여러 번 기만자들에게 미혹당한 이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용기뿐 아니라 학식과 능변을 갖춰야 했다.

27. 아가야. 아가야의 수도인 고린도로 갔을 것이다. 행 19:1과 아볼로를 언급한 고전 1:12은 이것이 확실함을 알려 준다. 훈련, 타고난 능력, 최근의 교육과 경험으로 아볼로는 고린도에서 바울이 아덴에서 했던 것과 유사한 일을 할 수 있었다. 아볼로의 사도적 권위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고린도인 중 어떤 사람들은 그를 바울과 동일하게(고전 1:12) 여겼다. 이런 일로 교회에는 강한 분파적 감정이 발생하였고, 바울은 그것을 책망했다(고전 3:3~17). 아볼로가 이런 일을 일으켰다고 생각할 만한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가 심은 것(고전 3:6)에 아볼로가 물을 주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아볼로는 교회에 파당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고린도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전 16:12).

형제들이…편지하여. 천거서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위하여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보낸 “천거의 편지들”(참조 고후 3:1 주석; 롬 16:1, 2; 골 4:10)로 알려진 것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이것은 당시 “신임장”이었다. 에베소 교회에서 아볼로에게 기꺼이 그런 편지를 써주었다는 사실은 그가 그곳에 있는 동안 좋은 인상을 남겼다는 것을 보여 준다.

유력하게…이김일러라. 헬라어 디아카텔레코마이(diakatelechomai). “완전히 설복시키다”, “완전히 확신시키다.” 아볼로는 유대인들의 반대 이론을 성경으로 검증하여 그들을 설복시켰다. 아볼로는, 바울이 유대인들을 설득할 때 사용했던 그 결론으로 그들을 유도했다. 그의 방법은 바울의 방법과 달랐을 것인데, 차이는 성격에 있었다. 이 새로운 설교자는 그의 사역을 통해 자연스럽게 많은 추종자들을 얻었고, 바울이 노고로 얻은 것보다 수적으로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아볼로의 이름이 사도행전에 다시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그의 후기 역사로 알려진 것을 여기서 다루어야겠다. 그의 이름이 고린도에서 한 분파의 슬로건으로 사용될 정도였지만,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 사이의 교리적인 차이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아굴라, 브리스길라와 가까이 교제하고 있었던 점으로 보아, 불화가 없었던 것 같다. 고전 16:12에 비춰볼 때, 아볼로가 결국 고린도 교회의 천거서를 가지고(고후 3:1) 에베소로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아볼로가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고전 16:12, 17)와 함께 다시 고린도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에 나타난 대로 그를 신임했다. 이후로 아볼로는 바울의 사역이 마칠 때까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동안 그는 에베소와 고린도에서처럼 열정적으로 복음사역을 했을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이 마쳐갈 때(약 AD 67년) 아볼로를 언급한다(딛 3:13). 그는 교법사 세나와 함께 있었는데, 세나는 아볼로처럼 유대법이든 로마법이든 법에 조예가 깊어(참조 마 22:35 주석; 제10권, 62) 확고한 명성을 얻었다. 바울이 가능한 모든 도움을 아볼로에게 주라고 디도에게 요청한 점으로 보아, 아볼로에 대한 바울의 마음은 분명히 사려 깊은 관심으로 이어졌다. 아볼로는 그레데에서 일해 왔고, 그의 주위에는 별도의 제자들의 무리가 모여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바울은 자신과 교제했던 자들과 그들을 구분한다(딛 3:13, 14).

고린도 전도-사도행전 연구 18-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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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8:1-17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내용 요약

  1. 고린도에서 전도함 (1-11)
  2. 유대인들의 소동 (12-17)

배 경 

   바울은 드디어 고린도에 온다. 아테네가 학문과 예술의 고도라면 고린도는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였다. “서력기원 첫 세기 동안에 고린도는 헬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중요한 도시중의 하나이었다. 헬라인과 유대인과 로마인들은 각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과 함께 그 거리에 모여들어 상업과 향락에 몰두하였다. 로마제국의 각 지방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한 대 상업 중심지인 이곳은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를 위하여 기념물을 세워야 할 중요한 장소이었다.”(행적, 240)

 

  부주의하고 무관심한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자 노력함에 있어서, 고린도에서는 다른 활동계획을 따르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고린도인들 중에서는 정교한 논쟁이나 토론을 피하고,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그들에게 전도하고자 하였다.(행적 244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최근 가장 몰두하면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왜 그렇게 열심히 몰두하나요?

  2. 심한 감기로 앓은 적이 있나요? 어느 정도로 심한 감기였나요? 

  3.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심한 부담감을 느낀 경험이 있나요? 그 경험을 나누어보아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바울이 아굴라와 가깝게 된 계기를 설명해 보세요.(18:1-3)
    고린도에서 바울의 직업은 무엇이었습니까? (18:3)

  2. 바울은 고린도에 얼마나 머물렀나요?(18:11) 
                                                                                    
  3.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상태는 어떤 상태라고 생각됩니까? (18:5)
       ①                                                                                 
       ②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다. 이 붙잡히는 단어가 “쉬네코”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마 4: 24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눅 4: 38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붙들인지라

  4.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전한다.”라는 것은 그 당시 사람에게 어떤 일이었나요?(고전1:23-24)
    하나님께서 어떻게 바울을 위로해 주십니까?(18:9-10)         
                                                                                     

생각해봅시다.                                                                 

  1.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나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생각해 봅시다.

  2.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로서, 나는 어떤 상태인가요?
인간이란 도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 안에 감추어지고, 그리스도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난 분, 아주 사랑스러운 분으로 드러나신다.(행적 274p)

글라우디오가…명하여. 수에토니우스는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한 일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유대인이 크레스투스(Chrestus)의 사주를 받아 끊임없이 분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글라우디오]가 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였다”(Lives of the Caesars v. 25. 4; Loeb ed., Suetonius, vol. 2, 53). 당시 상당히 큰 유대인 거류지가 로마 도성 안의 야니쿨룸(Janiculum) 언덕 기슭에 있었다(참조 542쪽 지도). 그들은 로마 상류계급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자신들의 회당과 기도 장소(참조 16:13 주석)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렐리기오 리치타(religio licita, 법적으로 인정된 종교)로 관대히 다루어졌고, 압비아 가도(Appian Way)를 따라 놓여 있는 그들 소유의 공동묘지가 있었다. 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라는 명령은 갑작스러웠던 것으로 보이는데, 수에토니우스는 라틴어로 “크레스투스”(Chrestus)라고 불리는 사람이 이 명령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수에토니우스는 이 사람에 관하여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 헬라어 “i”(이)와 “e”(에)의 발음은 거의 구별되지 않았고, 테르툴리아누스(Apology iii. 5)는, 헬라어 이름 크리스토스(Christos)가 종종 “좋은”, “유용한” 또는 “친절한”을 의미하는 크레스토스(Chre-stos)와 같게 발음되었다고 말한다. 글라우디오의 포고령에 대한 가능한 설명은 오순절 후에 그리스도인들이 로마로 왔고, 비시디아 안디옥(13:50), 루스드라(14:19), 데살로니가(17:5~8) 그리고 베뢰아(17:13)에서와 같은 소동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은 메시야라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자나 거절한 자 모두의 입에 오르내렸다. 따라서 언어와 명칭(18:15)에 관한 문제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갈리오와 같은 로마 행정관들은 쉽게 그리스도를 여러 당파 중 하나의 지도자로 생각했을 것이고, 지상의 왕권을 주장한 자로 추측했을 것이다(17:7의 데살로니가에서처럼). 이 설명은 소동, 명칭의 혼란 그리고 추방령이 왜 일어났는지 밝혀 줄 것이다(참조 제10권, 80, 81).  
아굴라와 그의 부인은 추방될 때까지 로마에 있었으며, 로마에 있는 다수의 유대인 또는 그들의 후손이 자유민(참조 6:9 주석)이었던 점으로 보아, 아굴라나 그의 부모도 그 계층에 속했을 가능성이 있다. 후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로마로 돌아간 것으로 언급되었는데(롬 16:3), 그랬다면 바울과 함께 에베소에 있었던 이후에 돌아갔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울이 거기서 고린도전서를 쓸 때 함께 있었고(고전 16:19), 그들이 살던 집은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예배 장소로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두 번째 편지를 보낼 때 디모데가 에베소에 있었다면 그들도 그 도시에 있었다(딤후 4:19). 그들의 움직임에 대하여 더 이상 알려진 것은 없다.
로마에서 누가 새로운 신앙을 처음으로 전했는지 다음 자료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1) 팔레스타인에서 복음이 괄목할 만큼 성공적으로 전파되고 있었는데 로마의 유대인들이 그것에 대해 어떤 확실한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오순절 이후 25년이 지나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2) 오순절에 참석했던 사람들 중에는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2:10)이 있었다. (3) 스데반과 변론했던 헬라파 유대인 중에는 로마의 자유인들이 있었으며 스데반 자신이 그 계층에 속했을 수도 있다(참조 6:5, 9 주석). (4) 바울이 문안한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그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롬 16:7). 따라서 전승이 공로가 있다고 말하는 사도 베드로가 아니라, 이들 가운데서 로마 교회 설립자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신학이 바울에게 영향을 미친 스데반에 의해 구축된 위대한 원칙들과 같은 것임을 가리킨다. 이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어떻게 그토록 쉽게 고린도에서 바울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도 설명해 줄 것이다. 바울이 롬 16:3~15에서 이름을 열거한 많은 사람이 글라우디오 당시 로마에서 추방당했고, 후에 되돌아갔다. 

장막을 만드는 것. 장막을 만드는 일은 바울이 고향 다소에서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일이었다. 다소는 당시와 그 후에도 범포(帆布)와 장막 제작에 다량 요구되는 염소 털 직물로 유명했고, 로마인에게는 킬리키움(cilicium)이라는 로마 속주의 이름을 통해 알려졌다. 아굴라의 출생지인 로마의 속주인 본도 역시 같은 제품으로 유명했는데, 이 제품의 재료는 타우루스(Taurus) 산지의 비탈과 주위 방목지에서 길러진 염소들에 의해 공급되었다. 부유했음직한 바울의 배경과 그가 고등 교육을 받았다는 암시는 그가 일을 배워야했다는 사실과 무관하다. “아들에게 직업을 가르치지 않는 자는 그가 도둑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라는 랍비의 격언은 히브리 가정에서 거의 보편적인 가르침이었기 때문이다. 예로, 저명한 힐렐도 목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처럼 고린도에서도 생계를 위하여 일할 준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그리하여 개인의 이익을 위해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비난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고전 9:15~19; 고후 11:7~13; 살전 2:9). 그는 고린도에서 임금을 위해 일하는 기술자 또는 유대인의 일터에서 일꾼으로 시작했고, 아직 일개 유대인 이상의 존재로는 고린도 도시에 알려지지는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제임스왕역」에는 “pressed in the spirit”[심령의 강권을 받아]).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는 “그가 말씀[또는 “기별”]에 붙잡혀[또는 “강권을 받아”]”라는 독법을 증거한다. 「개정표준역」에는 조금 약한 어조로 바울은 “말씀을 전하는 데 사로잡혀”라고 되어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기에 그것을 말해야 할 충동을 느꼈다(참조 시 39:3). 실라와 디모데의 도착과 설교하고자 하는 바울의 충동에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물론 그들이 가지고 왔을지도 모르는 선물들 때문에 바울이 한동안 말씀을 전하는 데 전념하도록 도움을 주었다고 볼 수는 있지만, 그의 생업을 게으르게 했다는 암시는 없으며 고전 9장도 이런 생각과 배치된다. 그는 이미 말씀을 전할 충동에 사로잡혀 있었고, 따라서 실라와 디모데에게 들은 고무적인 소식으로 그 충동이 강화되었을 뿐이다.예수는 그리스도라…증거하니. 예수가 유대인들이 알아야 했던 고난당하는 메시야 곧 구주이자 진리 자체임을 강조한다.
피. 그는 비유적인 언어를 써서 “피”라는 단어를 “파멸”의 의미로 사용한다(참조 수 2:19). 여기에 표현된 사상과 형태는 본질적으로 히브리식이다(참조 마 27:25 주석). 자신의 책임을 파수꾼으로 정의한 에스겔의 표현과 비교하라(겔 3:18, 19).
두려워하지 말며. 이 말은 이때 바울이 어떤 두려움과 낙담에 빠져 있었으며 주를 위하여 시도하던 일에 무거운 부담을 느꼈음을 의미한다. 회심자 대부분은 노예나 자유민 계층이었으며 바울과 유사한 문화 배경을 가진 헬라인이나 유대인들은 그의 전도를 받아들이는 데 더뎌 보였다(참고 고전 1:26, 27). 분명히 그는 또한 개인적으로 육체적인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는 이미 욕설을 퍼붓는 유대인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았다. 이런 일은 쉽게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주님은 인자하게 “두려워 말라”는 말씀으로 권고하였다.

잠잠하지 말고. 말씀에 열매가 없는 것처럼 보여 마음이 약해진 순간 침묵 속에 안주하려는 유혹을 받았으나, 전보다 더 줄기차게 복음을 전하라는 권고가 왔다. 어떤 것도 바울의 증언을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 엘리야가 이와 유사한 낙담의 위기를 겪었고(왕상 19:4~14), 예레미야도 두 번 이상 이런 일을 경험하였다(렘 1:6~8; 15:15~21).
말하라. 즉 “말을 계속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원문에서 “내”가 강조된다. 예수가 준 명령에 뒤이어 그 순간 바울의 필요에 부응하는 약속이 뒤따랐다. 사람들은 그를 반대했으나 그리스도는 그와 함께 있었다. 교회 전체에게 주어졌던 “볼지어다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 28:20)는 약속은, 여기서 바울에게 개인적으로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반복되었다. 이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고통의 삶을 의미했지만 사람의 악한 계획이 제어되고 바울의 사역이 영구히 방해받지 않으리라는 보증이 함께 있었다.

해롭게 할. “너를 해할”, “학대할.” 그리스도는 바울에게 공격에서 벗어날 것을 약속하지 않았다. 다만 적이 그에게 폭력을 행사하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바울에게 이 보증은 수 세기 전 엘리야가 경험하고 선포한 대로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음을(왕하 6:16) 의미했다. 
백성이 많음이라. 엘리야가 약할 때,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겼도다”(왕상 19:18)라고 들려준 말을 생각나게 한다. 고린도의 죄악들(고전 5:10, 11)에 깊이 얽혀 있는 사람 중에도 구원을 사모하고 회개의 초청을 기다리는 정직한 영혼들이 있었다. 이 초청은 반드시 바울과 동역자들이 해야 한다.
당시 고린도는 상업 활동의 요긴한 중심지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말해서 처음부터 교회는 좋은 평판을 갖는 것이 절대 필요했다. 고린도의 그리스도인 공동체 확장과 중요성은 바울이 후에 거기 있는 교회에 쓴 편지서들에서 볼 수 있다. 주는 이상을 통하여 바울의 설교가 큰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자비로운 확신을 주었다. 그는 위안을 갖고 일어섰고 어떤 일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11. 일 년 육 개월. 고린도에서 보낸 시간은 바울에게 교회를 세우고 조직하는 기회뿐 아니라 겐그레아 항구(롬 16:1)와 같은 이웃 지역에서 일할 기회도 제공하였다. 고린도인들에게 가르치고 설교한 것 외에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그의 가장 초기 서신으로 알려진 두 서신을 보냈다. 데살로니가전·후서는, 야고보서가 먼저 기록되지 않았다면 신약 중 가장 오래된 문헌일 것이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라는 고린도후서의 인사말(고후 1:1)은 복음 전파가 명백하게 이 도시 지경을 넘어선 것을 가리킨다. 바울은 이러한 광범위한 결실을 이상 중에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받아들였고, 이는 다가오는 다음 박해를 위해 그를 준비시켰다.
언어와 명칭. 또는 “말과 명칭.” 틀림없이 유대인들은 기회만 주어졌다면 바울의 가르침에 관련된 많은 것들을 계속 제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그리스도인지에 관련된 문제는 로마인에게 오로지 신학적 정의의 문제였지 로마법에 관계된 문제는 아니었다. 만약 갈리오가 로마에서(참조 2절 주석) “크레스투스”라는 이름을 들었다면 그는 훨씬 쉽게 황제의 명령을 따랐을 것이고 되도록 속히 유대인 논쟁자들을 제거했을 것이다(참조 23:29).

너희 법. 문자적으로 “너희에게 맞는 법.” 갈리오는 강조하여 말함으로써 그들이 법에 호소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고 있음을 넌지시 말했다. 그들의 경우는 로마법보다는 유대법에 관련 있었고, 따라서 그는 연루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헬라어 단어 “재판장”과 대명사 “나”가 강조되어 있다. 갈리오는 이 사건이 로마법과 관련이 없었으므로 재판을 거부하였다.

16. 저희를…쫓아내니. 분명히 시장 곧 재판 자리에 릭토르(lictor, 집정관을 따라다니며 죄인을 잡던 관리-역자 주)와 다른 관리들과 함께 앉아 있던 갈리오는 “언어와 명칭”에 관한 문제를 일으키는 논쟁자들을 거기서 몰아내라고 명령했다. 그는 고린도의 번잡한 상업 생활에서 재판권을 행사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았다.

17. 회당장. 참조 8절. 소스데네는 그리스보의 회심(8절) 후에 회당장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총독 앞에서 즉시 바울을 고소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대적하는 열의를 보여 주었을 것이다. 그는 대변자로서 둘러싼 군중의 눈길을 끌었을 것이고 그들 중 다수는 헬라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갈리오의 경멸하는 어감을 알아챘고, 또한 스스로 터득한 교훈에 따라 그의 반대 결정을 따랐는데, 이 결정은 매우 서투른 결정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유대인들이 패소한 후에 그들의 새 지도자에게 등을 돌렸을 수도 있다. 틀림없이 이방인 중에 바울을 동정하는 사람이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군중은 소스데네를 특별히 지목하여 끌어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사도행전연구1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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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7:1-34

[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4]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
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내용 요약

  1. 데살로니가 전도 (1-9)
  2. 베뢰아 전도 (10-15)
  3. 아덴 전도 (16-34)

배 경 

바울은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 빌립보를 지나 데살로니가에 이르고 마침내는 당시 최대의 문명과 철학의 도시 아덴에 이른다. 유럽에서의 바울의 행적이 빠른 템포로 전개되고 있다. 

 “십자가를 전하는 기별자들은 깨어 기도함으로 자신들을 무장하여 항상 예수의 이름으로 일하며, 믿음과 용기로 전진해야 한다.(행적 230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시기하는 마음이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준 적이 있나요?

  2. 주변인물 중 가장 신사적인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그 사람의 어떤 모습이 신사적이라고 생각하세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비신사적 행동은 무엇입니까?(1-9)
       *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의 둘째 전도지로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로서 정치, 교통, 무역의 중심지였다. 그곳은 마게도냐 최대의 무역항구다. 알렉산더 대왕의 군사들도 이 항구에서 동방을 점령하기 위해 떠났을 것이다. 카산더(Cassander)가 B.C,315년에 건축하여 그의 아내 이름을 따서 명명했으며 온천지대에 위치해 있다. 바울은 이 교회를 위해 2개의 편지서를 썼다. 

  2.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11-14)
      
  3. 바울의 설교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7:24-31)
    * 아테네는 헬레니즘의 본 고장이다. 헬라문화의 중심지이며 헬라의 수도다. 예루살렘이 영적인 수도라면 로마는 정치적인 수도였고 아테네는 문화적인 수도였다.  철학, 예술, 사상의 중심지이며 이교숭배의 중심지였다. 
       ①                                                                              
       ②
       ③                                                                                             

  4. 아덴 설교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17:32-34)
             
                                                                                     

생각해봅시다                                                             

  1.  내가 가장 닮고 싶고 전하고 싶은 예수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2. 자신에게 있어서 사람들의 반응에 관계없이 하나님 앞에서 변함없이 감당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능력과 그들의 여러 가지 필요에 요구되는 지혜를 주실 수 있으실 뿐더러 즐겨 주시고자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신뢰를 두는 이들에게 그들의 최고의 기대 그 이상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행적 242p)

 


1. 암비볼리. 빌립보에서 남서쪽으로 약 48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초기 시대에는 이 도시가 전략적인 위치라는 인식 때문에 엔네아 호도이(Ennea Hodoi, “아홉 개의 길”)라고 알려져 있었다. 로마 치하에서 로마의 속주(屬州) 마게도냐를 네 지역으로 분할했는데 암비볼리가 그중 첫 번째 지역의 수도가 되었다.

아볼로니아. 암비볼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48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이 도시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얼마 전 채찍을 맞은 이들에게 하루 약 48킬로미터라는 여행 거리는 큰 피로를 안겨 주었지만 방금 언급된 두 도시가 빌립보에서 온 이 여행자들에게 밤을 지낼 수 있는 휴식처가 되었을 것이다. 이 두 지역에는 유대인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데살로니가. 아볼로에서 서쪽으로 약 59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이 도시는 일찍이 테르매(Thermae)로 알려졌으나 마게도냐의 필립에 의하여 확장되었고, 캇산드로스(Cassander)가 필립의 딸이자 그의 부인인 텟살로니케(Thessalonike)에게 경의를 표하여 이 이름을 붙였다. 이곳은 테르매 만()에 위치한 교역의 적지(適地)였으며 꽤 중요한 항구가 되었다. 아직도 텟살로니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곳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도시이다.

야손. 히브리어로는 여호수아에 해당하며 유대인들이 종종 차용했던 헬라어 이름이다(마카베오24:7; 참조 Josephus Antiquities xii. 5. 1 [239]). 이 이름은 바울의 친족”(16:21) 명단에도 나오지만, 바울의 데살로니가 친구를 가리키는 것임을 제시하는 증거는 없다. 바울이 그와 함께 거했다는 것은 그가 유대인이었음을 가리킬 수 있다. 그는 호의적인 행동 때문에 믿지 않는 동포들로부터 광적인 분노를 샀다.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21:38; 5:12에서처럼 천하를 선동했다는 의미이다. “천하” (헬라어 오이쿠메네[oikoumene-])에 대해서는 마 24:14; 2:1 주석을 참조하라. 엘리야(왕상 18:17)3세기 그리스도인들(Tertullian Apology 40; Ad Nationes 9)도 문제를 일으킨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와 유사한 고소가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질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14, 615,).

이 상황에서 고소는 순간적인 격분으로 과장되었음이 분명하지만 그 취지가 심상치 않았다. 로마인들은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고, 따라서 이를 저해하는 자들을 혹독하게 다룰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고소가 과장되었겠지만, 이것은 회심자들을 얻는 선교사들의 명성이 그들보다 먼저 데살로니가로 들어갔음을 보여 주며, 그리스도교가 신속하게 전파되고 있음을 증거한다.

 

9. . 헬라어 히카노스(hikanos). 문자적으로 충분한.” 여기서는 보석금에 해당하는 전문 용어로 사용되었다. 아마도 야손은 바울과 실라를 직접 내주는 대신에, 이 전도자들이 다시 돌아와 도시를 어지럽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증표로, 혹은 야손 자신의 선한 행위에 대한 보증으로 돈을 주었던 것 같다. 그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은 선교사들 때문에 큰 위기를 겪었지만 복음을 위하여 기꺼이 그 위험을 감수했다(참조 살전 1:6; 2:14). 행정관들은 무분별한 결정을 내리는 데 휩쓸려 들어가기를 거절했는데 그들의 올바른 판단은 칭찬할 만하다. 그들은 유죄 판결을 위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베뢰아. 데살로니가에서 남서쪽으로 약 80킬로미터 떨어진 마게도냐의 작은 도시. 이 도시는 상업적인 면으로는 데살로니가보다 훨씬 덜 중요했다. 오늘날의 지명 베리아(Verria)에 이 도시의 이름이 아직도 남아 있다.

 

11. 신사적. 문자적으로 문벌 좋은”(참조 고전 1:26). 귀족 태생의 특징이 될 수 있는 고결하고 관대한 기질을 가리킨다. 사도와 누가가 베뢰아 유대인들을 칭찬한 것은 그들의 친절과 개방된 마음 때문이었다. 데살로니가 회당의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그들은 편견의 노예가 아니었으며 열린 마음으로 바울이 제시하는 진리들을 연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열심으로.” 그들은 깨달음 얻기를 간절히 원했다.

말씀을 받고. 즉 하나님의 말씀.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에게 가르쳤던 것과 똑같은 성경의 교훈을 가르쳤다(3).

상고하므로. 헬라어 아나크리노(anakrino-). 4:9; 12:19에서처럼 특별히 법률적 의미에서 면밀히 [증거를] 조사하다”, “심사하다”, “연구하다.” 5:39에서는 다른 단어 에류나오(ereunao-, “살펴보다”, “탐구하다”)가 쓰였다. 베뢰아 사람들은 성경을 연구하는 데 성화된 지성을 활용했으며, 영감의 말씀이 메시야가 고난받고 다시 살아날 것을 말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증거를 면밀히 연구하여 진리를 발견하면, 새로운 가르침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의 신실함을 입증했다. 특히 개인적 판단의 권리를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베뢰아의 회심자들은, 한편으로는 경신(輕信)과 다른 한편으로는 회의주의를 피하면서 이성과 믿음의 올바른 관계를 보여 주는 사람들의 대표자로 여겨져 왔다. 그들은 진리로 제시된 것을 고찰하고, 존중되는 권위인 성경에 비추어 살펴보고, 마침내 그들이 발견한 진리를 따름으로써 좇을 만한 모본을 제시했다.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 이들은 선교사들을 성읍에서 쫓아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증오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베뢰아까지 추격했다(참조 14:19 주석).

저자. 헬라어 아고라(agora). 참조 마 11:16; 16:19 주석. 아덴에는 저자가 두 곳 있었는데, 하나는 상업적 시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여기 언급된 것과 같이 그곳의 사교적 중심지였다. 바울 당시 이곳은 헬라의 만신전(pantheon)에 있는 대부분의 신들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영웅의 형상과 무수한 조상(彫像)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 저자는 아덴에서 대부분의 정치적 및 철학적 논쟁이 벌어지는 장소였다. 여기서 바울은 상당한 식견을 갖춘 철학자들과 철학 애호가들이 서로 그리고 청중과 벌이는 논쟁을 볼 수 있었다. 사도는 이 논쟁에 자유롭게 참여해 자신의 삶의 철학을 설명했을 것이다.

바울은 바로 이 예수를 아덴의 회의적인 지식인들에게 담대하게 선포한다.

부활. 이것 또한 초기교회 설교의 중심 주제였다(참조 2:24; 3:15; 4:2, 10; 10:40 ). 바울은 부활한 주(9:4~6)와 대화했기 때문에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입증할 수 있었다. 사도는 또한 모든 사람의 마지막 부활(참조 행 17:32; 고전 15:51; 살전 4:14~16 주석)을 가르쳤고, 이것은 아덴의 철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들은 이미 영혼의 불멸을 믿고 있었으나, 실제적인 신체의 부활에 대해 듣고 깜짝 놀랐다. 고전 15:35~44에서, 이 교리에 대한 반대 이론의 성격과 바울이 그들에게 어떻게 대답했는지 볼 수 있다.

종교성이 많도다. 헬라어 데이시다이모네스테로이(deisidaimonesteroi). 데이도(deido-, “두려워하다”)와 다이몬(daimo-n, “”)으로 이루어진 비교급 형용사로, “더욱 신을 경외하는으로 번역할 수 있다. 이 헬라어 단어(데이시다이몬[deisidaimo-n])는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 양쪽으로 쓰였다. 데이시다이몬은 점쟁이에게 조언을 구하며 징조를 믿는 자를 말하며, 예컨대 길에서 족제비를 보면 여행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높은 지위에서 지나치게 광신적이었던 사람의 현저한 예증으로 아덴 장군 니치아스(Nicias)를 들 수 있는데, 그는 항상 신들이 질투한다는 생각에 압박을 받았으며, 그래서 월식 때문에 중요한 전략적 이동을 철회했다(Thucydides History vii. 504). 스토아 철학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editations i. 16)는 그 자신이 데이시다이몬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의 헌신에 의하여 쎄오세베스(theosebe-s) 즉 경건한 사람(ibid. i. 3)이 된 것을 기뻐하였다. 바울은 연설을 시작하면서 경멸적인 말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었다. 오히려 그는 아덴인들이 모든 형태의 신을 알고자 노력하는 신중한 태도를 칭찬하고자 했다. 그러한 시작은 철학자들과, 일반 아덴인들의 주의를 끌었을 것이다.

 

24. 우주를 지으신. 여기서 사도는 자신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궁극적 신원을 제시하는데, 그분은 창조주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모든 거짓 신과 구별한다(참조 렘 10:10~12 주석). 인격적인 하나님에 의한 창조는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에 반대되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바울이 그렇게 말한 것이 청중에게 놀라움과 흥미를 일으켰으므로 계속 말하도록 허락되었다. “우주”(코스모스)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인들이 질서 잡힌 우주를 말할 때 사용했으므로 하늘과 땅모두를 포함할 수 있다(참조 마 4:8 주석).

주재시니. 바울의 하나님이 다른 모든 가상적인 신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높은, 전 우주의 소유자이며 통치자임을 말한다.

