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선교센터교회


안식일학교

경배와 찬양 다같이
찬       미 83장
시작기도 기도자
환       영 안교장
특별순서  
교과공부 각 반
헌금소개 사회자
축       도 담임목사

 

기억절 4기 6과 (일몰 : 5시 27분)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10).

 

11월 시무 안내
시       무 : 이상훈
헌금봉사 : 백지원 함주원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1 박다정 양의식
7 임태훈 소그룹 8 정찬우 권세진
14 김진수 소그룹 15 심정은 배승환
21 권하린 소그룹 22 정희원 김유민
28 김미현 소그룹 29 박인앙 김형준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15장
대 표 기 도 정찬우 청년
특 별 찬 양  
설        교 권세진 목사
찬        미 377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캠퍼스 소식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특별히 말씀을 위하여 방문하신 양의식 목사님을 환영합니다.
  2. 연말찬양발표회 찬양 연습
    일시 : 토요일 오후 2시~3시
    장소 : 1층 본당
  3. 액트협회 총회
    일시 : 11월8일(안)~9일(일)
    장소 : 비전센터
  4. 정기직원회
    일시 : 11월15일(안)
    각 부서는 안건을 미리 목회실 또는 서기에게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5. 침례식
    일시 : 11월15일(안)
    침례대상자 : 김승현, 차태성
  6. 동액트 가을 MT
    일시 : 11월22일(안)~23일(일)
    장소 : 원주하늘숲교회
  7. 목회자협의회
    일시 : 11월24일(월)~26일(수)
    장소 : 강원도 속초
  8. 일요기도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여집사 2조
    • 청소당번 : 경희 외대 회기 캠모

캠퍼스 모임

회기 캠모 월요일 18:00
과학기술, 광운대 캠모 월요일 18:00
화랑 캠모 화요일 18:00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00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30 ZOOM
경희,외대 캠모 수요일 18:00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유민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문호준  재무 김성미
선교회장 윤민식  액트회장 김미현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1길 11
어린이청소년비전센터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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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선교센터교회


안식일학교

경배와 찬양 다같이
찬       미 83장
시작기도 기도자
환       영 안교장
특별순서  
교과공부 각 반
헌금소개 사회자
축       도 담임목사

 

기억절 4기 5과 (일몰 : 5시 34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으므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들과 그들의 땅을 단번에 빼앗으니라'(수 10:42).

 

11월 시무 안내
시       무 : 이상훈
헌금봉사 : 백지원 함주원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1 박다정 양의식
7 임태훈 소그룹 8 정찬우 권세진
14 김진수 소그룹 15 심정은 배승환
21 권하린 소그룹 22 정희원 김유민
28 김미현 소그룹 29 박인앙 김형준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46장
대 표 기 도 박다정 집사
특 별 찬 양  
설        교 양의식 목사
찬        미 170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캠퍼스 소식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특별히 말씀을 위하여 방문하신 양의식 목사님을 환영합니다.
  2. 연말찬양발표회 찬양 연습
    일시 : 금요일 저녁 8시30분~9시
              토요일 오후 2시~3시
    장소 : 1층 본당
  3. 액트협회 총회
    일시 : 11월8일(안)~9일(일)
    장소 : 비전센터
  4. 일요기도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여집사 2조
    • 청소당번 : 경희 외대 회기 캠모

캠퍼스 모임

회기 캠모 월요일 18:00
과학기술, 광운대 캠모 월요일 18:00
화랑 캠모 화요일 18:00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00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30 ZOOM
경희,외대 캠모 수요일 18:00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유민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문호준  재무 김성미
선교회장 윤민식  액트회장 김미현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1길 11
어린이청소년비전센터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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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에서의 전도-사도행전 연구19-1.pdf
0.63MB

행 19:1-20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침례니라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침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내용 요약

  1. 에베소 전도 (1-20)
  2. 은장색 사건 (21-41)

배 경 

   바울은 다시 5년 동안이나 걸린 제3차 전도여행을 떠난다. 이번에는 바로 에베소로 직행하여  3년을 유하면서 눈물로 전도한다. 

 

 “사도시대에 소아시아 서부 지방은 로마의 아시아도로 알려졌다. 수도 에베소는 대상업 중심지였다. 그 항구는 선박으로 꽉찼고 그 거리에는 각 나라에서 온 백성들이 가득하였다.” (행적, 276)

 


바울은 에베소 전도에 그의 전력을 쏟았으며 그 영향은 소아시아 전체에 미쳤다. 아시아의 일곱교회도 이때에 세워진 것이다. 에베소에 머무는 동안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기록한다.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한 가지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집중하므로, 여러 가지 일에 득을 본 적이 있나요(一擧兩得)?

  2.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희생한 적이 있나요?

  3.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혹은 양육하면서 얻은 보람이 있다면?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침례요한의 침례만으로 부족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1-7)
        
  2. 바울이 에베소에 전도한 방법을 3단계로 이야기 해 봅시다.(8-10)
       또한 두란노에서 2년동안 머문 것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①                                                                                 
       ②                                                                                 
       ③                                                                                          
  3.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악귀를 쫓아내려고 했으나 도리어 위험을 당한 이유는 무엇일까요?(14-16)

  4.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은” 3가지 요소에 대하여 이야기해봅시다.(17-19)

                                                                                     

  생각해봅시다.                                                                 

  1. 바울이 에베소에서 행한 전도법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2. 내 삶 속에서 예수님와 가까워지면서 멀리하게 되는 것이 있나요?

  3. 말씀을 연구함으로 얻어지는 신앙적 성장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에베소 사람들은 마술책들을 불사름으로 저희가 한 때 좋아하였던 것을 이제 미워한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그들이 특별히 하나님께 범죄하고 그들의 특별히 하나님께 범죄하고 그들의 영혼을 위태롭게 한 것은 마술을 의존하였기 때문이었으며, 그와 같이 분개를 나타낸 것은 마술을 대적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참된 회개의 증거를 나타내었다.(행적 288p)

3. 요한의 침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 충분한 가르침을 받기 전에 아볼로나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어떤 사람이 베풀었을 것이다. 4절을 제외하면 이것이 신약에서 요한의 침례에 대한 마지막 언급이다.

4. 회개의 침례. 바울은, 요한이 가르친 것 즉 회개의 침례와 따라야 할 분을 믿는 믿음을 요약해서 말했으나, 이 에베소 사람들은 성령의 침례와 성령의 은사들에 대해 알지 못했으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대한 가르침도 부족하였다.

5. 저희가 듣고. 틀림없이 이 회심자들이 들은 것은, 예수가 메시야라는 단순한 진술이 아니라, 바울이 구약을 가지고 이것이 사실임을 입증하고 구약이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보여 주는 논증이었을 것이다. 여기 나타난 묘사는 간단하지만 그들의 회심이 갑작스러웠거나 충분한 가르침 없이 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름으로. “이름”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서는 3:16; 4:12 주석을 참조하라. 이것은 새롭고 핵심적인 진리를 받아들이고 재침례받은 사람들에 대한 일례다. 그러나 이것이 재침례를 자주 행하라는 보증은 아니다. 재침례는 아무렇게나 행해져서는 안 된다. 죄된 세상의 매일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경험하는 죄로부터의 정결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요일 1:9; 2:1, 2)로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며, 죄의 정결을 상징하는 세족 예식(요 13:4~10)으로 증거가 이루어진다. 그리스도 안에서 침례받은 사람에게 재침례는 단지 그리스도와의 교제에서 요구되는 신조와 기준에 명백한 배교가 있을 때 필요하다. 이러한 일반적인 규칙 외에 적용될 수 있는 예외는 여기에 묘사된 경우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푸는 침례는 구원의 계약 관계에 들어가는 서약으로, 영원하고 지속적인 경험을 의미한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사도행전에 기록된 침례를 받은 모든 사람이 공유한 경험이다. 이 경우 성령이 임한 것은, 완전히 아데미 여신에게 바쳐진 에베소를 온전히 그리스도께 바쳐진 곳으로 변화시켜 이 지역 전체가 향후 수 세기 동안 그리스도인 삶의 중심지가 되게 하기 위한 준비였다.
방언도 하고. 정확히 말해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고.” 이것은 오순절에 있었던 성령의 부어주심과 동일한 역사였다. 같은 절기에 예루살렘에서 이 은사가 제국의 모든 지역에서 모인 유대인에게 효력을 발휘했던 것처럼, 이제 이방인 활동의 중심지에 주어진 이 성령도 같은 결과를 낳음으로써 이러한 능력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 기별에 관심을 갖고 그리스도께 회심하는 자들이 더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에베소와 인근 지역에서 선교사로 일할 수 있는 자격과 소아시아로 나아가 복음을 선포할 자격도 갖추었다”(EGW RH Aug. 31, 1911).
예언도 하니. 정확히 말해 “예언하기 시작하니.” 이것은 구약의 예언 해석과 더 큰 설교의 능력을 소개함으로 더욱 확신 있게 복음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 사건에 대한 예언은 이 시점에서 그리스도의 사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이 단어가 반드시 미래 사건의 예언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8. 회당에 들어가. 사도 시대의 관습에 따라(참조 9:20 주석). 이런 방문들은 주로 안식일에 이루어졌음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먼저 바울은 안식일 준수자였고(참조 13:14; 16:13) 주중에는 노동을 했으며(행 18:3; 20:34; 살전 2:9; 살후 3:8), 유대인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데 안식일이 최상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 도를 비방하거늘. 즉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에베소에서도, 동료들이 데살로니가에서 한 것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그에게서 돌아서도록 함으로써 바울에 대한 그들의 증오를 나타냈을 것이다. 하류 계층의 백성들은 항상 폭동을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즉 회당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과 바울의 가르침에 관심을 보인 유대인들이 물러났다. 이것은 기록상 그리스도교 신자들 전체가 유대인 회당과 관계를 끊은 최초의 시기이다. 이렇게 뒤로 물러가는 과정은, 유대인과 교제하는 것이 불편할 뿐 아니라 어떤 지역에서는 위험하기까지 했던 유대 전쟁 기간 즉 AD 68~135년에 가속화되었을 것이다(참조 제10권, 92, 93).
두란노. (「제임스왕역」에는 “one Tyrannus”[두란노라 이름하는 한 사람]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는 두란노가 어떤 유명한 사람이었음을 암시하는 단어 “one”의 생략을 지지한다. 이 사람에 관해 확실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아마도 철학이나 수사학 교사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혀 회심하지 않은 완전한 이교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이교도였다면 어떤 집단에서는 조롱거리였던 이 새로운 신앙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자신의 교실을 사용하도록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참조 17:32).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곳이 유대 청중이 쉽게 모일 수 있었던 유대인 학교 베트-함미드라쉬(Bet-Hammidras∨)였다고 생각한다. 청중의 얼마는 유대인이었고 얼마는 헬라인이었음이 분명하다. 에베소에는 그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그런 “학교”를 운영하기에 충분한 수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고, 따라서 그러한 학교의 지도자가 유대인 이름에 이방인 이름을 추가하여 사용하기가 매우 쉬웠을 것이다. 따라서 두란노는 유대인이었을 것이다.
서원. 헬라어 스콜레(schole-). 이 단어의 유래는 흥미롭다. 처음에는 단순히 “여가”를 의미했다가, 후에 학문적인 논쟁이나 연구를 위해 주어진 여가에 적용되었다. 그런 후에 여기서처럼 학습이 이루어지는 어떤 장소를 의미하게 되었다. 마침내 “제논 학파”라는 말처럼, 특별한 선생을 따르는 자들을 가리키는 집합적 용어가 되었다. 이 성경절에서는 개인 소유주가 사도에게 임대해 준 강의실을 가리킬 것이다. 
날마다. 바울은 분명히 매 안식일, 어쩌면 더 자주 에베소의 회당에 갔을 것이지만, 석 달 동안 얼마나 자주 거기서 가르쳤는지는 알 수 없다. 이제 그는 적어도 매일 일정 시간을 바쳐 집중적인 공중전도 과정을 시작했을 것이다. 아마 그는 생계를 위해서도 계속 일했을 것이다(참조 8절 주석). 
강론하여. “날마다 두란노라는 학교에서 제5시부터 제10시까지 강론하여”라는 또 다른 독법을 지지하는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를 제시할 수도 있다. 이 독법이 원문으로 취급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이 독법이 원문이라면, 동방 지역에서는 제5시부터 제10시(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경)까지가 낮잠 자는 시간(siesta)이었기 때문에 바울이 두란노 서원이 사용되지 않는 “휴식 시간”에 이 건물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아시아에 사는 자. “아시아”에 대해서는 2:9 주석을 참조하라. 분명히 에베소는 바울 사역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바울은 분명히 거기서 주위 성읍들을 방문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교회들(2, 3장)의 기원이 바울에게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바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진술(골 2:1; 참조 행 18:23 주석)이 그러한 가능성을 제한한다. 유대인과 헬라인으로 구성된 에베소에 있는 새로운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성장은 괄목할 만했다. 아데미에게 바치는 예물과 아데미 신 기념품 판매는 현저히 감소했다. 누가는, 바울이 끌어들인 청중들이 에베소에 사는 거주자뿐 아니라 그 도시를 방문한 사람들로 이루어졌고, 설교자 바울의 소문과 그의 기별을 지역의 구석구석에 전달했음을 시사한다. 골로새의 빌레몬도 이 기간에 얻은 바울의 회심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참조 몬 19절).

13.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 즉 “유랑하는 유대인 마술사들”(「개정표준역」). 사기꾼들이 이익을 얻으려고 바울과 예수의 이름을 사칭하며 돌아다녔다. 이 유대인들은 마력과 주문(참조 8:9; 13:6 주석)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공언하였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솔로몬이 지닌 것으로 생각되는 악마에 대항하는 묘기과 귀신 물리기를 사용한 것에 대해 기록하면서, “이런 종류의 치료는 오늘날까지도 우리 중에서 매우 큰 세력을 미치고 있다”(Antiquities viii. 2. 5 [46]; Loeb ed., vol. 5, 595)라고 덧붙였다. 

 

14. 유대의 한 제사장. 혹은 “유대인의 한 우두머리 제사장.” 이 표현은 이 사람이 제사장들을 나눈 24반차(참조 마 2:4; 눅 3:2 주석) 중 한 반차의 우두머리였음을 암시한다. 이 사람은 어떤 이유로 그의 지위를 잃은 후 에베소에 왔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대제사장이라 칭했고, 따라서 누가도 그렇게 묘사한다.
너희는 누구냐. 문자적으로 “그러면 너희, 너희는 누구냐.” 이 귀신 들린 사람은 이와 같이 자신을 악귀와 동일시했다(참고 막 5:7~12). 그는 바울 같은 사람이 예수의 이름을 말할 때는 두려워했으나 사기꾼들의 행위에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16.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제임스왕역」에는 단순히 “그들을 억제하여”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는 “그들 중 두 사람을 억제하여 이기니”라는 독법을 증거한다. 이 독법은 일곱 아들 중 둘만 이 사건에 관련이 있음을 입증한다. 그러나 여기서 “두 사람”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가 “모두”(셋 이상)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파피루스의 증거가 있다.
여기서 귀신 들림은 가다라에서와 같이(참조 마 8:28) 귀신 들린 사람에게 정상적인 힘 이상을 발휘하게 했다. 사기꾼들은 이 남자의 악마적인 분노에 놀라 도망쳤다.
벗은 몸으로. 귀신 들린 사람이 찢은 겉옷 또는 외투를 버려 두고 짧은 속옷(참조 마 5:40 주석)만 입고 도망친 사실 그 이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기록은 여기서 끝난다. 만약 기자가 이 일을 더 놀라운 일로 조작하려 했다면, 스게와의 아들들이 실패한 후에 바울이 손수 그 사람을 고쳤다고 말하여 이야기를 절정으로 발전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의 기록은 사실에 입각했다.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이 동사의 시제는 계속적으로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이야기는 귀신 쫓는 사람들이 사용한 공식 문구 가운데서 예수의 이름이 어떤 이름보다 두드러졌음을 보여 준다. 또한 이름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믿음 없이 함부로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분명히 위험한 일이었다. 에베소 사람들은 예수의 이름을 오용하여 벌받은 사람들을 보고 전보다 더 그 이름을 높였다.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믿는다”는 동사는 2절에서처럼 침례를 포함한(참조 3절) 회심의 전 과정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 신자들은 신앙고백을 했으나 그것은 불완전한 경험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했는데, 아마도 침례 후에 빠졌던 마술적인 일과 관련된 몇몇 경우에 저지른 잘못일 것이다. 성령의 감화 아래 교회는 철저히 마음을 살피는 경험을 했다. 이 고백이 개인적으로 바울이나 다른 선생들 앞에서 행해졌는지 아니면 공적으로 회중 앞에서 행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침례자 요한에게 고백한 경우와 마찬가지로(참조 마 3:6 주석), 공중 앞에서 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들은 악한 자가 예수의 이름을 오용하여 어떤 일을 행할 수 있는지 보았고, 따라서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면서 그 이름을 잘못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염려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모두의 심판자로서 대면해야 할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양심은 일깨워져 열정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죄를 고백하였고, 그렇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용서와 중보의 은혜로운 준비 아래 들어오게 되었다(요일 1:9; 2:1; 참조 사도행적, 288).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주문과 진언이 기록된 문서들 곧 “에베소 문서들”과 이 “비술”(秘術)에 관한 논문으로 발행된 책들을 모아 가지고 왔음을 의미할 것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러한 “문서” 가운데 어떤 것들은 매우 오래되어, 모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문서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부적들도 가져왔을 것이다.
은 오만. 많은 사람이 가치 있게 여긴 책들을 불태우는 이런 극적인 일이 헬라인 가운데서 발생한 점으로 볼 때 누가가 헬라의 드라크마를 “은”으로 계산했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여기 언급된 은 50,000은 10,000달러가 넘는 금액이 될 것이다. 그러나 드라크마가 당시 하루 품삯에 해당했기 때문에 당시 통화 가치로 본다면, 달러로 환산된 이 수치보다 훨씬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어떤 책들은 판매했다면 분명히 고가를 받았을 것이었다(참조 제10권, 54). 

