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11-32
[11]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14]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왔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비유에는 탕자의 잘못을 견책하거나 조소하는 장면이 전혀 없다...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죄인을 기꺼이 받아주신다는, 이 얼마나 놀라운 보증인가!...그대는 자기 자신을 개선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만큼 충분히 선한사람이 될 때까지 그리스도께 나갈 수 없다고 속삭이는 원수(마귀)의 말을 듣지 말라...일어나서 그대의 하늘 아버지께로 돌아가라 그리하면 그는 멀리까지 나와서 그대를 영접하실 것이다.”(실물교훈, 205)

 


연속된 세 개의 비유는 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마지막 세 번째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본문연구

1. 본문의 모든 등장인물들을 찾아 적어보고, 그 가운데서 주요 인물들을 구분하라.
등장인물
주요인물

2. 다음에서 이 비유의 제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무엇일까? 각자의 관점으로 이 비유의 제  목을 정하고 그 이유를 설명해보라.  
1) 잃은 아들의 비유
2) 두 아들의 비유
3) 아버지의 사랑
4) 기타 __________________
   cf. 이 비유는 눅 15장의 세 개의 비유 중 마지막 비유이다. 일반적으로 1)잃은 양의 비유 2)잃은 은전의 비유 3)탕자의 비유로 일컬어진다.
   cf. 이 비유를 통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잃어버린 양의 비유와 잃어버린 은전의 비유와 탕자의 비유는 하나님을 떠나 곁길로 나간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동정에 넘치는 사랑을 분명하게 드러낸다.”(실물교훈, 198)

3.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간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돌아오게 되었는가?

4.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어떻게 취급하셨는가?

5. 첫째 아들에 관한 부분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
   cf. 아버지와 두 아들은 각각 누구를 의미(상징)하는가? (눅 11:1-2 참고)

“여기에 나오는 맏아들은 세리와 죄인으로 간주되던 사람들을 업신여기던 그리스도 당시의 회개하지 않는 유대인과 각 시대의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을 대표한다.”(실물교훈, 209)

 

토의사항

1. 하나님께 대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오해나 불만은 무엇인가? 부정적인 생각이 있다면 말  해보고 서로 이야기 해보자.

2. 자기의 고집대로 해서 잘못된 경험이 있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 일까요?

3. 신앙인으로서 나의 자세는 아들의 정신인가 종의 정신인가?(사랑인가, 의무감인가?)

4. 맏아들의 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잘못되었다면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누가는 그 자신이 탕자와 같은 이방인이었다. 다른 복음서에 기록하지 않은 이 비유를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그는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기쁨, 영혼에 대한 관심 등과 같은 것들을 깨달았음이 분명하다. 우리도 아버지가 베푸시는 잔치에 참여할 수 있다.


11. 어떤 사람. 예수의 모든 비유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고 볼 수 있는 이 비유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부분(11~24절)은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심정, 아들을 향한 그의 사랑 그리고 탕자가 돌아왔을 때의 기쁨을 강조하고 있다. 두 번째 부분(25~32절)은 아버지의 사랑과 기쁨에 분개한 큰아들과 같은 사람들에 대한 견책이다. 두 번째 부분은 아마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원망(참조 2절)에 대한 그리스도의 응답이었을 것이다. 잃은 양과 잃은 은전의 비유가 구원의 사역에서 하나님의 역할을 강조한다면, 잃은 아들의 비유는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고 그와 조화되게 행동하는 인간의 역할을 강조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을 완전히 곡해했다(참조 7절 주석). 비유에서 둘째 아들은 세리와 죄인들을 대표하고, 맏아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대표한다.

12. 둘째. 통제에 진절머리가 나고, 아마도 자신의 이기적인 관심에만 몰두한 아버지에게 자신의 자유가 과도하게 속박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이 청년은 분명 무엇보다도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거나, 아니면 최소한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스스로 돌이켰”을 때(17절) 행동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을 보면, 그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신에 대해서도, 아버지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불행한 것은,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사실과 아버지의 모든 결정과 요구사항이 결국 아들에게 최선이 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아버지가 지혜롭고 이해심이 깊었으며 공정하고 자비로우며 매우 합리적인 사람이었음을 밝히 보여 준다. 한편, 경험이 미숙한 이 청년은 아무런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도 아들로서의 특권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명백한 권리로 여겼던 것 같다. 그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자신이 생각한 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집을 떠나 자신의 길을 가며 마음에 맞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가 선택한 행동은 제5계명을 직접적으로 위반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분깃. 즉 재산 가운데 그의 몫. 당시의 유대문헌이 밝혀 주듯이, 아버지가 죽었을 때 상속 규정의 효력이 발생하도록 하기보다는 오히려 생전에 아들들에게 유산을 분배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버지에게 그렇게 할 의무는 전혀 없었다. 따라서 청년의 요구는 매우 온당치 못했다. 분명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불신이며,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철저하고도 결정적인 거부를 의미했다.

