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들 앞에서의 바울의 증언, 사도행전 연구 22-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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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2:1-21

[1]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2]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4]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6]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1]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12]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14]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침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내용 요약

바울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앞에서 신앙을 고백합니다.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합니다.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나 유명한 율법 교사 가말리엘 밑에서 배웠으며 다른 유대인들처럼 하나님께 열심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열심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고, 이로써 예수님을 따르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복음에 대해 열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핍박하되 죽이기까지 한 그의 열심에 대하여 말하고 그가 회개하게 된 사정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자기의 교만한 마음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나사렛 그분에게 절하게 되었는지를 청중들에게 고하였다. 만일 그가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논쟁하려고 하였다면 그들은 완고하게 그의 말을 듣기를 거절하였을 것이나 그의 경험에 대한 진술은 수긍하게 하는 능력이 있어서 한동안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한 것처럼 보였다.(행적 409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자신의 생각 혹은 삶을 바꾼 소중한 경험이 있다면?

  2. 심하게 누구와 말다툼을 한 일이 있나요? 왜 그렇게 심하게 말다툼을 하였나요?

  3. 누군가가 나를 간절히 찾았던 적이 있나요? 왜 그렇게 간절히 찾았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예수님을 알게 되기 전의 바울의 열심은 무엇이었습니까?(22:2-5)
                                                                                      
  2. 바울이 만난 분은 누구입니까?(22:6-8)

  3. 바울의 변명의 요점은 무엇입니까?(22:14-16)
  4. 바울은 논쟁이 아니라 무엇을 통하여 자신을 변명하고 있습니까?

  5. 주께서 "나가라"(18절)고 하신 말씀에 대한 바울의 생각은 무엇이었습니까? 바울에게 "떠나가라"(21절) 재차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생각해봅시다.                                                 

  1.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2.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 적이 있나요?

  3. 우리는 삶의 목적을 위해서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나요?
  4.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그는 이방인들 중에서 행한 그의 사업은 자원하여 시작한 것이 아님을 나타내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자기의 민족을 위하여 일하기를 갈망하였으나 바로 그 성전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거룩한 계시 중에 그에게 말씀하시고 그의 행로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향하게 하셨던 것이다. (행적 409p)

1. 변명. 헬라어 아폴로기아(apologia). 혐의에 대해 변명하는 발언이다.

 

2. 히브리 방언. 당시 유대인들의 통용어인 아람어를 말한다(참조 21:40 주석).

더욱 종용한지라. 바울은 손짓(21:40), 아람어 어투, 정중한 말씨로 격한 청중의 면밀한 주목을 끌었다. 인간들의 감정의 바다가 갑자기 잔잔하게 가라앉고 기대에 찬 고요가 그것을 대신했다.

 

3. 너희 모든 사람처럼. 바울은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공통적인 입장이 있음을 납득시키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성전을 성스럽게 그리고 침해받지 않도록 보존하려는 그들의 소망을 칭찬한다.

 

열심하는. 참조 21:20 주석. 바울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율법열심하는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4. 죽이기까지. 한때 바울은 그들이 지금 열심을 내는 것처럼 열심하는자였다.

 

옥에 넘겼노니. 헬라어 본문에 이 복수로 되어 있는 것은 사울의 핍박 활동이 여러 성에서 수행되었음을 시사한다(참조 26:11).

 

5. 대제사장. 아나니아(23:2). 본 주석에서 채택한 바울의 생애 연대에 의하면, 바울이 개종하던 당시(AD 35)에는 가야바(참조 눅 3:2 주석)가 대제사장이었다. 아나니아는 가야바 이후 일곱 번째 대제사장이다.

 

모든 장로들. 헬라어 프레스뷔테리온(pres- buterion). “장로회.” 여기서는 산헤드린을 지칭하는 듯하다. 바울이 개종한 후 23년이 흘렀을 것이나 그 당시 생존해 있던 장로들중 몇몇은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것을 재가하는 일에 가담했던 사람들일 것이다(8:3; 9:1, 2).

 

형제들. 바울은 여기서 그의 동족 유대인들을 형제들이라고 재치 있게 지칭한다(참조 22:1 주석; 18:15).

 

가더니. 문자적으로는 가고 있었다.” 가는 도중이라는 의미이다(참조 9:3 주석).

 

6. 다메섹. 바울은 종교적 열심으로 이방 땅까지 오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그리스도인을 핍박하기 위해서였고 나중에는 그리스도교를 선포하기 위해서였다.

 

오정쯤. 하나님의 임재의 광채는 정오에 내리쬐는 수리아 지방의 눈부신 햇빛을 오히려 어둡게 했다(참조 26:13).

 

12. 경건한 사람. 아나니아가 유대 종교의 요구 사항을 충실히 지키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9:10에는 그가 그렇게 묘사되어 있지 않다. 거기서 그는 단지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로 불린다. 이곳에 묘사된 바울은 청중의 호의를 얻고자 애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참조 22:1~4 주석). 바울이 불경한 사람이었고 지금 혐의를 받고 있는 것처럼 불경한 행동을 한 죄가 있었다면, 경건한 유대인이 바울을 받아들였을 리 없다.

 

칭찬. 경건한 유대인인 아나니아의 성실성은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믿음에 충실한 자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가 바울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다메섹 도상의 바울의 경험이 사실이었음을 입증하였다.

 

14. 스데반이나 아나니아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인이 됨으로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을 버렸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유대교를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스스로 형제들 중에 가장 독실하다고 생각했다. 바울처럼 그들은 눈먼 동족이 나사렛 예수를 메시야로 인식하게 되기를 열렬히 소망했다(9:1~3; 10:1~3).

 

자기 뜻을 알게. 개종 전에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다. 그는 바리새인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잘 알며 그것을 양심적으로 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참조 23:1; 24:14).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과 그것을 행하는 것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참조 마 7:21~27; 7:17; 13:17 주석). 바울은 반복하여 하나님의 뜻을 언급한다(참조 고전 1:1; 고후 1:1; 1:1; 1:1).

 

의인. 여기서는 예수를 지칭한다(참조 행 3:14; 7:52; 요일 2:1). 열두 사도는 주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매일 그와 교제했다(요일 1:1, 3). 이제 사도직에 특별한 부름을 받은 바울도 주를 뵙는 특권을 받았다(참조 행 22:17~21; 고전 15:3~9; 고후 12:1~5).

 

음성. 다메섹 근처에서 본 계시를 언급하는 것으로 보이나 후에 주로부터 받은 특별한 지시(고후 12:1~5; 1:11, 12)를 언급할 수도 있다.

 

15. 그를 위하여증인이 되리라. 열두 사도처럼 바울도 주를 보고, 그의 음성을 듣고, 그의 뜻(14)을 알았다. 또한 그들처럼 바울도 복음을 선포하라는 사명을 받았다(참조 1:8). 바울의 자격과 권위는 그들의 것보다 열등한 것이 아니었다(고전 15:10; 고후 11:5; 2:8, 11).

 

모든 사람 앞에서. 아직도 바울은 이방인에 대한 사명(참조 21)을 언급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피하고 있다.

 

16. 왜 주저하느뇨. 증거는 충분했다. 공식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왜 지체하는가?”(참조 8:36).

주의 이름. 본문상의 증거(참조 20)그의 이름이라는 독법을 지지한다.

불러. 즉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받아들이고 그를 위한 봉사에 들어감을 의미한다.

 

너의 죄를 씻으라. 침례는 하나님이 지정한 예식이다(참조 마 3:15; 16:15, 16; 3:3, 5; 3:5).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례 자체만으로는 죄를 씻는데 무력하다. 침례는 그 외적 행동에 믿음, 회개 그리고 성령을 받아들이는 일이 따라야만 효력이 있다(참조 마 28:19; 2:38; 3:19; 8:36, 37). 죄의 제거를 가능케 한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이다(고후 5:20, 21; 벧전 2:24; 3:21; 요일 1:7, 9).

 

17. 예루살렘으로. 이것은 9:26의 방문이다(참조 9:26 주석).

 

성전에서. 아마도 아침 기도 시간이나 저녁 기도 시간에(참조 눅 1:9; 3:1 주석). 하나님이 계시를 통해 바울을 영화롭게 하셨던 바로 그곳에서 바울이 신성 모독죄로 고소되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기로 결정하기 전에 그 사실들을 조사하는 것이 좋을 것이었다.

 

비몽사몽. 이 계시를 통해 주어진 기별을 18~21절에 기술하고 있다. 이 일은 9:26~30에 기록된 예루살렘 방문 시에 일어났다.

 

18. 속히. 9:29, 30에는 제자들이 바울을 보냈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바울을 죽이려는 계획(29)은 그들에게 바울이 지체 없이 그 도시를 떠나야 한다는 확신을 주었다. 개인적인 안전을 개의치 않는 바울의 성격(참조 행 19:30; 20:22~24; 고후 4:7~9; 11:24~27)과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 대한 심적 부담(참조 롬 9:1~3; 10:1)으로 바울은 그 도시에 남아 있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사도행적, 130). 복음의 전달자가 위협적인 상황을 개의치 않아야 할 때도 있으나, 어떤 도시에서 핍박을 당할 경우 다른 도시로 도망해야 할 때도 있다(참조 마 10:23 주석). 외견상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곤란을 겪을 경우에는 의무를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바울의 형편이 이러한 경우였으며 형제들의 충고와 더불어 하나님은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지시를 주었다. 바울은 주로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을 위해 일하도록 부름받았으며(22:21; 2:7~9), 하나님의 목적은 그가 이방으로 떠남으로써 가장 잘 이루어질 수 있었다. 바울은 그곳에 15일간 머물렀다(1:18). 18:17~25; 11:16; 15:2; 2:2을 비교하여 이와 흡사한, 형제들의 충고에 덧붙여진 하나님의 지시를 살펴보라. 참조 13:2~4; 15:28.

 

19. 주 믿는 사람들을. 참조 15:21 주석.

 

가두고때리고. 아마도 바울이 때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사의 시제로 보아 이 행동이 일정 기간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핍박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이제 바울의 목적은 그의 피에 굶주린 이 성난 폭도들 앞에서 그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그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함으로써 공통적인 입장을 찾는 것이었다. 그렇게 할 때 아마도 그들은 바울이 좀 더 해야 할지도 모르는 말을 기꺼이 들을 것이었다.

 

각 회당. 이단이나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에 대한 고소를 듣고 처벌한 장소인 회당에 대해서는 마 10:17; 23:34; 13:9; 12:11을 참조하라. AD 225년경 테르툴리아누스는 자신의 시대에도 유대인 회당이 아직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핍박의 원천이라고 기록했다(Scorpiace x).

 

20. 증인. 헬라어 마르튀스(martus). 신약 시대에 마르튀스라는 단어에는, 이 단어에서 파생된 현재의 영어 “martyr”에 첨가된 순교자라는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목숨을 버릴 때 마지막 증언을 하도록 요청받는 일이 많아지자 그러한 증인들이 특히 순교자(martyr)로 알려지게 되었다.

 

저희. 헬라어 본문은 강조형으로 쓰였으며 바로 이 사람들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전에 그를 죽이기로 꾀했던 바로 그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일에 대한 바울의 열심을 잘 알았다.

 

21. 내가보내리라. 바울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떠나는 것은 바울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에 관한 이 선언의 성취가 아니었다. 바울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에 관한 이 선언의 바울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떠나는 것은 성취가 아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제1차 전도여행을 떠나기까지 아직도 약 구년이 지나야 할 것이었다.

결례를 행한 바울, 사도행전 연구 21-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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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1:18-32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20]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22]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23]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24]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

[27]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29]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30]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31]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32] 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내용 요약

  1. 밀레도에서 예루살렘까지 (1-16)

  2. 예루살렘에서 체포당함 (17-40)

 

배 경 

바울은 5년 동안에 걸친 제3차 전도 여행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편견과 핍박과 투옥이었다.

그가 만일 그가 어떤 합리적인 양보로 그들을 진리로 인도할 수 있다면,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는 복음의 성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게 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요구한 만큼 양보하도록 하나님의 재가를 받지 못하였다.(행적 405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교회에서 꼭 지켜야 할 도리는 무엇일까요? 사회생활에서 꼭 지켜야 할 도리는 무엇일까요

  2. 자신의 생각과 대립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한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3. 자신의 소심한 마음 때문에, 잘 못된 방향으로 간 적이 있으면, 나누어 보아요.
  4. 나는 내가 속해 있는 사회에서 분위기를 잘 맞추어 주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원칙과 법에 따라 권고를 잘 하는 사람인가요? 어느 쪽이든, 나는 왜 그렇게 행동하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야고보와 장로들이 바울을 향하여 가졌던 우려는 무엇입니까?(21:21)   
                                                                                      
  2. 예루살렘 교회가 바울에게 요청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21:20-24)(6:1~21)

  3. 요청에 응한 것은 하나님의 뜻일까요?(참조. 행적405p)

  4. 교회지도자들의 조언과 바울의 결례행위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습니까?(21:27-32)

 

생각해봅시다.                                                 

  1. 다른 사람의 믿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틀렸다고 생각될 때는 언제인가요?

  2.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겸허하게 잘 받아들이나요?

  3. 나는 나의 계획과 생각이 우선입니까? 믿음이 우선입니까?

 

우리는 그의 형제들과 조화되고자 하는 바울의 큰 소망, 신앙이 약한 사람들에 대한 그의 친절, 그리스도와 함께 하였던 사도들과 주님의 형제 야고보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원칙을 희생하지 아니하는 한 모든 사람에게 좋게 대하려는 그의 의도, 이 모든 것을 생각할 때 그가 지금까지 견지해온 확고하고 단호한 길에서 부득이 빗나가게 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행적 405p)

18. 야고보장로들도 다. 가능하면 빨리 바울은 지도자로 보이는 야고보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을 방문했다. 이 사람들은 선출된 지방교회 장로들이라기보다는 거기 거하고 있는 사도들(참조 14:23)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과 장로들 모두가 특별히 언급된 15:2, 4, 6을 참조하라. 분명히 주의 형제인 이 야고보는 예루살렘 총회의 의장이었다(참조 행 12:17 주석; 15:13; 1:19).

 

19. 낱낱이 고하니. 문자적으로 하나씩 말하기를 계속했다.” 15:3; 15:30과 비교하라. 바울의 보고는 장로들에게 18:22의 예루살렘 방문 이래 그가 경험한 일들을 알리고,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서 팔레스타인의 가난한 유대인 그리스도인에게 온 구제품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하고 있었을 것이다.

 

20. 유대인 중에수만 명이 있으니. 유대인 중에서 이루어진 복음 전파의 놀랄 만한 진전을 알려 준다. 그러나 이 어림 숫자에는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 회심자들 이상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처럼 수많은 유대인이 오순절을 위하여 거기에 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자들의 무리에 관해서는 6:1, 7; 9:31; 11:21, 24; 14:1; 17:4을 참조하라.

 

율법에 열심 있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달리 이 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총회의 결의에 의하여 유대교 의식들에서(참조 15:19~21 주석) 자유롭게 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최소한 구약의 의식들을 실천하고 있었고, 의심할 여지없이 바리새인들의 많은 전통적 요구사항들도 따르고 있었다. 후자에 관해서는 제1056~58, 61, 62을 참조하라. 바울은 자신이 그의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좇아”, 즉 바리새인으로서 살았다고 묘사한다(26:5). 이 계층에서 대부분의 초기 회심자들이 나왔으나 그들은 바울과 달리 여전히 율법주의자였던 것이 분명하다.

 

21. 네가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문자적으로 네가 모세로부터 떠나게 하는 배도를 가르치고 있다.” 이는 바울에 대해 회자되고 있던 비난이었으며, 자신들의 종교에 열성적인 유대인에게 이보다 심각한 고소는 있을 수 없었다. 이것은 가장 깊은 종교적 감정뿐만 아니라 애국심, 분파심, 역사적 전통, 사회적 관계 그리고 공적인 법에 근거하여 분개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수많은 유대인(참조 20)이 만유를 회복할 메시야로 예수를 받아들였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은 유대교 의식과 요구사항을 더욱더 고수하고 바울을 민족과 종교를 모두 배반한 자로 철저하게 두려워하여 거부했음이 분명하다.

 

할례를 하지 말고. 앞의 일반화를 가리키는 특정한 비난이다. 이 비난에 따르면 바울은 전통이 아니라 율법 자체에 깊이 새겨져 있는 유대인의 언약의 상징을 위반하고 있었다.

 

규모를 지키지 말라. 6:14 주석과 비교하라. 여기서 바울이 율법에서 파생된 세부사항들과 거기에 불가피하게 들어와 첨가된 전통적인 실천사항들을 공격했다고 생각된다. 이런 사항들은 수많은 사람이 열렬하게 믿는 엄숙한 책무였다. 편견에서 나온 폭력 때문에 반박이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유대인 자신들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에 적용하고 종교에 대한 개인의 행실에 관련지어 보면 이러한 의무들은 쉽사리 반박할 수 있었다(22:3; 23:1, 6; 24:11~16; 25:10, 11; 26:4~7, 22). 유대인들의 의식적 요구사항을 옹호하는 것에 대한 바울의 입장은 예루살렘 총회(15)의 입장 즉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의식이든 양심의 요구에 따라 그것을 계속 수행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방인 회심자들은 그 요구에서 자유롭다고 주장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이 천국을 향해 가는 데에 율법적인 행위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2:24~29; 4:1~11; 5:1~6; 2:16~22).

바울은 자기 나름대로 법을 개인적으로 적용하여(고전 9:19~23) 특별히 유대인 중에서는 유대인처럼 살았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 교회에서 그 의식적인 실천들을 계속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했는데, 그들이 믿음의 복음에 비추어 의식의 수행이 무의미함을 깨달을 때까지 그렇게 했다(14:1~10; 고전 7:17~24). 바울은 스스로 나실인의 서원을 했다(18:18). 그는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도록 했다(16:3). 바울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자녀들이 할례를 받지 않게 하라고 가르쳤다고 비난할 근거가 없다. 그 비난은 그의 적들이 꾸며낸 것이었다.

하지만 복음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결국 유대인들로 하여금 의식의 실천사항을 더 이상 의미 없는 것으로 보고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사도의 가르침의 근본이었다. 우리 주는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의를 소유하라고 가르쳤으며(5:20) 그들 자신을 위한 종교적인 외식을 정죄했다(6:1~7). 그리고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것을 주장했다(4:23). 바울은 사람들에 의해 개발되고 강요된,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2:20~22)는 식의 종교, 곧 실제로는 도덕적 및 영적 중요성도 없고(참조 롬 14:1~10; 4:9~11; 9:9, 10) 그리스도의 삶과 희생에 비추어 볼 때 이미 그 의미가 종결된 규칙들(2:8~17)을 믿는 종교를 부정했다.

 

희생제도와 할례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제정되었다. 희생제도들은 그것이 가리킨 분이 인류의 죄짐을 진 자로서 돌아가실 때 의미가 없어졌다. 제사를 드리는 장소로서의 성소와 제사를 드리는 자들로서의 제사장들도 동일하게 그 의미를 상실했다(9:24~27; 27:51; 8:13; 9:11~15). 할례는 한 나라, 즉 한 민족과 하나님 사이의 계약 관계의 외적 표징이었다(4:11). 할례 의식이 개인적으로 적용되었다 해도, 유아 상태에서 믿음으로 받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것은 단순히 민족적이고 국가적인 상징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봉사와 예배가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민족적이나 국가적 문제가 아니고(3:28, 29; 3:11),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개인적 문제라는 것이 드러났을 때(3:22~24; 3:26, 27; 2:8) 할례 의식은 그 의미를 상실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믿음의 길 곧 구원의 새 언약이 도래함으로(31:31~34; 고후 3:6~9; 8:6~13) 옛 언약의 표인 할례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믿음으로 힘써 여호와를 알”(6:3)고자 하는 유대인은 영적 삶에서 아무 의미가 없는 할례를 반드시 중단할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가르친 대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에 비추어 보면 할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전 7:19; 참조 롬 3:31; 8:4; 요일 2:3).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서 할례(그 의식 자체를 위한 준수)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5:6; 6:12~17). 유대인이나 이방인은 그들 사이에 막힌 담을 허(2:11~17)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하나이다(3:16, 27~29; 2:9~14). 모든 사람은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2:4~10; 참조 롬 3:26~30)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는다. 바울은 유대인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일 믿음과 영적 통찰력을 가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왜 은혜를 통하여 구원을 얻은 믿음의 사람이 된 내가 자녀에게 할례를 주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럴 이유가 없다. 그러나 다만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너희 형제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대답이 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믿고 실천했다. 그러므로 유대화주의자들이 바울을 고소한 것들은 거짓이었지만, 모든 유대 의식들의 장래에 대한 염려는 정당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22. 들으리니. 바울의 도착 소식은 반드시 성도들의 모임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많은 유대인 신자 가운데 퍼진 소문에 의해 전해질 것이었다(참조 20).

 

23. 이대로 하라.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하는 충고가 최선이라고 믿었다. 바울을 문제에 연루시킬 의도는 없었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그가 비난받아야 했다고 그들이 생각한 것처럼 보인 편견을 없애고자 했다(사도행적, 403).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이 바울을 통하여 강력하게 역사한 것을 깨닫고, 그들 스스로가 그에 대한 반대를 없애고자 노력해야 했다.

 

네 사람. 이 네 사람은 분명히 유대인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구성원이었고, 이는 유대인의 의식이 여전히 유대인 회심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예증했다. 이 유대인 형제 네 명은 이미 그들의 서원을 이루어 가는 중이었으나 다른 사람은 특별히 이미 서원을 실행하는 과정에 있는 자들의 비용을 감당하는 조건으로 그 환경에 들어오도록 허락되었다.

 

24. 저희를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바울이 이 권고를 이행하면 하나님 앞에서 결례를 행할 필요가 있음을 묵인하는 표가 될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그가 유대인들의 용납을 얻어내는 데 도움보다는 장애가 될 수도 있었다. 이는 나실인의 금기를 시작하고 그 기간의 끝에 머리를 깎는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참조 18:18 주석).

 

비용을 내어. 바울은 서원을 행하고 있던 사람들의 비용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곧 레위인 이발사에게 지불할 의식상 머리를 깎는 데 드는 비용과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 일년 된 숫양, 일년 된 암양, 숫양, 무교병 한 광주리, 소제물, 전제물 등 제사에 드는 비용을 말한다(6:9~21).

 

머리를 깎게 하라. 서원의 결과로 머리가 깎이고 제물이 드려질 때 머리카락은 화목제물인 숫양 밑에서 불로 사루어졌다.

 

모든 사람이알 것이라. 바울이 서원 의식에 참여한다면 그가 모세를 배반”(참조 21절 주석)한 것이 아니고 그에 대한 모든 비난이 헛된 것임을 유대인에게 확신시키게 될 것이었다.

 

율법을 지켜.율법”, 즉 토라는 유대인의 생각과 생애와 종교의 중심이었다. 토라, 즉 가르침은 모세의 글들에서 주어진 모든 교훈을 포함했다. 바울은 율법을 어긴 것으로 비난받았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생각하기에 바울이 유대인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가 그 율법에 신실함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25. 이방인에게는. 바울에게 결례를 행하도록 제안하는 장로들의 대변인인 주의 형제 야고보는 예루살렘 총회 의장을 맡고 있었다(15:13). 그는 바울에게 이방인의 자유에 더 이상 문제가 없다는 것과 그들이 유대인의 의식을 따를 필요가 없음을 확신시켰다. 그런 다음 그는 바울에게 자유케 하는 결의안을 상기시켰다(참조 20절 주석).

 

목매어 죽인 것. 이 구의 생략을 지지하는 중요한 본문상의 증거(참조 20)를 제시할 수도 있다.

 

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바울은 유대인들 중에 유대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했다(고전 9:19~23). 그러나 그는 사실 여기서 모순적이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율법에 열심인”(21:20)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참여했기 때문이다. 사도행적, 405, 406,과 비교하라.

만기된 것을 고하니라. 즉 서원이 끝났을 때 성전에서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제사장들에게 알리는 것을 말한다. 이 기간을 마치기까지 네 사람에게 7일이 더 요구되었다(27). 요세푸스에 따르면(War ii. 15. 1 [313]) 서원하는 기간은 총 30일이었는데 이제 그들에게 오직 7일이 남아 있었다.

만류할 수 없는 뜻, 사도행전 연구 21-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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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1:1-16

[1]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5]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7]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15]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16]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



내용 요약

  1. 밀레도에서 예루살렘까지 (1-16)

  2. 예루살렘에서 체포당함 (17-40)

 

배 경 

  바울 일행은 두로와 돌레마이를 지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전도자 빌립의 집에 머뭅니다. 아가보 선지자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에게 결박되어 이방인 손에 넘겨지리라고 말합니다. 모두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말리지만 바울은 권함을 받지 않습니다.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행21:13)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심하게 만류한 일이 있나요? 왜 그렇게 만류했나요?

  2.  모든 사람의 반대에 무릅쓰고, 끝까지 추진한 일이 있나요? 왜 그렇게 하였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과 작별할 때, 어떤 마음이 이었을까요?(21:1)

  2. 바울에게는 어떤 예고가 주어 졌습니까?(21:4)

  3. 만류하던 제자들과 바울의 기도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었을까요?(21:12-14)

  4. 만류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뒤로하고 바울이 예루살렘 행을 결정한 기준은 무엇인가요?(21:13)

 

생각해봅시다.                                                          

  1. 나에게 있어서 당연히 힘든 일인 줄 알면서도, 가야하는 길이 있다면 어떤 길입니까?

  2. 고난이 예상되지만 만류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면?


사도는 그의 사랑하는 형제들의 간청에 깊이 감동을 받았다.
인간의 판단에 따라 그는 지각없이 그의 계획을 포기할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었으나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함을 느꼈으며 친구들의 음성이나 선지자의 경고조차도 그를 단념시킬 수 없었다. 그는 우편이나 좌편으로 의무의 길에서 벗어나서는 안 될 것이었다. 그는 만일 필요하다면 감옥이나 죽음까지도 불사하고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의 눈물은 그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그의 형제들의 동정이나 아무리 큰 슬픔을 초래할지라도 그의 결심은 굽힘이 없었다.(적은 무리23p)

1. 저희를 작별하고. 헬라어 본문에 사용된 동사는 힘겹게 작별함을 시사하는데, “우리 자신을 그들에게서 떼어 내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바로. 분명히 유리한 바람과 조수로 인하여.

 

로도. 소아시아의 남서쪽에 위치한 이 유명한 섬(참조 416쪽 지도)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동안 유명해졌다. 고대에는 이 도시를 아스테리아(Asteria, “별들의 지역이라는 의미)라고 불렀다. 로도(또는 로도스 또는 로데스)라는 이름은 이 섬에 자라고 있던 많은 장미 때문에 붙여졌다. 조선(造船)에 유용한 이 섬의 목재는 주민들이 강력한 해군을 창설하는 일을 가능케 했다. 해운 교통의 요로이자 상업적, 군사적 요충지인 이곳에는 큰 태양신전이 있었으며, 주조화폐에는 태양신 아폴로의 두상이 새겨져 있었다. 높이가 30미터 이상인 태양신 헬리오스의 거대한 청동상은 로도의 거상(巨像)으로 알려졌으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불렸다. BC 280년경 카레스(Chares)가 건축한 이 거상은 BC 224년경 지진으로 무너졌으며, 거의 900년 동안이나 넘어진 채로 방치되었다. AD 7세기에 사라센 정복자들에 의하여 한 유대인에게 팔렸는데, 이 청동을 조각 내어 운반하는 데 낙타 900마리 이상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2. 베니게. 팔레스타인 북쪽의 해안 지역(참조 지도 제9, 222). 예수께서 봉사할 당시에는 팔레스타인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베니게(Phoenicia)의 주요 도시는 두로와 시돈이었다.

 

4. 제자들을 찾아. 우연히 거기 있었던 제자들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두로인 그리스도인 집단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아마도 그곳에 교회가 수 년간 존재했다고 볼 수 있지만(참조 11:19; 15:3), 이것이 두로에 있는 교회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다.

 

들어가지 말라. 이 표현은 분명히,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들어가는 것을 막았던 것처럼(16:6, 7) 예루살렘으로 가는 그의 여행을 성령께서 금지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성령께서 직접 금지한 것을 바울이 불순종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히려 조금 나중에 가이사랴에서 아가보에 의해 더욱 명백하게 주어진 것처럼, 예고로 이해해야 한다(21:10, 11).

 

하더라. 계속해서 말하다.” 이런 예언적 경고들은 분명히 성령의 은사를 가진 자들에 의해 안식일에 또는 두로 교회의 다른 모임에서 주어졌을 것이다(참조 갈 6:1).

 

5. 이 여러 날을 지난 후. (제임스왕역에는 “accomplished thoses days”[저 여러 날을 만료한 후]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4절의 이레를 말한다. 제임스왕역의 여기서 만료한으로 번역되고 딤후 3:17에서는 “furnished”(설비된, 개역한글판에는 온전케 된으로, 개정표준역에는 “equipped”[준비를 갖춘]으로 되어 있음)로 번역된 이 헬라어 동사의 일차적인 의미는 항해 준비 곧 배의 장비를 갖추다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두로에서 항해 준비를 위해 배가 이레 동안 머물렀다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여기서처럼 시간을 표현할 때는 마친 후또는 지난 후가 더 좋은 번역일 것이다.

 

저희가전송하거늘. 부인들과 아이들을 포함하여 두로의 모든 교회가 바울과 그의 동료들을 마을에서 나와 해안까지 전송했다(참조 15:3; 20:38).

 

8. 가이사랴에. 참조 10:1 주석. 여행은 육로로 이어진 것으로(참조 7절 주석) 추측된다. 당시에 돌레마이와 가이사랴 사이에는 훌륭한 도로가 있었다. 바울이 육로 여행을 선호한 것에 관해서는 20:13을 참조하라.

 

전도자 빌립. 빌립은 원래 공궤를 일삼는자들 즉 집사들 중 한 사람이었으며 그의 이름은 집사들의 목록에서 스데반 다음에 나온다(6:5). 빌립에게 이 공궤하는 일은 점차 사라지고 전도자의 일에 몰입하게 되었던 것 같다(참조 8:5~13, 26~40). 이 명칭은 직함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고, 성령으로부터 이러한 특별한 은사를 받은 결과로 그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묘사라고 생각해야 한다(참조 행 13:1 주석; 4:11). 이 은사에 대한 중요성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도인의 일을 하며”(딤후 4:5)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불일 듯 하게 하”(딤후 1:6)라고 권고한 데 나타난다.

