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1:18-32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20]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22]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23]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24]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
[27]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29]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30]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31]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32] 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내용 요약
1. 밀레도에서 예루살렘까지 (1-16)
2. 예루살렘에서 체포당함 (17-40)
배 경
바울은 5년 동안에 걸친 제3차 전도 여행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편견과 핍박과 투옥이었다.
그가 만일 그가 어떤 합리적인 양보로 그들을 진리로 인도할 수 있다면,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는 복음의 성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게 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요구한 만큼 양보하도록 하나님의 재가를 받지 못하였다.(행적 405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 교회에서 꼭 지켜야 할 도리는 무엇일까요? 사회생활에서 꼭 지켜야 할 도리는 무엇일까요
- 자신의 생각과 대립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한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 자신의 소심한 마음 때문에, 잘 못된 방향으로 간 적이 있으면, 나누어 보아요.
- 나는 내가 속해 있는 사회에서 분위기를 잘 맞추어 주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원칙과 법에 따라 권고를 잘 하는 사람인가요? 어느 쪽이든, 나는 왜 그렇게 행동하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 야고보와 장로들이 바울을 향하여 가졌던 우려는 무엇입니까?(21:21)
- 예루살렘 교회가 바울에게 요청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21:20-24)(민6:1~21)
- 요청에 응한 것은 하나님의 뜻일까요?(참조. 행적405p)
- 교회지도자들의 조언과 바울의 결례행위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습니까?(21:27-32)
생각해봅시다.
- 다른 사람의 믿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틀렸다고 생각될 때는 언제인가요?
-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겸허하게 잘 받아들이나요?
- 나는 나의 계획과 생각이 우선입니까? 믿음이 우선입니까?
우리는 그의 형제들과 조화되고자 하는 바울의 큰 소망, 신앙이 약한 사람들에 대한 그의 친절, 그리스도와 함께 하였던 사도들과 주님의 형제 야고보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원칙을 희생하지 아니하는 한 모든 사람에게 좋게 대하려는 그의 의도, 이 모든 것을 생각할 때 그가 지금까지 견지해온 확고하고 단호한 길에서 부득이 빗나가게 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행적 405p)
18. 야고보…장로들도 다. 가능하면 빨리 바울은 지도자로 보이는 야고보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을 방문했다. 이 사람들은 선출된 “지방” 교회 장로들이라기보다는 거기 거하고 있는 사도들(참조 14:23)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과 장로들 모두가 특별히 언급된 15:2, 4, 6을 참조하라. 분명히 “주의 형제”인 이 야고보는 예루살렘 총회의 의장이었다(참조 행 12:17 주석; 행 15:13; 갈 1:19).
19. 낱낱이 고하니. 문자적으로 “하나씩 말하기를 계속했다.” 행 15:3; 잠 15:30과 비교하라. 바울의 보고는 장로들에게 18:22의 예루살렘 방문 이래 그가 경험한 일들을 알리고,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서 팔레스타인의 가난한 유대인 그리스도인에게 온 구제품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하고 있었을 것이다.
20. 유대인 중에…수만 명이 있으니. 유대인 중에서 이루어진 복음 전파의 놀랄 만한 진전을 알려 준다. 그러나 이 어림 숫자에는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 회심자들 이상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처럼 수많은 유대인이 오순절을 위하여 거기에 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자들의 “무리”에 관해서는 6:1, 7; 9:31; 11:21, 24; 14:1; 17:4을 참조하라.
율법에 열심 있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달리 이 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총회의 결의에 의하여 유대교 의식들에서(참조 15:19~21 주석) 자유롭게 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최소한 구약의 의식들을 실천하고 있었고, 의심할 여지없이 바리새인들의 많은 전통적 요구사항들도 따르고 있었다. 후자에 관해서는 제10권 56~58, 61, 62을 참조하라. 바울은 자신이 그의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좇아”, 즉 바리새인으로서 살았다고 묘사한다(26:5). 이 계층에서 대부분의 초기 회심자들이 나왔으나 그들은 바울과 달리 여전히 율법주의자였던 것이 분명하다.
21. 네가…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문자적으로 “네가 모세로부터 떠나게 하는 배도를 가르치고 있다.” 이는 바울에 대해 회자되고 있던 비난이었으며, 자신들의 종교에 열성적인 유대인에게 이보다 심각한 고소는 있을 수 없었다. 이것은 가장 깊은 종교적 감정뿐만 아니라 애국심, 분파심, 역사적 전통, 사회적 관계 그리고 공적인 법에 근거하여 분개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수많은 유대인(참조 20절)이 만유를 회복할 메시야로 예수를 받아들였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은 유대교 의식과 요구사항을 더욱더 고수하고 바울을 민족과 종교를 모두 배반한 자로 철저하게 두려워하여 거부했음이 분명하다.
