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2:1-19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 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내용 요약
- 야고보의 순교 (1-2)
- 베드로의 투옥과 탈옥 (3-19)
-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죽음 (20-25)
배 경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기까지는 또 한 사람의 순교자가 있었다. 헤롯대왕의 손자 헤롯 아그립바 I세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야고보를 목베어 죽였다.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자 그는 베드로도 죽이려고 투옥했다. 예루살렘교회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극심한 시련이 다가오고 있었다. 신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시 34:7, 개정)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 위기에 몰렸으나 태평스러웠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 보아요.
- 천사의 도우심이라고 생각되는 사건들이 있다면 나누어 보아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 야고보는 누구입니까?
① 가족관계 (마 4:21) ② 별명 (막 3:17) ③ 그의 죽음 (행 12:2) - 베드로는 얼마나 철저히 감시를 받았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2:4-6)
- 베드로가 옥에 갇히고, 교회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12:5) 그들이 한 일은 교회가 어려울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제시해 주나요?
- 베드로는 얼마나 깊이 잠들었습니까? (12:7)
그 절망적인 밤에 예루살렘에서 잠을 잔 그리스도인은 베드로밖에 없었다고 한다. 내일로 다가온 죽음을 앞에 두고 베드로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얼마나 깊은 신뢰인가? 얼마나 확고한 믿음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자는 베드로와 비교해보라(막 14:36-37).
- 다락방의 사람들은 베드로가 살아 돌아온 것을 믿었습니까(12:13-16)?
기도를 하고서도 그 응답을 믿지 못하는 것으로 봐서 그날 밤의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이었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기도를 드리면서도 그렇게 믿지 못하지는 않습니까?
- 교만한 헤롯의 최후에 대해 말해 보시오(12:20-23)
생각해봅시다
- 권력과 출세 중심인 헤롯의 삶과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바치는 야고보의 삶을 비교해서 생각해봅시다. 어느 쪽이 나의 삶과 더 가깝게 느껴지나요?
-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믿지 않는 우리의 행동이 있나요?
모든 하늘 천사들은 겸손하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을 위해 봉사하고 있으므로, 이 지상에 있는 주의 일꾼들의 군대가 찬양의 노래를 부를 때에, 하늘 찬양대는 그들과 연합하여 하나님과 그 아들에게 찬양을 돌린다.
우리들은 천사들의 사명을 지금보다 더욱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모든 하나님의 진실한 자녀들은 하늘 존재들의 협력을 받고 있음을 기억함이 좋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빛과 능력의 군대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구하는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들과 동행하고 있다.(사도행적 154p)
1. 그때에. 여기서 이야기하는 사건은 헤롯 아그립바 Ⅰ세의 사망 직전에 일어났을 것이다(참조 20~23절). 그가 AD 44년에 죽었기 때문에, 이 장의 초반부 사건들은 아마도 AD 44년 이전 해이거나 당해 초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
헤롯왕. 헤롯 아그립바 Ⅰ세는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와 베레니체(Berenice)의 아들이었고, 헤롯 대왕과 하스몬 가문의 공주인 마리암네(Mariamne)의 손자였으며, 침례자 요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헤로디아(Herodias)와 남매지간이었다(참조 제9권, 51). 그의 이름은 아구스도(Augustus)의 총리였던 정치가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 그는 자신의 부친이 BC 7년에 조부 헤롯 대왕의 의심으로 희생된 후(제9권, 53)에, 일면으로는 볼모로, 다른 일면으로는 그가 음모에 연루되는 것을 막기 위해 로마로 보내졌다. 거기서 그는 칼리굴라와 글라우디오의 친구가 되었는데, 후에 그 둘은 모두 황제가 되었다. 헤롯 안티파스가 헤롯 아그립바의 누이 헤로디아와 결혼했을 때, 아그립바는 디베랴의 시장(市場) 감독관이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안티파스와 다투고 로마로 갔다. 거기서 그는 자기 친구 칼리굴라가 황제가 되었으면 하는 성급한 소원을 드러내 디베료의 노염을 사게 되었다. 그는 디베료의 명으로 투옥되어 이 황제가 죽을 때까지 감금된 채로 있었다. 칼리굴라는 디베료를 이어 황제의 위에 올랐을 때 자기 친구 아그립바에게 명예를 주어, 먼저는 빌립의 영지를, 그 뒤에는 루사니아의 영지(눅 3:1)를 주고 왕의 칭호를 부여하였다. 안티파스가 물러났을 때(참조 제10권, 73), 아그립바는 안티파스의 영토도 상속하였다. 그의 통치의 개관에 대해서는 제10권, 78을 참조하라.