전도자로서 빌립의 활동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가 마지막으로 등장했던(8:40) 가이사랴 지경을 넘어갔다. 그는 스데반의 죽음 후에 따른 박해 동안 외국으로 흩어진 사람들과 함께 팔레스타인과 베니게의 해안을 오르내리면서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11:19). 아마도 이 일로 빌립과 누가가 처음으로 만났을 것이고 또한 빌립과 바울이 처음으로 만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9. 딸 넷. 이 여인들은 예언의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참조 행 13:1 주석; 고전 14:1, 3, 4; 2:20; 4:11). “예언하다라는 동사는 미리 말하다”(참조 창 20:7; 11:9 주석), 즉 하나님을 위해 미리 말한다는 의미이다. 선지자는 사건들을 미리 말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성경에는 이러한 가장 사모할 만한 성령의 은사들을 받은 여인들에 관한 예가 다수 제시되어 있다(고전 14:1). 모세의 누이 미리암은 선지자였고(15:20), 드보라도 선지자였는데, 이 여인의 영감에 의한 도움으로 바락은 가나안 사람들을 정복했다(4:4). 이사야의 부인도 선지자였고(8:3), 유다 왕 요시야의 개혁 때 제사장 힐기야(왕하 22:14; 대하 34:22)를 도운 훌다도 선지자였다. 선지자 안나는 아기 주님께 경배했다(2:36~38). 거짓 여 선지자들도 언급된다(6:14; 2:20). 요엘은 마지막 때 여종에게 예언의 은사를 부어 주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2:28, 29).

 

10. 여러 날. 더 많은 날.” 즉 처음 계획한 것보다 오래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아가보. 의심할 여지없이 흉년을 예언했던 아가보와 같은 사람일 것이다(참조 11:28). 흔치 않은 이름과 특별한 은사가 함께 언급된 점으로 보아 이들이 각각 다른 사람일 거라고 생각할 수 없다.

 

11. . 아마포, 모직, 가죽으로 만든 띠로, 동방의 겉옷의 느슨한 부분들을 단단히 잡아매 허리에 묶는 것인데 특히 일을 하거나 걸어갈 때 그렇게 한다. 이것은 돈, 서판(書板), 철필 등을 휴대할 수 있을 정도의 주머니 만한 크기로 만들어졌다.

 

잡아매고. 예언을 제시하기 위한 극적인 방법 중 하나로, 하나님의 지시 아래 이사야(20), 예레미야(remiah/13/1e; 18:1~10; 19:1~3; 27:2, 3; 28), 에스겔(4:1~13; 5:1~4) 등이 사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12. 사람들. 누가와 가아사랴 교회를 포함하여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 예언을 들었는데, 이는 안식일 집회에서 공개적으로 예언되었던 것 같다.

 

13. 어찌하여. 여기서 내 마음을 상하게한다는 것은 슬픔으로 바울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기보다는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야 할 그의 사명에 대한 결심을 약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이름을 위하여. 참조 빌 3:7, 8. 사도들과 그들의 동료들은 이름을 활용했다. 참조 3:16 주석; 4:12; 5:41.

 

죽을 것도. 진실한 순교자 정신을 나타낸다.

 

각오하였노라. 헬라어 본문에서 대명사 가 강조되어 있다. 이는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고, 가치 있는 일을 위하여 고통의 대가를 지불할 바울의 흔들리지 않는 결심을 가리킨다(참조 행 20:24; 예수의 태도 [9:51]).

 

14.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교회는 어떠한 호소도 소용없고, 바울이 예루살렘에 뜻을 두고 있음을 알았다. 하나님의 뜻은, 무서운 위험이 있는데도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바울의 결심 안에서 분명해졌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은 외부적인 고통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내면의 평화를 가져온다. 22:42과 비교하라.

 

15. 행장을 준비하여.채비를 하여”, “짐을 챙겨.”

 

올라갈새. 올라가기 시작했다또는 올라가고 있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행을 계속했다는 뜻이다.

 

16. 나손을 데리고 가니. 오히려 “[우리를] 나손에게로 데리고 가다라는 의미이다. 알려진 것이 전혀 없는 이 초기(“오래된이라기보다는) 제자 나손은 구브로를 떠나 예루살렘이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그의 집을 마련했다. 이 이름은 헬라인 중에 흔했으며 그는 초기의 헬라파 회심자였을 것이다.

 

유하려 함이라. 이 절은 가이사랴 성도 중 몇 사람이, 바울이 만나본 적이 없는 초기의 제자이며 바울과 동료에게 집을 제공할 그들의 친구 나손을 소개하기 위하여 바울과 그의 동료들과 예루살렘까지(102킬로미터) 동행했음을 암시한다. 이 예루살렘 방문이 바울에게 처음이 아니었고, 바울이 그곳에 있는 교회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니었으므로 예루살렘에서 유할 곳을 위해 낯선 자에게 소개할 필요가 없었다. 이 이야기에 나타난 외관상의 모순은 지리적 요인들과 당시의 사회적 관습에 비춰 보면 이해가 되고 해결될 수 있다.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까지 약 102킬로미터의 거리는 하루에 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로 이틀이나 사흘에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의 접대 관습에 비춰보면, 가이사랴 신자들은 바울 및 그의 일행과 예루살렘까지 동행할 필요는 없었고, 단지 집주인인 그들의 친구를 바울에게 소개해 주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도중 한 마을에 사는 그들의 친구 나손의 집까지 하룻길을 그와 동행했고, 거기서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 하룻밤을 유했다는 것이 훨씬 타당해 보인다.

이 문제에 대한 제안된 해결책은 다른 본문상의 독법에 의해 지지를 받는다. “가서 유하다대신에 이 사람들이 우리가 묵어야 할 어떤 사람에게 우리를 데리고 갔는데, 우리는 어떤 마을로 들어가 초기 제자인 구브로 사람 마손이라는 사람에게로 갔다라는 독법을 지지하는 본문상의 증거(참조 20)를 제시할 수도 있다. 17절은 여행이 진행되었고 예루살렘의 형제들이 바울을 영접했음을 가리키는 이 독법을 따르는 것이 논리에 맞다.

나의 달려갈 길, 사도행전 연구 20-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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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0:13-38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6]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37]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38]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내용 요약

  1. 고린도에서 드로아까지 (1-6)

  2. 드로아에서 밀레도까지 (7-16)

  3. 밀레도에서의 설교 (17-38)

 

배 경 

바울은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고자 서두릅니다.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청해 자신이 이제껏 시험을 참으며 주를 섬겼고, 예루살렘에 가도 성령의 증언대로 환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예수께 받은 사명을 위해 생명도 아끼지 않겠다고 합니다.

에베소에서 삼실마일 떨어진 밀레도에 도착하자 바울은 배가 떠나기 전에 교회와 연락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함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즉시 장로들에게 기별을 보내어 그가 여행을 계속하기 전에 그들을 볼 수 있도록 밀레도에 급히 오라고 요청하였다. 그는 부름에 응하여 그들은 왔고 그는 힘차고 감동적인 권고와 고별의 말을 그들에게 주었다.
(행적 392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훤히 보이는 고생길을 자처해서 간 적이 있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혹은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요. 

3. 본이 되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거리낌 없는 삶이란?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바울이 행한 에베소에서의 눈물의 봉사 (20:19, 31)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이런 봉사로 인하여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인가요?  
                                                                                      
  2. 바울의 사명감과 열정 (20:24)이 우리 삶에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3. 바울의 부탁에 요점은(20:28-32) 무엇일까요? 

  4. 바울의 정직함과 부지런함 (20:34-35)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면, 왜 그런지에 대하여 나누어 보아요. 
                                                                                                                                                                      

 

생각해봅시다.                                                 

  1. 무릎을 꿇고 형제자매들과 간절히 기도한 경험이 있다면 그 일을 회고해 봅시다.

  2. 고난의 길을 가면서도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나를 서두르게 하는 기대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그것이 교회와 복음을 위한 것인가요?

 

그는“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충당하”였다고 선언하였다. 그의 힘에 겨운 수고와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한 광범위한 여행 중에서도 그는 자신의 필요를 공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료 사역자들을 부양하고 매우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어떤 것들을 절약할 수 있었다. 그는 끊임없는 근면과 가장 철저한 절약을 통하여 이일을 성취하였다.(행적 396p)

19. 모든 겸손.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세상을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힌(갈 6:14) 바울은 부르심과 직분에 대해 또는 그것으로 인한 어떤 자만심도 가질 수 없었다. 그는 육체를 신뢰할 만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빌 3:4~7). 또한 그의 사도로서 겪은 경험과 고통을 자랑할 만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후 11:18~30). 그의 겸손은 그리스도의 능력과 위대함에 의해 그의 작음과 연약함을 헤아리는 그리스도인 귀족들에게 속했다.
눈물. 예수처럼 바울도 울었다(고후 2:4; 참조 요 11:35). 그는 유대인 형제들이 나라를 상실한 일을 슬퍼했다(롬 9:1~5; 참조 눅 19:41, 42). 그는 그들이 진리의 길에 장애물을 놓는 것을 슬퍼했다. 그는 영혼들이 버려지는 것을 슬퍼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완고함을 슬퍼했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인 목자는 주위에 있는 잃어버린 영혼들로 인하여 슬퍼하며, 진리에 대한 그들의 반대에 대해 거룩한 열정이 솟아날 것이다. 
시험. 헬라어 페이라스모이(peirasmoi). “시험하는 것들”, “시험들.” 벧전 4:12과 비교하라. 행 19장은 원수들의 반대에서 발생한 역경들이 진술되어 있다.섬긴 것. 헬라어 둘류오(douleuo-). “[노예로서] 섬기다.” 바울은 종종 이 단어와 명사 둘로스(doulos), “종”, “노예”를 그리스도와 관련된 자기 자신에게 적용했는데, 그럼으로써 그의 마음과 의지가 주님께 완전히 속해 있음을 나타낸다. 그가 행한 모든 것은 그리스도, 그의 주인에게 속했다. 자신의 이익이나 세상의 어떠한 관심도 그가 섬기는 그리스도와 비교될 수 없었다.
꺼림. 헬라어 휘포스텔로(hupostello-). “아래에 두다” 그러므로 “숨기다”, “억압하다.” 이 단어는 일찍이 돛을 감는 데 사용되었다. 바울은 노력하고 활동하는 데 몸을 아끼지 않았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또한 가르치고 권고하기를 꺼리지 않았고 진리를 감추지 않았다(참조 27절).  

 

23. 성령이…내게 증거하여. 이것이 직접적인 계시에 의한 것인지(참조 16:6, 7 주석) 혹은 21:4, 11에서처럼 선지자의 예언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바울이 마음에 계속해서 깊은 감명을 받은 것에 의한 것인지 언급이 없다.

 

24. 달려갈 길. 헬라어 드로모스(dromos). “경주”, “경주로”, “인생살이” 또는 “임기”, “경력.” 자기 앞에 펼쳐진 경주를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 바울은 스스로를 산 제사(롬 12:1)로 드리고 있었다. 고별 편지에서 그는 자신이 그러한 길을 마쳤음을(딤후 4:7) 주장했다. 그렇게 그는 히브리인들에게 그들 앞에 당한 “경주를 인내[참음]로써 경주”하라고(히 12:1) 권고했다. 바울은 그렇게 삶을 경주하고자 했기 때문에, 마지막에 부주의나 무관심으로 인한 소홀함이나 실패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그는 그의 생애를 깨끗한 양심으로 마치기를 원했다. 
사명. 헬라어 디아코니아(diakonia). “봉사.” 이 단어에서 영어 단어 “deaconate”(집사)가 파생되었다. 여기서는 교회의 직분이 아니라 하나님께 바쳐진 봉사를 의미한다. 충성스런 봉사가 바울의 주된 원칙이었고 그는 그의 “아들” 디모데에게도 동일한 헌신을 권고했다(딤후 4:5). 
귀한 것. 내 자신의 소망에 가치 있는 것. 어떤 개인적인 선택이나 소망도 바울을 꾸준한 사역의 특권에서 떼놓을 수 없었다. 그는 그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그리스도의 종이었다(롬 1:1). 어떤 것도 그가 의무를 소홀히 하도록 유혹할 만큼 중요하지 않았다. 이것은 구주의 정신이었고 초기 그리스도인의 정신이었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바울은 여기서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으나, 의심할 여지없이 에베소에서 온 장로들과 밀레도와 에베소의 교회들이 그를 다시 보지 못할 것으로 믿고 있다. 이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위험들을(행 20:22, 23; 롬 15:30, 31)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수 있으며, 로마와 스페인을 방문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행 19:21; 롬 15:23~28)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바울은 1차와 2차 로마 투옥 사이(빌 1:25~27; 몬 22절)에 밀레도와 에베소는 아니더라도 마게도냐와 아시아로 돌아왔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때 이것에 관해서는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27. 꺼리지 않고. 참조 20절 주석. 인기 없는 진리로 인해 빚어지는 두려움이나 인기에 대한 쓸모없는 갈망이 바울의 봉사를 방해할 수 없었다. 진리를 부끄러워하거나 위장하는 일은 없었다.
하나님의 뜻. 즉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 바울은 이 계획을 스데반의 설교(참조 7:54~58)를 통해 최초로 듣고 그리스도에게 친히 들은 것 같다(행 9:4~6; 갈 1:15~20). 그는 사람들 앞에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사망하신 목적, 그의 부활과 승천, 대제사장으로서의 하늘 성소 사업 그리고 중보 사업의 마지막에 그의 백성들을 데려가기 위해 다시 오리라는 약속의 목적을 제시했다. 이것이 바울이 로마서에서 명확히 제시하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28. 양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고전 12:12~27; 엡 4:12), 하나님의 성전이요(고전 3:16, 17), 주의 신부다(엡 5:23~32). 하지만 더 친숙하게는 하나님의 양떼이다(요 10:11~16; 참조 벧전 5:4; 히 13:20). 그러므로 그들은 쫓겨나지 않고(요 10:26~30) 인도를 받아야 하며, 착취되지 않고 공급받아야 한다(시 23; 요 10:7~14; 벧전 5:2). 
파스토르(pastor, 목사)는 “내가 먹이다”라는 동사 파스코(pasco-)에서 온 라틴어 단어이다. 성경에 아주 선명하게 제시된, 호소하는 듯한 선한 목자는 복음 사역자의 모본이다. “온”은 모든 양떼와 각 양을 의미하는데,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약 2:1~9).
자기 피로. 헬라어 원문이 분명하게 지적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의 [아들의] 피로”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이 번역은 앞에서 소개한 “하나님의 교회”라는 독법에 적합한 반면, 다른 번역은 신성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하거나(다른 참고 문헌들이 명확히 하는 개념) “주의 교회”라는 독법에 적합하다. “피는 생명”이다(신 12:23). 피가 흘려지면 생명은 끊어진다. 희생동물의 피가 땅에 흘려지고 죽는 것은, 죄인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한다. 그러므로 갈바리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은, 아버지와의 분리로(마 27:46; 요 19:34, 35) 그의 심장이 터져 물과 함께 피가 나올 때 “구원하는 피”(고전 1:17, 18), 피로 사신 일(행 20:28) 그리고 깨끗하게 하는 피(요일 1:7)로 일컬어진다. 그리스도는 구원을 가능케 한 속죄제물로서 죽으셨기 때문에 교회는 특별한 헌신과 관심으로 목사들의 관리를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처럼 목사는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한 봉사에 자신을 바쳐야 한다. 

 

29. 내가 떠난 후에. 바울은 그가 함께 세운 교회들의 후견인으로 일해 왔다.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와 여호수아 후에 생존한 장로들이 사는 날 동안에는 신실했으나(삿 2:7) 후에는 배교했다. 바울이 떠남으로 그들에게 위험이 많아질 것이다. 

 

30. 너희 중에서도. 교회 외부로부터 양떼를 공격할 앞 절에 나타난 “이리”는, AD 400년경 일반에 널리 퍼져 있던 그리스도교를 급진적으로 변질시킨 유대화주의자들과 이교의 영향력을 대표한다. 이제 바울은 데마(딤후 4:10), 후메내오, 빌레도(딤후 2:17)와 같은 내부에서 오는 배교의 영향력에 대해 경고하는데, 그들의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짐 같으며”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렸다.

 

31. 일깨어. 바울이 틀림없이 인식하고 있었을 주의 권고(마 24:42; 25:13)를 의미심장하게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울이 방금 “감독자”(참조 20:28 주석)라고 부른 에베소 장로들에게 이렇게 설교하는 일은 매우 적절했다. 바울은 교회를 지도하고 목양하는 자들의 특징이 되어야 할 경계를 강조한다.
삼 년. 바울은 삼 년 동안 에베소 교회 앞에 경계의 모본을 보여 주었다. 사도행전의 역사에는 회당에서 설교한 3개월(19:8), 두란노 서원에서의 2년(10절), 데메드리오의 폭동 바로 전후의 분명치 않은 기간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과 잘 알려진 유대인의 포함식 계산법(참조 제2권, 83, 84)은 “삼 년”이라는 바울의 일반적인 언급에 충분한 설명이 된다. 참조 61쪽.
눈물로. “감정을 나누는 일”이라는 뜻 그대로 바울의 깊은 동정심은 그의 기록 많은 부분에서 밝혀진다(참조 행 20:19; 고후 11:29). 바울은 목회적 능률과 열심에 대해 강도 높게 말하고 있으나 장로들 중 누구도 그의 언급을 논박하지 않는다. 

 

32. 은혜의 말씀. “그의 은혜로운 말씀”을 의미하는 형용사구로 볼 수도 있다. 유사한 표현은 “그의 능력의 말씀”(히 1:3) 또는 우주를 지탱하는 힘이 있는 “그의 능력 있는 말씀”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의 은혜의 말씀”은 그를 믿는 자들의 구원을 이룰 수 있다(유 24절). “은혜”(카리스[charis])라는 단어는 고후 12:9에서와 같이 종종 “능력”(뒤나미스[dunamis])이라는 단어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말씀”(로고스[logos])이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격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가 말할 때 그의 말씀에는 은혜뿐만 아니라 능력이 충만하다(참조 약 1:21; 히 4:12; 렘 23:29). 카리스에 대한 논의를 보려면 롬 3:24 주석을 참조하라.
부탁하노니. 헬라어 파라티쎄미(paratithe-mi). “곁에 두다”, “위임하다.” 여기서는 “위탁하다”(벧전 4:19)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울에게는, 그리스도의 날까지 믿음의 “의탁” 또는 “맡겨 놓은 것”(파라쎄케[parathe-ke-])이 된, 그들이 받은 진리(딤후 1:14)를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교사들(딤후 1:14)이 있었다.
기업. 이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 분배를 가리킨다(수 14~19장).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믿음 부족으로 그들의 땅을 성공적으로 차지하는 데 실패했다(삿 1장; 2장; 히 3장; 4장). 하나님의 자녀의 기업은 분명히 히브리인에게 할당된 소유로 간주되어야 하며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확실히 주장되어야 한다. 에베소인의 기업에 대한 바울의 사상 전개를 비교하라.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받은 구원의 서약이 되는 “우리 기업에 보증”(엡 1:14)이 있는데, 그것은 현재 그리스도인의 영적 소유로서의 “성도 안에서 그 기업”(엡 1:18)과 그리스도의 재림시 들어갈(마 25:34; 눅 12:32), “하나님 나라에서” 얻을 “기업”(엡 5:5)이다. 재림시 하나님의 성도들은 하늘에 들어가서 1,000년 동안 통치할 것이고(살전 4:16, 17; 계 20:4), 그 후 새로 창조된 땅에서 살 것이다(계 21:1~4).

 

33. 내가…탐하지. 사무엘이 그의 백성들에게 한 호소와 비교하라(삼상 12:3~5). 바울과 사무엘 둘 다 불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변명을 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정직함을 잃고 타락했다(삼상 8:3). 바울은 “탐심의 탈”(살전 2:5; 참조 고후 7:2; 12:17, 18)을 썼다고 비난받았다. 바울은 그의 복음사역에 대하여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었으나(고전 9:13, 14) 탐욕의 비난을 받지 않으려고(고전 9:12, 15)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미치는 그의 두드러진 영향력으로(참조 갈 4:13~15) 바울은 자신의 부를 위하여 물질적인 이익을 얻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울은 “비천에 처할 줄도”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았다(빌 4:12). 그는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하기를”(빌 4:11) 배웠다. 그는 고린도인들에게서 어떤 “이”(利)도 취하지 않았다(고후 12:17). 그는 빌립보인들에게서 어떤 “선물”도 바라지 않았다(빌 4:17). 바울은 지원을 바라기보다 그의 손으로 일했다. 그러므로 그는 다음 절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그의 노력이 실제로 다른 사람들의 부에 대한 탐욕 때문이었다는 비난에 대한 변호로 이 사실을 말한다.
은이나 금이나 의복. 동방에서는 흔히 이런 것들을 소유하고 있으면 부유하다고 간주했다. 나아만(왕하 5:5)과 다른 이들(창 24:53; 45:22; 왕하 7:8; 참조 마 6:19; 약 5:2, 3)의 경우에도 그러했다.

 

34. 이 손으로…당하여. 자급하는 바울의 습관을 가리키며, 탐욕의 비난에 대한 부분적인 변호로 소개된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와 함께 장막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18:1~3). 그는 이전에 에베소에서 친히 손으로 일했고(고전 4:12) 데살로니가에서도 일했다(살전 2:9; 살후 3:8). 이 절은 그가 에베소에서도 이와 같이 일했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바울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한 사람들과 그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일했다. “자주 나는 병”이 있었던 디모데(딤전 5:23)는 그들 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교회가 아직 목사들을 부양하는 방법을 세우지 못한 때에 복음을 전하는 동안 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일해야 하는 것을 조금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약한 사람들. “아픈 자들”, “고통받는 자들.” “믿음이 약한” 자들(롬 14:1)에게 적용될 수도 있지만, 바울이 방금 여기서 육체노동에 대해 말했기 때문에(행 20:34, 35) 여기서는 “약한” 사람이 문자적으로 가난하고 병약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피할 수 없다. 이 절의 뒷 부분도 같은 결론을 내리게 한다. 사도 교회 신자들은 그 후 어느 시대 사람들보다 이러한 책임에 잘 준비되어 있었다(참조 6:1, 2 주석).
복이 있다. 축복에는 “주고받는” 양면이 있다. 필요가 영적인 것이든 육신적인 것이든 복을 받은 자는 행복하다. 그러나 주는 자에게 더 큰 복이 있다. 나눔에는 기쁨이 있다. 주는 자는 자신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본성의 좋은 부분을 활용하게 되며,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마 25:34~40). 하나님은 무한한 공급자라는 점에서(창 22:8~13; 시 23장; , 34), 주는 것은 하나님과 같은 행위이다.

귀향 길, 사도행전 연구 20-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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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0:1-16

[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2]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3]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8]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13]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14]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15]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16]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내용 요약

  1. 고린도에서 드로아까지 (1-6)

  2. 드로아에서 밀레도까지 (7-16)

  3. 밀레도에서의 설교 (17-38)

 

배 경 

  드디어 3차에 걸친 10년동안의 긴 전도 여행이 끝나고 바울은 귀향 길에 오른다. 이제 바울의 나이도 50대 중반이 되어 있었다. 에베소에서 은장색 소요가 있은 후 바울은 고린도에 가서 3개월을 머물면서 (20:3) 유명한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쓴다. 그리고는 죽음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귀향 길에 오르는 것이다. 

 

바울은 이방 교회들이 낸 거액의 돈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을 유대의 사업에 책임을 진 형제들에게 전달하고자 하였으므로 연금을 낸 여러 교회를 대표하는 이들 형제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을 가고자 준비하였다.(행적 390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큰 위로와 힘이 되었던 경험이 있으면 나누어 보아요.

  2.  심히 졸아서, 낭패를 경험한 적이 있나요? 또한 당신은 어떨 때 가장 졸음이 오나요?
    (당신은 잠을 이길 수 있는 편입니까? 그렇지 못한 편입니까?)

  3. 어떤 사람이나 물건을 보면서 큰 위로가 되는 경우가 있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함께 가는 자”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왜 이들과 함께 가려고 했을까요?(20:4)(4절 주석참조)

  2. 드로아에서 모였던 안식후 첫날 집회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이 초대교회가 첫날을 정기적으로 준수한 증거가 되는지 말해 봅시다. 이 구절은 일요일을 지키는 교회에서 신약시대에 벌서 일요일에 모였다는 성경상 증거로 내세우는 세 성경절 중 하나입니다. (행20:7, 고전16:2, 계1:10)
    ① 바울은 이미 투옥과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으므로 드로아에서 일주일 머무는 동안 날마다 집회를 가졌을 것이다.
    ② 유대인의 하루는 해 질 때부터 다음날 해질 때까지이므로(레23:32) 안식 후 첫날 저녁은 토요일 저녁이다(새번역 성경, Good News Bible).
    ③ 이 때를 일요일 저녁이라고 억지를 쓸 경우라도 일요일 준수의 증거는 되지못한다. 그것은 밤이고 이미 성경상 둘째 날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④ 이 집회는 송별 집회로서 바울이 어느 날에 떠나더라도 그 전날 가졌을 모임이어서 전혀 정기 집회의 성격이 없다.
    ⑤ 떡은 날마다 라도 떼었다. (행2:46)

  3.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유두고)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습니다.(20:12) 무엇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었을까요?

  4. 바울이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가려고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20:16)                                                         

 

생각해봅시다.                                                          

  1. 내 삶에서 가장 큰 위로가 되는 이적은 무엇인가요? 이를 통해 내가 경험한 하나님은 어떤 존재이신가요?

  2. 인생을 여행길에 비유한다면 현재 내 인생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고후 1:3-5, 개정)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2. 그 지경으로. 의심할 여지없이, 바울은 그 자신이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그리고 빌립보에 세웠던 교회들을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었을 것이다. 바울은 틀림없이 마게도냐를 가로질러 로마가 닦아 놓은 도로를 따라 서쪽의 아드리아 해안으로 갔고, 일루리곤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참조 롬 15:19, 참조 416쪽 지도).
헬라. 헬라어 헬라스(Hellas), 그리스. 누가는 남쪽 지역인 아가야와 같은 뜻으로 헬라스를 사용한다. 바울은 여행을 계속하여 아가야 지방의 수도인 고린도에 당도했고, 그곳에는 교회 안에서 질서를 바로잡아야 할 많은 일이 있었다. 거기에 있는 성도들은 이미 그가 보낸 두 편지서를 받았다. 에베소에서 보낸 첫 번째 편지서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 나타난 분당의 정신을 꾸짖었다. 또한 바울은 주의 만찬에서의 무질서를 꾸짖었으며, 근친상간에 반대하는 그의 견해를 제시했다. 바울이 직면한 목회적 과업들은 설령 고린도에서만 모든 시간을 보냈다 해도 이 지역에 머무는 3개월 동안 휴식을 거의 허락하지 않을 것이었다.
고린도에 거하는 동안, 바울은 아마도 많은 친구를 그리워했을 것이다. 글라우디오의 칙령은 철회되었거나 더 이상 강제성을 갖지 않았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에베소에서 로마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참조 행 18:18, 19; 롬 16:3). 바울이 고린도에서 교분을 쌓았던 다른 사람들도(참조 롬 16장) 이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이 로마로 가려는 그의 열망을 강화시켰을 것이다(; 롬 1:10, 11). 바울은 그리스에서의 사업을 이루었다. 그는 자신을 서쪽으로 끌어당기는 인간적 매력 이상의 것을 느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잠시만 머무를 목적으로 속히 예루살렘에 가서, 이방에 있는 교회들이 준 선물들을 넘겨 준 후 즉시 로마와 스페인으로 여행하고자 계획했다(롬 15:24~28). 사도행전의 나머지 부분은 사실상 그가 어떻게 다른 경로로 여행했는지를 보여 준다.

 

3. 석 달을 있다가. 또는 “그가 석 달을 보낸 후에.” 헬라어 구문상, 이 구절은 뒤따라 오는 부분과 연결된다.
배 타고 수리아로. 즉 “수리아를 향해 항해를 시작하다.” 바울은 아마도 그의 여행경로를 잡고 승선까지 했던 것 같으나 배가 떠나기 전 경고를 받았다.
유대인들이…공모하므로. 즉 “그에 대하여 유대인들이 만든 책략.” 유대인들은 바울이 고린도를 마지막으로 방문하는 동안 그를 공격하는 데 갈리오를 끌어들이려고 했고, 이제는 비밀리에 그에게 복수하고자 했다. 분명히 그를 죽이려는 의도였다. 바울은 그 음모에 대하여 들었을 때 계획을 바꿔 동료들과 함께 마게도냐로 떠났으며, 그 공모자들을 좌절시켰다.
마게도냐로 다녀.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는 분명히 그가 수리아로 가는 뱃길에서 실행될 것이었기에, 북쪽으로 가려는 그의 신속한 계획 변화는 새로운 상황에 따르는 새로운 음모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4. 아시아까지. 이 표현의 생략을 지지하는 중요한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를 인용할 수 있다.
함께 가는 자는. 디모데와 아마도 소바더(소시바더의 다른 이름이라 추정됨)가 고린도에서 바울과 함께 있었을 것이다(롬 16:21). 대표단의 규모는 유대에 있는 교회들을 위하여 계획된 많은 금액을 바울이 가지고 가고 있었다는 사실로 설명할 수 있다. 바울이 돈을 기부한 지역들의 많은 증인을 데려감으로써 비방자들이 그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행할 수 있는 어떠한 의심도 피할 수 있었다(고후 8:19~21). 그러므로 대표자들은 유력한 교회들에서 택해졌고, 그들은 바울의 처신에 나무랄 데가 없음을 증언할 수 있었다. 누가를 포함하여 바울과 동행한 사람은 8명이었다(참조 5절 주석).

 

5. 우리를 기다리더라. 이 성경절에서 갑자기 1인칭 복수로 바뀐 것은, 자신의 이름을 결코 언급한 적이 없는 누가가 바울의 동료 명단에 그 자신이 포함되어야 함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는 아마도 빌립보 교회의 대표자로, 또는 바울의 친구이자 의사로서 포함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기다림은 바울로 하여금 빌립보에서 유월절을 지킬 수 있게 했고, 그는 그곳에서 “무교절 후에”(6절) 출발했다. 앞서간 제자들은 드로아 교회에게 바울이 오는 것을 알렸을 것이고 그의 도착에 맞춰 그를 맞이하기 위해 모두 모였을 것이다.