 

20.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힘이 있어”라는 단어는 “어떤 것도 저항할 수 없는 넘치는 기세와 힘을 가지고”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귀향 및 3차 전도여행의 시작-사도행전 연구18-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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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28

[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침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내용 요약

  1. 귀향 및 3차 전도여행의 시작 (18-28)


배 경 

바울은 일찍이 서원한 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고, 에베소에 오래 있지 않고 가이사랴를 거쳐 안디옥으로 내려갑니다. 아볼로가 에베소에서 예수님의 도를 전하는데 그가 요한의 침례만 알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에게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릅니다.


고전 3:4-7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어떤 결심을 위해 머리에 변화를 준 경험이 있나요? 혹은 주위에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2. 보살핌이나 가르침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 상대가 더 성장한 일이 있나요?

  3. 나를 부지런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바울이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깍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18:18) *서원에 관한 주석참조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끝내며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습니다. 이방인의 사도인 그가 서원 의식을 치른 이유는, 유대인들의 반대가 거세지는 가운데 그들 앞에서 자신의 경건함을 입증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이는 유대인들을 잃지 않으려는 바울의 결의를 보여 주기도 합니다. 바울은 여행을 마치며 서원 의식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결단합니다.

  2. 바울은 안디옥에 복귀 후 얼마 있다가 바로 3차 여행을 떠납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어떤 면을 볼 수 있나요?(18:23)   
                                                                                    
  3. 아볼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18:24-28) 아볼로와 아굴라부부의 태도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입니까?
                                                                                     

생각해봅시다.                                                                 

  1.  우리의 영적 제자들을 굳건히 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2.   2. 내 일상은 하루, 한주, 한달, 무엇을 향해 가고 있나요?

한 목사가 그리스도교의 모든 요구대로 교회를 완성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자격을 소유하기란 드물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각각 다른 이들에게는 없는 어떤 자질들을 가진 다른 목사들을 종종 그들에게 보내신다.(행적 278p)

18. 수리아로. 여행 동기는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1) 후에도 그런 것처럼(참조 20:3, 4 주석) 그는 분명히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참조 롬 15:25, 26; 갈 2:10)을 위해 거둔 선물을 몸소 전달하고자 했다. 바울이 다른 여러 지역에서보다 에베소에서 유대인들에게 그의 설교가 잘 받아들여졌는데도 에베소에 머물기를 거절한 점으로 보아, 예루살렘에 돌아가기로 결심하자 되도록 빨리 거기에 이르고 싶었음이 분명하다. (2) 그가 근자에 한 서약 때문에 성전을 방문해야 했다. (3) 그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특별히 상당히 먼 지역인 마게도냐와 아가야에서 한 사역의 결과를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참조 15:4).

서원. 개인적인 서원으로, 민 6:1~21에 묘사된 한시적인 나실인 서원의 수정된 형태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실인의 서원은 세상과 일상적인 삶에서 구별될 것을 요구했다(“나실인”이라는 단어는 “구별된” 또는 “성별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서원 기간에 나실인은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야 했으며, 머리나 수염도 깎을 수 없었다. 서원 기간을 마칠 때는 성전에서 머리를 깎고 희생제물 밑에 있는 제단 불로 태워야 했다. 21:24에 언급된 나실인들은 서원을 마친 후에 머리를 잘랐다. 예루살렘에서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머리를 짧게 잘라, 자른 머리털을 성전에 가져와 남은 머리카락을 자를 때 바치도록 허락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바울이 수리아로 가는 항해에 오르기 전 겐그레아에서 행한 일이다. 고전 11:14에 비춰볼 때, 바울은 남자들의 긴 머리를 남성답지 못한 것으로 여겼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실인의 서원을 하면 반드시 머리를 길러야 한다. 따라서 그는 서원을 따랐으나 수정된 형태를 따랐고, 서원 기간이 겐그레아에 도착하기 전에 끝나지 않았다면 여행 전에 머리를 자른 것은 그의 용모와 당시 관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원을 하게 한 주된 요인은 종종 두려움이 뒤따르는 위험에서 구원받은 데 대한 깊은 감사였다. 두려움, 약속 그리고 구원은 고린도에서 있었던 바울의 사역 기록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복음 선포 계획에 헌신하려는 서원은 자연스런 결과로 뒤따를 것이었다. 바울은 경건한 감정의 표현들을 경멸하거나 정죄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유대인의 다른 몇몇 관행에 대해서도 그랬듯이 그것들을 율법적인 행위로 여기지 않은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바울은 “여러 사람에게…여러 모양이 된”다(고전 9:22)는 원칙을 적용하고 있었으므로,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에게 동정심(20절)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나실인 서원은, 바울 자신도 율법을 멸시하지 않고 다른 유대인에게도 그렇게 하지 말도록(참조 행 21:21~24 주석) 가르치고 있음을 증거할 것이었다. 

회당에 들어가서. 바울의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비록 그들에게서 끊임없이 어려움을 당했지만 그는 결코 동족을 포기하지 않았고, 여기서도 도착하자마자 그들을 다시 찾았다. 그러나 에베소의 유대인들이 그에게 좀 더 머물러 있기를 간청(20절)한 것으로 보아, 여기서는 그의 설교가 그렇게 적대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에베소 사람들의 국제적인 특성이 바울에게 다른 태도를 나타내도록 했을 것이다.

22. 가이사랴에서. 상당히 많은 활동이 이 성경절 안에 포함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가이사랴에서 그는 틀림없이 전도자 빌립과의 관계를 새롭게 했을 것이다. 그 후 가이사랴에 있는 빌립의 집에 손님으로 머물렀다(21:8).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즉 “교회에 인사한 후에.” 그가 당시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과 활동의 중심지를 방문했다는 간략한 기록이다. 이는 바울의 회심 후 네 번째 예루살렘 방문이다(참조 9:26; 11:30; 15:4; 21:17). 14:27에서와 같이 교회가 모였다거나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 성취한 것을 보고했다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 도시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고 바울이 서원을 마쳤다는 말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냉대받았고, 이방 그리스도인과 관련하여 율법에 대한 입장 때문에 율법에 본래 열심이었던 예루살렘 그리스도인들과 관계가 나빠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바울은 마음이 맞는 안디옥에 있는 교인들에게로 서둘러 갔다.

안디옥으로. AD 52년경, 바울이 안디옥으로 돌아오고 2차 선교여행이 끝난다(참조 102).
떠나. 안디옥은 앞선 두 번의 여행(13:1~3; 15:36~40)과 마찬가지로 3차 선교여행의 출발지이다.
굳게 하니라. 바울은 새 교회들을 세운 복음 전도자일 뿐 아니라 그 교회들의 지속적인 안녕을 위해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목양자였다. 1차 선교여행 중에 세운 교회들 중 몇 교회를 이번에 방문한 것은 네 번째다(참조 13:51; 14:6, 21; 16:1, 6).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문자적으로 “알렉산드리아 태생.” 구약 「70인역」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인들이 번역했다. 알렉산드리아는 고대의 가장 큰 도서관들 중 하나가 있던 학문의 중심지였다. 철학자 필론은 그곳의 유대인들 사이에 뛰어난 지적 지도자였다. 그가 AD 50년경까지 살았으므로 아볼로는 그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학문이 많고. (「제임스왕역」에는 “eloquent”[구변에 능한]이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헬라어 로기오스(logios). “학식 있는”, “구변에 능한.” 한 가지 의미만으로는 온전한 뜻을 전달할 수 없다. 그는 학식이 있을 뿐 아니라 그 학식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배워. 헬라어 카테케오(kate-cheo-). “소리내어 읽어주다.” 확대하면 “구두(口頭)로 가르치다”라는 뜻이다. “catechize”(문답식으로 가르치다)라는 영어가 파생된 이 단어는, 아볼로가 스스로 구약을 공부한 것 외에 누군가에게서 배웠음을 암시한다. 우리는 요세푸스(Antiquities xviii. 5. 2)를 통해 요한의 가르침과 침례가 유대인에게 큰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에 관한 침례자 요한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유대인들이 예루살렘과 에베소에 나타났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 가르침은 간결했을 것이다. 그들은 요한이 다가오는 왕국을 위해 준비시키려고 침례를 주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가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가리킨 것과 예수가 침례받을 때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이러한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목베임당했고, 예수는 갈바리에서 죽음을 당했다. 요한의 제자들은 대부분 그리스도의 기별과 관련하여 후에 일어난 일들 즉 교회의 설립, 그리스도교 침례와 주의 만찬 예식, 성령의 부어주심, 회개에 뒤따르는 회심에 관한 가르침, 믿음을 통해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일 등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침례자 요한 자신도 어느 날 사람을 보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마 11:3)라고 주에게 물은 것으로 보아, 예수께서 이러한 일들과 관련하여 제시하고 있던 것을 단지 어렴풋하게 이해했을 뿐이다.  
예수에 관한 것. (「제임스왕역」에는 “things of the Lord”[주에 관한 것]이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위에 언급된 “주의 도”라는 표현은 구약 용어(사 40:3)의 번역으로, 요한의 설교와 관련하여 복음서 기자들이 인용했다(마 3:3; 막 1:3; 눅 3:4; 요 1:23). 
아볼로는 스스로 구약을 연구하여 알게 된 것 곧 천국의 도래에 관하여 요한이 설교했던 내용을 매우 정확하게 선포했을 것이다. 그는 요한이 어떻게 예수를 가리켰는지 나타내 보였을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사업과 말씀의 많은 부분을, 유대인에게 오랫동안 있었던 선지자들보다 더 위대한 선지자들을 하나님이 보내고 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생애 자체가 구속이 가깝다는 증언이라는 증거로 제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볼로의 스승이 누구였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한 침례자 요한의 기별 이상으로 제자들을 끌고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볼로에게 침례자 요한은 분명 옛 종교의 독특한 특성들을 유지하고 있는 영광스러운 유대교 지도자였을 것이다. 분명히 그는 아직 “할례받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고전 7:19) 것을 배우지 못했으며 제사 제도가 “없어져 가는 것”(히 8:13)임을 깨닫지 못했다.
요한의 침례. 침례는 종교적인 지식과 경험을 위한 입문이라는 개념이 “침례”에 포함되어야 한다. 요한의 침례라는 표현은 매우 흥미로우며, 그리스도의 전주자(前走者)로서 침례자 요한의 사역이 복음서에서 가리키는 것보다 훨씬 멀리 미쳤음을 보여 준다. 알렉산드리아까지 미쳤던 것이 분명하다. 이 “침례”의 한계에 대해서는 위의 “배워”에 관한 주석을 참조하라.

26. 담대히 말하기를. 유대인들이 메시야가 오신다는 기별을 듣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담대함이 필요했다. 전도자는 유대인들이 여러 번 기만자들에게 미혹당한 이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용기뿐 아니라 학식과 능변을 갖춰야 했다.

27. 아가야. 아가야의 수도인 고린도로 갔을 것이다. 행 19:1과 아볼로를 언급한 고전 1:12은 이것이 확실함을 알려 준다. 훈련, 타고난 능력, 최근의 교육과 경험으로 아볼로는 고린도에서 바울이 아덴에서 했던 것과 유사한 일을 할 수 있었다. 아볼로의 사도적 권위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고린도인 중 어떤 사람들은 그를 바울과 동일하게(고전 1:12) 여겼다. 이런 일로 교회에는 강한 분파적 감정이 발생하였고, 바울은 그것을 책망했다(고전 3:3~17). 아볼로가 이런 일을 일으켰다고 생각할 만한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가 심은 것(고전 3:6)에 아볼로가 물을 주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아볼로는 교회에 파당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고린도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전 16:12).

형제들이…편지하여. 천거서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위하여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보낸 “천거의 편지들”(참조 고후 3:1 주석; 롬 16:1, 2; 골 4:10)로 알려진 것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이것은 당시 “신임장”이었다. 에베소 교회에서 아볼로에게 기꺼이 그런 편지를 써주었다는 사실은 그가 그곳에 있는 동안 좋은 인상을 남겼다는 것을 보여 준다.

유력하게…이김일러라. 헬라어 디아카텔레코마이(diakatelechomai). “완전히 설복시키다”, “완전히 확신시키다.” 아볼로는 유대인들의 반대 이론을 성경으로 검증하여 그들을 설복시켰다. 아볼로는, 바울이 유대인들을 설득할 때 사용했던 그 결론으로 그들을 유도했다. 그의 방법은 바울의 방법과 달랐을 것인데, 차이는 성격에 있었다. 이 새로운 설교자는 그의 사역을 통해 자연스럽게 많은 추종자들을 얻었고, 바울이 노고로 얻은 것보다 수적으로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아볼로의 이름이 사도행전에 다시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그의 후기 역사로 알려진 것을 여기서 다루어야겠다. 그의 이름이 고린도에서 한 분파의 슬로건으로 사용될 정도였지만,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 사이의 교리적인 차이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아굴라, 브리스길라와 가까이 교제하고 있었던 점으로 보아, 불화가 없었던 것 같다. 고전 16:12에 비춰볼 때, 아볼로가 결국 고린도 교회의 천거서를 가지고(고후 3:1) 에베소로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아볼로가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고전 16:12, 17)와 함께 다시 고린도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에 나타난 대로 그를 신임했다. 이후로 아볼로는 바울의 사역이 마칠 때까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동안 그는 에베소와 고린도에서처럼 열정적으로 복음사역을 했을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이 마쳐갈 때(약 AD 67년) 아볼로를 언급한다(딛 3:13). 그는 교법사 세나와 함께 있었는데, 세나는 아볼로처럼 유대법이든 로마법이든 법에 조예가 깊어(참조 마 22:35 주석; 제10권, 62) 확고한 명성을 얻었다. 바울이 가능한 모든 도움을 아볼로에게 주라고 디도에게 요청한 점으로 보아, 아볼로에 대한 바울의 마음은 분명히 사려 깊은 관심으로 이어졌다. 아볼로는 그레데에서 일해 왔고, 그의 주위에는 별도의 제자들의 무리가 모여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바울은 자신과 교제했던 자들과 그들을 구분한다(딛 3:13, 14).

고린도 전도-사도행전 연구 18-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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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8:1-17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내용 요약

  1. 고린도에서 전도함 (1-11)
  2. 유대인들의 소동 (12-17)

배 경 

   바울은 드디어 고린도에 온다. 아테네가 학문과 예술의 고도라면 고린도는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였다. “서력기원 첫 세기 동안에 고린도는 헬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중요한 도시중의 하나이었다. 헬라인과 유대인과 로마인들은 각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과 함께 그 거리에 모여들어 상업과 향락에 몰두하였다. 로마제국의 각 지방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한 대 상업 중심지인 이곳은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를 위하여 기념물을 세워야 할 중요한 장소이었다.”(행적, 240)

 

  부주의하고 무관심한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자 노력함에 있어서, 고린도에서는 다른 활동계획을 따르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고린도인들 중에서는 정교한 논쟁이나 토론을 피하고,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그들에게 전도하고자 하였다.(행적 244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최근 가장 몰두하면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왜 그렇게 열심히 몰두하나요?

  2. 심한 감기로 앓은 적이 있나요? 어느 정도로 심한 감기였나요? 

  3.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심한 부담감을 느낀 경험이 있나요? 그 경험을 나누어보아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바울이 아굴라와 가깝게 된 계기를 설명해 보세요.(18:1-3)
    고린도에서 바울의 직업은 무엇이었습니까? (18:3)

  2. 바울은 고린도에 얼마나 머물렀나요?(18:11) 
                                                                                    
  3.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상태는 어떤 상태라고 생각됩니까? (18:5)
       ①                                                                                 
       ②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다. 이 붙잡히는 단어가 “쉬네코”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마 4: 24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눅 4: 38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붙들인지라

  4.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전한다.”라는 것은 그 당시 사람에게 어떤 일이었나요?(고전1:23-24)
    하나님께서 어떻게 바울을 위로해 주십니까?(18:9-10)         
                                                                                     

생각해봅시다.                                                                 

  1.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나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생각해 봅시다.