2. 야고보를…죽이니. 사도가 신성모독이나 이설이라는 죄명을 받았다면, 산헤드린은 그에게 돌로 쳐죽이는 형을 언도했을 것이다. 침례자 요한의 경우처럼(마 14:10), 사도 야고보의 참수형은 그의 죽음이 로마의 처형 방법을 채용했던 국가 통치자에 의해 언도되었음을 입증한다(참조 마 20:23). 헤롯이 야고보를 왜 그의 첫 희생자로 지목해야 했는지는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했을 때 복음 전도 이야기에서 베드로와 요한과 공유했던 중요한 위치를 지속적으로 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천성적인 열정으로 인해 눈에 띄었을지도 모르는데, 이는 그가 우레의 아들로 불렸기 때문이다(막 3:17).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로부터 전달되어 유세비우스(Eusebius)가 보존한 전승(Ecclesiastical History ii. 9)에 의하면 야고보를 고발한 자가 희생자의 믿음과 인내를 보고 회심했다고 한다.
야고보는 그리스도 승천 이후 단 1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봉사했다. 사도들 중에 그가 가장 먼저 죽은 반면에, 그의 형제 요한은 아마도 12명 중 가장 마지막으로 죽었을 것이다.
3. 유대인들이…기뻐하는. 이것이 아그립바의 목적이었다. 요세푸스도 이것을 주목한다. 그는 아그립바를 안티파스와 비교하면서, 안티파스는 “유대인보다 헬라인에게 더 호의적이었”지만 아그립바는 안티파스와 “전혀 같지 않았다”라고 말한다(Antiquities xix. 7. 3).
민중의 칭송 혹은 비난에 대한 이 왕의 예민함을 예증하는 한 사건이 미쉬나에 나온다(Sotah 7. 8; Soncino ed. of the Talmud, 202). 어느 안식년 장막절에, 아그립바 왕이 율법을 읽고 있었다. 그가 “네 형제가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라는 신 17:15 말씀에 이르렀을 때, 자기의 후손인 이두메 사람들을 생각하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사람들은 그가 우는 것을 보고 그가 하스몬가를 생각하는 줄로 알고 “당신은 바로 우리 형제요! 당신이야말로 우리 형제요!”라고 부르짖자 왕의 마음이 위로받았다.
만약 아그립바가 기쁘게 하려던 대상이 주로 유대 지도자들이 아니었다면, 분명 이 이야기는 2:47과 5:26에서 명백하게 드러난 대로 사도들을 지지하는 초기 대중적인 정서에 큰 변화가 발생했음을 암시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 변화는 교회 구성원의 급격한 증가로 야기되었다.
무교절.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눅 22:1)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표현은 유월절 전체 기간을 가리킨다.
4. 네 패. 한 패(quaternion)는 보초 근무를 서는 4명으로 이뤄진 분대였다. 두 병사는 죄수와 함께 묶여 있고 두 병사는 서서 외부를 감시했을 것이다(참조 10절 주석). 이렇게 4명으로 이뤄진 분대는 분명히 교대로 베드로를 담당하도록 명령받았을 것이다.
5. 간절히. (「제임스왕역」에는 “without ceasing”[쉬지 않고]). 헬라어 엑테노스(ekteno-s). “간절히.” 겟세마네에서 드린 예수의 기도를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눅 22:44)와 동일하다. 이 단어는 벧전 4:8에서는 “열심으로”라고 번역되어 강렬함을 나타낸다. 교회의 일반적인 상황으로 보아 이 기도들은 사가(私家)에서 그리스도인 무리가 드린 것으로 추측될지 모르는데(행 12:12), 이는 아그립바의 핍박이 공개적인 그리스도인 예배를 위협했기 때문일 것이며, 이는 그리스도교 초기에 흔한 사례였다.
6. 베드로가…누워 자는데.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말씀에 나타난 대로(시 127:2), 사도가 다가오는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잠잠히 휴식을 취하는 것을 보는 것은 신앙에 영감과 도전을 준다.
7. 쇠사슬이…벗어지더라. 베드로는 분대 소속 병사 두 명에게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쇠사슬이 그의 발목과 손목에서 벗겨져 떨어졌지만, 보초들은 깨지 않았다.
9. 알지 못하고. 베드로에게 이 상황은 분명히 10장에 기록된 생생했던, “비몽사몽” 중에 본 환상과 매우 흡사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는 마치 전에 기도하는 중에 지붕에서 환상을 보았다는 사실을 깨어난 후에야 깨달았던 것처럼, 깨어난 후에 자신이 두 병사에게 쇠사슬로 묶여 있는 것을 보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10. 파수. 헬라어 퓔라케(phulake-). “첫째와 둘째 파수”는 감옥의 안쪽 문 근처와 약간 더 떨어져 있는 다른 문에 배치된 보초들을 가리키거나, 아니면 그와 함께 쇠사슬에 묶여 있던 보초와 문에 있었던 다른 보초들(참조 4절 주석)을 가리킬 수 있다. 베드로는 안쪽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안뜰 둘을 지나서 나와야 했다.