생명과 호흡. 이 두 명사는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이해시키기 위해 쓰였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최초의 생명을 주고, 육적인 호흡을 부여하여 그것을 유지케 하신다. 이와 같이 바울은 인간이 참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26. 한 혈통. “혈통의 생략을 지지하는 중요한 본문상의 증거(참조 20)를 제시할 수 있는데, 후에 뜻을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첨가되었을 수 있다. 바울은 모든 사람 곧 모든 족속이 한 조상 아담으로부터 나왔다는 역사적 진리를 말하고 있다. 이런 사상은 어떤 헬라인도 그리고 특별히 어떤 아덴 사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렇듯 헬라인과 야만인을 구별하는 것은 뿌리 깊고도 중요했다. 어떤 부류는 본질상 다른 부류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였다(Aristotle Politics i. 2. 6). 그러나 바울의 신학에는 우성종족을 위한 자리가 없었다. 그는 창세기의 인간 창조 이야기를 믿었다. 그는 신체 구조뿐 아니라 잠재적 및 실제적 발전의 동일성을 보았으며, 이는 히브리인이나 헬라인이나 라틴인이나 튜튼인 등 어떤 종족이나 국가를 막론하고, 자기가 인류의 정화(精華)라고 생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연합을 강조하는 갈 3:28; 3:11을 비교하라. 그리스도인은 창조와 구원을 통해 인간이 하나임을 배나 인정해야 한다.

이 시는 큰 흥미를 더해 주는데, 에피메니데스와 알지 못하는 신”(참조 23)에게 드려진 제단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서뿐 아니라, 바울이 딛 1:12에서 사용한 그레데인에 관한 인용문에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후에 바울이 에피메니데스를 인용한 사실은 에피메니데스의 시를 잘 알고 있었음을 더욱 분명히 해 준다.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8절 후반부는 헬라 시()에서 따온 인용문임이 분명하며, 바울이 사용한 것이다. 이것은 스토아 학파의 창시자인 제논(Zeno)의 친구 아라투스(BC 270)의 시에서 인용한 것이다. 아라투스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길리기아 출신이었다. 그의 교훈 시 패노메나(Phaenomena)는 당시 알려진 천문학과 기상학의 중요한 사실들을 다루었으며, 제우스에 대한 탄원으로 시작하고 바울이 인용한 말을 포함한다.

제우스로부터 시작해 봅시다. 우리네 유한한 인생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수 없나니

모든 거리와 사람들의 모든 시장이 제우스로 가득 차고

바다와 하늘에도 가득하구나.

우리 모두는 항상 제우스가 필요하나니

우리 또한 그의 소생이기 때문이니라

(Phaenomena 1~5; Loeb ed., 381).

이 인용은 즉시 청중의 주의를 끌었을 것이다. 바울은 그들의 문학을 인용함으로써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되었다(고전 9:22)고 말한 자신의 방침을 실증하였다. 그들은 헬라 도시들에 아주 흔한 상인이나 무당처럼 교육받지 못한 유대인을 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과 같은 문화를 지니고 있고 그들의 시인들의 사상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대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고전에 대한 바울의 학식을 과장할 필요는 없으나 여기 언급된 인용들과 고전 15:32의 인용을 보면 사도가 헬라의 저술가들을 익히 알고 있었고, 필요한 상황에서는 그들의 작품에서 적절한 인용문을 끌어냈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하여 그는 활용한 말의 문맥 속에 드러난 의미를 전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고, 그가 제시하는 더 고상한 가르침을 조명하기 위해 헬라의 저술가들을 사용했을 뿐이다.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심리적인 접근 방법은 배울 만하다. 사도는 처음부터 그들이 자신들을 과대 평가하고 있다는 것, 그들이 흙으로 된 피조물에 불과하며 사단의 자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너무 낮게 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손임을 잊어버렸고 심지어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13:46)로 자신들을 평가하였다.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마게도냐의 부르심)-사도행전연구16.pdf
1.19MB

행 16:1-40

[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 그와 그 집이 다 침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19]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침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35]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36]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37]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38]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39]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내용 요약

  1. 디모데를 선택함 (1-5)
  2. 마게도냐의 간청 (6-10)
  3. 빌립보 사건 (11-40)

 

배 경 

15장에서 예루살렘 총회가 끝난 후 16장부터 제2차 전도여행이 시작된다. 제2차 전도여행의 중대한 의미는 복음이 아시아를 넘어 드디어 유럽으로 전파되는 데에 있다. 마게도냐의 부르짖음은 곧 유럽의 손짓인 것이다. 우리는 제16장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복음이 어떻게 유럽에 건너가는가를 보게 된다. 

 

"칠흙같이 어둡고 황폐한 토굴 가운데서도 그들은 기도하는 말로 서로 격려하고 하나님께 찬양의 노래를 불렀다. 그 까닭은 하나님을 위하여 수치를 당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행적 213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나에게 가장 뜻 깊은 여행은 어떤 여행이었나요?

  2.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본인이 생각하고 계획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도된 경험이 있나요?

  3. 신앙의 신실한 동역자며, 자신의 영적 아들 혹은 영적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있나요?

  4. 예배와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모임에 참석하는 행위가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적이 있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디모데의 가정에 대해 말해 봅시다. (행16:1-2, 딤후1:5)
     * 그는 특별히 찬란한 재간을 가지지는 아니하였으나 그의 사명이 중하였으니 이는 그가 천부의 능력을 주를 섬기는 일에 사용한 까닭이었다(행적, 203). 루스드라가 그의 고향이었다. 경건한 신앙의 가정에서 출생하였으며(딤후1:5) 어려서부터 성경을 공부했다(딤후3:15).

  2. 바울이 마게도냐지역으로 인도 되어 가는 여정을 이야기해 봅시다.
      
  3. 왜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16:6-10)
                                                                                       
  4. 바울은 회당이 없는 빌립보에서 안식일을 어떻게 지켰습니까? (16:13)

  5. 빌립보의 첫 열매인 루디아를 만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16:13)
      
  6. 간수는 왜 죄수인 바울 앞에 굴복했을까요? (16:29) 
                                                                           
  7. 바울은 왜 감옥을 나가지 않고 상관들이 와서 사과하기를 요청했을까요?

 

생각해봅시다

  1. 우리에게는 마게도냐의 부르심이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2. 바울은 로마 시민으로서 왜 안 맞아도 될 매를 맞고 감옥에 들어가는 고생을 당했을까 생각해 봅시다. 

사도들은 빌립보에서의 그들의 수고를 헛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많은 반대와 박해를 당하였으나, 저희가 당한 수치와 고통을 속하고도 남을 만큼 그들을 위한 섭리의 중재와 간수와 그 가족의 회심을 목도하였다. 부당한 투옥과 기적적인 구출에 대한 소식은 그 지역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져 달리 접촉할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사도들의 사업이 알려지게 되었다.(행적218p)

 


1. 디모데(Timotheus). 흔한 헬라어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얻은 자라는 뜻이다. 그 이름의 영어식 표기는 “Timothy”이다. 디모데는 아마도 제1차 선교여행 때 루스드라와 더베를 방문한 바울에 의해 회심했을 것이다(참조 14:6 주석). 그리하여 바울은 진정으로 디모데를 내 사랑하는 아들“(고전 4:17) 그리고 믿음 안에서 참 아들“(딤전 1:2)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디모데는 나이가 많지 않았고(딤전 4:12; 참조 사도행적, 203), 그의 연소함이 약 12년 후에 딤전 4:12에 여전히 언급된 것을 보면, 그의 나이가 아마도 18세나 20세를 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바울이 루스드라를 떠난 후 거의 2년이 지난 후(이에 대한 연대기를 알려면 60, 62쪽을 참조하라), 디모데는 헌신과 거짓이 없는 믿음”(딤후 1:5)으로 좋은 평판을 얻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구약을 배우며 양육받았다(딤후 3:15). 디모데가 루스드라뿐 아니라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도 칭찬을 받았다는 사실(16:2)은 그가 두 교회 간의 교제를 유지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음을 시사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거나 편지 가운데서 그를 언급할 때 그가 신체적으로 강하지 못하고 고된 선교 사업을 수행함으로써 나중에 더 약해진 것처럼 쓰고 있다(딤전 5:23). 디모데는 감성적으로 보였지만(딤후 1:4),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고난과 책임을 감당할 준비를 갖추었다(고전 16:10).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한 동역자로 언급되고(16:21), 최소한 드로아까지 2차와 제3차 선교여행에서 그의 사업의 동료였다(20:4, 5). 고전 4:17에서 우리는 디모데가 고린도로 보낸 바울의 사자였음을 알게 되고, 고후 1:1에서 고린도 교회에 대한 문안에서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등장한다. 그는 또한 바울과 데살로니가 교회 사이의 연락자였고(살전 3:2, 6), 빌립보서(1:1; 2:19), 골로새서(1:1), 빌레몬서(1)에 그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 바울의 로마 첫 투옥기간에 함께 그곳에 있었다. 13:23은 그의 투옥을 말하는데, 언제, 어디서였는지는 알 수 없다. 유세비우스(Ecclesiastical History . 4. 5)는 그를 에베소의 첫 감독이라고 기록한다. 디모데는 에베소 사람들의 손에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3. 할례를 행하니. 아마도 바울 자신이 의식을 집례했을 것이다. 언뜻 보기에 바울의 이 행동은 할례 주기를 거절한 디도에 관한 그의 행동과, 할례에 관한 그의 일반적인 가르침에(고전 7:18, 19; 5:2~6)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디도와 디모데의 경우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디도는 헬라인이었고, 그에게 할례를 주는 것은 바울이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원칙을 양보하는 일이 될 것이었다. 디모데는 혼합 혈통을 가졌지만, 유대인이었다. 왜냐하면 랍비의 법전은 유대인 어머니의 자녀는 유대인으로 간주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Talmud Yebamoth 45b, Soncino ed., 297). 만약 디모데의 부모가 모두 신실한 유대인이었다면, 그는 제8일에 할례를 받았겠지만(12:3), 틀림없이 부모의 종교적 차이가 그의 할례를 막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젊은 디모데는 바야흐로 공중 봉사를 시작하여 유대인들과 밀접한 접촉을 갖게 되었다. 만약 그가 할례를 받지 않으면, 제대로 되지 못한 유대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좋은 안내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에게 문젯거리가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른 이들에게 거리낌을 주지 않기 위해 유대 배경을 가진 이 청년에게 할례를 주는 것이, 할례가 영적으로 필요하며 구원에 필수적이라는 가르침을 반대하는 일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이것은 자신이 선언한 가치관과 조화를 이루었고(참조 고전 9:20 주석), 누가가 그 행동을 유대인을 인하여라고 기록한 이유이다.

 

6. 성령. 어떻게 성령이 바울을 가르쳤는지, 내적인 감동에서인지, 밤에 이상이나, 은사를 받은 자들을 통해 주어진 예언들에 의해서인지(참조 21:4) 누가는 언급하지 않는다(참조 2:4; 8:29, 39; 13:2 주석). 그러나 바울이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자신이 아시아와 비두니아로 들어가는 것을 막으시는 것을 알고(16:7) 이 두 지역에 들어가지 않았다. 한동안 그는, 큰 유대인 사회가 있고 우상숭배의 큰 중심지인 에베소와 서머나와 사데와 같이 사람들이 몰려 사는 도시들이 있는 아시아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 도시들이 틀림없이 바울에게 강하게 호소했지만, 바울은 성령의 명령에 완전히 순종했다. 그래서 그 선교사단은 다음에 어디에서 일할지 알지 못하고 북서쪽 해안을 향해 인도되었다.

 

7. 비두니아. 바울의 여행길 북쪽 지역에 위치한 비두니아에는 니코메디아(Nicomedia)와 니캐아(Nicaea) 같은 큰 도시와 상당수의 유대인 거주자가 있었다. 바울과 그의 일행이 다음에 그곳에서 일하고 싶었던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주께서는 자진해서 순종하는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다른 계획이 있었고, 그들은 북쪽이 아닌 서쪽으로 인도되었다(이 장 끝에 있는 추가적 설명을 참조하라). 여행 동안에 이 지점에서 그들이 한 어떤 사업에 대한 기록은 없다. 아마도 그들은 중요하지 않은 몇 마을을 그냥 통과한 것 같다.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베드로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서 사역했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그가 쓴 첫 편지는 이 지역에 있는 회심자들에게 보낸 것이기 때문이다(벧전 1:1). 이곳에서의 베드로의 사역과 관련된 시기는 대략 안디옥에서 있었던 그의 외식”(2:11~16) 이후였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유럽으로 가는 도중에 브루기아에서 활동하고, 외식”(2:13)한 바나바가 구브로에서 전도하는 동안(15:39), 베드로는 지금 성령이 바울을 막으시고 있는 북() 갈라디아를 포함한, 바로 그 지역에서 복음 사업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제안해 왔다. 이 시점에 바울과 베드로가 어느 정도까지 그들의 상이점을 조절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 두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은 다시 선교지에서 만나지 못함으로써 아마도 더 큰 오해의 아픔은 겪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사람의 터 위에 세우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다(15:20). 그러나 비두니아와 아시아에서의 사역을 금지한 주된 이유는 이때 복음이 유럽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8. 드로아. 드디어 그들은 해안에 도착했고, 에게 해(Aegean Sea) 저편으로 서쪽을 바라보았다. 알렉산드리아 드로아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경의를 표하여 그렇게 명명되었고, 이 당시 로마 식민지로서 자유 도시였다. 고대 도시 트로이는 드로아 북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고대 헬라 도시의 포위에 대한 호메로스의 기사에 거의 흥미가 없었다. 지금 그의 생각을 채우고 있는 관건은 무엇이 드로아의 주민들이 영생을 발견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구주로 선포하는 최선의 방법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생각들이 바울의 기도에서 나타났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9절에 기록된 환상이 주어졌다. 이 당시에 바울이 드로아에서 한 선교 사업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지만, 성경은 후에 그곳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충분한 증거를 제시한다(참조 행 20:5~12; 고후 2:12, 13; 딤후 4:13 주석).

 

13. 기도처. 헬라어 프로슈케(proseuche-). “기도.” 여기서는 기도 장소를 말할 것이다(참조 행 1:14; 16:16 주석; 마카베오37:20). 만약 빌립보에 회당이 없다면, 그 소수의 유대인들은 씻는 의식을 할 수 있도록 강둑 위에 집회 장소를 세웠을 것이다(참조 8:15, 21; 137:1). 유베날리스(Satires . 13, 14; Loeb ed., p. 33)는 이것을 로마 고대 종교의 부패에 대한 일례로 언급한다: “거룩한 샘과 숲과 신전들이 유대인들에게 유출되었다.” 같은 저자의 다른 글에 유사한 사례가 나타난다(ibid. 296; Loeb ed., p. 55). “말하라, 너의 선 곳이 어디인가? 어떤 기도처[프로슈케]에서 내가 너를 발견할까?” 그런 경내(境內)나 기도원들은 종종 원형이고 지붕이 없었다. 그런 장소를 소유하는 관습은 유대인들의 물가 기도”(orationes litorales)에 대해 말하는 테르툴리아누스 시대까지 지속되었다(Ad Nationes i. 13).

 

14. 자주장사. 즉 자주색 옷감 장사(참조 눅 16:19 주석). 남편이 아닌 그녀가 자주 장사로 명명된 사실은 그녀가 자기 소유의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고, 아마도 어느 정도의 자산가였다는 것을 시사한다.

 

16. 기도하는 곳에 (To prayer). 본문상의 증거(참조 20)그 기도”(to the prayer)라는 독법을 증거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 기도처에”(참조 13절 주석)라고 번역될 수 있다. 관사가 없다면 이 표현은 예배드리러 가다”(go to church)라는 현대의 표현과 비교할 수 있다. 이어지는 사건은 아마도 13절에 언급된 안식일이 지나고 첫 회심자들의 침례식 후(15), 곧 선교사들의 사업이 그 도시에서 꽤 알려진 어느 안식일에 있었을 것이다.

 

19. 이익. 헬라어 에르가시아(ergasia, 참조 19:24, 25 주석). 사람은 낯선 종교나 철학자들의 이론에 대해서는 관대할 수 있지만, 어떤 것이든 그들의 생계에 위협이 되는 것에는 격렬하게 분개한다(참조 19:23~28 주석). 초기교회의 많은 박해의 배후에 이런 정황이 있었을 것이다.

저자. 헬라어 아고라(agora, 참조 마 11:16 주석). 이것은 로마 광장(Roman Forum)에 해당했고, 친교와 상업뿐 아니라 사법 행정의 중심이었다.

 

20. 상관들. 헬라어 스트라테고이(strate--goi). “국가 관리관원들.” 이 관리에 대한 로마식 직함은 두움비리(duumviri) 또는 프라이토레스(praetores)였다. 이들은 로마의 식민지에서 최고 행정장관이었다. 보통 그런 관리가 두 명 있었다. 이들은 범법자에게 형벌을 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빌립보에서 나온 명각들은 그 도시 사람들이 두움비리라고 쓸 곳에 스트라테고이로 부정확하게 사용한 것을 보여 준다. 따라서 이것은 누가가 이 용어를 정확하게 사용했음을 확증한다.

 

22. 치라. 헬라어 랍디조(rhabdizo-). 랍도스(rhabdos) 막대기에서 파생된 막대기로 치다라는 의미로, 특히 로마 형벌의 한 형태이다. 스트라테고이(strate-goi, 참조 20절 주석)에게는 릭토르(lictor, 집정관 등을 따라다니며 죄인을 잡던 관리역자 주)라고 알려진 공식 수행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각각 직무의 상징으로 회초리 꾸러미를 가지고 다녔다. 그 막대기가 선교사들을 매질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 잔인한 형벌이 집행되는 것을 누가가 보았을 가능성이 있다. 바울은 두 번 다른 곳에서 유사한 고통을 당했다(참조 고 11:25). 바울이 후에 예루살렘에서 했던 것처럼(22:25), 로마 시민권을 근거로 그와 같은 수치스럽고 고통스런 처벌의 면제를 왜 주장하지 않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어떤 이들은 뚜렷한 근거 없이 그의 시민권 주장에 대해 진의를 묻는다. 다른 이들은 바울이 면제받을 수 있었으나 단지 그 자신만 그렇게 할 수 있었고, 실라는 그가 피한 그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실라 역시 로마 시민이었을 개연성이 크다(참조 16:37 주석). 아마도 군중들의 폭동 때문에 그의 주장이 거의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참조 37절 주석).

 

25. 기도하고찬미하매. 또는 기도하면서 그들은 찬미를 불렀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문은 두 개의 행동보다는 하나의 계속적인 행동을 표현한다. 선교사들의 잘 형성된 예배 습관은 가장 낙망적인 환경이라도 이겨냈다. 심지어 지하 감옥에서도, 족쇄에 채워져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도 없었지만 그들은 주님을 계속 찬미했다. 그 찬미는 기도 시편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들이 무슨 노래를 불렀든지, 테르툴리아누스의 말이 옳았다. “몸은 갇혔지만, 육체는 감금되었을지라도, 영혼에게는 모든 것이 열려 있다.마음이 하늘에 있을 때는 다리에 있는 사슬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Ad Martyras 2; ANF, vol. 3, 694).

 

27. 자결하려 하거늘. 간수는 죄수들이 달아나면, 로마법에 따라 자신의 생명으로 보상해야 한다는 것(참조 12:19 주석)을 알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는 자살이 더 나을 것처럼 보였다. 고전 세계의 가장 위대한 이교 사상가 중 어떤 이들은 이런 자살을 정당화하거나 심지어 칭찬할 만한 것이라고 여겼다.

 

28. 바울이소리질러. 내부 감옥의 침침한 어둠 속에서 바울은 외부 빛의 배경에 윤곽이 드러난 간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울은 공포에 사로잡힌 간수의 의도를 간파하고 그가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 깨닫자 곧 그의 자살을 막고자 했다. 심지어 자신이 당한 상당한 고통중에도 바울은 다른 사람의 구원을 생각했다. 그는 자신을 끔찍한 감옥으로 밀어 넣은 사람까지도 절망 가운데 멸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31. 그 집. 간수는 자신의 구원만을 확보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도 하나님의 선물을 누리게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종들과 협력하여 그의 가족들을 모으고 모두가 생명의 길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얼마나 특이한 회중인가! 얼마나 이상한 집회장소인가! 그러나 얼마나 복된 결과인가!

 

29. 부복하고. 간수는 그들을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말한 여종의 찬사를 들었을지도 모른다(17). 간수는 그가 받은 지시(23)를 통해 그들이 범상치 않은 죄수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제 그들이 도망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을 단순한 사람 이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37. 저희가 친히 와서. 상관들은 법적으로 정죄 받지 않은 사람에게 공공연히 형을 가하므로 중대한 실수를 범하였다. 이제 바울은 그들이 직접 불공정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대부분이 로마 시민인 빌립보의 회심자들이 더 나은 대우를 보장받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 바울의 개인적 명예가 아니라 복음의 명예가 달려 있었다.

 

40. 두 사람이나가. 사도들이 일단 상관들에게 그들의 심각한 실수를 보여 주고 또 공공연하게 복음을 옹호하고자 한 목적을 성취한 후에, 그들은 관대함의 본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자존심을 살리기 위한 어떤 난처한 요구도 하지 않고, 상관들의 요청에 조용히 응했다.

 

예루살렘 총회-사도행전 연구1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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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5:1-41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23]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24]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25]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26] (25절에 포함됨)

[27]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30]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31]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내용 요약

  1. 문제의 발단 (1-5)
  2. 예루살렘 총회 (6-29)
  3. 총회 결정사항의 전달 (30-41)

 

배 경

바울과 바나바의 제1차 전도여행이 성공을 거두고 이방의 지역에 여기저기 교회가 세워지자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했다.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이 강했으며 구원받기 위해서는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무수하게 개종해 들어온 이방인들에게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 준수와 할례를 요구했다. 그것은 바울의 가르침과는 반대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일대 위기에 직면했다.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총회가 열렸는데 총회는 오직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공식 확정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해 이 교리는 확고한 체계를 이루게 되었다. 이 15장의 회의야말로 그리스도교 역사상 최초의 회의이며 가장 중요한 회의였다.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10:15) 이 기별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모두 받아들이시고 인정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내었다.(행적 186 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우리사회에 편견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2. 우리 대학선교센터교회만의 문화가 있다면? 그 문화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3. 무거운 짐(육체적, 정신적)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 적이 있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발전하는 안디옥 교회에 무슨 문제가 일어났습니까? (15:1,2)
  2. 어떤 사람들은 누구겠습니까? (행 6:7 참고)
  3.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누가 예루살렘으로 파송되었습니까? 왜 그들이 적격자입니까? (15:2)
  4. 베드로의 발언 내용을 요약하면 무엇입니까? (15:7-11)
  5. 야고보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15:19-21)
  6. 마가(Mark)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봅시다.
    ① 가족관계 (행 12:12)
    ② 원래이름 (행 12:12)
    ③ 바나바와의 관계 (골 4:10)
    ④ 바울과의 관계 (행 15:38, 골4:10, 딤후 4:11)
    ⑤ 베드로와의 관계 (벧전 5:13)
    ⑥ 마가복음에 나온 마가 (막 14:51)

 

생각해봅시다.

  1. 우리는 교회가 내린 결정에 대하여 잘 따릅니까? 그것은 교회의 화평과 발전에 도움이 되나요?
  2. 우리에게도 마가와 닮은 꼴이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3. 마가에 대한 바울과 바나바의 입장 차이를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사명중심vs관계중심)
바울은 직접적인 지도를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향하는 반면, 항상 교회의 교제를 통해 연합을 이룬 신도들의 몸, 즉 교회에 부여된 권위를 인정하였다. 그는 자문이 필요함을 느꼈고, 중대한 문제가 일어났을 때에는 이것들을 교회 앞에 제출하여 형제들과 연합하여 하나님께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혜를 간구하기를 기뻐하였다.(행적200p)

 


1. 어떤 사람들. 이곳에 와서 분쟁을 일으킨 이들의 이름은 명시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된 바리새인들로 보인다(참조 5).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참조 7:8 주석. 이 요구는, 성경 다른 곳에 분명하게 진술되지 않은 사실 즉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의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요구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그리스도 교회에서 일어난 최초의 중대한 논쟁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서 시작된다. 이것은 그리스도 교회가 팔레스타인 지경을 넘어 확산되자마자 야기된 것이 분명하다. 그리스도 교회로 처음 개종한 이들은 유대인이었으나, 그들은 자신이 지켜온 대부분의 종교적인 관례와 편견을 여전히 간직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먼저 유대교로 확실히 개종하지 않은 채 그리스도 교회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충격을 받았다. 고넬료의 회심이나 심지어 에디오피아인과 사마리아인들의 회심 사건으로 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지금 반대를 제기한 그들도 고넬료와 그의 가속(家屬)이 입교하는 것을 기꺼이 수락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마도 고넬료의 경우에는 성령의 지시로 인해 예외가 발생했기 때문에 이것으로 할례의 규정을 무효화할 수는 없다고 논박했을 것이다. 따라서 성령의 분명한 인도로 침례을 받고 입교한 자들이라 해도 이제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이 선동자들은 안디옥에 와서 자신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의장인 야고보의 이름으로 말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야고보는 그들에게 그런 일을 위임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혔다(24). 하지만 야고보가 그의 개인의 삶에서 유대의 의식과 관습에 집착하는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에(참조 갈 2:12), 그들은 야고보의 가르침과 자신들의 가르침을 동일시해도 괜찮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들은 할례가 율법의 일부이기 때문에 소홀히 여겨지거나 거부된다면 이는 모든 율법이 파기된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율법의 올바른 관계를 인정할 준비도, 또 그렇게 할 마음도 없었다. 유대화주의자들이 안디옥에서 한 문제를 부각시켰는데, 이 문제가 바울의 사역 기간 내내 계속적인 불화의 원인이었고, 신약의 대부분과 심지어 사도시대 이후의 그리스도교 문학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주께서 왜 지상 봉사 기간에 이와 같은 문제들을 예견하지 못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분이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으나, 진정한 종교는 외적인 준수가 아닌 마음의 종교이어야 한다는 사실에 전반적인 강조점을 두었다. 그리스도는 광범위한 기초를 놓았고 세부적인 교리보다는 오히려 원칙들을 밝혔다. 교회가 성령에 의해 한 걸음씩 온전한 진리로 인도받아야 했다(16:13). 이것은 교회가 권위적인 전통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새로운 빛을 발견하여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 교회는 새로운 발전에 직면하여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했지만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사례들을 변경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은 아니었다(15:4). 새로운 빛은 예상치 못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성경 진리에 대한 더 많은 연구와 성경적 원칙들을 교회 사업에 적용함으로써 이르러 온다.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었다. 오래된 관례라는 근거로 또는 교인이 되는 조건으로 할례를 이방인들에게 요구할 수는 없었다. 유대화주의자들은 할례를 구원의 필수적인 단계로 제시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셨는데(14:27), 그것은 의문(儀文)에 속한 규례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음을 입증해 주는 진전이었다.

 

2. 바울과 바나바. 유대화주의자들이 이 요구를 통해, 이 두 선교사가 길리기아와 이곳 안디옥에서 그리고 그들의 첫 번째 선교여행에서 이룬 일 즉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승리로 밖에 해석할 수 없었던 그런 사업에 대해 노골적인 비난을 나타낸 점에 비춰볼 때, 바울과 바나바가 이 논쟁의 중심 표적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선포하였다. 이제 그들은 개심자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외적인 의식들을 행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을 잠잠히 방관할 수 없었다.

다툼. 헬라어 스타시스(stasis). “지위”, “당파또는 파벌을 뜻한다. 15:7과 눅 23:19에서, 바라바가 주모자가 되었던 민란을 가리키는 데 이 말이 사용되었다. 본 절에서 이 단어는 격렬한 변론을 묘사한다.

변론. 헬라어 제테시스(ze-te-sis). “찾는 것”, 따라서 질문”, “토론을 의미한다.

바울과 바나바. 복음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주장하는 대표자로, 이방인들 사이에서 벌써부터 성공적으로 일해 온 이 두 사람보다 더 나은 대표자는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몇 사람을. 이들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들은 안디옥에 있는 선지자들 중의 몇이거나(13:1), 이방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진, 구브로와 구레네에서 온 자들(11:20)일 수 있다. 아마도 성령이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하신 일에 대한 하나의 주목할 만한 본보기가 되었을 디도가 동행했다(2:1).

사도와 장로들. 베드로와 요한과 주의 형제 야고보가 예루살렘에 있었다(참조 갈 2:9; 1:19). 이들은 장로들(참조 행 11:30 주석), 구체적으로 이름이 명시되지 않은 다른 사도들과 함께 이 젊은 교회의 지도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교회가 할례와 같은 어려운 문제를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의 총회에 위임한 사실은 교회 조직을 지지하는 매우 의미 있는 선례이다. 이것은 교회의 제반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을 전제 군주 같은 역할을 하는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론과 반대된다. 또한 거론된 문제가 교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때는, 해당 지역 교회보다 더 넓은 차원의 조언과 권위의 필요성을 예시한다. 신약 시대의 교회에서는 예루살렘의 초기 회중에 속한 사도들과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상소 위원단을 구성하였다. 동시에 본 장의 후반부(15:22, 25)에 명시된 것처럼, 이 사건의 최종 결정은 단지 예루살렘에 있는 지도자들의 결정에 의거해서가 아니라, 이 사건을 호소하러 안디옥에서 올라온 대표자들을 포함한 참석자 전원의 합의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다. 그들의 문제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감으로써,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안디옥 교회 전체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통한 성령의 인도에 대해 확신을 나타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계시를 인하여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고 선언한다(2:2). 참조 사도행적, 96.