나눠 주었더니. 아버지가 아들의 못마땅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 해도 합법적이고 타당했지만 허락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한 사실은 부모로서의 그의 판단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줄 뿐만 아니라, 아들의 어그러진 선택이 분명 아버지의 현명하지 못한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단서를 제공한다. 자신이 선택한 결과들을 경험을 통해 깨닫게 하기 위해 자기의 길을 가도록 묵인하는 것이 고집 센 자식을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인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장자는 아버지의 재산 가운데 두 몫을 받았고, 아들 형제들은 각각 한 몫씩만 받게 되어 있었다(참조 신 21:17 주석). 장자에게 더 많은 몫이 주어진 것은 가족의 대표로서의 책임을 이행할 때 필요한 재원으로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아버지에게 아들이 둘밖에 없다면, 여기의 경우처럼(참조 11절) 차남은 아버지의 재산 중 3분의 1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에 재산 분배가 이루어진 경우에는, 재산은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는 손대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은 재산의 분할뿐만 아니라 그 몫을 실제로 요구했다. 이 이야기(참조 13절)에 나타난 것처럼, 그는 재산 중 자기 몫을 모두 현금이나 휴대하기 쉬운 귀중품으로 바꾼 것 같다.

13. 허랑방탕하여. 청년의 “생활”은 낭비벽이 심했거나 도덕적으로 방탕했을 것이다. 비유에서 맏아들은 동생의 “생활”에 대하여 도덕적으로 방탕한 점을 강조했다(참조 30절). 하지만 도덕적으로 방탕한 삶은 일반적으로 낭비벽도 포함한다. 청년이 상당히 많은 재산을 허비한 방식은 삶에 대한 그의 개념을 보여 준다.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사람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얻기 위해 세상으로 뛰어든다.

15.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돼지를 치는 것은 돼지를 부정하게 여기는 유대인들에게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아주 비참한 형태의 일자리였다. 이런 점에서, 그 청년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아마도 그는 그보다 나은 일자리를 잡을 자격도 갖추지 못했던 것 같다. 분명 그는 집에서도 유용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시간을 선용하지도 않았고, “허랑방탕”(13절)함으로 이제 그는 사회의 낙오자로 남게 되었다.

16. 쥐엄 열매. 헬라어 케라티아(keratia). “작은 뿔들.” 케라티아는 꼬투리가 뿔 모양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케라테아(keratea, 캐롭[쥐엄], 개아카시아) 나무의 꼬투리를 묘사하는 말로 사용된다. 이 나무의 꼬투리는 침례자 요한이 먹은 음식의 일부였다는 전승에 입각하여 성(聖) 요한의 빵(St.-John’s-bread)으로 불리기도 했다(참조 마 3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당시의 유대 문헌에 나타나는 대로, 사람이 먹기 위해 씨는 꺼내 놓고 꼬투리는 보통 가축의 먹이로 사용되었다. 캐롭나무[쥐엄나무]는 팔레스타인에서 지금도 경작하고 있으며 미국으로도 전해졌다.

17. 스스로 돌이켜. 어떤 사람들은 죽음이 바로 눈앞에 엄습할 때까지도 진지한 생각 없이 삶의 조류에 휩쓸려 정처 없이 떠도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청년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살아왔으나, 이제 자신이 처한 절박한 필요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오로지 물질적 차원에서만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들은 물질적인 궁핍과 욕망, 그리고 고통이 아니고는 인생의 교훈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이 청년은 말하자면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지금 다시 돌아왔다. 그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였고 지금껏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분명히 깨닫기 시작했다.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노예”가 아니라 “품꾼”이라는 점을 주목하라. 아마도 청년은 과거에 아버지의 품꾼들을 멸시하고, 어쩌면 학대한 적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아버지의 집에 있는 “품꾼”의 처지가 몹시 부러워 보였다. 사실 그는 “노예”나 다름없었고, 더구나 굶주리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깨닫지 못했지만 사실 그가 떠벌리던 자유는 최악의 형태의 속박이었음이 입증되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철학에 따라 꼴지어진 삶의 극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은 그의 어리석음이 낳은 결과이다. 아버지의 인생철학의 지혜가 지금은 그에게 의미를 띠기 시작했다.