  2.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로서, 나는 어떤 상태인가요?
인간이란 도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 안에 감추어지고, 그리스도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난 분, 아주 사랑스러운 분으로 드러나신다.(행적 274p)

글라우디오가…명하여. 수에토니우스는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한 일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유대인이 크레스투스(Chrestus)의 사주를 받아 끊임없이 분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글라우디오]가 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였다”(Lives of the Caesars v. 25. 4; Loeb ed., Suetonius, vol. 2, 53). 당시 상당히 큰 유대인 거류지가 로마 도성 안의 야니쿨룸(Janiculum) 언덕 기슭에 있었다(참조 542쪽 지도). 그들은 로마 상류계급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자신들의 회당과 기도 장소(참조 16:13 주석)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렐리기오 리치타(religio licita, 법적으로 인정된 종교)로 관대히 다루어졌고, 압비아 가도(Appian Way)를 따라 놓여 있는 그들 소유의 공동묘지가 있었다. 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라는 명령은 갑작스러웠던 것으로 보이는데, 수에토니우스는 라틴어로 “크레스투스”(Chrestus)라고 불리는 사람이 이 명령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수에토니우스는 이 사람에 관하여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 헬라어 “i”(이)와 “e”(에)의 발음은 거의 구별되지 않았고, 테르툴리아누스(Apology iii. 5)는, 헬라어 이름 크리스토스(Christos)가 종종 “좋은”, “유용한” 또는 “친절한”을 의미하는 크레스토스(Chre-stos)와 같게 발음되었다고 말한다. 글라우디오의 포고령에 대한 가능한 설명은 오순절 후에 그리스도인들이 로마로 왔고, 비시디아 안디옥(13:50), 루스드라(14:19), 데살로니가(17:5~8) 그리고 베뢰아(17:13)에서와 같은 소동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은 메시야라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자나 거절한 자 모두의 입에 오르내렸다. 따라서 언어와 명칭(18:15)에 관한 문제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갈리오와 같은 로마 행정관들은 쉽게 그리스도를 여러 당파 중 하나의 지도자로 생각했을 것이고, 지상의 왕권을 주장한 자로 추측했을 것이다(17:7의 데살로니가에서처럼). 이 설명은 소동, 명칭의 혼란 그리고 추방령이 왜 일어났는지 밝혀 줄 것이다(참조 제10권, 80, 81).  
아굴라와 그의 부인은 추방될 때까지 로마에 있었으며, 로마에 있는 다수의 유대인 또는 그들의 후손이 자유민(참조 6:9 주석)이었던 점으로 보아, 아굴라나 그의 부모도 그 계층에 속했을 가능성이 있다. 후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로마로 돌아간 것으로 언급되었는데(롬 16:3), 그랬다면 바울과 함께 에베소에 있었던 이후에 돌아갔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울이 거기서 고린도전서를 쓸 때 함께 있었고(고전 16:19), 그들이 살던 집은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예배 장소로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두 번째 편지를 보낼 때 디모데가 에베소에 있었다면 그들도 그 도시에 있었다(딤후 4:19). 그들의 움직임에 대하여 더 이상 알려진 것은 없다.
로마에서 누가 새로운 신앙을 처음으로 전했는지 다음 자료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1) 팔레스타인에서 복음이 괄목할 만큼 성공적으로 전파되고 있었는데 로마의 유대인들이 그것에 대해 어떤 확실한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오순절 이후 25년이 지나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2) 오순절에 참석했던 사람들 중에는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2:10)이 있었다. (3) 스데반과 변론했던 헬라파 유대인 중에는 로마의 자유인들이 있었으며 스데반 자신이 그 계층에 속했을 수도 있다(참조 6:5, 9 주석). (4) 바울이 문안한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그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롬 16:7). 따라서 전승이 공로가 있다고 말하는 사도 베드로가 아니라, 이들 가운데서 로마 교회 설립자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신학이 바울에게 영향을 미친 스데반에 의해 구축된 위대한 원칙들과 같은 것임을 가리킨다. 이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어떻게 그토록 쉽게 고린도에서 바울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도 설명해 줄 것이다. 바울이 롬 16:3~15에서 이름을 열거한 많은 사람이 글라우디오 당시 로마에서 추방당했고, 후에 되돌아갔다. 

장막을 만드는 것. 장막을 만드는 일은 바울이 고향 다소에서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일이었다. 다소는 당시와 그 후에도 범포(帆布)와 장막 제작에 다량 요구되는 염소 털 직물로 유명했고, 로마인에게는 킬리키움(cilicium)이라는 로마 속주의 이름을 통해 알려졌다. 아굴라의 출생지인 로마의 속주인 본도 역시 같은 제품으로 유명했는데, 이 제품의 재료는 타우루스(Taurus) 산지의 비탈과 주위 방목지에서 길러진 염소들에 의해 공급되었다. 부유했음직한 바울의 배경과 그가 고등 교육을 받았다는 암시는 그가 일을 배워야했다는 사실과 무관하다. “아들에게 직업을 가르치지 않는 자는 그가 도둑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라는 랍비의 격언은 히브리 가정에서 거의 보편적인 가르침이었기 때문이다. 예로, 저명한 힐렐도 목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처럼 고린도에서도 생계를 위하여 일할 준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그리하여 개인의 이익을 위해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비난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고전 9:15~19; 고후 11:7~13; 살전 2:9). 그는 고린도에서 임금을 위해 일하는 기술자 또는 유대인의 일터에서 일꾼으로 시작했고, 아직 일개 유대인 이상의 존재로는 고린도 도시에 알려지지는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제임스왕역」에는 “pressed in the spirit”[심령의 강권을 받아]). 본문상의 증거(참조 20쪽)는 “그가 말씀[또는 “기별”]에 붙잡혀[또는 “강권을 받아”]”라는 독법을 증거한다. 「개정표준역」에는 조금 약한 어조로 바울은 “말씀을 전하는 데 사로잡혀”라고 되어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기에 그것을 말해야 할 충동을 느꼈다(참조 시 39:3). 실라와 디모데의 도착과 설교하고자 하는 바울의 충동에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물론 그들이 가지고 왔을지도 모르는 선물들 때문에 바울이 한동안 말씀을 전하는 데 전념하도록 도움을 주었다고 볼 수는 있지만, 그의 생업을 게으르게 했다는 암시는 없으며 고전 9장도 이런 생각과 배치된다. 그는 이미 말씀을 전할 충동에 사로잡혀 있었고, 따라서 실라와 디모데에게 들은 고무적인 소식으로 그 충동이 강화되었을 뿐이다.예수는 그리스도라…증거하니. 예수가 유대인들이 알아야 했던 고난당하는 메시야 곧 구주이자 진리 자체임을 강조한다.
피. 그는 비유적인 언어를 써서 “피”라는 단어를 “파멸”의 의미로 사용한다(참조 수 2:19). 여기에 표현된 사상과 형태는 본질적으로 히브리식이다(참조 마 27:25 주석). 자신의 책임을 파수꾼으로 정의한 에스겔의 표현과 비교하라(겔 3:18, 19).
두려워하지 말며. 이 말은 이때 바울이 어떤 두려움과 낙담에 빠져 있었으며 주를 위하여 시도하던 일에 무거운 부담을 느꼈음을 의미한다. 회심자 대부분은 노예나 자유민 계층이었으며 바울과 유사한 문화 배경을 가진 헬라인이나 유대인들은 그의 전도를 받아들이는 데 더뎌 보였다(참고 고전 1:26, 27). 분명히 그는 또한 개인적으로 육체적인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는 이미 욕설을 퍼붓는 유대인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았다. 이런 일은 쉽게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주님은 인자하게 “두려워 말라”는 말씀으로 권고하였다.

잠잠하지 말고. 말씀에 열매가 없는 것처럼 보여 마음이 약해진 순간 침묵 속에 안주하려는 유혹을 받았으나, 전보다 더 줄기차게 복음을 전하라는 권고가 왔다. 어떤 것도 바울의 증언을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 엘리야가 이와 유사한 낙담의 위기를 겪었고(왕상 19:4~14), 예레미야도 두 번 이상 이런 일을 경험하였다(렘 1:6~8; 15:15~21).
말하라. 즉 “말을 계속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원문에서 “내”가 강조된다. 예수가 준 명령에 뒤이어 그 순간 바울의 필요에 부응하는 약속이 뒤따랐다. 사람들은 그를 반대했으나 그리스도는 그와 함께 있었다. 교회 전체에게 주어졌던 “볼지어다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 28:20)는 약속은, 여기서 바울에게 개인적으로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반복되었다. 이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고통의 삶을 의미했지만 사람의 악한 계획이 제어되고 바울의 사역이 영구히 방해받지 않으리라는 보증이 함께 있었다.

해롭게 할. “너를 해할”, “학대할.” 그리스도는 바울에게 공격에서 벗어날 것을 약속하지 않았다. 다만 적이 그에게 폭력을 행사하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바울에게 이 보증은 수 세기 전 엘리야가 경험하고 선포한 대로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음을(왕하 6:16) 의미했다. 
백성이 많음이라. 엘리야가 약할 때,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겼도다”(왕상 19:18)라고 들려준 말을 생각나게 한다. 고린도의 죄악들(고전 5:10, 11)에 깊이 얽혀 있는 사람 중에도 구원을 사모하고 회개의 초청을 기다리는 정직한 영혼들이 있었다. 이 초청은 반드시 바울과 동역자들이 해야 한다.
당시 고린도는 상업 활동의 요긴한 중심지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말해서 처음부터 교회는 좋은 평판을 갖는 것이 절대 필요했다. 고린도의 그리스도인 공동체 확장과 중요성은 바울이 후에 거기 있는 교회에 쓴 편지서들에서 볼 수 있다. 주는 이상을 통하여 바울의 설교가 큰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자비로운 확신을 주었다. 그는 위안을 갖고 일어섰고 어떤 일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11. 일 년 육 개월. 고린도에서 보낸 시간은 바울에게 교회를 세우고 조직하는 기회뿐 아니라 겐그레아 항구(롬 16:1)와 같은 이웃 지역에서 일할 기회도 제공하였다. 고린도인들에게 가르치고 설교한 것 외에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그의 가장 초기 서신으로 알려진 두 서신을 보냈다. 데살로니가전·후서는, 야고보서가 먼저 기록되지 않았다면 신약 중 가장 오래된 문헌일 것이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라는 고린도후서의 인사말(고후 1:1)은 복음 전파가 명백하게 이 도시 지경을 넘어선 것을 가리킨다. 바울은 이러한 광범위한 결실을 이상 중에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받아들였고, 이는 다가오는 다음 박해를 위해 그를 준비시켰다.
언어와 명칭. 또는 “말과 명칭.” 틀림없이 유대인들은 기회만 주어졌다면 바울의 가르침에 관련된 많은 것들을 계속 제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그리스도인지에 관련된 문제는 로마인에게 오로지 신학적 정의의 문제였지 로마법에 관계된 문제는 아니었다. 만약 갈리오가 로마에서(참조 2절 주석) “크레스투스”라는 이름을 들었다면 그는 훨씬 쉽게 황제의 명령을 따랐을 것이고 되도록 속히 유대인 논쟁자들을 제거했을 것이다(참조 23:29).

너희 법. 문자적으로 “너희에게 맞는 법.” 갈리오는 강조하여 말함으로써 그들이 법에 호소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고 있음을 넌지시 말했다. 그들의 경우는 로마법보다는 유대법에 관련 있었고, 따라서 그는 연루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헬라어 단어 “재판장”과 대명사 “나”가 강조되어 있다. 갈리오는 이 사건이 로마법과 관련이 없었으므로 재판을 거부하였다.

16. 저희를…쫓아내니. 분명히 시장 곧 재판 자리에 릭토르(lictor, 집정관을 따라다니며 죄인을 잡던 관리-역자 주)와 다른 관리들과 함께 앉아 있던 갈리오는 “언어와 명칭”에 관한 문제를 일으키는 논쟁자들을 거기서 몰아내라고 명령했다. 그는 고린도의 번잡한 상업 생활에서 재판권을 행사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았다.

17. 회당장. 참조 8절. 소스데네는 그리스보의 회심(8절) 후에 회당장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총독 앞에서 즉시 바울을 고소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대적하는 열의를 보여 주었을 것이다. 그는 대변자로서 둘러싼 군중의 눈길을 끌었을 것이고 그들 중 다수는 헬라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갈리오의 경멸하는 어감을 알아챘고, 또한 스스로 터득한 교훈에 따라 그의 반대 결정을 따랐는데, 이 결정은 매우 서투른 결정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유대인들이 패소한 후에 그들의 새 지도자에게 등을 돌렸을 수도 있다. 틀림없이 이방인 중에 바울을 동정하는 사람이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군중은 소스데네를 특별히 지목하여 끌어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사도행전연구1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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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7:1-34

[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4]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
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내용 요약

  1. 데살로니가 전도 (1-9)
  2. 베뢰아 전도 (10-15)
  3. 아덴 전도 (16-34)

배 경 

바울은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 빌립보를 지나 데살로니가에 이르고 마침내는 당시 최대의 문명과 철학의 도시 아덴에 이른다. 유럽에서의 바울의 행적이 빠른 템포로 전개되고 있다. 

 “십자가를 전하는 기별자들은 깨어 기도함으로 자신들을 무장하여 항상 예수의 이름으로 일하며, 믿음과 용기로 전진해야 한다.(행적 230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시기하는 마음이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준 적이 있나요?

  2. 주변인물 중 가장 신사적인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그 사람의 어떤 모습이 신사적이라고 생각하세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비신사적 행동은 무엇입니까?(1-9)
       *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의 둘째 전도지로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로서 정치, 교통, 무역의 중심지였다. 그곳은 마게도냐 최대의 무역항구다. 알렉산더 대왕의 군사들도 이 항구에서 동방을 점령하기 위해 떠났을 것이다. 카산더(Cassander)가 B.C,315년에 건축하여 그의 아내 이름을 따서 명명했으며 온천지대에 위치해 있다. 바울은 이 교회를 위해 2개의 편지서를 썼다. 

  2.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11-14)
      
  3. 바울의 설교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7:24-31)
    * 아테네는 헬레니즘의 본 고장이다. 헬라문화의 중심지이며 헬라의 수도다. 예루살렘이 영적인 수도라면 로마는 정치적인 수도였고 아테네는 문화적인 수도였다.  철학, 예술, 사상의 중심지이며 이교숭배의 중심지였다. 
       ①                                                                              
       ②
       ③                                                                                             

  4. 아덴 설교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17:32-34)
             
                                                                                     

생각해봅시다                                                             

  1.  내가 가장 닮고 싶고 전하고 싶은 예수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2. 자신에게 있어서 사람들의 반응에 관계없이 하나님 앞에서 변함없이 감당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능력과 그들의 여러 가지 필요에 요구되는 지혜를 주실 수 있으실 뿐더러 즐겨 주시고자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신뢰를 두는 이들에게 그들의 최고의 기대 그 이상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행적 242p)

 


1. 암비볼리. 빌립보에서 남서쪽으로 약 48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초기 시대에는 이 도시가 전략적인 위치라는 인식 때문에 엔네아 호도이(Ennea Hodoi, “아홉 개의 길”)라고 알려져 있었다. 로마 치하에서 로마의 속주(屬州) 마게도냐를 네 지역으로 분할했는데 암비볼리가 그중 첫 번째 지역의 수도가 되었다.

아볼로니아. 암비볼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48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이 도시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얼마 전 채찍을 맞은 이들에게 하루 약 48킬로미터라는 여행 거리는 큰 피로를 안겨 주었지만 방금 언급된 두 도시가 빌립보에서 온 이 여행자들에게 밤을 지낼 수 있는 휴식처가 되었을 것이다. 이 두 지역에는 유대인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데살로니가. 아볼로에서 서쪽으로 약 59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이 도시는 일찍이 테르매(Thermae)로 알려졌으나 마게도냐의 필립에 의하여 확장되었고, 캇산드로스(Cassander)가 필립의 딸이자 그의 부인인 텟살로니케(Thessalonike)에게 경의를 표하여 이 이름을 붙였다. 이곳은 테르매 만()에 위치한 교역의 적지(適地)였으며 꽤 중요한 항구가 되었다. 아직도 텟살로니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곳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도시이다.

야손. 히브리어로는 여호수아에 해당하며 유대인들이 종종 차용했던 헬라어 이름이다(마카베오24:7; 참조 Josephus Antiquities xii. 5. 1 [239]). 이 이름은 바울의 친족”(16:21) 명단에도 나오지만, 바울의 데살로니가 친구를 가리키는 것임을 제시하는 증거는 없다. 바울이 그와 함께 거했다는 것은 그가 유대인이었음을 가리킬 수 있다. 그는 호의적인 행동 때문에 믿지 않는 동포들로부터 광적인 분노를 샀다.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21:38; 5:12에서처럼 천하를 선동했다는 의미이다. “천하” (헬라어 오이쿠메네[oikoumene-])에 대해서는 마 24:14; 2:1 주석을 참조하라. 엘리야(왕상 18:17)3세기 그리스도인들(Tertullian Apology 40; Ad Nationes 9)도 문제를 일으킨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와 유사한 고소가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질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14, 615,).