 

3.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 이것은 바울이 중시여기는 주제가 될 수밖에 없다. 틀림없이 그는 많은 사례를 상세하게 말했으며, 베드로가 고넬료의 경우에서 한 것처럼, 할례받지 않은 자를 수용한 것에 대해 성령이 승인의 표를 날인했음을 강조했다.

형제들을 . 11:2~4, 18과 비교하라.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가 가져온 좋은 소식에 기뻐했다. 이방인에게도 할례를 강요한 자들은 유대인 그리스도인 가운데 한 무리에 불과했고,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라고 기술된다(15:5). 바리새인들은 의식법(儀式法)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여기서 사용된 동사의 형태로 볼 때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동안 이방인의 회심 소식이 연거푸 기쁨으로 환영받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베니게와 사마리아 교회의 이러한 태도는, 예루살렘 교회의 편협하고 신랄한 바리새인(5)과 그것을 위해 대변하려 했던 유대화주의 당파와는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4.말하매. 6절과 비교해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 활동에 대해 보고했던 예비 모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듯하다. 이것이 아마도 바울이 나중에 언급한 유명한 자들사사로이만난 그 모임이다(2:2). 이방인 개종자들의 순결과 사랑뿐 아니라 그들의 행위와 고난, 표적과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시간이 다소 소비되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후에 회의에서 토의되고 결정된 문제에 대한 최선의 서론이었다고 볼 수 있다.

 

5. (바리새). 헬라어로 하이레시스(hairesis). 참조 5:17 주석. 바리새인 중 어떤 이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들은 예수를 하나님이 보낸 선생으로 받아들였는데(참조 요 3:2),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으로써 이 사실이 입증되었다. 따라서 예수가 왕국의 머리가 되어 율법과 성전이 제 위치를 찾고, 이방인은 할례를 조건으로 입교가 허락되는, 회복된 영광스런 유대교를 인류에게 전수할 것이라고 그들은 기대하였다. 바로 이들이 일어나 바울과 바나바가 지금까지 해온 일에 항의한 것이다. 전반적인 문제가 아마도 일개인의 사례 즉 개종의 순차적 단계를 밟지 않은 이방인 디도의 사례(참조 갈 2:3)를 들어 논의되었다. 이 논쟁에 연루됨으로써 디도는 후에 낡은 종교형식에 대한 유대화주의자들의 끈질긴 요구에 대항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출 수 있었다(참조 딛 1:10, 14, 15).

일어나. 유대화주의자들이 이렇게 들고 일어났기 때문에 한층 공식적인 회의의 소집이 불가피하게 되었을 것이다.

모세의 율법. 참조 6:13 주석. 유대화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인에게 시행하라고 제안한 요구 사항은 할례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쐐기를 박는 것에 불과했다.

 

7. 오래 전부터. 문자적으로 초창기부터.” 베드로는 아마도 십수 년 전에 있었던 고넬료의 회심(10)을 암시했다. 현재의 문제와 관련된 많은 일들이 그때 이후에 발생했다.

 

9. 마음을 깨끗이 하사. 믿음이 고넬료와 그의 집안 사람들의 마음을 깨끗케 했다. 오직 깨끗함을 판단할 수 있는 하나님이 보기에 마음이 깨끗하다면, 의문의 법을 지키는 것은 불필요하고 무의미했다. 율법의 의식들은 정결을 위한 것이지만, 바리새인들이 주장한 것보다 더 높은 표준의 정결이 여기 있었다. 의문의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바리새인들은 이방인들을 부정함이라는 총괄적인 죄목의 범주 아래 두었다. 베드로는 아무도 속되거나 부정하다고 칭해서는 안 되며(10:28), 정결은 육체보다는 마음에 관한 것임을 배웠다(참조 딛 1:15).

 

10.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다시 말해,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미 분명히 나타냈는데도, 이방인의 입교와 관련하여 그분의 뜻을 알기 위해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의 거부 의사가 더 강해야 하는가? 광야에서 유대인들은 그들을 위해 베푼 여러 기사(奇事)가 있었는데 하나님이 주신 지도자에 대해 불평함으로 하나님을 시험했다(3:9). 또한 그리스도를 시험했으며(고전 10:9), 그들의 불복종이 불뱀의 형벌을 초래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들의 헌금에 관해 교회를 속이고자 함으로써 하나님의 성령을 시험했다(5:9). 베드로는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일에 다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청중들에게 경고하였다.

 

11.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가져오는 것이 율법과 일치된 삶이 아니라 주의 은혜라고 베드로는 주장했다. 이 진술이 그의 논증의 끝맺음이었다.

구원받는 줄을. 하나님이 약속하는 구원은 은혜에 의한 것이다(참조 롬 3:21~26; 5:1, 2; 11:5, 6; 2:5, 8). 행위는 은혜로 구원의 선물을 받을 때 따라 온다(8:4; 2:9, 10; 2:12, 13).

 

12. 가만히 있어. 베드로의 확신있는 증언에 대해 다른 의견이 없었다. 비록 모든 사람의 마음이 다 바뀌지는 않았을지라도 반대의 소리는 더 이상 없어졌다. 고넬료 사건을 통해 자신의 편견을 극복한 베드로가 이제 다른 사람들의 편견을 극복한 것이다.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즉 베드로가 진술한 말은 교회가 이방인을 최초로 수용한 것을 나타낸다.

백성을. 그들만이 백성곧 하나님의 백성이고 다른 모든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울타리 밖에 있다고 유대인들은 믿었다. 그러나 야고보는 하나님이 또한 이 이방 나라들에서도 한 백성을 당신 자신에게로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선언했다. 바울도 이와 같은 변화를 인식했다(9:26). 그리스도인의 안목에는 택한 백성은 더 이상 유대인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대인을 이방인과 구별해 주었던 의식적 규율들은 이제 불필요했다.

시므온 (Simeon). 헬라어 쉬메온(Sumeo-n). 영어식 표기 “Simeon”“Simon”(시몬)보다 히브리어 쉬므온(Sim‘on)에 더 가까운 형태다. 이 형태는 베드로에 대해 단지 이곳과 아마도 벧후 1:1에서 사용된 것 같으며, 갈릴리 출신인 야고보가 이 형태를 사용한 것은 자연스러웠다.

 

20. 우상의 더러운 것. 예루살렘 총회의 공식 결의문이 우상의 제물”(헬라어 에이돌로쒸타[eido-lothuta]. “우상에게 바쳤던 [것들]”, 29)에 반대하여 말한 것에 비춰볼 때, 여기서 우상의 더러운 것은 이방 신들에게 바친 음식(그리고 음료)이라는 특정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헬라와 로마 종교에서는 음식이 신전에 있는 신들에게 매일 판에 박힌 듯이 드려졌다. 그러나 단지 제물의 일부만 제단에 올려놓았고, 나머지는 신전과 관련된 일을 하며 생활하는 이들이 소모하거나 시장으로 보내 팔았다. 엄격한 유대인이 보기에 이런 음식은 더러운 것이었다. 그러므로 랍비 아키바(AD 100년경)가 내린 것으로 생각되는 한 판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상이 있는 장소로 [그곳에서 어떤 유익을 얻기 위해] 가지고 들어가는 고기는 허용되지만 밖으로 가지고 나오는 고기는 죽은 자의 제물로 [간주되므로] 금지된다”(Mishina ‘Abodah Zarah 2. 3, Soncino ed. of the Talmud, 145). (AD 200년경 성문화된) 미쉬나의 또 다른 규정은 우상에게 바친 술에 대하여 이와 유사하게 천명한다. “옌 네세크(Yen nesek, 헌주[獻酒])는 금지된 것이며 또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다른 술]을 금지하도록 만든다. 술을 [섞은] 술과 물을 [섞은] 물은 미량이라도 [부적합하다]. 물을 [섞은] 술과 술을 [섞은] 물은 [금지된 요소가] 향을 낼 때는 [부적합하다]. 일반적인 규정은 이렇다. 같은 종류로 [섞은 것은] 미량이라도 [부적합하다]. 그러나 다른 종류로 섞은 것은 [금지된 물질이] 향을 낼 때 [부적합하다]”(ibid. 5. 8, Soncino ed. of the Talmud, 349). 결과적으로 철저한 유대인들은 결코 일반 시장에서는 고기를 사지 않고, 유대인 푸줏간에서만 샀다. 여행할 때는 코피노스(kophinos) 즉 바구니를 등에 메고, 먹을 것을 가지고 다녔다(참조 막 6:43 주석). 유베날리스(Juvenal)자신들의 모든 비품으로 바구니 하나와 한 다발의 건초를 소유한 유대인들을 언급한다(Satires . 13, 14; Loeb ed., 33).

이런 강한 유대인의 정서를 고려하여, 총회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삼가도록 요구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보았다. 이것은 결코 작은 자기 부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개종자들은 많은 축제 초대를 거절해야 했고, 참석하더라도 먹는 것은 거절해야 했다. 예민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자기 앞에 차려진 음식이 신전에 바쳐진 것이 아니라는 의심이 풀리지 않는 한 개인의 집에서도 먹기를 거절해야 했다. 동시에 이 규제는 제물로 바쳐진 음식과 술을 맛보는 것이 예배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이교 의식에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참예하는 유혹에서 보호해 주는 실제적 가치가 있었다. 만약 우상에게 바쳐진 것은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면, 심지어 황제의 제단에 드려진 음식과 술을 맛보는 형식적인 의식도 금지되었다는 것을 양심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 특별히 이 문제가 논란거리였던 것 같다(참조 계 2:14 주석).

예루살렘 총회 몇 년 후에 이 규제가 어떤 저항에 부딪혔다. 고린도에서 어떤 이들이 자신들은 원하는 것을 먹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고, 이에 대해 바울은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므로신전에 바쳐진 것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시장에서 음식을 살 수 있다는 범위까지 이론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그가 그 규제를 지지한 것은 형제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의 양심을 존중하는 차원에서였다(고전 8~10; 14 주석 참조).

음행. 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규제가 순전히 의식적인 것으로 보이는 규제들과 나란히 언급된 것을 보고 언뜻 의외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결의 내용의 첫 항목도 십계명의 둘째 계명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도덕적인 문제였다. 음행과 관련하여, 모든 형태의 부정(不貞)을 금하는 레위기 법이 엄격한 것은 적절하다(18; 20:10~21).

여성의 순결에 대한 참된 존중의 결핍과 결부된 음행의 죄는 고대 사회에 널리 퍼진 죄여서 헬라 - 로마인의 삶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 여겨질 정도였다. 이방 종교에서는 우상숭배와 음행이 때때로 얽혀 있었다. 고린도와 바보에 있는 아프로디테의 창기 여사제들에게 나타나는 것처럼, 음행은 종종 우상숭배의 일부였다. 그렇게 하여 신전 예배에 빠진 남자들은 그런 식으로 숭배되는 여신에 대해 소위 자신들의 신앙을 표현하였다. 이교도들에게 음행의 죄는 묵인되었고 심지어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대인 그리스도인은 이방인 회심자들이 순결한 생애를 영위하는지 알고자 했을 것이다(참조 고전 6:15; 2:14). 그러므로 예루살렘 총회에서 그리스도 교회는 교회의 일반적 가르침뿐 아니라 교인들이 따라야 할 구체적인 규칙을 세움으로써 높은 도덕적 수준을 세우는 데 공적인 첫 단계를 취한 셈이다.

목매어 죽인 것. “목매어 죽인 것을 먹는 것에 대해 구약에 명확한 금지 조항이 없다. 그러나 적용되는 원칙은 피를 먹지 말라는 바로 다음의 금지 사항의 경우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목매어 죽인 동물은 정상적으로 피를 빼내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그런 동물의 고기는 음식으로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참조 레 17:13, 14). 야고보의 선언은 또한 스스로 죽은 동물이나 다른 동물에 의해 죽임당한 동물의 고기와 관련된 모세의 규제에 기초했을 것이다(17:15; 12:21). 테르툴리아누스(AD 230년경 사망)가 증언한 바와 같이 초기교회는 이러한 규제들을 지켰다. 그는 이교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그리스도인들 앞에서 그대들의 악한 행위를 부끄러워하라. 그들은 단순하고 자연적인 음식물로 된 식사에서 동물의 피조차도 먹지 않으며, 내장에서 분비된 피에도 오염되지 않으려는 이유로 목매어 죽인 것과 자연사로 죽은 것도 멀리 한다”(Apology 9; ANF, vol. 3, 25). 이와 유사하게, 동방교회의 한 오래된 규율은 명한다. “만일 어떤 감독이나 장로나 집사 혹은 성직에 있는 어떤 사람이라도 고기를 생명이 담긴 피와 함께 먹거나, 짐승에게 찢긴 것이나, 스스로 죽은 것을 먹는 자는 해임시켜라. 율법이 이것을 금하기 때문이다”(Apostolic Canon 63; ANF, vol. 7, 504). 유대인의 고대 전승은 동물의 목이 부러지면 피가 사지로 흘러 들어가 소금을 사용해도 피를 빼낼 수 없다고 말한다(Talmud Hullin 113a, Soncino ed., 621, 622).

. 피를 음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인류에게 육식이 허용되자마자 금해졌고(9:4), 모세의 법에서 자주 반복되었다(3:17; 7:26; 17:10; 19:26). 사울 시대에는 피를 먹는 것을 여호와께 범죄하는 것으로 간주했다(삼상 14:33). 피를 가지고 만든 음식이 헬라인과 로마인들의 식탁에서는 흔했다. 일례로 이런 사실이 호메로스(Homer)의 글에 나타난다.

여기 불 위에 염소의 위가 여러 개 놓여 있는데, 우리가 그것들을 기름과 피로 가득 채운 후에 저녁식사로 거기에 놓아두었네. 이제 둘 중 어느 한쪽이 이겨서 더 나은 사람으로 판명되면, 그에게 이것들 중 자신이 원하는 하나를 선택하게 하라”(Odyssey xvii. 44~49; Loeb ed., vol. 2, 199, 201).

이교도들은 제사를 드리면서 술을 섞은 피를 마시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AD 1세기 유대인의 입장에서 말하는 요세푸스는 [모세]는 피를 영혼과 정신으로 여겨 어떤 종류의 피도 음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금했다고 기록했다(Antiquities iii. 11. 2[260]; Loeb ed., vol. 4, 443). 이런 금지에 대한 유대인의 태도는 랍비 시므온 벤 앗자이(Rabbi Shim‘on ben ‘Azzai, AD 110년경)의 진술로 추정되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 “토라에는 365개의 금지 조항이 있는데, 모든 법 가운데 이와 같은 것은 없다.성경이 피의 금지에 관하여 그대에게 그렇게 권고할진대[12:23], 이것과 비교하여 모든 계명 중에 이보다 더 쉬운 것이 없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것이 나머지 모든 계명에 얼마나 더 많이 적용되겠는가!”(Sifre Deuteronomy 12:23 ; quoted in Strack and Billerbeck, Kommentar zum Neuen Testament aus Talmud und Midrasch, vol. 2, 734). 피를 먹지 말라는 금령이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쉽게 지킬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은 이방인 개종자들이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여기는 예루살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적어도 몇몇 지역에서는 초기 그리스도인 교회가 이 규칙을 수 세기 동안 고수해 온 것으로 보인다(“목매어 죽인 것에 관한 주석을 참조하라). 같은 시기에, 특히 서방에서, 예루살렘 총회의 규제를 단지 도덕적인 금지 사항으로 제시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이레내우스(AD 185년경)는 본 절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그들에게 요구된 것 곧 헛된 우상과 음행과 피를 멀리하고 또한 무엇이든지 자기가 받기를 원치 않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Against Heresies iii. 12. 14; ANF, vol. 1, 435, 436). 그런 관점에서 를 인간의 피를 흘리는 것 즉 살인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피를 먹지 말라는 금령을 인간의 피를 흘리지 말라는 (금령)으로 이해해야 한다”(On Modesty 12; ANF, vol. 4, 86)라고 설명한 테르툴리아누스(AD 230년경 사망)의 말에 비춰보면 분명해진다. 참조 창 9:4 주석.

 

행 14:1~23

[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2]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4]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5]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6]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7]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내용 요약

  1. 루스드라, 14:6~19
  2. 더베 그리고 비시디아를 통해 돌아옴 14:20~23
  3. 안디옥으로 돌아옴, 14:24~28

배 경

제14장은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지방 전도다. 이곳은 남 갈라디아 지방으로 바울은 이곳을 여러 번 지나갔으며 그의 편지 갈라디아서도 이곳에 세워진 교회에 보낸 것이다. 이고니온은 비시디아 안디옥 동남쪽으로 약 350리(약 140km) 떨어진 곳으로 행정상으로 루가오니아(Lycaonia)지방의 수도다. 루스드라(Lystra)는 다시 이고니온에서 남쪽으로 75리쯤 떨어진 곳으로 디모데의 고향이다. 더베(Derbe)는 루스드라에서 동남쪽으로 70리 떨어진 도시로 1차 전도 여행의 종점이다. 다 험악한 지형이었으며 바울은 육로로 이곳들을 여행하면서 온갖 고생을 다 했을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의 모든 선교적인 노력에 있어서 영혼을 위해 자원하여 희생하시고 충성스럽게 열심히 수고하신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고자 노력하였다. 그들은 방심치 않고, 열심 있고 끈기 있게 개인적인 기호나 안일을 구하지 아니하고, 경건한 염원과 끊임없는 활동으로 진리의 씨를 뿌렸다.(행적 186 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과분한 호의를 받은 적이 있나요? 그 호의를 받으면서 나의 행동은 어떠하였으며, 나의 마음은 어떠하였나요?
  2. 지금 나의 상태는 넘어져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십니까? 일어선 상태라고 생각하십니까?
  3. 예수님으로 인하여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뒤따른 적이 있나요?
  4. 삶이 오뚝이와 닮은 사람이 있다면 소개해 봅시다.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이고니온에서 생긴 일을 말해 보시오. (1-7)
  2.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14:2)이 복음 전파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살펴보고 나는 순종치 아니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닌지 생각해 보세요.
  3. 바울은 루스드라의 앉은뱅이에게서 무엇을 보고 그를 고쳐 주었나요? (9)
  4. 쓰스(Zeus)와 허메(Hermes)는 무엇입니까? 바울과 바나바가 신적 대접을 받았을 때, 한 행동은 무엇이었나요? 이것은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우리에게 어떠한 자세를 가르쳐주나요?
  5. 19절을 읽고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변덕스러운 것인가? 군중심리란 얼마나 그릇 될 수 있는가 생각해 보아요.
    사도는 자기의 종말이 이르렀다고 생각하였다. 스데반의 순교와 그때에 자기가 행한 잔인한 행동이 그의 마음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격분한 폭도들은 그가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쳤다. (행적, 182)
  6. 그 비참한 광경 속에서 훌륭한 한 젊은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사단의 노력도 결국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그 젊은이는 누구입니까? (행적, 183)<20절 뒷면 주석참조>
  7.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귀향전도를 하면서 교회를 굳게 하기 위하여 바울이 사용한 뒷수습 방법은 무엇입니까? (21-23)이것은 우리교회에도 필요한 일인가요?

생각해봅시다.

  1. 예수님을 위하여 나는 오늘도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의 삶이 그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2. 우리교회는 지금 교회를 굳건히 하기 위하여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바울의 고통을 목격하였던 사람들 가운데 후에 그리스도를 위한 탁월한 일꾼이 되고 어려운 선교 지역에서 사도와 함께 개척사업의 시련과 기쁨을 나누어야 할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이 바로 디모데라는 청년이었다.(행적183p)

 


1. 이고니온. 이고니온으로 향하는 바울과 바나바의 여정을 누가가 건너뛰었는데, 추론해 보면 도중에 선교 사업을 펼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고니온은 안디옥에서 남동쪽으로 약 144킬로미터 떨어진 주요 도로들의 교차점에 있다. 일부 고대 저술가들은 이고니온이 브루기아에, 다른 저술가들은 루가오니아에 예속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이 도성은 루가오니아의 다메섹으로 불릴 정도로 크고 장중했고, 후에 그리스도교 전승에서 바울과 그가 회심시킨 테클라(Thecla)에 관한 이야기의 배경으로 유명해졌다. 중세 시대에는 이고니온이 셀주크 왕조 술탄들의 수도로서 중요성이 높아졌고, 변형된 축약형 코냐(Konya)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터키의 번창하는 도시로 남아있다(참조 302쪽 지도).

두 사도가 함께. 이는 회당을 특별히 한 번 방문한 것이 아니라, 바울과 바나바가 유대인들을 만나기 위해 함께 여러 번 방문했음을 묘사한 것이 분명하다.

2.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 설득당하지 않으려는 유대인들.” “순종치 아니하는으로 번역된 단어에는 반역으로 이끄는 불신이라는 개념이 들어 있고, 따라서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한 이 유대인들의 특성을 적절히 묘사한다.

 

3. 오래. 아마도 수 개월 동안이었을 것이다. 새 신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을 굳건히 하기 위해 장기간 체류해야 했다.

 

4. 나뉘어. 그리스도인에게 반감을 지닌 비그리스도인은 주민 가운데 분명하게 구분된 집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누가는 이교도 주민이 다수였다고 분명히 언급한다. 기독교로 귀의한 회심자들은 분명 소수 집단으로, 초기교회에 흔했던 것처럼 사회의 하류층 출신이었을 것이다(참조 고전 1:26~28).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처럼 도성의 유력한 남녀들이 그들을 대적하였다(참조 행 13:50).

 

5. 관원들. 즉 유대인 회당의 관원들이며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 회당에서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두 사도를 능욕하며. 그들은 무자비한 능욕과 폭행을 당하였다. 이는 군중을 자극하기 위한 일환으로 계획되었음을 보여 준다. 바울은 핍박자였던 자신의 행동을 묘사하기 위하여 밀접히 연관된 단어를 채용한다(딤전 1:13).

달려드니. 헬라어 호르메(horme-). “습격혹은 공격.” 여기서는 이 단어가 직접적인 공격을 가리키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참조 6). 유대인들은 폭행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이교도 동료들을 자극하고 부추겼다.

 

6. 알고. 음모를 알아내기 위해 반대편과 충분히 접촉한 자들이 사도들 편에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누가는 그리스도인 복음 전도자들의 고난을 과장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간신히 투석형을 피한 사건은 애쓴 흔적 없이 평이한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도망하여. 사도들의 행동은 한 성에서 핍박을 받을 때 다른 성으로 피해야 한다는 예수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참조 마 10:23 주석).

루가오니아. 루가오니아는 로마의 속주가 아니라 특정 종족 지역으로, 서편은 로마의 속주 갈라디아에, 동편은 콤마게네(Commagene)의 안티오쿠스 왕국에 속해 있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갈라디아 도의 국경 안에 머물렀음이 분명하다. 신약 시대에 이고니온은 브루기아에 속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사도들이 루스드라와 더베로 진행했다는 것은 새로운 지역으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루스드라. 1885년에 이르러서야 루스드라의 정확한 위치가 알려졌다. 그 해에 루스드라가 오늘날 졸데라(Zoldera)로 알려진 지역임을 확인할 수 있는 명각이 하나 발견되었다. 그것은 이고니온의 남서쪽으로 약 여섯 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고니온에서 출발하여 육로로 여행할 때 사도들은 구릉 지대를 지나 루스드라가 있는 고원까지 올라갔을 것이다. 루가오니아가 고전 문헌에 황량하고 미개한 지역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명각에 루스드라가 아구스도에 의해 로마 식민지가 되었다고 나타난 점으로 보아 주변 지역보다 상위 문화를 향유한 것이 확실하다. 로마의 상업 중심지인 루스드라 주민 중에 유대인들이 있었겠지만 사도행전의 기록에는 그 도성에 회당이 있었다는 언급이 없으며, 따라서 바울은 거기서 주로 이방인들과 교제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건한 유대 여성의 자녀이며 루스드라 출신이었을 디모데 역시 할례받지 않은 채 성장하였다(참조 16:1, 3 주석). 참조 302쪽 지도.

더베. 더베의 위치는, 1956년 더베가 언급된 한 명각이 이고니온 남동쪽으로 83킬로미터 지점인 케르티 휘위크(Kerti Hu..yu..k) 곧 오늘날의 코니아(Konia)에서 발견됨으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확증하는 또 하나의 명각이 최근에 나타났다. 후에 바울과 함께 여행한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가이오가 더베 출신이었다(20:4). 참조 302쪽 지도.

그 근방으로. 이 구절은 루스드라와 더베 도성이 작아서 바울과 바나바가 단기간에 전도할 수 있었음을 암시한다. 시골 촌락에서 활동하는 한 그들은 거의 전적으로 이방인들만 만나야 했다.

 

9. 주목하여. 헬라어 아테니조(atenizo-, 참조 13:9; 23:1 주석). 앉은뱅이의 믿음이 그 얼굴에서 빛을 발하자 바울은 치료받음으로 루스드라인들에게 표적이 되기에 적절한 한 사람을 확실하게 알아봤다.

 

10. 바로 일어서라. 이 명령은 평범한 인간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는 믿음으로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조롱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장애인은 믿음에 응하여 움직이고자 의지를 활용하였다. 이것은 중풍병자(9:6, 7), 베데스다 연못의 병자(5:11, 14),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3:6~8) 등의 치유에 공통되는 이적의 유형 가운데 하나이다. 이들 각 경우에 영적인 회복에는 육체적 치유가 동반되었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치유한 사건(3:1~11)과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치유한 사건에 유사점이 있음이 분명하다.

 

11. 루가오니아 방언. 바울은 자기가 방언을 말했다고 표명하지만(고전 14:18), 이 은사에는 루가오니아 방언을 이해하는 능력은 포함되지 않았음이 확실하다. 지지할 만한 확실한 견해는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인들이 자신들에게 경배하려는지 몰랐다는 것뿐이다. 그들이 그러한 경배를 거절하여 극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 사람들이 예배하려는 계획을 추진하도록 고의적으로 허용했다고 추측하는 것은 그들의 품성을 폄하(貶下)하는 것이다. 틀림없이 루스드라인들은 2개 국어를 동시에 사용했을 것이고, 따라서 바울과 바나바가 헬라어로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이 선교사들은 그 사람들이 이교식 제사를 드릴 계획을 세우자고 말한 것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루가오니아 방언의 특성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신들. 신약 시대에는 이렇게 신들이 사람들과 함께 어울린다는 신조를, 단순한 루가오니아인들뿐 아니라 도시와 시골의 이교도들도 전반적으로 지지했다. 루가오니아에는 그곳 사람들이 바나바와 바울을 위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의 근거가 될 만한 오래된 전설이 있었다. 이 신화에 의하면 쓰스와 허메(제우스와 헤르메스 혹은 유피테르와 메르쿠리우스)가 인간으로 가장하여 왔을 때 노부부 필레몬과 바우치스(Baucis)에게 영접을 받자 그들에게 선물을 주었다(Metamorphoses viii. 626~724). 신들이 거했다고 추정된 곳은 후에 경건한 숭배자들이 순례 와서 예물을 놓아두고 가는 성지가 되었음이 이 전설에 나타난 있다.

 

12. 쓰스허메. 헬라어 제우스(Zeus), 헤르메스(Herme-s). 헬라의 쓰스는 신들의 우두머리이며 그의 아들 허메는 신들의 전령과 사자요 웅변의 수호신이다. 로마의 만신전(萬神殿)에서 이 신들에 해당하는 이름은 유피테르와 메르쿠리우스였고, 따라서 그 이름들이 제임스왕역에 그대로 사용된 것이다. 쓰스와 허메 숭배가 루스드라 지역에 보편화되었던 것 같다. 루스드라인의 이름을 가진 어떤 사람이 쓰스에게 조각상을 헌납했음을 말해 주는 명각 하나가 루스드라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쓰스로 여겨지는 기도 듣는 자와 허메에게 봉헌된 돌 제단도 루스드라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루스드라인들은 어떤 신이 선한 목적으로 그들 가운데 임한다면 그는 유피테르 신일 것이라고 믿는 것이 당연했는데, 그들의 도성 정면에 그를 위해 신전을 세웠고(참조 13절 주석) 주로 그를 숭배한 점으로 보아 그렇다. 메르쿠리우스는 유피테르의 주요 수행원으로 간주되었다. 바나바는 바울보다 더 인상적인 태도를 갖췄기 때문에 유피테르라는 명칭이 주어졌다. 바울은 강연의 대부분을 도맡았기 때문에 메르쿠리우스와 동일시되었다.

 

13. 쓰스 신당의 제사장. 이 구절의 의미는 도성 정면에 [위치한] 쓰스 신전 제사장인 것 같다. 이와 같이 쓰스는 루스드라의 수호신이었고 그의 신전은 마치 도성을 보호하듯 성문 근처에 서 있었음이 분명하다. 사람들이 쓰스의 제사장에게 소리 지르며 달려가, 제사를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추고 사도들이 묵고 있던 집 입구로 그를 데리고 왔다.

화관들. 이런 화관은 고대 조각상을 통해 잘 알려졌다. 화관은 대개 흰 양털에 종종 나뭇잎과 꽃으로 장식되었다. 제사용 동물은 물론 제사장과 참석자와 문과 제단도 흔히 이렇게 꾸며졌다.

 

14. 옷을 찢고. 유대인들에게 이것은 극도로 혐오스러움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특히 신성모독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사용되었는데(참조 마 26:65 주석), 이교도 루스드라인들이 모르고 신성모독을 범하려 한다는 것을 바울과 바나바가 이제야 깨달았다. 루스드라 주민들이 옷 찢는 행위를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격렬한 행위가 그들의 주목을 끌고 놀라게 했을 것이다.