18. 내가 일어나. 아마도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일어나.” 그는 불행과 황폐의 불길한 징후로 인생의 하늘을 뒤덮은 무기력과 절망에서 일어났다. 지금까지 그에게는 아버지의 사랑의 본질에 대한 올바른 개념이 없었다. 아버지의 공정함을 생각하고는 그가 품꾼들을 대한 것처럼 자신을 대할 것이라는 옹색한 희망을 갖게 되었다.

20. 이에 일어나서…돌아가니라. 탕자는 지체 없이 행동으로 옮겼다. 그는 결심하자마자 바로 실행했다. 비유에서 아버지에게 돌아가는 일에 주도권을 쥔 사람은 아들이다. 화해를 이루게 한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라기보다는 아들의 선택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견지에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가 여기서 개인을 처음으로 이끈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며 각자가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화해를 이루는 첫 계단이라고 가르쳤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근거 없는 결론이다. 이러한 결론은 그리스도의 비유를 해석하는 기본적인 원칙들에 위배된다. 더욱이 잃은 양과 잃은 은전의 비유에서, 예수는 여기서 제시된 진리, 곧 구원과 화해를 이루는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설명했다. 또한 평범한 인간 관계에 기초된 비유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관한 모든 면모를 완전하게 반영할 수는 없다. 하나님이 세상을 위해 당신의 아들을 선물로 준 것은 아들에 대한 인간의 믿음(요 3:16)이 있기 전이었고, 성경은 심지어 인간의 마음속에 의를 행하고자 하는 소망도 하나님이 불어넣었다고 분명하게 가르친다.

아버지가 저를 보고. 예수는, 아버지가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의 성격과 기질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재산의 분깃을 나누어 주었을 때나 그에게 작별을 고할 때에도 그의 모험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분명 아버지는 아들이 조만간 스스로 돌이킬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참조 17절 주석). 아들이 누더기를 걸치고 멀리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를 알아보았다. 예수는 11~19절에서 둘째 아들의 품성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했지만, 20~24절에서는 청중들에게 아버지의 성품을 나타내 보였다.

22. 옷. 헬라어 스톨레(stole-). 남성들의 헐거운 겉옷으로 발까지 내려오며, 보통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입었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바로 그를 종으로서가 아니라 아들로서 받아들였다. 맨 먼저 그는 아들의 누더기를 가리고 심지어 집안의 종들에게도 누더기 같은 옷을 입은 난처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외투를 벗어 아들에게 덮어 주었다(참조 실물교훈 203, 204,). 주인이 아들을 반갑게 맞이하려고 밖으로 달려갔을 때 종들이 동행하지 않았던 것 같으며, 따라서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히라”는 명령은 아버지와 아들이 집에 가까이 갔을 때 내렸다.

가락지. 아버지가 여전히 그를 아들로 인정한다는 또 다른 징표. 이것은 아마도 도장이 새겨진 반지였을 것이고(참조 에 3:10; 8:2), 만약 그렇다면 그것을 그의 손가락에 끼운다는 것은 그의 신분이 가족의 일원으로 회복되었음을 훨씬 분명하게 가리킬 것이다. 청년은 틀림없이 전에 끼고 있던 가락지를 오래 전에 팔았거나 전당 잡혔을 것이다.

신. 문자적으로 “샌들”(참조 마 3:11 주석). 종들은 보통 맨발로 다녔다. “신발”은 아버지가 회개한 탕자를 종이 아닌 아들로 받아들였다는 또 하나의 표시였다. 제일 좋은 옷, 반지 그리고 신발은 필수품이 아니라 특별한 은총의 표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필요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영예롭게 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가슴 벅찬 사랑과 기쁨의 증거를 나타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는 자신에게 몰려드는 죄인들을 환영한 일이 정당함을 증명했고(참조 1절 주석), 그렇게 행동하는 예수에게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했다(참조 2절 주석).