이 상황에서 고소는 순간적인 격분으로 과장되었음이 분명하지만 그 취지가 심상치 않았다. 로마인들은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고, 따라서 이를 저해하는 자들을 혹독하게 다룰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고소가 과장되었겠지만, 이것은 회심자들을 얻는 선교사들의 명성이 그들보다 먼저 데살로니가로 들어갔음을 보여 주며, 그리스도교가 신속하게 전파되고 있음을 증거한다.

 

9. . 헬라어 히카노스(hikanos). 문자적으로 충분한.” 여기서는 보석금에 해당하는 전문 용어로 사용되었다. 아마도 야손은 바울과 실라를 직접 내주는 대신에, 이 전도자들이 다시 돌아와 도시를 어지럽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증표로, 혹은 야손 자신의 선한 행위에 대한 보증으로 돈을 주었던 것 같다. 그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은 선교사들 때문에 큰 위기를 겪었지만 복음을 위하여 기꺼이 그 위험을 감수했다(참조 살전 1:6; 2:14). 행정관들은 무분별한 결정을 내리는 데 휩쓸려 들어가기를 거절했는데 그들의 올바른 판단은 칭찬할 만하다. 그들은 유죄 판결을 위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베뢰아. 데살로니가에서 남서쪽으로 약 80킬로미터 떨어진 마게도냐의 작은 도시. 이 도시는 상업적인 면으로는 데살로니가보다 훨씬 덜 중요했다. 오늘날의 지명 베리아(Verria)에 이 도시의 이름이 아직도 남아 있다.

 

11. 신사적. 문자적으로 문벌 좋은”(참조 고전 1:26). 귀족 태생의 특징이 될 수 있는 고결하고 관대한 기질을 가리킨다. 사도와 누가가 베뢰아 유대인들을 칭찬한 것은 그들의 친절과 개방된 마음 때문이었다. 데살로니가 회당의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그들은 편견의 노예가 아니었으며 열린 마음으로 바울이 제시하는 진리들을 연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열심으로.” 그들은 깨달음 얻기를 간절히 원했다.

말씀을 받고. 즉 하나님의 말씀.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에게 가르쳤던 것과 똑같은 성경의 교훈을 가르쳤다(3).

상고하므로. 헬라어 아나크리노(anakrino-). 4:9; 12:19에서처럼 특별히 법률적 의미에서 면밀히 [증거를] 조사하다”, “심사하다”, “연구하다.” 5:39에서는 다른 단어 에류나오(ereunao-, “살펴보다”, “탐구하다”)가 쓰였다. 베뢰아 사람들은 성경을 연구하는 데 성화된 지성을 활용했으며, 영감의 말씀이 메시야가 고난받고 다시 살아날 것을 말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증거를 면밀히 연구하여 진리를 발견하면, 새로운 가르침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의 신실함을 입증했다. 특히 개인적 판단의 권리를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베뢰아의 회심자들은, 한편으로는 경신(輕信)과 다른 한편으로는 회의주의를 피하면서 이성과 믿음의 올바른 관계를 보여 주는 사람들의 대표자로 여겨져 왔다. 그들은 진리로 제시된 것을 고찰하고, 존중되는 권위인 성경에 비추어 살펴보고, 마침내 그들이 발견한 진리를 따름으로써 좇을 만한 모본을 제시했다.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 이들은 선교사들을 성읍에서 쫓아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증오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베뢰아까지 추격했다(참조 14:19 주석).

저자. 헬라어 아고라(agora). 참조 마 11:16; 16:19 주석. 아덴에는 저자가 두 곳 있었는데, 하나는 상업적 시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여기 언급된 것과 같이 그곳의 사교적 중심지였다. 바울 당시 이곳은 헬라의 만신전(pantheon)에 있는 대부분의 신들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영웅의 형상과 무수한 조상(彫像)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 저자는 아덴에서 대부분의 정치적 및 철학적 논쟁이 벌어지는 장소였다. 여기서 바울은 상당한 식견을 갖춘 철학자들과 철학 애호가들이 서로 그리고 청중과 벌이는 논쟁을 볼 수 있었다. 사도는 이 논쟁에 자유롭게 참여해 자신의 삶의 철학을 설명했을 것이다.

바울은 바로 이 예수를 아덴의 회의적인 지식인들에게 담대하게 선포한다.

부활. 이것 또한 초기교회 설교의 중심 주제였다(참조 2:24; 3:15; 4:2, 10; 10:40 ). 바울은 부활한 주(9:4~6)와 대화했기 때문에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입증할 수 있었다. 사도는 또한 모든 사람의 마지막 부활(참조 행 17:32; 고전 15:51; 살전 4:14~16 주석)을 가르쳤고, 이것은 아덴의 철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들은 이미 영혼의 불멸을 믿고 있었으나, 실제적인 신체의 부활에 대해 듣고 깜짝 놀랐다. 고전 15:35~44에서, 이 교리에 대한 반대 이론의 성격과 바울이 그들에게 어떻게 대답했는지 볼 수 있다.

종교성이 많도다. 헬라어 데이시다이모네스테로이(deisidaimonesteroi). 데이도(deido-, “두려워하다”)와 다이몬(daimo-n, “”)으로 이루어진 비교급 형용사로, “더욱 신을 경외하는으로 번역할 수 있다. 이 헬라어 단어(데이시다이몬[deisidaimo-n])는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 양쪽으로 쓰였다. 데이시다이몬은 점쟁이에게 조언을 구하며 징조를 믿는 자를 말하며, 예컨대 길에서 족제비를 보면 여행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높은 지위에서 지나치게 광신적이었던 사람의 현저한 예증으로 아덴 장군 니치아스(Nicias)를 들 수 있는데, 그는 항상 신들이 질투한다는 생각에 압박을 받았으며, 그래서 월식 때문에 중요한 전략적 이동을 철회했다(Thucydides History vii. 504). 스토아 철학자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editations i. 16)는 그 자신이 데이시다이몬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의 헌신에 의하여 쎄오세베스(theosebe-s) 즉 경건한 사람(ibid. i. 3)이 된 것을 기뻐하였다. 바울은 연설을 시작하면서 경멸적인 말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었다. 오히려 그는 아덴인들이 모든 형태의 신을 알고자 노력하는 신중한 태도를 칭찬하고자 했다. 그러한 시작은 철학자들과, 일반 아덴인들의 주의를 끌었을 것이다.

 

24. 우주를 지으신. 여기서 사도는 자신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궁극적 신원을 제시하는데, 그분은 창조주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모든 거짓 신과 구별한다(참조 렘 10:10~12 주석). 인격적인 하나님에 의한 창조는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에 반대되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바울이 그렇게 말한 것이 청중에게 놀라움과 흥미를 일으켰으므로 계속 말하도록 허락되었다. “우주”(코스모스)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인들이 질서 잡힌 우주를 말할 때 사용했으므로 하늘과 땅모두를 포함할 수 있다(참조 마 4:8 주석).

주재시니. 바울의 하나님이 다른 모든 가상적인 신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높은, 전 우주의 소유자이며 통치자임을 말한다.

생명과 호흡. 이 두 명사는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이해시키기 위해 쓰였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최초의 생명을 주고, 육적인 호흡을 부여하여 그것을 유지케 하신다. 이와 같이 바울은 인간이 참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26. 한 혈통. “혈통의 생략을 지지하는 중요한 본문상의 증거(참조 20)를 제시할 수 있는데, 후에 뜻을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첨가되었을 수 있다. 바울은 모든 사람 곧 모든 족속이 한 조상 아담으로부터 나왔다는 역사적 진리를 말하고 있다. 이런 사상은 어떤 헬라인도 그리고 특별히 어떤 아덴 사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렇듯 헬라인과 야만인을 구별하는 것은 뿌리 깊고도 중요했다. 어떤 부류는 본질상 다른 부류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였다(Aristotle Politics i. 2. 6). 그러나 바울의 신학에는 우성종족을 위한 자리가 없었다. 그는 창세기의 인간 창조 이야기를 믿었다. 그는 신체 구조뿐 아니라 잠재적 및 실제적 발전의 동일성을 보았으며, 이는 히브리인이나 헬라인이나 라틴인이나 튜튼인 등 어떤 종족이나 국가를 막론하고, 자기가 인류의 정화(精華)라고 생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연합을 강조하는 갈 3:28; 3:11을 비교하라. 그리스도인은 창조와 구원을 통해 인간이 하나임을 배나 인정해야 한다.

이 시는 큰 흥미를 더해 주는데, 에피메니데스와 알지 못하는 신”(참조 23)에게 드려진 제단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서뿐 아니라, 바울이 딛 1:12에서 사용한 그레데인에 관한 인용문에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후에 바울이 에피메니데스를 인용한 사실은 에피메니데스의 시를 잘 알고 있었음을 더욱 분명히 해 준다.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8절 후반부는 헬라 시()에서 따온 인용문임이 분명하며, 바울이 사용한 것이다. 이것은 스토아 학파의 창시자인 제논(Zeno)의 친구 아라투스(BC 270)의 시에서 인용한 것이다. 아라투스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길리기아 출신이었다. 그의 교훈 시 패노메나(Phaenomena)는 당시 알려진 천문학과 기상학의 중요한 사실들을 다루었으며, 제우스에 대한 탄원으로 시작하고 바울이 인용한 말을 포함한다.

제우스로부터 시작해 봅시다. 우리네 유한한 인생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수 없나니

모든 거리와 사람들의 모든 시장이 제우스로 가득 차고

바다와 하늘에도 가득하구나.

우리 모두는 항상 제우스가 필요하나니

우리 또한 그의 소생이기 때문이니라

(Phaenomena 1~5; Loeb ed., 381).

이 인용은 즉시 청중의 주의를 끌었을 것이다. 바울은 그들의 문학을 인용함으로써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되었다(고전 9:22)고 말한 자신의 방침을 실증하였다. 그들은 헬라 도시들에 아주 흔한 상인이나 무당처럼 교육받지 못한 유대인을 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과 같은 문화를 지니고 있고 그들의 시인들의 사상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대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고전에 대한 바울의 학식을 과장할 필요는 없으나 여기 언급된 인용들과 고전 15:32의 인용을 보면 사도가 헬라의 저술가들을 익히 알고 있었고, 필요한 상황에서는 그들의 작품에서 적절한 인용문을 끌어냈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하여 그는 활용한 말의 문맥 속에 드러난 의미를 전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고, 그가 제시하는 더 고상한 가르침을 조명하기 위해 헬라의 저술가들을 사용했을 뿐이다.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심리적인 접근 방법은 배울 만하다. 사도는 처음부터 그들이 자신들을 과대 평가하고 있다는 것, 그들이 흙으로 된 피조물에 불과하며 사단의 자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너무 낮게 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손임을 잊어버렸고 심지어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13:46)로 자신들을 평가하였다.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마게도냐의 부르심)-사도행전연구1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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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6:1-40

[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 그와 그 집이 다 침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19]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침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35]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36]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37]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38]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39]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내용 요약

  1. 디모데를 선택함 (1-5)
  2. 마게도냐의 간청 (6-10)
  3. 빌립보 사건 (11-40)

 

배 경 

15장에서 예루살렘 총회가 끝난 후 16장부터 제2차 전도여행이 시작된다. 제2차 전도여행의 중대한 의미는 복음이 아시아를 넘어 드디어 유럽으로 전파되는 데에 있다. 마게도냐의 부르짖음은 곧 유럽의 손짓인 것이다. 우리는 제16장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복음이 어떻게 유럽에 건너가는가를 보게 된다. 

 

"칠흙같이 어둡고 황폐한 토굴 가운데서도 그들은 기도하는 말로 서로 격려하고 하나님께 찬양의 노래를 불렀다. 그 까닭은 하나님을 위하여 수치를 당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행적 213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나에게 가장 뜻 깊은 여행은 어떤 여행이었나요?

  2.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본인이 생각하고 계획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도된 경험이 있나요?

  3. 신앙의 신실한 동역자며, 자신의 영적 아들 혹은 영적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있나요?

  4. 예배와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모임에 참석하는 행위가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적이 있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디모데의 가정에 대해 말해 봅시다. (행16:1-2, 딤후1:5)
     * 그는 특별히 찬란한 재간을 가지지는 아니하였으나 그의 사명이 중하였으니 이는 그가 천부의 능력을 주를 섬기는 일에 사용한 까닭이었다(행적, 203). 루스드라가 그의 고향이었다. 경건한 신앙의 가정에서 출생하였으며(딤후1:5) 어려서부터 성경을 공부했다(딤후3:15).

  2. 바울이 마게도냐지역으로 인도 되어 가는 여정을 이야기해 봅시다.
      
  3. 왜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16:6-10)
                                                                                       
  4. 바울은 회당이 없는 빌립보에서 안식일을 어떻게 지켰습니까? (16:13)

  5. 빌립보의 첫 열매인 루디아를 만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16:13)
      
  6. 간수는 왜 죄수인 바울 앞에 굴복했을까요? (16:29) 
                                                                           
  7. 바울은 왜 감옥을 나가지 않고 상관들이 와서 사과하기를 요청했을까요?

 

생각해봅시다

  1. 우리에게는 마게도냐의 부르심이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2. 바울은 로마 시민으로서 왜 안 맞아도 될 매를 맞고 감옥에 들어가는 고생을 당했을까 생각해 봅시다. 

사도들은 빌립보에서의 그들의 수고를 헛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많은 반대와 박해를 당하였으나, 저희가 당한 수치와 고통을 속하고도 남을 만큼 그들을 위한 섭리의 중재와 간수와 그 가족의 회심을 목도하였다. 부당한 투옥과 기적적인 구출에 대한 소식은 그 지역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져 달리 접촉할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사도들의 사업이 알려지게 되었다.(행적218p)

 


1. 디모데(Timotheus). 흔한 헬라어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얻은 자라는 뜻이다. 그 이름의 영어식 표기는 “Timothy”이다. 디모데는 아마도 제1차 선교여행 때 루스드라와 더베를 방문한 바울에 의해 회심했을 것이다(참조 14:6 주석). 그리하여 바울은 진정으로 디모데를 내 사랑하는 아들“(고전 4:17) 그리고 믿음 안에서 참 아들“(딤전 1:2)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디모데는 나이가 많지 않았고(딤전 4:12; 참조 사도행적, 203), 그의 연소함이 약 12년 후에 딤전 4:12에 여전히 언급된 것을 보면, 그의 나이가 아마도 18세나 20세를 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바울이 루스드라를 떠난 후 거의 2년이 지난 후(이에 대한 연대기를 알려면 60, 62쪽을 참조하라), 디모데는 헌신과 거짓이 없는 믿음”(딤후 1:5)으로 좋은 평판을 얻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구약을 배우며 양육받았다(딤후 3:15). 디모데가 루스드라뿐 아니라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도 칭찬을 받았다는 사실(16:2)은 그가 두 교회 간의 교제를 유지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음을 시사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거나 편지 가운데서 그를 언급할 때 그가 신체적으로 강하지 못하고 고된 선교 사업을 수행함으로써 나중에 더 약해진 것처럼 쓰고 있다(딤전 5:23). 디모데는 감성적으로 보였지만(딤후 1:4),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고난과 책임을 감당할 준비를 갖추었다(고전 16:10).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한 동역자로 언급되고(16:21), 최소한 드로아까지 2차와 제3차 선교여행에서 그의 사업의 동료였다(20:4, 5). 고전 4:17에서 우리는 디모데가 고린도로 보낸 바울의 사자였음을 알게 되고, 고후 1:1에서 고린도 교회에 대한 문안에서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등장한다. 그는 또한 바울과 데살로니가 교회 사이의 연락자였고(살전 3:2, 6), 빌립보서(1:1; 2:19), 골로새서(1:1), 빌레몬서(1)에 그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 바울의 로마 첫 투옥기간에 함께 그곳에 있었다. 13:23은 그의 투옥을 말하는데, 언제, 어디서였는지는 알 수 없다. 유세비우스(Ecclesiastical History . 4. 5)는 그를 에베소의 첫 감독이라고 기록한다. 디모데는 에베소 사람들의 손에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3. 할례를 행하니. 아마도 바울 자신이 의식을 집례했을 것이다. 언뜻 보기에 바울의 이 행동은 할례 주기를 거절한 디도에 관한 그의 행동과, 할례에 관한 그의 일반적인 가르침에(고전 7:18, 19; 5:2~6)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디도와 디모데의 경우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디도는 헬라인이었고, 그에게 할례를 주는 것은 바울이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원칙을 양보하는 일이 될 것이었다. 디모데는 혼합 혈통을 가졌지만, 유대인이었다. 왜냐하면 랍비의 법전은 유대인 어머니의 자녀는 유대인으로 간주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Talmud Yebamoth 45b, Soncino ed., 297). 만약 디모데의 부모가 모두 신실한 유대인이었다면, 그는 제8일에 할례를 받았겠지만(12:3), 틀림없이 부모의 종교적 차이가 그의 할례를 막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젊은 디모데는 바야흐로 공중 봉사를 시작하여 유대인들과 밀접한 접촉을 갖게 되었다. 만약 그가 할례를 받지 않으면, 제대로 되지 못한 유대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좋은 안내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에게 문젯거리가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른 이들에게 거리낌을 주지 않기 위해 유대 배경을 가진 이 청년에게 할례를 주는 것이, 할례가 영적으로 필요하며 구원에 필수적이라는 가르침을 반대하는 일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이것은 자신이 선언한 가치관과 조화를 이루었고(참조 고전 9:20 주석), 누가가 그 행동을 유대인을 인하여라고 기록한 이유이다.