뛰어 들어가서. 헬라어 엑페다오(ekpe-dao-). “뛰어나가다”, “돌진하다.” 그 제자들은 성문에서 나와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모인 곳, 아마도 성밖”(참조 13절 주석)에 있는 쓰스에게 바쳐진 신당을 향해 돌진했을 것이다.

 

15. 같은 성정. 이 단어에는 흔히 성정이라고 알려진 것(참조 약 5:17)은 물론이요 인간의 더 소극적인 감정들도 포함된다. 이곳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한 표현과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한 표현(10:26) 사이에 나타나는 현저한 유사점은 주목할 만하다.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참조 13:32 주석. 우상 숭배자들에게 말 못하는 우상 대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기별은 좋은 소식임에 분명한데, 이는 특히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한 하나님 즉 인류의 구주이기 때문이다.

천지와 바다. 이것은 하늘과 땅과 바다에 각기 다른 신들을 지정해 놓은, 널리 퍼져 있는 이방 종교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바울은 한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만들고 다스린다고 선포한다.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호소는 성경에서 반복된다. 그 호소는 하나님과 우주의 관계에 대한 전() 역사의 시초에 있었으며(1), 세상에 경고로 전달된 마지막 복음의 기초이기도 하다(velation/14/7e).

살아 계신 하나님. 그들의 우상숭배와 대비하면서 사도는 루스드라인들에게, 살아서 역사하며 하늘과 땅을 만들고 모든 좋은 은사의 시여자이며 모든 인간을 심판할 하나님에게 돌아오라고 초청한다. 이사야도 이런 대조를 극적으로 묘사한다(40:6~31; 41:18~29; 44:6~28).

 

19. 유대인들이 안디옥에서. 문맥에서 드러나듯이 비시디아 안디옥임이 명백하다(참조 13:14 주석). 안디옥과 이고니온의 유대인들이 일제히 행동을 개시한 사실과 안디옥에서 온 유대인들이 사도들의 사업을 방해하기 위하여 160킬로미터 이상을 여행해 왔다는 사실을 통해, 안디옥의 유대인들이 품은 적개심의 강도가 어떠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안디옥 사람들과 루스드라 사람들의 관계가 밀접했음은 안디옥에서 발견된 조각상에 루스드라 사람들이 안디옥 도성을 기념하여 기념비를 세운다고 기록된 명각에 암시되어 있다.

이 유대인들이 바울과 바나바가 동포임을 알았는데도 그들에게 격노한 것은, 자기들이 매우 소중히 여기는 율법의 요구를 사도들이 배척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루스드라에서 이러한 비난을 일삼는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사도들에게 대적할 수 있도록 다른 고소 내용을 제시했을 것이다. 앉은뱅이를 치유한 기적을 통해 사도들의 능력의 실재성은 입증되었지만 능력의 근원은 입증되지 않았고, 따라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선동하기 위해 그 능력의 근원을 악의 세력으로 돌렸을 것이다(12:24~27에서 예수가 겪었던 유사한 경험과 비교하라).

무리를 초인(招引)하여. 루스드라인들의 태도가 돌변한 것은 예루살렘 군중의 호산나 찬양이 십자가에 못박혀야 하겠나이다라는 외침으로 뒤바뀐 사건(21:9; 27:22)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감정의 심한 기복은, 루가오니아인같이 전승에 미덥지 못하다고 묘사되고 미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다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아니다. 정반대 측면에서 비견할 만한 변화는 이방인 멜리데(28:3~6) 사람들에게서 나타났다. 루스드라인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그런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람의 모습을 한 신이 아니라면, 마법사나 어쩌면 악마일지 모른다고 추정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런 감정을 격앙시키고 야만적인 행동을 하도록 백성을 충동했을 수도 있다.

성밖에. 히브리 법은 돌로 치는 것을 진영이나 도성 밖에서 하라고 규정했다(24:14). 그러나 본 사건에서는 루스드라가 이방 도성이었고 돌로 치는 것이 폭도의 집단 행동으로 일어난 점으로 보아 도성 안에서 일어났던 것 같다. 그래서 바울의 몸을 성밖으로 끌어 낸 것이다.

 

20. 제자들. 즉 새 신자들. 이들이 습격을 사전에 막을 수는 없었지만 어떻게 경건한 장례를 치러줄지를 염려하는 슬픈 마음으로, 의식을 잃은 바울이 끌려 간 장소까지 따라갔음이 분명하다. 바울의 그 쓰라린 경험을 봉사에 대한 도전과 헌신의 모본으로 삼았을 디모데가 바울이 돌 맞는 것을 목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사도행적, 184, 185,). 아마도 로이스와 유니게도 무리 가운데 끼어서 처음에는 슬퍼했지만 조금 후에 그들의 사랑하는 선생이 죽지 않았음을 알고 기뻐했을 것이다.

바울이 일어나. 바울이 무의식 상태에서 회생하여 다시 도성 안으로 들어가는 활력과 담력을 곧바로 보여 준 것은 기적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사나운 폭도에게 돌을 맞고 죽은 줄 알았던 자가 살아나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보한 것은 앉은뱅이가 회복된 것보다 훨씬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의 증거였다.

이튿날가서. 하나님의 섭리로 죽음에서 살아남았지만 바울은 자기를 향한 대중의 정서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잠시 도성을 떠나있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는 후에 최소한 두 번 더 루스드라를 방문하였다(참조 21; 16:1).

 

21.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누가가 이후 여행에서 바울의 동료 중 하나로 언급한 더베 사람 가이오가 아마도 이때 회심한 자들 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성취된 사업으로 보아 여러 달을 더 체류했을 것이라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다.

돌아가서. 다소까지 동쪽으로 진행하여 배로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것이 훨씬 더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바다에 이르기까지 약 400킬로미터나 되는 길고도 지루한 여정을 택하였다. 그러나 거쳐갔던 장소들을 순회함으로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전에 뿌렸던 말씀의 씨를 더 멀리까지 뿌릴 기회를 얻었다. 안디옥과 이고니온에 사는 유대인들의 적개심은 사도들이 더 이상 신변에 위협을 당하지 않고 그 도성들을 다시 방문할 수 있을 만큼 진정되었을 것이다. 도성의 어떤 지역에서는 관료들이 임기를 마치고 다른 관료들이 후임자로 부임했던 것 같다. 참조 302쪽 지도.

 

22. 굳게 하여. 강하게 하여.” 후대에 보편화된 교회의 견진성사(堅振聖事)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여기서 바울의 행동은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22:32)고 베드로에게 한 예수의 위탁과 조화된다. 바울은 자신이 겪은 시련과 거기서 구원받은 경험에서 얻은 경고와 권고로 굳게 할수 있었다.

이 믿음. 여기서 이 말은 믿음 곧 믿고 가르침받은 것에 대한 신앙의 객관적인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신조 체계를 뜻하는 믿음이라는 단어는 이후 사도들의 문헌에 같은 의미로 등장하는데(참조 딤후 4:7; 3, 20) 여기서도 유사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행 13:1-16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내용 요약

  1. 구브로 섬에서 생긴 일 (4-12)
  2.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생긴 일 (13-52)

 

배 경

우리는 이제 사도행전의 셋째 단계, 즉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 단계에 들어간다. 드디어 복음이 팔레스틴을 넘어서 이방의 지역으로 전파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제13장부터 그들의 힘찬 발걸음 소리를 듣는다. 안디옥에서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던 바울과 바나바는 성령의 세우심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기 위한 거보를 내딛는다. 10년에 걸친 전도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기를 배웠다. 그들의 마음은 멸망하는 영혼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충만하였다. 잃어버린 양을 찾는 충실한 목자들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안일과 편의를 생각지 아니하였다. 자아를 잊어버린 그들은 피곤하고, 주리고, 추울 때에도 흔들리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한 가지 목적, 곧 양의 우리에서 떠나 방황하는 자들의 구원만을 바라보았다.(행적 169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다른 사람의 격려로 인하여 용기를 얻고, 다시 일어선 경험을 나누어 보아요.
  2.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일을 수행하다가, 익숙하지 않는 환경으로 중도포기 하고 싶었던 경험이 있으면 나누어 보아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안디옥교회 구성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요?(13:1)<주석참조>
    (안디옥교회의 구성원이 오늘날 교회공동체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2. 성령께서 왜 두사람을 짝지어 보내셨을까요? (13:2)

  3. 다메섹의 경험 후 10년만에야 전도여행을 떠나는 바울의 감화를 생각해 보아요. 그 동안의 기간은 헛된 기간이었을까요?

  4. 지도를 보면서 일차여행의 여로를 따로 공부해 보아요.
    • 1차 전도여행은 2년의 세월이 걸린(A.D. 45-47) 5,000리 길의 여행이었다.
  5. 구브로에서 생긴 일들을 말해 볼까요? (4-12)

  6. 버가에서 마가는 왜 돌아갔습니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13:13)

  7.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의 설교를 정독하고 내용을 요약해 보세요.(시간에 여유가 있는 조는) 이것은 바울의 첫 공식 설교이며 대표적인 설교입니다.
    ① 17-22
    ② 23-25
    ③ 26-37
    ④ 38-41

 

생각해봅시다.

  1. 성령께서 쓰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봅시다.

  2. 핍박가운데서 누리는 기쁨은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의 성령이 바울의 말에 함께 하셨으므로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다. 구약의 예언들을 통한 사도의 호소, 그리고 그 예언들이 나사렛 예수의 봉사에서 성취되었다는 그의 선언은 약속된 메시야의 초림을 사모하는 많은 영혼들에게 확신을 주었다.
(행적 172p)

 

  1. 선지자들과 교사들. 특정한 성령의 은사를 행사하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행정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장면이 여기에 처음 나온다. 안디옥에 공식적인 교회 조직이 분명 있었으나 그것에 대한 명확한 지적이 없다. 여하튼 성령에 속한 사람들이 적극적인 기능을 담당했음이 분명하다.
    신약에는 이런 사람들이 구분된 집단으로 다뤄지긴 하지만 공식 계층으로 조직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신령”(참조 갈 6:1)하다는 의미에서 “영적”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제대로 기능하는 성령의 은사가 있음을 입증해야 했다. 후에 2세기 기독교 문헌에는 이들이 프뉴마티코이(pneumatikoi) 즉 “영적인 [사람들]”이라는 계층으로 등장한다. 결국 그들은 “거짓 선지자들”(참조 요일 4:1)의 출현과 선출된 관료 즉 장로나 감독의 압력으로 사라졌으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성령의 은사에 관한 언급을 더 보려면 고전 12장 주석을 참조하라.바나바. 참조 4:36 주석; 9:27; 11:22.
    시므온. 시므온 또는 시몬이라는 이 사람의 이름은 그가 유대인 출신이었음을 나타낸다. “니게르”라는 별칭은 “검은”이라는 뜻의 라틴어 형용사로서, 거무스름한 피부색 때문에 그렇게 불렸을 것이다. 유대인은 자신의 유대 이름에 이방 이름을 덧붙이는 경우가 자주 있었는데, 요한 마가, 시몬 베드로, 요세 바나바,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참조 9절 주석)이 그 예이다. 이 별칭은 동명이인들과 구분하기 위해 시므온에게 붙였을 것이다.
    구레네 사람 루기오. 이 사람이 구레네 출신이라는 것은, 그가 그곳에 살고 있던 많은 유대인 중 한 사람일 수도 있고, 안디옥에 사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처음 전한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11:20) 중 한 명일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그는 롬 16:21에 언급된 “누기오”일 수도 있다. 구레네가 의학으로 유명했다는 점과 루기오와 누가라는 이름을 서로 바꿔 쓸 수도 있음을 보여 주는 명각의 증거를 근거로 이 사람을 사도행전의 기자인 의사 누가로 간주하는 저술가들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보는 것은, 루기오가 로마인들 중에 매우 흔한 이름이었으며 두 명 이상의 유명한 그리스도인이 사용했을 것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지극히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마나엔. 히브리어 이름 므나헴의 헬라어 형태.
    젖동생. 헬라어 쉰트로포스(suntrophos). 이 단어는 마나엔의 어머니가 헤롯의 유모였을 것이라는 점에 비추어, 마나엔이 헤롯의 수양 형제였거나 헤롯과 함께 양육되었거나 단순히 헤롯 왕실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었음을 뜻할 수 있다. “분봉왕 헤롯”은 예수가 “저 여우”(눅 13:32)라고 불렀던 통치자 헤롯 안티파스일 것이다(참조 마 14:1; 눅 3:19; 23:7~12; 참조 제10권, 72, 73). 요세푸스(Antiquities xv. 10. 5)는 헤롯 대왕이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므나헴 또는 마나엔이라는 엣세네파 사람 한 명을 언급한다. 탈무드에는 헤롯 대왕을 섬겼던 것으로 보이는 므나헴에 대해 나와 있다(참조 Talmud H.agigah 16b, Soncino ed., 108). 이 이름을 밝힌 것은 마나엔이라는 이름이 헤롯 일가의 혜택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 있었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헤롯 안티파스와 형제 아켈라오는 로마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안디옥의 마나엔도 그들과 그곳에 동행했을 수도 있다. 그가 언제 또는 어떻게 그리스도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 교사로 일한 그의 활동은, 침례자 요한을 살해하고 예수를 조롱했으며 본 이야기의 시점보다 몇 해 전에 갈리아로 불명예스럽게 추방당했던 헤롯 안티파스의 행적과는 현저하게 대조된다.
    사울. 다소 사람 사울은 천년 전의 사울 왕(삼상 10:11, 12)보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선지자들 중 하나”(삼상 10:11, 12)이다. 사울의 이름은 목록의 맨 마지막에 나온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헬라어 구절의 구문상 앞에 나온 세 명은 선지자이며 뒤의 두 명은 교사임이 암시되어 있다. 사울은 당시에 선지자의 은사를 아직 활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2. 성령이 가라사대. 성령이 행 20:23처럼 그분의 뜻을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셨다.
    일을 위하여. 원래 명령을 성령이 내린 점을 감안할 때 제1차 선교여행의 전반적인 노정도 성령이 윤곽을 잡았다고 추측할 수 있다. 교회가 이러한 선교여행 계획을 연구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이 확실하다.
    바나바와 사울. 앞서 나온 사울과 바나바의 교우 관계에 대해서는 9:27; 11:25, 26을 참조하라. 처음부터 사울은 “택한 그릇”(참조 9:15 주석)으로 불렸으며 하나님은 그가 광범위한 선교 봉사를 하도록 계획하였다. 두 사람이 전부터 가까웠다는 점에서 보면 바나바가 사울의 동역자로 선택된 것은 필연적이었다. 그 당시까지 이 둘은 교회의 선지자와 교사로 봉사하였다. 이제 그들은 영감받은 명령의 권위에 따라 독특한 사명을 위해 파송되며, 이방인을 위한 사도 직무를 위하여 구별되었다.
    따로 세우라. 헬라어에는 불변사(不變詞) 데(de-)가 이 동사 뒤에 나오는데, 이는 이 명령이 분명하고 즉시 실행되어야 함을 나타낸다. 바나바와 사울은 새로운 일을 위해 구별되어야 했다.

  3. 실루기아. 이 성읍은 오론테스 강 하구 근처 안디옥에서 약 24킬로미터 지점에 있으며 안디옥을 위한 항구였다. 실루기아는, 이 성읍의 설립자이며 셀류쿠스 제국을 세운 알렉산더의 장군 셀류쿠스 Ⅰ세 니카토르(Seleucus Ⅰ Nicator, BC 280년 사망)의 이름을 따서 건립되었다.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선교사들이 구체적인 지시를 받지 않았다면, 구브로가 바나바의 출생지였기 때문에 그곳을 첫 방문지로 택한 것이 확실하다. 그곳의 주민은 대부분 헬라인들이었다. 구브로 사람들은 아프로디테 즉 비너스가 그곳의 수호여신이라고 공언하였다. 아프로디테 숭배의 중심지는 바보(Paphos)에 있었는데 그 신전의 창기-여사제들의 음란함으로 유명하였다. 금속인 쿠프룸(cuprum) 곧 “구리”(copper)라는 말이 이 섬의 이름에서 유래되었고, 수리아에서 가까운 항로에 위치한 구리 광산은 많은 유대인들을 매혹시켰다. 이곳은 그리스도인 순회 전도자들을 통해 복음이 이미 전파되었던 곳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11:19). 또한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회심한 구브로 사람들 중에 기독교 기별을 고국에 가지고 돌아간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4. 살라미. 섬 동쪽 끝에 위치한 이곳은 실루기아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운 구브로의 항구였다.
    여러 회당. “여러 회당”이라고 복수로 표현한 것은 상당수의 유대인 주민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유대인들에게 먼저 전한다는 일반적인 규칙에 따라서(46절) 사도들은 당연히 여러 회당에서 초기 접촉을 시도하였다. 회당 예배에서는 바울과 바나바 같은 방문객들에게 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특별히 제공되었다(참조 제10권, 63~65).
    요한. 즉 마가 요한으로, 바나바의 사촌이다(참조 골 4:10 주석).

  5. 섬 가운데로.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는 “온 섬 가운데로”라는 독법을 증거한다. 바울과 바나바는 섬을 횡단하며 여러 곳에서 가르쳤을 것이다.
    바보. 바보는 구브로 섬 서단에 놓여 있다. 이곳에는 아프로디테에게 헌정된 신전으로 유명한 옛 도성이 있었지만, 바울 시대에 북서쪽으로 약 1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새 도성이 건설되어 구브로의 로마 총독의 사령부로 사용되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른 곳이 바로 이 새 도성이었다.
    바예수. 유대인 이름임이 분명하지만,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들은 정확한 헬라어 철자가 무엇인지에 대해 엇갈리게 나타나므로 히브리어나 아람어의 정확한 의미를 결정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은 “여호수아의 아들”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참조 마 1:1 주석).

  6. 서기오 바울. 티베리스(Tiber)의 평의원으로 봉직했던 사제들인 아르발 형제단(Arval Brethren)을 열거한 AD 35년경 라틴어 명각에는 “루[기오] 서기오 바울”(L[ucius] Sergius Paulus)이 포함되어 있다. 비록 이 사람을 본 이야기에 나온 총독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들이 동일한 사람이며 서기오 바울이 구브로로 파송되기 전에 로마의 사제였을 가능성도 있다. 구브로의 솔리(Soli)에서 나온 또 다른 명각은 “총독 바울” 시대에 기록된 명각임을 밝힌다. 학자들은 되풀이하여 이 총독과 사도행전의 서기오 바울을 동일 인물로 보려고 했으나, 그 명각의 연대가 제1차 선교여행 때와 일치할 수 없다는 것이 최선의 견해다. 아마도 그것은 몇십 년 전에 구브로를 통치했던 총독을 가리킬 것이다. AD 90년경에 저술한 대(大)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가 그의 저서인 박물지(Natural History) 곳곳에서 서기오 바울을 자신의 최고 상관으로 언급한 것으로 생각해 왔지만, 이 문서에 대한 비평적인 연구를 통해 거기에는 한 명 이상의 서기오 바울이 언급되었음이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서기오 바울에 대해서는 누가의 기록 외에는 확실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7. 엘루마. 이 이름의 의미에 대하여 학자들이 여러 가지로 추론했지만 최종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이것은 아마도 “박수”나 “마법사” 같은 의미를 지닌 셈족 단어일 수도 있다. 이 경우에 “번역하면”이란 구절은, “엘루마”가 “바예수”의 번역된 이름이 아니라 단순히 그가 박수였음을 첨언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저희를 대적하여. 협잡꾼은 자신이 총독에게 끼치던 영향력을 상실할까봐 두려워하였다. 엘루마는 자신의 희생물이 풀려나 박수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복음에 대한 믿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목도하자 이 변화를 저지하기로 결심하였다. 얀네와 얌브레는 다소 비슷한 상황에서 동일한 사단의 노력으로 모세를 대적하였다(딤후 3:8).
    못하게 힘쓰니. 엘루마와 서기오 바울 모두 사도들이 살라미에 도착한 후로 그들의 기별에 대해 많이 들었겠지만, 여기서 서기오 바울은 아직 그리스도의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수는 총독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보고 바나바와 사울을 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 했다. 하지만 총독은 굳게 결심하고 자기 앞에 사도들을 데려오도록 했다.

  8. 바울이라고 하는. 여기서 이방인의 사도로 가장 잘 알려진 이름이 처음 소개된다. 사울과 바울의 이름에 관한 언급은 제7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설명 2를 참조하라.
    성령이 충만하여. 이곳의 헬라어 분사의 시제에는 영적 능력의 갑작스런 임재가 암시되어 있어서 단번에 품성에 대한 통찰과 의분과 하나님의 징벌이 내릴 것임을 나타낸다. 엘루마에게 내려질 형벌이 성령을 통해 사도에게 보였을 것이다. 바울은 동일한 원천을 통해 자신이 말하려는 내용이 실현될 것도 알았다.
    주목하고. 헬라어 아테니조(atenizo-). “응시하다.” 다메섹 도상에서 보았던 강렬한 광채로 바울의 시력에 장애가 생겼기 때문에 이러한 응시가 필요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누가는 놀라서 혹은 유심히 쳐다보는 것같이(참조 행 3:4; 눅 4:20; 22:56), 정상 시력을 지닌 사람들이 한곳을 고정하여 응시하는 데 이 헬라어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엘루마는 주목받을 필요가 있었는데, 이는 그가 사도들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데 어떠한 방법이라도 동원할 태세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은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가차없이 정죄했다.

  9. 마귀의 자식. 참조 요 8:44 주석. 마귀가 거짓의 아비인 것처럼, 속임수를 쓴 엘루마도 이런 모욕적인 칭호로 불려질 만한 사람이었다. 바예수라는 이름이 “여호수아의 아들”(“여호와는 구원이다”라는 뜻의 이름, 참조 6절 주석)이라는 뜻이라면, 여기서 바울이 그의 성격을 묘사한 것과는 특별히 현격한 대조를 이룬다.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엘루마의 영향으로 하나님의 참된 도가 왜곡되고 와전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곧은 길을 교활한 사람의 굽은 길로 바꾸어 놓았다. 이것은 이사야가 묘사한 대로 고르지 않은 곳을 평탄케 하여(사 40:4) 주의 길을 진실로 준비하는 것의 정반대였다.

  10. 주의 손. 참조 행 11:21 주석; 출 9:3; 삿 2:15. 서기오 바울이 엘루마에게 한 질문은 유대인의 신앙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엘루마는 총독에게 하나님을 알도록 가르치는 대신에 자신의 주장에 따라 총독을 잘못 인도하였다. 엘루마가 주의 도를 곡해하였기 때문에 그분의 손이 그에게 임하려고 하였다.
    네가 소경이 되어. 이것이 가장 적합한 심판인 까닭은 엘루마가 진리의 빛에 대항했기 때문이다. 엘루마가 받은 형벌의 형태는 사도 바울의 이전 경험과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바울은 외적으로는 눈이 멀었으나 내적으로는 하늘로부터 오는 빛에 의해 계몽되었다(참조 9:9 주석). 엘루마가 한동안 눈이 멀었지만 모든 사람에게 비치는 “참빛”(요 1:9)을 여전히 영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얼마 동안. 실명이 일시적이었다는 것에는 이것이 형벌뿐 아니라 의도된 교정책이었음이 암시되어 있다. 엘루마에게 가해진 형벌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받은 형벌보다는 가벼웠는데, 만약 그 부부의 그런 소행이 계속된다면 그로 인해 교회에 파멸이 초래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죄는 구브로의 마법사에게 임한 빛보다 더 큰 빛에 대항한 것이었다.
    안개와 어둠. 이 단어들의 순서에는 시력이 점차 감소되었음이 나타나 있다. 처음에 엘루마의 눈이 흐려졌다가 이윽고 멀게 되었다. 이런 꼼꼼한 기록에는 누가가 의사 교육을 받았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참조 행 9:18 주석; 골 4:14).

  11. 총독. 총독은 이적을 보고 이어진 말씀을 들었다. 그는 사도들이 더 위대한 능력을 보여 줬다고 믿고 엘루마가 가르쳤던 것보다 분명 더 뛰어난 기별을 받아들였다.
    주의 가르치심.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
    기이히 여기니라. 즉 “놀라더라.” 여기서 이 단어는 마 7:28에서처럼 복음을 듣고 기뻐 놀람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12.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 밤빌리아는 소아시아 남해안 중간 지점쯤에 있는 작은 지역이었다. 바울이 방문하기 직전인 AD 43년에 이곳은 서쪽 인근 루기아와 합병되어 하나의 제국 직할 속주를 형성하였다. 버가는 이곳의 주요 도성으로서, 바다에서 약 13킬로미터 떨어진 체스트루스(Cestrus) 강가에 있었다. 당시 이 도성에서의 전도 사역에 대하여 누가가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곳에 회당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한 마가가 떠나고 착잡해진 마음에 바울과 바나바는 계속 나아갔을 것이다. 그들은 돌아오는 길에 버가에서 복음을 전했다(참조 14:25).
    요한은…떠나. 즉 요한 마가(참조 5절 주석). 요한이 왜 떠났는지 어떠한 단서도 없다. 아마도 그는 여정의 위험과 고난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요한 마가는 두 번째 복음서의 기자와 동일 인물일 것이다. 그는 후일 그리스도의 열성적인 일꾼이 되었다. 바울은 후에 애착을 갖고 그에 대해 말했으며(골 4:10), 마지막 투옥 기간 중 그를 보고싶어 했다(딤후 4:11). 누가가 왜 요한 마가가 떠났는지 알았을지라도 훗날 마가의 성공적인 경험을 존중하여 그 이유를 여기서 밝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13. 버가로부터 지나. 바울과 바나바의 행로는 북쪽으로 체스트루스 강 지류 중 하나를 따라 갈라디아 도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들은 안디옥에 이르기 위해 밤빌리아 전체를 거슬러 올라가 갈라디아 남서쪽 모서리를 “지나갔다.”
    안디옥. 비시디아는 바울 당시 일개 관구(管區)에 지나지 않았으며 AD 3세기 말이 되어서야 속주로 승격했다. 이 안디옥은 비시디아에 없었으며 브루기아 지역 근처에 있었다. 그러나 BC 39년에 이곳은 비시디아 왕의 통치를 받게 되었고 동일한 이름의 다른 도성들과 구별하기 위해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신약 시대에 이곳은 갈라디아 도에 포함되었다.
    안디옥은 셀류쿠스 Ⅰ세 니카토르(Seleucus Ⅰ Nicator; BC 280년 사망)가 건설한 많은 도성 가운데 하나로, 자신의 아버지 안티오쿠스의 이름을 따서 이렇게 명명하였다. 이곳은 해발 1097미터 정도 되는 타우루스 산맥의 하부 비탈에 있다. 이곳 사람들은 아구스도 통치 때에 로마 시민권을 받았다. 안디옥은 상당수의 유대인들의 마음을 끌었을 것이며 이로 인해 이방인들이 유대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42절).
    이 여행에서 바울과 그의 일행은, 그가 고후 11:26에서 언급한 “강도의 위험”에 노출되었던 것 같다. 안디옥에 이르기 위해 그들이 통과했던 비시디아는 북쪽으로 갈수록 점차 높아지는 산악 지역이었다. 스트라본(Strabo, AD 24년경 사망; Geography xii. 7. 2)은 이 지역에서 자주 발생한 약탈에 대해 언급한다.

베드로가 옥에서 놓임-사도행전 연구1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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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2:1-19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 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내용 요약

  1. 야고보의 순교 (1-2)
  2. 베드로의 투옥과 탈옥 (3-19)
  3.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죽음 (20-25)

 

배 경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기까지는 또 한 사람의 순교자가 있었다. 헤롯대왕의 손자 헤롯 아그립바 I세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야고보를 목베어 죽였다.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자 그는 베드로도 죽이려고 투옥했다. 예루살렘교회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극심한 시련이 다가오고 있었다. 신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시 34:7, 개정)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위기에 몰렸으나 태평스러웠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 보아요.

  2. 천사의 도우심이라고 생각되는 사건들이 있다면 나누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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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야고보는 누구입니까?
    ① 가족관계 (마 4:21)    ② 별명 (막 3:17)    ③ 그의 죽음 (행 12:2)

  2. 베드로는 얼마나 철저히 감시를 받았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2:4-6)
  3. 베드로가 옥에 갇히고, 교회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12:5) 그들이 한 일은 교회가 어려울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제시해 주나요?

  4. 베드로는 얼마나 깊이 잠들었습니까? (12:7)
    그 절망적인 밤에 예루살렘에서 잠을 잔 그리스도인은 베드로밖에 없었다고 한다. 내일로 다가온 죽음을 앞에 두고 베드로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얼마나 깊은 신뢰인가? 얼마나 확고한 믿음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자는 베드로와 비교해보라(막 14:36-37).
  5. 다락방의 사람들은 베드로가 살아 돌아온 것을 믿었습니까(12:13-16)?
    기도를 하고서도 그 응답을 믿지 못하는 것으로 봐서 그날 밤의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이었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기도를 드리면서도 그렇게 믿지 못하지는 않습니까?
  6. 교만한 헤롯의 최후에 대해 말해 보시오(12:20-23)​

생각해봅시다

  1. ​권력과 출세 중심인 헤롯의 삶과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바치는 야고보의 삶을 비교해서 생각해봅시다. 어느 쪽이 나의 삶과 더 가깝게 느껴지나요?

  2.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믿지 않는 우리의 행동이 있나요?