25. 맏아들. 비유에 나타난 대로는 둘째 아들에 대해서 더 이상 직접 언급돼지 않는다. 이제 그는 완전히 회복되었고, 둘째 아들과 관련된 비유의 교훈-하늘이 회개하고 돌아온 죄인에게 베푸는 은혜로운 환영-은 명료하다. 이제까지는 예수가 “세리와 죄인들”에게 보인 우호적인 태도의 정당성을 입증했다(참조 2절 주석). 비유의 나머지 부분(25~32절)은 동생에 대한 형의 태도에 나타난 것처럼 “죄인들”에 대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태도(참조 2절 주석)를 다루고 있다. 비유의 이 부분은 예수가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대했던 방법에 대해 “원망하던” 독선적인 위선자들을 질책하는 말이다(2절).

밭에 있다가. 그는 충실한 아들이 그렇듯 일하고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늘 아버지가 충실한 아들들에게 베풀 상급을 바라면서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 때문이 아니라, 의무감과 행함으로 의를 얻으려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진정한 순종 대신에 인간의 전통을 철저하게 고수하는 모조품 신앙을 드리면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삼상 15:22; 참조 마 7:21~27 주석)라는 사무엘의 말씀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풍류. 헬라어 쉼포니아(sumpho-nia). 문자적으로는 “제창”(齊唱). 영어 단어 “sym- phony”(교향곡)가 이 단어에서 나왔다. 쉼포니아는 여러 가지 악기, 제창(齊唱) 혹은 백파이프를 닮은 악기(참조 단 3:5 주석)를 지칭한다. 아마도 이 잔치에는 유급 연예인(演藝人)들도 데려다 놓았을 것이다. 분명히 아버지는 오랫동안 잃었던 아들의 귀환을 당당하게 축하할 기회를 만들어 아들의 회복된 상황을 온 마을에 증명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29. 내가…아버지를 섬겨. 문제는 맏아들이 아들로서보다는 오히려 종의 정신으로 일했다는 데 있다. 그는 재산을 벌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재산을 법적으로 요구했고, 그는 자신이 맏아들로서 누릴 권리로 생각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분노를 느꼈다(28절).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없더니. 헬라어는 “내게”를 강조한다. 형이 깨달았든지 그렇지 않았든지 그는 동생에게 베풀어진 배려를 시기하고 있었으며, 아마도 이 모든 배려가 자신의 것이었어야 했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그는 “살진 송아지”는 고사하고 “염소 새끼” 한 마리로도 보상받지 못했다고 불평하였다. 틀림없이 그의 마음속에는, 동생을 복권(復權)시킨 것은 지금은 합법적으로 맏아들의 소유(참조 12절 주석)로 되어 있는 재산의 분깃을 아버지가 난봉꾼인 동생에게 줄 수도 있음을 의미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형은 여기서 심지어 살진 송아지도 법적으로 자기 것이었다는 사실과 아버지는 그것을 포함하여 다른 어떤 재산의 일부라도 자신의 동의 없이는 사용할 권리가 없음을 암시한 것 같다.

31.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둘째 아들은 아버지와 “항상” 함께 있지는 않았고, 따라서 특별히 잔치를 배설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은 목자의 기쁨과 우리에서 벗어나지 않은 양들에 대한 목자의 느낌을 비교해 보라(참조 4, 7절 주석). 아버지가 잔치를 베푼 적은 없었지만 맏아들을 향한 그의 한결같은 사랑을 계속해서 강조한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아버지가 “살림”을 분배하여 둘째 아들에게 분깃을 할당할 때, 그는 또한 장자에게 배당된 두 배의 분깃을 맏아들에게 양도하였다(참조 12절 주석). 아버지가 인색했다는 주장은(29절)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이제 재산은 맏아들의 것이고, 그가 원하기만 하면 벗들과 “즐길 수” 있었다. 또한 아버지는 동생의 귀환으로 그의 권리가 결코 침해받지 않을 것임을 맏아들에게 보증한다. 바로 이것이 그를 괴롭혔다면, 그는 그런 걱정들을 접어두고 축하 잔치에 참여할 수 있다. 아버지는 차근차근 맏아들의 주장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동생을 환영하는 데 참여하라고 권유한다(참조 28절 주석).

32. 마땅하다. 작은 아들은 그런 영접을 받을 자격이 없었지만, 아버지는 그 아들을 환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단언한다. 잔치는 공로 때문에 베푼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아버지의 기쁨의 표현이고, 따라서 형이 이 기쁨에 동참하는 것 또한 “마땅한” 일이었다. 예수는, 이것이 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죄인들에게 취해야 할 태도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잃었던 작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이 맏아들에 대한 사랑을 결코 감소시키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사랑은 그들의 명백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두 아들 모두를 포용하였다. 다행히도 하늘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가 그것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근거하지 않는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