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19

[1]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2]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세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3]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4] 요한의 침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5]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6] 만일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저희가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7] 대답하되 어디로서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9]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10]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11]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심히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12] 다시 세번째 종을 보내니 이도 상하게 하고 내어 쫓은지라

[13] 포도원 주인이 가로되 어찌할꼬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혹 그는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14]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15] 포도원 밖에 내어 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16]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가로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17]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뇨

[18]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19]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포도원의 비유는 유대 백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도 교훈이 된다. 현세의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큰 특권과 축복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는 교회로부터 상당한 보답이 있기를 기대하신다. . .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매우 귀중하게 보신다. 그분은 외적인 훌륭함을 가지고 교회를 높이 평가하지 아니하시고, 세상과 구별되는 참된 경건성을 인하여 교회를 귀하게 여기신다. 그분은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속에서 자라나는 정도와 그들의 영적 경험의 진보에 따라서 교회를 평가하신다.”
(실물교훈, 296)

 

예루살렘으로의 입성과 성전정결의 사건(19)이 있은 직후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도전적인 질문을 받았다. ‘무슨 권세로 . . .’ 바로 예수님의 권세에 관한 것이었다.

 

 

본문연구

  1. 본문에서 예수님과 대화하는 주된 이들은 누구인가?
    1, 19절 _______________

  2. “권세”(authority)에 관한 도발적인 질문에 답하신 예수님의 응수는 어떤 의미에서 지혜로웠는가?
    1-8절 _______________

  3. 2절에 “이런 일”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말하는가?
    19:45-47 참고 _______________

  4. 9-19절은 “비유”이다. 예수님께서는 왜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시고 비유로서 말씀하셨는가?
    9-19절 _______________
    cf.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각 누구를 비유하는가?
    cf. 비유를 통하여 하신 대답은 어떤 점에서 지혜로운 것이었는가? (19)
    cf. 마태복음(21:23-27, 28-32)에 의하면 다른 비유([두 아들의 비유])도 말씀하셨다.

 

토의사항

  1.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생애에 어느 정도 관여하고 계시다고 생각하는지 얘기해 봅시다.
    내 인생에서 주님은 어느 정도의 권위를 가지고 계신다고 생각합니까?

  2.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원하시는 열매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열매를 맺히기 위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는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3. 내 인생의 문제에 있어서 결정적인 해결책을 예수님에게서 찾은 경험이 있다면 서로 나누어 봅시다.
    왜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해결책이라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요한과 비유를 통하여 자신의 권세를 설명하셨다. 직접적으로 말씀하신다 해도 유대의 지도자들은 믿지도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들의 질문은 알고자 하는 동기가 아니었다. 예수님의 응수는 지혜로웠다. 요한의 권세만으로도 그들은 당황했으며, 비유를 통한 답변으로 그들은 물러갔다. 쟁쟁한 권세자들을 홀로 대하여 승리하신 예수님은 비록 설명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분명 특별한 권세가 있는 분임에 틀림없다.


1. 예수께서 성전에서. 이때는 AD 31년 유월절 전의 화요일로, 예수가 성전에서 마지막으로 가르침을 베푼 때다. 지도자들이 가까이 왔을 때에는 이미 예수가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다(참조 눅 20:1).

 

대제사장들. 참조 2:4 주석. 서기관들 대다수가 바리새인인 것처럼 대제사장들중 많은 사람은 사두개인이었다. 마가(11:27)와 누가(20:1)는 이 사건의 기사에 서기관들을 포함시켰다.

 

장로들. 산헤드린은 이른 아침에 이미 회합을 갖고 예수에게 그의 자격에 대하여 묻기로 결정했다(시대의 소망, 593). 어쩌면 지금 그와 맞서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3년 반 전에 동일한 질문을 가지고 침례자 요한에게 파송되었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참조 요 1:19 주석).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요한이 예수를 메시야로 선언하던 말을 들었을 것이다(참조 요 1:26, 27, 29).

 

2. 무슨 권세로. 첫 번째 성전 정결 때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가 가르칠 권한이 있음을 입증할 표적을 요구했다(참조 요 2:18). 그 이래로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예수의 능력과 권세를 입증할 증거를 반복해서 요구하였다(참조 16:1 주석). 유대인들은 선지자들이 랍비의 승인 없이도 백성들을 가르칠 수 있음을 인정했으나,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았다는 증거를 보여 주기를 기대했다. 이제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를 찾아내려고 이런 질문을 했다.