절로. 이 말은 인간적인 힘이 사용되지 않았음을 뜻한다(참조 레 25:5). 보이지 않는 천사가 문을 연 것이 분명하다.
누가가 이 기적을 간결하면서도 꾸밈없이 기록한 사실은 이 기록의 정확성을 입증한다.
12. 요한. 베드로가 마가를 그의 “아들”(벧전 5:13)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 젊은이는 베드로를 통해 회심했을 것이다. 라틴어 이름 마르쿠스(Marcus)는 로마인 혹은 로마계 유대인과 어느 정도 접촉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마리아. 이 마리아는 바나바와 친척이다(참조 골 4:10. 마가가 “바나바의 생질”이라고 되어 있지만, 헬라어로는 “바나바의 사촌”을 의미한다). 마가의 아버지가 언급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마리아는 과부였을 것이다. 기도회 장소로 교회에 대여해 줄 만큼 큰 집을 가졌던 점을 볼 때, 마리아도 바나바와 마찬가지로(참조 행 4:36, 37) 상당한 재산을 소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모여 기도하더라. 아마도 이러한 모임은 마리아의 집에서 흔히 있었을 것이다. 베드로가 감옥에서 구출되었을 때 일단의 무리가 그의 구원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는데(참조 5절), 이는 교회가 위기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3. 로데. “장미”라는 뜻의 흔한 헬라어 이름. 로데는 이 사건 외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녀만큼 잘 알려진 하인은 거의 없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 예수의 발을 씻겼던 마리아 그리고 성전 연보궤에 두 렙돈을 넣었던 이름 모를 과부처럼, 로데는 1900여 년 동안 모든 성경 독자들에게 알려졌다.
영접하러. 여기에 위기감이 풍기는데, 이는 아그립바가 유대교에 대한 열심 때문에 제자들에게 가한 핍박으로 인한 위기였다. 사울이 일전에 모든 집에 들어가 남녀를 감옥으로 체포했는데(8:3), 이때도 그와 유사한 위험을 내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로데가 들어가기를 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 전에는 문을 열어 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14. 베드로의 음성. 헌신적이고 용감한 십자가의 군병을 향한 어린 여성의 그리스도인 사랑으로 그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베드로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였을 것이고, 따라서 그녀는 그의 음성을 알아챘다. 또한 베드로는 갈릴리 방언 특유의 어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전에도 어떤 하녀가 그를 알아본 적이 있었다(마 26:73).
기뻐하여. 로데가 베드로에게 문을 열지 않았던 것은 믿음의 부족이 아니라, 순수한 기쁨 때문이었다. 그녀는 베드로를 향한 형제들의 근심과 그를 위해 드려지는 기도에 함께하였다. 베드로의 탈출에 대한 기쁜 소식을 말하려는 간절한 갈망으로 인해 그녀는 침착함을 잃어버렸다. 이와 유사하게 누가는 부활의 저녁 예수를 알아보았으나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였던(눅 24:41) 제자들에 대해 기록하였다.
15. 네가 미쳤다. 베드로가 문에 서 있다는 소식을 로데가 전했을 때, 형제들은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자신들의 기도에 응답했음을 믿을 만한 믿음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어린 여성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그의 천사. 히브리서(1:14)에서 천사에 관한 유대인의 건전한 신념은 다음 질문에 표현된다. “모든 천사는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유대인은 수호 천사가 각 사람에게 배정되며, 천사가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날 때 그 사람과 비슷한 모양을 취한다고 믿었다. 구약과 신약의 중간 시대에 유대인은 복잡한 천사론(angelology)을 발전시켰다.
16. 놀라는지라. 선한 사람들조차도 기도가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응답되었다는 사실을 선뜻 믿으려 들지 않음을 보여 주는 이보다 더 좋은 예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베드로가 그들 앞에 섰을 때, 그들은 이 사람이 베드로임을 거의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믿음의 기도가 응답될 것이라는 충분한 보증을 주었다(요 14:13, 14).
17. 자기를 이끌어. 감옥에서 놓여 정신을 차렸을 때 베드로는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11절)셨다고 외쳤다. 그러나 지금 그는 자신을 구원한 분이 주님이었다고 증거하고 있다.
