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1:1-4
"[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3]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 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막 12:41-44) "[41]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가난한 과부가 드린 적은 예물은 그녀의 생활비 전체였다. 그 여자는 그녀가 사랑하는 사업을 위하여 두 렙돈을 드리려고 그의 음식을 희생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하늘 아버지께서 그녀의 큰 필요를 간과하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고 믿음으로 그것을 드렸다. 구주의 칭찬을 받은 것은 이 이기심 없는 정신과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이었다.”(청지기, 176)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풍족한 중에서 바치므로 궁핍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특별히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하여 어떤 것도 희생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음으로 원하는 것은 여전히 다 가지고 있다. 그들은 거리낌없고 즐거운 마음으로 바친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인정하신다. 그분은 행동과 동기를 아시고 엄격히 주시하신다. 그들은 상급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처럼 후하게 바칠 수 없는 그대들은, 다른 어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바칠 수 없다고 해서 그대 자신을 변명해서는 안 된다. 그대가 할 수 있는 바를 하라. 없을지라도 살아갈 수 있는 어떤 물건들을 스스로 부인해 버리고,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희생하라. 과부처럼, 그대의 두 렙돈을 바치라. 그리하면, 그대는 풍족한 가운데서 바치는 모든 사람들보다 실지로 더 많은 것을 바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자아를 부인하는 것,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 진리를 위하여 희생하는 것,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1증언, 177)
누가와 마가에 의해 기록된 한 가나한 과부의 헌금은 예수님의 특별한 교훈을 말해주려고 하는 것이다. 헌금은 왜,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드리는 것일까?
본문연구
1. 본문을 마가복음 기록과 병행하여 자세히 살피고 각 절마다 관찰되는 것들을 적어보라.
1절 _______________
2절 _______________
3절 _______________
4절 _______________
2. 위에서 관찰된 것들을 이해하고 설명하여 보라.
1)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헌금 넣는 것은 보신 것은 우연인가 아니면 의도적 이었는가?
2) 과부의 헌금 “두 렙돈”은 어는 정도의 액수인가? (막 12:42 참고)
cf) 두 렙돈=한 고드란트 (1 앗사리온=8 렙돈)
3)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4) ‘풍족한 중에서’와 ‘구차한 중’에서는 어는 정도의 차이일까? (고전 8:20, 9:11 참조)
3. 아래 선지자의 글에서 관찰되는 것들은 무엇인지 서로 이야기 해 보라.
“예수께서는 연보궤가 있는 마당에 계셨으며 거기서 저희 예물을 넣으려고 오는 사람들을 바라보셨다. 많은 부자들이 매우 자랑하는 태도로 많은 예물을 가지고 와서 드렸다. 예수께서는 슬픔으로 그들을 바라보셨으며 그들의 후한 예물에 대하여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얼마 후에 한 불쌍한 과부가 남들이 보는 것을 두려워하여 머뭇거리면서 가까이 나아오는 것을 보고 그리스도의 얼굴은 빛났다. 부요하고 거만한 자들이 그들의 예물을 넣으려고 옷자락을 질질 끌며 지나가는 것을 보자 그 여자는 감히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는 것처럼 뒤로 움츠렸다. 그러나 그 여자는 비록 그것이 적을지라도 그가 사랑하는 사업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하고자 하였다. 그 여자는 수중에 있는 예물을 보았다.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예물에 비교하면 매우 적은 것이었으나 이것은 그의 소유의 전부였다. 자기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그 여자는 급히 두 렙돈을 놓고 빨리 돌아갔다. 그러나 이 일을 행하는 중에 그 여자는 자기를 주목하여 열심히 바라보시던 예수님의 시선과 마주쳤다.”(소망, 614)
“주의 연보궤에 두 렙돈을 넣은 한 가난한 과부는 그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알지 못하였으나 그의 자아 희생적인 모본은 각 나라와 각 시대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계속 움직여 왔다. 그 모본은 하나님의 창고에 높은 자와 낮은 자, 부자와 가난한 자로부터 예물이 들어오게 해서, 그것으로 사명을 유지하며 병원을 세우며 주린 자들을 먹이며 벌거벗은 자를 입히며 병든 자를 고치며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다. 많은 무리들이 이 여자의 이기심 없는 행위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았다. 그녀는 그녀의 감화가 이루어 놓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날에 보게 될 것이다.”(6증언, 310)
토의사항
- 헌금생활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이야기 해 봅시다. 헌금 생활을 통해 은혜 받은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 내게 맞는 적절한 헌금은 어느 정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위 말씀에 대해 논의 해 봅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일부러 연보궤를 주시하셨다. 참으로 주님을 기쁘게 한 것은 비록 적을지라도 믿음과 헌신으로 생활비 전부를 드리는 한 과부를 보신 것이었다. 그녀의 헌금은 당시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주님의 제자들을 위한 특별한 모본의 될 것을 주님은 아시고,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셨다.
41. 예수께서…앉으사.
이 사건은 그날, 아마도 화요일 늦은 시간에 일어났을 것이다(참조 마 23:1, 38, 39 주석; 예수의 생애와 봉사, 도표 9). 예수는 국가 지도자들과의 길고도 신랄한 논쟁을 방금 승리로 마무리짓고 나서, 성전의 거룩한 경내를 영원히 떠나려 하고 있었다.
연보궤. 마가가 여기서 가리키는 것은 성전의 연보궤를 소장하고 보호하는 견고한 방(the strong room, 헌물방)이 아니라 여인의 뜰에 있는 헌금함이다.