 

이런 일. 예수의 승리의 입성, 성전 정결 그리고 성전 뜰에서의 가르침을 말한다.

 

3. 나도너희에게 물으리니. 질문을 하면 이에 다른 질문을 내놓는 것으로 그 질문에 답하는 과정은 랍비의 논쟁에서 허용되었다. 역으로 하는 질문은 원질문에 대한 대답에 이르는 길을 보여 주기 위해 고안되었을 것이다.

 

한 말을. 실제로 예수는 그 문제를 회피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의 질문에 대한 그들의 대답에는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가 그 도전에 응할 때 사용한 지혜와 노련함은 그의 신성에 대한 부가적인 증거였다.

 

4.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요한도 예수도 예루살렘당국자로부터 승인을 받지 않았다. 그들의 권세는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온 것이었다. 그러므로 통치자들이 제기한 질문과 그에 대한 응답으로 한 그리스도의 질문은 주로 하나님의 신임을 평가할 자격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5. 의논하여. 유대 지도자들은 난처해져서 서둘러 자기들끼리 의논하였다.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유대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정직하게 고백하면 예수로부터 이런 대답이 나올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훨씬 복잡했다. 만약 그들이 요한의 신성한 자격을 인정한다면 나사렛 예수가 메시야임을 증거하는 그의 기별의 핵심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참조 요 1:26, 27, 29). 그러므로 요한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곧 예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

 

7. 알지 못하노라. 유대 지도자들은 요한이 선지자였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나 궁지를 모면하기 위해 모른다고 발?했다. 그럴지라도 그들은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의 질문에 대한 그들의 답변으로 인하여 자신들이 예수에게 했던 처음 질문에 대답하라고 예수를 밀어 부치는 명분이 자연스럽게 철회되고 말았으며, 이는 그들이 계속해서 그 요구를 강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설명해 준다. 게다가 그들은 백성들의 존경심을 상실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예수를 잡기 위하여 교묘하게 쳐 놓은 그물에 걸려들어 꼼짝할 수 없었다. 예수는 예수의 신임을 평가할 자격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공언한 자들을 시험하였고 그들은 불쌍하게도 실패하였다. 그들은 사실상 나라의 영적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포기했다.

 

9. 포도원.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나라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이다. 그리스도가 지금 서 있는 바로 그 지점 가까이 성전 입구에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웅장한 포도나무가 있었다(Josephus Antiquities xv. 11. 3; 시대의 소망, 575; 참조 요 15:1 주석). 21:33의 말씀은 대부분 주님의 포도원에 대한 이사야의 비유에서 인용한 것이다(참조 사 5:1~7).

이 비유는 세상에 거룩한 품성의 열매(참조 21:34 주석)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풍성한 축복을 강조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건강, 지성, 기능, 부유함과 품성면에서 이 땅 위의 가장 위대한 나라가 되어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목적하신 영광을 나타내야 했다.

 

세로 주고. “임대해 주고.” 고대에는 농토에 대한 소작료를 현금(現金) 또는 현물(現物)로 갚았다. 현물의 경우, 수확의 일정량 즉 적정량을 협의하여 약정하였다. 이 비유에서 소작농들은 물납(物納) 소작인들이었으나 이 사실이 오늘날의 물납 소작인들이 안고 있는 어려움들을 그들도 똑같이 겪었음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10. 소출. 이스라엘은 품성의 열매를 맺어야 했으며, 그리하여 세상에 하늘나라의 원칙을 드러내야 했다. 품성의 열매는 먼저 자신들의 생애 속에서 드러나야 했고 그런 다음 주변의 여러 나라 사람들의 생애 속에서 드러나야 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오늘날의 교회에게 큰 축복을 주셨고, 따라서 그분은 교회로부터 그에 상응하는 보답이 있기를 기대하신다(참조 실물교훈, 296).

 

한 종을. 예수는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냈다고 말한다(참조 37). 제사장들은 특별한 의미에서 주의 포도원의 지명된 관리인들이었고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대표자들 즉 그의 종들이었다.

