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3:1-22(23a)
[1]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7] 요한이 침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10]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 세리들도 침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하고
[14]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8] 또 기타 여러가지로 권하여 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19] 분봉왕 헤롯은 그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그의 행한 모든 악한 일을 인하여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20] 이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21] 백성이 다 침례를 받을새 예수도 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23a]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심 세쯤 되시니라
“예수께서 침례를 받기 위해 오셨을 때에 요한은 전에 어떤 사람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품성의 순결성을 그에게서 보게 되었다. 그가 계신 그 자리는 분위기까지도 거룩하고 엄숙하였다. 요한은 요단강에서 자기 주위에 모여들었던 무리들 가운데서 범죄에 대한 험악한 이야기를 들었고 숱한 죄 짐에 눌린 사람들을 만난 적은 있었으나 그처럼 신령한 감화력을 나타내는 사람과 접촉해 본 적은 결코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다 메시야에 관하여 요한에게 계시된 것과 부합되었다.”(소망, 110)
예수님의 구원의 사역은 기름부음으로 시작되었다. 그분에게 침례를 베푼 특권은 요한에게 주어졌다.
본문연구
- 1-2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각 누구이며 오늘날 어떤 지위에 비교될 수 있을까?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cf. 고위관직들의 이름을 나열한 후에 마지막으로 사가랴의 아들 요한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어떤 효과를 나타내 주고 있는가? - 3-6절에서 요한의 사명 혹을 기별을 찾아 요약해 보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7절에서 요한이 침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강하게 꾸짖었는 데, 그들이 누구였기에 그렇게 했는가?
마 3:7 참고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cf. “회개의 합당한 열매”(8절)는 10-14절에서 사람들과 세리와 군병들에게 각각 어떻게 적용되는가?
cf. 우리 각자에게는 어떻게 회개가 실천 될는지 이야기 해 보자. - 누가가 21-23a절에 쓴 예수님 침례 받으신 기록이 갖는 중요한 의의는 무엇인가?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cf. 누가의 기록에는 마태(3:13-17)와 마가(1:9-11)의 기록에는 없는 침례받으실 당시의 예수님의 나이에 관한 언급이 있다.
cf. 단 9:25절에 예언된 메시야(그리스도) 즉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출현의 시기는 에스 라 7:11-26에 기록된 아닥사스다 왕의 중건령이 내린 BC 457년부터 69이레(483년) 후인 AD 27년이다. 예수님의 탄생은 BC 4년경이며, 누가는 “30세 즈음에” 침례를 받으셨음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예언은 정확하게 30세의 해인 AD 27년에 기름부음 즉 침례 시에 성령이 부어진 사건으로 성취를 이룬 것이다.
토의사항
- 요한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말씀”(2절)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와 우리에게 임하도록 하는기 위한 준비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 요한의 기별에 사람들이 반응한 것처럼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들은 지금 무엇을 하여야 할까요? 이야기해 보자.
누가만이 예수님의 침례와 성령의 부어짐이 30세에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누가는 예수님에 관한 많은 자료들을 살피는 가운데, 구약의 예언들을 깨달았을 것이다.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벧후 1:19)

1. 디베료. 2:1에 나타난 아구스도를 제외하고, 사복음서 전반에 걸쳐 “가이사”에 대한 언급은 항상 디베료 가이사에게 적용된다. 그는 엄격한 규율, 관대한 세금제도 그리고 매우 효율적인 행정으로 알려졌다. 그는 무역과 교역을 장려했다. 갈릴리 호수는 그를 기념하여 디베랴 바다(요 6:1 등)로 개명되었다.
열다섯 해. 디베료의 통치 1년은 AD 14년 가을에 마쳐진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열다섯 해”는 AD 27년 가을에 시작하여 AD 28년 가을까지 계속되었을 것이다. 시대의 소망, 233에 의하면 예수의 침례는 AD 27년 가을에 있었고, 따라서 디베료의 “열다섯 해”의 아주 이른 시기에 있었다.
본디오 빌라도. AD 6년에 있었던 아켈라오의 파면과 추방에 뒤이어 로마가 임명한 일련의 총독들 가운데 다섯 번째 사람. 빌라도는 AD 26년경에 발레리우스 그라투스(Valerius Gratus)를 계승했지만 AD 36년경에 직권 남용의 이유로 디베료에 의하여 파면되었다. 참조 제9권, 142, 148.