할례를 하지 말고. 앞의 일반화를 가리키는 특정한 비난이다. 이 비난에 따르면 바울은 전통이 아니라 율법 자체에 깊이 새겨져 있는 유대인의 언약의 상징을 위반하고 있었다.
규모를 지키지 말라. 6:14 주석과 비교하라. 여기서 바울이 율법에서 파생된 세부사항들과 거기에 불가피하게 들어와 첨가된 전통적인 실천사항들을 공격했다고 생각된다. 이런 사항들은 수많은 사람이 열렬하게 믿는 엄숙한 책무였다. 편견에서 나온 폭력 때문에 반박이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유대인 자신들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에 적용하고 종교에 대한 개인의 행실에 관련지어 보면 이러한 의무들은 쉽사리 반박할 수 있었다(22:3; 23:1, 6; 24:11~16; 25:10, 11; 26:4~7, 22). 유대인들의 의식적 요구사항을 옹호하는 것에 대한 바울의 입장은 예루살렘 총회(15장)의 입장 즉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의식이든 양심의 요구에 따라 그것을 계속 수행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방인 회심자들은 그 요구에서 자유롭다고 주장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이 천국을 향해 가는 데에 율법적인 행위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롬 2:24~29; 갈 4:1~11; 5:1~6; 골 2:16~22).
바울은 자기 나름대로 법을 개인적으로 적용하여(고전 9:19~23) 특별히 유대인 중에서는 유대인처럼 살았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 교회에서 그 의식적인 실천들을 계속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했는데, 그들이 믿음의 복음에 비추어 의식의 수행이 무의미함을 깨달을 때까지 그렇게 했다(롬 14:1~10; 고전 7:17~24). 바울은 스스로 나실인의 서원을 했다(18:18). 그는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도록 했다(16:3). 바울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자녀들이 할례를 받지 않게 하라”고 가르쳤다고 비난할 근거가 없다. 그 비난은 그의 적들이 꾸며낸 것이었다.
하지만 복음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결국 유대인들로 하여금 의식의 실천사항을 더 이상 의미 없는 것으로 보고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사도의 가르침의 근본이었다. 우리 주는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를 소유하라고 가르쳤으며(마 5:20) 그들 자신을 위한 종교적인 외식을 정죄했다(마 6:1~7). 그리고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것을 주장했다(요 4:23). 바울은 사람들에 의해 개발되고 강요된,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골 2:20~22)는 식의 종교, 곧 실제로는 도덕적 및 영적 중요성도 없고(참조 롬 14:1~10; 갈 4:9~11; 히 9:9, 10) 그리스도의 삶과 희생에 비추어 볼 때 이미 그 의미가 종결된 규칙들(골 2:8~17)을 믿는 종교를 부정했다.
희생제도와 할례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제정되었다. 희생제도들은 그것이 가리킨 분이 인류의 죄짐을 진 자로서 돌아가실 때 의미가 없어졌다. 제사를 드리는 장소로서의 성소와 제사를 드리는 자들로서의 제사장들도 동일하게 그 의미를 상실했다(단 9:24~27; 마 27:51; 히 8:13; 9:11~15). 할례는 한 나라, 즉 한 민족과 하나님 사이의 계약 관계의 외적 표징이었다(롬 4:11). 할례 의식이 개인적으로 적용되었다 해도, 유아 상태에서 믿음으로 받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것은 단순히 민족적이고 국가적인 상징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봉사와 예배가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민족적이나 국가적 문제가 아니고(갈 3:28, 29; 골 3:11),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개인적 문제라는 것이 드러났을 때(롬 3:22~24; 갈 3:26, 27; 엡 2:8) 할례 의식은 그 의미를 상실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믿음의 길 곧 구원의 새 언약이 도래함으로(렘 31:31~34; 고후 3:6~9; 히 8:6~13) 옛 언약의 표인 할례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믿음으로 “힘써 여호와를 알”(호 6:3)고자 하는 유대인은 영적 삶에서 아무 의미가 없는 할례를 반드시 중단할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가르친 대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에 비추어 보면 “할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전 7:19; 참조 롬 3:31; 8:4; 요일 2:3).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서 할례(그 의식 자체를 위한 준수)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갈 5:6; 6:12~17). 유대인이나 이방인은 그들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신(엡 2:11~17)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하나이다(갈 3:16, 27~29; 골 2:9~14). 모든 사람은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엡 2:4~10; 참조 롬 3:26~30)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는다. 바울은 유대인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일 믿음과 영적 통찰력을 가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왜 은혜를 통하여 구원을 얻은 믿음의 사람이 된 내가 자녀에게 할례를 주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럴 이유가 없다. 그러나 다만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너희 형제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대답이 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믿고 실천했다. 그러므로 유대화주의자들이 바울을 고소한 것들은 거짓이었지만, 모든 유대 의식들의 장래에 대한 염려는 정당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22. 들으리니. 바울의 도착 소식은 반드시 성도들의 모임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많은 유대인 신자 가운데 퍼진 소문에 의해 전해질 것이었다(참조 20절).