 

11. 종들을 보내니. 마태복음에서는 여러 무리의 종들을 말하는데 첫 번째로 보냄받은 무리 가운데 몇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참조 35, 36). 마가복음은 각 경우마다 한 명의 종을 보냈는데 몇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12:3~5)고 말한다. 누가복음 역시 경우마다 종 한 명씩을 보냈는데 종이 죽었다는 말은 없다(참조 눅 20:10~12). 종들의 수와 그들이 제각기 당한 운명은 분명히 비유의 근본적인 요소는 아니다. 바로 그날 조금 뒤에 예수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이 보낸 기별자들을 취급한 일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23:29~37). 여러 선지자가 당한 운명에 대한 구체적인 예증을 위해서는 왕상 18:13; 22:24~27; 왕하 6:31; 대하 24:19~22; 36:15, 16; 9:26; 37:15; 7:52를 참조하라. 포도원의 소작농들은 세를 지불할 것을 거절했을 뿐 아니라 포도원 소유주를 대리하는 자들을 학대하고 또 자신들이 마치 정당한 주인인 양 행세함으로 포도원 소유주를 모욕하였다.

 

14. 이는 상속자니. 바울은 예수를 만유의 후사로 세우심을 받은 분으로 말하며(1:2), 예수를 받아들이는 자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로 말한다(8:17).

 

죽이고. 바로 이 시점은 산헤드린이 예수를 처치할 방법을 찾고 있던 때였다(참조 마 21:23 주석; 19:47). 그들은 최근 몇 달 동안 거듭해서 그의 봉사에 종지부를 찍게 할 방법을 찾기 위하여 모임을 가졌고(참조 19:3; 20:18 주석), 그중에서 가장 최근의 일은 지난 안식일과(참조 시대의 소망, 563, 564,), 바로 이 아침에 있었다(참조 21:23).

 

17. . 이것은 시 118:22, 23의 인용이며 70인역본문과 동일하다. 랍비들도 이 성경절이 메시야에 대한 것임을 인지하고 있었다(참조 시대의 소망, 597). 개정표준역은 이런 대조를 부각시킨다: “건축들의 버린 바로 그 돌.”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으로서의 에 관하여는 16:18 주석을 참조하라. 버려진 모퉁잇돌의 배경을 이루는 역사적 경험에 관하여는 시대의 소망, 597, 598,을 참조하라.

 

모퉁이의 머릿돌. 모퉁잇돌은 모퉁이에서 만나는 두 벽을 연결시켜 주기 때문에 건축물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모퉁잇돌에 관한 기타 관련 구절을 보려면 행 4:11; 2:20; 벧전 2:7을 참조하고 시 118:22; 28:16 주석을 참조하라.

 

18. 이 돌 위에 떨어지는. , 그리스도께 복종한다는 뜻이다. 이는 유대 지도자들이 행하기를 거절한 바로 그 일이었다(참조 25, 27 주석).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 심판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 심판은 유대 민족과 그 민족의 고집스럽게 회개하지 않는 지도자들 위에 곧 떨어질 것이다.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헬라어 리크마오(likmao-). “(알곡에서 왕겨를) 키질하다”, “흩뿌리다또는 갈아서 산산조각을 내다.” 이 낱말들은 70인역의 단 2:44, 45의 사상을 강력하게 반영하는데, 여기에도 리크마오가 나온다(44). 무거운 물건이 떨어지면 그 어떤 것이든지 가루가 되고 파편들은 멀리 그리고 넓게 흩어진다. 이와 동일한 낱말이 70인역의 룻 3:2에도 사용되었다. “그를 갈아 가루로 만들다라는 표현은 이와 같이 그를 왕겨처럼 날려버리다혹은 그를 왕겨처럼 흩어 버리다로 번역될 수가 있다. 21:44의 생략을 지지하는 본문상의 증거를 제시할 수도 있다.

 

19. 알고. 이 적용은 너무나 명백해서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의심할 여지없이 유대 지도자들은 포도원에 관한 이사야의 비유(5:1~7)와 같은 구약의 구절들과 메시야를 ”(118:22, 23; 28:16 )로 언급한 다양한 구절들의 의미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잡고자. , 그를 체포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그들이 보는 바로는 예수가 자신들의 권위를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자신들의 음모를 실행에 옮기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대중은 이제 예수를 열렬하게 지지했다. 그가 유대 지도자들과 맞설 때마다,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이런 사악한 성직자들에 대하여 갖고 있던 존경심이 줄어들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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