 

6. 무교절. 바울은 유대인의 절기 때문에 빌립보에 의도적으로 머무른 것으로 보인다. 유월절 기간에 유대인이요 바리새인(23:6)인 바울이 큰 종교적 감동으로 계속 충만해 있었을 것에 틀림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유월절 기간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기간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참조 고전 5:7, 8).
닷새 만에 드로아에. 드로아에서 빌립보로 향하는 서북향의 항해는(참조 16:11, 12 주석) 사흘 길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 동남쪽을 향해 항해하는 이 배는, 다르다넬스 해협에서 형성된 남서해류와 봄에 에게 해(Archipelago, 참조 416쪽 지도)에서 일어나는 북동풍을 만나야 했다. 바울이 유럽으로 건너가도록 하는 마게도냐의 부르심에 대한 이상을 보았을 때, 그는 누가와 디모데와 함께 드로아에 있었다. 소바더와 아리스다고와 세군도는 하나님께서 마게도냐에서 그들의 일에 은혜를 베푸신 열매의 일부를 대표했다. 
이레. 바울과 누가는 드로아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아마도 그들은 에게 해를 건너 5일간의 항해 끝에 안식일이 지난 후 상륙한 것 같다. 그들이 드로아에서 보낸 7일, 즉 완전한 일주일은 안식일로 끝났다. 다음 날, 즉 그 주의 첫째 날에 바울은 걸어서 앗소에 가려고 계획했고(13절), 나머지 동료들은 배를 타고 앗소로 향했다. 안식일이 끝나는 시점과 이른 아침 출발 사이, 선교사들은 드로아에 있는 교회에서 꽤 오랫동안 중대한 모임을 가지면서 그 주 첫째 날의 어두운 부분, 즉 토요일 밤을 보냈다.

7. 안식 후 첫날. 유대식 시간 계산법에 따르면 이날은 이미 그 주일의 둘째 날이 된다. 누가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 표현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엘리코트(Ellicott), 코니비어(Conybeare), 하우슨(Howson) 그리고 A. T. 로버트슨(A. T. Robertson)을 포함한 다른 주석가들은 이 모임이 일요일 전날 저녁에 있었다고 이해했다. 유대식 시간 계산법에 의하면 하루가 일몰에서 시작하므로 안식 후 첫날의 어두운 시간은 일요일 전날 저녁, 즉 오늘날의 토요일 저녁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계산법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수 세기 동안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누가가 이방인이든 아니든 그의 이야기에서 이 방법을 사용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따라서 드로아에서의 바울의 모임은 토요일 저녁 일몰 후에 시작되었고, 그 밤 내내 계속되었을 것이다. 그 이튿날, 일요일에 그는 걸어서 앗소로 갔을 것이다. 
어떤 저자들은 이 표현을 가지고 초기 그리스도인이 일요일을 준수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누가가 유대식 시간 계산법을 썼느냐 혹은 로마식 시간 계산법을 썼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이 모임이 “안식 후 첫날”에 있었음을 명백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유대인의 계산법을 사용했다면 일요일이 되기 전날 저녁은 첫째 날로 간주되었을 것이며, 그가 만약 로마식 시간을 사용했다 해도 일요일 저녁은 여전히 첫째 날이었다. 초기 그리스도인이 일요일을 준수했느냐는 문제에서, 중요한 요소는 이 첫째 날 모임이 정규적인 그리스도인 모임인가 아니면 단순히 바울의 방문으로 인하여 첫째 날에 이러한 일이 우연히 일어났는가 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 이야기를 고려해 볼 때, 이날이 주중 첫째 날이기에 바울이 특별히 이 모임을 열었다는 견해를 지지할 만한 근거는 없다. 그는 드로아에서 7일을 거했으며 거기서 이미 한 번 이상 성도들을 만났을 것임이 틀림없다. 이제 그는 떠날 입장이었고, 그 전에 고별 모임을 갖고 성찬식을 거행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지극히 논리적이다. 이 일이 주중 첫날에 있었다는 누가의 표현은, 명확한 일요일 준수에 대한 기록이라기보다는, 이 여행에서 묘사하고 있는 일련의 연대기적 전체 기록들과 조화를 잘 이룬다(참조 20:3, 6, 7, 15, 16; 21:1, 4, 5, 7, 8, 10, 15). 그러므로 이 절을 이해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이 모임이 일요일이어서가 아니라 바울이 “떠나고자 하여”(20:7) 사람들이 모였던 것이며, 누가는 유두고 사건 때문에 이 이야기를 포함시켰고, 이날이 “안식 후 첫날”이었다는 기록은 단순히 여행에 대한 바울의 연대기적 기록의 한 부분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 절을 초기 그리스도인의 일요일 준수에 대한 증거라 평가하는 것에 대해 저명한 교회사학자 아우구스투스 네안더(Augustus  Neand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성경절이 일요일 준수에 대하여 전적인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도가 떠날 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에 그 작은 교회가 형제애를 나누는 고별식사로 모였을 것이며, 그 경우 일요일을 특별히 기념할 일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차제에 사도가 마지막 기별을 전한 것이기 때문이다(The History of the Christian Religion and Church, tr. Henry John Rose, vol. 1, 337).
밤중까지. 그들은 야간 고별예배로 모였다. 그러나 교제의 기쁨과 바야흐로 사도가 그들을 떠난다는 사실이, 통상적인 시간보다 훨씬 오랫동안 강론을 계속하게 했다. 형제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바울이 떠나기 전 그들에게 베푸는 비공식 영적 잔치를 전적으로 즐기고 있었다. 

 

8. 등불을 많이. “등” 즉 기름으로 채워진 “남포등”(참조 마 25:1, 3 주석)은 분명히 두 가지 이유로 여기 언급되는데 (1) 열기와 연기로 밀폐된 방에서 그로 인한 유두고의 졸음을 설명하기 위해, (2) 그리스도인들의 저녁 모임에서 음란한 방종을 자행(恣行)했다는 비난에 대한 간접적인 대답을 제공하기 위해서이다(Tertullian Apology 8).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등불이 설교자 가까이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9. 유두고. “행운”을 의미한다. 이 이름은 벨릭스(Felix), 펠리치아(Felicia), 펠리치스무스(Fellicissmus), 브드나도(Fortunatus), 파우스투스(Faustus), 펠리치타스(Felicitas), 순두게(Syntyche) 등 유사한 뜻을 가진 이름들처럼 명각에 자주 나타나는데 특별히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자유민 가운데서는 보편적이었다.
청년. 헬라어 네아니아스(neanias). 엄격히 말하면 24세에서 40세 사이의 남자. 그러나 아마 여기서는 좀 더 융통성 있게 사용되었을 것이다(참조 12절 주석).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문자적으로 “졸음에 정복당하다.” 분명히 기름 등불의 열기와 연기로 인해 공기가 탁해졌으며 그 젊은이는 더 이상 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삼 층 누. 헬라어 트리스테고스(tristegos). “3층 지붕.” 오늘날로 말하면 “4층”에 해당할 것이다.
떡을 떼어 먹고. “그들은 만찬을 들었다”(사도행적, 391). 참조 행 2:42 주석; 마 26:26~30; 행 2:46; 고전 11:23~30. 이 성찬식은 계획된 행사였지만, 밤중까지 계속된 강론은 아마도 자연스레 이루어진 것 같다(참조 7절 주석). 
날이 새기까지. 그 위도에서 유월절 직후 일출은 아침 5시와 6시 사이였다.
이야기하고. 헬라어 표현상 일상 대화와 구별되는 친밀한 대화를 의미한다.

 

12. 살아난. 9절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가 실제적인 죽음을 가리키지 않았다면 이 단어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의사 누가는 죽은 사람의 생명의 회복에 대한 기적을 이야기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강조를 위해 부정어를 사용하고 있다. 즉 “크게 위로를 얻었더라.”

 

13. 우리는 앞서. 누가를 포함한 바울의 동료들은(참조 4절) 바울이 드로아에서 도보로 출발하기 전에, 먼저 배로 여행을 시작했다. 이 동료들이 그 저녁 모임에 참석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14. 미둘레네에 가서. 한때 카스트로(Castro)라 불렸던 그 도시는, 당시 레스보스 섬의 수도로 천연적인 위치와 빼어난 건물들로 인해 아름다웠다. 레스보스 섬은 둘레가 약 270킬로미터로 에게 해에 속한 섬 중 가장 크며, 지중해에서는 일곱 번째로 크다.

 

15. 기오 앞에. 또는 “맞은 편에.” 기오(Chios, Coos) 섬은 레스보스 섬과 사모 섬 사이에 위치해 있다. 미둘레네에서 기오 섬까지는 배로 하루가 걸렸다.
사모. 리디아 해안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섬으로, 기오 섬에서 배로 하룻길이었다(참조 416쪽 지도).
밀레도. 항구 도시(참조 416쪽 지도). 초기에 이곳은 그레데에서 온 이주민들이 거주하기 시작했고, 점차 활동적인 이주민의 중심지가 되면서 정치적, 상업적으로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이곳은 에베소에서 약 52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바울의 동료들은 앗소를 떠난 지 3일 후 이곳에 도착했다.


16.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즉 배에서 내리지 않고 지나갔다는 뜻이다. 오순절까지 예루살렘에 도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시간을 절약해야 하는 바울은, 에베소에 들림으로 많은 시간이 소비되는 것을 피하고자 했던 것 같다.
오순절. 참조 2:1 주석. 바울이 오순절까지 예루살렘에 가기를 왜 그렇게 원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아마도 당시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올라오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운집은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는 구제금을 나누어 주는 일에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또는 이전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 이 절기가 바울에게 특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그는 유월절까지 여행을 마치지 못했으며(20:6), 그가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음 절기 이전에 그곳에 도착하기를 원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 사도행전 연구 19-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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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9:21-41, 개정

[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 동안 더 있으니라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27]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31]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32]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34]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35]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37]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38]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내용 요약

  1. 에베소 전도 (1-20)

  2. 은장색 사건 (21-41)

 

배 경 

바울은 다시 5년 동안이나 걸린 제3차 전도여행을 떠난다. 이번에는 바로 에베소로 직행하여  3년을 유하면서 눈물로 전도한다. 

 

 데메드리오는 그의 연설에서 “우리의 이 영업”에“위험이 있”다고 말하였다. 이 말은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의 참 원인과 또한 사업을 수행하는 사도들을 따라다닌 대부분의 박해의 원인을 나타낸다. 데메드리오와 그의 동업자들은 복음의 가르침과 전파로 인하여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업이 위태롭게 된 것을 알았다. 이교의 사제들과 직공들의 수입이 위태롭게 되었다는 이유로 그들은 가장 신랄하게 바울을 대적하였다.(행적 295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가고 싶은 곳이 있나요? 왜 그곳에 가고 싶나요?

2. 남들이 다 하고 있기 때문에 생각 없이 따라하고 있는 것이 있나요?

3. 가장 이성을 잃어버리고 행동한 적은 언제인가요? 그렇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바울은 로마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의논하여 봅시다.(21)(주석참조)

   바울은 로마로 가고 싶은 것이었을까요? 명령(행1:8)에 대한 사명의 발언이었을까요?
    

2. 은장색사건의 전말은 무엇입니까?(21-41)

  * 이 소동이 일어나자 3년 동안의 에베소 전도는 끝나게 되었다. 은감실이란 에베소 사람들이 섬기는 아데미 신전의 작은 은제 모형을 말하며 은장색이란 은감실을 만드는 은 세공업자를 말한다.

3. 왜 사람들은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연극장에 가두었을까요?(29)
                                                                               

생각해봅시다.                                               

1. 바울이 에베소에서 취한 선교방법을 재차 확인하고, 에베소사회에 어떤 영적 영향력을 끼쳤는지 생각해봅시다. 
 

2. 옳지 않은 일로 선동하거나 선동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봅시다.

계속적인 반대의 폭풍우와 원수들의 부르짖음과 동지들의 저버림 가운데서 담대한 사도도 거의 낙심하였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를 돌아보고 새로운 열심을 가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전파하는 일에 전진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보다 먼저 밟으신 피묻은 길을 밟고 가는 데 불과하였다. 그는 구주의 발아래서 그의 갑옷을 벗을 때까지 싸움에서 물러나기를 구하지 아니하였다.(행적 297p)

 


21. 이 일이 다 된 후. 이 일이 있은 후 에베소의 많은 사람이 교회로 모여들었다. 놀라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 도시와 교회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었다. “믿는” 자들은 개혁을 경험했고, 악의 도구들이 극적으로 파괴되어 도시 전체의 주목을 끌었다. 이제 사업은 굳건히 섰고, 따라서 바울은 도시를 떠나도 되겠다고 느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여기서 한 결심의 배경을 보여 준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보낸 몇 년 동안 마게도냐와 아가야 교회들과 꽤 자주 소식을 왕래했는데, 그를 근심하게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편지가 현존하지 않지만,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그들 중에 거하는 편만한 음행의 죄를 경고하는(고전 5:9~11) 편지를 보낼 필요를 느꼈다. 글로에의 집 사람들이 분쟁 소식을 가져 왔고 심각한 무질서와 교회의 징계 부재, 심지어는 근친상간 문제(고전 1:11; 5:1; 11:18~22)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에는 바울의 직접적인 대처가 필요했다. 또한 그는 팔레스타인에 있는 가난한 유대인 그리스도인 신자들에게 보내는(참조 고전 16:1; 고후 8:1~4) 이방 교회들의 기부금을 전달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다시 방문하고자 했다.

로마도 보아야. 로마에 가고자 하는 그의 갈망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이다. 로마를 방문하려는 계획(참조 롬 1:13; 15:23)은, 그가 이방인을 위한 사도(22:21)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이런 갈망을 수년간 지니고 있었을 것임을 보여 준다. 제국의 수도에 가고자 한 그의 갈망은 다른 곳에서 알게 된 로마에 있는 많은 친구들(롬 16:1~15) 때문에 고조되었음이 분명하다. 바울에게는 자신이 제국의 큰 중심지에서 증거하기 전에는 그의 사역이 끝마쳐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소망이 여태껏 좌절되었다. 이제 그는 에베소를 떠나면서 로마뿐 아니라 서바나에도 꼭 가려 한다(롬 15:28)고 말했다.

에라스도. AD 1세기 중반 것으로 추정되는 도로 포장 벽돌이 고린도에서 발견되었는데, “에라스도는 조영관(造營官, aedile, 옛 로마의 공공 건물, 도로, 공중 위생 등을 관장하던 관리-역자 주)이 된 답례로 사비(私費)를 들여 [포장 도로]를 놓았다”라는 명각이 새겨져 있다.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 에라스도를 이 성경절에 언급된 사람과 동일하다고 본다(참조 롬 16:23 주석; 딤후 4:20).

아데미. (「제임스왕역」에는 “Diana”[다이애나]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헬라어 아르테미스(Artemis). 여기에서 「제임스왕역」 번역자들이 헬라어 본문에 나타나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에베소의 신과 어느 정도 동일시되는 로마의 여신 다이아나의 이름을 사용할 적절한 이유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초기 시대부터 원래 아시아의 종교인 아데미 숭배는 에베소가 중심지였다. 헬라인들이 소아시아에 식민단을 보냈을 때 이들이 이러한 종교의 형태가 이미 확립되어 있는 것을 알고 그 예배에서 발견한 어떤 유사성 때문에 아시아의 신에게 헬라의 여신 아데미의 이름을 부여했다.
수 세기 동안 에베소에서 우상숭배에 가해진 타격 중에 사실상 최초의 타격은, 바울이 이 도시에 거하는 동안 이루어졌다. 이상한 일이지만, 다음 타격은 미친 네로에 의하여 이루어졌는데, 그는 로마에 있는 자신의 황금집을 예술 작품으로 장식하기 위하여 헬라와 아시아에서 물건들을 강탈할 때 에베소의 신전에서 아데미를 탈취해 갔다. 후에 트라야누스는 멋지게 조각된 문들을, 나중에 콘스탄티노플로 개명된 비잔티움에 있는 한 신전에 선물로 보냈다.
그리스도교가 번성함에 따라 아데미 숭배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고, 오래지 않아 아데미의 은감실도 대개는 황폐화되었다. 고트족이 AD 262년경 소아시아를 유린하였을 때 그들은 이데미 신전을 약탈하였고 수세기 후에 터키족이 완전히 파괴했다. 제국이 기독교화되었을 때 델피 신전과 에베소 신전은, 거룩한 지혜의 신을 기념하여 유스티니아누스가 콘스탄티노플에 세운 성 소피아 교회를 위해 재료를 제공하였다. 터키족의 침략 이래로 교회는 회교의 사원으로 사용되었다. 그것이 지금은 박물관이 되었다. 에베소의 쇠퇴로 인하여 그 신전의 부지는 지난 세기까지 불확실하였다. 발굴이 이루어져 신전 부지는 드러났고 그것과 관련된 많은 명각이 빛을 보았다.

은감실(silver shrine). 헬라어 나오이(naoi, 단수는 나오스[naos], 참조 마 4:5 주석). 대개 “신전, 성전”(temple)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모든 경우에 신의 임재가 임한다고 여겨지는 내전(內殿)을 가리켰고, 따라서 여기서도 여신상이 있는 내전을 의미할 것이다. 은으로 만들어진 작은 (혹은 테라코타) 신전 형상(“은감실”) 안에 조그마한 여신상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이 모형들은 집안에 두거나 부적처럼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었다.  

벌이. 헬라어 에르가시아(ergasia). “일”, “사업” 또는 “사업으로 얻은 이익” 즉 이윤. 16:16, 19에서 이 단어는 빌립보의 주인들이 귀신 들려 점하는 소녀로 말미암아 얻은 “이익”을 가리키는 말로 두 번 사용되었다. 에베소 직공들은 그들의 이익이 사라지고 있었으므로 큰 소동을 일으켰다. 소동을 일으킨 자들 중 가장 사나웠던 데메드리오는 실제 작업은 하지 않고 사람을 많이 고용하여 수입 중 상당 부분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 아데미의 상(像)과 그것의 상징들은 은장색들에게 그 기예(技藝)를 사용할 풍부한 기회를 제공했을 것이다.

25. 모아. “은장색”으로 번역된 단어가 보여 주듯이, 데메드리오의 기술은 은감실을 조각하고 새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작업이 이런 최종 단계에 이르기 전에, 준비과정으로 재료는 많은 손을 거친 다음, 마지막으로 숙련된 기술자에게 가서 장식과 광택을 위한 마무리 손질이 이루어졌다. 이들 모두는 사업 손실의 위험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데메드리오의 연설에는 두려움의 빛이 역력하게 나타나지만, 그것은 10절에 언급된 바울의 성공적인 사역을 인정하고 있다. 이미 언급했듯이 그가 직접 가지는 않았지만 그의 편지들은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까지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버가모, 서머나,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부근에 있는 교회들이 요한계시록에 언급되었다. 복음이 이런저런 방법으로 소아시아라고 불리는 전 지역에 확산되었다. 플리니우스(Pliny)는 거의 반세기 후에 트라야누스(Trajan)에게 보낸 서신에서(Letters x. 96) 데메드리오와 유사한 표현을 사용한다. 그는, 신전은 “거의 버려졌고” 에베소 북동쪽 본도 지역에서 “단지 몇 사람만”이 희생제물을 구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27. 영업. 헬라어 메로스(meros). “부분”, “몫.” 즉 사업의 부문. 메로스는 25절에서 “업”으로 번역된 헬라어와는 다르다. 

가이오와 아리스다고. 군중이 바울을 찾다가 찾을 수 없게 되자 이 두 사람을 붙잡은 것 같다. 이 마게도냐 회심자들이 신자들 속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바울이 이전 여행 때 그 지방에서 한 봉사의 지속적인 결과를 증명한다. 사도행전의 기록이 간결하다는 점 때문에, 이렇게 뜻밖에 삽입된 이 부차적인 언급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가이오”(Gaius)는 흔한 라틴어 이름인 “카이우스”(Caius)에 해당한다(참조 행 20:4; 롬 16:23; 고전 1:14; 요 3:1).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에서 왔으며(20:4; 27:2) 그가 지금 겪고 있는 이런 고난(참조 살전 2:14)을 이미 경험했을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행길에 바울의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이며(20:4) 아마도 마게도냐 지방에 있는 교회들의 대표자 자격이었을 것이다. 그는 로마에서 바울과 함께 투옥되었을 것인데(골 4:10), 바울의 동료 죄수로서 아니면 바울의 필요를 돕기 위해 투옥되었을 것이다.
다. 이 단어에는, 원래 형태 그대로 숭배되었거나 가장 초기의 조각에 사용된 운석을 가리키는, 훨씬 문자적인 의미가 들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아데미 상(참조 24절 주석)을 가리키지 않을 수도 있는데, 고대 여러 작가들에 의하면 아데미 상은 금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돌이 아닌 감람나무, 흑단, 삼목, 혹은 포도나무 등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38. 송사할 것이 있거든. 즉 만약 누구든지 특정한 고소거리가 있거든 그것들을 가져오게  하라. 그들이 주장한 대로 송사할 것이 있다면 법적 조치를 위한 근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구리 장색과 그의 친구들이 꾸민 폭동에는 변명할 것이 없었다.

재판 날도 있고. 헬라어 단어들은 복수형태이다. 이 구절은 “재판 날들이 정해져 있고” 즉 그러한 송사를 취급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의미이거나, 더 나은 표현으로는 동사 시제가 법적 소송의 기회가 지금 열려 있음을 암시하므로 “재판들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개정표준역」에는 이 의미를 따라 “재판들이 열려 있다”라 고 번역되어 있다.

총독들. 헬라어 안쒸파토이(anthupatoi, 참조 13:7, 8, 12; 18:12). 아시아는 총독의 관할하에 있는 속주였다(참조 6:9 주석). 이 구절에 나타난 난제는 이 단어의 복수 형태를 사용한 데서 생긴다. 왜냐하면 일정 기간에 한 속주에 한 명의 총독이 있었고, 따라서 서기장이 말할 때 에베소에도 한 명의 총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몇 가지 해석이 있다. (1) 총독의 법무 보좌관들(콘실리아리이[consiliarii])을 “총독들”로 적절히 묘사했을 것이다. (2) 서기장은 문제가 있을 경우 사법 조치를 받을 수 있는 제국의 제도적 장치에 대해 백성들에게 상기시키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마치 “총독들은 제국의 제도적 장치이다. 우리 지역과 마찬가지로 모든 속주에 고위 행정관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물적 손해를 배상받는 것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3) 이 복수 칭호는 근자에 총독 실라누스(Silanus)가 독살된 후(Tacitus Annals xiii. 1), 아시아에서 제국의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첼레르(Celer)와 헬리우스(Helius)를 의미할 수 있다. (4) 이웃 속주 즉 길리기아, 구브로, 비두니아에서 온 다른 총독이 에베소에 있었을 수 있다. 네 가지 해석 중 두 번째가 가장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고소할 것이요. 헬라어 엥칼레오(egkaleo-). 데메드리오와 그의 추종자들은 피고를 고소하려는 것에 대해 공식적인 진술을 제시하고, 피고는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이렇게 쟁점이 결정되면 양측은 각각 증인을 내세워야 한다. 

39. 그 외에. 어떤 문제들은 재판을 위해 총독에게 보냈을 것이고, 다른 문제는 심의를 위해 민회로 보냈을 것이다.

41.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그는 자신의 직무상 권한으로 이렇게 할 수 있었다. 그의 마지막 주장이 청중에게 가장 비중있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들이 조금 전에 가담했던 이런 소요 사태가 로마제국에 보고된다면 자신들의 도시에 주어진 특권이 상실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서기장은 군중들을 진정시키고,  조용히 흩어져 집으로 돌아가도록 유도하였다. 

에베소에서의 전도-사도행전 연구19-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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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9:1-20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침례니라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침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내용 요약

  1. 에베소 전도 (1-20)
  2. 은장색 사건 (21-41)

배 경 

   바울은 다시 5년 동안이나 걸린 제3차 전도여행을 떠난다. 이번에는 바로 에베소로 직행하여  3년을 유하면서 눈물로 전도한다. 

 

 “사도시대에 소아시아 서부 지방은 로마의 아시아도로 알려졌다. 수도 에베소는 대상업 중심지였다. 그 항구는 선박으로 꽉찼고 그 거리에는 각 나라에서 온 백성들이 가득하였다.” (행적, 276)

 


바울은 에베소 전도에 그의 전력을 쏟았으며 그 영향은 소아시아 전체에 미쳤다. 아시아의 일곱교회도 이때에 세워진 것이다. 에베소에 머무는 동안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기록한다.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한 가지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집중하므로, 여러 가지 일에 득을 본 적이 있나요(一擧兩得)?

  2.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희생한 적이 있나요?

  3.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혹은 양육하면서 얻은 보람이 있다면?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침례요한의 침례만으로 부족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1-7)
        
  2. 바울이 에베소에 전도한 방법을 3단계로 이야기 해 봅시다.(8-10)
       또한 두란노에서 2년동안 머문 것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①                                                                                 
       ②                                                                                 
       ③                                                                                          
  3.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악귀를 쫓아내려고 했으나 도리어 위험을 당한 이유는 무엇일까요?(14-16)

  4.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은” 3가지 요소에 대하여 이야기해봅시다.(17-19)

                                                                                     

  생각해봅시다.                                                                 

  1. 바울이 에베소에서 행한 전도법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2. 내 삶 속에서 예수님와 가까워지면서 멀리하게 되는 것이 있나요?

  3. 말씀을 연구함으로 얻어지는 신앙적 성장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에베소 사람들은 마술책들을 불사름으로 저희가 한 때 좋아하였던 것을 이제 미워한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그들이 특별히 하나님께 범죄하고 그들의 특별히 하나님께 범죄하고 그들의 영혼을 위태롭게 한 것은 마술을 의존하였기 때문이었으며, 그와 같이 분개를 나타낸 것은 마술을 대적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참된 회개의 증거를 나타내었다.(행적 288p)

3. 요한의 침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 충분한 가르침을 받기 전에 아볼로나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어떤 사람이 베풀었을 것이다. 4절을 제외하면 이것이 신약에서 요한의 침례에 대한 마지막 언급이다.

4. 회개의 침례. 바울은, 요한이 가르친 것 즉 회개의 침례와 따라야 할 분을 믿는 믿음을 요약해서 말했으나, 이 에베소 사람들은 성령의 침례와 성령의 은사들에 대해 알지 못했으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대한 가르침도 부족하였다.

5. 저희가 듣고. 틀림없이 이 회심자들이 들은 것은, 예수가 메시야라는 단순한 진술이 아니라, 바울이 구약을 가지고 이것이 사실임을 입증하고 구약이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보여 주는 논증이었을 것이다. 여기 나타난 묘사는 간단하지만 그들의 회심이 갑작스러웠거나 충분한 가르침 없이 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름으로. “이름”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서는 3:16; 4:12 주석을 참조하라. 이것은 새롭고 핵심적인 진리를 받아들이고 재침례받은 사람들에 대한 일례다. 그러나 이것이 재침례를 자주 행하라는 보증은 아니다. 재침례는 아무렇게나 행해져서는 안 된다. 죄된 세상의 매일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경험하는 죄로부터의 정결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요일 1:9; 2:1, 2)로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며, 죄의 정결을 상징하는 세족 예식(요 13:4~10)으로 증거가 이루어진다. 그리스도 안에서 침례받은 사람에게 재침례는 단지 그리스도와의 교제에서 요구되는 신조와 기준에 명백한 배교가 있을 때 필요하다. 이러한 일반적인 규칙 외에 적용될 수 있는 예외는 여기에 묘사된 경우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푸는 침례는 구원의 계약 관계에 들어가는 서약으로, 영원하고 지속적인 경험을 의미한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사도행전에 기록된 침례를 받은 모든 사람이 공유한 경험이다. 이 경우 성령이 임한 것은, 완전히 아데미 여신에게 바쳐진 에베소를 온전히 그리스도께 바쳐진 곳으로 변화시켜 이 지역 전체가 향후 수 세기 동안 그리스도인 삶의 중심지가 되게 하기 위한 준비였다.
방언도 하고. 정확히 말해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고.” 이것은 오순절에 있었던 성령의 부어주심과 동일한 역사였다. 같은 절기에 예루살렘에서 이 은사가 제국의 모든 지역에서 모인 유대인에게 효력을 발휘했던 것처럼, 이제 이방인 활동의 중심지에 주어진 이 성령도 같은 결과를 낳음으로써 이러한 능력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 기별에 관심을 갖고 그리스도께 회심하는 자들이 더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에베소와 인근 지역에서 선교사로 일할 수 있는 자격과 소아시아로 나아가 복음을 선포할 자격도 갖추었다”(EGW RH Aug. 31, 1911).
예언도 하니. 정확히 말해 “예언하기 시작하니.” 이것은 구약의 예언 해석과 더 큰 설교의 능력을 소개함으로 더욱 확신 있게 복음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 사건에 대한 예언은 이 시점에서 그리스도의 사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이 단어가 반드시 미래 사건의 예언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8. 회당에 들어가. 사도 시대의 관습에 따라(참조 9:20 주석). 이런 방문들은 주로 안식일에 이루어졌음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먼저 바울은 안식일 준수자였고(참조 13:14; 16:13) 주중에는 노동을 했으며(행 18:3; 20:34; 살전 2:9; 살후 3:8), 유대인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데 안식일이 최상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 도를 비방하거늘. 즉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에베소에서도, 동료들이 데살로니가에서 한 것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그에게서 돌아서도록 함으로써 바울에 대한 그들의 증오를 나타냈을 것이다. 하류 계층의 백성들은 항상 폭동을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즉 회당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과 바울의 가르침에 관심을 보인 유대인들이 물러났다. 이것은 기록상 그리스도교 신자들 전체가 유대인 회당과 관계를 끊은 최초의 시기이다. 이렇게 뒤로 물러가는 과정은, 유대인과 교제하는 것이 불편할 뿐 아니라 어떤 지역에서는 위험하기까지 했던 유대 전쟁 기간 즉 AD 68~135년에 가속화되었을 것이다(참조 제10권, 92, 93).
두란노. (「제임스왕역」에는 “one Tyrannus”[두란노라 이름하는 한 사람]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는 두란노가 어떤 유명한 사람이었음을 암시하는 단어 “one”의 생략을 지지한다. 이 사람에 관해 확실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아마도 철학이나 수사학 교사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혀 회심하지 않은 완전한 이교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이교도였다면 어떤 집단에서는 조롱거리였던 이 새로운 신앙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자신의 교실을 사용하도록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참조 17:32).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곳이 유대 청중이 쉽게 모일 수 있었던 유대인 학교 베트-함미드라쉬(Bet-Hammidras∨)였다고 생각한다. 청중의 얼마는 유대인이었고 얼마는 헬라인이었음이 분명하다. 에베소에는 그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그런 “학교”를 운영하기에 충분한 수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고, 따라서 그러한 학교의 지도자가 유대인 이름에 이방인 이름을 추가하여 사용하기가 매우 쉬웠을 것이다. 따라서 두란노는 유대인이었을 것이다.
서원. 헬라어 스콜레(schole-). 이 단어의 유래는 흥미롭다. 처음에는 단순히 “여가”를 의미했다가, 후에 학문적인 논쟁이나 연구를 위해 주어진 여가에 적용되었다. 그런 후에 여기서처럼 학습이 이루어지는 어떤 장소를 의미하게 되었다. 마침내 “제논 학파”라는 말처럼, 특별한 선생을 따르는 자들을 가리키는 집합적 용어가 되었다. 이 성경절에서는 개인 소유주가 사도에게 임대해 준 강의실을 가리킬 것이다. 
날마다. 바울은 분명히 매 안식일, 어쩌면 더 자주 에베소의 회당에 갔을 것이지만, 석 달 동안 얼마나 자주 거기서 가르쳤는지는 알 수 없다. 이제 그는 적어도 매일 일정 시간을 바쳐 집중적인 공중전도 과정을 시작했을 것이다. 아마 그는 생계를 위해서도 계속 일했을 것이다(참조 8절 주석). 
강론하여. “날마다 두란노라는 학교에서 제5시부터 제10시까지 강론하여”라는 또 다른 독법을 지지하는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를 제시할 수도 있다. 이 독법이 원문으로 취급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이 독법이 원문이라면, 동방 지역에서는 제5시부터 제10시(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경)까지가 낮잠 자는 시간(siesta)이었기 때문에 바울이 두란노 서원이 사용되지 않는 “휴식 시간”에 이 건물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아시아에 사는 자. “아시아”에 대해서는 2:9 주석을 참조하라. 분명히 에베소는 바울 사역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바울은 분명히 거기서 주위 성읍들을 방문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교회들(2, 3장)의 기원이 바울에게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바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진술(골 2:1; 참조 행 18:23 주석)이 그러한 가능성을 제한한다. 유대인과 헬라인으로 구성된 에베소에 있는 새로운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성장은 괄목할 만했다. 아데미에게 바치는 예물과 아데미 신 기념품 판매는 현저히 감소했다. 누가는, 바울이 끌어들인 청중들이 에베소에 사는 거주자뿐 아니라 그 도시를 방문한 사람들로 이루어졌고, 설교자 바울의 소문과 그의 기별을 지역의 구석구석에 전달했음을 시사한다. 골로새의 빌레몬도 이 기간에 얻은 바울의 회심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참조 몬 19절).