 

6. 성령. 어떻게 성령이 바울을 가르쳤는지, 내적인 감동에서인지, 밤에 이상이나, 은사를 받은 자들을 통해 주어진 예언들에 의해서인지(참조 21:4) 누가는 언급하지 않는다(참조 2:4; 8:29, 39; 13:2 주석). 그러나 바울이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자신이 아시아와 비두니아로 들어가는 것을 막으시는 것을 알고(16:7) 이 두 지역에 들어가지 않았다. 한동안 그는, 큰 유대인 사회가 있고 우상숭배의 큰 중심지인 에베소와 서머나와 사데와 같이 사람들이 몰려 사는 도시들이 있는 아시아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 도시들이 틀림없이 바울에게 강하게 호소했지만, 바울은 성령의 명령에 완전히 순종했다. 그래서 그 선교사단은 다음에 어디에서 일할지 알지 못하고 북서쪽 해안을 향해 인도되었다.

 

7. 비두니아. 바울의 여행길 북쪽 지역에 위치한 비두니아에는 니코메디아(Nicomedia)와 니캐아(Nicaea) 같은 큰 도시와 상당수의 유대인 거주자가 있었다. 바울과 그의 일행이 다음에 그곳에서 일하고 싶었던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주께서는 자진해서 순종하는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다른 계획이 있었고, 그들은 북쪽이 아닌 서쪽으로 인도되었다(이 장 끝에 있는 추가적 설명을 참조하라). 여행 동안에 이 지점에서 그들이 한 어떤 사업에 대한 기록은 없다. 아마도 그들은 중요하지 않은 몇 마을을 그냥 통과한 것 같다.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베드로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서 사역했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그가 쓴 첫 편지는 이 지역에 있는 회심자들에게 보낸 것이기 때문이다(벧전 1:1). 이곳에서의 베드로의 사역과 관련된 시기는 대략 안디옥에서 있었던 그의 외식”(2:11~16) 이후였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유럽으로 가는 도중에 브루기아에서 활동하고, 외식”(2:13)한 바나바가 구브로에서 전도하는 동안(15:39), 베드로는 지금 성령이 바울을 막으시고 있는 북() 갈라디아를 포함한, 바로 그 지역에서 복음 사업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제안해 왔다. 이 시점에 바울과 베드로가 어느 정도까지 그들의 상이점을 조절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 두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은 다시 선교지에서 만나지 못함으로써 아마도 더 큰 오해의 아픔은 겪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사람의 터 위에 세우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다(15:20). 그러나 비두니아와 아시아에서의 사역을 금지한 주된 이유는 이때 복음이 유럽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8. 드로아. 드디어 그들은 해안에 도착했고, 에게 해(Aegean Sea) 저편으로 서쪽을 바라보았다. 알렉산드리아 드로아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경의를 표하여 그렇게 명명되었고, 이 당시 로마 식민지로서 자유 도시였다. 고대 도시 트로이는 드로아 북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고대 헬라 도시의 포위에 대한 호메로스의 기사에 거의 흥미가 없었다. 지금 그의 생각을 채우고 있는 관건은 무엇이 드로아의 주민들이 영생을 발견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구주로 선포하는 최선의 방법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생각들이 바울의 기도에서 나타났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9절에 기록된 환상이 주어졌다. 이 당시에 바울이 드로아에서 한 선교 사업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지만, 성경은 후에 그곳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충분한 증거를 제시한다(참조 행 20:5~12; 고후 2:12, 13; 딤후 4:13 주석).

 

13. 기도처. 헬라어 프로슈케(proseuche-). “기도.” 여기서는 기도 장소를 말할 것이다(참조 행 1:14; 16:16 주석; 마카베오37:20). 만약 빌립보에 회당이 없다면, 그 소수의 유대인들은 씻는 의식을 할 수 있도록 강둑 위에 집회 장소를 세웠을 것이다(참조 8:15, 21; 137:1). 유베날리스(Satires . 13, 14; Loeb ed., p. 33)는 이것을 로마 고대 종교의 부패에 대한 일례로 언급한다: “거룩한 샘과 숲과 신전들이 유대인들에게 유출되었다.” 같은 저자의 다른 글에 유사한 사례가 나타난다(ibid. 296; Loeb ed., p. 55). “말하라, 너의 선 곳이 어디인가? 어떤 기도처[프로슈케]에서 내가 너를 발견할까?” 그런 경내(境內)나 기도원들은 종종 원형이고 지붕이 없었다. 그런 장소를 소유하는 관습은 유대인들의 물가 기도”(orationes litorales)에 대해 말하는 테르툴리아누스 시대까지 지속되었다(Ad Nationes i. 13).

 

14. 자주장사. 즉 자주색 옷감 장사(참조 눅 16:19 주석). 남편이 아닌 그녀가 자주 장사로 명명된 사실은 그녀가 자기 소유의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고, 아마도 어느 정도의 자산가였다는 것을 시사한다.

 

16. 기도하는 곳에 (To prayer). 본문상의 증거(참조 20)그 기도”(to the prayer)라는 독법을 증거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 기도처에”(참조 13절 주석)라고 번역될 수 있다. 관사가 없다면 이 표현은 예배드리러 가다”(go to church)라는 현대의 표현과 비교할 수 있다. 이어지는 사건은 아마도 13절에 언급된 안식일이 지나고 첫 회심자들의 침례식 후(15), 곧 선교사들의 사업이 그 도시에서 꽤 알려진 어느 안식일에 있었을 것이다.

 

19. 이익. 헬라어 에르가시아(ergasia, 참조 19:24, 25 주석). 사람은 낯선 종교나 철학자들의 이론에 대해서는 관대할 수 있지만, 어떤 것이든 그들의 생계에 위협이 되는 것에는 격렬하게 분개한다(참조 19:23~28 주석). 초기교회의 많은 박해의 배후에 이런 정황이 있었을 것이다.

저자. 헬라어 아고라(agora, 참조 마 11:16 주석). 이것은 로마 광장(Roman Forum)에 해당했고, 친교와 상업뿐 아니라 사법 행정의 중심이었다.

 

20. 상관들. 헬라어 스트라테고이(strate--goi). “국가 관리관원들.” 이 관리에 대한 로마식 직함은 두움비리(duumviri) 또는 프라이토레스(praetores)였다. 이들은 로마의 식민지에서 최고 행정장관이었다. 보통 그런 관리가 두 명 있었다. 이들은 범법자에게 형벌을 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빌립보에서 나온 명각들은 그 도시 사람들이 두움비리라고 쓸 곳에 스트라테고이로 부정확하게 사용한 것을 보여 준다. 따라서 이것은 누가가 이 용어를 정확하게 사용했음을 확증한다.

 

22. 치라. 헬라어 랍디조(rhabdizo-). 랍도스(rhabdos) 막대기에서 파생된 막대기로 치다라는 의미로, 특히 로마 형벌의 한 형태이다. 스트라테고이(strate-goi, 참조 20절 주석)에게는 릭토르(lictor, 집정관 등을 따라다니며 죄인을 잡던 관리역자 주)라고 알려진 공식 수행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각각 직무의 상징으로 회초리 꾸러미를 가지고 다녔다. 그 막대기가 선교사들을 매질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 잔인한 형벌이 집행되는 것을 누가가 보았을 가능성이 있다. 바울은 두 번 다른 곳에서 유사한 고통을 당했다(참조 고 11:25). 바울이 후에 예루살렘에서 했던 것처럼(22:25), 로마 시민권을 근거로 그와 같은 수치스럽고 고통스런 처벌의 면제를 왜 주장하지 않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어떤 이들은 뚜렷한 근거 없이 그의 시민권 주장에 대해 진의를 묻는다. 다른 이들은 바울이 면제받을 수 있었으나 단지 그 자신만 그렇게 할 수 있었고, 실라는 그가 피한 그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실라 역시 로마 시민이었을 개연성이 크다(참조 16:37 주석). 아마도 군중들의 폭동 때문에 그의 주장이 거의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참조 37절 주석).

 

25. 기도하고찬미하매. 또는 기도하면서 그들은 찬미를 불렀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문은 두 개의 행동보다는 하나의 계속적인 행동을 표현한다. 선교사들의 잘 형성된 예배 습관은 가장 낙망적인 환경이라도 이겨냈다. 심지어 지하 감옥에서도, 족쇄에 채워져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도 없었지만 그들은 주님을 계속 찬미했다. 그 찬미는 기도 시편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들이 무슨 노래를 불렀든지, 테르툴리아누스의 말이 옳았다. “몸은 갇혔지만, 육체는 감금되었을지라도, 영혼에게는 모든 것이 열려 있다.마음이 하늘에 있을 때는 다리에 있는 사슬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Ad Martyras 2; ANF, vol. 3, 694).

 

27. 자결하려 하거늘. 간수는 죄수들이 달아나면, 로마법에 따라 자신의 생명으로 보상해야 한다는 것(참조 12:19 주석)을 알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는 자살이 더 나을 것처럼 보였다. 고전 세계의 가장 위대한 이교 사상가 중 어떤 이들은 이런 자살을 정당화하거나 심지어 칭찬할 만한 것이라고 여겼다.

 

28. 바울이소리질러. 내부 감옥의 침침한 어둠 속에서 바울은 외부 빛의 배경에 윤곽이 드러난 간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울은 공포에 사로잡힌 간수의 의도를 간파하고 그가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 깨닫자 곧 그의 자살을 막고자 했다. 심지어 자신이 당한 상당한 고통중에도 바울은 다른 사람의 구원을 생각했다. 그는 자신을 끔찍한 감옥으로 밀어 넣은 사람까지도 절망 가운데 멸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31. 그 집. 간수는 자신의 구원만을 확보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도 하나님의 선물을 누리게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종들과 협력하여 그의 가족들을 모으고 모두가 생명의 길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얼마나 특이한 회중인가! 얼마나 이상한 집회장소인가! 그러나 얼마나 복된 결과인가!

 

29. 부복하고. 간수는 그들을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말한 여종의 찬사를 들었을지도 모른다(17). 간수는 그가 받은 지시(23)를 통해 그들이 범상치 않은 죄수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제 그들이 도망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을 단순한 사람 이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37. 저희가 친히 와서. 상관들은 법적으로 정죄 받지 않은 사람에게 공공연히 형을 가하므로 중대한 실수를 범하였다. 이제 바울은 그들이 직접 불공정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대부분이 로마 시민인 빌립보의 회심자들이 더 나은 대우를 보장받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 바울의 개인적 명예가 아니라 복음의 명예가 달려 있었다.

 

40. 두 사람이나가. 사도들이 일단 상관들에게 그들의 심각한 실수를 보여 주고 또 공공연하게 복음을 옹호하고자 한 목적을 성취한 후에, 그들은 관대함의 본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자존심을 살리기 위한 어떤 난처한 요구도 하지 않고, 상관들의 요청에 조용히 응했다.

 

대학선교센터교회


안식일학교

경배와 찬양 다같이
찬       미 83장
시작기도 기도자
환       영 안교장
특별순서  
교과공부 각 반
헌금소개 사회자
축       도 담임목사

 

기억절 4기 4과 (일몰 : 5시 42분)
'여호와께서 사랑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수 10:14).

 

10월 시무 안내
시       무 : 김동은
헌금봉사 : 윤애리 정예진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1 박다정 양의식
7 임태훈 소그룹 8 정찬우 권세진
14 김진수 소그룹 15 심정은 배승환
21 권하린 소그룹 22 정희원 김유민
28 김미현 소그룹 29 박인앙 김형준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44장
대 표 기 도 이현민 청년
특 별 찬 양 화랑 캠모
설        교 임봉경 목사
찬        미 386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 제자훈련 기도회
    일시 : 10월31일(금)
    31일 금요일 저녁 소그룹 예배는 제자훈련 기도회로 변경되었습니다.
  3. 부목사 출장
    내용 : 연차별전도회
    일시 : 10월19일(일)~25일(안)
    장소 : 서하남교회
  4. 연말찬양발표회 찬양 연습
    일시 : 금요일 저녁 8시30분~9시
              토요일 오후 2시~3시
    장소 : 1층 본당
  5. 액트협회 총회
    일시 : 11월8일(안)~9일(일)
    장소 : 비전센터
  6. 일요기도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여집사 1조
    • 청소당번 : 화랑캠모

캠퍼스 모임

회기 캠모 월요일 18:00
과학기술, 광운대 캠모 월요일 18:00
화랑 캠모 화요일 18:00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00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30 ZOOM
경희,외대 캠모 수요일 18:00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유민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문호준  재무 김성미
선교회장 윤민식  액트회장 김미현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1길 11
어린이청소년비전센터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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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절 4기 3과 (일몰 : 5시 51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수 4:23,24).

 

10월 시무 안내
시       무 : 김동은
헌금봉사 : 윤애리 정예진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3 위건우 소그룹 4 정성숙 배승환
10 원유승 소그룹 11 백지원 권세진
17 성만찬예식 18 심영은 배승환
24 유정아 임봉경 25 이현민 임봉경
31 이진건 소그룹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43장
대 표 기 도 심영은 집사
특 별 찬 양 과기광운 캠모
설        교 배승환 목사
찬        미 256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캠퍼스 소식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 정기직원회
    일시 : 10월18일(안)
    장소 : 3층 세미나실
    모든 직원은 직원회에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3. 부목사 출장
    내용 : 연차별전도회
    일시 : 10월19일(일)~25일(안)
    장소 : 서하남교회
  4. 연말찬양발표회 찬양 연습
    일시 : 금요일 저녁 8시30분~9시
              토요일 오후 2시~3시
    장소 : 1층 본당
  5. 액트협회 총회
    일시 : 11월8일(안)~9일(일)
    장소 : 비전센터
  6. 일요기도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졸업생 청년회
    • 청소당번 : 남집사, 장로

캠퍼스 모임

회기 캠모 월요일 18:00
과학기술, 광운대 캠모 월요일 18:00
화랑 캠모 화요일 18:00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00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30 ZOOM
경희,외대 캠모 수요일 18:00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유민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문호준  재무 김성미
선교회장 윤민식  액트회장 김미현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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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청소년비전센터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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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와 찬양 다같이
찬       미 83장
시작기도 기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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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절 4기 2과 (일몰 : 6시 00분)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히 11:31).

 

10월 시무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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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봉사 : 윤애리 정예진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3 위건우 소그룹 4 정성숙 배승환
10 원유승 소그룹 11 백지원 권세진
17 성만찬예식 18 손세림 배승환
24 유정아 임봉경 25 이현민 임봉경
31 이진건 소그룹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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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미 41장
대 표 기 도 백지원 청년
특 별 찬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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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미 382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캠퍼스 소식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 액트매점
    일시 : 10월14일(화)-16일(목)
  3. 성만찬예식
    일시 : 10월17일(금)
  4. 정기직원회
    일시 : 10월18일(안)
    각 부서는 안건을 미리 목회실 또는 서기에게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5. 부목사 출장
    내용 : 연차별전도회
    일시 : 10월19일(일)~25일(안)
    장소 : 서하남교회
  6. 연말찬양발표회 찬양 연습
    일시 : 금요일 저녁 8시30분~9시
              토요일 오후 2시~3시
    장소 : 1층 본당
  7. 일요기도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여집사 3조
    • 청소당번 : 과광캠모

캠퍼스 모임

회기 캠모 월요일 18:00
과학기술, 광운대 캠모 월요일 18:00
화랑 캠모 화요일 18:00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00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30 ZOOM
경희,외대 캠모 수요일 18:00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유민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문호준  재무 김성미
선교회장 윤민식  액트회장 김미현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1길 11
어린이청소년비전센터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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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선교센터교회


안식일학교

경배와 찬양 다같이
찬       미 83장
시작기도 기도자
환       영 안교장
특별순서  
교과공부 각 반
헌금소개 사회자
축       도 담임목사

 

기억절 4기 1과 (일몰 : 6시 11분)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수 1:7).