야고보. 할례와 관련해서 예루살렘 총회에서 의장을 맡아, 그 문제에 대해 판결을 내렸던 야고보임이 분명하다(15:13). 그는 어떤 면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수석 장로였기 때문에, 베드로가 자신의 구출 소식을 즉시 알려 주길 바란 것은 당연했다.
이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 아니면 주님의 형제 야고보일 것이다. 예수의 형제들은 예수의 지상 생애의 종반부가 돼서야, 즉 열두 제자가 선택되고 한참 후에야 그를 믿게 되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사망한 이후,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중 하나였던 야고보를 가리켜 “주의 형제”(갈 1:19; 참조 2:9)라는 명백한 호칭을 붙인다. 이 사람이 바로 여기서 베드로가 언급한 야고보일 것이다. 유세비우스(Ecclesiastical History ii. 23; Loeb ed., vol. 1, 171)는 그를 예루살렘의 감독이라고 칭하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진실의 요소를 간직하고 있는, 야고보에 관한 헤게십푸스(Hegesippus)의 회고록(Memoirs, AD 180년)을 인용한다. “주님의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모든 사람이 그를 ‘의로운 자’라고 부른 이유는, 야고보로 불린 사람이 많았지만 이 야고보는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거룩했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거나 육식을 하지 않았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으며, 스스로 기름을 바르지 않았고 목욕하지도 않았다. 그만이 홀로 성소에 들어가도록 허용되었는데, 이는 그가 양모를 입지 않고 아마포만 입었고 혼자 성전에 들어가 사람들의 죄사함을 위해 무릎 꿇고 기도드리곤 했기 때문이며, 사람들의 죄사함을 무릎 꿇어 간구하며 하나님에게 지속적으로 경배했기 때문에 그의 무릎은 낙타 무릎처럼 딱딱하게 되었다.” 전승에 의하면, 그가 그리스도를 부인하라는 요구를 거절했을 때, 그는 성전 꼭대기에 올려졌고, 그분에 대한 믿음을 붙잡겠다고 주장함으로 밑으로 던져져 돌에 맞고 곤봉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참조 제10권, 81). 요세푸스에 의하면(Antiquities xx. 9. 1) 그는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야고보서 서론을 참조하라.
18. 적지 않게 소동하니. 베드로와 함께 쇠사슬에 묶여 있던 보초들은 틀림없이 깨어나자마자 그가 사라졌음을 발견했을 것이고, 그가 도주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죽을 것임을 알았다.
이것은 베드로의 활동에 대한 성경의 마지막 기록이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그에 대해 진술한 것은 이미 언급하였다(1:18; 2:7, 8, 11, 14). 베드로는 자신의 두 서신에서 행한 일들에 대한 약간의 암시를 준다(벧전 1:1; 5:12, 13; 벧후 1:14). 이 외에는 어떤 영감된 기록에도 그에 대해 더 알려진 것은 없다. 전승에 꽤 많은 언급이 있긴 하지만, 그 주장들은 그 진위에 따라 수용하거나 거부해야만 한다. 제롬이 유세비우스의 크로니콘(Chronicon)을 의역한 진술 곧 베드로가 로마에서 25년 동안 전파했다는 말은, 베드로가 총회를 위해 예루살렘에 있었으며(행 15장) 그가 총회 직후 분명히 안디옥에 있었고(; 참조 제15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그가 친히 소아시아 북서부에서 사역했다(벧전 1:1; 참조 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iii. 1)는 사실에 비춰볼 때 매우 의문시된다. 행 8~12장에 비추어 볼 때, 이 모든 것은 AD 44년 베드로의 구출에 뒤이어 일어났을 것이다.
19. 죽이라. 문자적으로 “[그들을] 끌어내어” 처형하라. 동일한 동사가 예수의 재판과 십자가 처형에 대한 복음서 기사에서 “끌고 가니”(마 26:57; 27:2, 31; 막 14:53; 눅 23:36)라고 번역되었다. AD 529년에 공포된 한 로마법은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투옥된 죄수의 구금과 관리는 간수에게 맡겨졌고, 따라서 간수는 어떤 경우든 죄수가 도주했을 때 그에게 책임이 있다해도 일부 비열하고 야비한 피고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데, 이는 도주한 죄수가 받아온 것으로 입증된 동일한 형벌을 간수가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The Code of Justinian ix. 4. 4; in S. P. Scott, tr., The Civil Law, vol. 14, 364). 이것은 죄수가 도주하는 것을 막지 못한 간수와 관련된 법 혹은 적어도 판례로 오랫동안 존재했던 것이 분명하다. 빌립보에서, 자기의 죄수들이 모두 도주했다고 생각한 간수는 법으로 사형을 당하느니 차라리 자살하려고 하였다(행 16:27). 27:42과 비교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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