모든 하늘 천사들은 겸손하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을 위해 봉사하고 있으므로, 이 지상에 있는 주의 일꾼들의 군대가 찬양의 노래를 부를 때에, 하늘 찬양대는 그들과 연합하여 하나님과 그 아들에게 찬양을 돌린다.
우리들은 천사들의 사명을 지금보다 더욱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모든 하나님의 진실한 자녀들은 하늘 존재들의 협력을 받고 있음을 기억함이 좋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빛과 능력의 군대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구하는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들과 동행하고 있다.(사도행적 154p)

 

 

1. 그때에. 여기서 이야기하는 사건은 헤롯 아그립바 Ⅰ세의 사망 직전에 일어났을 것이다(참조 20~23절). 그가 AD 44년에 죽었기 때문에, 이 장의 초반부 사건들은 아마도 AD 44년 이전 해이거나 당해 초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

헤롯왕. 헤롯 아그립바 Ⅰ세는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와 베레니체(Berenice)의 아들이었고, 헤롯 대왕과 하스몬 가문의 공주인 마리암네(Mariamne)의 손자였으며, 침례자 요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헤로디아(Herodias)와 남매지간이었다(참조 제9권, 51). 그의 이름은 아구스도(Augustus)의 총리였던 정치가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 그는 자신의 부친이 BC 7년에 조부 헤롯 대왕의 의심으로 희생된 후(제9권, 53)에, 일면으로는 볼모로, 다른 일면으로는 그가 음모에 연루되는 것을 막기 위해 로마로 보내졌다. 거기서 그는 칼리굴라와 글라우디오의 친구가 되었는데, 후에 그 둘은 모두 황제가 되었다. 헤롯 안티파스가 헤롯 아그립바의 누이 헤로디아와 결혼했을 때, 아그립바는 디베랴의 시장(市場) 감독관이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안티파스와 다투고 로마로 갔다. 거기서 그는 자기 친구 칼리굴라가 황제가 되었으면 하는 성급한 소원을 드러내 디베료의 노염을 사게 되었다. 그는 디베료의 명으로 투옥되어 이 황제가 죽을 때까지 감금된 채로 있었다. 칼리굴라는 디베료를 이어 황제의 위에 올랐을 때 자기 친구 아그립바에게 명예를 주어, 먼저는 빌립의 영지를, 그 뒤에는 루사니아의 영지(눅 3:1)를 주고 왕의 칭호를 부여하였다. 안티파스가 물러났을 때(참조 제10권, 73), 아그립바는 안티파스의 영토도 상속하였다. 그의 통치의 개관에 대해서는 제10권, 78을 참조하라.

2. 야고보를죽이니. 사도가 신성모독이나 이설이라는 죄명을 받았다면, 산헤드린은 그에게 돌로 쳐죽이는 형을 언도했을 것이다. 침례자 요한의 경우처럼(마 14:10), 사도 야고보의 참수형은 그의 죽음이 로마의 처형 방법을 채용했던 국가 통치자에 의해 언도되었음을 입증한다(참조 마 20:23). 헤롯이 야고보를 왜 그의 첫 희생자로 지목해야 했는지는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했을 때 복음 전도 이야기에서 베드로와 요한과 공유했던 중요한 위치를 지속적으로 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천성적인 열정으로 인해 눈에 띄었을지도 모르는데, 이는 그가 우레의 아들로 불렸기 때문이다(막 3:17).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로부터 전달되어 유세비우스(Eusebius)가 보존한 전승(Ecclesiastical History ii. 9)에 의하면 야고보를 고발한 자가 희생자의 믿음과 인내를 보고 회심했다고 한다.

야고보는 그리스도 승천 이후 단 1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봉사했다. 사도들 중에 그가 가장 먼저 죽은 반면에, 그의 형제 요한은 아마도 12명 중 가장 마지막으로 죽었을 것이다.

3. 유대인들이…기뻐하는. 이것이 아그립바의 목적이었다. 요세푸스도 이것을 주목한다. 그는 아그립바를 안티파스와 비교하면서, 안티파스는 “유대인보다 헬라인에게 더 호의적이었”지만 아그립바는 안티파스와 “전혀 같지 않았다”라고 말한다(Antiquities xix. 7. 3).

민중의 칭송 혹은 비난에 대한 이 왕의 예민함을 예증하는 한 사건이 미쉬나에 나온다(Sotah 7. 8; Soncino ed. of the Talmud, 202). 어느 안식년 장막절에, 아그립바 왕이 율법을 읽고 있었다. 그가 “네 형제가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라는 신 17:15 말씀에 이르렀을 때, 자기의 후손인 이두메 사람들을 생각하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사람들은 그가 우는 것을 보고 그가 하스몬가를 생각하는 줄로 알고 “당신은 바로 우리 형제요! 당신이야말로 우리 형제요!”라고 부르짖자 왕의 마음이 위로받았다.

만약 아그립바가 기쁘게 하려던 대상이 주로 유대 지도자들이 아니었다면, 분명 이 이야기는 2:47과 5:26에서 명백하게 드러난 대로 사도들을 지지하는 초기 대중적인 정서에 큰 변화가 발생했음을 암시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 변화는 교회 구성원의 급격한 증가로 야기되었다.

무교절.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눅 22:1)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표현은 유월절 전체 기간을 가리킨다.

4. 네 패. 한 패(quaternion)는 보초 근무를 서는 4명으로 이뤄진 분대였다. 두 병사는 죄수와 함께 묶여 있고 두 병사는 서서 외부를 감시했을 것이다(참조 10절 주석). 이렇게 4명으로 이뤄진 분대는 분명히 교대로 베드로를 담당하도록 명령받았을 것이다.

5. 간절히. (「제임스왕역」에는 “without ceasing”[쉬지 않고]). 헬라어 엑테노스(ekteno-s). “간절히.” 겟세마네에서 드린 예수의 기도를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눅 22:44)와 동일하다. 이 단어는 벧전 4:8에서는 “열심으로”라고 번역되어 강렬함을 나타낸다. 교회의 일반적인 상황으로 보아 이 기도들은 사가(私家)에서 그리스도인 무리가 드린 것으로 추측될지 모르는데(행 12:12), 이는 아그립바의 핍박이 공개적인 그리스도인 예배를 위협했기 때문일 것이며, 이는 그리스도교 초기에 흔한 사례였다.

6. 베드로가누워 자는데.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말씀에 나타난 대로(시 127:2), 사도가 다가오는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잠잠히 휴식을 취하는 것을 보는 것은 신앙에 영감과 도전을 준다.

7. 쇠사슬이벗어지더라. 베드로는 분대 소속 병사 두 명에게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쇠사슬이 그의 발목과 손목에서 벗겨져 떨어졌지만, 보초들은 깨지 않았다.

9. 알지 못하고. 베드로에게 이 상황은 분명히 10장에 기록된 생생했던, “비몽사몽” 중에 본 환상과 매우 흡사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는 마치 전에 기도하는 중에 지붕에서 환상을 보았다는 사실을 깨어난 후에야 깨달았던 것처럼, 깨어난 후에 자신이 두 병사에게 쇠사슬로 묶여 있는 것을 보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10. 파수. 헬라어 퓔라케(phulake-). “첫째와 둘째 파수”는 감옥의 안쪽 문 근처와 약간 더 떨어져 있는 다른 문에 배치된 보초들을 가리키거나, 아니면 그와 함께 쇠사슬에 묶여 있던 보초와 문에 있었던 다른 보초들(참조 4절 주석)을 가리킬 수 있다. 베드로는 안쪽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안뜰 둘을 지나서 나와야 했다.

절로. 이 말은 인간적인 힘이 사용되지 않았음을 뜻한다(참조 레 25:5). 보이지 않는 천사가 문을 연 것이 분명하다.

누가가 이 기적을 간결하면서도 꾸밈없이 기록한 사실은 이 기록의 정확성을 입증한다.

12. 요한. 베드로가 마가를 그의 “아들”(벧전 5:13)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 젊은이는 베드로를 통해 회심했을 것이다. 라틴어 이름 마르쿠스(Marcus)는 로마인 혹은 로마계 유대인과 어느 정도 접촉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마리아. 이 마리아는 바나바와 친척이다(참조 골 4:10. 마가가 “바나바의 생질”이라고 되어 있지만, 헬라어로는 “바나바의 사촌”을 의미한다). 마가의 아버지가 언급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마리아는 과부였을 것이다. 기도회 장소로 교회에 대여해 줄 만큼 큰 집을 가졌던 점을 볼 때, 마리아도 바나바와 마찬가지로(참조 행 4:36, 37) 상당한 재산을 소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모여 기도하더라. 아마도 이러한 모임은 마리아의 집에서 흔히 있었을 것이다. 베드로가 감옥에서 구출되었을 때 일단의 무리가 그의 구원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는데(참조 5절), 이는 교회가 위기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3. 로데. “장미”라는 뜻의 흔한 헬라어 이름. 로데는 이 사건 외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녀만큼 잘 알려진 하인은 거의 없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 예수의 발을 씻겼던 마리아 그리고 성전 연보궤에 두 렙돈을 넣었던 이름 모를 과부처럼, 로데는 1900여 년 동안 모든 성경 독자들에게 알려졌다.

영접하러. 여기에 위기감이 풍기는데, 이는 아그립바가 유대교에 대한 열심 때문에 제자들에게 가한 핍박으로 인한 위기였다. 사울이 일전에 모든 집에 들어가 남녀를 감옥으로 체포했는데(8:3), 이때도 그와 유사한 위험을 내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로데가 들어가기를 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 전에는 문을 열어 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14. 베드로의 음성. 헌신적이고 용감한 십자가의 군병을 향한 어린 여성의 그리스도인 사랑으로 그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베드로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였을 것이고, 따라서 그녀는 그의 음성을 알아챘다. 또한 베드로는 갈릴리 방언 특유의 어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전에도 어떤 하녀가 그를 알아본 적이 있었다(마 26:73).

기뻐하여. 로데가 베드로에게 문을 열지 않았던 것은 믿음의 부족이 아니라, 순수한 기쁨 때문이었다. 그녀는 베드로를 향한 형제들의 근심과 그를 위해 드려지는 기도에 함께하였다. 베드로의 탈출에 대한 기쁜 소식을 말하려는 간절한 갈망으로 인해 그녀는 침착함을 잃어버렸다. 이와 유사하게 누가는 부활의 저녁 예수를 알아보았으나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였던(눅 24:41) 제자들에 대해 기록하였다.

15. 네가 미쳤다. 베드로가 문에 서 있다는 소식을 로데가 전했을 때, 형제들은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자신들의 기도에 응답했음을 믿을 만한 믿음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어린 여성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그의 천사. 히브리서(1:14)에서 천사에 관한 유대인의 건전한 신념은 다음 질문에 표현된다. “모든 천사는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유대인은 수호 천사가 각 사람에게 배정되며, 천사가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날 때 그 사람과 비슷한 모양을 취한다고 믿었다. 구약과 신약의 중간 시대에 유대인은 복잡한 천사론(angelology)을 발전시켰다.

16. 놀라는지라. 선한 사람들조차도 기도가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응답되었다는 사실을 선뜻 믿으려 들지 않음을 보여 주는 이보다 더 좋은 예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베드로가 그들 앞에 섰을 때, 그들은 이 사람이 베드로임을 거의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믿음의 기도가 응답될 것이라는 충분한 보증을 주었다(요 14:13, 14).

17. 자기를 이끌어. 감옥에서 놓여 정신을 차렸을 때 베드로는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11절)셨다고 외쳤다. 그러나 지금 그는 자신을 구원한 분이 주님이었다고 증거하고 있다.

야고보. 할례와 관련해서 예루살렘 총회에서 의장을 맡아, 그 문제에 대해 판결을 내렸던 야고보임이 분명하다(15:13). 그는 어떤 면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수석 장로였기 때문에, 베드로가 자신의 구출 소식을 즉시 알려 주길 바란 것은 당연했다.

이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 아니면 주님의 형제 야고보일 것이다. 예수의 형제들은 예수의 지상 생애의 종반부가 돼서야, 즉 열두 제자가 선택되고 한참 후에야 그를 믿게 되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사망한 이후,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중 하나였던 야고보를 가리켜 “주의 형제”(갈 1:19; 참조 2:9)라는 명백한 호칭을 붙인다. 이 사람이 바로 여기서 베드로가 언급한 야고보일 것이다. 유세비우스(Ecclesiastical History ii. 23; Loeb ed., vol. 1, 171)는 그를 예루살렘의 감독이라고 칭하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진실의 요소를 간직하고 있는, 야고보에 관한 헤게십푸스(Hegesippus)의 회고록(Memoirs, AD 180년)을 인용한다. “주님의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모든 사람이 그를 ‘의로운 자’라고 부른 이유는, 야고보로 불린 사람이 많았지만 이 야고보는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거룩했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거나 육식을 하지 않았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으며, 스스로 기름을 바르지 않았고 목욕하지도 않았다. 그만이 홀로 성소에 들어가도록 허용되었는데, 이는 그가 양모를 입지 않고 아마포만 입었고 혼자 성전에 들어가 사람들의 죄사함을 위해 무릎 꿇고 기도드리곤 했기 때문이며, 사람들의 죄사함을 무릎 꿇어 간구하며 하나님에게 지속적으로 경배했기 때문에 그의 무릎은 낙타 무릎처럼 딱딱하게 되었다.” 전승에 의하면, 그가 그리스도를 부인하라는 요구를 거절했을 때, 그는 성전 꼭대기에 올려졌고, 그분에 대한 믿음을 붙잡겠다고 주장함으로 밑으로 던져져 돌에 맞고 곤봉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참조 제10권, 81). 요세푸스에 의하면(Antiquities xx. 9. 1) 그는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야고보서 서론을 참조하라.

18. 적지 않게 소동하니. 베드로와 함께 쇠사슬에 묶여 있던 보초들은 틀림없이 깨어나자마자 그가 사라졌음을 발견했을 것이고, 그가 도주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죽을 것임을 알았다.

이것은 베드로의 활동에 대한 성경의 마지막 기록이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그에 대해 진술한 것은 이미 언급하였다(1:18; 2:7, 8, 11, 14). 베드로는 자신의 두 서신에서 행한 일들에 대한 약간의 암시를 준다(벧전 1:1; 5:12, 13; 벧후 1:14). 이 외에는 어떤 영감된 기록에도 그에 대해 더 알려진 것은 없다. 전승에 꽤 많은 언급이 있긴 하지만, 그 주장들은 그 진위에 따라 수용하거나 거부해야만 한다. 제롬이 유세비우스의 크로니콘(Chronicon)을 의역한 진술 곧 베드로가 로마에서 25년 동안 전파했다는 말은, 베드로가 총회를 위해 예루살렘에 있었으며(행 15장) 그가 총회 직후 분명히 안디옥에 있었고(; 참조 제15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그가 친히 소아시아 북서부에서 사역했다(벧전 1:1; 참조 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iii. 1)는 사실에 비춰볼 때 매우 의문시된다. 행 8~12장에 비추어 볼 때, 이 모든 것은 AD 44년 베드로의 구출에 뒤이어 일어났을 것이다.

19. 죽이라. 문자적으로 “[그들을] 끌어내어” 처형하라. 동일한 동사가 예수의 재판과 십자가 처형에 대한 복음서 기사에서 “끌고 가니”(마 26:57; 27:2, 31; 막 14:53; 눅 23:36)라고 번역되었다. AD 529년에 공포된 한 로마법은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투옥된 죄수의 구금과 관리는 간수에게 맡겨졌고, 따라서 간수는 어떤 경우든 죄수가 도주했을 때 그에게 책임이 있다해도 일부 비열하고 야비한 피고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데, 이는 도주한 죄수가 받아온 것으로 입증된 동일한 형벌을 간수가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The Code of Justinian ix. 4. 4; in S. P. Scott, tr., The Civil Law, vol. 14, 364). 이것은 죄수가 도주하는 것을 막지 못한 간수와 관련된 법 혹은 적어도 판례로 오랫동안 존재했던 것이 분명하다. 빌립보에서, 자기의 죄수들이 모두 도주했다고 생각한 간수는 법으로 사형을 당하느니 차라리 자살하려고 하였다(행 16:27). 27:42과 비교해 보라.

복음기별이 안디옥에-사도행전 연구1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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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1:19-30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27]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내용 요약

  1. 이방인 논쟁 (1-25)
  2. 안디옥 교회의 설립 (19-26)
  3. 유대의 기근 구제 (27-30)

 

배 경

제11장의 첫 부분에서 다시 고넬료 사건이 문제가 된다. 28장밖에 안되는 사도행전에서 왜 고넬료 사건이 그렇게 크게 다루어지는가? 그것은 예루살렘의 제자들이 이방인을 향해 마음을 여는 일이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11장의 두 번째 부분에서는 드디어 세계선교를 위한 본부가 세워진다. 안디옥 교회이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올린고로 이방인들이 그들을 그리스도인들이라 부름은 지당한 일이었다. 이것은 자신들을 그리스도께 연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고귀한 이름이다.(행적, 157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지방에서 잘 할 수 없는, 서울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2. 나는 내가 속한 사회에서 “안식교인” 혹은 “재림교인”이라고 불리우는 것에 대하여 부담감이 없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스데반의 일”(11:19)과 그 결과로 일어난 좋은 결과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볼까요?
  1. 그들이 용기 있게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하니(11:20)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습니까? (11:21)
  1. 바나바는 “착한 사람”,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11:24)이것은 복음 전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1. 바나바는 바울을 찾으러 가서 무엇을 제안하였습니까?. (11:25)
    다메섹도상의 회심 이후 9년이나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있는 바울의 겸손과 신앙을 생각해 봅시다. 본인라면 그렇게 기다릴 수 있을까요?

  2. 안디옥의 신자들은 어떻게 살았기에 사람들이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을까요?(11:26)

생각해봅시다.

  1. 우리 주위에 헬라인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요?
  1. 안디옥교회가 설립된 의의에 대하여 생각봅시다.

안디옥에 있는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애를 통해 즐겨“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소원을 두고”(빌2:13) 일하기 원하심을 깨달았다. 영원한 가치를 지닌 사물에 관해 거의 관심이 없는 듯이 보이는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그들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 저희가 사랑하고 섬기는 분에 대해 적극적인 증거를 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들은 겸손히 봉사하면서 생명의 말씀을 효과 있게 만드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날마다 그리스도를 믿는 그들의 신앙을 증거하였다.(행적158p)

 


19. 스데반의 일로. 8:1~4에 나타난 대로, 순교자의 죽음은 예루살렘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광적인 핍박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신자들의 분산을 초래하였다. 빌립은 사마리아와 가이사랴에서 일했다. 다른 사람들은 베니게의 도성인 두로와 시돈 그리고 돌레마이로 갔는데, 아마도 이들은 21:3~7과 27:3에 언급된 교회들을 설립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구브로에는 바나바와 사울의 이후 사역을 위해서 길이 예비되었다(참조 13:4~13). 참조 280쪽 지도.

 

환난. 사울이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던 핍박을 가리킨다(참조 8:1; 9:1, 2).

 

안디옥. 갓 태어난 그리스도 교회가 수리아의 수도와 접촉한 것에 대한 첫 언급이다. 안디옥은 로마 제국에서 로마, 알렉산드리아, 에베소 다음으로 큰 도성이었고, 오랫동안 그리스도인의 중요 거점이 되었다. 아마도 안디옥의 개종자 니골라(6:5)가 자기의 새로운 신앙을 선포하기 위해 귀환했을 것이다. 그곳으로 그리스도교가 들어간 것은 중대한 의미가 있었다. 실루기아(Seleucia) 항구에서 내륙으로 약 24킬로미터 떨어진 오론테스(Orontes) 강변에 위치했고, BC 300년경 셀류쿠스 Ⅰ세 니카토르(Seleucus Ⅰ Nicator)가 건립하여 그의 아버지 안티오쿠스(Antiochus)의 이름을 따라 명명된 안디옥은, 부와 영향력이 있는 곳으로 성장하여 아시아의 주도적인 도성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곳의 학자와 문필가들을 극찬하였다. 키케로(Cicero)는 그들 중 한 사람인 아르키아스(Archias)에게 유명한 연설을 하였다. 유베날리스(Juvenal)는 로마 생활과 기호에 미친 안디옥의 영향을 인식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가진 편린(片鱗)이라도 헬라로부터 온 것이 있는가? 수리아의 오론테스 강은 오래 전부터 티베리스 강(Tiber)으로 흘러 들어오면서, 수리아의 방언과 풍습 그리고 피리와 경금현(傾琴絃, slanting harp-strings) 등도 함께 가져왔다”(Satires iii. 62~64; Loeb ed., 37).
안디옥에는 유대인 거류지가 여러 곳 있었는데, 그들을 위하여 헤롯 대왕이 그 도성을 가로질러 대리석 주랑(柱廊)을 건설하였다. 안디옥은 로마의 수리아 행정 장관 즉 총독의 본부였다. 그리스도 교회는 예루살렘이나 가이사랴보다 헬라 문화에 더 가깝게 접촉하는 안디옥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또한 그리스도 교회는 가장 유혹적이고 저급한 형태의 이교와 맞닥뜨렸다. 다프네(Daphne) 신에게 바쳐진 작은 숲들은 방탕한 우상숭배로 유명했다. 교회가 안디옥을 주요 거점 가운데 하나로 삼을 수 있었다는 것은 놀랄 만한 승리였다.

 

유대인에게만. 이는 물론 고넬료의 회심이 일어나기 전 혹은 고넬료의 회심이 일반적으로 알려지기 전에, 예루살렘을 떠났던 사람들에게는 예상된 것이었다. 베드로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그리스도의 예언적 명령이 최대 범위까지 수행(1:8)될 때가 이르렀다는 것을 통보받지 못했다. 유대인만 골라 말한 것은 분명히 베드로와 고넬료에 대한 앞의 이야기와 이어지는 선교사 사역에 대한 진술 모두와 대조되어 언급된 것이다. 

 

20.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 이 사람들의 경우, 좀 더 국제적인 배경을 가진 이들이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고향이자 편견의 본거지인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중에 있는 이방인에 비해 어울리는 데 아마도 덜 망설였을 것이다.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짐작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13:1의 선지자 목록에 나오는 구레네 사람 루기오이거나 그리스도의 제자였던 구레네 사람 시몬일 수 있는데, 시몬이라고 추측할 만한 이유가 있다(참조 마 27:32 주석; 참조 막 15:21). 안디옥에 있는 교회의 설립자들은 알려지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21. 주의 손. 구약에서 하나님이 세상 역사에 직접 관여하는 것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표현이다. 참조 출 14:31: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손”을 뜻하는 히브리어 야드[yad])을 보았으므로.” 애굽 술객들의 진술과 비교해 보라.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출 8:19; 「제임스왕역」에는 “이는 하나님의 손가락이니이다”라고 되어 있음). 이것은 매우 인격적인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22. 이 사람들의 소문. 즉 안디옥의 이 회심자들에 관한 소문. 만약 새로 회심한 이 사람들이 이방인이었다면, 그들의 회심 소식에 대해 나타낸 예루살렘의 호의적인 승인은 틀림없이 고넬료를 이미 용납했던 승인 덕분이었을 것이다.
바나바를…보내니. 이는 안디옥에서의 사역을 강화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승인과 지침을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파송된 것(8:14)과 같은 맥락이다.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진행되고 있던 사역에 동조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아마도 바나바가 낙점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사울의 친구였고, 예루살렘에 있던 제자들 일부에게 사울을 소개했으며(9:27), 이방인에 대한 사울의 확신과 소망을 알았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사울은 같은 길에서 일할 기회를 환영했을 것이다. 안디옥에서 일하는 선교사들 일부와 같은 지역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는 더욱 적임자였을 것이다.

 

23. 기뻐하여. 바나바는 오직 이 새로운 사역에서 자신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았으며, 교회에 교인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크나큰 기쁨의 이유가 되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경험과 사역 전체는 언제나 지속적이고 쇠하지 않는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굳은. 바나바는 그들이 시편 기자와 같이 “나의 마음이…정해졌”(시 57:7; 108:1)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랐다.
주께 붙어 있으라. 충성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게 드려져야 하며, 앞 구절에서 지적한 것처럼 “굳은 마음으로” 그분 안에 남아 있어야 한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인들 위에 임한 하나님 은혜가 이룬 효력의 결과를 보았지만, 모든 참 목사가 아는 바와 같이 그는 사람의 의지 혹은 의지의 부족이 그 은혜를 방해할 수도 있음을 알았다.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라는 말은 옳지 않으며, 사람은 뒤로 물러가 변절하기 때문에 의지의 협력이 성화의 과업을 완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권하니. 혹은 “권하기 시작했으니.” 시제는 지속적인 행동의 시작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24. 착한. 혹은 “올바른”(참조 눅 18:18, 19). 바나바에게 쓰인 이 말은 극찬이었으며, 의심할 여지없이 이 사람에 대한 누가의 개인적인 의견이 표현된 것이었다. 누가는 기록에 이런 좋은 점을 남기는 데 아마도 신중했을 것인데, 이는 바나바가 누가의 친구이자 동역자인 다소 사람 사울과 결별해야만 했던 말다툼을 조금 후에 이야기해야 했기 때문이다(행 15:39).
성령…이 충만한. 안디옥의 헬라계 유대인들 사이에서 저명했던 바나바와 같은 성품의 소유자라면 그 도성에 있던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을 것이다. 동일한 자격이 스데반에게도 주어진다(6:5). 전도자들이 안디옥으로 왔던 것은 바로 스데반의 죽음 후에 이른 핍박의 결과였다. 그들 중 일부는 스데반을 순교로 몰고 간 그 사역에서 활동적이었던 헬라파 유대인들이었을 것이다.

 

큰 무리. 21절과 관련된 사역 이후 많은 증가를 암시함. “위로의 아들” 바나바의 기쁨과 격려 가운데 표현된 것처럼, 예루살렘 교회가 이뤄진 일에 대해 승인한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이 진실한 일꾼들의 열성을 증가시켰을 것이다.

 

25. 바나바가…다소에. 이것은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사울이 안디옥에서 진행되고 있던 일에 찬성할 것임을 전제하며, 사울이 그곳 사역을 원조할 적임자라는 바나바의 신임을 보여 준다. 또한 사울이 예루살렘을 떠난 이 후 서신이나 사자를 통해 사울과 어느 정도 왕래가 유지되었음을 암시한다. 추측하건대, 사울은 다소나 그 근처에 머물면서, 그곳과 길리기아의 이웃 성읍에서 복음을 전파했을 것이다(참조 15:41 주석).

 

사울을 찾으러. 문자적으로 “사울을 뒤져내러”(to hunt up Saul). 주님의 현현을 경험했고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할 “택한…그릇”(9:15)으로 지정되었던 그는, 이때 안디옥에서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는 이 새로운 사역을 위해 바나바에게 동참하도록 요청받았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효력을 발하고 있음을 이미 들었기 때문에, 사울은 초청을 수락하였다.

 

26. 교회에. 교회 건물이 아니라 회중을 가리키는데, 3세기가 되어서야 건물들이 교회의 소유에 들었기 때문이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 신자들과 만나 복음 기별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기가 무섭게 교회 조직으로 편입되었다.
일 년간. 앞선 사례들과는 달리, 여기서는 기간이 정확하게 주어진다. 사울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서, 말하자면 목숨을 걸고 전파하였다. 안디옥에 있는 교회에서 그는 그의 열심에 어울리는 안정도와 광범위한 기회를 발견하였다.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더 정확하게는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받게 되었더라.” 배교자(the Apostate)라고 불린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AD 361~363년)는 풍자 형태로 별명을 창안하는 경향이 당시 안디옥 주민의 특성이었다고 언급하였다. 분명히 동일한 경향이 그리스도교가 최초로 나타났던 시기에도 유행하였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의 첫 음절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헬라어 크리스토스(Christos)에서 온 것인 반면 마지막 음절은 본래 라틴어인데, 이는 폼페이우스(Pompey)의 추종자들인 폼페이아니(Pompeiani) 같은 단어 및 다른 호칭들과 비교할 만하다. 유사하게 복음서에도 헤롯 당원(헤로디아나이[He-ro-dianai], 마 22:16)이라는 유사한 용어가 나타나는데, 이는 로마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어쩌면 이교도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조롱조로 이 호칭을 붙였을지도 모르는데, 루테라니(Lutherani) 곧 루터파라는 용어가 1,500년 이후 루터 추종자들의 적들에 의해 조롱조로 사용되었던 것과 어느 정도 유사하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 호칭을 자신들에게 붙이지는 않았을 것이고, 이 호칭의 사용은 이 호칭을 지닌 이들이 그리스도 곧 메시야의 추종자들임을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그들에게 이 호칭을 붙이지도 않았음이 분명하다. 새로운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분명하다. 이들 새 이방인 회심자들이 안디옥 교회에 동참했을 때, 이전의 어떤 이름도 국제적인 전체 조직을 포함하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더 이상 나사렛인도 갈릴리인도 헬라파 유대인도 아니었으며, 따라서 안디옥 사람들의 눈에는 특이한 혼종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라틴어 어미를 지닌 헬라어 즉 혼종어(混種語)인 “그리스도인”이 그들에게 어울리는 것으로 보였다. 처음에는 조롱하는 말이었지만 후에는 영광스러운 이름이 되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말고”(벧전 4:16).
그러나 전승에서는 이 호칭의 기원을 안디옥의 1대 주교인 유오디우스(Euodius)에게 돌린다. 그곳 교회의 지도자로서 유오디우스의 계승자인 이그나티우스(Ignatius)는 이 호칭을 자주 사용하였다.