13.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 즉 “유랑하는 유대인 마술사들”(「개정표준역」). 사기꾼들이 이익을 얻으려고 바울과 예수의 이름을 사칭하며 돌아다녔다. 이 유대인들은 마력과 주문(참조 8:9; 13:6 주석)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공언하였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솔로몬이 지닌 것으로 생각되는 악마에 대항하는 묘기과 귀신 물리기를 사용한 것에 대해 기록하면서, “이런 종류의 치료는 오늘날까지도 우리 중에서 매우 큰 세력을 미치고 있다”(Antiquities viii. 2. 5 [46]; Loeb ed., vol. 5, 595)라고 덧붙였다. 

 

14. 유대의 한 제사장. 혹은 “유대인의 한 우두머리 제사장.” 이 표현은 이 사람이 제사장들을 나눈 24반차(참조 마 2:4; 눅 3:2 주석) 중 한 반차의 우두머리였음을 암시한다. 이 사람은 어떤 이유로 그의 지위를 잃은 후 에베소에 왔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대제사장이라 칭했고, 따라서 누가도 그렇게 묘사한다.
너희는 누구냐. 문자적으로 “그러면 너희, 너희는 누구냐.” 이 귀신 들린 사람은 이와 같이 자신을 악귀와 동일시했다(참고 막 5:7~12). 그는 바울 같은 사람이 예수의 이름을 말할 때는 두려워했으나 사기꾼들의 행위에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16.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제임스왕역」에는 단순히 “그들을 억제하여”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는 “그들 중 두 사람을 억제하여 이기니”라는 독법을 증거한다. 이 독법은 일곱 아들 중 둘만 이 사건에 관련이 있음을 입증한다. 그러나 여기서 “두 사람”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가 “모두”(셋 이상)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파피루스의 증거가 있다.
여기서 귀신 들림은 가다라에서와 같이(참조 마 8:28) 귀신 들린 사람에게 정상적인 힘 이상을 발휘하게 했다. 사기꾼들은 이 남자의 악마적인 분노에 놀라 도망쳤다.
벗은 몸으로. 귀신 들린 사람이 찢은 겉옷 또는 외투를 버려 두고 짧은 속옷(참조 마 5:40 주석)만 입고 도망친 사실 그 이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기록은 여기서 끝난다. 만약 기자가 이 일을 더 놀라운 일로 조작하려 했다면, 스게와의 아들들이 실패한 후에 바울이 손수 그 사람을 고쳤다고 말하여 이야기를 절정으로 발전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의 기록은 사실에 입각했다.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이 동사의 시제는 계속적으로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이야기는 귀신 쫓는 사람들이 사용한 공식 문구 가운데서 예수의 이름이 어떤 이름보다 두드러졌음을 보여 준다. 또한 이름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믿음 없이 함부로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분명히 위험한 일이었다. 에베소 사람들은 예수의 이름을 오용하여 벌받은 사람들을 보고 전보다 더 그 이름을 높였다.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믿는다”는 동사는 2절에서처럼 침례를 포함한(참조 3절) 회심의 전 과정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 신자들은 신앙고백을 했으나 그것은 불완전한 경험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했는데, 아마도 침례 후에 빠졌던 마술적인 일과 관련된 몇몇 경우에 저지른 잘못일 것이다. 성령의 감화 아래 교회는 철저히 마음을 살피는 경험을 했다. 이 고백이 개인적으로 바울이나 다른 선생들 앞에서 행해졌는지 아니면 공적으로 회중 앞에서 행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침례자 요한에게 고백한 경우와 마찬가지로(참조 마 3:6 주석), 공중 앞에서 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들은 악한 자가 예수의 이름을 오용하여 어떤 일을 행할 수 있는지 보았고, 따라서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면서 그 이름을 잘못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염려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모두의 심판자로서 대면해야 할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양심은 일깨워져 열정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죄를 고백하였고, 그렇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용서와 중보의 은혜로운 준비 아래 들어오게 되었다(요일 1:9; 2:1; 참조 사도행적, 288).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주문과 진언이 기록된 문서들 곧 “에베소 문서들”과 이 “비술”(秘術)에 관한 논문으로 발행된 책들을 모아 가지고 왔음을 의미할 것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러한 “문서” 가운데 어떤 것들은 매우 오래되어, 모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문서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부적들도 가져왔을 것이다.
은 오만. 많은 사람이 가치 있게 여긴 책들을 불태우는 이런 극적인 일이 헬라인 가운데서 발생한 점으로 볼 때 누가가 헬라의 드라크마를 “은”으로 계산했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여기 언급된 은 50,000은 10,000달러가 넘는 금액이 될 것이다. 그러나 드라크마가 당시 하루 품삯에 해당했기 때문에 당시 통화 가치로 본다면, 달러로 환산된 이 수치보다 훨씬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어떤 책들은 판매했다면 분명히 고가를 받았을 것이었다(참조 제10권, 54). 

 

20.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힘이 있어”라는 단어는 “어떤 것도 저항할 수 없는 넘치는 기세와 힘을 가지고”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귀향 및 3차 전도여행의 시작-사도행전 연구18-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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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28

[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침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내용 요약

  1. 귀향 및 3차 전도여행의 시작 (18-28)


배 경 

바울은 일찍이 서원한 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고, 에베소에 오래 있지 않고 가이사랴를 거쳐 안디옥으로 내려갑니다. 아볼로가 에베소에서 예수님의 도를 전하는데 그가 요한의 침례만 알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에게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릅니다.


고전 3:4-7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어떤 결심을 위해 머리에 변화를 준 경험이 있나요? 혹은 주위에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2. 보살핌이나 가르침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 상대가 더 성장한 일이 있나요?

  3. 나를 부지런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바울이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깍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18:18) *서원에 관한 주석참조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끝내며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습니다. 이방인의 사도인 그가 서원 의식을 치른 이유는, 유대인들의 반대가 거세지는 가운데 그들 앞에서 자신의 경건함을 입증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이는 유대인들을 잃지 않으려는 바울의 결의를 보여 주기도 합니다. 바울은 여행을 마치며 서원 의식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결단합니다.

  2. 바울은 안디옥에 복귀 후 얼마 있다가 바로 3차 여행을 떠납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어떤 면을 볼 수 있나요?(18:23)   
                                                                                    
  3. 아볼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18:24-28) 아볼로와 아굴라부부의 태도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입니까?
                                                                                     

생각해봅시다.                                                                 

  1.  우리의 영적 제자들을 굳건히 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2.   2. 내 일상은 하루, 한주, 한달, 무엇을 향해 가고 있나요?

한 목사가 그리스도교의 모든 요구대로 교회를 완성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자격을 소유하기란 드물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각각 다른 이들에게는 없는 어떤 자질들을 가진 다른 목사들을 종종 그들에게 보내신다.(행적 278p)

18. 수리아로. 여행 동기는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1) 후에도 그런 것처럼(참조 20:3, 4 주석) 그는 분명히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참조 롬 15:25, 26; 갈 2:10)을 위해 거둔 선물을 몸소 전달하고자 했다. 바울이 다른 여러 지역에서보다 에베소에서 유대인들에게 그의 설교가 잘 받아들여졌는데도 에베소에 머물기를 거절한 점으로 보아, 예루살렘에 돌아가기로 결심하자 되도록 빨리 거기에 이르고 싶었음이 분명하다. (2) 그가 근자에 한 서약 때문에 성전을 방문해야 했다. (3) 그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특별히 상당히 먼 지역인 마게도냐와 아가야에서 한 사역의 결과를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참조 15:4).

서원. 개인적인 서원으로, 민 6:1~21에 묘사된 한시적인 나실인 서원의 수정된 형태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실인의 서원은 세상과 일상적인 삶에서 구별될 것을 요구했다(“나실인”이라는 단어는 “구별된” 또는 “성별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서원 기간에 나실인은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야 했으며, 머리나 수염도 깎을 수 없었다. 서원 기간을 마칠 때는 성전에서 머리를 깎고 희생제물 밑에 있는 제단 불로 태워야 했다. 21:24에 언급된 나실인들은 서원을 마친 후에 머리를 잘랐다. 예루살렘에서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머리를 짧게 잘라, 자른 머리털을 성전에 가져와 남은 머리카락을 자를 때 바치도록 허락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바울이 수리아로 가는 항해에 오르기 전 겐그레아에서 행한 일이다. 고전 11:14에 비춰볼 때, 바울은 남자들의 긴 머리를 남성답지 못한 것으로 여겼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실인의 서원을 하면 반드시 머리를 길러야 한다. 따라서 그는 서원을 따랐으나 수정된 형태를 따랐고, 서원 기간이 겐그레아에 도착하기 전에 끝나지 않았다면 여행 전에 머리를 자른 것은 그의 용모와 당시 관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원을 하게 한 주된 요인은 종종 두려움이 뒤따르는 위험에서 구원받은 데 대한 깊은 감사였다. 두려움, 약속 그리고 구원은 고린도에서 있었던 바울의 사역 기록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복음 선포 계획에 헌신하려는 서원은 자연스런 결과로 뒤따를 것이었다. 바울은 경건한 감정의 표현들을 경멸하거나 정죄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유대인의 다른 몇몇 관행에 대해서도 그랬듯이 그것들을 율법적인 행위로 여기지 않은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바울은 “여러 사람에게…여러 모양이 된”다(고전 9:22)는 원칙을 적용하고 있었으므로,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에게 동정심(20절)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나실인 서원은, 바울 자신도 율법을 멸시하지 않고 다른 유대인에게도 그렇게 하지 말도록(참조 행 21:21~24 주석) 가르치고 있음을 증거할 것이었다. 

회당에 들어가서. 바울의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비록 그들에게서 끊임없이 어려움을 당했지만 그는 결코 동족을 포기하지 않았고, 여기서도 도착하자마자 그들을 다시 찾았다. 그러나 에베소의 유대인들이 그에게 좀 더 머물러 있기를 간청(20절)한 것으로 보아, 여기서는 그의 설교가 그렇게 적대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에베소 사람들의 국제적인 특성이 바울에게 다른 태도를 나타내도록 했을 것이다.

22. 가이사랴에서. 상당히 많은 활동이 이 성경절 안에 포함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가이사랴에서 그는 틀림없이 전도자 빌립과의 관계를 새롭게 했을 것이다. 그 후 가이사랴에 있는 빌립의 집에 손님으로 머물렀다(21:8).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즉 “교회에 인사한 후에.” 그가 당시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과 활동의 중심지를 방문했다는 간략한 기록이다. 이는 바울의 회심 후 네 번째 예루살렘 방문이다(참조 9:26; 11:30; 15:4; 21:17). 14:27에서와 같이 교회가 모였다거나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 성취한 것을 보고했다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 도시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고 바울이 서원을 마쳤다는 말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냉대받았고, 이방 그리스도인과 관련하여 율법에 대한 입장 때문에 율법에 본래 열심이었던 예루살렘 그리스도인들과 관계가 나빠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바울은 마음이 맞는 안디옥에 있는 교인들에게로 서둘러 갔다.

안디옥으로. AD 52년경, 바울이 안디옥으로 돌아오고 2차 선교여행이 끝난다(참조 102).
떠나. 안디옥은 앞선 두 번의 여행(13:1~3; 15:36~40)과 마찬가지로 3차 선교여행의 출발지이다.
굳게 하니라. 바울은 새 교회들을 세운 복음 전도자일 뿐 아니라 그 교회들의 지속적인 안녕을 위해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목양자였다. 1차 선교여행 중에 세운 교회들 중 몇 교회를 이번에 방문한 것은 네 번째다(참조 13:51; 14:6, 21; 16:1, 6).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문자적으로 “알렉산드리아 태생.” 구약 「70인역」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인들이 번역했다. 알렉산드리아는 고대의 가장 큰 도서관들 중 하나가 있던 학문의 중심지였다. 철학자 필론은 그곳의 유대인들 사이에 뛰어난 지적 지도자였다. 그가 AD 50년경까지 살았으므로 아볼로는 그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학문이 많고. (「제임스왕역」에는 “eloquent”[구변에 능한]이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헬라어 로기오스(logios). “학식 있는”, “구변에 능한.” 한 가지 의미만으로는 온전한 뜻을 전달할 수 없다. 그는 학식이 있을 뿐 아니라 그 학식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배워. 헬라어 카테케오(kate-cheo-). “소리내어 읽어주다.” 확대하면 “구두(口頭)로 가르치다”라는 뜻이다. “catechize”(문답식으로 가르치다)라는 영어가 파생된 이 단어는, 아볼로가 스스로 구약을 공부한 것 외에 누군가에게서 배웠음을 암시한다. 우리는 요세푸스(Antiquities xviii. 5. 2)를 통해 요한의 가르침과 침례가 유대인에게 큰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에 관한 침례자 요한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유대인들이 예루살렘과 에베소에 나타났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 가르침은 간결했을 것이다. 그들은 요한이 다가오는 왕국을 위해 준비시키려고 침례를 주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가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가리킨 것과 예수가 침례받을 때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이러한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목베임당했고, 예수는 갈바리에서 죽음을 당했다. 요한의 제자들은 대부분 그리스도의 기별과 관련하여 후에 일어난 일들 즉 교회의 설립, 그리스도교 침례와 주의 만찬 예식, 성령의 부어주심, 회개에 뒤따르는 회심에 관한 가르침, 믿음을 통해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일 등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침례자 요한 자신도 어느 날 사람을 보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마 11:3)라고 주에게 물은 것으로 보아, 예수께서 이러한 일들과 관련하여 제시하고 있던 것을 단지 어렴풋하게 이해했을 뿐이다.  
예수에 관한 것. (「제임스왕역」에는 “things of the Lord”[주에 관한 것]이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위에 언급된 “주의 도”라는 표현은 구약 용어(사 40:3)의 번역으로, 요한의 설교와 관련하여 복음서 기자들이 인용했다(마 3:3; 막 1:3; 눅 3:4; 요 1:23). 
아볼로는 스스로 구약을 연구하여 알게 된 것 곧 천국의 도래에 관하여 요한이 설교했던 내용을 매우 정확하게 선포했을 것이다. 그는 요한이 어떻게 예수를 가리켰는지 나타내 보였을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사업과 말씀의 많은 부분을, 유대인에게 오랫동안 있었던 선지자들보다 더 위대한 선지자들을 하나님이 보내고 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생애 자체가 구속이 가깝다는 증언이라는 증거로 제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볼로의 스승이 누구였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한 침례자 요한의 기별 이상으로 제자들을 끌고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볼로에게 침례자 요한은 분명 옛 종교의 독특한 특성들을 유지하고 있는 영광스러운 유대교 지도자였을 것이다. 분명히 그는 아직 “할례받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고전 7:19) 것을 배우지 못했으며 제사 제도가 “없어져 가는 것”(히 8:13)임을 깨닫지 못했다.
요한의 침례. 침례는 종교적인 지식과 경험을 위한 입문이라는 개념이 “침례”에 포함되어야 한다. 요한의 침례라는 표현은 매우 흥미로우며, 그리스도의 전주자(前走者)로서 침례자 요한의 사역이 복음서에서 가리키는 것보다 훨씬 멀리 미쳤음을 보여 준다. 알렉산드리아까지 미쳤던 것이 분명하다. 이 “침례”의 한계에 대해서는 위의 “배워”에 관한 주석을 참조하라.

26. 담대히 말하기를. 유대인들이 메시야가 오신다는 기별을 듣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담대함이 필요했다. 전도자는 유대인들이 여러 번 기만자들에게 미혹당한 이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용기뿐 아니라 학식과 능변을 갖춰야 했다.

27. 아가야. 아가야의 수도인 고린도로 갔을 것이다. 행 19:1과 아볼로를 언급한 고전 1:12은 이것이 확실함을 알려 준다. 훈련, 타고난 능력, 최근의 교육과 경험으로 아볼로는 고린도에서 바울이 아덴에서 했던 것과 유사한 일을 할 수 있었다. 아볼로의 사도적 권위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고린도인 중 어떤 사람들은 그를 바울과 동일하게(고전 1:12) 여겼다. 이런 일로 교회에는 강한 분파적 감정이 발생하였고, 바울은 그것을 책망했다(고전 3:3~17). 아볼로가 이런 일을 일으켰다고 생각할 만한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가 심은 것(고전 3:6)에 아볼로가 물을 주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아볼로는 교회에 파당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고린도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전 16:12).

형제들이…편지하여. 천거서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위하여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보낸 “천거의 편지들”(참조 고후 3:1 주석; 롬 16:1, 2; 골 4:10)로 알려진 것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이것은 당시 “신임장”이었다. 에베소 교회에서 아볼로에게 기꺼이 그런 편지를 써주었다는 사실은 그가 그곳에 있는 동안 좋은 인상을 남겼다는 것을 보여 준다.

유력하게…이김일러라. 헬라어 디아카텔레코마이(diakatelechomai). “완전히 설복시키다”, “완전히 확신시키다.” 아볼로는 유대인들의 반대 이론을 성경으로 검증하여 그들을 설복시켰다. 아볼로는, 바울이 유대인들을 설득할 때 사용했던 그 결론으로 그들을 유도했다. 그의 방법은 바울의 방법과 달랐을 것인데, 차이는 성격에 있었다. 이 새로운 설교자는 그의 사역을 통해 자연스럽게 많은 추종자들을 얻었고, 바울이 노고로 얻은 것보다 수적으로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아볼로의 이름이 사도행전에 다시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그의 후기 역사로 알려진 것을 여기서 다루어야겠다. 그의 이름이 고린도에서 한 분파의 슬로건으로 사용될 정도였지만,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 사이의 교리적인 차이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아굴라, 브리스길라와 가까이 교제하고 있었던 점으로 보아, 불화가 없었던 것 같다. 고전 16:12에 비춰볼 때, 아볼로가 결국 고린도 교회의 천거서를 가지고(고후 3:1) 에베소로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아볼로가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고전 16:12, 17)와 함께 다시 고린도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에 나타난 대로 그를 신임했다. 이후로 아볼로는 바울의 사역이 마칠 때까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동안 그는 에베소와 고린도에서처럼 열정적으로 복음사역을 했을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이 마쳐갈 때(약 AD 67년) 아볼로를 언급한다(딛 3:13). 그는 교법사 세나와 함께 있었는데, 세나는 아볼로처럼 유대법이든 로마법이든 법에 조예가 깊어(참조 마 22:35 주석; 제10권, 62) 확고한 명성을 얻었다. 바울이 가능한 모든 도움을 아볼로에게 주라고 디도에게 요청한 점으로 보아, 아볼로에 대한 바울의 마음은 분명히 사려 깊은 관심으로 이어졌다. 아볼로는 그레데에서 일해 왔고, 그의 주위에는 별도의 제자들의 무리가 모여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바울은 자신과 교제했던 자들과 그들을 구분한다(딛 3:13, 14).

고린도 전도-사도행전 연구 18-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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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8:1-17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내용 요약

  1. 고린도에서 전도함 (1-11)
  2. 유대인들의 소동 (12-17)

배 경 

   바울은 드디어 고린도에 온다. 아테네가 학문과 예술의 고도라면 고린도는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였다. “서력기원 첫 세기 동안에 고린도는 헬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중요한 도시중의 하나이었다. 헬라인과 유대인과 로마인들은 각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과 함께 그 거리에 모여들어 상업과 향락에 몰두하였다. 로마제국의 각 지방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한 대 상업 중심지인 이곳은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를 위하여 기념물을 세워야 할 중요한 장소이었다.”(행적, 240)

 

  부주의하고 무관심한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자 노력함에 있어서, 고린도에서는 다른 활동계획을 따르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고린도인들 중에서는 정교한 논쟁이나 토론을 피하고,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그들에게 전도하고자 하였다.(행적 244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최근 가장 몰두하면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왜 그렇게 열심히 몰두하나요?

  2. 심한 감기로 앓은 적이 있나요? 어느 정도로 심한 감기였나요? 

  3.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심한 부담감을 느낀 경험이 있나요? 그 경험을 나누어보아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바울이 아굴라와 가깝게 된 계기를 설명해 보세요.(18:1-3)
    고린도에서 바울의 직업은 무엇이었습니까? (18:3)

  2. 바울은 고린도에 얼마나 머물렀나요?(18:11) 
                                                                                    
  3.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상태는 어떤 상태라고 생각됩니까? (18:5)
       ①                                                                                 
       ②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다. 이 붙잡히는 단어가 “쉬네코”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마 4: 24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눅 4: 38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붙들인지라

  4.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전한다.”라는 것은 그 당시 사람에게 어떤 일이었나요?(고전1:23-24)
    하나님께서 어떻게 바울을 위로해 주십니까?(18:9-10)         
                                                                                     

생각해봅시다.                                                                 

  1.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나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생각해 봅시다.

  2.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로서, 나는 어떤 상태인가요?
인간이란 도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 안에 감추어지고, 그리스도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난 분, 아주 사랑스러운 분으로 드러나신다.(행적 274p)

글라우디오가…명하여. 수에토니우스는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한 일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유대인이 크레스투스(Chrestus)의 사주를 받아 끊임없이 분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글라우디오]가 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였다”(Lives of the Caesars v. 25. 4; Loeb ed., Suetonius, vol. 2, 53). 당시 상당히 큰 유대인 거류지가 로마 도성 안의 야니쿨룸(Janiculum) 언덕 기슭에 있었다(참조 542쪽 지도). 그들은 로마 상류계급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자신들의 회당과 기도 장소(참조 16:13 주석)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렐리기오 리치타(religio licita, 법적으로 인정된 종교)로 관대히 다루어졌고, 압비아 가도(Appian Way)를 따라 놓여 있는 그들 소유의 공동묘지가 있었다. 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라는 명령은 갑작스러웠던 것으로 보이는데, 수에토니우스는 라틴어로 “크레스투스”(Chrestus)라고 불리는 사람이 이 명령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수에토니우스는 이 사람에 관하여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 헬라어 “i”(이)와 “e”(에)의 발음은 거의 구별되지 않았고, 테르툴리아누스(Apology iii. 5)는, 헬라어 이름 크리스토스(Christos)가 종종 “좋은”, “유용한” 또는 “친절한”을 의미하는 크레스토스(Chre-stos)와 같게 발음되었다고 말한다. 글라우디오의 포고령에 대한 가능한 설명은 오순절 후에 그리스도인들이 로마로 왔고, 비시디아 안디옥(13:50), 루스드라(14:19), 데살로니가(17:5~8) 그리고 베뢰아(17:13)에서와 같은 소동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은 메시야라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자나 거절한 자 모두의 입에 오르내렸다. 따라서 언어와 명칭(18:15)에 관한 문제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갈리오와 같은 로마 행정관들은 쉽게 그리스도를 여러 당파 중 하나의 지도자로 생각했을 것이고, 지상의 왕권을 주장한 자로 추측했을 것이다(17:7의 데살로니가에서처럼). 이 설명은 소동, 명칭의 혼란 그리고 추방령이 왜 일어났는지 밝혀 줄 것이다(참조 제10권, 80, 81).  
아굴라와 그의 부인은 추방될 때까지 로마에 있었으며, 로마에 있는 다수의 유대인 또는 그들의 후손이 자유민(참조 6:9 주석)이었던 점으로 보아, 아굴라나 그의 부모도 그 계층에 속했을 가능성이 있다. 후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로마로 돌아간 것으로 언급되었는데(롬 16:3), 그랬다면 바울과 함께 에베소에 있었던 이후에 돌아갔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울이 거기서 고린도전서를 쓸 때 함께 있었고(고전 16:19), 그들이 살던 집은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예배 장소로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두 번째 편지를 보낼 때 디모데가 에베소에 있었다면 그들도 그 도시에 있었다(딤후 4:19). 그들의 움직임에 대하여 더 이상 알려진 것은 없다.
로마에서 누가 새로운 신앙을 처음으로 전했는지 다음 자료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1) 팔레스타인에서 복음이 괄목할 만큼 성공적으로 전파되고 있었는데 로마의 유대인들이 그것에 대해 어떤 확실한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오순절 이후 25년이 지나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2) 오순절에 참석했던 사람들 중에는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2:10)이 있었다. (3) 스데반과 변론했던 헬라파 유대인 중에는 로마의 자유인들이 있었으며 스데반 자신이 그 계층에 속했을 수도 있다(참조 6:5, 9 주석). (4) 바울이 문안한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그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롬 16:7). 따라서 전승이 공로가 있다고 말하는 사도 베드로가 아니라, 이들 가운데서 로마 교회 설립자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신학이 바울에게 영향을 미친 스데반에 의해 구축된 위대한 원칙들과 같은 것임을 가리킨다. 이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어떻게 그토록 쉽게 고린도에서 바울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도 설명해 줄 것이다. 바울이 롬 16:3~15에서 이름을 열거한 많은 사람이 글라우디오 당시 로마에서 추방당했고, 후에 되돌아갔다. 

장막을 만드는 것. 장막을 만드는 일은 바울이 고향 다소에서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일이었다. 다소는 당시와 그 후에도 범포(帆布)와 장막 제작에 다량 요구되는 염소 털 직물로 유명했고, 로마인에게는 킬리키움(cilicium)이라는 로마 속주의 이름을 통해 알려졌다. 아굴라의 출생지인 로마의 속주인 본도 역시 같은 제품으로 유명했는데, 이 제품의 재료는 타우루스(Taurus) 산지의 비탈과 주위 방목지에서 길러진 염소들에 의해 공급되었다. 부유했음직한 바울의 배경과 그가 고등 교육을 받았다는 암시는 그가 일을 배워야했다는 사실과 무관하다. “아들에게 직업을 가르치지 않는 자는 그가 도둑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라는 랍비의 격언은 히브리 가정에서 거의 보편적인 가르침이었기 때문이다. 예로, 저명한 힐렐도 목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처럼 고린도에서도 생계를 위하여 일할 준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그리하여 개인의 이익을 위해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비난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고전 9:15~19; 고후 11:7~13; 살전 2:9). 그는 고린도에서 임금을 위해 일하는 기술자 또는 유대인의 일터에서 일꾼으로 시작했고, 아직 일개 유대인 이상의 존재로는 고린도 도시에 알려지지는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제임스왕역」에는 “pressed in the spirit”[심령의 강권을 받아]).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는 “그가 말씀[또는 “기별”]에 붙잡혀[또는 “강권을 받아”]”라는 독법을 증거한다. 「개정표준역」에는 조금 약한 어조로 바울은 “말씀을 전하는 데 사로잡혀”라고 되어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기에 그것을 말해야 할 충동을 느꼈다(참조 시 39:3). 실라와 디모데의 도착과 설교하고자 하는 바울의 충동에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물론 그들이 가지고 왔을지도 모르는 선물들 때문에 바울이 한동안 말씀을 전하는 데 전념하도록 도움을 주었다고 볼 수는 있지만, 그의 생업을 게으르게 했다는 암시는 없으며 고전 9장도 이런 생각과 배치된다. 그는 이미 말씀을 전할 충동에 사로잡혀 있었고, 따라서 실라와 디모데에게 들은 고무적인 소식으로 그 충동이 강화되었을 뿐이다.예수는 그리스도라…증거하니. 예수가 유대인들이 알아야 했던 고난당하는 메시야 곧 구주이자 진리 자체임을 강조한다.
피. 그는 비유적인 언어를 써서 “피”라는 단어를 “파멸”의 의미로 사용한다(참조 수 2:19). 여기에 표현된 사상과 형태는 본질적으로 히브리식이다(참조 마 27:25 주석). 자신의 책임을 파수꾼으로 정의한 에스겔의 표현과 비교하라(겔 3:18, 19).
두려워하지 말며. 이 말은 이때 바울이 어떤 두려움과 낙담에 빠져 있었으며 주를 위하여 시도하던 일에 무거운 부담을 느꼈음을 의미한다. 회심자 대부분은 노예나 자유민 계층이었으며 바울과 유사한 문화 배경을 가진 헬라인이나 유대인들은 그의 전도를 받아들이는 데 더뎌 보였다(참고 고전 1:26, 27). 분명히 그는 또한 개인적으로 육체적인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는 이미 욕설을 퍼붓는 유대인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았다. 이런 일은 쉽게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주님은 인자하게 “두려워 말라”는 말씀으로 권고하였다.