대하여. 즉 “반대편에.” 그곳에서 그는 예배자들이 헌금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넣는데. “넣고 있었는데.” 분명히 부자들이 차례대로 지나가며 예물을 넣었다.
42. 가난한. 헬라어 프토코스(pto-chos). “극히 빈곤한 [자]” 즉 “아무것도 없는.” 누가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생활을 하는 존재, 그래서 다음 끼에 먹을 것을 얻기 위하여 매일 노동을 해야 하는 사람을 뜻하는 헬라어 페네스(pene-s)의 후기 시형(詩形)인 페니크로스(penichros)를 사용한다(참조 눅 21:2). 헬라어 페네스(pene-s)는, “생계를 위해서 노동함”이라는 동사 페노마이(penomai)에서 파생되었다. 아마도 예수는 이 과부의 마음가짐을 과부들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태도와 두드러진 대조로 부각시키려 했을 것이다. 이 과부의 빈곤은 이때 그곳에 있었던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 중 어떤 이의 탐욕에 기인된 일면이 있었을지도 모른다(참조 마 23:14 주석). 그리스도는 그들이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라고 말했다(12:40).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께 대한 넘치는 사랑으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은(44절) 과부가 있었다. 얼마나 대조적인가!
렙돈. 렙톤(lepton). 우리 돈 1원 가치도 안 되는 동전. 렙톤(lepton)은 당시 통용되던 가장 적은 단위의 유대 동전이었다.
고드란트. 코드란테스(kodrante-s). 두 렙돈과 같으며(참조 제10권, 참고 논문 “기독교 첫 세기의 유대인”), 그리스도 당시의 (노동자) 하루 품삯인 로마 데나리온의 64분의 1에 해당되었다(참조 마 20:2 주석). 과부의 헌금의 액면 가치가 적음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이 헌금의 상대적 크기가 더 강조되어야 하지 않겠는가?(참조 44절 주석).
43. 제자들. 마가(참조 막 13:3)는 이 제자들을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으로 밝히고 있는데 이 네 명은 약 오 년 전에 갈릴리 호숫가에서 그물질하다 부름을 받았다(참조 눅 5:1~11 주석).
진실로. 헬라어 아멘(ame-n). 히브리어 아멘(’amen)에서 나왔음. “확고한”, “확립된”, “확실한”을 의미함. 히브리어 용법에서 아멘은 다른 사람의 말에 확실하고 강한 응답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민 5:22; 신 27:15, 16 등). 같은 용법이 신약으로 넘어왔다(고전 14:16). 아멘은 또한 신약에서 송영(doxology) 끝에 자주 나타난다(롬 1:25; 갈 1:5 등). 그러나 예수 자신의 말을 확증하고 강화하기 위해 그가 사용한 아멘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의 말 가운데 많은 부분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6:2, 5, 16; 등) 또는 요한복음에서처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요 3:3, 5, 11 등; 참조 마 1:51 주석)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즉 부자 헌납자들이 낸 것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이. 하늘의 판단으로는 가치가 있는 것은 정작 헌금의 양(量)이 아니라 그 일을 유발하는 동기다. 하늘의 관심은 그 헌금이 나타내는 사랑과 헌신의 분량에 있지, 돈의 가치에 있지 않다. 예수가 ‘포도원의 품꾼들’ 비유(참조 마 20:15 주석)에서 명백하게 예증한 바와 같이,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보답하시는 유일한 근거이다. 이 과부에 대한 예수의 칭찬도 헌금을 드리게 한 마음가짐에 근거한 것이지, 액면가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
44. 풍족. 헬라어 페릿슈마(perisseuma). “풍족”이란 뜻 외에도 “남은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과잉” 또는 “남아 도는 재산.” 부자는 잉여금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남아 돌아가는 재산 중 일부를 바쳤고, 바치기 위해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았다. 사랑과 헌신의 견지에서 그들의 헌금은 아무 가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헌금이 자기 희생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차한. 헬라어 휘스테레시스(hustere-sis). “부족함”, “가난”, “빈곤.”
자기 모든 소유. 최대한의 사랑과 헌신을 하나님께 드린 증거.
생활비. 헬라어 비오스(bios). “생계.” 조에(zoe-), “생명” 자체가 아님. 십중팔구 이 과부는 다음 끼니조차 잇기 어려운 처지였다.
재림교회 헌금 안내
십일조 : 수입의 십분의 1
기타헌금 :
종류 :
청지기헌금(월정헌금) : 교회운영을 위해 사용되는 헌금
도르가헌금 : 구제활동을 위한 헌금
설교예배헌금 : 첫째, 셋째, 넷째 안식일은 교회 경비 둘째,다섯째는 목적헌금
안식일학교헌금 : 세계선교를 위한 헌금
기타헌금 : 감사헌금, 투자헌금, 생일감사헌금, 등
특별헌금 : 특별한 목적을 위해 드리는 헌금 (건축헌금 등등)
기타헌금 책정의 적절한 제안
수입의 1/10 = 십일조
수입의 1/10 = 기타헌금 (합 수입의 2/10)
청지기헌금 : 60%
설교, 안교헌금 : 20%
도르가등 기타헌금 : 20%
예) 수입이 100만원인 경우
십일금 : 10만원
청지기헌금 : 6만원
설교, 안교 헌금 : 2만원 (매주 5,000원)
기타헌금 : 2만원 (도르가 1만원, 감사헌금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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