 

10월 시무 안내
시       무 : 김동은
헌금봉사 : 윤애리 정예진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3 위건우 소그룹 4 정성숙 배승환
10 원유승 소그룹 11 백지원 권세진
17 성만찬예식 18 손세림 배승환
24 유정아 임봉경 25 이현민 임봉경
31 이진건 소그룹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39장
대 표 기 도 정성숙 집사
특 별 찬 양  
설        교 배승환 목사
찬        미 139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캠퍼스 소식

춘천캠모 : 소그룹 담당 박시영 청년이 잘 이끌어 주었는데요, 연휴를 앞두고 다들 바쁠 텐데 이번 학기 최초, 또 올해 처음으로 참석해 준 친구들도 있어서 더욱 풍성한 시간이었습니다.
원주캠모 : 이번주는 함께 식사를 한 뒤 공원에서 4과 말씀을 나눴습니다. 우정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 소속되어 있는 공동체 안에서 협력하며 하나님을 높이고자 다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아울러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2. 액트매점
    일시 : 10월14일(화)-16일(목)
  3. 성만찬예식
    일시 : 10월17일(금)
  4. 정기직원회
    일시 : 10월18일(안)
    각 부서는 안건을 미리 목회실 또는 서기에게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5. 부목사 출장
    내용 : 연차별전도회
    일시 : 10월19일(일)~25일(안)
  6. 일요기도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여집사 2조
    • 청소당번 : 경외캠모

캠퍼스 모임

회기 캠모 월요일 18:00
과학기술, 광운대 캠모 월요일 18:00
화랑 캠모 화요일 18:00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00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30 ZOOM
경희,외대 캠모 수요일 18:00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유민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문호준  재무 김성미
선교회장 윤민식  액트회장 김미현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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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총회-사도행전 연구15.pdf
0.79MB

행 15:1-41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23]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24]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25]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26] (25절에 포함됨)

[27]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30]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31]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내용 요약

  1. 문제의 발단 (1-5)
  2. 예루살렘 총회 (6-29)
  3. 총회 결정사항의 전달 (30-41)

 

배 경

바울과 바나바의 제1차 전도여행이 성공을 거두고 이방의 지역에 여기저기 교회가 세워지자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했다.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이 강했으며 구원받기 위해서는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무수하게 개종해 들어온 이방인들에게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 준수와 할례를 요구했다. 그것은 바울의 가르침과는 반대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일대 위기에 직면했다.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총회가 열렸는데 총회는 오직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공식 확정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해 이 교리는 확고한 체계를 이루게 되었다. 이 15장의 회의야말로 그리스도교 역사상 최초의 회의이며 가장 중요한 회의였다.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10:15) 이 기별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모두 받아들이시고 인정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내었다.(행적 186 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우리사회에 편견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2. 우리 대학선교센터교회만의 문화가 있다면? 그 문화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3. 무거운 짐(육체적, 정신적)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 적이 있나요?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발전하는 안디옥 교회에 무슨 문제가 일어났습니까? (15:1,2)
  2. 어떤 사람들은 누구겠습니까? (행 6:7 참고)
  3.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누가 예루살렘으로 파송되었습니까? 왜 그들이 적격자입니까? (15:2)
  4. 베드로의 발언 내용을 요약하면 무엇입니까? (15:7-11)
  5. 야고보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15:19-21)
  6. 마가(Mark)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봅시다.
    ① 가족관계 (행 12:12)
    ② 원래이름 (행 12:12)
    ③ 바나바와의 관계 (골 4:10)
    ④ 바울과의 관계 (행 15:38, 골4:10, 딤후 4:11)
    ⑤ 베드로와의 관계 (벧전 5:13)
    ⑥ 마가복음에 나온 마가 (막 14:51)

 

생각해봅시다.

  1. 우리는 교회가 내린 결정에 대하여 잘 따릅니까? 그것은 교회의 화평과 발전에 도움이 되나요?
  2. 우리에게도 마가와 닮은 꼴이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3. 마가에 대한 바울과 바나바의 입장 차이를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사명중심vs관계중심)
바울은 직접적인 지도를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향하는 반면, 항상 교회의 교제를 통해 연합을 이룬 신도들의 몸, 즉 교회에 부여된 권위를 인정하였다. 그는 자문이 필요함을 느꼈고, 중대한 문제가 일어났을 때에는 이것들을 교회 앞에 제출하여 형제들과 연합하여 하나님께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혜를 간구하기를 기뻐하였다.(행적200p)

 


1. 어떤 사람들. 이곳에 와서 분쟁을 일으킨 이들의 이름은 명시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된 바리새인들로 보인다(참조 5).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참조 7:8 주석. 이 요구는, 성경 다른 곳에 분명하게 진술되지 않은 사실 즉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의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요구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그리스도 교회에서 일어난 최초의 중대한 논쟁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서 시작된다. 이것은 그리스도 교회가 팔레스타인 지경을 넘어 확산되자마자 야기된 것이 분명하다. 그리스도 교회로 처음 개종한 이들은 유대인이었으나, 그들은 자신이 지켜온 대부분의 종교적인 관례와 편견을 여전히 간직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먼저 유대교로 확실히 개종하지 않은 채 그리스도 교회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충격을 받았다. 고넬료의 회심이나 심지어 에디오피아인과 사마리아인들의 회심 사건으로 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지금 반대를 제기한 그들도 고넬료와 그의 가속(家屬)이 입교하는 것을 기꺼이 수락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마도 고넬료의 경우에는 성령의 지시로 인해 예외가 발생했기 때문에 이것으로 할례의 규정을 무효화할 수는 없다고 논박했을 것이다. 따라서 성령의 분명한 인도로 침례을 받고 입교한 자들이라 해도 이제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이 선동자들은 안디옥에 와서 자신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의장인 야고보의 이름으로 말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야고보는 그들에게 그런 일을 위임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혔다(24). 하지만 야고보가 그의 개인의 삶에서 유대의 의식과 관습에 집착하는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에(참조 갈 2:12), 그들은 야고보의 가르침과 자신들의 가르침을 동일시해도 괜찮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들은 할례가 율법의 일부이기 때문에 소홀히 여겨지거나 거부된다면 이는 모든 율법이 파기된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율법의 올바른 관계를 인정할 준비도, 또 그렇게 할 마음도 없었다. 유대화주의자들이 안디옥에서 한 문제를 부각시켰는데, 이 문제가 바울의 사역 기간 내내 계속적인 불화의 원인이었고, 신약의 대부분과 심지어 사도시대 이후의 그리스도교 문학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주께서 왜 지상 봉사 기간에 이와 같은 문제들을 예견하지 못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분이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으나, 진정한 종교는 외적인 준수가 아닌 마음의 종교이어야 한다는 사실에 전반적인 강조점을 두었다. 그리스도는 광범위한 기초를 놓았고 세부적인 교리보다는 오히려 원칙들을 밝혔다. 교회가 성령에 의해 한 걸음씩 온전한 진리로 인도받아야 했다(16:13). 이것은 교회가 권위적인 전통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새로운 빛을 발견하여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 교회는 새로운 발전에 직면하여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했지만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사례들을 변경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은 아니었다(15:4). 새로운 빛은 예상치 못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성경 진리에 대한 더 많은 연구와 성경적 원칙들을 교회 사업에 적용함으로써 이르러 온다.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었다. 오래된 관례라는 근거로 또는 교인이 되는 조건으로 할례를 이방인들에게 요구할 수는 없었다. 유대화주의자들은 할례를 구원의 필수적인 단계로 제시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셨는데(14:27), 그것은 의문(儀文)에 속한 규례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음을 입증해 주는 진전이었다.

 

2. 바울과 바나바. 유대화주의자들이 이 요구를 통해, 이 두 선교사가 길리기아와 이곳 안디옥에서 그리고 그들의 첫 번째 선교여행에서 이룬 일 즉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승리로 밖에 해석할 수 없었던 그런 사업에 대해 노골적인 비난을 나타낸 점에 비춰볼 때, 바울과 바나바가 이 논쟁의 중심 표적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선포하였다. 이제 그들은 개심자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외적인 의식들을 행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을 잠잠히 방관할 수 없었다.

다툼. 헬라어 스타시스(stasis). “지위”, “당파또는 파벌을 뜻한다. 15:7과 눅 23:19에서, 바라바가 주모자가 되었던 민란을 가리키는 데 이 말이 사용되었다. 본 절에서 이 단어는 격렬한 변론을 묘사한다.

변론. 헬라어 제테시스(ze-te-sis). “찾는 것”, 따라서 질문”, “토론을 의미한다.

바울과 바나바. 복음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주장하는 대표자로, 이방인들 사이에서 벌써부터 성공적으로 일해 온 이 두 사람보다 더 나은 대표자는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몇 사람을. 이들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들은 안디옥에 있는 선지자들 중의 몇이거나(13:1), 이방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진, 구브로와 구레네에서 온 자들(11:20)일 수 있다. 아마도 성령이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하신 일에 대한 하나의 주목할 만한 본보기가 되었을 디도가 동행했다(2:1).

사도와 장로들. 베드로와 요한과 주의 형제 야고보가 예루살렘에 있었다(참조 갈 2:9; 1:19). 이들은 장로들(참조 행 11:30 주석), 구체적으로 이름이 명시되지 않은 다른 사도들과 함께 이 젊은 교회의 지도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교회가 할례와 같은 어려운 문제를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의 총회에 위임한 사실은 교회 조직을 지지하는 매우 의미 있는 선례이다. 이것은 교회의 제반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을 전제 군주 같은 역할을 하는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론과 반대된다. 또한 거론된 문제가 교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때는, 해당 지역 교회보다 더 넓은 차원의 조언과 권위의 필요성을 예시한다. 신약 시대의 교회에서는 예루살렘의 초기 회중에 속한 사도들과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상소 위원단을 구성하였다. 동시에 본 장의 후반부(15:22, 25)에 명시된 것처럼, 이 사건의 최종 결정은 단지 예루살렘에 있는 지도자들의 결정에 의거해서가 아니라, 이 사건을 호소하러 안디옥에서 올라온 대표자들을 포함한 참석자 전원의 합의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다. 그들의 문제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감으로써,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안디옥 교회 전체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통한 성령의 인도에 대해 확신을 나타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계시를 인하여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고 선언한다(2:2). 참조 사도행적, 96.

 

3.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 이것은 바울이 중시여기는 주제가 될 수밖에 없다. 틀림없이 그는 많은 사례를 상세하게 말했으며, 베드로가 고넬료의 경우에서 한 것처럼, 할례받지 않은 자를 수용한 것에 대해 성령이 승인의 표를 날인했음을 강조했다.

형제들을 . 11:2~4, 18과 비교하라.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가 가져온 좋은 소식에 기뻐했다. 이방인에게도 할례를 강요한 자들은 유대인 그리스도인 가운데 한 무리에 불과했고,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라고 기술된다(15:5). 바리새인들은 의식법(儀式法)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여기서 사용된 동사의 형태로 볼 때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동안 이방인의 회심 소식이 연거푸 기쁨으로 환영받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베니게와 사마리아 교회의 이러한 태도는, 예루살렘 교회의 편협하고 신랄한 바리새인(5)과 그것을 위해 대변하려 했던 유대화주의 당파와는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4.말하매. 6절과 비교해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 활동에 대해 보고했던 예비 모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듯하다. 이것이 아마도 바울이 나중에 언급한 유명한 자들사사로이만난 그 모임이다(2:2). 이방인 개종자들의 순결과 사랑뿐 아니라 그들의 행위와 고난, 표적과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시간이 다소 소비되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후에 회의에서 토의되고 결정된 문제에 대한 최선의 서론이었다고 볼 수 있다.

 

5. (바리새). 헬라어로 하이레시스(hairesis). 참조 5:17 주석. 바리새인 중 어떤 이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들은 예수를 하나님이 보낸 선생으로 받아들였는데(참조 요 3:2),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으로써 이 사실이 입증되었다. 따라서 예수가 왕국의 머리가 되어 율법과 성전이 제 위치를 찾고, 이방인은 할례를 조건으로 입교가 허락되는, 회복된 영광스런 유대교를 인류에게 전수할 것이라고 그들은 기대하였다. 바로 이들이 일어나 바울과 바나바가 지금까지 해온 일에 항의한 것이다. 전반적인 문제가 아마도 일개인의 사례 즉 개종의 순차적 단계를 밟지 않은 이방인 디도의 사례(참조 갈 2:3)를 들어 논의되었다. 이 논쟁에 연루됨으로써 디도는 후에 낡은 종교형식에 대한 유대화주의자들의 끈질긴 요구에 대항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출 수 있었다(참조 딛 1:10, 14, 15).

일어나. 유대화주의자들이 이렇게 들고 일어났기 때문에 한층 공식적인 회의의 소집이 불가피하게 되었을 것이다.

모세의 율법. 참조 6:13 주석. 유대화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인에게 시행하라고 제안한 요구 사항은 할례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쐐기를 박는 것에 불과했다.

 

7. 오래 전부터. 문자적으로 초창기부터.” 베드로는 아마도 십수 년 전에 있었던 고넬료의 회심(10)을 암시했다. 현재의 문제와 관련된 많은 일들이 그때 이후에 발생했다.

 

9. 마음을 깨끗이 하사. 믿음이 고넬료와 그의 집안 사람들의 마음을 깨끗케 했다. 오직 깨끗함을 판단할 수 있는 하나님이 보기에 마음이 깨끗하다면, 의문의 법을 지키는 것은 불필요하고 무의미했다. 율법의 의식들은 정결을 위한 것이지만, 바리새인들이 주장한 것보다 더 높은 표준의 정결이 여기 있었다. 의문의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바리새인들은 이방인들을 부정함이라는 총괄적인 죄목의 범주 아래 두었다. 베드로는 아무도 속되거나 부정하다고 칭해서는 안 되며(10:28), 정결은 육체보다는 마음에 관한 것임을 배웠다(참조 딛 1:15).

 

10.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다시 말해,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미 분명히 나타냈는데도, 이방인의 입교와 관련하여 그분의 뜻을 알기 위해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의 거부 의사가 더 강해야 하는가? 광야에서 유대인들은 그들을 위해 베푼 여러 기사(奇事)가 있었는데 하나님이 주신 지도자에 대해 불평함으로 하나님을 시험했다(3:9). 또한 그리스도를 시험했으며(고전 10:9), 그들의 불복종이 불뱀의 형벌을 초래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들의 헌금에 관해 교회를 속이고자 함으로써 하나님의 성령을 시험했다(5:9). 베드로는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일에 다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청중들에게 경고하였다.

 

11.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가져오는 것이 율법과 일치된 삶이 아니라 주의 은혜라고 베드로는 주장했다. 이 진술이 그의 논증의 끝맺음이었다.

구원받는 줄을. 하나님이 약속하는 구원은 은혜에 의한 것이다(참조 롬 3:21~26; 5:1, 2; 11:5, 6; 2:5, 8). 행위는 은혜로 구원의 선물을 받을 때 따라 온다(8:4; 2:9, 10; 2:12, 13).

 

12. 가만히 있어. 베드로의 확신있는 증언에 대해 다른 의견이 없었다. 비록 모든 사람의 마음이 다 바뀌지는 않았을지라도 반대의 소리는 더 이상 없어졌다. 고넬료 사건을 통해 자신의 편견을 극복한 베드로가 이제 다른 사람들의 편견을 극복한 것이다.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즉 베드로가 진술한 말은 교회가 이방인을 최초로 수용한 것을 나타낸다.

백성을. 그들만이 백성곧 하나님의 백성이고 다른 모든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울타리 밖에 있다고 유대인들은 믿었다. 그러나 야고보는 하나님이 또한 이 이방 나라들에서도 한 백성을 당신 자신에게로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선언했다. 바울도 이와 같은 변화를 인식했다(9:26). 그리스도인의 안목에는 택한 백성은 더 이상 유대인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대인을 이방인과 구별해 주었던 의식적 규율들은 이제 불필요했다.

시므온 (Simeon). 헬라어 쉬메온(Sumeo-n). 영어식 표기 “Simeon”“Simon”(시몬)보다 히브리어 쉬므온(Sim‘on)에 더 가까운 형태다. 이 형태는 베드로에 대해 단지 이곳과 아마도 벧후 1:1에서 사용된 것 같으며, 갈릴리 출신인 야고보가 이 형태를 사용한 것은 자연스러웠다.