헤롯. 이 사람은 자기 아버지 헤롯 대왕이 갈릴리와 페래아(Peraea)의 분봉왕으로 임명한 헤롯 안티파스(참조 마 2:22 주석)이다. 그의 어머니는 사마리아인이었다. 이 사람은 이복 형제의 부인인 자신의 조카 헤로디아와 결혼한 헤롯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반대한 결합이었고 결국 안티파스는 이 때문에 침례자 요한에게 비난을 받았다(3:19, 20). 예수는 그의 성격을 “저 여우”라고 묘사하고(13:31, 32) 그의 악한 영향을 “헤롯의 누룩”(막 8:15)으로 언급했는데, 그것은 적절한 표현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빌라도가 예수를 바로 이 헤롯 안티파스에게 보냈다(23:7~15). 그는 한낱 분봉왕에 불과했으나 실제적으로는 아버지 헤롯 대왕이 죽은 후부터 AD 39년에 폐위될 때까지 왕으로 통치했다(Josephus Anti- quities xvii. 11. 4; War ii. 6. 3 [94, 95]).
빌립. 헤롯 대왕의 아들인 헤롯 빌립(참조 제9권, 51)으로, 아마도 헤롯 대왕의 아들들 가운데 가장 공정하고 현명한 사람이었을 것이다(Josephus Antiquities xvii. 4. 6). 그는 막 6:22~25에 기록된 사건이 있은 지 얼마 후에 헤로디아와 헤롯 빌립 Ⅰ세 사이에서 태어난 딸 살로메와 결혼했다(Josephus Antiquities xvii. 5, 4). 빌립은 헤롯 가문에서 처음으로 주화에 아구스도와 디베료의 형상을 새겨 넣은 사람이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우상숭배로 간주했지만, 다행히도 빌립의 신민들은 거의 전부가 이방인들이었다. 그는 헤르몬산 기슭에 디베료 가이사와 자신을 기념하여 그 이름에 따라 가이사랴 빌립보(Caesarea Philippi)를 재건했다(Josephus Antiquities xviii. 2. 1; War ii. 9. 1 [168]). 그는 율리아 벳새다(Bethsaida Julias) 성읍을 재건했으며, 아구스도의 딸을 기념하여 그렇게 명명했다. 갈릴리 호수의 북단에 위치한 벳새다는 베드로와 안드레와 빌립의 고향이다(참조 요 1:44; 12:21). 빌립은 BC 4년부터 AD 34년까지 37년을 통치했다.
빈 들. 공관복음서 모두 요한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잘 모이는 장소를 피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그가 “광야”에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마도 요한이 유년과 청년 시절 대부분을 보냈던 유대 광야에서 요한에게 임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가 설교를 시작하고 침례를 베푼 곳은 여리고 맞은편에 있는 페래아(Peraea)이다.
요한. 오직 누가만 요한을 사가랴의 아들로 지적한다. 요한은 아마도 자신의 사역을 AD 27년의 유월절 기간에 시작했을 것이다(참조 제9권, 144).
죄 사함. 헬라어 아페시스(aphesis). 회개, 자백 그리고 용서는 침례보다 앞서며,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는 일 곧 품성의 “골짜기”를 메우고 “산들”을 낮아지게 하는 일들을 이루기 위한 첫 번째 단계들이다(눅 3:4, 5; 참조 마 3:6). 누가는 기타 신약의 모든 기자의 용례를 합한 것보다 더 자주 아페시스를 사용했다.
회개의 침례. 요한이 전파한 “회개”는 과거의 죄에 대한 자백 이상을 포함했다(참조 시 32:1). 그의 권면에 분명히 나타난 대로(3:9~14), “회개”에는 성경에 이미 계시된 의의 원칙들을 실천하는 새로운 삶이 수반되어야 했다(참조 미 6:8).