 

27. 선지자들이…이르니.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2:17)에서 인용되었던 요엘의 예언에 대한 성취로서, 어린 교회에 선지자들이 있었음이 분명하다(참조 행 13:1, 2; 엡 2:20). 그러나 우리는 신약 기록들로부터 이 “선지자들”의 직무가 무엇이었는지 분명히 알 수 없다. 그들은 성령의 은사를 소유했고,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해석하는 일에 종사했으며, 때로는 여기서 아가보가 그랬듯이 미래 사건들을 예언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참조 행 13:1; 15:32; 19:6; 21:9, 10; 롬 12:6; 고전 12:10, 28, 29; 13:2; 14:6, 29~37). 선지자들의 사명은 분명히 사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수행하고 있었던 사역에 대해 예루살렘 교회가 부여한 부가적 승인으로 여겨졌음에 틀림없다.

 

28. 아가보. 바로 이 선지자가 후에 가이사랴와 관련된 이야기에 등장한다(21:10, 11).
천하. 헬라어 오이쿠메네(oikoumene-).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을 가리키는 단어. 눅 2:1; 눅 4:5과 신약의 다른 곳에서, 이것은 로마 제국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크게 흉년. 이 흉년은 아마도 요세푸스가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데(Antiquities xx. 2. 5), 그는 티그리스(Tigris) 강 동편 아디아베네(Adiabene)의 여왕인 헬레나(Helena)가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동안 어떻게 백성들을 위해 알렉산드리아의 옥수수와 구브로의 마른 무화과를 얻어다가 도와주었는지를 말한다. 이 흉년은 마 24:7에 있는 예수의 예언에 대한 부분적인 성취로서 보여질지도 모른다. 이 사건과 신약 연대기의 관계를 알려면 제12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설명 1을 참조하라.
글라우디오. (「제임스왕역」에는 가이사 글라우디오[Claudius Caesar]).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는 “가이사”가 생략됨을 입증한다. 글라우디오의 통치는 AD 41년부터 54년까지 지속되었는데, 이 기간은 빈번한 흉년으로 유명하다(Suetonius Claudius xviii. 2; Tacitus Annals xii. 43).

 

29. 제자들이. 즉 안디옥 교회의 제자들.
그 힘대로. 문자적으로 “각각 번영한 대로.” 예언의 영향으로 모금 활동은 흉년이 임하기 전에 이뤄졌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사울과 바나바는 이방인들을 적극적으로 독려하여 후원하도록 했을 것이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롬 15:25, 26)을 위한 모금 활동의 시초로, 후에 바울의 사역에서 매우 두드러졌으며(참조 행 24:17; 고전 16:1; 고후 9장; ) 사도가 교회의 유대인 계층과 이방인 계층 사이의 연합을 위한 끈으로 간주했다. 예루살렘의 회심자들은 타오르는 첫사랑에서 나온 관대함(행 2:45)과 그에 수반된 핍박(행 8:1)으로 인해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보다 가난의 압박에 더 노출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흉년이 다가왔을 때, 흉년에 영향받지 않은 지역에 위치한 교회들의 도움에 많이 의존했을 것이다. 안디옥 교회는 다른 교회들에게 훌륭한 모본을 보였다.

 

30. 장로들. 헬라어 프레스뷔테로이(presbuteroi). 문자적으로 “연만한 [남자].” 이것은 그리스도 교회의 이 직원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다. 그들은 아마도 사도는 아니었을 것인데, 이는 15:2, 4, 6에서 장로를 사도와 구분하여 언급하기 때문이다. 이 후부터 그들은 교회 조직의 두드러진 요소로 등장한다. “장로”라는 용어, 넓게는 이것이 언급하는 교회의 직책은 이방인과 유대인 생활 모두에 배경을 두고 있었다. 애굽의 파피루스는 “장로들”이 지역 주민들의 경제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입증한다. 그리하여 토지 임대와 세금 납부와 관련된 질문들로 인해 그들에게 간청이 들어왔다(참조 J. H. Moulton and G. Milligan, The Vocabulary of the Greek Testament, 535). 소아시아에서 이 용어는 시의회 의원을 가리켰고, 애굽에서는 신전의 사제를 가리켰다(참조 A. Deissmann, Bible Studies, 156, 233). 유대인 생활에서 “장로”(프레스뷔테로스[presbuteros])는 지역 회당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는데, 이는 테오도투스 명각(Theodotus Inscription)을 통해 입증된다(참조 6:9 주석). 이것은 또한 산헤드린의 평민 의원(히브리어로 즈케님[zeqenim])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참조 4:5 주석). 이렇게 하여 이 용어는 그리스도 교회가 지역 회중 가운데 주요 책임들을 맡은 직원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될 수 있도록 준비되었다. 이 지역 책임자들뿐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 또한 유대 산헤드린의 즈케님의 지위와 약간 유사한 지위를 점하고 있었을 것인데, 이는 사도들과 함께 그들이 자신들의 회중의 한도에 상관없이 어떤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고 15장에 나타나기 때문에 그렇다. 이번 경우에서 안디옥에서 모금된 기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분배되도록 바나바와 사울의 손을 통해 보내진 대상이 바로 이들이었다. 
초기교회에서 장로는 또한 “감독”이라는 뜻의 에피스코포스(episkopos)로 알려졌는데, 이것은 영어에서 “bishop”이라는 단어로 편입되었다. 역사상 적어도 AD 3세기 이후 “장로”와 “감독”(bishop)이라는 용어는 교회의 서로 다른 두 직책을 나타냈지만, 신약의 증거는 사도 시대에는 두 용어가 동일한 직책을 가리켰음을 분명하게 지적한다(참조 딤전 3:2~7과 딛 1:5~9; 참조 행 20:28 주석; 참조 빌 1:1).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 AD 96년경)는 이 둘을 동일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고(Epistle to the Corinthians 44), 크뤼소스톰(Chrysostom, AD 407년 사망)도 “옛날에는 장로들이 감독관들(혹은 감독들)과 그리스도의 성직자들(혹은 집사들)로, 감독관들이 장로들로 불렸다”고 단언하였다(First Homily on Epistle to the Corinthians 1, in Migne, Patrologia Graeca, vol. 62, col. 183).
야고보의 서신에 의하면 장로의 의무 중 하나는 환자들을 방문하여 그들의 건강 회복을 위해 주님에게 기도하고, 치유를 위해 그들에게 기름을 붓는 것이었다(5:14). 후기의 장로와 감독 직책의 발전 과정에 관한 논의를 보려면 제12권 논문 “초기 그리스도 교회” Ⅷ장을 참조하라.

이방인에게로-사도행전 연구1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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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0:1-48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8]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9]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10]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15]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17]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18]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유숙하느냐 하거늘
[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20]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21]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이르되 내가 곧 너희가 찾는 사람인데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22]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 대
[23]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갈새 욥바에서 온 어떤 형제들도 함께 가니라 [24]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내용 요약

  1. 고넬료의 환상 (1-8)
  2. 베드로의 환상 (9-22)
  3. 베드로의 방문 (23-48)

배 경

제9장에서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할 인물을 준비하신 주께서는 10장에서 베드로로 하여금 이방인 고넬료의 집을 방문하고 이방인에게 성령이 내리는 것을 목도하고 그들에게 침례를 베풀게 하심으로서 베드로와 사도들, 즉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마음을 여신다.

 

만일 그분의 동역자들이 하나님과 함께 기회를 활용하는 사람들이 되어 용감하고 충실하게 그들의 의무를 행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 지성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을 개심시키실 것이다. (행적, 140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나와 신앙적인 입장이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선입견을 가지고 만났다가 그 사람의 태도와 인품에 감동된 적이 있나요?
    그리고 그 사람에게 재림교회의 특별한 빛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있나요?

  2. 비 재림교인이 재림교인인 나를 보고 재림교회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진 적이 있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사도행전 10장에서 경건의 3요소를 찾는다면?(10:2)

  2. 고넬료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요. (10:1,2, 22, 25)

  3. 하나님이 깨끗케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10:15)하신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무슨 음식이나 가리지 말고 잘 먹으라고 하신 말씀입니까?

  4. 베드로가 고넬료 집을 방문한 사실은 왜 그렇게 사도행전에서 중요할까요?

 

생각해봅시다.

  1. 고넬료의 신앙처럼 겸손하고 경건하기 위하여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2. 나와 신앙적인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깊이 이해하고 돕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봅시다.

 

주께서는 당신의 지혜로서 진리를 찾는 사람들을 이미 진리를 아는 이와 접촉하게 하신다. 빛을 받은 사람들이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나누어 주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시다. 지혜의 큰 근원으로부터 그 능력을 얻는 인간이 일하는 대리인, 즉 통로가 된 그를 통해서 복음이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에 변화시키는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행적 134p)

 


1. 이달리야대. 이것은 유대-로마 전쟁 기간에 수리아에 주둔했던 것으로 알려진 이달리야 제2보병대(Cohors Ⅱ. Italica)일 것이며, 본 이야기가 일어난 시기 이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보병대는 노예 신분을 벗은 자유민 혹은 적어도 비로마인 출신의 남성들로 구성되었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궁수로 구성된 원군 보병대였다.
  백부장. 참조 눅 7:2 주석. 백부장은 약 100명의 부하들을 통솔하였다. 그는 부대 직속 지휘권을 가졌고 부대원들이 임무를 수행하는지 살피고 기강을 유지하는 책임을 맡은 부장교 지위를 차지하였다. 백부장은 로마 군대에서 고위직으로 승진이 쉽지 않았다. 고넬료는 로마 시민이었다.

2. 온 집으로. 고넬료는 자기를 위해 고귀한 진리를 발견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이것을 자기의 가족과 하인들 그리고 자기의 영향 아래 있는 다른 이들에게도 나누어 주고자 했다. 베드로를 찾기 위해 파송된 병사도 “경건”(7절)하다고 일컬어졌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한 사람”이라는 표현뿐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라는 유사 구절과 이 표현은, 유대교를 받아들여 여호와를 경배하게 된 고넬료 같은 이방인들을 언급하는 곳에서 누가가 반복적으로 사용한다(10:22, 35; 13:16, 26, 50; 16:14; 17:4, 17; 18:7). 많은 경우에 이것은 적어도 안식일 준수와 율법에서 금지한 음식을 삼가는 것 역시 포함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들이거나 경건한 유대인이 되려면 지켜야 하는 모든 규정을 철저하게 순종하지는 않음으로 유대교에 전적으로 동화하지 않았다(참조 제10권, 69~71).
이 표현들은 적지 않게 학자들의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70인역」에는 “경외하는 자들”(대하 5:6)이 언급돼 있는데, 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완전히 유대인이 된 사람’(full-fledged Jews)과 구별되는 특정 계층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요세푸스(Antiquities xiv. 7. 7 [110]; Loeb ed., vol. 7, 505)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을 세계 각처에서 성전으로 예물을 보낸 자들이라고 말한다.
사도행전에 언급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과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이 “문간의 개종자”(proselytes of the gate)와 동일하다는 추가적인 주장이 조성되기도 했는데, 이들은 여호와를 경배하고 유대 율법의 일부를 준수했지만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한 유대인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반(半) 개종자들의 인가된 무리로 구성되었다고 추측된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이 설명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므로 흔히 주장해 온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혹은 “하나님 경외자”)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는 회당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던 특정 계층으로, 반(半) 유대교 개종자를 가리키는 신약 시대에 사용된 전문 용어로 보인다. 후기 유대교에서 그것과 유사한 용어인 “하늘을 경외하는 자”도 그러한 무리를 대표했을 것이다. “하나님 경외자들”은 유대인 공동체 내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지위를 누릴 수 없었고, 따라서 유대교와의 관계는 대부분 비공식적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로마 세계 전반에 걸쳐 이러한 경건한 사람들의 존재는 그리스도인 전도자들에게 이방인 청중을 마련해 주었는데, 이들은 유대교의 율법주의에 맹목적으로 묶이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진지하게 찾고 유대인의 성경(특히 「70인역」)과 유대인의 신조들에 어느 정도 정통하였다.

많이 구제하고. 고넬료는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눅 7:5)라고 유대인들이 언급했던 다른 백부장처럼 관대하였다.

기도하더니. 구제와 기도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은 유대교와 초기 그리스도 교회에서 흔한 일이었다(참조 마 6:2, 5; 행 10:4; 벧전 4:7, 8).
뒤이은 환상은 의심할 여지없이 고넬료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의 길을 아는 더 큰 지식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구하고 있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참조 행 11:14).

3. 제구시. 성전에서 있는 오후 기도 시간이었다(참조 마 27:45; 행 3:1 주석). 고넬료는 유대인의 기도 시간을 택했던 것으로 보이며, 환상이 그에게 주어졌을 때는 기도하는 동안이었다(10:30).

4. 두려워. 천사는 “빛난 옷”을 입은 “한 사람”으로 불린다(30절; 참조 1:10). 천사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고넬료는 잠깐 동안 두려워 떨었다. 그리스도의 무덤을 지켰던 로마 병사들은 고넬료가 그랬던 것만큼 영적으로 조율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활 천사의 찬란한 영광 앞에서 떨며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참조 마 28:2, 4; 단 10:7~11).

상달하여. 더 정확하게는 “피어 올라가서.”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가는 향(참조 계 5:8; 8:3, 4) 즉 “올라가는 것”을 뜻하는 히브리어 올라(‘olah)라고 불린 번제의 연기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특히 저녁 제사 시간에 드린 기도를 가리키는 적절한 표현이다(참조 행 10:3 주석).

욥바로. 가이사랴에서 욥바까지의 거리는 약 48킬로미터이다. 욥바는 요나가 이방인들에게 생명으로 입증된 기별을 설교하라고 부르심을 받았을 때 달아나기 위해 이르렀던 도성이다. 이때, 동일한 도성에서 베드로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부르심을 받을 것이었다.

지붕. 헬라어 도마(do-ma). “건물”, “집.” “집 위에 올라간”다는 말은 곧 지붕에 올라가는 것을 의미했는데, 동방에서는 지붕이 대개 평평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기도와 명상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욥바 같은 도성에서 그리고 피장의 집에서 그곳은 아마도 그러한 목적에 어울리는 유일한 장소였을 것이다. 지붕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 실례에 관해서는 삼상 9:25; 렘 19:13; 마 10:27을 참조하라. 

10. 시장하여. 먹으려 한 점으로 보아 베드로가 금식 중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한낮에 시장함으로 인해 그는 먹으라는 명령을 따를 채비가 되어 있었는데, 그 명령은 환상과 연관되어 그에게 주어질 것이었다(13절). 이런 형편 가운데서 그 명령은 특히 설득력이 있었다.

비몽사몽간. 헬라어 엑스타시스(ekstasis). “비켜섬.” 확대 해석하면 정상적인 환경에서 마음이 이탈한 것을 의미한다. 영어 단어 “ecstasy”(무아경)는 엑스타시스에서 유래되었다. 누가는 이 단어를 성전에서 바울이 환상을 보았던 사건에서 다시 사용한다(22:17). 이 단어는 「70인역」에서 아브라함의 깊은 잠을 묘사하기 위해서 사용된다(창 15:12). 이것은 감각들의 정상 행동이 중지되어, 환상이 꿈에서와 같이 정신적으로만 보이는 상태를 나타낸다(참조 고후 12:3). 베드로의 엑스타시스는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 통로로 주어졌다.

12. 각색…짐승. (「제임스왕역」에는 “all manner of four-footed beasts of the earth, and wild beasts”[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들짐승과]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는 “땅에 있는”과 “들짐승”이라는 단어의 생략을 지지한다. 그러나 동일한 구절이 11:6에서 발견된다. 이 환상은 피조된 모든 동물을 상징하였다. 유대인에게 허용된 음식과, 금지되었지만 이방인들이 음식으로 사용한 것 모두를 나타낸 것이 분명하다.

13. 잡아 먹으라. 베드로는 시장했고, 식욕이라는 본능적인 이 충동을 하늘에서 들려 온 음성이 승인했다. 그가 거절한 이유는 양심 때문이었다. 베드로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라졌음(갈 3:28, 29)을 아직 깨닫지 못했다. 베드로가 이 환상 후에도 이를 충분히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이 후에 안디옥에서 드러난 그의 위선에 나타나는데, 이로 인해 바울이 그를 사정없이 꾸짖었다(갈 2:9~21).

14.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베드로가 심지어 하늘로부터 들린 음성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항변한 것은 그의 성격에 걸맞는다(참조 마 16:22; 요 13:8). 여기서 그의 절규는 이스라엘이 부정한 음식을 먹는 것을 예기했던 에스겔의 절규를 생각나게 한다(겔 4:14). 불결한 고기를 절제하는 것은 유대인의 가장 특징적인 표시 중 하나요, 엄격하게 준수했던 구분이다. 이것은 마카베오 전쟁 동안 유대인과 시리아인 사이에 가장 기본적인 논점 중 하나였는데(참조 마카베오2서 6:18~31), 이는 기꺼이 자신들의 목숨을 걸려고 했던 유대인들에게 쐐기를 박는 논점이었다. 
그러나 레 11장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정결한 짐승과 불결한 짐승의 구분은 유대 국가가 생기기 전에 있었다. 이 구분은 하나님이 세웠고, 노아가 동물들이 방주로 들어오는 것을 감독할 때 고려했다(창 7:2; 참조 8:20). 사람의 최초의 음식은 과일, 곡물, 견과였다(창 1:29). 육식이 이 식단에 첨가되기 전(창 9:2, 3)에 이미 정결한 짐승과 불결한 짐승의 구분은 분명해졌다. 그러므로 불결한 음식에 대한 금지가 십자가에서 유대인의 의식법이 폐했을 때 제거되었다는 주장에는 만족할 만한 근거가 없다. 베드로의 환상에서 이 음식 규정들은 유대인들이 사람들-그들 자신과 이방인-을 구분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지칭했고, 따라서 여기서는 이런 구분을 폐기하는 것이 주요 쟁점이었다(참조 창 9:3; 레 11장; 행 10:15 주석; 레위기 제11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15.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 환상 중에 정결한 짐승과 불결한 짐승들은 동일한 입지에 있었고, 동일한 보자기에 담겨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생물의 전반적인 혼합을 상징했으며, 그것들 중에 아무것도 속되거나 불결하다고 일컬어지지 않았다. 이 환상을 해석할 때, 이것이 신체적으로 배고픈 상황에서 주어졌지만(10절) 음식이 아니라 사람과 관련되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베드로가 경험해야 할 배고픔은 도처에 있는 각양각색의 영혼을 향한 갈망이 되어야 했다. 이 교훈을 적어도 부분적으로 알게 된 후,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28절)라고 단언하였다. 일반적으로 불결하다고 여겨진 이방인들은 베드로의 영적인 봉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주저 말고 그들을 섬겨야 했다. 그들은 더 이상 불결하다고 여겨져서는 안 되었다.

16. 세 번 있은. 이 환상은 세 번 반복되었고, 따라서 의심할 여지없이 사도의 마음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바로의 꿈은 두 번 주어졌고(창 41:32), 예수는 베드로에게 “네 어린양을 먹이라” 혹은 “네 양을 먹이라”라는 명령을 세 번 반복했었는데(요 21:15~17),  이제 그 명령은 그에게 새롭고 더 완전한 의미를 띠고 다가왔을 것이다. 

18. 불러. 즉 집 안에 있는 누군가가 나오도록 “불러.” 의심할 여지없이 사자들도 고넬료처럼 이방인이었으므로, 자신들이 왔음을 알리지 않은 채 유대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머뭇거렸을 것이다.

19. 베드로가…생각할 때에. 베드로는 곤란한 상황을 숙고하며 이 환상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가르치려고 의도했는지를 묻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상고하는 동안 설명이 있었다.

성령께서…말씀하시되. 베드로는 더 이상 비몽사몽간에 있지 않았다. 하나님의 영이 이때 그의 영혼 내부 깊은 곳에서 이야기하였다. 성령의 가르침은 베드로에게 파견단의 도착과 그가 본 환상을 연결해야 한다고 암시했다.

두 사람. (「제임스왕역」에는 “세 사람”이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고넬료가 보낸 두 종과 종졸 한 사람(7절). 

20. 내려가. 베드로는 아직 지붕 위에 있었다.
의심. 혹은 “주저함.”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베드로는 주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아직 알지 못했으나, 후에는 알게 될 것이었다(요 13:7). 베드로와 고넬료의 사자들은 성령의 지시에 따라 행동한다는 점에서 똑같았다. 그 환상은 베드로에게 여행을 해야 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지 않았다. 이제야 베드로는 이것에 대해 알게 되어, “의심치 말고”라는 말이 여정을 마친 후에 유대인과 다른 인종 사이에 아무런 구분을 두지 말아야 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하였다. 그리하여 그 환상은 점차 이해되었고, 당혹감은 제거되었다.

23. 불러들여. 베드로가 이 이방인들을 집으로 불러들인 것은, 유대인들이 비유대인들을 향해 품고 있던 종교적 관념을 버리는 데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었다.

이튿날. 베드로가 기도하기 위해 지붕에 올라간 때가 정오쯤이었으므로, 그의 환상 후에 사자들이 도착한 것은 이른 오후였음에 틀림없다. 약 48킬로미터 떨어진 가이사랴를 그날 안에 가기에는 너무 늦었기 때문에, 베드로는 다음날이 돼서야 출발했다. 또한 사자들도 욥바까지 여행한 후여서 휴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두어 형제. 이 사람들은 물론 유대인 그리스도인들(45절)이었으며, 11:12에 따르면 그들은 여섯 명이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말을 기억하였다.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마 18:16). 그는 자신이 한 것은 무엇이든 그들이 교회에 보고하기를 바랐다. 후에 예루살렘에서 그들의 증언이 유용했다는 것이 행 11:12에 암시되어 있다. 틀림없이 베드로가 자기의 환상과 고넬료의 종들이 가지고 왔던 기별을 알렸을 것이다. 고넬료의 좋은 평판에 힘입어 그들은 베드로와 기꺼이 동행하기로 했다.

 

24. 이튿날. 고넬료의 사자들이 욥바로 오는 길에 그랬던 것처럼(참조 7~9절, 17절), 베드로와 그의 일행도 가이사랴로 가는 여정에 하룻밤을 묵었을 것이다. 그들은 지중해 해안 길을 따라갔다.
고넬료가…기다리더니. 더 정확하게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더니.” 그의 준비 태도는 그가 자기의 환상이 사실이고, 하나님이 자기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는 것을 얼마나 확신하였는지 보여 준다.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 의심할 여지없이 고넬료의 종교심에 다소간 동감했던 고넬료의 통솔 아래 있던 병사들과 지역 사회의 친구들이 이들 중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는 자기가 받을 새로운 빛의 범위 안으로 가능한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자 하였다.

바울의 회심 - 사도행전 연구9.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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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9:1-31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침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내용 요약

  1. 박해자-다소 사람 사울, 9:1, 2
  2. 사울이 환상 중에 그리스도를 만남과 그에 따른 회심, 9:3~17
  3. 그의 침례와 첫 전도, 9:18~22
  4. 그를 죽이려는 유대인의 음모, 9:23, 24

배경

8장에서 복음이 사마리아로 전파되게 하신 하나님께서 9장에서는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데 쓰임을 받을 사도바울을 준비하신다. 바울의 회개는 개인의 구원차원을 넘어 교회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9장의 내용은 바울의 회심과 중풍병자를 고치고 도르가를 살려 내는 베드로의 활동이다.

 

하늘의 빛이 비추이고 있는 그 시간, 사울의 마음은 놀랍도록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는 성경의 예언을 깨달았다. 그는 유대인들에 의한 예수의 거절, 그의 십자가의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을 선지자들이 이미 예언하였고, 그분이 약속된 메시야임을 증명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울의 마음에는 순교할 때의 스데반의 설교가 힘있게 떠올랐으며, 순교자가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말하였을 때, 순교자는 실제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음을 깨달았다(행 7:56, 55).(행적, 113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 있다면?(물건, 색깔, 캐릭터등)
  2. 그릇된 열성으로 일을 망친 것을 본 적이나 경험한 적이 있나요?
  3. 부모님을 가장 고통스럽게 한 일이 있다면 어떤 일인가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바울이란 인물에 대해 알아봅시다.
    • 그는 철저하게 유대인이었다.
      (빌 3:4-6, 개정)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 그는 철저하게 이방적 (헬라적)인 배경에서 살았다.
      (행 22:27,28, 개정)
      [27]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시민이냐 내게 말하라 이르되 그러하다
      [28]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이르되 나는 나면서부터라 하니
    • 바울의 가정 - 아마도 부유하고 경건한 가정이었을 것이다.
      (행 24:26, 개정)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 바울의 교육 
      (행 22: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2. 정당화시키려는 공적인 힘(공문)과 그릇된 열성의 위험에 대하여 이야기해봅시다.(9:2)

  3. 자신의 삶에 바울처럼 주님을 만난 영적인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9:3-10)
    어둠 속에 있던 그에게 한 빛이 비칠 때는 정오(22:6)였다.
    그 빛은 태양 빛보다 더 밝은 빛(26:13)이어서 그는 눈이 멀었다.
    그 빛은 참빛이신 그리스도이셨다. (요1:9) 이때 눈이 상한 것이 일생동안의 지병이 되었으며 (갈 4:13-15, 6:11) 또 육체의 가시(고후 12:7)가 되었다고 한다.

  4. 주께서 말씀하신 바울의 사명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루졌습니까?(9:15)
    그릇은 인상적인 표현이다. 주인이 쓸 수 있는 그릇은 비어 있어야 한다. 비어있지 않은 그릇은 쓸모가 없다.

 

생각해봅시다.

  1. 주님의 그릇이 되기 위해 내가 비워야 할 것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2. 나에게 주어진 복음 사명이 있다면?
공포에 사로잡히고 강렬한 빛으로 거의 눈이 먼 사울의 동료들은 어떤 음성은 들었으나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울은 들은 말을 깨달았으며, 그에게 말씀하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이 그에게 분명하게 나타났다. 사울은 그의 앞에 서신 영광스러운 분에게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그분을 보았다. 그 상처받은 유대인의 영혼 위에 구주의 얼굴 모습이 영원히 인각되었다. 그분의 말씀은 놀라운 힘으로 그의 마음을 찔렀다. 그의 어두운 마음 구석에 큰 빛이 비쳐 들어와 과거 생애의 무지와 과오, 그리고 현재 성령의 교화하심의 필요를 깨닫게 하였다.(행적 113p)

 

 


1. 등등하여. 헬라어 엠프네오(empneo-). “숨을 들이쉬다” 또는 “입김을 내뿜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고 학살하는 것은 사울이 호흡하는 공기나 다름없었다. 셈족은 종종 분노의 감정을 호흡과 결부시켰다.

대제사장. 안나스 혹은 가야바(참조 4:6 주석). 두 사람 다 사두개인이었지만, 사울은 엄격한 바리새인인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26:5). 하지만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의 자연스럽지 못한 동맹(참조 제10권, 56~58)도 이 단호한 박해자를 단념시키지는 못하였다. 전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항하여 형성되었던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간의 제휴는 그분의 추종자들에 대항하여 다시 이루어졌다.

2. 다메섹.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전승에 따르면 이곳은 아벨이 살해된 현장이다. 요세푸스(Antiquities ⅰ. 6. 4 [145])는 셈의 손자인 우스가 이 성읍을 건설했다고 여긴다(참조 제1권, 248). 아브라함의 역사에서는 그의 청지기 엘리에셀의 출생지로 나타난다(창 15:2). 다윗은 이곳에 수비대를 두었으나(삼하 8:6), 르손의 지배 아래 솔로몬 반대 세력의 중심지가 되었다(왕상 11:23~25).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문둥병자 아람(수리아)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눈에 이스라엘의 어느 강보다 좋아 보였다(왕하 5:12). 이곳은 아람 왕국과 이스라엘 및 유대와의 동맹과 전쟁의 중심지였고(왕하 14:28; 16:9, 10; 암 1:3, 5), 에스겔의 기록에 따르면, 두로와 물품, 포도주, 흰 양털을 무역하였다(겔 27:16, 18). BC 333년에 마게도냐 장군 파르메니온(Parmenion)이 알렉산더 대왕을 위해 이 도성을 점령했으며, BC 64년에는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Pompey)가 점령했다. 사울의 회심 당시 이곳은 로마의 수리아(Syria) 총독 비텔리우스(Vitellius)의 관할 아래 있었다. AD 37년 디베료(Tiberius)가 죽었을 때, 비텔리우스는 서둘러 로마로 갔고, 나바태아인(Nabataeans)의 왕 아레타 Ⅳ세(Aretas Ⅳ)가 다메섹의 통치권을 장악하고 그곳을 다스렸다. 이로 인해 사울은 이 도성에서 빠져나갈 당시 문제에 봉착하였다(고후 11:32).
 (1)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유대 지방에서 상당한 거리에 있는 이곳으로 피난했다. 
(2) 다메섹의 시민 가운데 그리스도인 회심자들이 있었다. 
(3) 다메섹이 확장 일로에 있는 교회의 외곽 중심지가 되었을 수도 있다. 
(4) 사울이 유대 당국자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리스도인을 대항하는 데 그들의 협력에 의존할 수 있었다.

회당. 이곳은 국제적인 도성이었고, 따라서 각 나라에서 온 유대인들이 살았을 것이다. 예루살렘에서처럼(참조 6:9 주석) 유대 동족들은 자신들의 회당을 세웠을 것이다. 당시 다메섹에는 30개 내지 40개의 회당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은 회당에 신실하게 참석하고 있었고, 따라서 사울이 바로 그들을 잡으러 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공문. 사울의 “권세와 위임”(26:12)을 정한 문서들. 이는 로마가 도주한 유대인들을 송환하는 권력을 대제사장에게 부여함으로써 유대 당국자들과 협력했음을 드러낸다. 이 권세는 아마도 BC 56년경부터 주어졌을 것이다(Josephus Antiquities xiv. 8. 5 [146~ 148]; 참조 마카베오1서 15:15~24).