 

20. 우상의 더러운 것. 예루살렘 총회의 공식 결의문이 우상의 제물”(헬라어 에이돌로쒸타[eido-lothuta]. “우상에게 바쳤던 [것들]”, 29)에 반대하여 말한 것에 비춰볼 때, 여기서 우상의 더러운 것은 이방 신들에게 바친 음식(그리고 음료)이라는 특정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헬라와 로마 종교에서는 음식이 신전에 있는 신들에게 매일 판에 박힌 듯이 드려졌다. 그러나 단지 제물의 일부만 제단에 올려놓았고, 나머지는 신전과 관련된 일을 하며 생활하는 이들이 소모하거나 시장으로 보내 팔았다. 엄격한 유대인이 보기에 이런 음식은 더러운 것이었다. 그러므로 랍비 아키바(AD 100년경)가 내린 것으로 생각되는 한 판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상이 있는 장소로 [그곳에서 어떤 유익을 얻기 위해] 가지고 들어가는 고기는 허용되지만 밖으로 가지고 나오는 고기는 죽은 자의 제물로 [간주되므로] 금지된다”(Mishina ‘Abodah Zarah 2. 3, Soncino ed. of the Talmud, 145). (AD 200년경 성문화된) 미쉬나의 또 다른 규정은 우상에게 바친 술에 대하여 이와 유사하게 천명한다. “옌 네세크(Yen nesek, 헌주[獻酒])는 금지된 것이며 또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다른 술]을 금지하도록 만든다. 술을 [섞은] 술과 물을 [섞은] 물은 미량이라도 [부적합하다]. 물을 [섞은] 술과 술을 [섞은] 물은 [금지된 요소가] 향을 낼 때는 [부적합하다]. 일반적인 규정은 이렇다. 같은 종류로 [섞은 것은] 미량이라도 [부적합하다]. 그러나 다른 종류로 섞은 것은 [금지된 물질이] 향을 낼 때 [부적합하다]”(ibid. 5. 8, Soncino ed. of the Talmud, 349). 결과적으로 철저한 유대인들은 결코 일반 시장에서는 고기를 사지 않고, 유대인 푸줏간에서만 샀다. 여행할 때는 코피노스(kophinos) 즉 바구니를 등에 메고, 먹을 것을 가지고 다녔다(참조 막 6:43 주석). 유베날리스(Juvenal)자신들의 모든 비품으로 바구니 하나와 한 다발의 건초를 소유한 유대인들을 언급한다(Satires . 13, 14; Loeb ed., 33).

이런 강한 유대인의 정서를 고려하여, 총회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삼가도록 요구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보았다. 이것은 결코 작은 자기 부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개종자들은 많은 축제 초대를 거절해야 했고, 참석하더라도 먹는 것은 거절해야 했다. 예민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자기 앞에 차려진 음식이 신전에 바쳐진 것이 아니라는 의심이 풀리지 않는 한 개인의 집에서도 먹기를 거절해야 했다. 동시에 이 규제는 제물로 바쳐진 음식과 술을 맛보는 것이 예배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이교 의식에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참예하는 유혹에서 보호해 주는 실제적 가치가 있었다. 만약 우상에게 바쳐진 것은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면, 심지어 황제의 제단에 드려진 음식과 술을 맛보는 형식적인 의식도 금지되었다는 것을 양심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 특별히 이 문제가 논란거리였던 것 같다(참조 계 2:14 주석).

예루살렘 총회 몇 년 후에 이 규제가 어떤 저항에 부딪혔다. 고린도에서 어떤 이들이 자신들은 원하는 것을 먹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고, 이에 대해 바울은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므로신전에 바쳐진 것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시장에서 음식을 살 수 있다는 범위까지 이론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그가 그 규제를 지지한 것은 형제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의 양심을 존중하는 차원에서였다(고전 8~10; 14 주석 참조).

음행. 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규제가 순전히 의식적인 것으로 보이는 규제들과 나란히 언급된 것을 보고 언뜻 의외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결의 내용의 첫 항목도 십계명의 둘째 계명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도덕적인 문제였다. 음행과 관련하여, 모든 형태의 부정(不貞)을 금하는 레위기 법이 엄격한 것은 적절하다(18; 20:10~21).

여성의 순결에 대한 참된 존중의 결핍과 결부된 음행의 죄는 고대 사회에 널리 퍼진 죄여서 헬라 - 로마인의 삶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 여겨질 정도였다. 이방 종교에서는 우상숭배와 음행이 때때로 얽혀 있었다. 고린도와 바보에 있는 아프로디테의 창기 여사제들에게 나타나는 것처럼, 음행은 종종 우상숭배의 일부였다. 그렇게 하여 신전 예배에 빠진 남자들은 그런 식으로 숭배되는 여신에 대해 소위 자신들의 신앙을 표현하였다. 이교도들에게 음행의 죄는 묵인되었고 심지어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대인 그리스도인은 이방인 회심자들이 순결한 생애를 영위하는지 알고자 했을 것이다(참조 고전 6:15; 2:14). 그러므로 예루살렘 총회에서 그리스도 교회는 교회의 일반적 가르침뿐 아니라 교인들이 따라야 할 구체적인 규칙을 세움으로써 높은 도덕적 수준을 세우는 데 공적인 첫 단계를 취한 셈이다.

목매어 죽인 것. “목매어 죽인 것을 먹는 것에 대해 구약에 명확한 금지 조항이 없다. 그러나 적용되는 원칙은 피를 먹지 말라는 바로 다음의 금지 사항의 경우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목매어 죽인 동물은 정상적으로 피를 빼내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그런 동물의 고기는 음식으로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참조 레 17:13, 14). 야고보의 선언은 또한 스스로 죽은 동물이나 다른 동물에 의해 죽임당한 동물의 고기와 관련된 모세의 규제에 기초했을 것이다(17:15; 12:21). 테르툴리아누스(AD 230년경 사망)가 증언한 바와 같이 초기교회는 이러한 규제들을 지켰다. 그는 이교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그리스도인들 앞에서 그대들의 악한 행위를 부끄러워하라. 그들은 단순하고 자연적인 음식물로 된 식사에서 동물의 피조차도 먹지 않으며, 내장에서 분비된 피에도 오염되지 않으려는 이유로 목매어 죽인 것과 자연사로 죽은 것도 멀리 한다”(Apology 9; ANF, vol. 3, 25). 이와 유사하게, 동방교회의 한 오래된 규율은 명한다. “만일 어떤 감독이나 장로나 집사 혹은 성직에 있는 어떤 사람이라도 고기를 생명이 담긴 피와 함께 먹거나, 짐승에게 찢긴 것이나, 스스로 죽은 것을 먹는 자는 해임시켜라. 율법이 이것을 금하기 때문이다”(Apostolic Canon 63; ANF, vol. 7, 504). 유대인의 고대 전승은 동물의 목이 부러지면 피가 사지로 흘러 들어가 소금을 사용해도 피를 빼낼 수 없다고 말한다(Talmud Hullin 113a, Soncino ed., 621, 622).

. 피를 음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인류에게 육식이 허용되자마자 금해졌고(9:4), 모세의 법에서 자주 반복되었다(3:17; 7:26; 17:10; 19:26). 사울 시대에는 피를 먹는 것을 여호와께 범죄하는 것으로 간주했다(삼상 14:33). 피를 가지고 만든 음식이 헬라인과 로마인들의 식탁에서는 흔했다. 일례로 이런 사실이 호메로스(Homer)의 글에 나타난다.

여기 불 위에 염소의 위가 여러 개 놓여 있는데, 우리가 그것들을 기름과 피로 가득 채운 후에 저녁식사로 거기에 놓아두었네. 이제 둘 중 어느 한쪽이 이겨서 더 나은 사람으로 판명되면, 그에게 이것들 중 자신이 원하는 하나를 선택하게 하라”(Odyssey xvii. 44~49; Loeb ed., vol. 2, 199, 201).

이교도들은 제사를 드리면서 술을 섞은 피를 마시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AD 1세기 유대인의 입장에서 말하는 요세푸스는 [모세]는 피를 영혼과 정신으로 여겨 어떤 종류의 피도 음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금했다고 기록했다(Antiquities iii. 11. 2[260]; Loeb ed., vol. 4, 443). 이런 금지에 대한 유대인의 태도는 랍비 시므온 벤 앗자이(Rabbi Shim‘on ben ‘Azzai, AD 110년경)의 진술로 추정되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 “토라에는 365개의 금지 조항이 있는데, 모든 법 가운데 이와 같은 것은 없다.성경이 피의 금지에 관하여 그대에게 그렇게 권고할진대[12:23], 이것과 비교하여 모든 계명 중에 이보다 더 쉬운 것이 없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것이 나머지 모든 계명에 얼마나 더 많이 적용되겠는가!”(Sifre Deuteronomy 12:23 ; quoted in Strack and Billerbeck, Kommentar zum Neuen Testament aus Talmud und Midrasch, vol. 2, 734). 피를 먹지 말라는 금령이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쉽게 지킬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은 이방인 개종자들이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여기는 예루살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적어도 몇몇 지역에서는 초기 그리스도인 교회가 이 규칙을 수 세기 동안 고수해 온 것으로 보인다(“목매어 죽인 것에 관한 주석을 참조하라). 같은 시기에, 특히 서방에서, 예루살렘 총회의 규제를 단지 도덕적인 금지 사항으로 제시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이레내우스(AD 185년경)는 본 절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그들에게 요구된 것 곧 헛된 우상과 음행과 피를 멀리하고 또한 무엇이든지 자기가 받기를 원치 않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Against Heresies iii. 12. 14; ANF, vol. 1, 435, 436). 그런 관점에서 를 인간의 피를 흘리는 것 즉 살인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피를 먹지 말라는 금령을 인간의 피를 흘리지 말라는 (금령)으로 이해해야 한다”(On Modesty 12; ANF, vol. 4, 86)라고 설명한 테르툴리아누스(AD 230년경 사망)의 말에 비춰보면 분명해진다. 참조 창 9:4 주석.

 

행 14:1~23

[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2]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4]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5]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6]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7]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내용 요약

  1. 루스드라, 14:6~19
  2. 더베 그리고 비시디아를 통해 돌아옴 14:20~23
  3. 안디옥으로 돌아옴, 14:24~28

배 경

제14장은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지방 전도다. 이곳은 남 갈라디아 지방으로 바울은 이곳을 여러 번 지나갔으며 그의 편지 갈라디아서도 이곳에 세워진 교회에 보낸 것이다. 이고니온은 비시디아 안디옥 동남쪽으로 약 350리(약 140km) 떨어진 곳으로 행정상으로 루가오니아(Lycaonia)지방의 수도다. 루스드라(Lystra)는 다시 이고니온에서 남쪽으로 75리쯤 떨어진 곳으로 디모데의 고향이다. 더베(Derbe)는 루스드라에서 동남쪽으로 70리 떨어진 도시로 1차 전도 여행의 종점이다. 다 험악한 지형이었으며 바울은 육로로 이곳들을 여행하면서 온갖 고생을 다 했을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의 모든 선교적인 노력에 있어서 영혼을 위해 자원하여 희생하시고 충성스럽게 열심히 수고하신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고자 노력하였다. 그들은 방심치 않고, 열심 있고 끈기 있게 개인적인 기호나 안일을 구하지 아니하고, 경건한 염원과 끊임없는 활동으로 진리의 씨를 뿌렸다.(행적 186 p)

 

아이스브레이크를 위한 질문

  1. 과분한 호의를 받은 적이 있나요? 그 호의를 받으면서 나의 행동은 어떠하였으며, 나의 마음은 어떠하였나요?
  2. 지금 나의 상태는 넘어져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십니까? 일어선 상태라고 생각하십니까?
  3. 예수님으로 인하여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뒤따른 적이 있나요?
  4. 삶이 오뚝이와 닮은 사람이 있다면 소개해 봅시다. 

 

본문을 더욱 자세히

  1. 이고니온에서 생긴 일을 말해 보시오. (1-7)
  2.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14:2)이 복음 전파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살펴보고 나는 순종치 아니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닌지 생각해 보세요.
  3. 바울은 루스드라의 앉은뱅이에게서 무엇을 보고 그를 고쳐 주었나요? (9)
  4. 쓰스(Zeus)와 허메(Hermes)는 무엇입니까? 바울과 바나바가 신적 대접을 받았을 때, 한 행동은 무엇이었나요? 이것은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우리에게 어떠한 자세를 가르쳐주나요?
  5. 19절을 읽고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변덕스러운 것인가? 군중심리란 얼마나 그릇 될 수 있는가 생각해 보아요.
    사도는 자기의 종말이 이르렀다고 생각하였다. 스데반의 순교와 그때에 자기가 행한 잔인한 행동이 그의 마음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격분한 폭도들은 그가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쳤다. (행적, 182)
  6. 그 비참한 광경 속에서 훌륭한 한 젊은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사단의 노력도 결국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그 젊은이는 누구입니까? (행적, 183)<20절 뒷면 주석참조>
  7.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귀향전도를 하면서 교회를 굳게 하기 위하여 바울이 사용한 뒷수습 방법은 무엇입니까? (21-23)이것은 우리교회에도 필요한 일인가요?

생각해봅시다.

  1. 예수님을 위하여 나는 오늘도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의 삶이 그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2. 우리교회는 지금 교회를 굳건히 하기 위하여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바울의 고통을 목격하였던 사람들 가운데 후에 그리스도를 위한 탁월한 일꾼이 되고 어려운 선교 지역에서 사도와 함께 개척사업의 시련과 기쁨을 나누어야 할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이 바로 디모데라는 청년이었다.(행적183p)

 


1. 이고니온. 이고니온으로 향하는 바울과 바나바의 여정을 누가가 건너뛰었는데, 추론해 보면 도중에 선교 사업을 펼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고니온은 안디옥에서 남동쪽으로 약 144킬로미터 떨어진 주요 도로들의 교차점에 있다. 일부 고대 저술가들은 이고니온이 브루기아에, 다른 저술가들은 루가오니아에 예속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이 도성은 루가오니아의 다메섹으로 불릴 정도로 크고 장중했고, 후에 그리스도교 전승에서 바울과 그가 회심시킨 테클라(Thecla)에 관한 이야기의 배경으로 유명해졌다. 중세 시대에는 이고니온이 셀주크 왕조 술탄들의 수도로서 중요성이 높아졌고, 변형된 축약형 코냐(Konya)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터키의 번창하는 도시로 남아있다(참조 302쪽 지도).

두 사도가 함께. 이는 회당을 특별히 한 번 방문한 것이 아니라, 바울과 바나바가 유대인들을 만나기 위해 함께 여러 번 방문했음을 묘사한 것이 분명하다.

2.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 설득당하지 않으려는 유대인들.” “순종치 아니하는으로 번역된 단어에는 반역으로 이끄는 불신이라는 개념이 들어 있고, 따라서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한 이 유대인들의 특성을 적절히 묘사한다.

 

3. 오래. 아마도 수 개월 동안이었을 것이다. 새 신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을 굳건히 하기 위해 장기간 체류해야 했다.

 

4. 나뉘어. 그리스도인에게 반감을 지닌 비그리스도인은 주민 가운데 분명하게 구분된 집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누가는 이교도 주민이 다수였다고 분명히 언급한다. 기독교로 귀의한 회심자들은 분명 소수 집단으로, 초기교회에 흔했던 것처럼 사회의 하류층 출신이었을 것이다(참조 고전 1:26~28).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처럼 도성의 유력한 남녀들이 그들을 대적하였다(참조 행 13:50).

 

5. 관원들. 즉 유대인 회당의 관원들이며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 회당에서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두 사도를 능욕하며. 그들은 무자비한 능욕과 폭행을 당하였다. 이는 군중을 자극하기 위한 일환으로 계획되었음을 보여 준다. 바울은 핍박자였던 자신의 행동을 묘사하기 위하여 밀접히 연관된 단어를 채용한다(딤전 1:13).

달려드니. 헬라어 호르메(horme-). “습격혹은 공격.” 여기서는 이 단어가 직접적인 공격을 가리키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참조 6). 유대인들은 폭행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이교도 동료들을 자극하고 부추겼다.

 

6. 알고. 음모를 알아내기 위해 반대편과 충분히 접촉한 자들이 사도들 편에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누가는 그리스도인 복음 전도자들의 고난을 과장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간신히 투석형을 피한 사건은 애쓴 흔적 없이 평이한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도망하여. 사도들의 행동은 한 성에서 핍박을 받을 때 다른 성으로 피해야 한다는 예수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참조 마 10:23 주석).

루가오니아. 루가오니아는 로마의 속주가 아니라 특정 종족 지역으로, 서편은 로마의 속주 갈라디아에, 동편은 콤마게네(Commagene)의 안티오쿠스 왕국에 속해 있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갈라디아 도의 국경 안에 머물렀음이 분명하다. 신약 시대에 이고니온은 브루기아에 속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사도들이 루스드라와 더베로 진행했다는 것은 새로운 지역으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루스드라. 1885년에 이르러서야 루스드라의 정확한 위치가 알려졌다. 그 해에 루스드라가 오늘날 졸데라(Zoldera)로 알려진 지역임을 확인할 수 있는 명각이 하나 발견되었다. 그것은 이고니온의 남서쪽으로 약 여섯 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고니온에서 출발하여 육로로 여행할 때 사도들은 구릉 지대를 지나 루스드라가 있는 고원까지 올라갔을 것이다. 루가오니아가 고전 문헌에 황량하고 미개한 지역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명각에 루스드라가 아구스도에 의해 로마 식민지가 되었다고 나타난 점으로 보아 주변 지역보다 상위 문화를 향유한 것이 확실하다. 로마의 상업 중심지인 루스드라 주민 중에 유대인들이 있었겠지만 사도행전의 기록에는 그 도성에 회당이 있었다는 언급이 없으며, 따라서 바울은 거기서 주로 이방인들과 교제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건한 유대 여성의 자녀이며 루스드라 출신이었을 디모데 역시 할례받지 않은 채 성장하였다(참조 16:1, 3 주석). 참조 302쪽 지도.