잠잠하지 말고. 말씀에 열매가 없는 것처럼 보여 마음이 약해진 순간 침묵 속에 안주하려는 유혹을 받았으나, 전보다 더 줄기차게 복음을 전하라는 권고가 왔다. 어떤 것도 바울의 증언을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 엘리야가 이와 유사한 낙담의 위기를 겪었고(왕상 19:4~14), 예레미야도 두 번 이상 이런 일을 경험하였다(렘 1:6~8; 15:15~21).
말하라. 즉 “말을 계속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원문에서 “내”가 강조된다. 예수가 준 명령에 뒤이어 그 순간 바울의 필요에 부응하는 약속이 뒤따랐다. 사람들은 그를 반대했으나 그리스도는 그와 함께 있었다. 교회 전체에게 주어졌던 “볼지어다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 28:20)는 약속은, 여기서 바울에게 개인적으로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반복되었다. 이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고통의 삶을 의미했지만 사람의 악한 계획이 제어되고 바울의 사역이 영구히 방해받지 않으리라는 보증이 함께 있었다.

해롭게 할. “너를 해할”, “학대할.” 그리스도는 바울에게 공격에서 벗어날 것을 약속하지 않았다. 다만 적이 그에게 폭력을 행사하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바울에게 이 보증은 수 세기 전 엘리야가 경험하고 선포한 대로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음을(왕하 6:16) 의미했다. 
백성이 많음이라. 엘리야가 약할 때,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겼도다”(왕상 19:18)라고 들려준 말을 생각나게 한다. 고린도의 죄악들(고전 5:10, 11)에 깊이 얽혀 있는 사람 중에도 구원을 사모하고 회개의 초청을 기다리는 정직한 영혼들이 있었다. 이 초청은 반드시 바울과 동역자들이 해야 한다.
당시 고린도는 상업 활동의 요긴한 중심지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말해서 처음부터 교회는 좋은 평판을 갖는 것이 절대 필요했다. 고린도의 그리스도인 공동체 확장과 중요성은 바울이 후에 거기 있는 교회에 쓴 편지서들에서 볼 수 있다. 주는 이상을 통하여 바울의 설교가 큰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자비로운 확신을 주었다. 그는 위안을 갖고 일어섰고 어떤 일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11. 일 년 육 개월. 고린도에서 보낸 시간은 바울에게 교회를 세우고 조직하는 기회뿐 아니라 겐그레아 항구(롬 16:1)와 같은 이웃 지역에서 일할 기회도 제공하였다. 고린도인들에게 가르치고 설교한 것 외에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그의 가장 초기 서신으로 알려진 두 서신을 보냈다. 데살로니가전·후서는, 야고보서가 먼저 기록되지 않았다면 신약 중 가장 오래된 문헌일 것이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라는 고린도후서의 인사말(고후 1:1)은 복음 전파가 명백하게 이 도시 지경을 넘어선 것을 가리킨다. 바울은 이러한 광범위한 결실을 이상 중에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받아들였고, 이는 다가오는 다음 박해를 위해 그를 준비시켰다.
언어와 명칭. 또는 “말과 명칭.” 틀림없이 유대인들은 기회만 주어졌다면 바울의 가르침에 관련된 많은 것들을 계속 제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그리스도인지에 관련된 문제는 로마인에게 오로지 신학적 정의의 문제였지 로마법에 관계된 문제는 아니었다. 만약 갈리오가 로마에서(참조 2절 주석) “크레스투스”라는 이름을 들었다면 그는 훨씬 쉽게 황제의 명령을 따랐을 것이고 되도록 속히 유대인 논쟁자들을 제거했을 것이다(참조 23:29).

너희 법. 문자적으로 “너희에게 맞는 법.” 갈리오는 강조하여 말함으로써 그들이 법에 호소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고 있음을 넌지시 말했다. 그들의 경우는 로마법보다는 유대법에 관련 있었고, 따라서 그는 연루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헬라어 단어 “재판장”과 대명사 “나”가 강조되어 있다. 갈리오는 이 사건이 로마법과 관련이 없었으므로 재판을 거부하였다.

16. 저희를…쫓아내니. 분명히 시장 곧 재판 자리에 릭토르(lictor, 집정관을 따라다니며 죄인을 잡던 관리-역자 주)와 다른 관리들과 함께 앉아 있던 갈리오는 “언어와 명칭”에 관한 문제를 일으키는 논쟁자들을 거기서 몰아내라고 명령했다. 그는 고린도의 번잡한 상업 생활에서 재판권을 행사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았다.

17. 회당장. 참조 8절. 소스데네는 그리스보의 회심(8절) 후에 회당장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총독 앞에서 즉시 바울을 고소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대적하는 열의를 보여 주었을 것이다. 그는 대변자로서 둘러싼 군중의 눈길을 끌었을 것이고 그들 중 다수는 헬라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갈리오의 경멸하는 어감을 알아챘고, 또한 스스로 터득한 교훈에 따라 그의 반대 결정을 따랐는데, 이 결정은 매우 서투른 결정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유대인들이 패소한 후에 그들의 새 지도자에게 등을 돌렸을 수도 있다. 틀림없이 이방인 중에 바울을 동정하는 사람이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군중은 소스데네를 특별히 지목하여 끌어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사도행전연구1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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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7:1-34

[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4]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
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내용 요약

  1. 데살로니가 전도 (1-9)
  2. 베뢰아 전도 (10-15)
  3. 아덴 전도 (16-34)

배 경 

바울은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 빌립보를 지나 데살로니가에 이르고 마침내는 당시 최대의 문명과 철학의 도시 아덴에 이른다. 유럽에서의 바울의 행적이 빠른 템포로 전개되고 있다. 

 “십자가를 전하는 기별자들은 깨어 기도함으로 자신들을 무장하여 항상 예수의 이름으로 일하며, 믿음과 용기로 전진해야 한다.(행적 230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시기하는 마음이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준 적이 있나요?

  2. 주변인물 중 가장 신사적인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그 사람의 어떤 모습이 신사적이라고 생각하세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비신사적 행동은 무엇입니까?(1-9)
       *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의 둘째 전도지로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로서 정치, 교통, 무역의 중심지였다. 그곳은 마게도냐 최대의 무역항구다. 알렉산더 대왕의 군사들도 이 항구에서 동방을 점령하기 위해 떠났을 것이다. 카산더(Cassander)가 B.C,315년에 건축하여 그의 아내 이름을 따서 명명했으며 온천지대에 위치해 있다. 바울은 이 교회를 위해 2개의 편지서를 썼다. 

  2.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11-14)
      
  3. 바울의 설교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7:24-31)
    * 아테네는 헬레니즘의 본 고장이다. 헬라문화의 중심지이며 헬라의 수도다. 예루살렘이 영적인 수도라면 로마는 정치적인 수도였고 아테네는 문화적인 수도였다.  철학, 예술, 사상의 중심지이며 이교숭배의 중심지였다. 
       ①                                                                              
       ②
       ③                                                                                             

  4. 아덴 설교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17:32-34)
             
                                                                                     

생각해봅시다                                                             

  1.  내가 가장 닮고 싶고 전하고 싶은 예수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2. 자신에게 있어서 사람들의 반응에 관계없이 하나님 앞에서 변함없이 감당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능력과 그들의 여러 가지 필요에 요구되는 지혜를 주실 수 있으실 뿐더러 즐겨 주시고자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신뢰를 두는 이들에게 그들의 최고의 기대 그 이상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행적 242p)

 


1. 암비볼리. 빌립보에서 남서쪽으로 약 48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초기 시대에는 이 도시가 전략적인 위치라는 인식 때문에 엔네아 호도이(Ennea Hodoi, “아홉 개의 길”)라고 알려져 있었다. 로마 치하에서 로마의 속주(屬州) 마게도냐를 네 지역으로 분할했는데 암비볼리가 그중 첫 번째 지역의 수도가 되었다.

아볼로니아. 암비볼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48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이 도시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얼마 전 채찍을 맞은 이들에게 하루 약 48킬로미터라는 여행 거리는 큰 피로를 안겨 주었지만 방금 언급된 두 도시가 빌립보에서 온 이 여행자들에게 밤을 지낼 수 있는 휴식처가 되었을 것이다. 이 두 지역에는 유대인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데살로니가. 아볼로에서 서쪽으로 약 59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이 도시는 일찍이 테르매(Thermae)로 알려졌으나 마게도냐의 필립에 의하여 확장되었고, 캇산드로스(Cassander)가 필립의 딸이자 그의 부인인 텟살로니케(Thessalonike)에게 경의를 표하여 이 이름을 붙였다. 이곳은 테르매 만()에 위치한 교역의 적지(適地)였으며 꽤 중요한 항구가 되었다. 아직도 텟살로니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곳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도시이다.

야손. 히브리어로는 여호수아에 해당하며 유대인들이 종종 차용했던 헬라어 이름이다(마카베오24:7; 참조 Josephus Antiquities xii. 5. 1 [239]). 이 이름은 바울의 친족”(16:21) 명단에도 나오지만, 바울의 데살로니가 친구를 가리키는 것임을 제시하는 증거는 없다. 바울이 그와 함께 거했다는 것은 그가 유대인이었음을 가리킬 수 있다. 그는 호의적인 행동 때문에 믿지 않는 동포들로부터 광적인 분노를 샀다.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21:38; 5:12에서처럼 천하를 선동했다는 의미이다. “천하” (헬라어 오이쿠메네[oikoumene-])에 대해서는 마 24:14; 2:1 주석을 참조하라. 엘리야(왕상 18:17)3세기 그리스도인들(Tertullian Apology 40; Ad Nationes 9)도 문제를 일으킨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와 유사한 고소가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질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14, 615,).

이 상황에서 고소는 순간적인 격분으로 과장되었음이 분명하지만 그 취지가 심상치 않았다. 로마인들은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고, 따라서 이를 저해하는 자들을 혹독하게 다룰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고소가 과장되었겠지만, 이것은 회심자들을 얻는 선교사들의 명성이 그들보다 먼저 데살로니가로 들어갔음을 보여 주며, 그리스도교가 신속하게 전파되고 있음을 증거한다.

 

9. . 헬라어 히카노스(hikanos). 문자적으로 충분한.” 여기서는 보석금에 해당하는 전문 용어로 사용되었다. 아마도 야손은 바울과 실라를 직접 내주는 대신에, 이 전도자들이 다시 돌아와 도시를 어지럽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증표로, 혹은 야손 자신의 선한 행위에 대한 보증으로 돈을 주었던 것 같다. 그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은 선교사들 때문에 큰 위기를 겪었지만 복음을 위하여 기꺼이 그 위험을 감수했다(참조 살전 1:6; 2:14). 행정관들은 무분별한 결정을 내리는 데 휩쓸려 들어가기를 거절했는데 그들의 올바른 판단은 칭찬할 만하다. 그들은 유죄 판결을 위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베뢰아. 데살로니가에서 남서쪽으로 약 80킬로미터 떨어진 마게도냐의 작은 도시. 이 도시는 상업적인 면으로는 데살로니가보다 훨씬 덜 중요했다. 오늘날의 지명 베리아(Verria)에 이 도시의 이름이 아직도 남아 있다.

 

11. 신사적. 문자적으로 문벌 좋은”(참조 고전 1:26). 귀족 태생의 특징이 될 수 있는 고결하고 관대한 기질을 가리킨다. 사도와 누가가 베뢰아 유대인들을 칭찬한 것은 그들의 친절과 개방된 마음 때문이었다. 데살로니가 회당의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그들은 편견의 노예가 아니었으며 열린 마음으로 바울이 제시하는 진리들을 연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열심으로.” 그들은 깨달음 얻기를 간절히 원했다.

말씀을 받고. 즉 하나님의 말씀.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에게 가르쳤던 것과 똑같은 성경의 교훈을 가르쳤다(3).

상고하므로. 헬라어 아나크리노(anakrino-). 4:9; 12:19에서처럼 특별히 법률적 의미에서 면밀히 [증거를] 조사하다”, “심사하다”, “연구하다.” 5:39에서는 다른 단어 에류나오(ereunao-, “살펴보다”, “탐구하다”)가 쓰였다. 베뢰아 사람들은 성경을 연구하는 데 성화된 지성을 활용했으며, 영감의 말씀이 메시야가 고난받고 다시 살아날 것을 말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증거를 면밀히 연구하여 진리를 발견하면, 새로운 가르침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의 신실함을 입증했다. 특히 개인적 판단의 권리를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베뢰아의 회심자들은, 한편으로는 경신(輕信)과 다른 한편으로는 회의주의를 피하면서 이성과 믿음의 올바른 관계를 보여 주는 사람들의 대표자로 여겨져 왔다. 그들은 진리로 제시된 것을 고찰하고, 존중되는 권위인 성경에 비추어 살펴보고, 마침내 그들이 발견한 진리를 따름으로써 좇을 만한 모본을 제시했다.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 이들은 선교사들을 성읍에서 쫓아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증오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베뢰아까지 추격했다(참조 14:19 주석).

저자. 헬라어 아고라(agora). 참조 마 11:16; 16:19 주석. 아덴에는 저자가 두 곳 있었는데, 하나는 상업적 시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여기 언급된 것과 같이 그곳의 사교적 중심지였다. 바울 당시 이곳은 헬라의 만신전(pantheon)에 있는 대부분의 신들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영웅의 형상과 무수한 조상(彫像)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 저자는 아덴에서 대부분의 정치적 및 철학적 논쟁이 벌어지는 장소였다. 여기서 바울은 상당한 식견을 갖춘 철학자들과 철학 애호가들이 서로 그리고 청중과 벌이는 논쟁을 볼 수 있었다. 사도는 이 논쟁에 자유롭게 참여해 자신의 삶의 철학을 설명했을 것이다.

바울은 바로 이 예수를 아덴의 회의적인 지식인들에게 담대하게 선포한다.

부활. 이것 또한 초기교회 설교의 중심 주제였다(참조 2:24; 3:15; 4:2, 10; 10:40 ). 바울은 부활한 주(9:4~6)와 대화했기 때문에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입증할 수 있었다. 사도는 또한 모든 사람의 마지막 부활(참조 행 17:32; 고전 15:51; 살전 4:14~16 주석)을 가르쳤고, 이것은 아덴의 철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들은 이미 영혼의 불멸을 믿고 있었으나, 실제적인 신체의 부활에 대해 듣고 깜짝 놀랐다. 고전 15:35~44에서, 이 교리에 대한 반대 이론의 성격과 바울이 그들에게 어떻게 대답했는지 볼 수 있다.

종교성이 많도다. 헬라어 데이시다이모네스테로이(deisidaimonesteroi). 데이도(deido-, “두려워하다”)와 다이몬(daimo-n, “”)으로 이루어진 비교급 형용사로, “더욱 신을 경외하는으로 번역할 수 있다. 이 헬라어 단어(데이시다이몬[deisidaimo-n])는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 양쪽으로 쓰였다. 데이시다이몬은 점쟁이에게 조언을 구하며 징조를 믿는 자를 말하며, 예컨대 길에서 족제비를 보면 여행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높은 지위에서 지나치게 광신적이었던 사람의 현저한 예증으로 아덴 장군 니치아스(Nicias)를 들 수 있는데, 그는 항상 신들이 질투한다는 생각에 압박을 받았으며, 그래서 월식 때문에 중요한 전략적 이동을 철회했다(Thucydides History vii. 504). 스토아 철학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editations i. 16)는 그 자신이 데이시다이몬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의 헌신에 의하여 쎄오세베스(theosebe-s) 즉 경건한 사람(ibid. i. 3)이 된 것을 기뻐하였다. 바울은 연설을 시작하면서 경멸적인 말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었다. 오히려 그는 아덴인들이 모든 형태의 신을 알고자 노력하는 신중한 태도를 칭찬하고자 했다. 그러한 시작은 철학자들과, 일반 아덴인들의 주의를 끌었을 것이다.

 

24. 우주를 지으신. 여기서 사도는 자신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궁극적 신원을 제시하는데, 그분은 창조주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모든 거짓 신과 구별한다(참조 렘 10:10~12 주석). 인격적인 하나님에 의한 창조는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에 반대되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바울이 그렇게 말한 것이 청중에게 놀라움과 흥미를 일으켰으므로 계속 말하도록 허락되었다. “우주”(코스모스)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인들이 질서 잡힌 우주를 말할 때 사용했으므로 하늘과 땅모두를 포함할 수 있다(참조 마 4:8 주석).

주재시니. 바울의 하나님이 다른 모든 가상적인 신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높은, 전 우주의 소유자이며 통치자임을 말한다.

생명과 호흡. 이 두 명사는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이해시키기 위해 쓰였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최초의 생명을 주고, 육적인 호흡을 부여하여 그것을 유지케 하신다. 이와 같이 바울은 인간이 참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26. 한 혈통. “혈통의 생략을 지지하는 중요한 본문상의 증거(참조 20)를 제시할 수 있는데, 후에 뜻을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첨가되었을 수 있다. 바울은 모든 사람 곧 모든 족속이 한 조상 아담으로부터 나왔다는 역사적 진리를 말하고 있다. 이런 사상은 어떤 헬라인도 그리고 특별히 어떤 아덴 사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렇듯 헬라인과 야만인을 구별하는 것은 뿌리 깊고도 중요했다. 어떤 부류는 본질상 다른 부류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였다(Aristotle Politics i. 2. 6). 그러나 바울의 신학에는 우성종족을 위한 자리가 없었다. 그는 창세기의 인간 창조 이야기를 믿었다. 그는 신체 구조뿐 아니라 잠재적 및 실제적 발전의 동일성을 보았으며, 이는 히브리인이나 헬라인이나 라틴인이나 튜튼인 등 어떤 종족이나 국가를 막론하고, 자기가 인류의 정화(精華)라고 생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연합을 강조하는 갈 3:28; 3:11을 비교하라. 그리스도인은 창조와 구원을 통해 인간이 하나임을 배나 인정해야 한다.

이 시는 큰 흥미를 더해 주는데, 에피메니데스와 알지 못하는 신”(참조 23)에게 드려진 제단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서뿐 아니라, 바울이 딛 1:12에서 사용한 그레데인에 관한 인용문에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후에 바울이 에피메니데스를 인용한 사실은 에피메니데스의 시를 잘 알고 있었음을 더욱 분명히 해 준다.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8절 후반부는 헬라 시()에서 따온 인용문임이 분명하며, 바울이 사용한 것이다. 이것은 스토아 학파의 창시자인 제논(Zeno)의 친구 아라투스(BC 270)의 시에서 인용한 것이다. 아라투스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길리기아 출신이었다. 그의 교훈 시 패노메나(Phaenomena)는 당시 알려진 천문학과 기상학의 중요한 사실들을 다루었으며, 제우스에 대한 탄원으로 시작하고 바울이 인용한 말을 포함한다.

제우스로부터 시작해 봅시다. 우리네 유한한 인생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수 없나니

모든 거리와 사람들의 모든 시장이 제우스로 가득 차고

바다와 하늘에도 가득하구나.

우리 모두는 항상 제우스가 필요하나니

우리 또한 그의 소생이기 때문이니라

(Phaenomena 1~5; Loeb ed., 381).

이 인용은 즉시 청중의 주의를 끌었을 것이다. 바울은 그들의 문학을 인용함으로써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되었다(고전 9:22)고 말한 자신의 방침을 실증하였다. 그들은 헬라 도시들에 아주 흔한 상인이나 무당처럼 교육받지 못한 유대인을 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과 같은 문화를 지니고 있고 그들의 시인들의 사상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대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고전에 대한 바울의 학식을 과장할 필요는 없으나 여기 언급된 인용들과 고전 15:32의 인용을 보면 사도가 헬라의 저술가들을 익히 알고 있었고, 필요한 상황에서는 그들의 작품에서 적절한 인용문을 끌어냈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하여 그는 활용한 말의 문맥 속에 드러난 의미를 전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고, 그가 제시하는 더 고상한 가르침을 조명하기 위해 헬라의 저술가들을 사용했을 뿐이다.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심리적인 접근 방법은 배울 만하다. 사도는 처음부터 그들이 자신들을 과대 평가하고 있다는 것, 그들이 흙으로 된 피조물에 불과하며 사단의 자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너무 낮게 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손임을 잊어버렸고 심지어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13:46)로 자신들을 평가하였다.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마게도냐의 부르심)-사도행전연구1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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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6:1-40

[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 그와 그 집이 다 침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19]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침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35]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36]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37]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38]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39]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내용 요약

  1. 디모데를 선택함 (1-5)
  2. 마게도냐의 간청 (6-10)
  3. 빌립보 사건 (11-40)

 

배 경 

15장에서 예루살렘 총회가 끝난 후 16장부터 제2차 전도여행이 시작된다. 제2차 전도여행의 중대한 의미는 복음이 아시아를 넘어 드디어 유럽으로 전파되는 데에 있다. 마게도냐의 부르짖음은 곧 유럽의 손짓인 것이다. 우리는 제16장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복음이 어떻게 유럽에 건너가는가를 보게 된다. 

 

"칠흙같이 어둡고 황폐한 토굴 가운데서도 그들은 기도하는 말로 서로 격려하고 하나님께 찬양의 노래를 불렀다. 그 까닭은 하나님을 위하여 수치를 당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행적 213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나에게 가장 뜻 깊은 여행은 어떤 여행이었나요?

  2.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본인이 생각하고 계획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도된 경험이 있나요?

  3. 신앙의 신실한 동역자며, 자신의 영적 아들 혹은 영적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있나요?

  4. 예배와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모임에 참석하는 행위가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적이 있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디모데의 가정에 대해 말해 봅시다. (행16:1-2, 딤후1:5)
     * 그는 특별히 찬란한 재간을 가지지는 아니하였으나 그의 사명이 중하였으니 이는 그가 천부의 능력을 주를 섬기는 일에 사용한 까닭이었다(행적, 203). 루스드라가 그의 고향이었다. 경건한 신앙의 가정에서 출생하였으며(딤후1:5) 어려서부터 성경을 공부했다(딤후3:15).

  2. 바울이 마게도냐지역으로 인도 되어 가는 여정을 이야기해 봅시다.
      
  3. 왜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16:6-10)
                                                                                       
  4. 바울은 회당이 없는 빌립보에서 안식일을 어떻게 지켰습니까? (16:13)

  5. 빌립보의 첫 열매인 루디아를 만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16:13)
      
  6. 간수는 왜 죄수인 바울 앞에 굴복했을까요? (16:29) 
                                                                           
  7. 바울은 왜 감옥을 나가지 않고 상관들이 와서 사과하기를 요청했을까요?

 

생각해봅시다

  1. 우리에게는 마게도냐의 부르심이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2. 바울은 로마 시민으로서 왜 안 맞아도 될 매를 맞고 감옥에 들어가는 고생을 당했을까 생각해 봅시다. 

사도들은 빌립보에서의 그들의 수고를 헛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많은 반대와 박해를 당하였으나, 저희가 당한 수치와 고통을 속하고도 남을 만큼 그들을 위한 섭리의 중재와 간수와 그 가족의 회심을 목도하였다. 부당한 투옥과 기적적인 구출에 대한 소식은 그 지역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져 달리 접촉할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사도들의 사업이 알려지게 되었다.(행적218p)

 


1. 디모데(Timotheus). 흔한 헬라어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얻은 자라는 뜻이다. 그 이름의 영어식 표기는 “Timothy”이다. 디모데는 아마도 제1차 선교여행 때 루스드라와 더베를 방문한 바울에 의해 회심했을 것이다(참조 14:6 주석). 그리하여 바울은 진정으로 디모데를 내 사랑하는 아들“(고전 4:17) 그리고 믿음 안에서 참 아들“(딤전 1:2)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디모데는 나이가 많지 않았고(딤전 4:12; 참조 사도행적, 203), 그의 연소함이 약 12년 후에 딤전 4:12에 여전히 언급된 것을 보면, 그의 나이가 아마도 18세나 20세를 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바울이 루스드라를 떠난 후 거의 2년이 지난 후(이에 대한 연대기를 알려면 60, 62쪽을 참조하라), 디모데는 헌신과 거짓이 없는 믿음”(딤후 1:5)으로 좋은 평판을 얻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구약을 배우며 양육받았다(딤후 3:15). 디모데가 루스드라뿐 아니라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도 칭찬을 받았다는 사실(16:2)은 그가 두 교회 간의 교제를 유지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음을 시사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거나 편지 가운데서 그를 언급할 때 그가 신체적으로 강하지 못하고 고된 선교 사업을 수행함으로써 나중에 더 약해진 것처럼 쓰고 있다(딤전 5:23). 디모데는 감성적으로 보였지만(딤후 1:4),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고난과 책임을 감당할 준비를 갖추었다(고전 16:10).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한 동역자로 언급되고(16:21), 최소한 드로아까지 2차와 제3차 선교여행에서 그의 사업의 동료였다(20:4, 5). 고전 4:17에서 우리는 디모데가 고린도로 보낸 바울의 사자였음을 알게 되고, 고후 1:1에서 고린도 교회에 대한 문안에서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등장한다. 그는 또한 바울과 데살로니가 교회 사이의 연락자였고(살전 3:2, 6), 빌립보서(1:1; 2:19), 골로새서(1:1), 빌레몬서(1)에 그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 바울의 로마 첫 투옥기간에 함께 그곳에 있었다. 13:23은 그의 투옥을 말하는데, 언제, 어디서였는지는 알 수 없다. 유세비우스(Ecclesiastical History . 4. 5)는 그를 에베소의 첫 감독이라고 기록한다. 디모데는 에베소 사람들의 손에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3. 할례를 행하니. 아마도 바울 자신이 의식을 집례했을 것이다. 언뜻 보기에 바울의 이 행동은 할례 주기를 거절한 디도에 관한 그의 행동과, 할례에 관한 그의 일반적인 가르침에(고전 7:18, 19; 5:2~6)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디도와 디모데의 경우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디도는 헬라인이었고, 그에게 할례를 주는 것은 바울이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원칙을 양보하는 일이 될 것이었다. 디모데는 혼합 혈통을 가졌지만, 유대인이었다. 왜냐하면 랍비의 법전은 유대인 어머니의 자녀는 유대인으로 간주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Talmud Yebamoth 45b, Soncino ed., 297). 만약 디모데의 부모가 모두 신실한 유대인이었다면, 그는 제8일에 할례를 받았겠지만(12:3), 틀림없이 부모의 종교적 차이가 그의 할례를 막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젊은 디모데는 바야흐로 공중 봉사를 시작하여 유대인들과 밀접한 접촉을 갖게 되었다. 만약 그가 할례를 받지 않으면, 제대로 되지 못한 유대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좋은 안내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에게 문젯거리가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른 이들에게 거리낌을 주지 않기 위해 유대 배경을 가진 이 청년에게 할례를 주는 것이, 할례가 영적으로 필요하며 구원에 필수적이라는 가르침을 반대하는 일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이것은 자신이 선언한 가치관과 조화를 이루었고(참조 고전 9:20 주석), 누가가 그 행동을 유대인을 인하여라고 기록한 이유이다.

 

6. 성령. 어떻게 성령이 바울을 가르쳤는지, 내적인 감동에서인지, 밤에 이상이나, 은사를 받은 자들을 통해 주어진 예언들에 의해서인지(참조 21:4) 누가는 언급하지 않는다(참조 2:4; 8:29, 39; 13:2 주석). 그러나 바울이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자신이 아시아와 비두니아로 들어가는 것을 막으시는 것을 알고(16:7) 이 두 지역에 들어가지 않았다. 한동안 그는, 큰 유대인 사회가 있고 우상숭배의 큰 중심지인 에베소와 서머나와 사데와 같이 사람들이 몰려 사는 도시들이 있는 아시아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 도시들이 틀림없이 바울에게 강하게 호소했지만, 바울은 성령의 명령에 완전히 순종했다. 그래서 그 선교사단은 다음에 어디에서 일할지 알지 못하고 북서쪽 해안을 향해 인도되었다.

 

7. 비두니아. 바울의 여행길 북쪽 지역에 위치한 비두니아에는 니코메디아(Nicomedia)와 니캐아(Nicaea) 같은 큰 도시와 상당수의 유대인 거주자가 있었다. 바울과 그의 일행이 다음에 그곳에서 일하고 싶었던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주께서는 자진해서 순종하는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다른 계획이 있었고, 그들은 북쪽이 아닌 서쪽으로 인도되었다(이 장 끝에 있는 추가적 설명을 참조하라). 여행 동안에 이 지점에서 그들이 한 어떤 사업에 대한 기록은 없다. 아마도 그들은 중요하지 않은 몇 마을을 그냥 통과한 것 같다.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베드로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서 사역했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그가 쓴 첫 편지는 이 지역에 있는 회심자들에게 보낸 것이기 때문이다(벧전 1:1). 이곳에서의 베드로의 사역과 관련된 시기는 대략 안디옥에서 있었던 그의 외식”(2:11~16) 이후였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유럽으로 가는 도중에 브루기아에서 활동하고, 외식”(2:13)한 바나바가 구브로에서 전도하는 동안(15:39), 베드로는 지금 성령이 바울을 막으시고 있는 북() 갈라디아를 포함한, 바로 그 지역에서 복음 사업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제안해 왔다. 이 시점에 바울과 베드로가 어느 정도까지 그들의 상이점을 조절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 두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은 다시 선교지에서 만나지 못함으로써 아마도 더 큰 오해의 아픔은 겪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사람의 터 위에 세우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다(15:20). 그러나 비두니아와 아시아에서의 사역을 금지한 주된 이유는 이때 복음이 유럽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8. 드로아. 드디어 그들은 해안에 도착했고, 에게 해(Aegean Sea) 저편으로 서쪽을 바라보았다. 알렉산드리아 드로아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경의를 표하여 그렇게 명명되었고, 이 당시 로마 식민지로서 자유 도시였다. 고대 도시 트로이는 드로아 북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고대 헬라 도시의 포위에 대한 호메로스의 기사에 거의 흥미가 없었다. 지금 그의 생각을 채우고 있는 관건은 무엇이 드로아의 주민들이 영생을 발견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구주로 선포하는 최선의 방법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생각들이 바울의 기도에서 나타났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9절에 기록된 환상이 주어졌다. 이 당시에 바울이 드로아에서 한 선교 사업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지만, 성경은 후에 그곳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충분한 증거를 제시한다(참조 행 20:5~12; 고후 2:12, 13; 딤후 4:13 주석).