23. 이대로 하라.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하는 충고가 최선이라고 믿었다. 바울을 문제에 연루시킬 의도는 없었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그가 비난받아야 했다고 그들이 생각한 것처럼 보인 편견을 없애고자 했다(사도행적, 403).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이 바울을 통하여 강력하게 역사한 것을 깨닫고, 그들 스스로가 그에 대한 반대를 없애고자 노력해야 했다.
네 사람. 이 네 사람은 분명히 유대인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구성원이었고, 이는 유대인의 의식이 여전히 유대인 회심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예증했다. 이 유대인 형제 네 명은 이미 그들의 서원을 이루어 가는 중이었으나 다른 사람은 특별히 이미 서원을 실행하는 과정에 있는 자들의 비용을 감당하는 조건으로 그 환경에 들어오도록 허락되었다.
24. 저희를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바울이 이 권고를 이행하면 하나님 앞에서 결례를 행할 필요가 있음을 묵인하는 표가 될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그가 유대인들의 용납을 얻어내는 데 도움보다는 장애가 될 수도 있었다. 이는 나실인의 금기를 시작하고 그 기간의 끝에 머리를 깎는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참조 18:18 주석).
비용을 내어. 바울은 서원을 행하고 있던 사람들의 비용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곧 레위인 이발사에게 지불할 의식상 머리를 깎는 데 드는 비용과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 일년 된 숫양, 일년 된 암양, 숫양, 무교병 한 광주리, 소제물, 전제물 등 제사에 드는 비용을 말한다(민 6:9~21).
머리를 깎게 하라. 서원의 결과로 머리가 깎이고 제물이 드려질 때 머리카락은 화목제물인 숫양 밑에서 불로 사루어졌다.
모든 사람이…알 것이라. 바울이 서원 의식에 참여한다면 그가 모세를 “배반”(참조 21절 주석)한 것이 아니고 그에 대한 모든 비난이 “헛된 것”임을 유대인에게 확신시키게 될 것이었다.
율법을 지켜. “율법”, 즉 토라는 유대인의 생각과 생애와 종교의 중심이었다. 토라, 즉 가르침은 모세의 글들에서 주어진 모든 교훈을 포함했다. 바울은 율법을 어긴 것으로 비난받았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생각하기에 바울이 유대인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가 그 율법에 신실함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25. 이방인에게는. 바울에게 결례를 행하도록 제안하는 장로들의 대변인인 주의 형제 야고보는 예루살렘 총회 의장을 맡고 있었다(15:13). 그는 바울에게 이방인의 자유에 더 이상 문제가 없다는 것과 그들이 유대인의 의식을 따를 필요가 없음을 확신시켰다. 그런 다음 그는 바울에게 자유케 하는 결의안을 상기시켰다(참조 20절 주석).
목매어 죽인 것. 이 구의 생략을 지지하는 중요한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를 제시할 수도 있다.
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바울은 유대인들 중에 유대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했다(고전 9:19~23). 그러나 그는 사실 여기서 모순적이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율법에 열심인”(21:20)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참여했기 때문이다. 사도행적, 405, 406,과 비교하라.
만기된 것을 고하니라. 즉 서원이 끝났을 때 성전에서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제사장들에게 알리는 것을 말한다. 이 기간을 마치기까지 네 사람에게 7일이 더 요구되었다(27절). 요세푸스에 따르면(War ii. 15. 1 [313]) 서원하는 기간은 총 30일이었는데 이제 그들에게 오직 7일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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