자식들 (generation). 이 말은 특별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전달되었다. 요한이 자신의 설교에 사용한, 평범하고 일상적인 시골 장면들을 강조하는 생동감 넘치는 이미지는 구약의 요엘과 아모스 같은 선지자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들을 연상시킨다.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요한은 힘있는 전도자였다. 사람들에게 주의 오심을 준비하도록 하기 위한 요한의 호소가 있은 후에 그들은 그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물었다. 그 대답으로 요한은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죄를 각 개인이나 그룹들에게 지적해 주고 각 사람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요한은 “선한 사람으로서 유대인들에게 인간 상호에 대한 의와 하나님께 대한 경건을 행하라고 명했으며 침례받기 위해 나아오라고 권면했다”(Antiquities xviii. 5. 2).
모든 사람들이. 요한의 사명은 수 세기 동안 잠자고 있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우고, 새날이 동터오고 있다는 희망으로 그들의 마음을 불타오르게 하고, 모든 시대의 소망인 오시는 분을 위하여 준비하도록 촉구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 과업에서 탁월한 성공을 거두었다. 사실, 요한은 유대 지도자들까지도 자극하여 그들이 그의 기별을 조사할 정도가 되었다(참조 요 1:19~25). “모든 사람들이” 요한에 대하여 알고 있었으며, 그에게 올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기 위해 나아왔다.
혹 그리스도신가. 유대 지도자들은 종종 예수에게 메시야라는 증거로 이적을 요구했다(참조 마 12:38; 16:1 등 주석). 그러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치 아니하였”다(요 10:41). 요한의 볼품없는 옷차림은 왕의 위엄을 닮은 데가 없었다. 사실 요한은, 선지자들이 말한 바 그리스도가 속할 유대 족속(참조 마 1:1 주석)이 아니라 레위 족속이었다(참조 1:5 주석).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가 그러한 주장을 개진하기만 한다면 메시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심지어 산헤드린 회원들조차도 그가 약속된 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참조 요 1:19~20). 유대 나라는 이보다 더 큰 찬사를 요한에게 돌릴 수 없었을 것이며, 그의 기별의 능력에 대하여 더 웅변적인 증거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메시야의 오심에 대한 요한의 선포는 너무나 효과적이어서 사람들이 그를 메시야로 오해할 정도였다!
요한을…가두니라. 요한은 2년여 동안의 사역 후, AD 29년 이른봄에 투옥되었다(참조 제9권, 142~144; 마 3:1 주석). 헤롯이 요한을 투옥했다는 사실은, 요한이 체포될 당시에 요단강의 페래아 쪽에서 설교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참조 3:3 주석).
헤롯에게는 요한이 무엇을 말하든지 사람들이 실행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였으며, 따라서 그는 민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다(Antiquities xviii. 5. 2; 시대의 소망, 360). 요세푸스는 다른 곳에서 안티파스와 결혼한 헤로디아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만 요한의 투옥이 헤로디아의 문제와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Antiquities xviii. 5. 4). 그러므로 요세푸스는 헤롯이 요한을 투옥한 이유로 일반에게 알려진 사실을 기록했을 것이다. 헤롯이 유대인들 전체가 반대하는 헤로디아와의 개인적인 문제를 요한을 투옥한 이유로 공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참조 마 3:17 주석. 베자 사본(Codex Bezae)은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여기서 누가는 예수의 참된 신성을 확언하지만 곧바로 그의 참된 인성을 증거한다(23~28절).
삼십 세쯤. 누가는 예수가 침례받을 때의 정확한 나이를 밝히지 않고 다만 “삼십 세쯤”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누가의 언급과 관련지어 말한다면, 정확하게 30세보다 한두 살쯤 많거나 적을 수도 있다. 유대인들에게 30세는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완전한 성숙에 도달하는 시기라고 여겨지며, 따라서 공적인 삶의 책임을 짊어지기에 적합한 나이였다. 참조 제9권, 141, 142.
예수의 탄생이 BC 5년 가을에 있었다면(참조 2:6, 8 주석), 유대인들의 계산법에 따라(참조 2:42 주석) 그의 서른 번째 해는 AD 25년 가을에 시작되어 AD 26년 가을에 마쳤을 것이다(참조 1절 주석). 이것은 예수가 30세“쯤” 되었다는 누가의 대략적인 진술과,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해 알려진 모든 연대기적 자료들에 완전히 조화된다. 그러므로 누가는 여기서 정확한 연대기적 진술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예수가 침례를 받고 그의 공적 봉사를 시작할 무렵 성숙한 나이였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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