 

13. 기도처. 헬라어 프로슈케(proseuche-). “기도.” 여기서는 기도 장소를 말할 것이다(참조 행 1:14; 16:16 주석; 마카베오37:20). 만약 빌립보에 회당이 없다면, 그 소수의 유대인들은 씻는 의식을 할 수 있도록 강둑 위에 집회 장소를 세웠을 것이다(참조 8:15, 21; 137:1). 유베날리스(Satires . 13, 14; Loeb ed., p. 33)는 이것을 로마 고대 종교의 부패에 대한 일례로 언급한다: “거룩한 샘과 숲과 신전들이 유대인들에게 유출되었다.” 같은 저자의 다른 글에 유사한 사례가 나타난다(ibid. 296; Loeb ed., p. 55). “말하라, 너의 선 곳이 어디인가? 어떤 기도처[프로슈케]에서 내가 너를 발견할까?” 그런 경내(境內)나 기도원들은 종종 원형이고 지붕이 없었다. 그런 장소를 소유하는 관습은 유대인들의 물가 기도”(orationes litorales)에 대해 말하는 테르툴리아누스 시대까지 지속되었다(Ad Nationes i. 13).

 

14. 자주장사. 즉 자주색 옷감 장사(참조 눅 16:19 주석). 남편이 아닌 그녀가 자주 장사로 명명된 사실은 그녀가 자기 소유의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고, 아마도 어느 정도의 자산가였다는 것을 시사한다.

 

16. 기도하는 곳에 (To prayer). 본문상의 증거(참조 20)그 기도”(to the prayer)라는 독법을 증거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 기도처에”(참조 13절 주석)라고 번역될 수 있다. 관사가 없다면 이 표현은 예배드리러 가다”(go to church)라는 현대의 표현과 비교할 수 있다. 이어지는 사건은 아마도 13절에 언급된 안식일이 지나고 첫 회심자들의 침례식 후(15), 곧 선교사들의 사업이 그 도시에서 꽤 알려진 어느 안식일에 있었을 것이다.

 

19. 이익. 헬라어 에르가시아(ergasia, 참조 19:24, 25 주석). 사람은 낯선 종교나 철학자들의 이론에 대해서는 관대할 수 있지만, 어떤 것이든 그들의 생계에 위협이 되는 것에는 격렬하게 분개한다(참조 19:23~28 주석). 초기교회의 많은 박해의 배후에 이런 정황이 있었을 것이다.

저자. 헬라어 아고라(agora, 참조 마 11:16 주석). 이것은 로마 광장(Roman Forum)에 해당했고, 친교와 상업뿐 아니라 사법 행정의 중심이었다.

 

20. 상관들. 헬라어 스트라테고이(strate--goi). “국가 관리관원들.” 이 관리에 대한 로마식 직함은 두움비리(duumviri) 또는 프라이토레스(praetores)였다. 이들은 로마의 식민지에서 최고 행정장관이었다. 보통 그런 관리가 두 명 있었다. 이들은 범법자에게 형벌을 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빌립보에서 나온 명각들은 그 도시 사람들이 두움비리라고 쓸 곳에 스트라테고이로 부정확하게 사용한 것을 보여 준다. 따라서 이것은 누가가 이 용어를 정확하게 사용했음을 확증한다.

 

22. 치라. 헬라어 랍디조(rhabdizo-). 랍도스(rhabdos) 막대기에서 파생된 막대기로 치다라는 의미로, 특히 로마 형벌의 한 형태이다. 스트라테고이(strate-goi, 참조 20절 주석)에게는 릭토르(lictor, 집정관 등을 따라다니며 죄인을 잡던 관리역자 주)라고 알려진 공식 수행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각각 직무의 상징으로 회초리 꾸러미를 가지고 다녔다. 그 막대기가 선교사들을 매질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 잔인한 형벌이 집행되는 것을 누가가 보았을 가능성이 있다. 바울은 두 번 다른 곳에서 유사한 고통을 당했다(참조 고 11:25). 바울이 후에 예루살렘에서 했던 것처럼(22:25), 로마 시민권을 근거로 그와 같은 수치스럽고 고통스런 처벌의 면제를 왜 주장하지 않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어떤 이들은 뚜렷한 근거 없이 그의 시민권 주장에 대해 진의를 묻는다. 다른 이들은 바울이 면제받을 수 있었으나 단지 그 자신만 그렇게 할 수 있었고, 실라는 그가 피한 그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실라 역시 로마 시민이었을 개연성이 크다(참조 16:37 주석). 아마도 군중들의 폭동 때문에 그의 주장이 거의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참조 37절 주석).

 

25. 기도하고찬미하매. 또는 기도하면서 그들은 찬미를 불렀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문은 두 개의 행동보다는 하나의 계속적인 행동을 표현한다. 선교사들의 잘 형성된 예배 습관은 가장 낙망적인 환경이라도 이겨냈다. 심지어 지하 감옥에서도, 족쇄에 채워져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도 없었지만 그들은 주님을 계속 찬미했다. 그 찬미는 기도 시편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들이 무슨 노래를 불렀든지, 테르툴리아누스의 말이 옳았다. “몸은 갇혔지만, 육체는 감금되었을지라도, 영혼에게는 모든 것이 열려 있다.마음이 하늘에 있을 때는 다리에 있는 사슬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Ad Martyras 2; ANF, vol. 3, 694).

 

27. 자결하려 하거늘. 간수는 죄수들이 달아나면, 로마법에 따라 자신의 생명으로 보상해야 한다는 것(참조 12:19 주석)을 알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는 자살이 더 나을 것처럼 보였다. 고전 세계의 가장 위대한 이교 사상가 중 어떤 이들은 이런 자살을 정당화하거나 심지어 칭찬할 만한 것이라고 여겼다.

 

28. 바울이소리질러. 내부 감옥의 침침한 어둠 속에서 바울은 외부 빛의 배경에 윤곽이 드러난 간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울은 공포에 사로잡힌 간수의 의도를 간파하고 그가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 깨닫자 곧 그의 자살을 막고자 했다. 심지어 자신이 당한 상당한 고통중에도 바울은 다른 사람의 구원을 생각했다. 그는 자신을 끔찍한 감옥으로 밀어 넣은 사람까지도 절망 가운데 멸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31. 그 집. 간수는 자신의 구원만을 확보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도 하나님의 선물을 누리게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종들과 협력하여 그의 가족들을 모으고 모두가 생명의 길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얼마나 특이한 회중인가! 얼마나 이상한 집회장소인가! 그러나 얼마나 복된 결과인가!

 

29. 부복하고. 간수는 그들을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말한 여종의 찬사를 들었을지도 모른다(17). 간수는 그가 받은 지시(23)를 통해 그들이 범상치 않은 죄수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제 그들이 도망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을 단순한 사람 이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37. 저희가 친히 와서. 상관들은 법적으로 정죄 받지 않은 사람에게 공공연히 형을 가하므로 중대한 실수를 범하였다. 이제 바울은 그들이 직접 불공정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대부분이 로마 시민인 빌립보의 회심자들이 더 나은 대우를 보장받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 바울의 개인적 명예가 아니라 복음의 명예가 달려 있었다.

 

40. 두 사람이나가. 사도들이 일단 상관들에게 그들의 심각한 실수를 보여 주고 또 공공연하게 복음을 옹호하고자 한 목적을 성취한 후에, 그들은 관대함의 본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자존심을 살리기 위한 어떤 난처한 요구도 하지 않고, 상관들의 요청에 조용히 응했다.

 

예루살렘 총회-사도행전 연구1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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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5:1-41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23]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24]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25]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26] (25절에 포함됨)

[27]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30]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31]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내용 요약

  1. 문제의 발단 (1-5)
  2. 예루살렘 총회 (6-29)
  3. 총회 결정사항의 전달 (30-41)

 

배 경

바울과 바나바의 제1차 전도여행이 성공을 거두고 이방의 지역에 여기저기 교회가 세워지자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했다.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이 강했으며 구원받기 위해서는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무수하게 개종해 들어온 이방인들에게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 준수와 할례를 요구했다. 그것은 바울의 가르침과는 반대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일대 위기에 직면했다.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총회가 열렸는데 총회는 오직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공식 확정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해 이 교리는 확고한 체계를 이루게 되었다. 이 15장의 회의야말로 그리스도교 역사상 최초의 회의이며 가장 중요한 회의였다.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10:15) 이 기별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모두 받아들이시고 인정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내었다.(행적 186 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우리사회에 편견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2. 우리 대학선교센터교회만의 문화가 있다면? 그 문화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3. 무거운 짐(육체적, 정신적)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 적이 있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발전하는 안디옥 교회에 무슨 문제가 일어났습니까? (15:1,2)
  2. 어떤 사람들은 누구겠습니까? (행 6:7 참고)
  3.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누가 예루살렘으로 파송되었습니까? 왜 그들이 적격자입니까? (15:2)
  4. 베드로의 발언 내용을 요약하면 무엇입니까? (15:7-11)
  5. 야고보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15:19-21)
  6. 마가(Mark)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봅시다.
    ① 가족관계 (행 12:12)
    ② 원래이름 (행 12:12)
    ③ 바나바와의 관계 (골 4:10)
    ④ 바울과의 관계 (행 15:38, 골4:10, 딤후 4:11)
    ⑤ 베드로와의 관계 (벧전 5:13)
    ⑥ 마가복음에 나온 마가 (막 14:51)

 

생각해봅시다.

  1. 우리는 교회가 내린 결정에 대하여 잘 따릅니까? 그것은 교회의 화평과 발전에 도움이 되나요?
  2. 우리에게도 마가와 닮은 꼴이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3. 마가에 대한 바울과 바나바의 입장 차이를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사명중심vs관계중심)
바울은 직접적인 지도를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향하는 반면, 항상 교회의 교제를 통해 연합을 이룬 신도들의 몸, 즉 교회에 부여된 권위를 인정하였다. 그는 자문이 필요함을 느꼈고, 중대한 문제가 일어났을 때에는 이것들을 교회 앞에 제출하여 형제들과 연합하여 하나님께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혜를 간구하기를 기뻐하였다.(행적200p)

 


1. 어떤 사람들. 이곳에 와서 분쟁을 일으킨 이들의 이름은 명시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된 바리새인들로 보인다(참조 5).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참조 7:8 주석. 이 요구는, 성경 다른 곳에 분명하게 진술되지 않은 사실 즉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의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요구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그리스도 교회에서 일어난 최초의 중대한 논쟁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서 시작된다. 이것은 그리스도 교회가 팔레스타인 지경을 넘어 확산되자마자 야기된 것이 분명하다. 그리스도 교회로 처음 개종한 이들은 유대인이었으나, 그들은 자신이 지켜온 대부분의 종교적인 관례와 편견을 여전히 간직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먼저 유대교로 확실히 개종하지 않은 채 그리스도 교회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충격을 받았다. 고넬료의 회심이나 심지어 에디오피아인과 사마리아인들의 회심 사건으로 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지금 반대를 제기한 그들도 고넬료와 그의 가속(家屬)이 입교하는 것을 기꺼이 수락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마도 고넬료의 경우에는 성령의 지시로 인해 예외가 발생했기 때문에 이것으로 할례의 규정을 무효화할 수는 없다고 논박했을 것이다. 따라서 성령의 분명한 인도로 침례을 받고 입교한 자들이라 해도 이제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이 선동자들은 안디옥에 와서 자신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의장인 야고보의 이름으로 말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야고보는 그들에게 그런 일을 위임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혔다(24). 하지만 야고보가 그의 개인의 삶에서 유대의 의식과 관습에 집착하는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에(참조 갈 2:12), 그들은 야고보의 가르침과 자신들의 가르침을 동일시해도 괜찮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들은 할례가 율법의 일부이기 때문에 소홀히 여겨지거나 거부된다면 이는 모든 율법이 파기된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율법의 올바른 관계를 인정할 준비도, 또 그렇게 할 마음도 없었다. 유대화주의자들이 안디옥에서 한 문제를 부각시켰는데, 이 문제가 바울의 사역 기간 내내 계속적인 불화의 원인이었고, 신약의 대부분과 심지어 사도시대 이후의 그리스도교 문학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주께서 왜 지상 봉사 기간에 이와 같은 문제들을 예견하지 못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분이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으나, 진정한 종교는 외적인 준수가 아닌 마음의 종교이어야 한다는 사실에 전반적인 강조점을 두었다. 그리스도는 광범위한 기초를 놓았고 세부적인 교리보다는 오히려 원칙들을 밝혔다. 교회가 성령에 의해 한 걸음씩 온전한 진리로 인도받아야 했다(16:13). 이것은 교회가 권위적인 전통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새로운 빛을 발견하여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 교회는 새로운 발전에 직면하여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했지만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사례들을 변경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은 아니었다(15:4). 새로운 빛은 예상치 못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성경 진리에 대한 더 많은 연구와 성경적 원칙들을 교회 사업에 적용함으로써 이르러 온다.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었다. 오래된 관례라는 근거로 또는 교인이 되는 조건으로 할례를 이방인들에게 요구할 수는 없었다. 유대화주의자들은 할례를 구원의 필수적인 단계로 제시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셨는데(14:27), 그것은 의문(儀文)에 속한 규례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음을 입증해 주는 진전이었다.

 

2. 바울과 바나바. 유대화주의자들이 이 요구를 통해, 이 두 선교사가 길리기아와 이곳 안디옥에서 그리고 그들의 첫 번째 선교여행에서 이룬 일 즉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승리로 밖에 해석할 수 없었던 그런 사업에 대해 노골적인 비난을 나타낸 점에 비춰볼 때, 바울과 바나바가 이 논쟁의 중심 표적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선포하였다. 이제 그들은 개심자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외적인 의식들을 행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을 잠잠히 방관할 수 없었다.

다툼. 헬라어 스타시스(stasis). “지위”, “당파또는 파벌을 뜻한다. 15:7과 눅 23:19에서, 바라바가 주모자가 되었던 민란을 가리키는 데 이 말이 사용되었다. 본 절에서 이 단어는 격렬한 변론을 묘사한다.

변론. 헬라어 제테시스(ze-te-sis). “찾는 것”, 따라서 질문”, “토론을 의미한다.

바울과 바나바. 복음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주장하는 대표자로, 이방인들 사이에서 벌써부터 성공적으로 일해 온 이 두 사람보다 더 나은 대표자는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몇 사람을. 이들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들은 안디옥에 있는 선지자들 중의 몇이거나(13:1), 이방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진, 구브로와 구레네에서 온 자들(11:20)일 수 있다. 아마도 성령이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하신 일에 대한 하나의 주목할 만한 본보기가 되었을 디도가 동행했다(2:1).

사도와 장로들. 베드로와 요한과 주의 형제 야고보가 예루살렘에 있었다(참조 갈 2:9; 1:19). 이들은 장로들(참조 행 11:30 주석), 구체적으로 이름이 명시되지 않은 다른 사도들과 함께 이 젊은 교회의 지도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교회가 할례와 같은 어려운 문제를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의 총회에 위임한 사실은 교회 조직을 지지하는 매우 의미 있는 선례이다. 이것은 교회의 제반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을 전제 군주 같은 역할을 하는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론과 반대된다. 또한 거론된 문제가 교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때는, 해당 지역 교회보다 더 넓은 차원의 조언과 권위의 필요성을 예시한다. 신약 시대의 교회에서는 예루살렘의 초기 회중에 속한 사도들과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상소 위원단을 구성하였다. 동시에 본 장의 후반부(15:22, 25)에 명시된 것처럼, 이 사건의 최종 결정은 단지 예루살렘에 있는 지도자들의 결정에 의거해서가 아니라, 이 사건을 호소하러 안디옥에서 올라온 대표자들을 포함한 참석자 전원의 합의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다. 그들의 문제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감으로써,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안디옥 교회 전체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통한 성령의 인도에 대해 확신을 나타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계시를 인하여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고 선언한다(2:2). 참조 사도행적, 96.

 

3.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 이것은 바울이 중시여기는 주제가 될 수밖에 없다. 틀림없이 그는 많은 사례를 상세하게 말했으며, 베드로가 고넬료의 경우에서 한 것처럼, 할례받지 않은 자를 수용한 것에 대해 성령이 승인의 표를 날인했음을 강조했다.

형제들을 . 11:2~4, 18과 비교하라.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가 가져온 좋은 소식에 기뻐했다. 이방인에게도 할례를 강요한 자들은 유대인 그리스도인 가운데 한 무리에 불과했고,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라고 기술된다(15:5). 바리새인들은 의식법(儀式法)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여기서 사용된 동사의 형태로 볼 때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동안 이방인의 회심 소식이 연거푸 기쁨으로 환영받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베니게와 사마리아 교회의 이러한 태도는, 예루살렘 교회의 편협하고 신랄한 바리새인(5)과 그것을 위해 대변하려 했던 유대화주의 당파와는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4.말하매. 6절과 비교해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 활동에 대해 보고했던 예비 모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듯하다. 이것이 아마도 바울이 나중에 언급한 유명한 자들사사로이만난 그 모임이다(2:2). 이방인 개종자들의 순결과 사랑뿐 아니라 그들의 행위와 고난, 표적과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시간이 다소 소비되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후에 회의에서 토의되고 결정된 문제에 대한 최선의 서론이었다고 볼 수 있다.

 

5. (바리새). 헬라어로 하이레시스(hairesis). 참조 5:17 주석. 바리새인 중 어떤 이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들은 예수를 하나님이 보낸 선생으로 받아들였는데(참조 요 3:2),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으로써 이 사실이 입증되었다. 따라서 예수가 왕국의 머리가 되어 율법과 성전이 제 위치를 찾고, 이방인은 할례를 조건으로 입교가 허락되는, 회복된 영광스런 유대교를 인류에게 전수할 것이라고 그들은 기대하였다. 바로 이들이 일어나 바울과 바나바가 지금까지 해온 일에 항의한 것이다. 전반적인 문제가 아마도 일개인의 사례 즉 개종의 순차적 단계를 밟지 않은 이방인 디도의 사례(참조 갈 2:3)를 들어 논의되었다. 이 논쟁에 연루됨으로써 디도는 후에 낡은 종교형식에 대한 유대화주의자들의 끈질긴 요구에 대항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출 수 있었다(참조 딛 1:10, 14, 15).

일어나. 유대화주의자들이 이렇게 들고 일어났기 때문에 한층 공식적인 회의의 소집이 불가피하게 되었을 것이다.

모세의 율법. 참조 6:13 주석. 유대화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인에게 시행하라고 제안한 요구 사항은 할례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쐐기를 박는 것에 불과했다.

 

7. 오래 전부터. 문자적으로 초창기부터.” 베드로는 아마도 십수 년 전에 있었던 고넬료의 회심(10)을 암시했다. 현재의 문제와 관련된 많은 일들이 그때 이후에 발생했다.

 

9. 마음을 깨끗이 하사. 믿음이 고넬료와 그의 집안 사람들의 마음을 깨끗케 했다. 오직 깨끗함을 판단할 수 있는 하나님이 보기에 마음이 깨끗하다면, 의문의 법을 지키는 것은 불필요하고 무의미했다. 율법의 의식들은 정결을 위한 것이지만, 바리새인들이 주장한 것보다 더 높은 표준의 정결이 여기 있었다. 의문의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바리새인들은 이방인들을 부정함이라는 총괄적인 죄목의 범주 아래 두었다. 베드로는 아무도 속되거나 부정하다고 칭해서는 안 되며(10:28), 정결은 육체보다는 마음에 관한 것임을 배웠다(참조 딛 1:15).

 

10.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다시 말해,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미 분명히 나타냈는데도, 이방인의 입교와 관련하여 그분의 뜻을 알기 위해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의 거부 의사가 더 강해야 하는가? 광야에서 유대인들은 그들을 위해 베푼 여러 기사(奇事)가 있었는데 하나님이 주신 지도자에 대해 불평함으로 하나님을 시험했다(3:9). 또한 그리스도를 시험했으며(고전 10:9), 그들의 불복종이 불뱀의 형벌을 초래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들의 헌금에 관해 교회를 속이고자 함으로써 하나님의 성령을 시험했다(5:9). 베드로는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일에 다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청중들에게 경고하였다.

 

11.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가져오는 것이 율법과 일치된 삶이 아니라 주의 은혜라고 베드로는 주장했다. 이 진술이 그의 논증의 끝맺음이었다.

구원받는 줄을. 하나님이 약속하는 구원은 은혜에 의한 것이다(참조 롬 3:21~26; 5:1, 2; 11:5, 6; 2:5, 8). 행위는 은혜로 구원의 선물을 받을 때 따라 온다(8:4; 2:9, 10; 2:12, 13).

 

12. 가만히 있어. 베드로의 확신있는 증언에 대해 다른 의견이 없었다. 비록 모든 사람의 마음이 다 바뀌지는 않았을지라도 반대의 소리는 더 이상 없어졌다. 고넬료 사건을 통해 자신의 편견을 극복한 베드로가 이제 다른 사람들의 편견을 극복한 것이다.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즉 베드로가 진술한 말은 교회가 이방인을 최초로 수용한 것을 나타낸다.

백성을. 그들만이 백성곧 하나님의 백성이고 다른 모든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울타리 밖에 있다고 유대인들은 믿었다. 그러나 야고보는 하나님이 또한 이 이방 나라들에서도 한 백성을 당신 자신에게로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선언했다. 바울도 이와 같은 변화를 인식했다(9:26). 그리스도인의 안목에는 택한 백성은 더 이상 유대인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대인을 이방인과 구별해 주었던 의식적 규율들은 이제 불필요했다.

시므온 (Simeon). 헬라어 쉬메온(Sumeo-n). 영어식 표기 “Simeon”“Simon”(시몬)보다 히브리어 쉬므온(Sim‘on)에 더 가까운 형태다. 이 형태는 베드로에 대해 단지 이곳과 아마도 벧후 1:1에서 사용된 것 같으며, 갈릴리 출신인 야고보가 이 형태를 사용한 것은 자연스러웠다.

 

20. 우상의 더러운 것. 예루살렘 총회의 공식 결의문이 우상의 제물”(헬라어 에이돌로쒸타[eido-lothuta]. “우상에게 바쳤던 [것들]”, 29)에 반대하여 말한 것에 비춰볼 때, 여기서 우상의 더러운 것은 이방 신들에게 바친 음식(그리고 음료)이라는 특정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헬라와 로마 종교에서는 음식이 신전에 있는 신들에게 매일 판에 박힌 듯이 드려졌다. 그러나 단지 제물의 일부만 제단에 올려놓았고, 나머지는 신전과 관련된 일을 하며 생활하는 이들이 소모하거나 시장으로 보내 팔았다. 엄격한 유대인이 보기에 이런 음식은 더러운 것이었다. 그러므로 랍비 아키바(AD 100년경)가 내린 것으로 생각되는 한 판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상이 있는 장소로 [그곳에서 어떤 유익을 얻기 위해] 가지고 들어가는 고기는 허용되지만 밖으로 가지고 나오는 고기는 죽은 자의 제물로 [간주되므로] 금지된다”(Mishina ‘Abodah Zarah 2. 3, Soncino ed. of the Talmud, 145). (AD 200년경 성문화된) 미쉬나의 또 다른 규정은 우상에게 바친 술에 대하여 이와 유사하게 천명한다. “옌 네세크(Yen nesek, 헌주[獻酒])는 금지된 것이며 또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다른 술]을 금지하도록 만든다. 술을 [섞은] 술과 물을 [섞은] 물은 미량이라도 [부적합하다]. 물을 [섞은] 술과 술을 [섞은] 물은 [금지된 요소가] 향을 낼 때는 [부적합하다]. 일반적인 규정은 이렇다. 같은 종류로 [섞은 것은] 미량이라도 [부적합하다]. 그러나 다른 종류로 섞은 것은 [금지된 물질이] 향을 낼 때 [부적합하다]”(ibid. 5. 8, Soncino ed. of the Talmud, 349). 결과적으로 철저한 유대인들은 결코 일반 시장에서는 고기를 사지 않고, 유대인 푸줏간에서만 샀다. 여행할 때는 코피노스(kophinos) 즉 바구니를 등에 메고, 먹을 것을 가지고 다녔다(참조 막 6:43 주석). 유베날리스(Juvenal)자신들의 모든 비품으로 바구니 하나와 한 다발의 건초를 소유한 유대인들을 언급한다(Satires . 13, 14; Loeb ed., 33).

이런 강한 유대인의 정서를 고려하여, 총회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삼가도록 요구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보았다. 이것은 결코 작은 자기 부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개종자들은 많은 축제 초대를 거절해야 했고, 참석하더라도 먹는 것은 거절해야 했다. 예민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자기 앞에 차려진 음식이 신전에 바쳐진 것이 아니라는 의심이 풀리지 않는 한 개인의 집에서도 먹기를 거절해야 했다. 동시에 이 규제는 제물로 바쳐진 음식과 술을 맛보는 것이 예배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이교 의식에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참예하는 유혹에서 보호해 주는 실제적 가치가 있었다. 만약 우상에게 바쳐진 것은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면, 심지어 황제의 제단에 드려진 음식과 술을 맛보는 형식적인 의식도 금지되었다는 것을 양심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 특별히 이 문제가 논란거리였던 것 같다(참조 계 2:14 주석).

예루살렘 총회 몇 년 후에 이 규제가 어떤 저항에 부딪혔다. 고린도에서 어떤 이들이 자신들은 원하는 것을 먹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고, 이에 대해 바울은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므로신전에 바쳐진 것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시장에서 음식을 살 수 있다는 범위까지 이론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그가 그 규제를 지지한 것은 형제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의 양심을 존중하는 차원에서였다(고전 8~10; 14 주석 참조).

음행. 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규제가 순전히 의식적인 것으로 보이는 규제들과 나란히 언급된 것을 보고 언뜻 의외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결의 내용의 첫 항목도 십계명의 둘째 계명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도덕적인 문제였다. 음행과 관련하여, 모든 형태의 부정(不貞)을 금하는 레위기 법이 엄격한 것은 적절하다(18; 20:10~21).

여성의 순결에 대한 참된 존중의 결핍과 결부된 음행의 죄는 고대 사회에 널리 퍼진 죄여서 헬라 - 로마인의 삶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 여겨질 정도였다. 이방 종교에서는 우상숭배와 음행이 때때로 얽혀 있었다. 고린도와 바보에 있는 아프로디테의 창기 여사제들에게 나타나는 것처럼, 음행은 종종 우상숭배의 일부였다. 그렇게 하여 신전 예배에 빠진 남자들은 그런 식으로 숭배되는 여신에 대해 소위 자신들의 신앙을 표현하였다. 이교도들에게 음행의 죄는 묵인되었고 심지어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대인 그리스도인은 이방인 회심자들이 순결한 생애를 영위하는지 알고자 했을 것이다(참조 고전 6:15; 2:14). 그러므로 예루살렘 총회에서 그리스도 교회는 교회의 일반적 가르침뿐 아니라 교인들이 따라야 할 구체적인 규칙을 세움으로써 높은 도덕적 수준을 세우는 데 공적인 첫 단계를 취한 셈이다.

목매어 죽인 것. “목매어 죽인 것을 먹는 것에 대해 구약에 명확한 금지 조항이 없다. 그러나 적용되는 원칙은 피를 먹지 말라는 바로 다음의 금지 사항의 경우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목매어 죽인 동물은 정상적으로 피를 빼내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그런 동물의 고기는 음식으로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참조 레 17:13, 14). 야고보의 선언은 또한 스스로 죽은 동물이나 다른 동물에 의해 죽임당한 동물의 고기와 관련된 모세의 규제에 기초했을 것이다(17:15; 12:21). 테르툴리아누스(AD 230년경 사망)가 증언한 바와 같이 초기교회는 이러한 규제들을 지켰다. 그는 이교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그리스도인들 앞에서 그대들의 악한 행위를 부끄러워하라. 그들은 단순하고 자연적인 음식물로 된 식사에서 동물의 피조차도 먹지 않으며, 내장에서 분비된 피에도 오염되지 않으려는 이유로 목매어 죽인 것과 자연사로 죽은 것도 멀리 한다”(Apology 9; ANF, vol. 3, 25). 이와 유사하게, 동방교회의 한 오래된 규율은 명한다. “만일 어떤 감독이나 장로나 집사 혹은 성직에 있는 어떤 사람이라도 고기를 생명이 담긴 피와 함께 먹거나, 짐승에게 찢긴 것이나, 스스로 죽은 것을 먹는 자는 해임시켜라. 율법이 이것을 금하기 때문이다”(Apostolic Canon 63; ANF, vol. 7, 504). 유대인의 고대 전승은 동물의 목이 부러지면 피가 사지로 흘러 들어가 소금을 사용해도 피를 빼낼 수 없다고 말한다(Talmud Hullin 113a, Soncino ed., 621, 622).

. 피를 음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인류에게 육식이 허용되자마자 금해졌고(9:4), 모세의 법에서 자주 반복되었다(3:17; 7:26; 17:10; 19:26). 사울 시대에는 피를 먹는 것을 여호와께 범죄하는 것으로 간주했다(삼상 14:33). 피를 가지고 만든 음식이 헬라인과 로마인들의 식탁에서는 흔했다. 일례로 이런 사실이 호메로스(Homer)의 글에 나타난다.

여기 불 위에 염소의 위가 여러 개 놓여 있는데, 우리가 그것들을 기름과 피로 가득 채운 후에 저녁식사로 거기에 놓아두었네. 이제 둘 중 어느 한쪽이 이겨서 더 나은 사람으로 판명되면, 그에게 이것들 중 자신이 원하는 하나를 선택하게 하라”(Odyssey xvii. 44~49; Loeb ed., vol. 2, 199, 201).