더베. 더베의 위치는, 1956년 더베가 언급된 한 명각이 이고니온 남동쪽으로 83킬로미터 지점인 케르티 휘위크(Kerti Hu..yu..k) 곧 오늘날의 코니아(Konia)에서 발견됨으로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확증하는 또 하나의 명각이 최근에 나타났다. 후에 바울과 함께 여행한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가이오가 더베 출신이었다(20:4). 참조 302쪽 지도.

그 근방으로. 이 구절은 루스드라와 더베 도성이 작아서 바울과 바나바가 단기간에 전도할 수 있었음을 암시한다. 시골 촌락에서 활동하는 한 그들은 거의 전적으로 이방인들만 만나야 했다.

 

9. 주목하여. 헬라어 아테니조(atenizo-, 참조 13:9; 23:1 주석). 앉은뱅이의 믿음이 그 얼굴에서 빛을 발하자 바울은 치료받음으로 루스드라인들에게 표적이 되기에 적절한 한 사람을 확실하게 알아봤다.

 

10. 바로 일어서라. 이 명령은 평범한 인간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는 믿음으로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조롱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장애인은 믿음에 응하여 움직이고자 의지를 활용하였다. 이것은 중풍병자(9:6, 7), 베데스다 연못의 병자(5:11, 14),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3:6~8) 등의 치유에 공통되는 이적의 유형 가운데 하나이다. 이들 각 경우에 영적인 회복에는 육체적 치유가 동반되었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치유한 사건(3:1~11)과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치유한 사건에 유사점이 있음이 분명하다.

 

11. 루가오니아 방언. 바울은 자기가 방언을 말했다고 표명하지만(고전 14:18), 이 은사에는 루가오니아 방언을 이해하는 능력은 포함되지 않았음이 확실하다. 지지할 만한 확실한 견해는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인들이 자신들에게 경배하려는지 몰랐다는 것뿐이다. 그들이 그러한 경배를 거절하여 극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 사람들이 예배하려는 계획을 추진하도록 고의적으로 허용했다고 추측하는 것은 그들의 품성을 폄하(貶下)하는 것이다. 틀림없이 루스드라인들은 2개 국어를 동시에 사용했을 것이고, 따라서 바울과 바나바가 헬라어로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이 선교사들은 그 사람들이 이교식 제사를 드릴 계획을 세우자고 말한 것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루가오니아 방언의 특성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신들. 신약 시대에는 이렇게 신들이 사람들과 함께 어울린다는 신조를, 단순한 루가오니아인들뿐 아니라 도시와 시골의 이교도들도 전반적으로 지지했다. 루가오니아에는 그곳 사람들이 바나바와 바울을 위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의 근거가 될 만한 오래된 전설이 있었다. 이 신화에 의하면 쓰스와 허메(제우스와 헤르메스 혹은 유피테르와 메르쿠리우스)가 인간으로 가장하여 왔을 때 노부부 필레몬과 바우치스(Baucis)에게 영접을 받자 그들에게 선물을 주었다(Metamorphoses viii. 626~724). 신들이 거했다고 추정된 곳은 후에 경건한 숭배자들이 순례 와서 예물을 놓아두고 가는 성지가 되었음이 이 전설에 나타난 있다.

 

12. 쓰스허메. 헬라어 제우스(Zeus), 헤르메스(Herme-s). 헬라의 쓰스는 신들의 우두머리이며 그의 아들 허메는 신들의 전령과 사자요 웅변의 수호신이다. 로마의 만신전(萬神殿)에서 이 신들에 해당하는 이름은 유피테르와 메르쿠리우스였고, 따라서 그 이름들이 제임스왕역에 그대로 사용된 것이다. 쓰스와 허메 숭배가 루스드라 지역에 보편화되었던 것 같다. 루스드라인의 이름을 가진 어떤 사람이 쓰스에게 조각상을 헌납했음을 말해 주는 명각 하나가 루스드라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쓰스로 여겨지는 기도 듣는 자와 허메에게 봉헌된 돌 제단도 루스드라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루스드라인들은 어떤 신이 선한 목적으로 그들 가운데 임한다면 그는 유피테르 신일 것이라고 믿는 것이 당연했는데, 그들의 도성 정면에 그를 위해 신전을 세웠고(참조 13절 주석) 주로 그를 숭배한 점으로 보아 그렇다. 메르쿠리우스는 유피테르의 주요 수행원으로 간주되었다. 바나바는 바울보다 더 인상적인 태도를 갖췄기 때문에 유피테르라는 명칭이 주어졌다. 바울은 강연의 대부분을 도맡았기 때문에 메르쿠리우스와 동일시되었다.

 

13. 쓰스 신당의 제사장. 이 구절의 의미는 도성 정면에 [위치한] 쓰스 신전 제사장인 것 같다. 이와 같이 쓰스는 루스드라의 수호신이었고 그의 신전은 마치 도성을 보호하듯 성문 근처에 서 있었음이 분명하다. 사람들이 쓰스의 제사장에게 소리 지르며 달려가, 제사를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추고 사도들이 묵고 있던 집 입구로 그를 데리고 왔다.

화관들. 이런 화관은 고대 조각상을 통해 잘 알려졌다. 화관은 대개 흰 양털에 종종 나뭇잎과 꽃으로 장식되었다. 제사용 동물은 물론 제사장과 참석자와 문과 제단도 흔히 이렇게 꾸며졌다.

 

14. 옷을 찢고. 유대인들에게 이것은 극도로 혐오스러움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특히 신성모독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사용되었는데(참조 마 26:65 주석), 이교도 루스드라인들이 모르고 신성모독을 범하려 한다는 것을 바울과 바나바가 이제야 깨달았다. 루스드라 주민들이 옷 찢는 행위를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격렬한 행위가 그들의 주목을 끌고 놀라게 했을 것이다.

뛰어 들어가서. 헬라어 엑페다오(ekpe-dao-). “뛰어나가다”, “돌진하다.” 그 제자들은 성문에서 나와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모인 곳, 아마도 성밖”(참조 13절 주석)에 있는 쓰스에게 바쳐진 신당을 향해 돌진했을 것이다.

 

15. 같은 성정. 이 단어에는 흔히 성정이라고 알려진 것(참조 약 5:17)은 물론이요 인간의 더 소극적인 감정들도 포함된다. 이곳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한 표현과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한 표현(10:26) 사이에 나타나는 현저한 유사점은 주목할 만하다.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참조 13:32 주석. 우상 숭배자들에게 말 못하는 우상 대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기별은 좋은 소식임에 분명한데, 이는 특히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한 하나님 즉 인류의 구주이기 때문이다.

천지와 바다. 이것은 하늘과 땅과 바다에 각기 다른 신들을 지정해 놓은, 널리 퍼져 있는 이방 종교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바울은 한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만들고 다스린다고 선포한다.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호소는 성경에서 반복된다. 그 호소는 하나님과 우주의 관계에 대한 전() 역사의 시초에 있었으며(1), 세상에 경고로 전달된 마지막 복음의 기초이기도 하다(velation/14/7e).

살아 계신 하나님. 그들의 우상숭배와 대비하면서 사도는 루스드라인들에게, 살아서 역사하며 하늘과 땅을 만들고 모든 좋은 은사의 시여자이며 모든 인간을 심판할 하나님에게 돌아오라고 초청한다. 이사야도 이런 대조를 극적으로 묘사한다(40:6~31; 41:18~29; 44:6~28).

 

19. 유대인들이 안디옥에서. 문맥에서 드러나듯이 비시디아 안디옥임이 명백하다(참조 13:14 주석). 안디옥과 이고니온의 유대인들이 일제히 행동을 개시한 사실과 안디옥에서 온 유대인들이 사도들의 사업을 방해하기 위하여 160킬로미터 이상을 여행해 왔다는 사실을 통해, 안디옥의 유대인들이 품은 적개심의 강도가 어떠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안디옥 사람들과 루스드라 사람들의 관계가 밀접했음은 안디옥에서 발견된 조각상에 루스드라 사람들이 안디옥 도성을 기념하여 기념비를 세운다고 기록된 명각에 암시되어 있다.

이 유대인들이 바울과 바나바가 동포임을 알았는데도 그들에게 격노한 것은, 자기들이 매우 소중히 여기는 율법의 요구를 사도들이 배척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루스드라에서 이러한 비난을 일삼는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사도들에게 대적할 수 있도록 다른 고소 내용을 제시했을 것이다. 앉은뱅이를 치유한 기적을 통해 사도들의 능력의 실재성은 입증되었지만 능력의 근원은 입증되지 않았고, 따라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선동하기 위해 그 능력의 근원을 악의 세력으로 돌렸을 것이다(12:24~27에서 예수가 겪었던 유사한 경험과 비교하라).

무리를 초인(招引)하여. 루스드라인들의 태도가 돌변한 것은 예루살렘 군중의 호산나 찬양이 십자가에 못박혀야 하겠나이다라는 외침으로 뒤바뀐 사건(21:9; 27:22)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감정의 심한 기복은, 루가오니아인같이 전승에 미덥지 못하다고 묘사되고 미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다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아니다. 정반대 측면에서 비견할 만한 변화는 이방인 멜리데(28:3~6) 사람들에게서 나타났다. 루스드라인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그런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람의 모습을 한 신이 아니라면, 마법사나 어쩌면 악마일지 모른다고 추정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런 감정을 격앙시키고 야만적인 행동을 하도록 백성을 충동했을 수도 있다.

성밖에. 히브리 법은 돌로 치는 것을 진영이나 도성 밖에서 하라고 규정했다(24:14). 그러나 본 사건에서는 루스드라가 이방 도성이었고 돌로 치는 것이 폭도의 집단 행동으로 일어난 점으로 보아 도성 안에서 일어났던 것 같다. 그래서 바울의 몸을 성밖으로 끌어 낸 것이다.

 

20. 제자들. 즉 새 신자들. 이들이 습격을 사전에 막을 수는 없었지만 어떻게 경건한 장례를 치러줄지를 염려하는 슬픈 마음으로, 의식을 잃은 바울이 끌려 간 장소까지 따라갔음이 분명하다. 바울의 그 쓰라린 경험을 봉사에 대한 도전과 헌신의 모본으로 삼았을 디모데가 바울이 돌 맞는 것을 목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사도행적, 184, 185,). 아마도 로이스와 유니게도 무리 가운데 끼어서 처음에는 슬퍼했지만 조금 후에 그들의 사랑하는 선생이 죽지 않았음을 알고 기뻐했을 것이다.

바울이 일어나. 바울이 무의식 상태에서 회생하여 다시 도성 안으로 들어가는 활력과 담력을 곧바로 보여 준 것은 기적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사나운 폭도에게 돌을 맞고 죽은 줄 알았던 자가 살아나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보한 것은 앉은뱅이가 회복된 것보다 훨씬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의 증거였다.

이튿날가서. 하나님의 섭리로 죽음에서 살아남았지만 바울은 자기를 향한 대중의 정서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잠시 도성을 떠나있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는 후에 최소한 두 번 더 루스드라를 방문하였다(참조 21; 16:1).

 

21.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누가가 이후 여행에서 바울의 동료 중 하나로 언급한 더베 사람 가이오가 아마도 이때 회심한 자들 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성취된 사업으로 보아 여러 달을 더 체류했을 것이라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다.

돌아가서. 다소까지 동쪽으로 진행하여 배로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것이 훨씬 더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바다에 이르기까지 약 400킬로미터나 되는 길고도 지루한 여정을 택하였다. 그러나 거쳐갔던 장소들을 순회함으로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전에 뿌렸던 말씀의 씨를 더 멀리까지 뿌릴 기회를 얻었다. 안디옥과 이고니온에 사는 유대인들의 적개심은 사도들이 더 이상 신변에 위협을 당하지 않고 그 도성들을 다시 방문할 수 있을 만큼 진정되었을 것이다. 도성의 어떤 지역에서는 관료들이 임기를 마치고 다른 관료들이 후임자로 부임했던 것 같다. 참조 302쪽 지도.

 

22. 굳게 하여. 강하게 하여.” 후대에 보편화된 교회의 견진성사(堅振聖事)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여기서 바울의 행동은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22:32)고 베드로에게 한 예수의 위탁과 조화된다. 바울은 자신이 겪은 시련과 거기서 구원받은 경험에서 얻은 경고와 권고로 굳게 할수 있었다.

이 믿음. 여기서 이 말은 믿음 곧 믿고 가르침받은 것에 대한 신앙의 객관적인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신조 체계를 뜻하는 믿음이라는 단어는 이후 사도들의 문헌에 같은 의미로 등장하는데(참조 딤후 4:7; 3, 20) 여기서도 유사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대학선교센터교회


안식일학교

경배와 찬양 다같이
찬       미 83장
시작기도 기도자
환       영 안교장
특별순서 3기 기억절 암송
교과공부 각 반
헌금소개 사회자
축       도 담임목사

 

기억절 3기 13과 (일몰 : 6시 21분)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출 40:34,38).

 

9월 시무 안내
시       무 : 권림
헌금봉사 : 김진수 정예은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3 위건우 소그룹 4 정성숙 배승환
10 원유승 소그룹 11 백지원 권세진
17 성만찬예식 18 손세림 배승환
24 유정아 임봉경 25 이현민 임봉경
31 이진건 소그룹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37장
대 표 기 도 박인앙 청년
특 별 찬 양 경외 캠모
설        교 권세진 목사
찬        미 73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캠퍼스 소식

경희대 캠모
원주 캠모
과학기술 광운대 캠모
강릉 캠모
외대 캠모
회기 캠모
화랑캠모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 한국액트 신임회장단 수련회
    일시 : 9월27일(토)~29일(일)
  3. 부목사 휴가
    일시 : 9월28일(일)~10월2일(목)
  4. 일요기도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여집사 1조
    • 청소당번 : 화랑캠모

캠퍼스 모임

회기 캠모 월요일 18:00
과학기술, 광운대 캠모 월요일 18:00
화랑 캠모 화요일 18:00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00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30 ZOOM
경희,외대 캠모 수요일 18:00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유민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문호준  재무 김성미
선교회장 윤민식  액트회장 김미현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주소 :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로1길 11
어린이청소년비전센터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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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선교센터교회


안식일학교

경배와 찬양 다같이
찬       미 83장
시작기도 기도자
환       영 안교장
특별순서  
교과공부 각 반
헌금소개 사회자
축       도 담임목사

 

기억절 3기 12과 (일몰 : 6시 32분)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하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출 34:6,7).

 

9월 시무 안내
시       무 : 권림
헌금봉사 : 김진수 정예은

 

금요일예배 안식일예배
날짜 기도 말씀 날짜 기도 말씀
5 이종혁 안재완 6 박수빈 안재완
12 유태준 소그룹 13 고은채 박정택
19 박제인 소그룹 20 유수아 배승환
26 정예은 소그룹 27 박인앙 권세진

 


안식일 예배

경배와찬양 다함께
등단 / 묵도 다함께
송        영 2장
기        원 설교자
찬        미 36장
대 표 기 도 함윤희 집사
특 별 찬 양 졸업생 청년회
설        교 배승환 목사
찬        미 428장
개 인 기 도 다함께
헌        금 다함께
축        도 설교자

캠퍼스 소식

과학기술 광운대 캠모
경희 외대 캠모
화랑 캠모
회기 캠모

광 고

  1. 환영합니다.
    기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가족들과 손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 9월 정기직원회
    일시 : 9월20일 점심식사 전
    장소 : 3층 세미나실
    모든 직원은 직원회에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3. 동중한합회 헌장 정관공청회
    일시 : 9월20일(안) 오후3시
    장소 : 본부교회
  4. 담임목사 출타
    일시 : 9월20일(안)
    내용 : 동문교회 청지기 부흥회 강사
  5. 부목사 휴가
    일시 : 9월28일(일)~10월2일(목)
  6. 일요기도회
    일시 :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 다음 주 당번
    • 식사당번 : 재학생 청년회
    • 청소당번 : 졸업생 청년회

캠퍼스 모임

회기 캠모 월요일 18:00
과학기술, 광운대 캠모 월요일 18:00
화랑 캠모 화요일 18:00
졸업생 소그룹 화요일 20:00 교회
장년 소그룹 화요일 20:30 ZOOM
경희,외대 캠모 수요일 18:00

 


담임목사 권세진   부목사 배승환   전도사 김유민
수석장로 임동국   서기 문호준  재무 김성미
선교회장 윤민식  액트회장 김미현


헌금계좌 : 하나은행 144-890014-45304
(ACT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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