3. 비추는지라. 더 정확히 말해 “번쩍였다.”22:6과 26:13은 이 시각이 정오라고 밝히고 있다. 동방의 한낮의 태양 광선도 눈부셨지만, 후에 바울은 하늘로부터 온 그 빛을 “해보다 더 밝은 빛”(참조 26:13 주석)이었다고 말한다. 이 광채 가운데서 바울은 영광스럽게 된 그리스도를 너무도 선명하게 보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부활 후 주님을 바라보는 특권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자신을 포함시킨다(행 9:17; 고전 9:1; 15:8; 사도행적, 115). 출현한 모양에 대해 말하자면, 스데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참조 7:55, 56 주석).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라고 한 순교자 스데반의 말은 불 같은 열성을 지닌 바리새인인 사울에게는 신성모독처럼 보였다. 그런데 바로 그 사울이 성부의 영광 중에 있는 인자를 본 것이다. 사울의 동행자들은 음성을 들었으나 말소리를 분별하지는 못했다(참조 22:9; 참조 9:7 주석). 그들은 빛을 보았으나(22:9), 말하는 그분의 형상을 감지하지는 못했다(참조 12:29 주석). 이런 세부 사항들은 사건의 실재성을 증명한다.

4. 엎드러져. 하늘에서 비친 빛에 압도되어 여행자들은 모두 땅에 엎드러졌지만(26:14), 누가는 여기서 사울만 언급한다. 여행자들 중 그 누구도 말 위에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들으매. 9:7과 22:9의 비교는 사울이 그에게 말한 목소리를 듣고 이해한 반면, 그의 일행은 무슨 말이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소리만 들었음을 시사한다(참조 9:7 주석).

사울. 지금까지 기사에서는 사울의 이름이 헬라어 형태인 사울로스(Saulos)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이곳과 9:17; 22:7, 13; 26:14에서는 히브리어 형태인 사울(Saoul)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1) 26:14에 나타난 대로 히브리(아람) 방언으로 말했던 예수(참조 제1권, 30)와 (2) 유대인이기 때문에 히브리어(아람어)로 말했을 아나니아가 실제로 사용한 단어가 무엇인지를 반영할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전달할 때 이름을 반복하여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창 22:11; 삼상 3:10; 마 23:37; 눅 10:41; 22:31을 참조하라.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그리스도가 박해자에게 던진 통렬한 질문이다. 이것은 그의 행동의 기초에 도전하는 질문이며, 따라서 그가 그렇게도 잔혹하게 핍박했던 분을 알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그리스도가 자신을 제자들과 너무나 동일시한 나머지 그들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 된다고 한 사실을 주목하라(사도행적, 117).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사 63:9)하며,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슥 2:8)으로 여겨졌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행한 것을 자신에게 행한 것으로 여겼다(마 10:40).

5. 주여 뉘시오니이까. 아직 사울은 “주”라는 단어를 신약에 나타난 온전한 의미로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경외심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발언이었다(참조 요 1:38 주석). 하지만 사울은 신적 존재를 어렴풋하게나마 감지하고 “주”라는 말을 사용하여 경외심을 표했다.

네가 핍박하는. 앞에 나온 “나”라는 대명사와 마찬가지로 “네”도 헬라어 구문상 강조하는 표현이다. 사랑과 능력과 영광으로 옷 입혀진 그리스도와, 핍박하는 자였으나 이제는 엎드려 두려워하는 사울이 극명하게 대조되어 있다. 

7. 소리만 듣고. 헬라어 아쿠온테스…테스 포네스(akouontes…te-s pho-ne-s). 얼른 보기에 이 진술은 동행자들이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텐…포넨 우크 에쿠산[te-n…pho-ne-n ouk e-kousan])라고 바울이 말한 22:9의 기록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기록을 주의깊이 연구해 보면 이런 외관상의 모순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듣다”라는 뜻의 동사 아쿠오(akouo-)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의 능력(참조 마 11:15; 13:15)이나, 들은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능력(참조 막 4:33; 고전 14:2)을 가리킨다. 본 구절에서 “소리”(포네스[pho-ne-s])라고 번역된 단어는 소유격이다. 헬라어에서 이것은 사울의 동행자들이 목소리만 듣고, 말해진 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음을 가리킨다. 22:9에서 “소리”(포넨[pho-ne-n])로 번역된 단어는 대격이며, 따라서 이것은 부정어 “못하다”와 함께 사용되어 그들이 소리를 듣고도 말은 뚜렷하게 이해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참조 9:4. 여기서 누가는 알아들은 사울에 대해 말하면서 대격을 사용하여, “[소리를]…들으매”[에쿠센 포넨]라고 말한다). 이 설명은, 22:9에도 사람들이 “빛은 보”았다고 되어 있는 반면, 본 구절에는 그들이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라고 되어 있는 사실로 더욱 뒷받침된다. 그들은 눈부신 빛을 보았지만, 그들의 시력은 빛 가운데서 사울에게 나타난 그분을 식별할 정도로 명확하지 못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목소리는 들었지만, 알아들을 정도로 명확히 듣지 못했다고 이해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10. 아나니아. 아나니아는 유대인들에게 흔한 이름이었다. 바울이 그를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다메섹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이”라고 묘사한 22:12을 제외하고는, 성경에서 이 특정 제자를 언급한 곳은 아무데도 없다. 이런 자질로 인해 그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지도자와 사울을 향한 주님의 사자가 되는 일이 가능하였다. 그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그리스도의 지상 봉사 기간에 구세주를 따랐거나, 오순절이나 그 이후 유대인 회심자들 중에 속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뒤 스데반의 죽음 후에 이어졌던 박해로 인해 예루살렘에서 도망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단지 추측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나니아가 사울을 방문하기를 꺼려하는 심정을 나타내는 데 사용한 표현으로 보아(9:13, 14), 여전히 예루살렘과 신뢰할 만한 교신을 왕래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박해자 사울이 일으켰던 만행과 다메섹에 온 그의 목적을 아나니아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1. 직가. 오늘날 술타니예(Sultaniyeh)라고 알려진 긴 직선 도로가 여전히 고도(古都) 다메섹을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고 있는데, 아나니아가 유다의 집에서 사울을 만나기 위해 걸었던 바로 그 길일 것이다. 현재 거리의 고도(高度)가 사울 당시보다 약 30보 이상 높으므로, 사울이 머물렀던 집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소 사람 사울. 이 구절은 성경에서 사도 바울의 출생지를 처음 언급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다소는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중요한 곳으로 여겨졌다. 이곳은 16킬로미터가량 내륙에 위치했지만, 도성과 바다 사이에 안전한 항구가 있었기 때문에 작은 배가 이 성읍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도성의 경계 너머로 타우루스(Taurus) 산지가 솟아 있었는데, 길리기아 문(Cilician Gates)으로 알려진 협곡을 통해 소아시아 내륙으로 통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고대 도성은 전략적 요충지 말고 다른 것으로도 유명했다. 이곳은 대학가로 이름이 나있었고, 소아시아의 아덴(Athens of Asia Minor)으로도 알려졌다. 이곳의 학자들은 과학 기술로 인해 존경받았고, 이곳의 철학자들 중에는 사울의 견해에 일부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르는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들도 있었다. 상업 영역에서 볼 때, 사울의 생업이었던 장막 제조업(18:3)이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했다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

15.이방인. 목록 가운데 이방인이 첫 번째에 놓인 이유는 사울이 노고를 쏟을 분야가 특별히 그들 가운데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참조 롬 1:13, 14; 11:13 주석). 이것은 독실한 유대인으로서 온 세상이 그리스도에 대해 들어야만 한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한 아나니아에게는 깜짝 놀랄 계시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대단한 박해자로만 알았던 사람 안에서, 선택받고 훈련받아 세상 도처에 복음을 퍼뜨리는 사역에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적합해진 사람을 보고 있다.

임금들. 이 구절은 바울이 아그립바 앞(26:1, 2)과 아마도 네로 앞에서 연설한 것(참조 딤후 4:16 주석)에서 충분히 성취되었지만, 꼭 그 일들만 가리키지는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 사도는 이방인들에게 가지만, 바울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유대인들에게도 설교하였다(참조 13:5; 14:1; 17:1, 10; 18:4, 19; 19:8).

그릇. 헬라어 스큐오스(skeuos). “그릇”, “기구.” 이 단어는 신약에서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참조 13:48; 눅 8:16; 요 19:29; 행 10:11; 롬 9:21; 고후 4:7; 살전 4:4). 고전 작가들은 이 단어를 쓸모 있고 신뢰할 만한 노예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다. 주님이 이방인을 위한 당신의 은혜로운 뜻을 실현할 도구로서 사울에게 스큐오스라는 단어를 적용한 것도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택한”(chosen)에 해당하는 에클로게(ekloge-)라는 단어가 신약에서 처음으로 여기에 나타나는데, 다른 경우에는 모두 “택하심”(election)으로 번역되었다.

18. 비늘. 헬라어 레피데스(lepides). 히포크라테스는 안질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로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사울의 눈멂은 초자연적 현시의 결과로 생겼으므로, 그의 병을 현대 의학 용어로 정확하게 밝히려고 시도하는 일은 무익하다. 그러나 누가가 사울의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의학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침례를 받고. 22:16에 있는 자세한 설명은 아나니아가 이 예식에 임하도록 사울에게 권고했음을 보여 준다. 침례가 입교 조건으로 여겨졌음이 분명하다(참조 마 3:6; 행 22:16 주석). 주님의 환상과 계시도, 개인적인 확신의 강렬함도 사울에게서 침례를 면제시켜 주지는 않았다. 침례는 아마도 나아만의 이야기(왕하 5:8~14)에서 언급된 아마나 또는 바르발강 중 한 곳에서 행해졌을 것이다. 이 예식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사도행적, 122) 아나니아가 거행하였다.

20. 즉시로. 그리스도는 사울을 “즉시” 낫게 했고(18절), 사울은 “즉시로” 증거하기 시작했다. 두 경우에 사용된 부사는 동일한 헬라어 단어에서 나왔다.

예수…전파하니. 나사렛 예수가 오랫동안 고대하던 메시야인 그리스도라고 전하는 것이 유대인들을 향해 사도들이 전한 기별의 요지였다. 베드로의 설교(참조 2:16 주석)와 마찬가지로 바울의 설교에도 강력한 예언적 배경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사도행적, 123, 125,).

22. 힘. 후년에 이 단어는 바울의 사상에서 현저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그는 “약한 데서 온전하”게 했던 “능력”이 그리스도였음을(고후 12:9), 그를 “능하게 하신” 또는 사역을 위해 그를 강하게 하신 이가 그리스도였음을(딤전 1:12) 그리고 그의 삶의 마지막 시련들 속에서 “강건케 하신” 이가 그리스도였음을(딤후 4:17) 깨달았다.

증명하여. 헬라어 쉼비바조(sumbibazo-). “결합하다”, “결론적으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연합하도록 하다”라는 뜻이 있으며, 따라서 여기서는 “논증하다”, “증명하다”를 뜻한다. 사울은 메시야의 예언들이 나사렛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능수능란하게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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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8:1-13,26-40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침례를 받으니
[13] 시몬도 믿고 침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

[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침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침례를 베풀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내용 요약

  1. 예루살렘 교회의 수난 (1-3)
  2. 사마리아 전도 (4-25)
  3. 아프리카 전도 (26-40)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떠밀려 어떤 일을 함으로 좋은 결과를 이룬 적이 있나요? 어떤 경우였나요?
  2. 당신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전할 복음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요?
  3. 의외의 인물에 의하여 복음사업이 유지되는 것을 본 경험이 있나요? 어떤 사람이었나요?
  4.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한 적이 있나요? 왜 그렇게 간절했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예루살렘교회의 사람들이 흩어진 이유는?(2절)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나요?(4절)

  2. 환경적, 상황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통하여 일하신다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나요?
    • 운명하신 주님을 위하여 가난한 제자들이 할 수 없었던 그 일을 할 수 있었고, 또한 그들의 재산과 영향력으로 제자들은 제사장들과 관원들의 악의에서 크게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 유대인들이 어린 교회를 멸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때에 니고데모는 그 교회를 보호하려고 나아왔다. 니고데모는 그 이상 조심하거나 의심하지도 아니하였고, 제자들의 신앙을 격려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유지하는 일을 돕고 복음 사업을 발전시키는 일에 그의 재산을 사용하였다. 전날에 그에게 존경을 표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를 조롱하고 핍박하였으므로 그는 이제 세상 재물에는 가난하게 되었으나, 자신의 신앙을 옹호하는 일에는 흔들리지 아니하였다. 행적104p

  3. 빌립의 전도방법과 자세를 살펴보고, 그것을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나누어보아요.
    ① 일어나서...그 길은 광야라(순종)
    ② 가까이 나아가서 (8:29)
    ③ 달려가서 (8:30)
    ④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고 (8:35)
    ⑤ 침례를 베풀고 (8:38)

  4. 빌립이 전한 기별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 기별을 우리는 어떻게 전하고 있는지 나누어보아요.
    ①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 (8:5)
    ②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8:12)

생각해봅시다

  1. 내게 있어서 복음을 위해 가야할 광야가 있다면 그곳은 어디 일까요?

  2. 나는 지금 나의 삶 속에서 복음을 어떻게 전하고 있나요?

온 교회가 봉사의 정신을 가지고 각자 자기의 능력에 따라 그분을 위해 일하게 되기를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고대해 오셨다. 하나님의 교회의 교인들이 복음 사명을 성취하기 위하여 국내외에서 필요되는 분야에 들어가 그들에게 맡겨진 일을 할 때에, 온 세계는 오래지 아니하여 경고를 받게 될 것이고 주 예수께서는 능력과 큰 영광으로 이 땅에 재림하시게 될 것이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행적 107p)

 


그날. 스데반이 돌에 맞은 일은 교회를 조직적으로 핍박하는 시발점을 이루었다. 스데반을 죽이는 상황까지 간 유대 지도자들은 그 분노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돌렸다.

 

큰 핍박. 앉은뱅이를 고친 후 그리고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 후(5:17, 18)에 적은 규모의 핍박이 있었던 것처럼, 교회는 다시 한 번 유대 당국자들로부터 핍박을 받는다(4:1~7). 이번 핍박은 범위와 가혹함을 가리키는 “큰”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점에서 이전의 핍박과는 구별된다. 참조 214쪽 지도.

이 핍박에 투옥과 큰 고통이 동반되었음을 1, 3절과 후일 바울의 묘사(참조 22:4; 26:10, 11)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

 

흩어지니라. 헬라어 디아스페이로(diaspeiro-). “낱알처럼 흩어지다”, “분산되다.” 이렇게 하여 원수의 분노는 오히려 그리스도가 예고한 것을 교회가 성취시키도록 돕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1:8). “다”라는 말에 신자 모두를 포함시킬 필요는 없다(참조 1:1 주석). 단지 겁이 더 많은 사람들이나 행동이 빠른 사람들 아니면 핍박자들에게 개인적으로 알려진 사람들일 것이다. 어쨌든 남녀 신자들이 그 도시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참조 8:3).

 

잔멸할새. 헬라어 뤼마이노(lumaino-). “약탈하다”, “황폐화시키다”, “파멸시키다.” 이 단어는 「70인역」의 시 80:13에서 “수풀의 돼지가 상해한다”는 표현에 사용되었다. 여기서 사용된 시제는 계속되는 핍박을 나타낸다. 바울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였다고 말한다(행 22:4; 참조 26:10). 후에 그가 고백한 것처럼(26:11), 그의 폭력은 일종의 광기어린 만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4. 두루 다니며. 헬라어 디에르코마이(dierchomai). “지나가다, 통과하다.” 선교 사역을 나타내기 위해 누가가 즐겨 사용한 용어이다(참조 눅 9:6; 행 8:40; 9:32; 11:19; 13:6). 이 경우, 새로운 신앙을 박멸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신앙의 활동 범위를 더 넓혀 주었는데, 이것은 주께서 바라신(행 1:8) 대로였다. 이러한 핍박은, 핍박이 없었다면 그 신앙이 상당히 오랜 기간 일부 지역에만 한정되었을 상황을 뛰어넘게 하였다. 후에도 그랬듯이 그때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었다.

 

말씀. 넓은 의미에서 이 단어는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가르침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이 중 많은 부분이 구약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의 대부분이 아직 문서로 기록되지 않아, 자원하는 복음전도자들이 구두(口頭)로 전하는 기별에 의존했다.

 

전파하니. 헬라어 케륏소(ke-russo-). “[전달자로서] 선포하다”라는 의미로, 4절에 사용된 것과는 다른 단어이다. 따라서 안수받지 않은 신자들이 하는 설교보다 좀 더 공식적이고 심도 있는 설교를 의미한다. 침례자 요한과 그리스도(마 3:1; 4:17)의 설교를 가리킬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동사의 시제로 보아 빌립이 계속 설교했음을 알 수 있다.

 

6. 듣고. 문자적으로 “그것을 듣고” 즉 빌립의 말을 듣고. 사마리아인들은 처음에는 아무런 표적도 없이(참조 마 12:38 42) 단순히 그리스도의 설교를 듣고(요 4:39~42) 믿었다. 지금 일어난 이적들은 믿음의 토대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믿음을 강화시키기 위해 주어졌다. 이 표적으로, 빌립을 통해 역사하는 능력에 관한 모든 의심이 일소되었다. 틀림없이 이 표적들은 마술사 시몬의 영향을 바로잡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행 8:9~11).

 

9. 그 성. 5절에 언급된 성. 9절 본문 가운데 별도로 언급된 “사마리아”는 수도 사마리아가 아니라 사마리아 지역을 가리킨다.

 

26. 사자. 누가는 천사들의 봉사를 주의 깊게 관찰한다(참조 눅 1:38과 행 10:7; 눅 2:9과 행 12:7; 눅 24:4과 행 1:10; 10:30). 헬라어 구조는 베드로와 요한이 전도하는 동안 한 천사가 빌립에게 이야기했음을 시사한다. 그 초자연적 부르심은 이상 가운데 이르러 왔을 것이다(참조 행 10:3의 고넬료).

 

그 길은 광야라. (「제임스왕역」에는 “그것은 광야라”[Which is desert]라고 되어 있음 -역자 주). 이 구절은 마치 독립된 문장인 것처럼 문자적으로 “이것은 광야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천사가 한 말인지 아니면 누가가 덧붙인 설명인지 알 수 없다. “이것”(This)이 “길”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도시”를 가리키는지도 분명하지 않지만, 누가가 어떤 도시를 언급하고 나서 그것을 “광야”로 묘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개정표준역」에는 “이는 광야 길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단순한 믿음으로 빌립은 도중에 겪게 될 기념할 만한 일 즉 한 여행자의 회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예루살렘에서 가사까지 인적이 드물고 그다지 평탄치 않은 길을 가야 했다.

 

에디오피아. 구약의 구스와 마찬가지로 에디오피아는 나일 제1폭포의 남쪽 지역과 오늘날의 에티오피아에 이르는 지역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이다. 에디오피아 북부 지역은 나일강 상류 계곡에 있던 대(大)왕국 메로에(Meroe..)의 영토였다. 이 왕국은 오랫동안 여왕들이 통치했고, 따라서 십중팔구 내시는 이 왕국에서 왔을 것이다. 이 왕국과 유대 민족의 관계는 여러 흥미로운 점을 시사한다.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13(The Letter of Aristeas 13)에 따르면, 프삼티코스(아마도 Psamtik Ⅱ, BC 594~588)라고 불리는 바로가 통치하던 시절에 에디오피아 정복 전쟁을 지원하기 위하여 일단의 유대인이 파송되었다. 수 세기 동안 유대인들이 그 지역에 영향을 끼쳤음이 확실하다. 이는 예레미야 시대에 초기 에디오피아의 내시 에벳멜렉의 용기 있는 활동에 반영되어 있다(렘 38:7~13; 39:15~18). 더 이른 시기에도 히브리인들은 그들 국가에 에디오피아인들의 입국을 예상했고 또한 목도했다(시 68:31; 87:4).

 

간다게. 한 여왕의 개인적인 이름이라기보다는, 로마 제국의 캐사르(Caesar), 애굽의 프톨레마이오스, 바로(Pharaoh) 등과 같이 한 왕조의 이름이나 호칭이었을 것이다. 그 이름은 스트라본(Strabo Geography xvii. 1. 54)과 디오 캇시우스(Dio Cassius History liv. 5. 4~6)의 문헌에도 나타난다. 유세비우스(AD 325년경 사망)에 따르면, 그가 살던 당시에도 에디오피아는 여전히 여왕이 통치했다고 한다(Ecclesiastical History ii. 1. 13).

 

국고. 헬라어 가자(gaza). “왕의 보고(寶庫)”, “보물.” 페르시아어에서 유래된 말로, 이 당시 헬라와 라틴 작가들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었다(Cicero De Officiis ii. 22 [76]). 「70인역」 번역자들도 에 5:17; 6:1; 7:21; 사 39:2에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신약 다른 부분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합성어 형태로 성전의 보화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눅 21:1). 빌립은 가자(gaza) 즉 국고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 마 13:44의 비유에 나오는 사람이 부지런히 찾고 찾아 보화를 발견한 것처럼, 이 전도자는 그가 보화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예배하러. 이 내시는 할례받은 의로운 개종자일 것이며(참조 제10권, 70), 성전 예배에 참여하러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뿐 아니라 개종한 사람들도 그 목적으로 예루살렘에 갔는데, 이는 오순절에 참석한 사람들의 목록에서 알 수 있다(행 2:10). 요 12:20에 의하면 헬라인도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 왔다. 내시는 복을 찾아서 예루살렘에 왔으나, 집에 도착하기 전 그의 모든 예상을 능가하는 한 분을 영접하게 될 것이었다.

 

30. 빌립이 달려가서. 즉 성령의 명령에 즉시 순종하여 병거로 달려가. 그리스도인은 이와 같이 즉시 반응하는 점을 본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중심의 신실한 대화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깨닫느뇨. 대화를 능숙하게 시작하는 것을 주목하라. 빌립은 그를 만난 바로 그곳에서 대화를 시작했고, 대상의 관심사에 적절히 맞추어 접근했다. 그는 여기서 모든 그리스도인 교역자들이 따라야 할 모본을 제공한다. 빌립이 물은 것은 성경절의 자구(字句)가 아니라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는지이다. 헬라어 구문에 의하면, 빌립이 부정적인 답변을 예상했음을 알 수 있다. 내시는 이 구절에 관한 유대인의 주석을 약간은 들었겠지만, 이 구절이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사실에 대하여 어떤 암시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빌립은 그 뜻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 의미를 설명하도록 성령이 그를 인도했다.

 

31 지도하는. 헬라어 호데게오(hode-geo-). “길을 인도하다”, “지도하다.” 예수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말할 때 동일한 단어를 사용했다(요 16:13). 에디오피아로 돌아가던 내시는, 그곳으로 돌아가면 예루살렘에서 이제까지 그를 지도해 주던 이들에게서 멀어지게 되므로 이러한 어려운 말씀에 대한 능숙한 지도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의 질문은, 그가 그 성경구절을 처음으로 보았거나 성령이 그 구절을 새롭게 강조하여 깊이 생각하도록 했음을 암시한다.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이 질문은 그가 성경을 해석하는 훈련을 받지 못했으므로 깨닫기에 역부족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청하여. 진지한 요청을 의미하고 좀 더 가르침받고자 하는 내시의 열의를 나타낸다. 성령의 지시가 얼마나 순조롭게 성취되었는지 주시하라(29절). 빌립은 가까이 다가가고, 내시는 그 전도자에게 자신의 병거에 타도록 청한다.

 

32. 구절. 헬라어 페리오케(perioche-). “내용.” 회당에서 공중 낭독을 위해 정해진 성경구절들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파라샤(paras∨ah) 또는 합타라(hapt.arah)에 해당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참조 제10권, 64). 이 단어는 헬라인들이 흔히 사용했고, 키케로(Cicero, Letters to Atticus xiii. 25)가 차용했다. 이 단어는 이 구절의 전체 문맥이 무엇인지를 나타낸다. 여기서 “성경 (구절)”은 성경 전체가 아니라 이 구절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성경 구절의 내용”이라고 번역될 수 있다. 인용된 성경구절은 사 53:7, 8이며 「70인역」에서 사용된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끌리었고. 인용된 성경구절에 대해서는 사 53:7, 8 주석을 참조하라. 신약의 인용문은 히브리 성경의 번역이 아니라 「70인역」의 번역임을 기억하라.

 

33. 낮을 때에. 이 구절은 문자적으로 “굴욕 중에 그의 심판이 제거되었으며”라고 번역할 수 있으나 이 독법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그의 정죄가 철회되었다” 즉 “취소되었다”는 의미도 된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을 낮췄기 때문에 후에 높임을 받았다. 또는 분명히 심문당할 때 “굴욕 가운데서 그에게 정의가 거절되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사 53:8의 히브리어 본문은 “억압과 심판으로 그가 제거되었다” 즉 그는 사법적 살인의 희생자였음을 암시한다.

 

생명이…빼앗김이로다. 사 53:8의 히브리어 본문은 구주께서 갑자기 비명횡사했음을 암시한다. 「70인역」도 동일한 사상을 표현하며, 따라서 승천 시에 그리스도가 지상을 떠나는 것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누구를 가리킴이뇨. 내시는 자신이 읽고 있던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다시 말해 이사야의 말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물을 만큼 예리했다. 이사야 시대에는 이 질문이 해결되지 않았으며,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많은 논란이 있다(참조 사 41:8; 42:1; 52:13; 53:1). 그렇지만 빌립은 그 주제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으며, 우리 역시 그래야 한다. 그 질문은 빌립이 내시에게 예수를 전할 수 있는 구실을 제공했다.

 

35. 입을 열어. 이 구절이 신약에서 나타날 때는 언제든지 단순히 말을 하는 행위보다는 준비된 설교 등을 할 경우를 나타낸다(참조 마 5:2; 13:35; 행 10:34).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내시는 예루살렘에 체류하는 동안 예수의 가르침을 들었을 것이다. 사도들의 사역은 도성 전역의 주목을 끌었다(2:41; 4:33; 5:12~14; 6:7, 8). 그러나 그가 본 많은 토론은 분명 예수를 사기꾼으로 분류했고, 따라서 사도들의 설교에 비추어 볼 때 내시가 사 53장을 보았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 그러나 이 예언은 죄의 경험, 정죄 그리고 그 파괴적인 능력으로부터 유일한 구원의 대로(大路)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이고 대속적인 죽음을 가장 명확히 기술하는 구약의 한 부분이다. 결과로 볼 때 빌립의 가르침에는 그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적용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 공동체에 합류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침례 후보자를 물에 잠그기 전에 이런 가르침을 주었음이 분명하다는 것을 신약에서 알 수 있다. 36. 길 가다가. 빌립이 내시에게 사 53장을 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사실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그가 침례의 의미를 이해하고 스스로 침례받기를 원하는 데 이르기까지 충분히 가르친 것으로 보아 그들이 얼마간 함께 여행했을 것이다. 물. 4세기에는 이곳을 벧수라(Bethsura) 즉 대하 11:7의 벧술(Bethzur)로 여겼다.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약 32킬로미터, 헤브론에서 약 6.4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아랍어 형태인 베이트-추르(Beit-s.u-r)라는 고대 지명을 간직한 한 샘이 지금도 여기에 있다. 다른 학자들은 그 샘이 엘류테로폴리스(Eleutheropolis)와 가사(Gaza) 사이에 있는 와디-엘-헤시(Wa^di--el-H.esi-)에 있으며, 고대 도성 라기스와 에글론에서 멀지 않다고 본다. 가사 근처에서 이 일이 있었고, 여행길이 사막을 통과한다는 점에서 이 장소가 더욱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새롭게 찾은 주님의 교회의 일원이 되는 데 모든 준비를 갖춘 내시의 열의는 본보기가 된다. 그는 자발적이었고, 따라서 빌립에게 강요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구주에 대하여 배웠고 자신의 죄를 버렸다. 그는 길이신 분과 그 이름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다(참조 행 4:12; 요 14:6). 그에게 침례를 베풀지 못할 어떤 이유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37. (없음) [네가 믿으면].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는 이 구절의 생략을 지지한다. 초기의 침례 고백문에서 인용한 일종의 난외주가 본문의 이 부분에 점진적으로 유입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구절에 표현된 진리가 성경 다른 곳에서 다양한 이문(異文)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참조 요 3:16; 행 2:38; 16:30, 31).

 

38. 명하여. 이 명령으로 모든 수행원이 멈추어 섰다. 수행원들은 침례받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본 증인이 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그들 중 일부가 에디오피아의 초창기 그리스도인 회중의 중추적인 부분을 이뤘을 가능성이 있다. 전승에 따르면, 내시가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확실하다.

 

내려가. 헬라어 카타바이노 에이스(katabaino- eis). "~로 내려가다", "~안으로 내려가다." 이 구가 단독적으로 나왔다면 빌립과 내시가 물 가장자리로 내려간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물 안으로 들어갔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그러나 39절의 보충 구절이 이 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한다.