이교도들은 제사를 드리면서 술을 섞은 피를 마시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AD 1세기 유대인의 입장에서 말하는 요세푸스는 [모세]는 피를 영혼과 정신으로 여겨 어떤 종류의 피도 음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금했다고 기록했다(Antiquities iii. 11. 2[260]; Loeb ed., vol. 4, 443). 이런 금지에 대한 유대인의 태도는 랍비 시므온 벤 앗자이(Rabbi Shim‘on ben ‘Azzai, AD 110년경)의 진술로 추정되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 “토라에는 365개의 금지 조항이 있는데, 모든 법 가운데 이와 같은 것은 없다.성경이 피의 금지에 관하여 그대에게 그렇게 권고할진대[12:23], 이것과 비교하여 모든 계명 중에 이보다 더 쉬운 것이 없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것이 나머지 모든 계명에 얼마나 더 많이 적용되겠는가!”(Sifre Deuteronomy 12:23 ; quoted in Strack and Billerbeck, Kommentar zum Neuen Testament aus Talmud und Midrasch, vol. 2, 734). 피를 먹지 말라는 금령이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쉽게 지킬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은 이방인 개종자들이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여기는 예루살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적어도 몇몇 지역에서는 초기 그리스도인 교회가 이 규칙을 수 세기 동안 고수해 온 것으로 보인다(“목매어 죽인 것에 관한 주석을 참조하라). 같은 시기에, 특히 서방에서, 예루살렘 총회의 규제를 단지 도덕적인 금지 사항으로 제시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이레내우스(AD 185년경)는 본 절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그들에게 요구된 것 곧 헛된 우상과 음행과 피를 멀리하고 또한 무엇이든지 자기가 받기를 원치 않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Against Heresies iii. 12. 14; ANF, vol. 1, 435, 436). 그런 관점에서 를 인간의 피를 흘리는 것 즉 살인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피를 먹지 말라는 금령을 인간의 피를 흘리지 말라는 (금령)으로 이해해야 한다”(On Modesty 12; ANF, vol. 4, 86)라고 설명한 테르툴리아누스(AD 230년경 사망)의 말에 비춰보면 분명해진다. 참조 창 9:4 주석.

 

행 14:1~23

[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2]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4]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5]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6]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7]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내용 요약

  1. 루스드라, 14:6~19
  2. 더베 그리고 비시디아를 통해 돌아옴 14:20~23
  3. 안디옥으로 돌아옴, 14:24~28

배 경

제14장은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지방 전도다. 이곳은 남 갈라디아 지방으로 바울은 이곳을 여러 번 지나갔으며 그의 편지 갈라디아서도 이곳에 세워진 교회에 보낸 것이다. 이고니온은 비시디아 안디옥 동남쪽으로 약 350리(약 140km) 떨어진 곳으로 행정상으로 루가오니아(Lycaonia)지방의 수도다. 루스드라(Lystra)는 다시 이고니온에서 남쪽으로 75리쯤 떨어진 곳으로 디모데의 고향이다. 더베(Derbe)는 루스드라에서 동남쪽으로 70리 떨어진 도시로 1차 전도 여행의 종점이다. 다 험악한 지형이었으며 바울은 육로로 이곳들을 여행하면서 온갖 고생을 다 했을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의 모든 선교적인 노력에 있어서 영혼을 위해 자원하여 희생하시고 충성스럽게 열심히 수고하신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고자 노력하였다. 그들은 방심치 않고, 열심 있고 끈기 있게 개인적인 기호나 안일을 구하지 아니하고, 경건한 염원과 끊임없는 활동으로 진리의 씨를 뿌렸다.(행적 186 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과분한 호의를 받은 적이 있나요? 그 호의를 받으면서 나의 행동은 어떠하였으며, 나의 마음은 어떠하였나요?
  2. 지금 나의 상태는 넘어져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십니까? 일어선 상태라고 생각하십니까?
  3. 예수님으로 인하여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뒤따른 적이 있나요?
  4. 삶이 오뚝이와 닮은 사람이 있다면 소개해 봅시다.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이고니온에서 생긴 일을 말해 보시오. (1-7)
  2.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14:2)이 복음 전파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살펴보고 나는 순종치 아니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닌지 생각해 보세요.
  3. 바울은 루스드라의 앉은뱅이에게서 무엇을 보고 그를 고쳐 주었나요? (9)
  4. 쓰스(Zeus)와 허메(Hermes)는 무엇입니까? 바울과 바나바가 신적 대접을 받았을 때, 한 행동은 무엇이었나요? 이것은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우리에게 어떠한 자세를 가르쳐주나요?
  5. 19절을 읽고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변덕스러운 것인가? 군중심리란 얼마나 그릇 될 수 있는가 생각해 보아요.
    사도는 자기의 종말이 이르렀다고 생각하였다. 스데반의 순교와 그때에 자기가 행한 잔인한 행동이 그의 마음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격분한 폭도들은 그가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쳤다. (행적, 182)
  6. 그 비참한 광경 속에서 훌륭한 한 젊은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사단의 노력도 결국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그 젊은이는 누구입니까? (행적, 183)<20절 뒷면 주석참조>
  7.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귀향전도를 하면서 교회를 굳게 하기 위하여 바울이 사용한 뒷수습 방법은 무엇입니까? (21-23)이것은 우리교회에도 필요한 일인가요?

생각해봅시다.

  1. 예수님을 위하여 나는 오늘도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의 삶이 그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2. 우리교회는 지금 교회를 굳건히 하기 위하여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바울의 고통을 목격하였던 사람들 가운데 후에 그리스도를 위한 탁월한 일꾼이 되고 어려운 선교 지역에서 사도와 함께 개척사업의 시련과 기쁨을 나누어야 할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이 바로 디모데라는 청년이었다.(행적183p)

 


1. 이고니온. 이고니온으로 향하는 바울과 바나바의 여정을 누가가 건너뛰었는데, 추론해 보면 도중에 선교 사업을 펼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고니온은 안디옥에서 남동쪽으로 약 144킬로미터 떨어진 주요 도로들의 교차점에 있다. 일부 고대 저술가들은 이고니온이 브루기아에, 다른 저술가들은 루가오니아에 예속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이 도성은 루가오니아의 다메섹으로 불릴 정도로 크고 장중했고, 후에 그리스도교 전승에서 바울과 그가 회심시킨 테클라(Thecla)에 관한 이야기의 배경으로 유명해졌다. 중세 시대에는 이고니온이 셀주크 왕조 술탄들의 수도로서 중요성이 높아졌고, 변형된 축약형 코냐(Konya)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터키의 번창하는 도시로 남아있다(참조 302쪽 지도).

두 사도가 함께. 이는 회당을 특별히 한 번 방문한 것이 아니라, 바울과 바나바가 유대인들을 만나기 위해 함께 여러 번 방문했음을 묘사한 것이 분명하다.

2.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 설득당하지 않으려는 유대인들.” “순종치 아니하는으로 번역된 단어에는 반역으로 이끄는 불신이라는 개념이 들어 있고, 따라서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한 이 유대인들의 특성을 적절히 묘사한다.

 

3. 오래. 아마도 수 개월 동안이었을 것이다. 새 신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을 굳건히 하기 위해 장기간 체류해야 했다.

 

4. 나뉘어. 그리스도인에게 반감을 지닌 비그리스도인은 주민 가운데 분명하게 구분된 집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누가는 이교도 주민이 다수였다고 분명히 언급한다. 기독교로 귀의한 회심자들은 분명 소수 집단으로, 초기교회에 흔했던 것처럼 사회의 하류층 출신이었을 것이다(참조 고전 1:26~28).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처럼 도성의 유력한 남녀들이 그들을 대적하였다(참조 행 13:50).

 

5. 관원들. 즉 유대인 회당의 관원들이며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 회당에서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두 사도를 능욕하며. 그들은 무자비한 능욕과 폭행을 당하였다. 이는 군중을 자극하기 위한 일환으로 계획되었음을 보여 준다. 바울은 핍박자였던 자신의 행동을 묘사하기 위하여 밀접히 연관된 단어를 채용한다(딤전 1:13).

달려드니. 헬라어 호르메(horme-). “습격혹은 공격.” 여기서는 이 단어가 직접적인 공격을 가리키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참조 6). 유대인들은 폭행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이교도 동료들을 자극하고 부추겼다.

 

6. 알고. 음모를 알아내기 위해 반대편과 충분히 접촉한 자들이 사도들 편에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누가는 그리스도인 복음 전도자들의 고난을 과장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간신히 투석형을 피한 사건은 애쓴 흔적 없이 평이한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도망하여. 사도들의 행동은 한 성에서 핍박을 받을 때 다른 성으로 피해야 한다는 예수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참조 마 10:23 주석).

루가오니아. 루가오니아는 로마의 속주가 아니라 특정 종족 지역으로, 서편은 로마의 속주 갈라디아에, 동편은 콤마게네(Commagene)의 안티오쿠스 왕국에 속해 있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갈라디아 도의 국경 안에 머물렀음이 분명하다. 신약 시대에 이고니온은 브루기아에 속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사도들이 루스드라와 더베로 진행했다는 것은 새로운 지역으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루스드라. 1885년에 이르러서야 루스드라의 정확한 위치가 알려졌다. 그 해에 루스드라가 오늘날 졸데라(Zoldera)로 알려진 지역임을 확인할 수 있는 명각이 하나 발견되었다. 그것은 이고니온의 남서쪽으로 약 여섯 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고니온에서 출발하여 육로로 여행할 때 사도들은 구릉 지대를 지나 루스드라가 있는 고원까지 올라갔을 것이다. 루가오니아가 고전 문헌에 황량하고 미개한 지역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명각에 루스드라가 아구스도에 의해 로마 식민지가 되었다고 나타난 점으로 보아 주변 지역보다 상위 문화를 향유한 것이 확실하다. 로마의 상업 중심지인 루스드라 주민 중에 유대인들이 있었겠지만 사도행전의 기록에는 그 도성에 회당이 있었다는 언급이 없으며, 따라서 바울은 거기서 주로 이방인들과 교제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건한 유대 여성의 자녀이며 루스드라 출신이었을 디모데 역시 할례받지 않은 채 성장하였다(참조 16:1, 3 주석). 참조 302쪽 지도.

더베. 더베의 위치는, 1956년 더베가 언급된 한 명각이 이고니온 남동쪽으로 83킬로미터 지점인 케르티 휘위크(Kerti Hu..yu..k) 곧 오늘날의 코니아(Konia)에서 발견됨으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확증하는 또 하나의 명각이 최근에 나타났다. 후에 바울과 함께 여행한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가이오가 더베 출신이었다(20:4). 참조 302쪽 지도.

그 근방으로. 이 구절은 루스드라와 더베 도성이 작아서 바울과 바나바가 단기간에 전도할 수 있었음을 암시한다. 시골 촌락에서 활동하는 한 그들은 거의 전적으로 이방인들만 만나야 했다.

 

9. 주목하여. 헬라어 아테니조(atenizo-, 참조 13:9; 23:1 주석). 앉은뱅이의 믿음이 그 얼굴에서 빛을 발하자 바울은 치료받음으로 루스드라인들에게 표적이 되기에 적절한 한 사람을 확실하게 알아봤다.

 

10. 바로 일어서라. 이 명령은 평범한 인간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는 믿음으로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조롱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장애인은 믿음에 응하여 움직이고자 의지를 활용하였다. 이것은 중풍병자(9:6, 7), 베데스다 연못의 병자(5:11, 14),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3:6~8) 등의 치유에 공통되는 이적의 유형 가운데 하나이다. 이들 각 경우에 영적인 회복에는 육체적 치유가 동반되었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치유한 사건(3:1~11)과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치유한 사건에 유사점이 있음이 분명하다.

 

11. 루가오니아 방언. 바울은 자기가 방언을 말했다고 표명하지만(고전 14:18), 이 은사에는 루가오니아 방언을 이해하는 능력은 포함되지 않았음이 확실하다. 지지할 만한 확실한 견해는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인들이 자신들에게 경배하려는지 몰랐다는 것뿐이다. 그들이 그러한 경배를 거절하여 극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 사람들이 예배하려는 계획을 추진하도록 고의적으로 허용했다고 추측하는 것은 그들의 품성을 폄하(貶下)하는 것이다. 틀림없이 루스드라인들은 2개 국어를 동시에 사용했을 것이고, 따라서 바울과 바나바가 헬라어로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이 선교사들은 그 사람들이 이교식 제사를 드릴 계획을 세우자고 말한 것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루가오니아 방언의 특성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신들. 신약 시대에는 이렇게 신들이 사람들과 함께 어울린다는 신조를, 단순한 루가오니아인들뿐 아니라 도시와 시골의 이교도들도 전반적으로 지지했다. 루가오니아에는 그곳 사람들이 바나바와 바울을 위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의 근거가 될 만한 오래된 전설이 있었다. 이 신화에 의하면 쓰스와 허메(제우스와 헤르메스 혹은 유피테르와 메르쿠리우스)가 인간으로 가장하여 왔을 때 노부부 필레몬과 바우치스(Baucis)에게 영접을 받자 그들에게 선물을 주었다(Metamorphoses viii. 626~724). 신들이 거했다고 추정된 곳은 후에 경건한 숭배자들이 순례 와서 예물을 놓아두고 가는 성지가 되었음이 이 전설에 나타난 있다.

 

12. 쓰스허메. 헬라어 제우스(Zeus), 헤르메스(Herme-s). 헬라의 쓰스는 신들의 우두머리이며 그의 아들 허메는 신들의 전령과 사자요 웅변의 수호신이다. 로마의 만신전(萬神殿)에서 이 신들에 해당하는 이름은 유피테르와 메르쿠리우스였고, 따라서 그 이름들이 제임스왕역에 그대로 사용된 것이다. 쓰스와 허메 숭배가 루스드라 지역에 보편화되었던 것 같다. 루스드라인의 이름을 가진 어떤 사람이 쓰스에게 조각상을 헌납했음을 말해 주는 명각 하나가 루스드라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쓰스로 여겨지는 기도 듣는 자와 허메에게 봉헌된 돌 제단도 루스드라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루스드라인들은 어떤 신이 선한 목적으로 그들 가운데 임한다면 그는 유피테르 신일 것이라고 믿는 것이 당연했는데, 그들의 도성 정면에 그를 위해 신전을 세웠고(참조 13절 주석) 주로 그를 숭배한 점으로 보아 그렇다. 메르쿠리우스는 유피테르의 주요 수행원으로 간주되었다. 바나바는 바울보다 더 인상적인 태도를 갖췄기 때문에 유피테르라는 명칭이 주어졌다. 바울은 강연의 대부분을 도맡았기 때문에 메르쿠리우스와 동일시되었다.

 

13. 쓰스 신당의 제사장. 이 구절의 의미는 도성 정면에 [위치한] 쓰스 신전 제사장인 것 같다. 이와 같이 쓰스는 루스드라의 수호신이었고 그의 신전은 마치 도성을 보호하듯 성문 근처에 서 있었음이 분명하다. 사람들이 쓰스의 제사장에게 소리 지르며 달려가, 제사를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추고 사도들이 묵고 있던 집 입구로 그를 데리고 왔다.

화관들. 이런 화관은 고대 조각상을 통해 잘 알려졌다. 화관은 대개 흰 양털에 종종 나뭇잎과 꽃으로 장식되었다. 제사용 동물은 물론 제사장과 참석자와 문과 제단도 흔히 이렇게 꾸며졌다.

 

14. 옷을 찢고. 유대인들에게 이것은 극도로 혐오스러움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특히 신성모독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사용되었는데(참조 마 26:65 주석), 이교도 루스드라인들이 모르고 신성모독을 범하려 한다는 것을 바울과 바나바가 이제야 깨달았다. 루스드라 주민들이 옷 찢는 행위를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격렬한 행위가 그들의 주목을 끌고 놀라게 했을 것이다.

뛰어 들어가서. 헬라어 엑페다오(ekpe-dao-). “뛰어나가다”, “돌진하다.” 그 제자들은 성문에서 나와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모인 곳, 아마도 성밖”(참조 13절 주석)에 있는 쓰스에게 바쳐진 신당을 향해 돌진했을 것이다.

 

15. 같은 성정. 이 단어에는 흔히 성정이라고 알려진 것(참조 약 5:17)은 물론이요 인간의 더 소극적인 감정들도 포함된다. 이곳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한 표현과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한 표현(10:26) 사이에 나타나는 현저한 유사점은 주목할 만하다.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참조 13:32 주석. 우상 숭배자들에게 말 못하는 우상 대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기별은 좋은 소식임에 분명한데, 이는 특히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한 하나님 즉 인류의 구주이기 때문이다.

천지와 바다. 이것은 하늘과 땅과 바다에 각기 다른 신들을 지정해 놓은, 널리 퍼져 있는 이방 종교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바울은 한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만들고 다스린다고 선포한다.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호소는 성경에서 반복된다. 그 호소는 하나님과 우주의 관계에 대한 전() 역사의 시초에 있었으며(1), 세상에 경고로 전달된 마지막 복음의 기초이기도 하다(velation/14/7e).

살아 계신 하나님. 그들의 우상숭배와 대비하면서 사도는 루스드라인들에게, 살아서 역사하며 하늘과 땅을 만들고 모든 좋은 은사의 시여자이며 모든 인간을 심판할 하나님에게 돌아오라고 초청한다. 이사야도 이런 대조를 극적으로 묘사한다(40:6~31; 41:18~29; 44:6~28).

 

19. 유대인들이 안디옥에서. 문맥에서 드러나듯이 비시디아 안디옥임이 명백하다(참조 13:14 주석). 안디옥과 이고니온의 유대인들이 일제히 행동을 개시한 사실과 안디옥에서 온 유대인들이 사도들의 사업을 방해하기 위하여 160킬로미터 이상을 여행해 왔다는 사실을 통해, 안디옥의 유대인들이 품은 적개심의 강도가 어떠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안디옥 사람들과 루스드라 사람들의 관계가 밀접했음은 안디옥에서 발견된 조각상에 루스드라 사람들이 안디옥 도성을 기념하여 기념비를 세운다고 기록된 명각에 암시되어 있다.

이 유대인들이 바울과 바나바가 동포임을 알았는데도 그들에게 격노한 것은, 자기들이 매우 소중히 여기는 율법의 요구를 사도들이 배척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루스드라에서 이러한 비난을 일삼는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사도들에게 대적할 수 있도록 다른 고소 내용을 제시했을 것이다. 앉은뱅이를 치유한 기적을 통해 사도들의 능력의 실재성은 입증되었지만 능력의 근원은 입증되지 않았고, 따라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선동하기 위해 그 능력의 근원을 악의 세력으로 돌렸을 것이다(12:24~27에서 예수가 겪었던 유사한 경험과 비교하라).

무리를 초인(招引)하여. 루스드라인들의 태도가 돌변한 것은 예루살렘 군중의 호산나 찬양이 십자가에 못박혀야 하겠나이다라는 외침으로 뒤바뀐 사건(21:9; 27:22)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감정의 심한 기복은, 루가오니아인같이 전승에 미덥지 못하다고 묘사되고 미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다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아니다. 정반대 측면에서 비견할 만한 변화는 이방인 멜리데(28:3~6) 사람들에게서 나타났다. 루스드라인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그런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람의 모습을 한 신이 아니라면, 마법사나 어쩌면 악마일지 모른다고 추정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런 감정을 격앙시키고 야만적인 행동을 하도록 백성을 충동했을 수도 있다.

성밖에. 히브리 법은 돌로 치는 것을 진영이나 도성 밖에서 하라고 규정했다(24:14). 그러나 본 사건에서는 루스드라가 이방 도성이었고 돌로 치는 것이 폭도의 집단 행동으로 일어난 점으로 보아 도성 안에서 일어났던 것 같다. 그래서 바울의 몸을 성밖으로 끌어 낸 것이다.

 

20. 제자들. 즉 새 신자들. 이들이 습격을 사전에 막을 수는 없었지만 어떻게 경건한 장례를 치러줄지를 염려하는 슬픈 마음으로, 의식을 잃은 바울이 끌려 간 장소까지 따라갔음이 분명하다. 바울의 그 쓰라린 경험을 봉사에 대한 도전과 헌신의 모본으로 삼았을 디모데가 바울이 돌 맞는 것을 목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사도행적, 184, 185,). 아마도 로이스와 유니게도 무리 가운데 끼어서 처음에는 슬퍼했지만 조금 후에 그들의 사랑하는 선생이 죽지 않았음을 알고 기뻐했을 것이다.

바울이 일어나. 바울이 무의식 상태에서 회생하여 다시 도성 안으로 들어가는 활력과 담력을 곧바로 보여 준 것은 기적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사나운 폭도에게 돌을 맞고 죽은 줄 알았던 자가 살아나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보한 것은 앉은뱅이가 회복된 것보다 훨씬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의 증거였다.

이튿날가서. 하나님의 섭리로 죽음에서 살아남았지만 바울은 자기를 향한 대중의 정서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잠시 도성을 떠나있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는 후에 최소한 두 번 더 루스드라를 방문하였다(참조 21; 16:1).

 

21.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누가가 이후 여행에서 바울의 동료 중 하나로 언급한 더베 사람 가이오가 아마도 이때 회심한 자들 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성취된 사업으로 보아 여러 달을 더 체류했을 것이라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다.

돌아가서. 다소까지 동쪽으로 진행하여 배로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것이 훨씬 더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바다에 이르기까지 약 400킬로미터나 되는 길고도 지루한 여정을 택하였다. 그러나 거쳐갔던 장소들을 순회함으로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전에 뿌렸던 말씀의 씨를 더 멀리까지 뿌릴 기회를 얻었다. 안디옥과 이고니온에 사는 유대인들의 적개심은 사도들이 더 이상 신변에 위협을 당하지 않고 그 도성들을 다시 방문할 수 있을 만큼 진정되었을 것이다. 도성의 어떤 지역에서는 관료들이 임기를 마치고 다른 관료들이 후임자로 부임했던 것 같다. 참조 302쪽 지도.

 

22. 굳게 하여. 강하게 하여.” 후대에 보편화된 교회의 견진성사(堅振聖事)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여기서 바울의 행동은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22:32)고 베드로에게 한 예수의 위탁과 조화된다. 바울은 자신이 겪은 시련과 거기서 구원받은 경험에서 얻은 경고와 권고로 굳게 할수 있었다.

이 믿음. 여기서 이 말은 믿음 곧 믿고 가르침받은 것에 대한 신앙의 객관적인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신조 체계를 뜻하는 믿음이라는 단어는 이후 사도들의 문헌에 같은 의미로 등장하는데(참조 딤후 4:7; 3, 20) 여기서도 유사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행 13:1-16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내용 요약

  1. 구브로 섬에서 생긴 일 (4-12)
  2.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생긴 일 (13-52)

 

배 경

우리는 이제 사도행전의 셋째 단계, 즉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 단계에 들어간다. 드디어 복음이 팔레스틴을 넘어서 이방의 지역으로 전파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제13장부터 그들의 힘찬 발걸음 소리를 듣는다. 안디옥에서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던 바울과 바나바는 성령의 세우심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기 위한 거보를 내딛는다. 10년에 걸친 전도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기를 배웠다. 그들의 마음은 멸망하는 영혼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충만하였다. 잃어버린 양을 찾는 충실한 목자들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안일과 편의를 생각지 아니하였다. 자아를 잊어버린 그들은 피곤하고, 주리고, 추울 때에도 흔들리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한 가지 목적, 곧 양의 우리에서 떠나 방황하는 자들의 구원만을 바라보았다.(행적 169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다른 사람의 격려로 인하여 용기를 얻고, 다시 일어선 경험을 나누어 보아요.
  2.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일을 수행하다가, 익숙하지 않는 환경으로 중도포기 하고 싶었던 경험이 있으면 나누어 보아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안디옥교회 구성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요?(13:1)<주석참조>
    (안디옥교회의 구성원이 오늘날 교회공동체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2. 성령께서 왜 두사람을 짝지어 보내셨을까요? (13:2)

  3. 다메섹의 경험 후 10년만에야 전도여행을 떠나는 바울의 감화를 생각해 보아요. 그 동안의 기간은 헛된 기간이었을까요?

  4. 지도를 보면서 일차여행의 여로를 따로 공부해 보아요.
    • 1차 전도여행은 2년의 세월이 걸린(A.D. 45-47) 5,000리 길의 여행이었다.
  5. 구브로에서 생긴 일들을 말해 볼까요? (4-12)

  6. 버가에서 마가는 왜 돌아갔습니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13:13)

  7.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의 설교를 정독하고 내용을 요약해 보세요.(시간에 여유가 있는 조는) 이것은 바울의 첫 공식 설교이며 대표적인 설교입니다.
    ① 17-22
    ② 23-25
    ③ 26-37
    ④ 38-41

 

생각해봅시다.

  1. 성령께서 쓰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봅시다.

  2. 핍박가운데서 누리는 기쁨은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의 성령이 바울의 말에 함께 하셨으므로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다. 구약의 예언들을 통한 사도의 호소, 그리고 그 예언들이 나사렛 예수의 봉사에서 성취되었다는 그의 선언은 약속된 메시야의 초림을 사모하는 많은 영혼들에게 확신을 주었다.
(행적 172p)

 

  1. 선지자들과 교사들. 특정한 성령의 은사를 행사하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행정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장면이 여기에 처음 나온다. 안디옥에 공식적인 교회 조직이 분명 있었으나 그것에 대한 명확한 지적이 없다. 여하튼 성령에 속한 사람들이 적극적인 기능을 담당했음이 분명하다.
    신약에는 이런 사람들이 구분된 집단으로 다뤄지긴 하지만 공식 계층으로 조직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신령”(참조 갈 6:1)하다는 의미에서 “영적”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제대로 기능하는 성령의 은사가 있음을 입증해야 했다. 후에 2세기 기독교 문헌에는 이들이 프뉴마티코이(pneumatikoi) 즉 “영적인 [사람들]”이라는 계층으로 등장한다. 결국 그들은 “거짓 선지자들”(참조 요일 4:1)의 출현과 선출된 관료 즉 장로나 감독의 압력으로 사라졌으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성령의 은사에 관한 언급을 더 보려면 고전 12장 주석을 참조하라.바나바. 참조 4:36 주석; 9:27; 11:22.
    시므온. 시므온 또는 시몬이라는 이 사람의 이름은 그가 유대인 출신이었음을 나타낸다. “니게르”라는 별칭은 “검은”이라는 뜻의 라틴어 형용사로서, 거무스름한 피부색 때문에 그렇게 불렸을 것이다. 유대인은 자신의 유대 이름에 이방 이름을 덧붙이는 경우가 자주 있었는데, 요한 마가, 시몬 베드로, 요세 바나바,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참조 9절 주석)이 그 예이다. 이 별칭은 동명이인들과 구분하기 위해 시므온에게 붙였을 것이다.
    구레네 사람 루기오. 이 사람이 구레네 출신이라는 것은, 그가 그곳에 살고 있던 많은 유대인 중 한 사람일 수도 있고, 안디옥에 사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처음 전한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11:20) 중 한 명일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그는 롬 16:21에 언급된 “누기오”일 수도 있다. 구레네가 의학으로 유명했다는 점과 루기오와 누가라는 이름을 서로 바꿔 쓸 수도 있음을 보여 주는 명각의 증거를 근거로 이 사람을 사도행전의 기자인 의사 누가로 간주하는 저술가들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보는 것은, 루기오가 로마인들 중에 매우 흔한 이름이었으며 두 명 이상의 유명한 그리스도인이 사용했을 것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지극히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마나엔. 히브리어 이름 므나헴의 헬라어 형태.
    젖동생. 헬라어 쉰트로포스(suntrophos). 이 단어는 마나엔의 어머니가 헤롯의 유모였을 것이라는 점에 비추어, 마나엔이 헤롯의 수양 형제였거나 헤롯과 함께 양육되었거나 단순히 헤롯 왕실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었음을 뜻할 수 있다. “분봉왕 헤롯”은 예수가 “저 여우”(눅 13:32)라고 불렀던 통치자 헤롯 안티파스일 것이다(참조 마 14:1; 눅 3:19; 23:7~12; 참조 제10권, 72, 73). 요세푸스(Antiquities xv. 10. 5)는 헤롯 대왕이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므나헴 또는 마나엔이라는 엣세네파 사람 한 명을 언급한다. 탈무드에는 헤롯 대왕을 섬겼던 것으로 보이는 므나헴에 대해 나와 있다(참조 Talmud H.agigah 16b, Soncino ed., 108). 이 이름을 밝힌 것은 마나엔이라는 이름이 헤롯 일가의 혜택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 있었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헤롯 안티파스와 형제 아켈라오는 로마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안디옥의 마나엔도 그들과 그곳에 동행했을 수도 있다. 그가 언제 또는 어떻게 그리스도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 교사로 일한 그의 활동은, 침례자 요한을 살해하고 예수를 조롱했으며 본 이야기의 시점보다 몇 해 전에 갈리아로 불명예스럽게 추방당했던 헤롯 안티파스의 행적과는 현저하게 대조된다.
    사울. 다소 사람 사울은 천년 전의 사울 왕(삼상 10:11, 12)보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선지자들 중 하나”(삼상 10:11, 12)이다. 사울의 이름은 목록의 맨 마지막에 나온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헬라어 구절의 구문상 앞에 나온 세 명은 선지자이며 뒤의 두 명은 교사임이 암시되어 있다. 사울은 당시에 선지자의 은사를 아직 활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2. 성령이 가라사대. 성령이 행 20:23처럼 그분의 뜻을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셨다.
    일을 위하여. 원래 명령을 성령이 내린 점을 감안할 때 제1차 선교여행의 전반적인 노정도 성령이 윤곽을 잡았다고 추측할 수 있다. 교회가 이러한 선교여행 계획을 연구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이 확실하다.
    바나바와 사울. 앞서 나온 사울과 바나바의 교우 관계에 대해서는 9:27; 11:25, 26을 참조하라. 처음부터 사울은 “택한 그릇”(참조 9:15 주석)으로 불렸으며 하나님은 그가 광범위한 선교 봉사를 하도록 계획하였다. 두 사람이 전부터 가까웠다는 점에서 보면 바나바가 사울의 동역자로 선택된 것은 필연적이었다. 그 당시까지 이 둘은 교회의 선지자와 교사로 봉사하였다. 이제 그들은 영감받은 명령의 권위에 따라 독특한 사명을 위해 파송되며, 이방인을 위한 사도 직무를 위하여 구별되었다.
    따로 세우라. 헬라어에는 불변사(不變詞) 데(de-)가 이 동사 뒤에 나오는데, 이는 이 명령이 분명하고 즉시 실행되어야 함을 나타낸다. 바나바와 사울은 새로운 일을 위해 구별되어야 했다.

  3. 실루기아. 이 성읍은 오론테스 강 하구 근처 안디옥에서 약 24킬로미터 지점에 있으며 안디옥을 위한 항구였다. 실루기아는, 이 성읍의 설립자이며 셀류쿠스 제국을 세운 알렉산더의 장군 셀류쿠스 Ⅰ세 니카토르(Seleucus Ⅰ Nicator, BC 280년 사망)의 이름을 따서 건립되었다.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선교사들이 구체적인 지시를 받지 않았다면, 구브로가 바나바의 출생지였기 때문에 그곳을 첫 방문지로 택한 것이 확실하다. 그곳의 주민은 대부분 헬라인들이었다. 구브로 사람들은 아프로디테 즉 비너스가 그곳의 수호여신이라고 공언하였다. 아프로디테 숭배의 중심지는 바보(Paphos)에 있었는데 그 신전의 창기-여사제들의 음란함으로 유명하였다. 금속인 쿠프룸(cuprum) 곧 “구리”(copper)라는 말이 이 섬의 이름에서 유래되었고, 수리아에서 가까운 항로에 위치한 구리 광산은 많은 유대인들을 매혹시켰다. 이곳은 그리스도인 순회 전도자들을 통해 복음이 이미 전파되었던 곳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11:19). 또한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회심한 구브로 사람들 중에 기독교 기별을 고국에 가지고 돌아간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4. 살라미. 섬 동쪽 끝에 위치한 이곳은 실루기아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운 구브로의 항구였다.
    여러 회당. “여러 회당”이라고 복수로 표현한 것은 상당수의 유대인 주민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유대인들에게 먼저 전한다는 일반적인 규칙에 따라서(46절) 사도들은 당연히 여러 회당에서 초기 접촉을 시도하였다. 회당 예배에서는 바울과 바나바 같은 방문객들에게 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특별히 제공되었다(참조 제10권, 63~65).
    요한. 즉 마가 요한으로, 바나바의 사촌이다(참조 골 4:10 주석).

  5. 섬 가운데로.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는 “온 섬 가운데로”라는 독법을 증거한다. 바울과 바나바는 섬을 횡단하며 여러 곳에서 가르쳤을 것이다.
    바보. 바보는 구브로 섬 서단에 놓여 있다. 이곳에는 아프로디테에게 헌정된 신전으로 유명한 옛 도성이 있었지만, 바울 시대에 북서쪽으로 약 1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새 도성이 건설되어 구브로의 로마 총독의 사령부로 사용되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른 곳이 바로 이 새 도성이었다.
    바예수. 유대인 이름임이 분명하지만,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들은 정확한 헬라어 철자가 무엇인지에 대해 엇갈리게 나타나므로 히브리어나 아람어의 정확한 의미를 결정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은 “여호수아의 아들”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참조 마 1:1 주석).

  6. 서기오 바울. 티베리스(Tiber)의 평의원으로 봉직했던 사제들인 아르발 형제단(Arval Brethren)을 열거한 AD 35년경 라틴어 명각에는 “루[기오] 서기오 바울”(L[ucius] Sergius Paulus)이 포함되어 있다. 비록 이 사람을 본 이야기에 나온 총독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들이 동일한 사람이며 서기오 바울이 구브로로 파송되기 전에 로마의 사제였을 가능성도 있다. 구브로의 솔리(Soli)에서 나온 또 다른 명각은 “총독 바울” 시대에 기록된 명각임을 밝힌다. 학자들은 되풀이하여 이 총독과 사도행전의 서기오 바울을 동일 인물로 보려고 했으나, 그 명각의 연대가 제1차 선교여행 때와 일치할 수 없다는 것이 최선의 견해다. 아마도 그것은 몇십 년 전에 구브로를 통치했던 총독을 가리킬 것이다. AD 90년경에 저술한 대(大)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가 그의 저서인 박물지(Natural History) 곳곳에서 서기오 바울을 자신의 최고 상관으로 언급한 것으로 생각해 왔지만, 이 문서에 대한 비평적인 연구를 통해 거기에는 한 명 이상의 서기오 바울이 언급되었음이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서기오 바울에 대해서는 누가의 기록 외에는 확실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7. 엘루마. 이 이름의 의미에 대하여 학자들이 여러 가지로 추론했지만 최종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이것은 아마도 “박수”나 “마법사” 같은 의미를 지닌 셈족 단어일 수도 있다. 이 경우에 “번역하면”이란 구절은, “엘루마”가 “바예수”의 번역된 이름이 아니라 단순히 그가 박수였음을 첨언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저희를 대적하여. 협잡꾼은 자신이 총독에게 끼치던 영향력을 상실할까봐 두려워하였다. 엘루마는 자신의 희생물이 풀려나 박수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복음에 대한 믿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목도하자 이 변화를 저지하기로 결심하였다. 얀네와 얌브레는 다소 비슷한 상황에서 동일한 사단의 노력으로 모세를 대적하였다(딤후 3:8).
    못하게 힘쓰니. 엘루마와 서기오 바울 모두 사도들이 살라미에 도착한 후로 그들의 기별에 대해 많이 들었겠지만, 여기서 서기오 바울은 아직 그리스도의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수는 총독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보고 바나바와 사울을 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 했다. 하지만 총독은 굳게 결심하고 자기 앞에 사도들을 데려오도록 했다.

  8. 바울이라고 하는. 여기서 이방인의 사도로 가장 잘 알려진 이름이 처음 소개된다. 사울과 바울의 이름에 관한 언급은 제7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설명 2를 참조하라.
    성령이 충만하여. 이곳의 헬라어 분사의 시제에는 영적 능력의 갑작스런 임재가 암시되어 있어서 단번에 품성에 대한 통찰과 의분과 하나님의 징벌이 내릴 것임을 나타낸다. 엘루마에게 내려질 형벌이 성령을 통해 사도에게 보였을 것이다. 바울은 동일한 원천을 통해 자신이 말하려는 내용이 실현될 것도 알았다.
    주목하고. 헬라어 아테니조(atenizo-). “응시하다.” 다메섹 도상에서 보았던 강렬한 광채로 바울의 시력에 장애가 생겼기 때문에 이러한 응시가 필요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누가는 놀라서 혹은 유심히 쳐다보는 것같이(참조 행 3:4; 눅 4:20; 22:56), 정상 시력을 지닌 사람들이 한곳을 고정하여 응시하는 데 이 헬라어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엘루마는 주목받을 필요가 있었는데, 이는 그가 사도들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데 어떠한 방법이라도 동원할 태세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은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가차없이 정죄했다.

  9. 마귀의 자식. 참조 요 8:44 주석. 마귀가 거짓의 아비인 것처럼, 속임수를 쓴 엘루마도 이런 모욕적인 칭호로 불려질 만한 사람이었다. 바예수라는 이름이 “여호수아의 아들”(“여호와는 구원이다”라는 뜻의 이름, 참조 6절 주석)이라는 뜻이라면, 여기서 바울이 그의 성격을 묘사한 것과는 특별히 현격한 대조를 이룬다.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엘루마의 영향으로 하나님의 참된 도가 왜곡되고 와전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곧은 길을 교활한 사람의 굽은 길로 바꾸어 놓았다. 이것은 이사야가 묘사한 대로 고르지 않은 곳을 평탄케 하여(사 40:4) 주의 길을 진실로 준비하는 것의 정반대였다.

  10. 주의 손. 참조 행 11:21 주석; 출 9:3; 삿 2:15. 서기오 바울이 엘루마에게 한 질문은 유대인의 신앙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엘루마는 총독에게 하나님을 알도록 가르치는 대신에 자신의 주장에 따라 총독을 잘못 인도하였다. 엘루마가 주의 도를 곡해하였기 때문에 그분의 손이 그에게 임하려고 하였다.
    네가 소경이 되어. 이것이 가장 적합한 심판인 까닭은 엘루마가 진리의 빛에 대항했기 때문이다. 엘루마가 받은 형벌의 형태는 사도 바울의 이전 경험과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바울은 외적으로는 눈이 멀었으나 내적으로는 하늘로부터 오는 빛에 의해 계몽되었다(참조 9:9 주석). 엘루마가 한동안 눈이 멀었지만 모든 사람에게 비치는 “참빛”(요 1:9)을 여전히 영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얼마 동안. 실명이 일시적이었다는 것에는 이것이 형벌뿐 아니라 의도된 교정책이었음이 암시되어 있다. 엘루마에게 가해진 형벌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받은 형벌보다는 가벼웠는데, 만약 그 부부의 그런 소행이 계속된다면 그로 인해 교회에 파멸이 초래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죄는 구브로의 마법사에게 임한 빛보다 더 큰 빛에 대항한 것이었다.
    안개와 어둠. 이 단어들의 순서에는 시력이 점차 감소되었음이 나타나 있다. 처음에 엘루마의 눈이 흐려졌다가 이윽고 멀게 되었다. 이런 꼼꼼한 기록에는 누가가 의사 교육을 받았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참조 행 9:18 주석; 골 4:14).

  11. 총독. 총독은 이적을 보고 이어진 말씀을 들었다. 그는 사도들이 더 위대한 능력을 보여 줬다고 믿고 엘루마가 가르쳤던 것보다 분명 더 뛰어난 기별을 받아들였다.
    주의 가르치심.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
    기이히 여기니라. 즉 “놀라더라.” 여기서 이 단어는 마 7:28에서처럼 복음을 듣고 기뻐 놀람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12.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 밤빌리아는 소아시아 남해안 중간 지점쯤에 있는 작은 지역이었다. 바울이 방문하기 직전인 AD 43년에 이곳은 서쪽 인근 루기아와 합병되어 하나의 제국 직할 속주를 형성하였다. 버가는 이곳의 주요 도성으로서, 바다에서 약 13킬로미터 떨어진 체스트루스(Cestrus) 강가에 있었다. 당시 이 도성에서의 전도 사역에 대하여 누가가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곳에 회당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한 마가가 떠나고 착잡해진 마음에 바울과 바나바는 계속 나아갔을 것이다. 그들은 돌아오는 길에 버가에서 복음을 전했다(참조 14:25).
    요한은…떠나. 즉 요한 마가(참조 5절 주석). 요한이 왜 떠났는지 어떠한 단서도 없다. 아마도 그는 여정의 위험과 고난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요한 마가는 두 번째 복음서의 기자와 동일 인물일 것이다. 그는 후일 그리스도의 열성적인 일꾼이 되었다. 바울은 후에 애착을 갖고 그에 대해 말했으며(골 4:10), 마지막 투옥 기간 중 그를 보고싶어 했다(딤후 4:11). 누가가 왜 요한 마가가 떠났는지 알았을지라도 훗날 마가의 성공적인 경험을 존중하여 그 이유를 여기서 밝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13. 버가로부터 지나. 바울과 바나바의 행로는 북쪽으로 체스트루스 강 지류 중 하나를 따라 갈라디아 도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들은 안디옥에 이르기 위해 밤빌리아 전체를 거슬러 올라가 갈라디아 남서쪽 모서리를 “지나갔다.”
    안디옥. 비시디아는 바울 당시 일개 관구(管區)에 지나지 않았으며 AD 3세기 말이 되어서야 속주로 승격했다. 이 안디옥은 비시디아에 없었으며 브루기아 지역 근처에 있었다. 그러나 BC 39년에 이곳은 비시디아 왕의 통치를 받게 되었고 동일한 이름의 다른 도성들과 구별하기 위해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신약 시대에 이곳은 갈라디아 도에 포함되었다.
    안디옥은 셀류쿠스 Ⅰ세 니카토르(Seleucus Ⅰ Nicator; BC 280년 사망)가 건설한 많은 도성 가운데 하나로, 자신의 아버지 안티오쿠스의 이름을 따서 이렇게 명명하였다. 이곳은 해발 1097미터 정도 되는 타우루스 산맥의 하부 비탈에 있다. 이곳 사람들은 아구스도 통치 때에 로마 시민권을 받았다. 안디옥은 상당수의 유대인들의 마음을 끌었을 것이며 이로 인해 이방인들이 유대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42절).
    이 여행에서 바울과 그의 일행은, 그가 고후 11:26에서 언급한 “강도의 위험”에 노출되었던 것 같다. 안디옥에 이르기 위해 그들이 통과했던 비시디아는 북쪽으로 갈수록 점차 높아지는 산악 지역이었다. 스트라본(Strabo, AD 24년경 사망; Geography xii. 7. 2)은 이 지역에서 자주 발생한 약탈에 대해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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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2:1-19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 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내용 요약

  1. 야고보의 순교 (1-2)
  2. 베드로의 투옥과 탈옥 (3-19)
  3.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죽음 (20-25)

 

배 경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기까지는 또 한 사람의 순교자가 있었다. 헤롯대왕의 손자 헤롯 아그립바 I세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야고보를 목베어 죽였다.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자 그는 베드로도 죽이려고 투옥했다. 예루살렘교회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극심한 시련이 다가오고 있었다. 신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시 34:7, 개정)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위기에 몰렸으나 태평스러웠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 보아요.

  2. 천사의 도우심이라고 생각되는 사건들이 있다면 나누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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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더욱 자세히

  1. 야고보는 누구입니까?
    ① 가족관계 (마 4:21)    ② 별명 (막 3:17)    ③ 그의 죽음 (행 12:2)

  2. 베드로는 얼마나 철저히 감시를 받았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2:4-6)
  3. 베드로가 옥에 갇히고, 교회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12:5) 그들이 한 일은 교회가 어려울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제시해 주나요?

  4. 베드로는 얼마나 깊이 잠들었습니까? (12:7)
    그 절망적인 밤에 예루살렘에서 잠을 잔 그리스도인은 베드로밖에 없었다고 한다. 내일로 다가온 죽음을 앞에 두고 베드로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얼마나 깊은 신뢰인가? 얼마나 확고한 믿음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자는 베드로와 비교해보라(막 14:36-37).
  5. 다락방의 사람들은 베드로가 살아 돌아온 것을 믿었습니까(12:13-16)?
    기도를 하고서도 그 응답을 믿지 못하는 것으로 봐서 그날 밤의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이었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기도를 드리면서도 그렇게 믿지 못하지는 않습니까?
  6. 교만한 헤롯의 최후에 대해 말해 보시오(12:20-23)​

생각해봅시다

  1. ​권력과 출세 중심인 헤롯의 삶과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바치는 야고보의 삶을 비교해서 생각해봅시다. 어느 쪽이 나의 삶과 더 가깝게 느껴지나요?

  2.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믿지 않는 우리의 행동이 있나요?

모든 하늘 천사들은 겸손하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을 위해 봉사하고 있으므로, 이 지상에 있는 주의 일꾼들의 군대가 찬양의 노래를 부를 때에, 하늘 찬양대는 그들과 연합하여 하나님과 그 아들에게 찬양을 돌린다.
우리들은 천사들의 사명을 지금보다 더욱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모든 하나님의 진실한 자녀들은 하늘 존재들의 협력을 받고 있음을 기억함이 좋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빛과 능력의 군대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구하는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들과 동행하고 있다.(사도행적 154p)

 

 

1. 그때에. 여기서 이야기하는 사건은 헤롯 아그립바 Ⅰ세의 사망 직전에 일어났을 것이다(참조 20~23절). 그가 AD 44년에 죽었기 때문에, 이 장의 초반부 사건들은 아마도 AD 44년 이전 해이거나 당해 초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

헤롯왕. 헤롯 아그립바 Ⅰ세는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와 베레니체(Berenice)의 아들이었고, 헤롯 대왕과 하스몬 가문의 공주인 마리암네(Mariamne)의 손자였으며, 침례자 요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헤로디아(Herodias)와 남매지간이었다(참조 제9권, 51). 그의 이름은 아구스도(Augustus)의 총리였던 정치가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 그는 자신의 부친이 BC 7년에 조부 헤롯 대왕의 의심으로 희생된 후(제9권, 53)에, 일면으로는 볼모로, 다른 일면으로는 그가 음모에 연루되는 것을 막기 위해 로마로 보내졌다. 거기서 그는 칼리굴라와 글라우디오의 친구가 되었는데, 후에 그 둘은 모두 황제가 되었다. 헤롯 안티파스가 헤롯 아그립바의 누이 헤로디아와 결혼했을 때, 아그립바는 디베랴의 시장(市場) 감독관이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안티파스와 다투고 로마로 갔다. 거기서 그는 자기 친구 칼리굴라가 황제가 되었으면 하는 성급한 소원을 드러내 디베료의 노염을 사게 되었다. 그는 디베료의 명으로 투옥되어 이 황제가 죽을 때까지 감금된 채로 있었다. 칼리굴라는 디베료를 이어 황제의 위에 올랐을 때 자기 친구 아그립바에게 명예를 주어, 먼저는 빌립의 영지를, 그 뒤에는 루사니아의 영지(눅 3:1)를 주고 왕의 칭호를 부여하였다. 안티파스가 물러났을 때(참조 제10권, 73), 아그립바는 안티파스의 영토도 상속하였다. 그의 통치의 개관에 대해서는 제10권, 78을 참조하라.

2. 야고보를죽이니. 사도가 신성모독이나 이설이라는 죄명을 받았다면, 산헤드린은 그에게 돌로 쳐죽이는 형을 언도했을 것이다. 침례자 요한의 경우처럼(마 14:10), 사도 야고보의 참수형은 그의 죽음이 로마의 처형 방법을 채용했던 국가 통치자에 의해 언도되었음을 입증한다(참조 마 20:23). 헤롯이 야고보를 왜 그의 첫 희생자로 지목해야 했는지는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했을 때 복음 전도 이야기에서 베드로와 요한과 공유했던 중요한 위치를 지속적으로 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천성적인 열정으로 인해 눈에 띄었을지도 모르는데, 이는 그가 우레의 아들로 불렸기 때문이다(막 3:17).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로부터 전달되어 유세비우스(Eusebius)가 보존한 전승(Ecclesiastical History ii. 9)에 의하면 야고보를 고발한 자가 희생자의 믿음과 인내를 보고 회심했다고 한다.

야고보는 그리스도 승천 이후 단 1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봉사했다. 사도들 중에 그가 가장 먼저 죽은 반면에, 그의 형제 요한은 아마도 12명 중 가장 마지막으로 죽었을 것이다.

3. 유대인들이…기뻐하는. 이것이 아그립바의 목적이었다. 요세푸스도 이것을 주목한다. 그는 아그립바를 안티파스와 비교하면서, 안티파스는 “유대인보다 헬라인에게 더 호의적이었”지만 아그립바는 안티파스와 “전혀 같지 않았다”라고 말한다(Antiquities xix. 7. 3).

민중의 칭송 혹은 비난에 대한 이 왕의 예민함을 예증하는 한 사건이 미쉬나에 나온다(Sotah 7. 8; Soncino ed. of the Talmud, 202). 어느 안식년 장막절에, 아그립바 왕이 율법을 읽고 있었다. 그가 “네 형제가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라는 신 17:15 말씀에 이르렀을 때, 자기의 후손인 이두메 사람들을 생각하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사람들은 그가 우는 것을 보고 그가 하스몬가를 생각하는 줄로 알고 “당신은 바로 우리 형제요! 당신이야말로 우리 형제요!”라고 부르짖자 왕의 마음이 위로받았다.

만약 아그립바가 기쁘게 하려던 대상이 주로 유대 지도자들이 아니었다면, 분명 이 이야기는 2:47과 5:26에서 명백하게 드러난 대로 사도들을 지지하는 초기 대중적인 정서에 큰 변화가 발생했음을 암시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 변화는 교회 구성원의 급격한 증가로 야기되었다.

무교절.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눅 22:1)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표현은 유월절 전체 기간을 가리킨다.

4. 네 패. 한 패(quaternion)는 보초 근무를 서는 4명으로 이뤄진 분대였다. 두 병사는 죄수와 함께 묶여 있고 두 병사는 서서 외부를 감시했을 것이다(참조 10절 주석). 이렇게 4명으로 이뤄진 분대는 분명히 교대로 베드로를 담당하도록 명령받았을 것이다.

5. 간절히. (「제임스왕역」에는 “without ceasing”[쉬지 않고]). 헬라어 엑테노스(ekteno-s). “간절히.” 겟세마네에서 드린 예수의 기도를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눅 22:44)와 동일하다. 이 단어는 벧전 4:8에서는 “열심으로”라고 번역되어 강렬함을 나타낸다. 교회의 일반적인 상황으로 보아 이 기도들은 사가(私家)에서 그리스도인 무리가 드린 것으로 추측될지 모르는데(행 12:12), 이는 아그립바의 핍박이 공개적인 그리스도인 예배를 위협했기 때문일 것이며, 이는 그리스도교 초기에 흔한 사례였다.

6. 베드로가누워 자는데.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말씀에 나타난 대로(시 127:2), 사도가 다가오는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잠잠히 휴식을 취하는 것을 보는 것은 신앙에 영감과 도전을 준다.

7. 쇠사슬이벗어지더라. 베드로는 분대 소속 병사 두 명에게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쇠사슬이 그의 발목과 손목에서 벗겨져 떨어졌지만, 보초들은 깨지 않았다.

9. 알지 못하고. 베드로에게 이 상황은 분명히 10장에 기록된 생생했던, “비몽사몽” 중에 본 환상과 매우 흡사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는 마치 전에 기도하는 중에 지붕에서 환상을 보았다는 사실을 깨어난 후에야 깨달았던 것처럼, 깨어난 후에 자신이 두 병사에게 쇠사슬로 묶여 있는 것을 보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10. 파수. 헬라어 퓔라케(phulake-). “첫째와 둘째 파수”는 감옥의 안쪽 문 근처와 약간 더 떨어져 있는 다른 문에 배치된 보초들을 가리키거나, 아니면 그와 함께 쇠사슬에 묶여 있던 보초와 문에 있었던 다른 보초들(참조 4절 주석)을 가리킬 수 있다. 베드로는 안쪽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안뜰 둘을 지나서 나와야 했다.

절로. 이 말은 인간적인 힘이 사용되지 않았음을 뜻한다(참조 레 25:5). 보이지 않는 천사가 문을 연 것이 분명하다.

누가가 이 기적을 간결하면서도 꾸밈없이 기록한 사실은 이 기록의 정확성을 입증한다.

12. 요한. 베드로가 마가를 그의 “아들”(벧전 5:13)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 젊은이는 베드로를 통해 회심했을 것이다. 라틴어 이름 마르쿠스(Marcus)는 로마인 혹은 로마계 유대인과 어느 정도 접촉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마리아. 이 마리아는 바나바와 친척이다(참조 골 4:10. 마가가 “바나바의 생질”이라고 되어 있지만, 헬라어로는 “바나바의 사촌”을 의미한다). 마가의 아버지가 언급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마리아는 과부였을 것이다. 기도회 장소로 교회에 대여해 줄 만큼 큰 집을 가졌던 점을 볼 때, 마리아도 바나바와 마찬가지로(참조 행 4:36, 37) 상당한 재산을 소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모여 기도하더라. 아마도 이러한 모임은 마리아의 집에서 흔히 있었을 것이다. 베드로가 감옥에서 구출되었을 때 일단의 무리가 그의 구원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는데(참조 5절), 이는 교회가 위기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3. 로데. “장미”라는 뜻의 흔한 헬라어 이름. 로데는 이 사건 외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녀만큼 잘 알려진 하인은 거의 없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 예수의 발을 씻겼던 마리아 그리고 성전 연보궤에 두 렙돈을 넣었던 이름 모를 과부처럼, 로데는 1900여 년 동안 모든 성경 독자들에게 알려졌다.

영접하러. 여기에 위기감이 풍기는데, 이는 아그립바가 유대교에 대한 열심 때문에 제자들에게 가한 핍박으로 인한 위기였다. 사울이 일전에 모든 집에 들어가 남녀를 감옥으로 체포했는데(8:3), 이때도 그와 유사한 위험을 내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로데가 들어가기를 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 전에는 문을 열어 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14. 베드로의 음성. 헌신적이고 용감한 십자가의 군병을 향한 어린 여성의 그리스도인 사랑으로 그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베드로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였을 것이고, 따라서 그녀는 그의 음성을 알아챘다. 또한 베드로는 갈릴리 방언 특유의 어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전에도 어떤 하녀가 그를 알아본 적이 있었다(마 26:73).

기뻐하여. 로데가 베드로에게 문을 열지 않았던 것은 믿음의 부족이 아니라, 순수한 기쁨 때문이었다. 그녀는 베드로를 향한 형제들의 근심과 그를 위해 드려지는 기도에 함께하였다. 베드로의 탈출에 대한 기쁜 소식을 말하려는 간절한 갈망으로 인해 그녀는 침착함을 잃어버렸다. 이와 유사하게 누가는 부활의 저녁 예수를 알아보았으나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였던(눅 24:41) 제자들에 대해 기록하였다.

15. 네가 미쳤다. 베드로가 문에 서 있다는 소식을 로데가 전했을 때, 형제들은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자신들의 기도에 응답했음을 믿을 만한 믿음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어린 여성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그의 천사. 히브리서(1:14)에서 천사에 관한 유대인의 건전한 신념은 다음 질문에 표현된다. “모든 천사는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유대인은 수호 천사가 각 사람에게 배정되며, 천사가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날 때 그 사람과 비슷한 모양을 취한다고 믿었다. 구약과 신약의 중간 시대에 유대인은 복잡한 천사론(angelology)을 발전시켰다.

16. 놀라는지라. 선한 사람들조차도 기도가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응답되었다는 사실을 선뜻 믿으려 들지 않음을 보여 주는 이보다 더 좋은 예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베드로가 그들 앞에 섰을 때, 그들은 이 사람이 베드로임을 거의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믿음의 기도가 응답될 것이라는 충분한 보증을 주었다(요 14:13, 14).

17. 자기를 이끌어. 감옥에서 놓여 정신을 차렸을 때 베드로는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11절)셨다고 외쳤다. 그러나 지금 그는 자신을 구원한 분이 주님이었다고 증거하고 있다.

야고보. 할례와 관련해서 예루살렘 총회에서 의장을 맡아, 그 문제에 대해 판결을 내렸던 야고보임이 분명하다(15:13). 그는 어떤 면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수석 장로였기 때문에, 베드로가 자신의 구출 소식을 즉시 알려 주길 바란 것은 당연했다.

이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 아니면 주님의 형제 야고보일 것이다. 예수의 형제들은 예수의 지상 생애의 종반부가 돼서야, 즉 열두 제자가 선택되고 한참 후에야 그를 믿게 되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사망한 이후,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중 하나였던 야고보를 가리켜 “주의 형제”(갈 1:19; 참조 2:9)라는 명백한 호칭을 붙인다. 이 사람이 바로 여기서 베드로가 언급한 야고보일 것이다. 유세비우스(Ecclesiastical History ii. 23; Loeb ed., vol. 1, 171)는 그를 예루살렘의 감독이라고 칭하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진실의 요소를 간직하고 있는, 야고보에 관한 헤게십푸스(Hegesippus)의 회고록(Memoirs, AD 180년)을 인용한다. “주님의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모든 사람이 그를 ‘의로운 자’라고 부른 이유는, 야고보로 불린 사람이 많았지만 이 야고보는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거룩했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거나 육식을 하지 않았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으며, 스스로 기름을 바르지 않았고 목욕하지도 않았다. 그만이 홀로 성소에 들어가도록 허용되었는데, 이는 그가 양모를 입지 않고 아마포만 입었고 혼자 성전에 들어가 사람들의 죄사함을 위해 무릎 꿇고 기도드리곤 했기 때문이며, 사람들의 죄사함을 무릎 꿇어 간구하며 하나님에게 지속적으로 경배했기 때문에 그의 무릎은 낙타 무릎처럼 딱딱하게 되었다.” 전승에 의하면, 그가 그리스도를 부인하라는 요구를 거절했을 때, 그는 성전 꼭대기에 올려졌고, 그분에 대한 믿음을 붙잡겠다고 주장함으로 밑으로 던져져 돌에 맞고 곤봉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참조 제10권, 81). 요세푸스에 의하면(Antiquities xx. 9. 1) 그는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야고보서 서론을 참조하라.

18. 적지 않게 소동하니. 베드로와 함께 쇠사슬에 묶여 있던 보초들은 틀림없이 깨어나자마자 그가 사라졌음을 발견했을 것이고, 그가 도주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죽을 것임을 알았다.

이것은 베드로의 활동에 대한 성경의 마지막 기록이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그에 대해 진술한 것은 이미 언급하였다(1:18; 2:7, 8, 11, 14). 베드로는 자신의 두 서신에서 행한 일들에 대한 약간의 암시를 준다(벧전 1:1; 5:12, 13; 벧후 1:14). 이 외에는 어떤 영감된 기록에도 그에 대해 더 알려진 것은 없다. 전승에 꽤 많은 언급이 있긴 하지만, 그 주장들은 그 진위에 따라 수용하거나 거부해야만 한다. 제롬이 유세비우스의 크로니콘(Chronicon)을 의역한 진술 곧 베드로가 로마에서 25년 동안 전파했다는 말은, 베드로가 총회를 위해 예루살렘에 있었으며(행 15장) 그가 총회 직후 분명히 안디옥에 있었고(; 참조 제15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그가 친히 소아시아 북서부에서 사역했다(벧전 1:1; 참조 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iii. 1)는 사실에 비춰볼 때 매우 의문시된다. 행 8~12장에 비추어 볼 때, 이 모든 것은 AD 44년 베드로의 구출에 뒤이어 일어났을 것이다.

19. 죽이라. 문자적으로 “[그들을] 끌어내어” 처형하라. 동일한 동사가 예수의 재판과 십자가 처형에 대한 복음서 기사에서 “끌고 가니”(마 26:57; 27:2, 31; 막 14:53; 눅 23:36)라고 번역되었다. AD 529년에 공포된 한 로마법은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투옥된 죄수의 구금과 관리는 간수에게 맡겨졌고, 따라서 간수는 어떤 경우든 죄수가 도주했을 때 그에게 책임이 있다해도 일부 비열하고 야비한 피고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데, 이는 도주한 죄수가 받아온 것으로 입증된 동일한 형벌을 간수가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The Code of Justinian ix. 4. 4; in S. P. Scott, tr., The Civil Law, vol. 14, 364). 이것은 죄수가 도주하는 것을 막지 못한 간수와 관련된 법 혹은 적어도 판례로 오랫동안 존재했던 것이 분명하다. 빌립보에서, 자기의 죄수들이 모두 도주했다고 생각한 간수는 법으로 사형을 당하느니 차라리 자살하려고 하였다(행 16:27). 27:42과 비교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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