 

39. 올라갈새. 헬라어 아나바이노 에크(anabaino- ek). "~밖으로 올라오다." 이 말은 두 사람이 물 속으로 들어갔으며, 그렇지 않으면 물 밖으로 나올 수 없었음을 보여 준다. 이는 물 속에 잠그는 침례를 받기 위한 것이었음이 확실하다(참조 마 3:6; 막 16:16; 롬

6:3~6 주석). 그러므로 이와 같이 다소 비공식적이고 갑작스런 상황에서도 초기교회가 침례 방법을 채택한 분명한 예증이 여기에 있다.

 

이끌어 간지라. 헬라어 하르파조(harpazo-). “붙잡다”, “완력으로 끌고 가다”, “낚아채다.” 동일한 동사가 살전 4:17; 계 12:5에서 유사하게 사용되었다. 인간적인 생각이었다면 당연히 전도자가 남아서, 내시에게 필요한 일을 마무리짓고 그를 충분히 가르쳤을 것이다. 그러나 빌립은 초자연적인 힘에 이끌려, 문자 그대로 내시와 함께 있다가 낚아챔을 당했다. 왕상 18:12; 왕하 2:16; 스 3:12, 14과 비교하라.

 

흔연히. 내시는 빌립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믿었으므로 그에 대해 전혀 염려하지 않고, 그가 받은 새로운 빛 안에서 흔연히 길을 갈 수 있었다. 유세비우스(Ecclesiastical History ii. 1. 13; Loeb ed., vol., 1, 110, 111)는 내시가 그의 고국으로 돌아가 거기서 “만유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우리 주가 이 땅에 머문 일”에 대하여 전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방백들은 애굽에서 나오고 구스인[에디오피아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신속히 들리로다”(시 68:31)는 말씀을 성취했다고 전한다. 에디오피아 교회가 줄곧 유대교와 유사한 요소들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에디오피아 교회는 일반 기독교계로부터 일찍이 분리되었고, 따라서 한동안 초기교회의 가르침과 생활의 단순성을 유지했다. 에디오피아 그리스도인들은 오랫동안 주일 중 첫째 날과 함께 제7일 안식일을 준수했다.

스데반의 순교-사도행전 연구 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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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7:51-60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내용 요약

  1. 아브라함과의 언약해설 (1-16)
  2. 모세의 율법 해설 (17-44)
  3. 형식에 빠져 성령을 거스리지 말라 (44-53)
  4. 스데반의 죽음 (54-60)
스데반의 순교를 목도한 모든 사람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의 얼굴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인에 대한 기억, 그것을 들었던 그 영혼들을 감명시켰던 그의 말 등은 보는 이들의 마음 속에 간직되어 그가 선포했던 그 진리를 증거하였다. 그의 죽음은 교회에게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었으나, 그것은 그의 기억에서 순교자의 신앙과 지조, 그리고 그 용모에 머물러 있었던 영광을 지울 수 없었던 사울의 양심을 일깨우는 결과를 가져왔다.(행적 101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일이 있나요?
  2. 이가는 버릇이 있나요? 언제 이를 가나요?
  3. 자신에게 불이익이 있을 것 같더라도 자신의 신앙을 말해야 할 때가 있다면 언제 일까요? (혹은 불이익의 상황에서 자신의 신앙을 밝힌 적이 있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스데반의 말을 듣고 공의회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마음의 찔림을 받고 나타난 두 가지 반응에 대해 비교해 봅시다.
    ① 행 2 :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② 행 7 : 54 (왜 이런 반응이 일어났을까요?)

  2. 대적자들과 대조되는 스데반의 성령 충만한 모습을 살펴봅시다.
    ①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55절)
    ※자기를 보는 사람은 자아 충만 때문에 자기문제에 집착합니다. 그는 땅을 보지 않고 하늘을 보았습니다.
    ②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55절)
    ※그의 앞에 하늘의 문이 조금 열렸으며, 안을 들여다 보았을 때, 그는 하나님의 궁전의 영광과 그리고 마치 당신의 종을 붙드시고자 방금 그의 보좌에서 일어나 서 계신 듯한 그리스도를 보았다.(행적100p) ③ 성령의 음성을 듣고 대적하는 자들의 모습도 살펴봅시다.(57~58)

  3. 스데반의 기도(59~60)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기도(눅23:34,46)를 비교해 보고, 이 기도의 핵심을 서로 나누어봅시다.
    (눅 23:34,46)
    34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46절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생각해봅시다.

  1. 순교의 자리에 설 때 나는 스데반처럼 당당하고, 용서하면서 죽을 수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2. 지금 나의 삶 속에서 순교자의 삶을 사는 것이란 어떠한 생각과 어떠한 모습을 가지고 사는 것일까요?

  3. 나의 삶이 다른 사람의 양심을 일깨우는 삶이 되고 있나요?

 


51. 목이 곧고. 스데반의 연설 기조가 갑작스럽게 바뀐 이유는 산헤드린 회원들이 점점 흥분했고 그의 말로 인해 적개심이 치솟았기 때문이다(참조 사도행적, 100; 마 26:65). 자신의 죽음이 가까웠다는 것과 더 이상 논한다 해도 그 문제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은 스데반은 엄한 견책의 말을 쏟아냈다. 그가 사용한 형용사들은 옛 이스라엘의 죄들에 대해 사용된 것들이었다. 출 33:3, 5; 34:9의 “목이 곧은”과 레 26:41의 “할례받지 아니한” 등등. “목이 곧은”은 고집 센 황소에 대하여 사용되었다(참조 출 32:8 주석). “마음에…할례받지 아니한”이란 구절은 실제로 에스겔이 “이방인”에게 사용했다(44:7). 스데반이 그들의 성전 숭배가 너무 극단적이고 또 무익하다고 말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 그는 그들을 이방인의 부류에 넣었다. 이 격노한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큰 모욕적인 언사는 없었을 것이다.

항상 성령을 거스려. 정확한 역사적 요약인데, 이는 그들의 조상들이 순종하지 않았던 모세의 시대로부터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았던 예수 그리스도 때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령을 거스렸기 때문이다. “거스려”에 해당하는 헬라어(안티핍토[antipipto-〕)는 적극적이고 줄기찬 반대를 의미한다.

 

52. 선지자 중에 누구를. 여기에 그리스도 자신의 말씀이 다시 메아리되어 울려 퍼지고 있다(마 5:12; 눅 11:47; 13:34). 선지자에 대한 이러한 핍박의 역사는 마 5:12; 23:37 주석을 참조하라(참조 대하 36:16 주석; 살전 2:15).

의인. “의로운 사람.” 이 존귀한 칭호는 3:14과 22:14에도 사용되었다. 이미 이 이름은 유대 문헌에서 고대하던 메시야에게 적용되어 왔으며(에녹서 38:2), 사 11:4, 5에 암시되어 있을 수 있다. 빌라도의 아내가 예수를 지칭하면서 이렇게 묘사하였다(마 27:19). 초기교회는 그 이름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이며, 그렇게 사용한 예는 요일 2:1에서 볼 수 있다. “의로우신”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여기 “의인”에 대해서 사용된 것과 같은 단어이다. 악인으로 정죄를 당하였던 그리스도는 “의인”으로서 모든 사람들과 구분되었다. 이 동일한 의를 나누어 줌으로써, 스데반은 사악한 분노 가운데서 그를 처형하려는 사람들과 크게 대조된다.

예고한. 정확히 말해서 “…가 된.”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 주는 자들의 얼굴에서 곧 닥칠 운명을 읽은 스데반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에게 행한 그들의 이전 행동을 상기시켜 준다.

 

53. 천사의 전한. 문자적으로 “천사의 포고로서.”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신 분은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었다(참조 출 20:2 주석). 그분은 언약의 천사였다(참조 출 23:20 주석). 그러나 천사의 무리가 시내산에서 여호와와 함께 있었다(참조 신 33:2; 시 68:17; 갈 3:19; 히 2:2 주석). 신 33:2이 「70인역」에는 “그의 오른쪽에 천사들이 있고”라고 되어 있으며, 요세푸스(Antiquities xv. 5. 3)도 동일하게 생각한다.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이 말씀은 앞의 구절, “너희가…율법을 받고도”와 극적인 대조를 이루며, 그 말을 들은 자들에게 호된 일격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들은 율법의 자구(字句)도, 그 취지도 지키지 않았다. 천사에게 받은 율법은 그들의 영광이 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 율법에 대한 곡해와 악용은 수치와 멸망을 재촉하였다.

 

54. 저희가…듣고. 정확히 말해서 “이제 그들이 듣고 있을 때에.”

마음에 찔려. 참조 5:33 주석. 이 말은 2:37의 “마음에 찔려”보다 더 에는 고통을 기술하고 있으며, 이제 그것은 회개가 아니라 맹렬한 분노를 낳았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이 비유적 표현은 드물지 않다(마 8:12; 13:42). 그러나 그것은 외적으로 표현된 사실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유대인들은 분노를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화가 나서 말문이 막힌 그들은 마치 짐승이 먹이를 이빨로 물어뜯듯이 그를 갈기갈기 찢기를 원했다.

 

55. 스데반이. 미쳐 날뛰는 그의 적대자들과 완전히 대조적임을 가리킴.

충만하여. 갑작스런 영감이 아니라 계속된 경험을 암시함. 시작 때에 그러했던 것처럼(6:5) 끝에도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였다.

하늘. 스데반은 “하늘이 열리”(참조 행 7:56; 사 6:1 주석)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열린 하늘의 영광을 본 구경꾼들은 아무도 없었으며, 이 영광을 보았다는 스데반의 진술은 그의 죄책을 더욱 무겁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이 본 것이 영적 눈으로 본 것인지, 아니면 육체적 감각의 확장을 통해서인지는 오로지 선지자들만이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참조 마 3:16; 고후 12:1~6).

하나님의 영광…보고. 창 3:24; 출 13:21; 요 1:14; 행 7:2 주석과 비교하라. 스데반의 설교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하여 그의 마음을 비추는 거룩한 영광에 대한 계시를 보고함으로써 끝마친다. 그는 매우 넋이 나간 표정으로 저 영광을 응시했다. 그는 그 순간의 치명적 위험도 잊고 하늘의 장면에 온전히 정신을 집중했다.

예수께서…서신. 그리스도는 통상적으로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계신 것으로 묘사되었다.

하나님 우편. 참조 마 26:64 주석.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을 보고 나서 이 신실한, 고난 받는 하나님의 종이 힘을 얻었다.

 

56. 인자. 복음서를 제외하고 신약에서 이 낱말은 여기와 계 1:13; 14:14에만 나온다. 스데반은 주님의 입술로부터 이 칭호를 직접 들었든지 아니면 초기교회에서 배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설교는 어떤 복음서도 쓰여지기 이전에 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산헤드린 회원들은 그리스도가 친히 그들 앞에서 심문당할 때에 사용한 이 구절을 기억했을 것이다(마 26:64). 그들은 그때 주님의 주장이 신성모독이라며 정죄하였다. 이 칭호에 대한 언급은 막 2:10 주석을 참조하라.

 

57. 저희가…지르며. 정확히 말해서 “그러나 그들이 소리지르며.” 즉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가운데서 그의 말을 듣고 죄를 깨닫는 대신 스데반을 침묵시키려고 시도하면서.

(귀를) 막고. 헬라어 쉬네코(sunecho-). “누르다”, “감싸 잡다.” 그들은 스데반의 말을 신성모독으로 여기고 더 이상 듣기를 원치 않았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51절에 주어진 자신들이 묘사를 받아 마땅함을 입증하였다. 스데반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신성모독자였다.

그에게 달려들어. 정확히 말해서 “그에게 일제히 달려들어.” 사단은 사람에게 사형 선고를 내릴 때 율법이 요구하는 그런 종류의 일치(신 13:9, 10)를 산헤드린에서 이루어냈다. 그들은 공식적 판결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욕구와 결정에서 만장일치를 보였다. 이처럼 약식 재판 절차의 사법적인 측면들을 보려면 마 26:59 주석을 참조하라.

 

58. 성 밖에 내치고. 레 24:14에 따르면, 돌에 맞을 사람은 반드시 진영 바깥으로 데려가야 했는데, 스데반 당시에는 예루살렘 성 바깥을 의미했다.

돌로 칠새. 문자적으로 “그에게 돌을 던지고 있을 때.” 마치 처형의 행위가 마치 그 순교자가 기도하는 중에 진행된 것처럼 보인다(59, 60절). 돌로 치는 것은 모세의 율법 아래서는 신성모독죄에 대한 처형 방법이었다(참조 레 24:14~16; 요 8:7 주석). 하지만 산헤드린이 아무리 이 법을 면밀하게 따른다하더라도, 로마의 지배 아래서 그들은 특별히 스데반이 로마 시민권자라면(참조 행 6:5 주석) 그를 사형에 처할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그러나 그저 침묵을 지키도록 로마의 관리들을 뇌물로 매수할 수 있었다(사도행적, 98, 101,). 여전히 총독이었던 빌라도(참조 제10권, 74~77)가 당시 도성 밖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심문하면서 굴욕적인 경험을 한 후에는 스데반에 대한 공격에 개입하려 하지 않았을 개연성이 높다.

옷을 벗어. 율법은 고발자가 먼저 사형의 돌을 던지도록 요구하였다(참조 신 17:7; 요 8:7 주석). 겉옷으로 입은 헐겁게 늘어진 옷은 사형 집행자들이 팔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을 방해했을 것이기 때문에 벗어서 옆에 두었다(참조 행 22:20).

 

59. 저희가 돌로…치니. 정확히 말해서 “저희가 돌로 치고 있을 때에.” 스데반은 돌에 맞는 동안 기도하였다.

스데반이 부르짖어. 스데반이 방금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본 주 예수께 요청했다는 것을 이 기도 자체가 보여 준다(56절).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참조 마 27:50; 눅 8:55; 행 7:60 주석. 예수께서 돌아가시면서 드린 이와 유사한 기도를 누가가 어떻게 기록하는지 주목하라(눅 23:46).

 

60. 무릎을 꿇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을 본 적 있는 그분에게 기도하면서 그리고 그분을 숭경하면서 그렇게 하고 있다. 물론 그가 돌에 맞아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는 데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긴 하지만.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스데반은 그를 핍박하는 자들의 과거의 죄에 관해서는 어떻게 해볼 일이 없었지만, 그들의 현재의 죄에 대한 용서를 요청할 개인적 권리가 있었다. 그들을 위해 간청하는 태도를 통해서 그는 그의 주님을 특징지었던 저 용서의 정신을 얼마나 온전히 습득했는지 드러내 보였다(참조 눅 23:34).

자니라. 참조 막 5:39; 요 11:11 주석. 자신을 변호하는 전체 시간 동안 스데반이 보인 행동은 그를 고발한 자들의 행동과 현저하게 대조된다. 그들은 복수에 목말라 격분으로 충만했지만, 그는 그리스도께서 재판정에서 나타내셨던 것과 같은 침착함과 평온함을 유지한다. 이제 누가는 순교자의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면서 “(그가) 자니라”고 하는 마지막 구절로 거룩한 분위기를 보존한다. 이제 투쟁은 끝났고, 그는 승리를 얻었다. 하나님의 신실한 용사는 그 소동을 떠나 부활의 날까지 조용히 잠들어 있다. 이어지는 장들은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행 6:1-7

[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내용 요약

  1. 일곱 집사의 선정 (6:1-7)
  2. 스데반의 활동 (6:8-15)

불만을 듣고 심각성을 깨달은 사도들은 자신들을 변호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신속하게 행동했다. 그들은 모세가 세운 전례(출 18:25)를 기억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모세처럼 권한을 위임하기로 결의했다. “모든 제자”라는 표현을 예루살렘과 근방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집회에 모여야 했었다는 뜻으로가 아니라, 한 특별한 집회가 소집되었는데, 그 집회에 올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왔으며, 그 모임에서 사도들이 그 문제와 그들의 계획을 제시했다고 봐야 한다. 그 분배를 놓고 불평이 제기되었던 자금은 많은 사람이 기부한 것이므로, 당연히 그 많은 사람과 협의를 거쳤다. 일개 중심지에서의 이런 발전으로부터, 대의제적 교회 통치 형태가 자연스럽게 일어났다(사도행적, 96).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우리교회에 소외당하는 대상이 있다면? 있을까요?
  2.  
  3.  
  4. 우리교회 안에는 “선민의식”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있다면 어떤 면인가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헬라파 유대인은 히브리파 유대인에 비해서 약자였다. 약자는 똑같은 취급을 받아도 자기는 소외된다고 생각한다. 약자에게는 사랑과 관심이 좀 더 많이 가야 된다. 그래야 겨우 공평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1. 교회 안에 불화가 생길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 말해 봅시다
  2.  
  3.  
  4. 그런 불화는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요?
  5.  
  6.  
  7. 본문의 사건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이 있는지 나열해 봅시다. (나열되지 않은 것들을 더 찾아봅시다.)
  8. ① 모든 짐을 홀로 감당하지 말 것
  9. ② 언제나 물질을 조심할 것
  10. ③ 편애하지 말 것
  11. ④ 약자의 마음을 이해할 것
  12. ⑤ 불화에는 신속히 대처해야 한다.

※ 일곱명의 집사들이 헬라파 유대인 중에서 뽑힌 것을 살펴 보라. 얼마나 시원한 처리인가? 그래서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게 되었다. (6:7)

생각해봅시다

  1. “교회는 어떤 사업보다는 사람이 우선 되어야 된다.”이 문장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3.  
  4. 우리 주변에도 약한 자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 적응을 잘 못하는 사람, 열등감이 많은 사람, 내성적인 사람들은 어떻게 대해 주어야 할까요? 그리고 최근에 내가 그들을 위해서 해 준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 봅시다.

“정직한 영혼들이 자원하여 그리스도의 사업에 자신을 바치는 곳마다 빛과 축복의 중심지를 세우는 사업이 위탁되었다.”사도행적 90P.
 


제자. 사도행전에서 이 이름이 그리스도인에게 대하여 여기서 맨 처음 사용되었다. 복음서의 제자들이 사도가 되었으며, “제자”라는 용어는 일반적인 신자들에게로 넘겨졌다.
 
헬라파. 헬라어 헬레니스타이(Helle-nistai). 즉 헬라어를 상용하는 유대인들 혹은 “그리스의 유대인들”(「개정역」). 신약의 용례는 그들과 종족상의 헬라인들인 헬레네스(Helle-nes)를 세심하게 구분한다(요 12:20). 이 헬라파 유대인은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로서(참조 제10권, 66~68; 요 7:35; 행 2:8 주석) 헬라어를 상용할 뿐 아니라 헬라 문화에도 젖어 있었다. 그들은 헬라어가 공용어인 땅에 태어난 유대인들이었을 것이며, 그렇기에 히브리어나 아람어를 구사하지 못했으며, 팔레스타인에서 히브리 제사에 참여하는 대신 예루살렘에 그들 나름의 회당들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헬라어를 사용하는 개종자였을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그들은 유대교에서 개종한 자들이었는데, 왜냐하면 이때까지는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해지지 않았던 까닭이다. 오순절 당시 개심했던 사람들 중 다수가 바나바(4:36)와 또 이 이야기에 이름이 명시되어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6:5) 이 그룹에 속했던 것이 틀림없다.
이 헬라파 유대인들은 구약의 헬라어 역본인 「70인역」을 사용했는데, 그 역본은 신약에 아주 빈번하게 인용되었다. 그들은 본방의 유대인들과는 대조적으로 대개 아주 열심이 있었다. 그들은 큰 희생을 치르면서 예루살렘의 신성한 장소들에서 예배드리러 온 반면에,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에게 성전 경내(境內)는 너무도 자주 범속(凡俗)한 곳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참조 21:27, 28). 유대교 랍비들의 전승은 여호와에 대한 히브리인의 신앙고백(신 6:4)인 셰마(s∨ema‘)를 그리스식 헬라어로 암송하도록 하는 조항을 마련하였다. 참조 제10권, 63.
 
자기의 과부들. 즉 헬라파의 과부들.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이 유아기의 교회 내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아무런 악의는 없었지만 헬라파들 중에 궁핍한 자들이 언어와 관습의 차이로 인하여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었을 것이다. 과부를 돌보는 일은 성경에 강조되어 있다(참조 출 22:22; 신 14:29; 사 1:17; 눅 18:3 주석). 여기서는 남의 도움에 의존해서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가리킬 것이다. 분명히 교회 내의 공유적 체제는 조성된 공유 자산(행 4:32)을 감독할 모종의 체계가 필요했다. 후에 교회는 과부들을 돌보는 규정을 만들었다(딤전 5:3~16).
 
구제. 헬라어 디아코니아(diakonia). “봉사”, “돌봄”, 「개정표준역」에는 “분배”로, 11:29에는 “구제”로 번역되었다. 이 낱말은 디아코노스(diakonos) 즉 “봉사자”(ministrant) 혹은 “집사”와 관련되어 있다. 이 도움은 날마다 제공되었다. 절박한 필요와 아마도 보관할 공간의 부족으로 날마다 도시 여러 지점에서 구제 물자를 분배해야 했을 것이다. 증여물들이 끊임없이 흘러 들어오고, 기부금을 나누어 주는 일도 끊임없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 일로 사도들의 시간이 매우 많이 소모되었다. 그러나 사도들이 편파적이거나 태만했거나 혹은 그들에게 적개심을 느낀 사람들이 있었다는 암시는 전혀 없다.
 
히브리파 사람. 이들은 헬라파 유대인들과는 대조되는 유대인들로서,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거기서 살고, 신약이 히브리 방언이라고 부르는 언어(아람어)를 사용했다(참조 22:2; 제1권, 30).
 
원망한대. 그저 사소한 불평이 아니라 심각한 우려를 자아낼 만큼 충분히 목소리가 큰 항의였다. 기록에 의하면 사도들은 아무런 비난도 받지 않았는데, 이는 그들은 그런 비난을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인들의 급속한 증가는 그들의 자원을 앞질렀고 어려움을 촉진시켰다.
 
제쳐놓고. 헬라어 카탈레이포(kataleipo-). “버리다”, “포기하다.” 이 헬라어는 강조형으로서, 궁핍한 자들을 돌보는 일로 사도들의 시간이 많이 소모되었음을 암시한다.
 
공궤를 일삼는 것. 유대 회당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도록 세 사람이 임명되었다.
 
지혜. 그 사람들은 가난한 자들의 영적 필요를 보살필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일을 하는 데 신중하고 분별력이 있고 검약하며 지혜가 있어야 할 것이었다. 바울은 지혜를 성령의 은사로 간주했다(고전 12:8). 야고보는 그것을, 선한 행실 혹은 “선행”(약 1:5)이 수반되어야 할 하나님의 선물로 강조하였다(약 3:13). 이 절 외에는, 사도행전에 “지혜”라는 단어는 오로지 스데반에 관하여(행 6:10) 또는 스데반에 의해 사용되었다(7:10, 22). 그는 또한 “믿음[이]…충만”하다고 명시적으로 진술되어 있다(6:5).
 
칭찬 듣는. 문자적으로 “입증된” 혹은 “그들에 대하여 제시된 증거를 가지고 있는”, 즉 동료들간에 평판이 좋게 나 있는(참조 딤전 5:10). 이 말은 행 10:22에서는 “칭찬”하는으로 번역되었다. 비난의 여지가 없는 사람이란 평판을 얻은 사람들이 좀 더 공정하게 분배하는 일을 떠맡도록 부름을 받지 않는 한, 그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정직하고 능률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 동료들에게 용납될 만한 사람들이어야 한다. 장로(감독)뿐아니라 집사의 자격에 관한 영감받은 목록은 딤전 3:1~14; 딛 1:5~11을 참조하라.
 
사람 일곱. 사도들이 7이란 숫자를 생각한 것은 이치에 맞는 일이었다. 유대인들 사이에는 그 숫자에 대한 일반적인 존경심이 있었다. 후대에, 적어도 7은 유대의 읍들에서 공무를 처리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의 숫자였다(Talmud Megillah 26a, Soncino ed., 157). 좀 더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 당시에는 오직 일곱 명만 필요했을 것이다.
신약에는 이렇게 임명된 사람들이 “집사들”로 불리지 않는다. 이 말이 다시 언급되었을 때, 그것은 [그] “일곱”(the seven, 21:8)으로 언급되었다. 마치 그들이 거의 하나의 구별된 단일체인 듯이. 그러나 그들은 “집사들”(사도행적, 89, 90,)이라고 불리는 계층의 원조가 되었으며, 그들의 기능은 훗날 바울이 묘사한 집사의 기능과 거의 비슷했다(참조 딤전 3:8~13). 일부 교회에서는 로마에서처럼 집사의 수가 후에 일곱으로 고정되었다(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vi. 43. 11). 신(新) 가이사랴 공회(The Council of Neo-Caesarea, AD 314; Canon 14)는 한 곳에 집사들 일곱을 두도록 요청한다. 많은 주석자는 여기의 택함받은 일곱 사람이 행 11:30; 14:23 그리고 그 절 이후 언급되는 “장로들”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택하라. 열두 사도는 그 책임을 신자들의 어깨에 분명히 지웠으며, 그들 가운데서 택해야 했다.
 
기도하는 것. 그리스도의 기도 생활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 경건한 사람들은 기도할 필요성을 그들의 목록 맨 첫 번째에 놓아두었다. 그러나 기도는 개인적인 헌신뿐 아니라 교회의 공중 예배도 포함한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하는 것. 헬라어 디아코니아(diakonia). 1절에 쓰인 것과 동일한 단어이다(「개역한글판」의 1절에 “구제”로 번역된 낱말이 여기서는 “(말씀) 전하는 것”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열두 사도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되는 영적 은택을 나누어 주는 일을 하도록 자유로워지는 한편, 일곱은 물질적 복을 나눠 주는 봉사를 할 것이었다. 그들은 설교와 여러 가지 형태의 가르침을 통해서 이 일을 할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2절)라는 구절이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히 설명한다.
 
전무(하리라). 또는 “끈기 있게 노력하다.” 이 동일한 낱말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행한 열성적 행위를 기술하는 데에 여러 차례 사용되었다(참조 1:14; 2:42, 46).
 
스데반. 헬라어 스테파노스(Stephanos). “화관”, “보관”(寶冠), “승리의 화환”을 뜻함. 이 이름은 드물지 않았으며, 고대 명각에도 나타난다.
전승에 따르면 메시야가 왔다(눅 10:1~11)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각 성읍으로 파송된 70인 중에 스데반과 빌립, 두 사람이 모두 속해 있었다고 한다. 사마리아가 그들의 봉사 현장이었을 것이다(참조 눅 10:1 주석). 사마리아인들은 헬라어를 쓰는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 유대인들보다 필시 더 잘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마리아인을 위한 복음전도자로 빌립을 보낸 이유를 설명해 줄 수도 있다(행 8:5).
 
빌립. 헬라어 필립포스(Philippos). “말[馬]을 사랑하는 사람”(참조 막 3:18 주석). 열두 사도 중 한 명과 헤롯 대왕의 아들 중 두 명도 이름이 빌립이었다. 그 이름은 이전 여러 세기 동안 마게도냐의 통치 가문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름이다. 빌립의 과거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고, 다만 그가 70인의 일원이었다는 전승만 있을 뿐이다(스데반에 관한 앞절의 주석을 참조하라). 바울은 가이사랴에 있는 그를 방문하였으며(행 21:8), 아마도 그는 오랫동안 그곳 교회의 지도자였을 것이다. 바울이 방문했을 당시 빌립에게 성장한 딸 넷이 있었다는 사실은 빌립이 임명될 당시 이미 결혼한 상태였음을 제시해 준다.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 이 네 명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으며 추측의 토대가 될 만한 것도 전혀 없다.
 
입교한. 니골라는 “의의 개종자”, 유대교를 온전히 받아들인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유대종교를 잘 배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안디옥.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이 시리아의 도시는 팔레스타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헤롯 대왕은 주요 도로 전체에 화려한 주랑을 세웠다. 니골라가 안디옥 출신이라는 사실이 매우 흥미를 불러일으키는데,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이름을 얻은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11:26). 그 도시는 후일 교회 초기 선교 사업의 본부가 되었다(참조 11:19 주석).
 
니골라. 헬라어 니콜라오스(Nikolaos)로서, “사람들의 주인”을 뜻함. 이름이 기록된 최초의 비 유대그리스도인임.
 
안수하니라. 이것은 그 행위에 대한 신약의 맨 첫 언급이다. 구약에서는 이미 축복을 수여하는 행위로 사용되었으며(참조 창 48:13, 14 주석), 제사장 위임식 때(참조 민 8:10 주석) 그리고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울 때에도 사용되었다(참조 민 27:18, 23 주석). 그러므로 이 행위의 의미를 신실한 유대인들은 모르고 있지 않았다. 주님께서 자주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셔서 그들을 고치셨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부수적인 의미가 첨가되었다(막 6:5; 눅 4:40; 13:13; 참조 막 16:18). 이와 비슷하게, 그분께서는 아이들을 축복하였다(마 19:15). 그런 까닭에, 사도들은 손을 얹어 일곱 명에게 축복하고 그들을 봉헌하는 일을 할 좋은 선례를 얻게 되었다. 그들은 행 8:17; 13:3; 19:6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유사한 상황들에서 이런 방법을 계속 사용하였다. 사도 시대의 교회에서는 복음 사역을 하도록 안수할 때 사람들에게 손을 얹었다(딤전 4:14; 5:22; 딤후 1:6). 그 관습이 교회 조직에서 용인된 절차로 굳어졌다는 사실이 히 6:2에 나타난다. 그것은 주님과 안수를 받는 사람 사이의 밀접한 영적 관계를 나타내야 한다(사도행적, 161,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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